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든 언어는 과도한 사용으로 훼손되었다. 내가 차에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일 때면 내 사랑은 우연히 흘러나오는 사랑의 노래들로부터 아주 수월하게 힘을 얻었다. 내가 끌로이에 대해 느끼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그런 노래에 영향을 받았을까? 사랑한다는 나의 느낌은 그저 특정한 문화적 시기를 살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알랭 드 보통,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일주일 동안 드라마가 범람한다. 그리고 그 드라마들 대부분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이 아닌 이야기를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과연 드라마들이 말하는 우리 시대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사랑은 사람을 변모시킨다. 집에선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을 먹던 사람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새벽같이 도시락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에서 부터 '호르몬의 화학적 변이'의 폭은 무궁무진하다. 사랑의 완성는 결혼일까? '결혼 '이 선택인 시대, 사랑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예전에 노래를 시키면 첫 번째 사랑, 두 번째 사랑하며 애절한 유행가로 자신의 사랑을 기억했던 선배가 있었다. 철 모르던 그 시절엔 웃으며 넘겼지만 마치 남자에게 사랑은 유행가 한번 불러제껴버리면 될 것이었나 싶어 뒤늦게 씁쓸하다.  여기 '사랑'으로 인해 '삶'자체가 변화된 남자들이 있다. 사랑은 그들이 가졌던 것들, 국가, 재산, 지위, 그리고 목숨까지 버리게 했다. 사랑으로 인해 '성숙'된 남자들을 통해 우리 시대 '사랑'의 의미를 짚어본다. 


 

 

나라를 버렸다-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 
유진 초이(이병헌 분), 그는 이방인이었다. 검은 머리 미국인. 명령에 따라 조선에 주둔한 것일 뿐이었다. 그에게 조선은 망해도 상관없는, 아니 자신의 부모님을 죽이고 자신을 먼 타국으로 쫓아낸 사람들이 여전히 떵떵거리고 사는 이 나라는 망하는 게 당연한 나라였다. 

해병대 장교로서 임무에 따라 미 공사를 처리하고자 담위에 올랐던 유진은 자신과 같은 목적으로 총을 겨누던 한 여인을 만난다. 두건을 쓴 '스나이퍼'가 여인이었다는, 그리고 그 여인이 조선 명문가의 여성이라는 사실에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거기에 취조를 당해도 부족할 판에 공사관 자신의 자신에 떠억하지 앉아 이방의 군인에게 전혀 꿀리지 않는 당당한 태도에 그 호기심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걸어들어간 사랑, 거기엔 그가 사랑했던 고애신(김태리 분)가 당연히 목숨조차 던지겠다고 하는 바람 앞에 촛불같은 조선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고애신의 곁에는 생면부지의 어린 그를 구해주어 미국까지 갈 수 있게 해준 도공 황은산(김갑수 분)이 있었다. 사랑하는 이와 은인이 목숨받쳐 지키고 싶다는 나라 조선, 그런 그들로 인해 '조선'이, 부질없는 짓이던 '의병'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유진은 '사랑'에 마음이 흔들리면서도 자신을 버린 조선에 냉소적이었다. 대한제국의 왕이 명한 신식 군대 고문조차 걷어찰 만큼. 그런 그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한 신병의 입대를 기꺼이 눈을 감아준다. 그들이 저지른 무모한 작전을 돕기 위해 기꺼이 나선다. 사랑하는 이로 부터 시작된 그의 '행보'가 '사랑하는 이들'로 넓혀져 간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이들'이 늘어날 수록 그의 분노도 깊어진다. 모리 타카시를 스스로 총으로 정죄할 만큼. 

유진은 마치 서부 영화 속 남자 주인공과도 같은 캐릭터이다. 장교라는 공적인 직위를 가졌지만 그 공적인 지위는 어떤 사명감에 의한 것이기 보다는 자신을 지키다 보니 얻어진 '생존'의 대가, 총을 들어 자신을 지켜왔고, 그 대가로 '미국인'이라는 특권(?)까지 챙긴 그가 자신의 생존이 아닌 다른 이유로 총을 들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조금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들이 지키는 나라가 조금 더 오래 버텨주기를 바라며. 그리고 어머니가 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던졌듯, 그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들이 몸을 던져 구하려는 조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초개'처럼 던진다. 그는 죽어갔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검은 머리 고독한 이방인이 아니다. 조선 의병 4소대 소대장 유진 초이이다. 충만한 사랑의 완성이다. 

 

 

'재벌'을 버렸다 - <황금빛 내 인생> 최도경
드라마 속 '재벌'과 평범한 여성의 사랑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은 그 '환타지같은 재벌남과의 연애사'에 이의를 제기한다. 드라마 방영 당시 과연 누구의 황금빛 내 인생이었을까로 시청자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88만원 세대에서 하루 아침에 재벌가의 딸이 된 서지안(신혜선 분)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해성가를 물려받을 최도경(박시후 분)의 '본투비 재벌 인생'이었을까? 하지만, 드라마는 그 '황금빛 인생'하면 'Gold'와 함께라는 우리들의 고정 관념에 발을 건다. 

