올림픽이라는 개막식 등으로 인해 일요일 단 한 차례 방영한 스테디 셀러 <황금빛 내인생>은 41.9%로 선방했다.(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그런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출소하며 그가 <황금빛 내 인생>을 구치소 내에서 즐겨 시청했다는 것이 밝혀지며 충격을 주었다. '돈은 해외에 두었지만 외화 유출은 아니다'라는 희한한 어법을 활용하며 대중적 정서와 괴리된 입장을 보이던 전국민적 인기 드라마인 <황금빛 내 인생>을 함께 공감했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는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황금빛 내 인생>이 묘사하는 재벌가의 '갑질'과 오너 일가의 삶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런 이재용 부회장의 '자각'에 가장 근접하는 <황금빛 내 인생>속 인물은 아마도 해성 그룹의 아들로써 그의 신념이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혹독한 수난을 겪고 있는 최도경일 것이다. 


최도경, 해성 그룹의 장녀 노명희(나영희 분)의 외아들이자, 노명호(김병기 분) 회장의 장손이며, 미국에서 MBA까지 마치고 돌아온 해성 그룹 전략 기획팀 팀장이다. 접촉 사고로 악연을 시작한 그가 그 자리에서 차량 수리비 2000 만원에 당혹스러워 하는 서지안에게 자기 딴에는 통 크게 수리비를 500만원으로 감해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의 자부심이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때문이었다. 



목숨조차 던질 수 있어야 진짜 노블리스 오블리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말 그대로 하면 귀족이 은혜를 베풀다는 뜻이다. 즉 출생이나 운에 의해서 더 좋은 교육이나, 더 많은 부의 혜택을 누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유래'가 된 역사적 사건은 '백년전쟁'으로 부터 비롯된다. 1347년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의 칼레를 포위했다. 결국 기근에 시달리던 칼레는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11개월이나 저항했던 칼레 시민의 안위는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항복 협상을 하는 가운데, 에드워드 왕은 지도자 6명이 목숨을 내놓는다면 칼레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그러자 칼레 시민 가운데 가장 부유한 '외슈타슈 드 생 피에르'가 앞장을 섰고, 그 뒤로 시장, 고위관료, 상류층이 뒤를 이어 7 명의 사람들이 나서게 되었다. 단 한 명은 목숨을 건지게 된 상황, 하지만 다음 날 광장에 초라한 옷을 입고, 목에 밧줄을 걸고 나선 사람은 총 6명, 가장 먼저 제안했던 '피에르'는 이미 그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런 피에르의 살신성인은 결국 나머지 6명의 지도자의 목숨을 보존케했으며, 칼레 시민의 안전을 지켰다. 이후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이란 작품으로 길이 기억되는 이 사건이 바로 스스로 목숨을 던져 책임감을 실천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유래다.

그리고 바로 그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극중 최도경은 극 초반부터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이제 서지안과 연인 사이가 된 그가 당시의 일을 회한에 젖어 말하듯이, 그의 '얄팍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초래한 결과는 컸다. 딴에 인심을 쓴다고 깍아줬던 2000만원, 그러나 500만원은 계약직 서지안에게는 여전히 큰 돈이었다. 심지어 서지안이 가지고 있던 돈마저, 그가 서지안과 윤하정과의 난투극을 신고하는 바람에 합의금으로 날라가고, 서지안을 양평 별장 해프닝에, 결국 해성가로 급하게 들어오게 만드는 구실이 되고 만다. 

소현경 작가는 최도경을 통해, 매번 그가 자부심으로 삼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서지안에게 가닿기는 커녕 오히려 그녀를 더욱 난처하게 만드는 상황을 풀어내며 우리 시대 이른바 '갑'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얼마나 자기 위안에 불과한 것인지 폭로한다. 그렇게 없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고 '자부심쩔었던' 최도경은 '가지지 못한' 서지안에 대한 사랑에 눈뜨게 동시에 자신의 허세를 깨달아 간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유래에서도 보여지듯이 '목숨을 던질 정도의 책임감'이 아닌 가진 것을 진심으로 포기하지 않는 양보라는 게 얼마나 '기만'이라는 것을 드라마는 최도경의 행보를 통해 적나라하게 설득해 낸다. 



사랑보다 우선한 자존  
그저 자신이 해성가를 버리고 나오면 당연히 서지안이 자신을 두 팔 벌려 사랑해 줄거라 생각했던 그의 생각은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서지안에 대해 의아해하다, 억울해하다, 분노하다, 그 끝에서 서지안의 죽음을 만난다. 사랑이라 말했지만 재벌가도 버리고 나온 나를 왜 싫어하냐며, 그리고 재벌가가 왜 싫냐며 반문할 수 밖에 없었던 최도경은,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세상에서 지우려 했던 서지안을 직시하고 나서야, 비로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색안경을 벗게 된다. 재벌가의 자신과 함께 풍족하다 못해 넘치는 물질적 삶이 아닌, 이젠 비록 정규직도 아닌 목공소 알바라도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며 비로소 삶의 여유를 찾았다는 서지안의 삶의 선택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벗어던진 건 그저 사랑하는 서지안을 비로소 제대로 바라보게 된 것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인정받아 다시 재벌가로 돌아가려 했던 자신의 야무진 꿈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애초에 정해진 길을 당연하다 생각했던 자신을 불쌍하다며 바라봐주었던 서지안을 마음에 품은 그 시점부터 어쩌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운운하던 재벌가 자제 최도경이 삶은 균열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소현경 작가는 '가졌다'는 그 허황된 궁전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얄팍한 자기 위안에 빠져있던 최도경을 이제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그 '극복'을 설파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는 그저 재벌가 자제의 각성이 아니라,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작가의 권유가 있다. 대기업을 다니기 위해 쓰레기통도 뒤지기를 마다하지 않던 서지안이 그 눈높이을 낮춘게 아니라 버리고 비로소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게 되는 과정과, 재벌가의 자제라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코에 걸고 얄팍한 자기 위안에 빠져 살던 최도경이 계급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사랑'을 통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가는 여정은, 결국 물질 만능주의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 온전히 자신으로 서는 과정이다.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의 젊은이들의 삶엔 그들의 꿈이 우선한다. 최도경을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이제 비로소 찾은 목공소를 매개로한 아티스트의 길을 놓치지 않으려는 서지안이나, 서지안을 사랑하지만, 그녀와 함께가 아니라도 해성에 들어가는 대신 가슴에 품었던 '친환경 사업'을 시도하는 최도경, 프랑스 유학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빵만드는 일을 포기하지 않 지수, 그리고 지안, 지수 자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던 청년 사업가 혁 등은 모두 사랑에 앞서 그들의 꿈이라는 존재로 땅에 든든하게 선다. 과연 구치소 안의 이재용 회장에게 이런 작가의 생각이 가닿았을까? 
by meditator 2018. 2. 12. 15:36

다시 또 한 집에 모여 사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바로 2월 5일 jtbc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으라차차 와이키키(이하 와이키키)>이다. 이제 시즌 2까지 완주한 <청춘시대>처럼 이들도 한 집에 모여산다. 그런데, <청춘시대>의 청춘들이 셰어 하우스를 찾아 각자 그 곳으로 모여들었다면, <와이키키>의 청춘들은 그들이 함께 모여 게스트 하우스를 차렸다. 한쪽은 세입자고, 또 다른 한쪽은 사장님인데, 어째 상황은 후자가 더 나쁘다. 물이 끊기고, 조만간 전기도 끊길 예정이란다. 


꿈을 잠시 유보한 청춘들의 고전기 -모던 파머, 그리고 으라차차 와이키키
<모던 파머>라는 작품이 있다. <으라차차 와이키키>에 참여한 김기호 작가의 2014년작이다.  sbs를 통해 방영되었지만, 평균 4%를 오르내리던 이 주말 드라마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드라마에 유한철 역으로 출연했던 이시언이 극중 강아지에게 젖을 먹이다 물렸던 웃픈 에피소드가 예능을 통해 방영되며 괴작(?)으로 드라마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정도다. 



하지만 <모던 파머>는 '귀농'이 우리 사회에 하나의 사회적 화두인 시점에서 발 빠르게 젊은이들의 '귀농'을 담으려 했던 드라마다. 물론 '코믹'하게. 인디 밴드 '엑설런트 소울즈'을 꾸렸던 네 청년, 하지만 그들의 음악적 꿈을 도시는 품어주지 않았다. 그들이 택한 방식은 '귀농', 농사도 짓고, 다시 음악도 해보겠다던 청년들 하지만, 그들의 '귀농'은 그 시작부터 해프닝이다. 

이렇게 2014년 '꿈'을 위해, '꿈'을 우회하는 방식을 택한 청춘들의 이야기는 2018년으로 오면 그 대상이 '농촌'에서 도시의 '게스트 하우스'로 바뀐다. 그리고 이번에 그들의 꿈은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란'을 뛰어넘는 영화 감독을 꿈꾸는, 그러나 현실은 회갑 잔치 영상이나 찍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청춘 강동구(김정현 분), 믿고 보는 배우를 꿈꾸지만 역시나 현실은 주연 배우의 손가락질 하나에 그의 배우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단역 배우인 이준기(이이경 분), 말이 좋아 작가지 돈이 되는 글이라면 자소서 대필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다하지만 현실은 편의점 알바인 봉두식(손승원 분), 이들 세 친구가 자신들의 꿈을 위해 벌인 사업이 바로 '게스트 하우스'다. 

이렇게 드라마는 '꿈'을 위해 '현실'을 택한 청춘들의 딜레마를 밑천으로 삼는다. 그리고 '귀농'을 했던 청춘들이 배추를 키우기도 전에, 시골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해프닝의 연속이었듯, <와이키키> 역시 하와이의 로망 와이키키 해변을 게스트 하우스의 이름으로 작명했지만, 현실은 '중국 특수'가 끊겨 손님 구경한 지가 한참 되어 물도 끊기고, 전기도 끊길, 거기에 남자 셋이 그 전기세 40만원조차 만들지 못해 절절매는 '자가당착'의 상황이다. 

찰리 채플린의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문구 그대로, 전기세 40만원조차 만들지 못해 오랜 연인과의 커플링을 궁색하게 찾아 헤매고 팔까 고민하는 처지에 놓인 강동구를 비롯한 세 청년의 상황은 매 장면 웃긴데, 어쩐지 그 뒷맛은 99% 다크 초콜릿처럼 씁쓸하다. 



으라차차 와이키키가 그려내는 청춘의 방식 
<청춘 시대> 시즌1,2는 셰어 하우스를 배경으로 그곳에 모인 청춘들의 이야기를 곡진하게, 감성적으로 그려내어 동시대 청년들의 공감을 얻었다. 과연, 그 '감성'과 '사연' 대신, 해프닝과 웃픔을 택한 <와이키키>에 대한 공감은 어떨까? 

<모던 파머>를 회자시켰던 장면이 이시언의 가슴에 흐르는 우유를 핥아먹는 강아지였듯이, 첫 회 <와이키키>는 또 다른 수유 해프닝을 다룬다. 세 청년의 집에 몰래 아이를 놓고 도망쳤던 한윤아(경인선 분)가 우여곡절 끝에 같이 지내며 모유 수유의 고통을 토로하고, 유축기, 마사지 등 젊은이들에겐 문화적 충격을 주는 장면은 마치 <모던 파머>의 오마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즉, <으라차차 와이키키>가 선택한 젊은이들의 고난의 행군은 '웃픈 웃음'이다. 시트콤과 같은 웃픈 상황에 던져진 주인공들의 소동극이다. 

거기에 일찌기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를 비롯한 외국 영화에서 부터, 2008년 kbs2를 통해 방영된 <아빠 셋 엄마 하나>도 비슷한 설정인 '아기'와 아기 엄마를 둘러싼 육아 상황극은 익숙하지만, 언제나 대중적인 호감의 소재이다. 과연 이 '대중적'인 소재와 함께, <와이키키>가 2000년대 화제의 시트콤 <세 친구>만큼의 화제성을 얻을 수 있을 지. 김기호 작가 버전 청춘 시대가 2018년 청춘의 대명사로 거듭나기를. 

by meditator 2018. 2. 6. 16:02

<나쁜 녀석들> 시즌 1의 최종회 11회의 시청률은 4.3%, 최고 시청률은 5.9%였다. 물론 <나쁜 녀석들>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마동석이 주연한 <38사기동대>에 의해 그 기록은 깨졌지만, 그 당시까지 ocn최고의 시청률이었다. 2월 4일 종영한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의 16회 최종 시청률은 평균 4.8%, 최고 5.7%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는가 하면, 시즌1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성과를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유종의 미'에 도달하기 위해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는 수많은 희생을 치뤘다. 애초에 우제문(박중훈 분) 검사와 함께 의기투합했던 '나쁜 녀석들' 팀, 허일후(주진모 분), 장성철(양익준 분), 노진평(김무열 분), 한강주(지수 분), 그리고 신주명(박수영 분), 양필순(옥자연 분) 중 마지막 회 엔딩에서 살아남은 자는 단 3명, 우제문, 허일후, 한강주, 길고도 지리했던 16부의 서원 시 악의 세력 구축 작전에서 이들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싸움을 해왔다. 

시즌 1이 '강력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모아 더 나쁜 녀석들을 소탕하는 강력계 형사와 그의 휘하에 모인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내걸고 결국 남구현 경찰청장과 오구탁 형사, 오재원 특검의 사적 복수와 이정문, 박웅철, 정태수 사이에 얽히고 얽힌 구원을 엔진으로 시리즈를 밀어 붙였다. 그에 반해, 시즌 1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저 '서사'의 부실함으로 지적받았던 것에 심기일전했던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이하 악의 도시)>는 서원시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재개발 사업을 중심으로 나쁜 녀석들과 더 나쁜 녀석들의 충돌을 그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처럼, 16부의 <악의 도시>는 서원시에 깊게 뿌리박은 악의 세력 척결을 위한 길고 처절한 싸움의 시간이었다. 검찰 내 아웃사이더 검사 우제문(박중훈 분), 그는 검찰 총장의 명을 받아, 다시 한번 오구탁 형사의 방식으로 악의 세력을 척결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서원시를 장악한 채 재개발 사업을 독점하며 서원시민들에 기생하는 악의 세력 조영국(김홍파 분)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를 위해 그가 끌어모은 건 동료 수사관의 죽음에 상처를 입은 신입 검사 노진평과 몇 년전 조영국이 쳐놓은 덫에 걸려 동료를 배신했던 전력이 있는 비리 형사 장성철, 피습을 당한 채 생사의 기로를 헤매는 동생의 복수를 위해 홀로 나선 '형받이' 한강주, 전직 동방파 주먹이었던 이제는 그저 식당 주인이 된 허일후 등이었다. 

조영국을 잡기 위해 전면전을 펼친 이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영국과 동방파를 척결하기 위헤 이들의 그물에 걸린 이는 시즌 1에서 처럼 이들을 모이게 했던 검찰총장 이명득(주진모 분)이었다. 새로운 시대가 돌아오고 '적폐' 세력으로 물러나게 된 이명득은 우제문을 앞세워 자신의 이권을 보존하는 한편, 새 시대의 세력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쁜 녀석들'을 이용했던 것, 하지만 '나쁜 녀석들'은 신주명 과장과 양필순 형사를 희생시키며 적폐 세력 이명득을 몰아낸다. 

그게 겨우 7회였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이명득을 몰아내는데 앞장섰던 반준혁(김유석 분)검찰 수뇌부가 새롭게 꾸려지고, 서원시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꾸려진 특수 3부. 그러나 새 시대는 쉽게 오지 않았다. 새 시대에 길을 비켜준 우제문과 달리, 기꺼이 특수 3부에 합류한 노진평 검사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 과정에서 정작 새 시대의 도구였던 특수 3부가 의혹의 대상이 된다. 동료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다시 모인 남은 자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새 시대를 등에 업고 여전한 이권의 수호자가 된 경찰 세력과, 그를 비호하는 새로운 검찰 권력과 대립하게 된다. 

일진일퇴, 그때마다 피칠갑을 하며 온몸을 던진 우제문을 필두로 한 '나쁜 녀석들'은 황민갑(김민재 분)형사를 중심으로 경찰 내 자리잡은 이권 세력들을 제거하고, 여전히 구악을 끊어내지 못했던 반준혁 검사장 조차 스스로 물러나게 한다. 

이제 정말 조영국만 제거하면 된다며 마지막 일전을 결심했던 '나쁜 녀석들', 그러나 그들이 마주친 건 조영국조차 하루 아침에 재개발 사업에서 물러나게 만드는 '배후'이다. 죽어가면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usb칩을 삼켰던 장성철 형사의 살신성인 덕에 결국 시민이 뽑은 시장이라 자화자찬하며 재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배상도(송영창 분) 시장과 그의 스폰이었던 누나 배여사(김지숙 분)까지 구속시키며 서원시 악의 척결 작전, 그 대단원의 막이 내려졌다. 

이 장황했던 서원시 나쁜 녀석들의 작전은 동방파와 악덕 기업인 조영국을 주적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그 악의 세력의 구축 과정에서 그들이 만난 건 전현직 검찰 총장과, 각종 경찰 내 이권 세력, 그리고 시민의 손으로 뽑힌 민선 시장까지, '정치와 경제의 협잡 카르텔이었다. 시즌 1에서 단순했던 '악'의 실체는 시즌2에 오며 16작으로 늘어난 회차만큼, 길고 지난했던 그리고 뿌리깊은 악의 연대기를 밝혀낸다. 




투혼과 떼싸움, 시리즈의 본질 
그 연대기의 실체를 밝히는 방식은 '나쁜 녀석들'과 그들의 온몸을 던지는 투혼이다. 15회, 장성철 형사가 그의 수하들에게 모처럼 '과학 수사'라며 cctv를 따라 추적하는 장면이 '실소'처럼 <악의 도시>의 전 회는 사람과 사람이, 떼거리와 떼거리가 부딪치며 온몸으로 피터지게 맞고 싸우는 전쟁터였다. 길거리에서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동료에 대한 트라우마로 사무실에서 펜대나 잡고 싶다던 노진평 검사의 소원이 무색하게.