그 시작은 롤러코스터같던 재벌가 딸 데뷔를 마친 날 저녁 '맥주'를 외치는 동생 서지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함께 찾은 편의점에서 였다.  아직 오빠인 최도경에게 서지안은 어릴 적 꿈을 묻는다. '사장, 사장, 회장'이라며 당연한 그걸 왜 묻냐는 오빠 최도경에게 지안은 '불쌍하다'했다. 세상에 재벌가 회장이 될 사람에게 불쌍하다니. 그런데 지안은 말했다. 꿈꿔보지 못한 삶, 나면서 부터 정해진 삶을 살아야 하는 오빠의 삶이 안됐다고. 처음으로 도경의 눈빛이 흔들렸다. 

88만원 세대의 고군분투기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중반부를 들어서며 최도경의 '스토커처럼 집요한' 사랑, 아니 재벌가 최도경의 '사랑'을 빙자한 자아찾기로 변해간다. 그와 약혼할 뻔했던 장소라처럼 야무지게 주식과 예금을 챙기며 해성가를 나서려했던 최도경은 창업주 할아버지에게 들켜 명품시계까지 끌르고 홀홀단신 해성가를 떠나게 된다. 며칠이면 두 손 들고 백기 투항할 꺼라던 주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최도경은 예의 '긍정적 마인드'로 갖은 알바 자리를 전전하며 쉐어하우스에 머물며 호시탐탐 서지안과의 사랑을 노린다. 

하지만 그 '사랑'의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재벌가의 실상을 처절하게 알아챈 연인 지안이 그를 거부했고, 해성가 사람들이 그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해성을 떠나 알바를 전전해도 '해성'이라는 세계로 지안과 함께 손잡고 돌아갈 날을 기약하는 도경의 본투비 재벌 의식이 그의 사랑에 결정적 장애물이 된다. 지안을 사랑한다 하지만 언젠가 돌아갈 곳, 여전히 한 귀퉁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내려놓지 않은 그의 안이한 사랑법은 끝내 상처만 남긴다. 이미 가진 자와 못가진 사이의 '계급'이 형성된 사회에서 안이한 환타지는 존재치 않는다고 드라마는 대못을 박는다. 

'사랑'이란 매개를 통해 드라마는 재벌 최도경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드라마는 낭만적인 재벌가와 평범한 여성의 사랑에 대한 환타지 그 허상을 집요하게 반박한다. 최도경이란 인물을 통해 '재벌가의 승계'라는 정해진 삶이 최선이냐 묻는다. 당신의 안이한 사랑이, 적선하듯 던져진 호혜가 얼마나 많은 상처로 돌아올 줄 아느냐 반문한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최도경은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고단하고 혹독하지만 진짜 신나는 진짜 황금빛 내 인생을 열어보인다. 서지안과 최도경의 사랑은 '양수겸장'이다. 사랑도 하고, 자신의 꿈도 찾는다. '사랑을 하게 되고, 사랑하는 이 덕분에 사랑하는 이가 좋아하는 나무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나무로 사업까지 하게 되었다'는 마지막 회 최도경의 '사랑 고백', 이것이야말로 소현경 작가가 말하고픈 이 시대의 진정한 사랑이다. 




집을 버렸다. - <이번 생은 처음이라> 남세희

세희에게 집은 무덤이었다. 이십대 시절 사랑했던 연인을 지켜주지 못해 떠나보내야 했던 그는 그 사랑이 끝남과 함께 세상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았다. 


시간을 담당하는 뇌의 신피질이 없는 고양이가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사료를 먹고 매일매일을 보내도 우울하거나 지루하지 않아하듯이, 그는 고양이와 함께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했다. 아직 갚아야 할 융자가 많이 남아있는 집에서 우울해하거나 지루해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최면을 걸며 시간을, 자신의 감정을 죽여갔다.  그렇게 집은 그에게 죽어갈 공간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다던 여자 윤지호를 우연찮게 하우스 메이트로 만난다. 서른 살의 실패로 슬퍼하던  그녀에게 이번 생은 그 누구도 처음이라며 건투를 빌어주던 그가 조금씩 마음의 틈을 열어주기 시작한다. 편의적으로 시작한 '동거'가, 편의적인 '결혼'이 되어가며, 그녀의 깔끔한 정리정돈과 청소가 좋았던 것이 어느덧 그녀와 함께 한 공간의 온기에 익숙해지게 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를 보며 함께 마시던 한 캔의 맥주가 홀로 즐기던 유일한 취미에서 둘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감으로 바뀐다. 감정이 없을 것같던 그가 그녀로 인해 흥분하고 분노하며 분출한다. 십여 년을 자신의 속에 봉인했던 숙제를 직시할 용기를 가지게 된다.  