그리고 그 싸움의 색채다게 16부의 싸움을 밀어붙인 건, 동료들의 희생이었다. 서로에 대한 믿을 수 없는 과거의 사연으로 인해 모래알같던 '나쁜 녀석들' 팀은 신주명 과장과 양필순 형사의 죽음, 그리고 노진평 검사의 희생으로 동력을 얻는다. 드라마는 21세기 한 도시를 배경으로 했지만, 싸움의 방식과 논리는 일찌기 서부극이래 '동료'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그 원초적인 싸움, 그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원초적인 방식에 따라 드라마는 매회 화끈하다 못해 피칠갑의 액션씬이 서비스처럼 등장한다. 시즌 1에 이어, 시즌 2를 완주한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나쁜 녀석들>의 본질은 기존 수사 드라마에서 할 수 없었던 법의 경계를 넘어선 '나쁜 녀석들'을 앞세운 이 무법의 폭력적 혈투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즌 2가 시즌 1에 비해 그런 감상을 더한 건, 시즌 1에 비해 공들인 서사에도 불구하고, 시즌 1에서 밀도높았던 등장인물들간의 관계성에 비해, 여러 등장 인물들의 희생과 다양한 검찰, 형사, 범죄자 등 복잡한 군상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헐거운 등장인물간의 관계성 때문일 지도 모른다. 시즌 1에 김상중이 분한 오구탁 형사가 보여준 그 자신이 범죄자들을 극도로 혐오하면서도, 기꺼이 그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이 이율배반이 시즌의 중심을 꽉 잡았다. 그에 비해 시즌 2의 우제문 형사는 끊임없이 그의 입으로 이렇게 살지 맙시다 했지만, 어쩐지 그의 구심력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제 시즌 1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출연료가 올라서 더 이상 시즌 2가 힘들다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시즌 1의 마동석, 박해진 등의 각 캐릭터의 존재감도 빛났다. 사이코패스 살인마까지 내세우며 자신의 형기를 딜하기 위해 때론 의심하고 미워하고 질시하며 결국은 싸움의 과정에서 한 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그 미묘한 인간애의 과정이 어설픈 서사에도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매력이었다면, 이미 모두가 '악'의 척결이라는 공통의 목표에서 확실했던 시즌2의 주인공들은 시즌 1에 비해 인간적 매력이 덜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결국 시즌 2의 동인이 된건, 그들 각자의 동생을 구하기 위해, 동네 식당집 딸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죽은 동료의 복수를 구하기 위해 라는 '미담'이 시즌을 이끌어 가는 동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쁜 녀석들에 의한 보다 더 '나쁜 녀석들'의 소탕 작전이라는 고유의 설정과, 이제는 클리셰가 된 듯한 몸과 몸이 전면으로 부딪치는 떼 싸움의 액션은 여전히 <나쁜 녀석들> 시즌 3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정의가 완성되지 않은 한에서. 
by meditator 2018. 2. 5. 16:30

햇수로 무려 6년만이다. '능력있는 고아'를 이상형으로 여겼던 커리어 우먼 차윤희로 분했던 김남주가 다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선 게.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도 김남주가 분한 차윤희는 사회에서의 성공을 삶의 모토로 삼고, 그를 위해 '외조'가 가능한 남편을 원했다. 그러나, '행운'이라 생각했던 그 이상형 방귀남(유준상 분)에게 잃어버린 가족이 나타나면서 잘 나가던 커리어우먼 차윤희에게는 층층시하 시집살이의 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 6년만에 돌아온 김남주는 그때처럼 다시 한번 '일'로 승부하는 커리어 우먼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녹록치않다. 모두가 호시탐탐 그녀를 끌어내리기 위해 도발한다. 서른 중반 삶이 무르익을 나이에 그녀는 위태로운 공공의 적이 되었다. 


대학에 다니는 아이가 문득 깨달은 듯이 전한다. 학교 수업 시간, 사회 각 내노라하는 분야에서 '성공'을 거머쥔 선배로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강단에 선 사람들 중 여성 거의 대부분이 '싱글'이었다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그저 한 두 사람이었다면 아이는 '취존'이라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문을 나서서 사회에 진입한 여성들이 겪는 일과 사랑, 결혼의 양립할 수 없는 딜레마를 목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강단에 선 '선배 여성'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여진 듯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른바 '유리 천장'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번듯하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허용하는 듯하지만, 실상으로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 '유리로 만든 천장'이 번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 용어는 드러낸다. 그리고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으며 이른바 성공을 일궈나가기 위해 여성들은 몸을 던져 그 '유리 천장'을 깨부숴야 한다. 



다시 한번 커리어우먼으로 돌아온 김남주 
그렇다면 그 '유리 천장'을 깨부수기 위해 요구되는 건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 극단의 예를 다시 한번 커리어 우먼으로 돌아온 김남주가 분한 <미스티>의 고혜란이 보여준다.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남편을 향해 '배부른 자들의 한담'이라 퍼붓는 고혜란의 모습에서, 그녀의 지난 삶이 여유롭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난리를 치며 그녀를 요양원으로 불러들인 그녀의 어머니는 이제 서른 중반의 그녀를 여전히 이십대 중반으로 착각한 채 다그친다. 잠시라도 자신에게 틈을 내어주지 말라고. 관리하라고. 그래서 성공하라고.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 냉담했지만, 그녀는 그 어머니의 말처럼 살아온 듯하다. jbc 사회부이 말단 기자로 입사했던 그녀는 이제 명살상부 자신의 이름을 내건 9시 뉴스 앵커 자리를 꿰어찬 지 어언 7년 최장수의 여성 앵커로서 매년 올해의 언론인 상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그녀의 삶은 위태롭다. 

말단 기자로 출발했던 그녀는 선배 앵커 이연정(이아현 분)을 밀어내고 9시 뉴스 앵커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그 자리를 얻기 위해 그녀는 뱃속의 아이와 남편을 희생시켰다. 아이를 그녀 스스로 지운 그 날부터 남편은 한 집에서 살뿐 남이 되었다. 그녀가 필요로 할때까지는 남편의 자리에 머무르겠지만 그 이상은 없다고 단언하는 남편. 남들이 보기엔 검사, 그리고 변호사와 앵커의 황금 조합이지만, 그녀의 집엔 냉기가 흐르고, 배란일마다 시어머니는 한약을 지어들고 그녀의 집을 찾는다. 그렇게 아이까지 희생하고 얻은 자리, 이제 그 자리를 발판으로 좀 더 큰 물에서 노닐고 싶었던 그녀에게 뜻밖에도 방송가의 젊은 물 운운하며 후배 기자 한지원(진기주 분)가 등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드라마는 이제 방출 위기에 놓인 여성 앵커 고혜란을 중심에 세운다. 그녀를 중심으로 그녀에게 밀려나 그녀의 뒷담화를 즐기며 그녀를 괴롭히는 선배 아나운서 이연정과 사회부의 신망을 얻으며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한지원을 내세워 여성vs. 여성의 대립각을 첨예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드러난 건 고혜란에 밀려나서 그녀가 쓰러질 것을 '고소원'하는 패자 이연정과 호시탐탐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유망주 한지원의 '여여 갈등'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녀들을 장기판의 말로 사용하는 시청률 지상주의자 국장 장규석(이경영 분)과 역시나 그녀에게 앵커 자리를 빼앗긴 채 한지원을 무기로 그녀에게 복수를 절치부심하는 오대웅의 연합 세력이 있다. 
그러나 그녀의 발목을 잡는 건 사회만이 아니다. 묵묵히 한약을 지어오는 시어머니, 남들이 보기엔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성공한 여성이 되기 위해 그녀가 감내해야 할 것들은 너무 많다. 

첫 방송을 보인 <미스티> 속 고혜란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커리어 우먼으로 등장한다. 5년째 수상할 언론인상의 수상이 여의치 않자 그녀의 표정은 굳어진다. 7년째 그녀가 선배를 밀어내고 차지한 그 앵커의 자리가 위태롭자 그녀는 밀려나는 대신 당당하게 승부한다. 그리고 나가도 스스로 나가고 싶을 때 나간다고. 분명, 앵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이를 지운 여자, 그리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후배를 짓밟는 고혜란의 태도와 방식은 틀렸지만, 유리 천장 아래 허덕이는 이 시대에서 묘하게 고혜란에게 마음이 열어진다. 그런데 심지어 그녀가 살인 혐의까지, 이 이율배반적인 동질의 감정 속에 드러나는 진실에서 드라마는 이 시대 여성들의 어떤 이야기를 전할까? 

by meditator 2018. 2. 3. 15:26

역시나 신원호란 감탄사를 불러온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신드롬 덕분에 주춤했던  sbs의 <리턴>, 그러나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종영과 함께 시청률은 매회 상승세, 조만간 20%를 찍을 기세다. (12회 16.0%,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리턴>의 인기 비결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매해 벽두를 열었던 ,이른바 sbs식 장르물의 성과를 우선 살펴보면 흥기롭다. 2015년에서 2016년을 이은 히트작 <리벰버>, 그리고 2017년을 연 <피고인>은 모두 장르 드라마를 표방함과 동시에 20%를 넘는 '대중적 인기 몰이'에 성공한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세 작품 모두 그 '성공'에 불을 지핀 건 바로 드라마 속에 저마다 개성넘치는 연기로 강력한 악의 축이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오랫동안 단골 서브남 전문이었던 남궁민 배우에게 그 자신의 새로운 면을 각인시켜 이후 <김과장>의 주연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던 건 바로 <리멤버>의 남규만이었다. 그리고 <피고인>하면 감옥에 간 주연 지성 못지 않게, 일인이역으로 때론 순정파로, 때론 끝없이 야비했던 차민호, 차선호 역을 소화해낸 엄기준의 열연이 떠오른다. 