달팽이처럼 자신의 집에 웅크렸던 남세희는 윤지호를 통해 이십대 시절 단절했던 관계와 세상에 본의 아니게 자꾸 한 발씩 내딛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던 유일무이한 담보였던 집, 세상 밖으로 나온 남세희에게 이제 사랑하는 이가 없는 집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가 없는 집이 그에겐 의미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제 그에겐 그에게 집은 '죽을 날을 기다리는 무덤'이 아니라, 옥상의 단칸 방이라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픈 '스위트 홈'이 되었으니까. 



공교롭게도 위의 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은 모두 물의를 일으켜 한동안 '자숙'을 했던 배우들이다. 그들이 돌아와 택한 캐릭터들은 뜻밖에도 목숨도, 재산도, 가진 것을 모두 던져 여성을 사랑하는 '순애보'의 주인공, 여전히 그들의 순애보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따르는 '잡음'이 깨끗이 일소됐다고 할 수는 없다. 과연 연기를 통해 승부수를 던진 이들, 그들에 대한 용서와 인정은 결국 대중들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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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8. 10. 4. 17:07

어쩌면 그 시작은 한 장의 사진이었을 지도 모른다. 9월 30일 종영 전후로 검색어 1위를 기록했던 구한말 의병 사진, 저 옷을 입고 어찌 총을 들고 싸웠을꼬라고 생각되는 허술한 한복과 후줄근한 군인이었던 기억이 남겨진 듯한 복색들, 우리가 국사 교과서에서 암기할 가치조차 없다 하여 스쳐지나갔던 그 오래된 낡은 사진 한 장으로 부터 <미스터 션사인>은 시작되었다.

 



 
 

 
그 한 장의 사진은 핏덩이 어린 자식을, 그리고 그저 군함 한 척으로만 보여졌던 미국을 향해 쓰러져간 백성들, 동지를 지키기 위해 홀로 남아 총을 겨누었던 동경의 의병 어미 이야기로 시작되어  이제 그 핏덩이의 아이가 의병장이 되어 또 다른 타국 만주에서 훗날 조국의 독립을 기약하는 'see you again'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 행간을 메우는 수많은 아무개들의 '헌신'. 그들의 헌신은 참아낼 수 없어서,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그리고 단 하루라도 살듯이 살기 위해, 그리고 지금은 아니라도, 'see you agin'이 될 독립의 그날을 위해 마중물이 된다.

오랫동안 애기씨의 진짜 보호자였던 행랑 아범(신정근 분)과 함안댁(이정은 분), 그리고 그 또래의 '어른'들은 일본군에 의해 조여드는 포위망을 피해 의병들을 무사히 피신시키기 위해 기꺼이 총받이가 되었다. 의병을 이끌었던 도공 황은산(김갑수 분)은 무리의 지도자였던 자신 대신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만주로 보내다. 자신이 젯밥이 되어. 지는 나라, 그곳에서 기꺼이 무기를 들었던 사람들. 드라마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결국 그것이었다. 우리의 지금이 있기 위해 그들이 있었다고. 

짚을 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그 뻔히 보이는 패배의 광경에 기꺼이 자신을 던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드라마는 역설적 질문으로 시작된다. 조선인의 DNA를 가졌지만, 조선인이기를 거부했던 세 남자를 통해 '반어법'으로 결론을 향한다. 

 

 

이방인을 통해 다가선 '의병' 
유진(이병헌 분)은 어린 종이었다. 유진의 어미를 바쳐 세도가 이세훈 대감의 눈에 들겠다는 욕망으로 아비를 죽인 주인 김판서, 김판서의 며느리에게 비녀로 위협해 겨우 구해진 목숨 유진, 가장 먼 곳으로 도망치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받아, 바다 멀리 미국까지 간 유진, 그에게 조국은 갖은 차별에도 해병대 장교로 임관해준 미국이었다. 

동매(유연석 분)라고 다를까.  거리에서 수모를 당하고 몰매를 맞아 목숨을 잃어도 항변할 수 조차 없는 '백정'의 아들, 그는 죽어갈 목숨인 자신을 구해준 애기씨에게 조차 눈을 부릅뜨고 '호강에 겨운 양반 계집'이라 할 만큼 '조선'의 모든 것들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당연히 그가 자신을 의탁한 곳은 바다 건너 일본의 무신회, 무신회 수장의 양아들이 되어 '이시다 쇼'가 되어 돌아왔다. 

희성(변요한 분)은 도망자이다. 조선 최고의 갑부집안 손자, 하지만 자신이 놀고 먹어도 남아도는 그 재산이 어떤 이들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졌는가를 알게 된 희성은 바다 건너로 도망쳤다. 정혼을 한 지 어언 10년이 되도록 그는 자신을, 자신의 나라를 피해 도망다녔다. 