<리턴>의 질주 
그리고 이제 2018년을 연 <리턴>에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주인공들은 오랜만의 복귀작으로 기대를 모은 고현정이나, 물의를 빚은 후 잠시의 공백기를 가졌던 이진욱이 아니라, 그들의 맞은 편에서 범죄를 모의하고 촉발시키는 펜트 하우스 황태자 친구들 강인호(박기웅 분), 김학범(봉태규 분), 오태석(신성록 분)들이다. 그 중에서도 오랜만에 tv로 돌아온 봉태규의 밑도 끝도 없는 또라이식 폭력성이나, 사이코패스란 이런 것이다의 정의를 새롭게 갱신하고 있는 신성록의 연기는 마치 이들이 주인공인 양 발군이다. 의중이 모호한 변호사 최자혜로 분한 고현정의 미묘한 연기와 다혈질 형사 이진욱의 고군분투가 무색하게 <리턴>을 보는 시청자들이 기다리는 건 이들의 '난장'이다. 그리고 그 '난장'에 도를 더하며 이제 대놓고 공중파에서 사람 사냥까지 하는 것으로 드라마 <리턴>는 '크레센도 몰토'(극히 큰 크레센도)로 시청자를 유인한다. 

이렇게 방송 심의를 넘나드며 일단 시청자의 관심 끌기에 성공한 드라마 <리턴> 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에서 걱정스러운 건 공중파 드라마로서 치달리는 자극적 전개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자극적 전개'라는 과한 조미료의 근원으로 유추될 수 있는 '표절'이 진짜 <리턴>의 문제다. 



'가족, 명예, 돈 모든 것을 충족한 친구들에게는 단 한 가지 고민이 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들의 판타지를 채워줄 공간이 필요했던 것. 그래서 그들은 비밀스런 펜트하우스를 만들고 서로 열쇠를 나누어 가지고 즐기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중 한 명과 그곳에서 밀회를 즐겼던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저 위의 줄거리는 <리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작품이라고 할 만한 드라마의 주요 설정이다. 매회 드라마시작과 함께 다시 보여주는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이 바로 저 친구들의 펜트 하우스와 그곳을 공유했던 염미정의 죽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시청자들은 안다. 그리고 드라마는 바로 그녀를 누가 죽였는가? 그리고 그 죽음과 관련된 인물들 사이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풀어내는 것으로 이끌어 진다. 

같고도 다른 <리턴>과 <더 로프트; 비밀의 방> 
그런데 저 '줄거리'는 <리턴>의 것이 아니다. 지난 2015년 개봉한 청소년 관람 불가의 스릴러물인 <더 로프트; 비밀의 방>의 줄거리이다. 심지어 영화 속 빈센트(칼 어번 분)의 내연녀는 그의 부인에게 질투를 하며 접근하려고 하고, 심지어 빈센트와 그의 아내, 그리고 친구들이 모인 파티에 불청객으로 나타난다. 이에 빈센트는 그녀와 이별하기 위해 펜트 하우스에 그녀를 데려가 혼자 나온 이후 그녀는 변사체로 발견된다. 범인으로 지목된 빈센트 그리고 친구들이 조사받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숨겨진 진실과 반전, 이 진실과 반전을 추격하는 여형사. 

런닝 타임 100 여분의 영화와 32부작(16부작)의 드라마의 호흡은 다르다. 영화 속 여형사는 드라마로 오면 여자 변호사로 변화되었고, 영화와 동일했던 설정은 이제 의사 김정수(오대환 분), 형사 김동배(김동영 분), 안학수(손종학 분)의 등장으로 사건의 각이 넓혀진다. 그렇다면 <리턴>은 <더 로프트; 비밀의 방>의 표절이 아닐까? 

이는 마치, 음악 작업 가운데에서 두 마디 이사이면 표절이고, 두 마디 이하면 표절이 아니라는 '법률적 경계'와도 엇비슷하다. 분명 두 작품을 본 사람들은 <리턴>과 <더 로프트; 비밀의 방>의 유사점을 당연하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긴 호흡의 드라마는 영화가 가진 애초의 설정을 변주시키며 아니 우리 드라마는 영화와 달라요라고 주장 할 수 있다. 이는 얼마전 좋은 드라마란 평가를 받으며 종영한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표절인 듯 표절 아닌 관행? 
88만원 세대의 여주인공은 머물 곳을 얻기 위해 한 남자의 집에 세를 살게 된다. 집에서 결혼 독촉을 받는 남자는 자신이 하던 일에서 마저 실패한 채 실의에 빠진 채 낙향할 처지에 놓인 여주인공에게 계약 결혼을 제의하고 두 사람은 한 집에서 계약 부부로 살게 된다. 한 집에서 살며 계약 부부라는 이 설정은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일명 니게하지)>와 유사함으로 논란이 됐다. 

건물에 글자를 새겨넣은 포스터에서 부터, IT 직원이며 사회성이 떨어지며 타산적인 남자 주인공에,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 집에 살면서 '계약 결혼'을 하는 이야기는 두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표절'을 인정하는 대신, 결혼도 포기하고, 집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세대 공감과 수평적 남녀 관계에 대한 시도로 그 논란을 돌파했다. 

그러나 15.6회에 들어서 내내 그 누구보다도 성숙한 자존감 넘치는 캐릭터였던 여주인공이 돌변한 듯 자기 중심적 해프닝을 보인 것이 일본 원작과는 다른 주제 의식에대한 과도한 천착이 부른 '과욕'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처럼 '표절'이라는 부담을 가진 드라마는 그 부담을 탈피하기 위해 표절작과는 다른 무리한 시도를 보인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보여진 여주인공 캐릭터의 일관성 변화는, <리턴>으로 오면 매회 점층되는 '자극적 설정'과 '폭력성'으로 대응된다. 애초에 청소년 관란 불가였던 영화의 설정을 드라마에 옮겨 온 것부터 무리수였지만, 그 설정의 표절을 피해가는 드라마의 전략이 화제성의 주인공인 봉태규와 신성록의 악행 에스컬레이션인 듯해 아쉽다. 

물론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결국 표절을 인정하지 않고 넘어갔듯, <리턴> 역시 아마도 '표절' 논란을 변주된 서사를 통해 돌파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찜찜한 표절 푯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럴 수록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와 관련된 소감이 돋보인다. 원작을 본 사람들이라면 설원 위 열차라는 설정말고는 많이 달라진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 하지만 봉감독은 설원 위 열차라는 그 모티브가 위대한 거라 단언한다. 이렇게 표절인 듯 표절이 아닌 듯한 작품이 매번 되풀이 되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가 중국 콘텐츠들의 우리 작품 베끼기를 가지고 갑론을박할 처지가 될 수 있을지. 콘텐츠의 가치는 창작자에 대한 존중과, 존중에 대한 절차적 예의로 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8. 2. 2. 17:56

사실 수치만으로 보면 <그냥 사랑하는 사이(이하 그 사이)>는 보잘 것없다. 1회 2.409%(닐슨 코리아 케이블 유료 플랫폼 기준)가 최고 시청률로 내내 1%대의 시청률을 답보했다. 하지만, <그사이>를 그저 수치상으로만 평가하는 건 아쉽다. '재난 후일담'이라는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요구되는 장르에 과감하게 도전한 유보라 작가와 <그사이> 제작진의 도전은 오히려 '시청률'과 상업적 성과를 넘어선 드라마적 가치의 확인이다. 천만이 넘었다고 그 영화가 좋은 영화가 되지 않듯, 1%대의 작은 목소리라도 <그사이>의 존재감은 빛난다. 




슬픔은 노상 우리 곁에 있어  -마마(나문희 분) 
오프닝에서 보여지는 바닷 속에 잠긴 채 기운 배, 그렇다, <그사이>는 대놓고 '세월호'를 비롯한 우리 사회가 겪은 '재난'과 그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좀 더 사실적으로는 1995년 6월 29일에 일어난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과 가깝다. 당시만 해도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라고 온 국민이 경악해 마지 않던 사건, 하지만 바로 그 전 해에 성수대교가 붕괴됐었다. 이른바 '건설 입국'으로 성장해온 발전 경제의 부실한 기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부실한 기둥에 대해 드라마 속에서 참사 현장에 다시 쇼핑몰이 들어서고, 또 다시 철근이 빼돌려지고, 부실한 지반에 얼렁뚱땅 건물을 올리려 하듯, 그렇게 두루뭉실하게 넘어간 대한민국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고, 결국 2014년 세월호에 이르렀다. 늘 수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때마다 잊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삼풍 백화점 자리엔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고 추모비는 멀찍이 양재 시민의 숲 한 켠으로 밀려난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지난 해 12월 11일 첫 회를 연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바로 그 '아스라한 기억'이 된 붕괴 사고를 불러온다. 하지만, 드라마가 불러온 건 그저, 에스몰 참사가 아니다. 에스몰로 상징되는 '재난민국', 그리고 그곳의 피해자들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재난 사고의 피해자들이 주인공이다. 재난 사고에 대해 다룬 다큐는 많았다. 그리고 얼마 전 종영한 <블랙> 드라마 속 사건으로 '재난 사고'가 등장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그 '재난'을 마주하고, '재난' 속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밀도깊게 다룬 이야기는 <그사이>가 처음일 것이다. 