그렇게 드라마 속 세 남자들은 조국을 떠나 바다를 건너갔다. 그리고 다시 그 바다를 건너 돌아왔다. 그들에게 조국은 상흔이었고, 여전한 고통이고, 그리고 '적'이었다. 그래서 조국 따위가 망하던 말던 그들과는 별 무 상관이 없었다. 아니 자신을 바다 건너로 내몬 조국 따위 망하라고 어깃장을 부려도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의병'과는 가장 무관한 세 사람을 드라마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본투비 의병'인 고애신(김태리 분)과 연결짓는다. 저격의 현장에서 총으로 마주 선 사람, 넘볼 수 없는 애기씨와 그 애기씨에 의해 목숨을 '연명'한다 생각한 애증의 일본인이 된 소년, 그리고 10년만에 돌아온 정혼자, 이들은 각자의 인연으로 고애신을 마주하며 동시에 그녀가 헌신하는 '의병'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왜 의병이어야 했는가. 
그들은 의문을 가진다. 조선 최고의 잇걸이라던 명문가 고사홍 대감의 손녀가 총을 들었는가. 그리고 그 '애정어린 의문'을 고애신을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저 도공인 줄 알았던 은인 황은산도, 그저 사냥꾼인 줄 알았던 장승구도, 망해가는 나라의 지는 권력인 줄 알았던 정문도, 하다못해 지게꾼도, 빵장수도, 나는 새도 떨어뜨리게 만들던 양반네에서부터 거리의 아무개인 줄 알았던 모든 이들이, 가지고 덜 가지고를 상관없이 저물어 가는 조선에서 나서 싸우는 것에 그들은 '목격자'가 되고, 질문자가 된다. 시청자를 대신하여, 후손들을 대신하여. 

그리고 유진의 어미가 오로지 자신의 아들 유진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초개처럼 던졌듯이, 자신이 사랑했던 애신과, 자신을 구해준 은인인 황은산이 오래 살기를 희망하는 유진이, 애기씨 덕에 살아있다 했던 동매가, 시간을 죽이고 자신을 그 쓸모없는 시간 속으로 내몰던 방관자 희성이, 이  '목격자'들이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정으로 '의병'이라는 대의에 공감하고, 동조하고, 기꺼이 자신을 더한다.

유진이, 동매가, 희성이, 황은산이, 장포수가, 그리고 쓰러져간 많은 이들은 '패배'가 아니었다. '부질없는 희생'이 아니었다. 망해가는 나라를 위해 왜, 무엇때문에 총을 들어야 하는가. 들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드라마는 곡진하게 공을 들여 설명하고 설득하고 설파한다. 드라마의 마지막 만주 벌판에서 고애신과 함께 달려가던 독립군들처럼, 그리고 여전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현존하는 이 시절에 대한 가장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헌사'로 채운다. 그렇게 한 장의 사진 속 빛바랜 기억이었던 구한말 의병은 이제 <미스터 션사인> 속 스러져간 많은 이들의 얼굴과 삶으로 돌아왔다. 

방영 초기부터 역사적 사실과 관련한 논란이 있었듯이, '검증된 사실'로 따져들어가면 <미스터 션사인>은 많은 '구멍'과 '함정'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극의 전개나 캐릭터에서도 과연 이 드라마가 박경리 선생의 대하 소설 <토지>나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라는 부채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스쳐 지나갔던 교과서 속 한 장의 사진, 군대 해산 어쩌고 하면 암기의 내용에 불과했던 구한말 의병의 대서사가 '러브스토리'라는 낭만적 이야기의 틀을 빌어 2018년에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대하 사극이 '경제성'의 원리로 기피되는 시절, 심지어 일제 시대 독립운동도 아닌 저물어 가는 시절의 대한제국의 이야기를 복원해 내려 했다는 점에서 김은숙 작가는 또 한번  자신의 필모를 뛰어넘었다. '낭만적 애국주의'나마 우리는 행간에 생략되었던 역사의 한 장을 2018년에 마주하게 되었다. 
 

by meditator 2018. 10. 1. 15:24

표민수 피디가 돌아왔다. 9월 28일 첫 선을 보인 jtbc의 <제 3의 매력>은 서강준, 이솜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사실 주목해야 할 사람은 표민수 피디이다. 2015년 윤성호 감독에 이어 연출한 <프로듀사> 이래 3년만에 다시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우리 드라마 사에서 '표민수'라는 이름은 하나의 '장르'로 기억된다. 과연, 그 '전설'은 다시 역사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첫 방의 성과는 아쉽다. 6%에 육박하며 화제성을 낳던 전작 <강남미인>이 무색하게 1.804%이다. 무엇보다 트렌디한 주제인 '성형'과 젊은 연인들의 사랑을 잘 버무려 내었던  다루었던 <강남 미인>처럼 시청자들에게 이슈를 선점하지는 못했다. 평가도 엇갈린다. 진부하다와 감성적이다 라며 서로 다른 반응들이다. 

드라마가 삶이고 삶이 곧 드라마라고 나는 믿습이다.
                                                     -드라마 어떻게 만들 것인가, 표민수 

 

 
당대의 사랑을 대변했던 대표작들 
표민수 피디가 만든 드라마 중 어떤 작품을 기억하고 있는가에 따라 아마도 세대가 갈릴 것이다. 표민수라는 이름이 세상에 처음 각인된 작품은 <거짓말>이다. 이제는 다들 누군가의 엄마나 아버지로 등장하는 배종옥, 이성재, 유호정 등이 드라마 최초 폐인을 양산할 정도로 다시 할 수 없을 것같은 아픈 사람을 엮어냈던 이 드라마는 '노희경-표민수 콤비의 탄생을 알렸던 드라마이기도 하다. 노희경 작가의 주옥같은 대사, 그리고 도발적인 연애사를 표민수 연출의 감각적인 연출로 세련미를 입혔던 작품, 그래서 '불륜'을 사랑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던, 나아가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갇힐 수 없는 사랑의 불온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1998년이라는 시절을 담았던 작품이다. 

<거짓말>에 뒤를 이어 다시 '당대 사랑'의 대표작이 된 작품은 <풀 하우스 시즌1>이다. <거짓말>이 '어른들'의 사랑을 대변했다면, <풀 하우스 시즌1>은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같던 남자 이영재(비 분)와 여자 한지은(송혜교 분) '어른이'들의 장난기넘치던 풋사랑이 2004년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2008년 표민수-노희경 콤비는 또 한번 레전드 작품 <그들이 사는 세상>을  남긴다. 양 갈래 머리 짧은 치마로 곰 세마리를 부르던 송혜교는 단발 머리 선머슴애같은 초짜 피디 주준영이 정지오로 분한 현빈과 함께, 직업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청춘 연가를 '실감나게' 그려내며 '전문직 현장 드라마'의 효시를 이룬다. 

 

 

당대의 공감은 아니더라도, 당대성을 대변했던 
물론 표민수 피디가 당대를 대표하는 사랑만을 늘 이야기한 건 아니다. <거짓말>과 <풀 하우스 시즌1>과 <그들이 사는 세상>이 당대의 청춘을 이야기했다면, 1999년 2부작 < 슬픈 유혹>은 방송 최초로 '동성애'를 다루었으며, 2000년 <바보같은 사랑>은 봉제 공장 재단사 진상우(이재룡 분)과 미싱 보조 정옥희(배종옥 분)의 치명적인 사랑을 통해 '노동자들의 삶'을 그려낸다. 그런가 하면 2001년 <푸른 안개>에서는 요즘 같은 시기라면 작품 자체가 불가능했을 중년의 남성이 23살 젊은 여성에게 '미혹'되는 불륜을 다루기도 했다. 2002년에는 그 반대의 경우 마흔 살의 전문직 여성 상사와  26살의 부하 직원이 사랑에 몸을 던진다. 또한 2007년 <인순이는 예쁘다>에서는 출소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2015년작 <호구의 사랑>에서는 젊은 미혼모에게 순정을 다하는 강호구(최우식 분)의 사랑을 그린다. 

노희경, 이금림, 윤난중 등 당대의 명작가들과 함께 하며 표민수 피디는 이른바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는 세간의 정의를 넘어서 '표민수 표'라는 연출의 장르를 써내려간다. 

저같은 경우는 인물의 동선이나 움직임보다는 인물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중점적으로 봅니다. 그래서 감정에 대한 콘티를 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이번 신은 어떤 감정이 주가 되는가. 그 감정에 맞는 대사는 무엇인가 찾아봅니다.
                                                                     -같은 책, 표민수 


표민수의 작품에는 시대의 공기가 담겨져 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사랑을 작가가 쓰면, 표민수 연출은 그 '사랑'에 시대의 정서와 공감을 더한다. 표민수의 연출이 없었다면 불륜이라 치부될 <거짓말> 속 사랑이 분위기있는 성인 남녀의 사랑의 경계에 대한 질문으로 폐인들을 양산해 낼 수 있었을까. 그저 톱스타와 가진 것 없는 여성의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귀염성있는 열애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물론 그 '정서'에 대중이 꼭 공감하지 않을 때도 있다. 여전히 <슬픈 유혹>은 중년의 김갑수와 젊은 주진모의 이해할 수 없는 센세이셔널한 작품으로 기억되며, 사회 밑바닥 인생의 <바보같은 사랑>이나, 이제는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연상녀와의 사랑은 당시에는 '최저 시청률'의 기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늘 표민수 피디는 누구보다 용감하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려 애써왔다. 