이강두(이준호 분)와 문수(원진아 분)는 그곳, 에스몰에 있었다. 아동 모델로 그 쇼핑몰에서 촬영이 있었던 동생과 함께, 아니 동생의 보호자로 에스몰에 갔던 문수는 동생때문에 만나지 못한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다른 층으로 자리를 옮긴 사이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가 그곳에서 일하셔서 아버지를 만나서 그 곳에 간 강두 역시 붕괴된 건물 사이에 있었다. 최후의 생존자가 된 강두와, 강두의 도움으로 그곳을 한 발 먼저 빠져나간 문수, 하지만 그곳을 빠져나온 건 두 사람의 몸뿐이었을 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소년과 소년였던 그들은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그곳에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그곳에 머무는 방식은 다르다. 그곳에서 다리를 다친 상처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진통제를 수시로 삼키는 강두는 붕괴 현장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심지어 철근을 빼돌렸다며 '가해자'가 된 아버지와, 자신을 돌보다 스러진 엄마 대신 일찍 철든 동생의 보호자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거리로 내몬다. 그러나 강두가 진통제를 수시로 삼키는 이유는 그저 그곳에서 다친 상처의 고통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과 함께 나오지 못한, 홀로 갇힌 그의 곁에서 먼저 숨을 거둔 소년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 그에게 악몽으로 수시로 찾아와 간에 독성이 있는 '파란 약'을 움켜쥐게 만든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은 또 다른 형태로 드러난다. 동생의 보호자로 그곳에 갔던 문수는, 사고 당시의 구체적 상황을 그녀의 머리에서 지워버린다. 하지만 기억은 없지만 죄책감은 남았다. 동생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그 짐은 딸 잡아먹은 년이라 욕을 들어 먹으며 꿋꿋하게 목욕탕을 지키며 날마다 술과 함께 사는 엄마의 보호자로 자신을 가둔다. 나지도 않는 기억을 들추는 대신 온전히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며 하루하루를 짊어지며 살아가는 것이 이제 막 피어나는 청춘 문수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 붕괴된 에스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두 사람만이 아니다. 이른바 '책임자'로 지목되어 그 대가로 스스로의 목숨을 거둔 설계자였던 건축가의 아들 서주원(이기우 분)도, 서주원과 연인이었지만 시공사 사주의 딸로 하루아침에 서로의 이해 관계가 달라진 정유진(강한나 분)도 여전히 그 날 그 곳에 머물러 있다. 



내가 이 손 안놓는다. - 강두 
드라마는 이렇게 에스몰 붕괴 사고와 관련된 이해 관계로 얽힌 네 젊은이들을 내세웠다. 기억해서, 혹은 기억하지 못해서, 그리고 남겨져서 아픈 그들은 우리 시대가 겪었던 그 '참사' 후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초반 그들 각자의 트라우마를 곡진하게 살피던 드라마는 그러나 '트라우마'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사이>의 가치는 재난 후일담을 넘어,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그 벽을 깨고 온전히 자신으로 다시 서는 젊은이들의 '승리담'에서 빛난다. 스스로 각자 자신의 무게로 짊어졌던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용기있게 세상의 몫으로 던지며, 그들 각자가 웅크렸던 동굴 속에서  한 발씩 내딛는다. 

에스몰 현장에 다시 세워지는 쇼핑몰 현장에서 구색을 맞추기 위해 세워진 추모비를 부순 강두, 그리고 주원의 호의로 그의 설계 사무소에서 에스몰 자리에 다시 세워지는 건물 설계에 간여하게 된 문수, 그리고 아버지의 업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다시 그 자리에 선 주원, 그리고 여전히 그를 놓지 않는 유진, 네 사람은 반성없이 되풀이 되는 부실 공사의 재연 현장에서 각자 자기 어깨 위에 얹힌 짐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 짐을 풀어놓는데, 바로 '사랑'이 매개가 된다. 

우연히 깡패들에게 맞은 채 골목 구석에 쭈그려 피를 흐리던 강두를 발견한 문수, 그리고 그들의 우연같은 에스몰 현장에서의 만남, 우연같은 필연을 통해 그들은 서로를 통해 그 '기억'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자신의 나침반으로 강두를 주원이 현장에 보내듯, 강두와 문수는 외면하는 대신 추모비 재건립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나간다. 그를 위해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남겨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두 사람,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걸음씩 들어서는 자기 자신, 그 버거운 길을두 사람은 손을 잡고 걸어간다. 사랑을 통해 용기를 얻고, 그 용기를 통해 자신을 풍성하게 하는 대승적 사랑의 길을 느리지만 꿋꿋하게 <그사이>는 지난 16부의 시간을 걸어왔다. 

마지막 회, 간 혼수에 빠지며 위독했던 강두에게 기적과 같은 새 삶이 찾아왔다. 아니, 그에게 찾아온 건 그저 '기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 삶은 죽을 뻔한 강두에게만 찾아온 것도 아니다. '과거'에서 각자 힘 닿는대로 도망치려 했던 '피해자'들이 스스로 다시 과거를 직시하고, 거기에 얽혀진 매듭을 풀어나가며 그들에게 덮여있던 두터운 딱지는 아물었고 비로소 세상의 공기와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이 모두에게 찾아왔다. 강두에게 남겨진 유산의 땅, 에스몰 붕괴 사고 그 중심에 붕괴 사고 현장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추모비, 그 상처입은 기억의 불편함에, 강두와 문수는 입을 모아, 시간이 흐른다고, 잊는다고 상처가 덮어지는 것은 아니라 강변한다. 오히려, 기꺼이 그 불편함을 내 안에 껴안을 때, '기억'은 역사가 된다. 삼풍에서 시작된 '재난 후일담'은 결국 2018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잊지말자'고 다짐한다. 


by meditator 2018. 1. 31. 04:36

2000년 출간된 <가시고기>는 대번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헌신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는 그 후로 영화로, 만화로 만들어 지며 여전한 '아버지'의 자리를 확인시켰다. 소설 속 아버지는 아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돈을 위해 자신의 신장을 팔고자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 자신이 말기암이라는 걸 알게된다. 그리고 어언 십여년, 2018년, 아내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위해 그 무엇하나 누린 적이 없었던 아버지, 그러나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켜내지 못했던 아버지도 '암'에 걸리고 말았다. 아니 '암'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병원에서는 '암'이 아니란다. 2000년에 자식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다 암에 걸린 아버지와 2018년에 상상암에 걸린 아버지, 2018년의 아버지는 진짜 '암'이 아니니 괜찮은 걸까? 진짜 '암'과 상상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다 커버린 자식들이 떠나버리면 홀로 남아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아빠 가시고기처럼, 소설 속 아버지는 말기암의 판정을 받고서도 자신의 각막마저 아들의 치료를 위해 팔고자 했고, 끝까지 아들에게 아버지의 병을 알리지 않은 채 홀로 남아 죽음을 맞이한다. 2000년, 21세기의 서막이 열렸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순애보'적인 아버지의 사랑에 감흥했다. 이제는 아니다 했지만, imf를 경과하며 이 나라의 아버지들은 스러져 갔고, 가정은 해체되어 갔으며, 가장의 존재는 유명무실해 졌다 했지만, 여전히 아직도 '아버지'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시대였다. 하지만 <가시고기> 단 한 편으로 베스트 작가가 된 조창인 작가가 그 이후에도 여전히 '가족'을 화두로 한 작품을 출간했지만, 그의 다른 작품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듯,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는 서서히 아니 급격하게 지는 태양이었다. 아니, 아버지란 이름은 이제 지더라도 세상을 밝히려 애쓰는 태양이기는 커녕 우리 사회에서는 '기성 세대'가 되어가면서, '꼰대'가 되었고, '적폐'의 상징으로 젊은 세대의 걸림돌이 되었다. 



2018년, 초라한 아버지의 자리
바로 그런 시대에 <황금빛 내 인생>의 아버지 서태수(천호진 분)와 최재성(이 있다. 그들은 아버지이지만 무기력하다. 이제 40회에 들어선 드라마에서 그들은 '가장'이라지만, 도대체 가장다운 무언가를 한 일이 없다. 무역맨 출신의 그는 한때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딸 서지안의 친구 혁은 동아리 모임을 하는 서지안의 친구들을 위해 호탕하게 간식거리를 사주던 서지안의 능력있는 아버지를 기억한다. 하지만, 그렇게 능력있고 가정적이었던 아버지는 그의 사업 실패와 함께 사라졌다. 경제적으로 여유를 즐기며 맘껏 미대의 꿈에 부풀었던 딸 지안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일반고로 전학을 가야했듯 6식구는 단칸방 신세가 되었고, 거기에 업친데 덥친 격으로 어머니는 암에 걸리셔서 가족을 경제적으로 더욱 쪼달리게 했다. 평생 그의 그림자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왔던 아내와 가족들은 하루 아침에 닥친 경제적 위기에 힘들어 하며 가장인 그를 원망했다. 

큰 아들은 무능력한 아버지의 삶을 보며 결혼을 안한다 하고, 아내는 고생하는 자식을 보다못해 딸을 바꿔치기까지 한다. 대학 준비를 하는 줄 알았던 막내 아들은 알고보니 돈을 벌겠다고 하고, 이제 자신들이 뒤바뀐 걸 알게 된 딸들은 그 충격으로 아버지를, 가정을 외면하다. 비로 경제적 능력은 상실했지만 그럼에도 가장으로 어떻게든 가족들의 구심력이 되고자 했던 그는 이제야 비로소 처절하게 깨닫는다. '돈'이 아니고서는 이 사회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보장받을 수 없음을, 돈이 없는 아버지는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님을, 그런데 그 '아버지'의 자격인 돈을 위해 한 평생을 달려왔고 노력했지만 그건 '신기루'처럼 날라갔다. 자신의 인생과 목표와 함께. 그리고 가족도 함께. 그는 살아있지만 이미 그 누구도 그를 살아있는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다. 어머니처럼 자신에게도 '암'의 증상이 나타난 날 그래서 서태수는 기꺼이 그걸 '하늘의 선물'이라 생각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그렇다면 돈이 있다면 다를까? 최재성은 남들이 보기엔 그 대단하다던 재벌가 해성의 부회장이다. 강원도 태백 탄광 지대 출신으로 그 비상한 머리 하나로 대기업 해성에 들어갔고, 회장 딸 노명희와의 사랑으로 해성가의 사위로 '입지전적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59세 그 남부러울 것 없는 그이지만, 그는 해성가의 꼭두각시이다. 불같이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와는 사업상 혹은 가족 이야기라도 절차상 필요한 이야기 외에는 나누지 않은 지 오래됐다. 한 방을 쓴다지만, 냉기가 흐른다. 집안의 모든 대소사는 모두 해성가의 수장인 회장의 의중에 따라 결정된다. 그는 이제 환갑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두 딸을 놓고 저울질 하는 장인 어른 덕택에 '간택'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아이들과 관련해서도 그의 의견은 아예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집을 나간 큰 아들 도경처럼, 아이들에게 역시 아버지의 존재는 유명 무실하다. 그래서일까 대기업 부회장이나 된 그가 정신과 의사 앞에서 허탈하게 눈물을 흘린다. 



암이 아니면, 죽지 않으면 괜찮은 걸까? 
38회 엔딩, 서태수의 상상암은 무리수였을까? 아니 오히려 그간 가족간의 서사를 <가시고기>에서 보여지듯이 병력을 활용하여 '신파'적 설정으로 넘어갔던 기존의 가족 서사에 대한 작가 소현경의 야심참 도발이 아닐까? 여기서 원론적인 반문이 필요하다. 서태수는 암이 아니다. 심지어 상상에 의해 암이 걸렸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엄마가 상상으로 아이를 가지듯이, 서태수는 그렇게 '암'을 '고소원'하다 못해 '상상'으로 암에 걸리고 만다. 

그럼 암아니면 그래서 조만간 죽게 생기지 않으면 괜찮은 것일까? 바로 여기 작가의 질문이 있다. 아니 반문이 있다. 오죽 서태수에게 삶이 의미가 없었다면 그는 죽기를 소원했을까? 여기서 스스로 암에 걸렸다고 확신한 서태수에게 온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이 조만간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변화한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굴레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늙수그레했던 외모도 염색을 하며 변모시켰고, 하고 싶었던 기타도 다시 들었고,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짐을 벗어던졌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용기를 낼 수 있는 아버지이다. 

그런 아버지의 변화에 자식들은 당황해 한다. 아버지 왜 그러시냐고, 아버지 아프시면 병원에 가셔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서태수는 그런 가족들에게 냉랭하다 못한 반발한다. 왜 너희들은 '가족'에서 벗어나 지 멋대로 하고 살면서, 여전히 아버지에겐 자신의 자리를 구차하게 지키라고 하냐고?

소현경 작가가 서태수, 최재성 이 시대의 아버지, 그러난 허울만 아버지일뿐, 이제는 그 예전의 '가부장'도, 심지어 '가장'도 아닌, 구차하고 무기력하게 늙어가는 남자들의 존재론을 묻는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어느새 이 시대에 걸림돌이 되어버린 '아버지' 세대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그 예전 아버지들처럼 혹은 여전히 가족극이 즐겨 쓰는 '화합'의 소재가 되는 육체적인 병이 아니라, 정신적 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가족이라는 집단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만을 배우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아야 했던, 하지만 그 조차도 여의치 않았던 우리의 아버지 세대, 그들은 이 시대 아버지는 증상만 다를 뿐 어쩌면 모두 서태수, 최재성처럼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38회 '상상암'은 웃픈 해프닝이 아니라, 가장 이 시대의 아버지를 잘 표현한 설정이다. 그 상황에 실소를 자아내는 우리들은 어쩌면 여전히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서태수의 자식들 중 한 사람일 지도 모른다. 

by meditator 2018. 1. 15. 14:28

2014년 10월에서 12월까지 방영되었던 11부작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은 이른바 '나쁜 녀석들'이라 통칭해 질 수 있는 범죄자들을 내세워 '더 나쁜 녀석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응징한다는 '폭력적 카타르시스'를 내세워 화제가 되었다. 더구나, 딸을 잃고 미친 개가 된 형사 반장 오구탁 역의 김상중을 비롯하여, 2017년 흥행 배우가 된 조직 폭력배 역의 박웅철 역의 마동석, 청부 살해업자 정태수 역의 조동혁,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 이정문 역의 박해진 등 이미 그 배우의 면면 만으로도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였다. 거기에 <뱀파이어 검사>로 ocn 장르 드라마의 장을 연 한정훈 작가가 들고 온 새로운 시리즈였으니 장르물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미 방영전부터 기대작이었던 작품이다. 


당시로서는 드문 11부작의 짧은 시리즈 동안 형사 오구탁을 비롯하여, 그가 내세운 범죄 소탕 작전의 개가 된 범죄자들, 박웅철, 정태수, 이정문 등이 '법'이라는 기성 제도의 틀을 넘어, 선사하는 폭력적 범죄의 단죄 방식은 칼과 칼이 만나는, 그리고 몸과 몸이 부딪치는 폭력적 카다르시스의 향연과, 그들을 팀으로 엮은 남구현 경찰청장과 오재원(김태훈 분) 특별 검사 사이에 과연 누가 진짜 '나쁜 놈'인가를 놓고 벌이는 '진실 찾기'게임이라는  두 개의 엔진으로 드라마의 흥미를 배가하였다. 


11부의 대미, 드라마는 오구탁 형사 딸, 그리고 남구만 경찰 청장 아들의 죽음,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한 레이스는 결국 정작 나쁜 녀석들을 향한 오구탁, 남구만, 그리고 또 다른 법의 세력 오재원의 사적 복수와, 그럼에도 '나쁜 짓만 하며 살던 놈들이 사람답게 살아보니 살 맛'을 느껴, 짐승의 길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그저 좀 더 나쁜 녀석들을 모아놓은 것같던 이들이 회를 거듭하면서 외부의 나쁜 녀석들을 정죄하는 한편, 각자의 개인적 악연으로 얽혀들었던 그 '관계의 딜레마를 애초에 그들을 모아놓았을 때 보상으로 딜했던 출옥 대신 '나쁜 녀석들' 스스로 끊어내는 것으로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그리고 당연히 이제 서로의 악연의 사슬에서 벗어난 이들이, 그들 각자가 가진 '캐릭터' 본연의 맛을 가지로 좀 더 본격적으로 악의 세력 구축에 나설 것을 시즌 2로 시청자들은 기대하였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 그 자체가 무기가 되었던 박웅철이 같은 제작진의 또 다른 장르물 <38사기동대>에서 소심한 세무 공무원으로 등장하며 시즌 2의 가능성은 멀어졌다. 그리고 <나쁜 녀석들>이 방영된 2014년으로부터 3년이 흘러 2017년하고도 12월 <나쁜 녀석들>이란 수식어를 단 드라마가 찾아온다. 



나쁜 녀석들 시즌 1의 스핀 오프? 
그러나 새로이 등장한 <나쁜 녀석들>에는 오구탁 형사가 없다. 박웅철도, 정태수도, 이정문도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쁜 녀석들'이란다. <나쁜 녀석들>의 제작진은 시즌2의 부담을, 마치 시즌 1의 스핀 오프와 같은 형식으로 변주한다. 기존 시리즈를 이끌었던 주인공들 대신, 그 얼개와 서사의 방식을 그대로 뽑아내 38사기동대의 배경이 되었던 서원시로 옮겨온 것이다. 

시작은 <나쁜 녀석들>과 같았다. 서원시를 돈으로 장악하여 각종 이권을 행사하는 건 물론 자신의 이권에 방해가 되는 이들을 거침없이 제거하는 조영국 회장(김홍파 분)을 제거하기 위해 그와 악연이 있는 우제문(박중훈 분), 노진평(김무열 분) 검사와, 장성철 형사(양익준 분), 그들의 수하 신주명(박수영 분), 양필순(옥자연 분), 그리고 범죄자이거나, 범죄자였던 허일후(주진모 분), 한강주(지수 분)가 뭉친다. 

이들의 방식은 나쁜 놈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시즌 1의 취지를 이어간다. 무엇보다 첫 회 주재필을 잡기 위해 '나쁜 녀석들'이 온몸으로 떼로 몰려드는 서원시의 부랑배들을 상대로 맞부닥치는 장면은 바로 이것이야말로 <나쁜 녀석들>의 폭력적 카타르시스라는 걸, 시즌의 핵심이라는 걸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죽음을 불사한 선과 악의 때론 선과 악의 정체조차 모호한 처절한 대결은 8회까지 매회 이 드라마의 특징으로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시즌1의 명확한 캐릭터들에 대한 그리움을 시즌1이 아쉬웠던 서사의 치밀함으로 대신한다. 이제 9회를 앞두고 중반을 넘어선 <나쁜 녀석들>은 알고보니 남구만, 오구탁, 오재원의 사적 연원이라는 스케일을 넘어, 부제 악의 도시처럼 서원시라는 한 도시를 둔 끝모를 악의 세력과 나쁜 녀석들의 치킨 게임으로 이어진다. 