또한 표민수 피디의 작품이 기억되는 건 그저 주인공들의 사랑만이 아니다. 주인공들를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 에피소드 조차도 그 누군가에겐 공감할 만한 삶의 한 유형으로 수용되게 하는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표민수의 작품을 기억되게 한다. 

 

 

2018년의 사랑에 건투를 빌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표민수 연출이 그려낸 당대의 정서는 2010년대를 넘어서며 버거워 보였다. 도전이었던 <아이리스2>는 가장 표민수답지 않은 궤적으로 기억되며, 2015년 <프로듀사>는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그사세>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그렇게 최근 지지부진하건 격조했던 표민수 피디가 들고 온 작품은 스무 살 풋풋하던 시절 첫 사랑에서 부터 시작하여 장장 12년의 연애사를 그려낸 <제 3의 매력>이다. 

 

 

검은 둥근테 안경에 보정기를 낀 멀쩡하게 생겼지만 전혀 멀쩡해 보이지 않는, 거기에 세심하다 못해 쫀쫀해 보이는 계획적이다 못해 강박증 환자처럼 보이는 온준영(서강준 분)과 즉흥적이며 열정적인 '돈'을 벌고싶어 남들 가는 대학 대신 미용사 일을 시작한 이영재(이솜 분)의 연애, 빨간 색만 봐도 땀을 흘리는 남자와, 빨간 색 음식이면 무조건 오케이, 빨갈수록 더 좋다는 여자의 '다름'에 혹한 고단한 연애사, 하지만 그 시작은 성시경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감싸안은 그 정서는 예의 표민수 표 드라마 답게 안온했지만, 그래서 어쩐지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듯, 진부한 그 경계에 서있다. 과연, 예전 드라마에서 본듯한 뻔함을 넘어서 표민수 피디는  2018년의 청춘을 다시 재현해 낼 수 있을까? 전설의 귀환에 건투를 빈다.  

by meditator 2018. 9. 29. 16:35

김영하가 <아랑은 왜?>라는 소설에서 다룬 '아랑의 전설', 이는 우리 고전 소설인 <장화 홍련전>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전래의 대표적 귀신 설화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밀양 고을 부임하는 신임 부사들마다 첫 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비명횡사하고 만다. 결국 '밀양'은 기피 부임지가 되고 마는데, 담이 큰 이상사라는 부사가 자임하고 부임한 첫 날, 이슥한 시각, 잠자리에 든 그를 찾아온 건 '처녀 귀신' 아랑이었다.  양갓집 규수로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여 야반도주를 하였다는 불명예스러운 소문의 주인공이었던 아랑, 하지만 사실은 관가에서 일하던 이와 유모의 작당으로 겁간의 위기에서 저항하다 살해당하고 만 것.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귀신이 되어 부사를 찾아간 것, 하지만 부사들은 그런 아랑의 속도 모르고 '귀신'의 존재만으로 혼비백산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 '원형적' 귀신의 전설에서도 보여지듯이 죽어 저승으로 귀의하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도는 '원귀'의 이유는 바로 '이승'에 있다. 그 '이승'이 문제인 것이다. 

 

   

 

현실로 부터 고통받는 영혼의 빈틈을 찾아든 '손'
ocn 수목 드라마 <손 the guest>는 바다에서 온 '손' 박일도가 그의 숙주가 되는 일반인들에게 들어가며 문제가 발생한다. 박일도에 '빙의'된 이들은 괴력을 발휘하며 살인도 불사하며 사건을 일으킨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이 바로 이들이 '빙의'되는 이유이다. 이른바 영혼의 빈틈이라고 칭해지는 '자존'의 약한 지점을 '박일도'는 귀신처럼 알아차리고 찾아든다. 극중 첫 번 째 빙의자였던 김영수(전배수 분), 그는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하다 터널 공사 도중 사고로 인해 온 몸에 마비가 왔다. 하지만 그의 '산재'에 대해 업주는 나몰라라, 가족들도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방문 너머로 아내의 하소연을 듣고도 위로 한 마디 할 수 없었던 그에게 '박일도'가 찾아왔고, 그는 자신의 분노를 사업주와 가족에 대한 살해로 풀어내고자 한다. 

김영수에 이은 폐차장의 최민구, 최민상 형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생 최민구가 빙의된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박일도가 씌인 건 형 최민상, 결국 그를 잡았지만 '구마' 기회를 놓치고, 최민상은 스스로 잔인하게 자신의 목숨을 거둔다. 그런데 아들이 죽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어수선한 주변 정리를 요구하는 어머니, 정신병에 걸린 둘째 아들도, 박일도에 희생된 형도 그 원인은 어머니의 가정 폭력과 폭언, 학대였다. 

그리고 문자 메시지로 빙의된 김은희(김륜희 분), 그녀는 자살한 약혼자의 뒤를 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순간에 박일도에 씌인 것이다. 외려 죽으려 한 그녀를 구해 복수를 하게 해주었다고 당당한 '손', 빙의된 김은희가 찾아간 곳은 약혼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동료 직원들. 그들은 김은희의 약혼자를 왕따시키고, 사내 폭력의 희생자로 만들었으며, 그를 못이겨 회사를 떠난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아갈 꿈에 부풀었던 젊은 연인들은 하루 아침에 그들의 모든 미래를 빼았겼다. 약혼자는 스스로 손목을 그었고, 그의 아이를 뱃속에 지닌 김은희는 죽음 대신 무참하게 칼을 휘두른다. 

이렇게 드라마 속 '손'을 부르는 건 현실이다. 노동자를 외면하 사주의 이기심과 가장의 산재 앞에 신음하는 가족의 고통, 가정 폭력, 그리고 직장 내 왕따 등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하는 사회 문제들이 결국 '인간'을 쇠잔하여 하여, '손'의 숙주로 가장 안정된 조건을 만든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손에 빙의된 괴물이지만, 그들의 폭주는 무섭지만 처연하다. 

 

 

여전히 어린 아이인 생령이 벌이는 죽음의 장난 
<오늘의 탐정> 역시 마찬가지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영 선우혜(이지아 분)의 폭주로 인한 범죄. 병상에서 몸은 어른으로 자랐지만 여전히 의식은 벌레를 잡아 죽이던 어린 아이와 다를바 없는 선우혜는 '장난'처럼 사람들의 목숨을 거둔다. 아이들에게 시달리던 유치원 교사의 경우처럼 거두는 방식이 희생자의 가장 취약한 부분. 하지만 그 '선우혜'의 잔인한 장난이 아직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역시 버림받았던 혹은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으로 보여진다. 

아들에게 폐만 된다며 어머니의 죽음을 강권하던 선우혜에게 버티던 이다일(최다니엘 분)의 어머니는 결국 대신 아들의 목숨을 거두겠다던 협박에 손목을 긋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청력을 잃었던 정여울(박은빈 분)에게도, 그리고 이제 다시 그 죽음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나선 여울에게도 동생에 대한 그녀의 미묘한 감정을 건드린다. 그런 식이다. '영'은 살아있는 인간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있는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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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조차 불러들이는 산 자의 운명과 사랑 
<러블리 호러블리>의 귀신은 어쩌면 가장 전래의 전형성을 지닌다. 이른바 '귀신의 전매 특허인 '한'의 현대적 버전이다. 8년전 코리나 레지던스에서 죽었던 두 사람, 라연과 필립의 어머니, 그 두 사람은 8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귀신'이 되어 돌아온다. 

그들이 돌아오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사랑'이다. 8년의 주기로 죽을 운명에 빠진 아들 필립과 의붓 딸 을순,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막기 위해 무당이었던 어머니가 24년전 을순의 운을 빌어 아들의 생명을 구했듯이, 이제 귀신이 되어 돌아와 위기의 순간마다 노랫소리로 홀린다. 그뿐이 아니다. 자신이 저지렀던 업보를 필립을 통해 갚아 을순을 구하고자 한다.  

필립의 연인으로 필립의 스토커였던 윤아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라연, 하지만 라연은 거울 속에 스며 침묵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가 '돌아왔다. 드라마는 드러난 건 필립과 그의 공식 연인 윤아, 그리고 작가 을순의 삼각 관계이지만, 사실 저변에 흐르는 건 죽은 필립의 연인 귀신 라연과 을순의 삼각 관계다. 인간과 귀신이 얽힌 삼각 관계. 거기엔 8년의 세월을 넘어 이제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뜬 필립이 있다. 미움이었던 애증이었던 라연 대신 새로운 을순에세 마음이 향한 필립에 대한 사랑은 라연을 시간의 그늘에서 걸어나오게 한다. 

이렇게 '호러'를 표방한 세 드라마 <손 the guest>, < 오늘의 탐정>, <러블리 호러블리> 속 호러는 현실을 길어올린다. 귀신은 무섭지만, 드라마를 보다보면 귀신은 처연하고, 차라리 그들을 '귀신들리게'한, 혹은 '귀신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혹은 현실이 더 안쓰럽다. 그렇게 드라마 속 '귀신'은 삶으로 인해 죽음의 경계를 허문다. 삶은 그들의 먹이요, 놀이요, 미련이다. '호러'라는 장르를 통해 드라마는 모호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통해 뜻밖에도 삶을 경고한다. 



by meditator 2018. 9. 28. 15:36

'여성'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써내려가는 시대다. 지금까지의 역사와 사회가 관행적으로 그러려니했던 여성에 대한 태도, 사고, 관행들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반성이 이루어지며 새로운 전통과 가치관을 모색하는 시절이다. 하지만 이 '새' 시대는 녹록치 않다. 여성을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가에서 부터, 여성다움에 대한 정의조차 합의에 이르는 것이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은 공감에의 도출은 어쩌면 애써 무엇으로 규격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애써 규정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주목했으면 하는 세 여성의 캐릭터가 있다. 그들은 여성이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그려오던 '여성'의 캐릭터와는 차별된다. 하지만, 그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는 없다. 이렇게 '다른' 여성들을 통해 이 시대 여성들을 풍부하게 하는 것, 그것이 새로운 여성을 정의내리는 첫 걸음일 듯 싶다. 