한 회에 한 명씩이라는 말이 우스개가 아닐 정도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뜻을 모았던 '나쁜 녀석들'의 멤버들은 매회 한 두명씩 사라진다. 신주명 과장과 양필순이 그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하수인의 칼에 비명횡사를 했고, 장성철이 사선을 넘나든다. 



한 회의 한 명씩? 아군의 희생으로 드러나는 악의 실체
그렇게 우리의 나쁜 녀석들이 목숨을 던지며, 서원시 권력의 배후, 그 악의 주구는 조용국에서, 그 모든 것을 조정했던 구시대의 잔재였던 이명득으로 밝혀진다. 시즌 1에서 알고보니 나쁜 녀석들을 개로 내세월 범죄 소탕 작전을 벌이려 했던 배후가 남구만이었다는 식이다. 하지만 자기 자식에 대한 원한에서 시작되었던 시즌 1의 스케일을 넘어, 조용국의 지원을 받은 정치인이 서원시장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건 공안 검사 출신의 구시대 적폐의 노골적인 일종의 정치공작이었다는 검찰 개혁을 둘러싼 대리전이었다는 걸 중반에 들어선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는 드러낸다. 특히 5,6,7,8회에 걸쳐 진짜 적이 누구인가를 둘러싼 나쁜 녀석들 사이의 내분과 응징을 둘러싼 처절한 갈등, 서서히 드러난 이명득 검사장의 정체는 시즌 1이 가졌던 서사의 아쉬움을 넘어 선다. 

그런데 적폐 청산도 했는데 이제 겨우, 절반의 레이스를 넘었다. 조영국은 진실을 폭로하고 스스로 법의 심판을 받고, 이명득의 정체도 드러냈으며, 그 모든 걸 밝히기 위해 앞섰던 반준혁(김윤석 분) 검사가 새로운 지검장이 되며 검찰 개혁의 시동을 걸기 시작했는데 드라마는 이제 절반을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그 개혁에 함께 발맞춰 나가고자 특수 3부로 갔던 노진평 검사가 의문의 교통 사고를 당하며 목숨을 잃고 만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이명득 서원지검 검사장은 자신이 적폐인 것이 드러날 까봐 그 사실을 안 모든 인물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빨갱이'들을 없애고자 하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기 위해 민선 시장이었던 서원 시장을 제거하는 한편, 개혁 세력인 새 정부의 비위를 맞추고자 조영국을 제물로 삼고자 하였다. 그의 노회한 변신 작전은 물거품이 되었다. 양의 탈을 뒤집어 쓴 늑대와 같은 이명득의 캐릭터는 '검찰 개혁'이 당면의 과제인 상징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드라마는 말한다. 구시대의 적폐 이명득을 제거했지만 새 시대는 쉽게 오지 않는다고. 자신과 함께 했던 형과 같던 수사관의 죽음으로 나쁜 녀석들의 일원이 되었던 젊은 검사 노진평을 뜻밖의 죽음으로 모는 시대는 여전히 어둠이 드러워져 있다. 그리고 악의 응징과 관련하여 각자의 이해 관계로 흩어졌던 나쁜 녀석들은 역시나 또 각자가 포기할 수 없는 신주명, 양필순, 노진평의 죽음, 그리고 사라진 주변인들을 찾아나서며 다시 한 자리에 모인다. 과연 이들이 헤쳐나가는 어둠에는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 드라마는 새 시대의 명암을 그려내며 여전히 우리가 정신차리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한다. 


by meditator 2018. 1. 12. 22:32

새해에 들어서도 어김없이 <황금빛 내 인생>은 연일 시청률의 신기록을 세워가며 고공행진 중이다. 35회 토요일 자체 최고 시청률 37.6%를 갱신하더니, 일요일 역시 42.8%, 과연 이 주말 드라마 상승세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연말 시상식에서 남자 주인공 최도경 역의 박시후가 '고소원'하듯 50%가 가능할까가 관건이 될 정도로 <황금빛 내 인생>은 파죽지세다. 


그런데 <황금빛 내 인생>이 흥미로운 건 그저 시청률이 '따논 당상'인 kbs2 주말 드라마 중에서 '제법 더' 재미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kbs2 주말 드라마라고 하면 '가족'을 주제로 하는 '전통적 가족관'에 충실한 드라마들이 연이어 바톤 터치를 하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소현경 작가가 선보이는 <황금빛 내 인생>은 우리 사회의 '가족주의'이라는 패러다임에 도발적 문제 제기를 하면서도 대중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주목할 만하다. 



좋아는 하지만 사귀지는 않겠다! - 서지안 
무엇보다 그런 소현경 작가의 도발적 문제 제기의 중심에는 여주인공 서지안(신혜선 분)이 있다. 지난 연말 연말 시상식 등으로 특집극으로 대처했던 한 주 결망 동안 시청자들을 애닮게 했던 건 바로 낮밤으로 알바를 한 돈으로 미역국을 상을 차리고 목걸이를 준비한 최도경의 생일 이벤트의 결과이다. 과연 키스씬이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자연스레 들 정도로 남자 주인공이 저 정도로 물심양면 헌신적 모습을 보이면 십중팔구 여주인공은 감동을 하고 두 사람의 사랑 확인은 포옹과 키쓰로 자연스레 이어지는게 여느 드라마의 관행이다. 그런데 어쩐지 감동적인 스킨쉽 대신 주먹에 꼭 쥔 목걸리를 보이자, '그래 내가 너를 좋아한다'며 끝을 맺은 34회에 이어 이어진 새해 첫 방송 35회에서 서지안은 예상 외의 반응을 보인다. 


최도경을 좋아하지만 사귀지는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어머니의 거짓으로 인해 재벌 그룹 해성 가의 딸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서지안, 그녀는 짧았던 그 시간 동안, 그리고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자살 기도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혹독한 경험을 치뤘다. 그 경험은 대기업 직원이 되어 남보란듯이 살고 싶었던 서지안의 인생 목표에 참혹한 반추의 시간이 되었다. 처음엔 돈을 보고 선뜻 자신의 친부모를 외면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회한이 고등학교 동창 혁을 따라 셰어 하우스에 들어와 고물을 모으고 선생 대신 목수 일을 하며 살아가는사람들을 만나고 혁의 목공방에서 일을 하며 자신이 이상으로 여겼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런 고민의 결과는 여전히 최도경을 좋아하지만, 삶의 처지가 다른 최도경과의 연인 관계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다. 그리고 36회 엔딩에서 보여지듯, 감히 자신의 아들을 만난다며 기세 등등하게 등장하여 다그치는 최도경의 모친이자 해성가의 안주인 노명희(나영희 분) 앞에서의 당당하게 '제가 싫어서요'라고 밝히는 태도로 귀결된다. 



물론 50부작의 긴 여정에서 앞으로 서지안과 최도경의 사랑이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저 재벌가의 아들과 서민 출신의 여성의 사랑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미 서지안을 통해 각성한 최도경이 자신의 배경을 버리고 홀로 밑바닥에서 부터 자신을 찾는 도전에 도전하듯, 그들의 사랑에는 배경과 계급, 그리고 남보란 듯한 스펙으로 젊은이들의 꿈을 예단하는 우리 사회 고정 관념에 대한 작가의 도전이 있다. 그리고 그 도전은 사랑하지만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갈 최도경을 거부하는, 이제 더는 세상이 원하는 그럴 듯한 성공의 삶에서 스스로를 기꺼이 방출시킨 서지안의 선택으로 드러난다. 

결혼을 했지만 아이는 거부한다 - 이수아
도발적인 선택과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서지안을 따라 자신의 재벌가를 버린 최도경의 선택으로 젊은이들다운 도전과 사랑으로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주인공 커플과 달리, 드라마의 처음부터 내내 쉬이 지지를 얻지 못하는 커플도 있다. 바로 서태수의 큰 아들 서지태(이태성 분)와 그의 아내 이수아(박주희 분)가 그 주인공들이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의 빚에 아직 독립하지 못한 동생들의 학자금까지 떠맡았던 맏아들 지태는 결혼을 거부한다. 심지어 오래도록 연인 관계였던 수아와 헤어지려고 까지 결심할 정도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 서태수의 설득으로 결혼을 한 태수-수아 커플, 결혼 계약서 1항에 아이는 낳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만 아이가 생겼다. 함께 병원에 가 초음파로 아이를 확인하고,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은 지태는 마음이 달라진다. 기왕에 생긴 아이니 낳자고 한다. 그런데 그런 지태의 변화에 아내 수아는 반발한다. 심지어 그런 충동적인 결정을 하는 지태와 함께 살 수 없다며 이혼을 선언하고 집을 나가 버린다. 

전통적 가족 드라마에서 결혼과 아이는 지상 과제였다. 그러나 <황금빛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사랑을 하고 가까스로 결혼까지 한 이 커플에게 생긴 아이는 이제 커플 지옥문을 연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 시대 결혼도, 아이도 미루거나, 포기하는 젊은 세대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낙태죄' 폐지가 담론이 되고 있다. 이 '낙태죄' 폐지를 앞장서는 사람들은 '출산할 권리 보다는 낙태할 권리를'을 주장한다. 바로 이런 일련의 주장, 그 흐름에 수아의 생각이 있다. 수아는 말한다. 캐나다에 이민을 갔다지만 어렵게 가게를 하는 오빠네에 겨우 빌붙어 사는 부모님, 그리고 출판사 무기 계약직으로 앞날을 보장받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 비록 정직원이라지만 맏아들이라는 부담이 큰 남편. 수아가 살아온 삶은 그녀에게 그저 이 세상에서 자기 한 몸 책임지며 사는 것만도 버거운 것이라 가르친다. 



이런 수아의 사고는 '저출산 고령 사회라는 디폴트 안에서 선택한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선택적 행복론'과 맞닿아져 있다. 아버지의 설득으로 결혼을 하고, 기왕에 생긴 아이니 낳으면 어찌 되지 않겠느냐 라던가, 차라리 아이를 키우기 위해 생활 수준을 낮춰 지방으로 내려가자는 지태의 방식은 전통적으로 '아이'를 부부의 중심, 혹은 가족의 중심으로 사고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런 지태의 생각에 수아는 반발한다. 수아의 사고에는 비록 자신을 책임지려 살아가려 하지만, 늘 생활고에 시다렸던 자신의 지난 시간과 자기 자식에게 그런 삶을 또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n포 세대'의 현실적 고민이 담겨있다. 자신의 아이라는 생명 존중 사상과 나의 실존과, 어쩌면 태어날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대한 실존적 고민이 대치되는 지점이다. 소현경 작가는 어쩌면 이 드라마에서 가장 현실적인 지태 부부가 결혼과 출산 과정에서 겪는 문제를 통해 이 시대의 화두를 담아내고 있다. 그저 어떻게 '아이가 생겼는데?'라는 세간의 오지랖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시대적 고민이다. 

그렇게 <황금빛 내 인생>은 '서태수'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고민을 현실적으로 담아내고자 애쓴다. 또한 젊은 세대의 새로운 담론을 여주인공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전 세대에게 화두로 제시한다. 시청률을 넘어선 이 드라마의 가치는 여기서 빛낸다. 



by meditator 2018. 1. 9. 13:58

'남은 달력 한 장/ 짐짓 무엇으로 살아왔냐고/ 되물어 보지만/ 돌아보는 시간엔/ 숙맥같은 그림자 하나만/ 덩그러니 서있고/  비워야 채워진다는 진실을/ 알고도 못함인지/ 모르고 못함인지/ 끝끝내 비워내지 못한 아둔함으로/ 채우려는 욕심만 열 두 보따리 움켜쥡니다......'

                                                        -오경택,<12월의 공허> 중,

한 해를 보내는 심정은 대부분 위의 시와 같을 것이다. 돌아오지 않을 시간, 그 시간을 채워넣지 못한 아쉬움, 그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일까? 대부분 연말 tv프로그램은 각 방송사 별로 '내 논에 물주기식' 공치사 수상식으로 떠들썩하게 채워진다. 그 '화려한 쇼'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덧 재야의 종소리가 울리고, 스리슬쩍 새해가 치고 들어온다. 한 살 더 먹는 무안함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그 어수선한 연례 행사가 번잡스러운 사람들은 그래서 일찌감치 tv를 꺼버리고 만다. 그런데 다행히 그런 천편일률적인 연말 tv프로그램에 변화가 생겼다. 바로 2부작 드라마를 편성한 jtbc 덕분이다. 2017년 12월 31일 8시 40분부터 2부작으로 <한여름의 추억>이 방영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고전적 하루> 갈라콘서트로 차분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도록 했다. 



사랑을 통해 한해를 반추하다. 
최강희 주연의 <한여름의 추억>은 2부작 드라마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원히 물기가 탱탱 넘치게 살아갈 것 같았지만 어느 틈에 서른 일곱이 되어버려, 더 이상 여자가 아닌 '휴먼'이 되어버린,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던(?) 라디오 작가였던 한여름의 '지난' 사랑 이야기를 드라마는 반추한다. 

드라마는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들이 그녀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청소년 시절 그녀가 첫사랑이었던 남자 최현진(최재웅 분)은 맛선 자리에서 그 '첫사랑'을 그저 '찢고 까불었던' 불쾌한 기억으로 거부한다. 지금의 애인과 언쟁 과정에서 그녀를 기억해 낸 대학 시절 그녀와 캠퍼스 커플이었던 김지운(이재원 분)은 그 시절 불같이 화를 내며 떽떽거리던 열정적이던 그녀가 싫었다. 지금 그녀와 프로그램을 같이 하는 피디 오제훈(태인호 분)은 솔직하고 당찬 그녀가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그녀와 3년이나 사귄 끝에 결혼을 결심했던 박해준(이준혁 분)은 결국 자신의 청혼을 자신의 욕심으로 거부했던 그녀로 인해 '결혼'에 대한 기피증이 생겼다. 

서른 일곱 한여름을 그녀가 소녀 시절부터 사랑해 왔던 네 명의 남자를 통해 설명한다. 첫 사랑 앞에서 내숭이 심했던 소녀, 대학 시절 자유분방하고 감정기복도 심하고, 자신의 감정에 거침이 없었던 20대, 그리고 사랑하지만 자신의 욕심때문에 불안정한 직업의 팝 칼럼니스트와의 결혼을 기꺼이 거부하던 서른 무렵의 여전히 자신만만했던 여성, 그리고 영원히 빛날 줄 알았건만 어느 틈에 빛을 잃은 채 스스로 한없이 초라하다고만 느끼는 서른 후반의 한여름. '사랑'이라고 쓰고, 그녀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맺어왔던 관계들을 통해, 그리고 그 관계들을 반추하는 한여름을 통해 '삶'을 되새긴다. 



흔히 '이불 킥'이란 용어가 가장 적확하게 못이룬 지난 날의 부족했던 사랑을 설명하듯, 한여름이, 그리고 그녀를 기억하는 남자들의 기억 속에서 지난 시간들은 미처 채워내지 못한 자신들의 '욕심, 욕망'들이다. 그러나, 그 채워지지 못한 욕망들은 1부의 마지막, 뜻하지 않게 한여름에게 닥쳐온 사고로 인해 빛깔을 달리하기 시작한다. 

'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 생각해 보라/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은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천상병, <12월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 중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한 해를 보내는 공허함, 지난 사랑에 대한 회한, 우리의 마음 속에서 스며나오는 이 '아쉬운 감정'들은 결국 아직도 여전히 더 잘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의 다른 이름에 아니다. 하지만, 마치 12월 다음에 다음 해가 시작되지 않는다면?처럼 더 이상 이 세상에 한여름이 존재하지 않는 순간, 그녀와의 추억들은 다른 버전의 해석으로 기억된다. 드라마는 절묘하게 한여름의 지난 사랑을 통해 우리의 시간들을 설명한다. 

아쉬움, 회한? 그건 삶의 다른 이름 
솔직하지 못했던 소녀 여름은 첫사랑의 풋풋한 속내였으며, 그 질리도록 떽떽거리던 젊은 날의 한여름은 20의 솔직하고 열정적인 감정이었다. 여러 부담없는 변수 중의 하나였던 그녀가 남긴 마지막 솔직한 말은 이제 자신의 상처난 자존심에 철갑을 두룬 이제훈에게 던져진 진솔한 충고가 되었고. 그녀가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 전해진 뒤늦은 사과는 늦지 않게 박해준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이름 '한여름'은 중의적이다. 여주인공의 이름이자, 동시에, 12월 31일일에 만나는 반가운 '여름'의 열기라는 계절적 배경이다. 또한, 언니네 집으로 떠나는 한여름이 남긴 마지막 인삿말처럼, '찰라'와도 같은 시절, 찰라와도 같은 시간, 찰라와도 같은 관계의 기억들을 뜻한다. 세숫물도 온천수같다며 제발 에어콘을 사자고 조르던 김지운의 말이 무색하게 어느새 선선한 바람에 밀려가버리는 여름은, 이제는 기억으로만 남겨진 한여름의 생이다. 그리고 그 한여름을 통해, 우리는 2017년과 함께 가고 있는 각자의 지난 날을 반추해 본다. 

아쉬움으로 헛헛한 시간, 빛나고 싶었지만 초라했던기억들. 하지만, 그 초라함조차, 결국 이 세상에 존재하기에 가능했던 아쉬움이라는 것을 드라마가 충격적으로 알려주는 순간, 한 해를 보내는 회한의 시간은 한여름을 아프지만 아름답게 기억해 내는 그의 옛사랑들처럼, 충분히 반짝거렸던 기억들로 새롭게 해석된다. 덕분에 쓸쓸함 대신 여름과 같았던 2017년의 추억으로 한 해를 마감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 '최강희'였기에 20대와 30대, 심지어 빛을 잃었다던 서른 일곱에는 반짝였던 한여름을 설득했던, 2017년 겨울이 선사한 여름날의 온기같던 드라마, <한여름의 추억>이다. 부디, 2018년 12월 31일에도 이런 뜻깊은 선물을 또 받고 싶다. 
by meditator 2018. 1. 1. 1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