 

 

그 어떤 순간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는다 - <보이스2> 강권주(이하나 분) 
어릴 적 사고로 눈을 다치면서 절대 청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 특기를 살려 112 신고 센터 요원이 되었다. 하지만 무진혁 형사 아내의 죽음, 그리고 이어진 아버지의 죽음 등 전화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는 죽음의 현장에 대한 경찰의 늑장 대처로 인해 자신의 직업적 한계를 느껴 미국 유학을 떠난다. 그로 부터 3년 후 강권주는 '소머즈'와 같은 청력에 기반하여 보이스 프로파일링 및 긴급 구조 전문가라는 독보적 분야의 전문가로 돌아와, 골든 타임팀을 꾸린다. 

시즌1에 이어, 시즌2에서도 골든 타임팀의 수장으로 등장한 강권주를 특징짓는 건 당연히 그녀의 남다른 청력이다. 하지만, 청력만으로 강권주를 예단해서는 아쉽다. 오히려, 청력을 기반으로 하여 '보이스 프로파일링' 전문가가 된 강권주는 112 응급 구조 센터라는 절체 절명의 응급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사건과 그 사건에 대처하는 골든 타임팀 및 출동 팀을 이끄는 '리더쉽'이 진짜 그녀의 강점이다.  그 누구보다 사건의 희생자에 대해 공감하고 마음 아파하지만, 그 '공감'의 감정을 절제된 이성으로 통제하며 상황을 통제해 들어간다. 즉, 그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통제력, 그에 기반한 기민하고 냉철한 지시와 대처, 그것이야말로  <보이스2> 골든 타임팀을 가능케 하는 핵심이다. 

그에 덧붙여 동료에 대한 편견없는 파트너십이 그녀의 리더십을 배가시킨다. 시즌 1에서 매일 밥 먹듯 야근을 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챙겨 오다 잔인하게 살해된 아내 때문에 폭주하다 폐인이 되다시피한 무진혁을 출동 팀장으로 이끈다. 시즌2에서도 마찬가지다. 동료 형사를 죽인 사이코패스라 낙인 찍힌 왕따 도강우 형사(이진욱 분)을 동료로 받아들인다. '미친 개'라던 무진혁, '또라이'라던 도강우를 자신의 파트너로 이끈 이유는 '동물적 감각'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해냈던 혹은 '알파고'라고 지칭되는 그들의 능력이다. 즉 그들에 대한 세간의 편견을 넘어 그들의 능력을 존중한다. 이런 사심없는 강권주의 리더십은  해커였던 팀원들을 규합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시즌2에서 골든타임팀을 경찰청 내부의 이간질과 불신으로 궤멸시키려 했던 방제수의 전략으로 도강우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되었던 강권주는, 그에 대한 자신의 불신이 불식되자 기꺼이 그에게 사과하며 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이런 강권주의 캐릭터는 새로운 여성상을 넘어 어쩌면 우리 시대 '리더십'의 새로운 전형으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세상을 주무르나 옹졸하지 않다. - <미스터 선샤인> 쿠도 히나, 아니 이양화 (김민정 분)
그녀는 이양화로 태어났다. 하지만 나라조차 팔아 일신의 영달을 구한 아비는 그녀를 일찌기 쿠도히나로 만들었고 그녀를 돈많은 일본인에게 팔았다.  그녀의 몸안에 새겨진 흉터와 같은 결혼 생활, 하지만 그녀는 그 '학대'를 기꺼이 갚고 글로리 빈관으로 여주인으로 돌아왔다. 

글로리 빈관, 하지만 그녀는 그저 호텔의 여주인이 아니다. 조선의 모던 보이, 모던 걸이 보이는 이 '개화'의 중심지에서 그녀는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들을 모은다. 그 정보는 그녀의 의사에 따라, 그리고 그녀가 일원인 고종의 휘하 비밀 조직의 명령에 따라 조정된다. 그 중심에 그녀가 있다. 

그저 돌아가는 세상의 조정자로 살던 그녀, 그런 그녀 앞에 미국인 유진이 나타났다. 아버지도, 남편도, 남자들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았던 그녀의 삶에 다른 감정의 결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 그런데 그런 그의 눈은 다른 여인 애신을 바라본다. 그만이 아니다. 동지인지, 정인인지 모르게 늘 그녀의 곁에 있던 동매조차도 애신 앞에서는 흐트러진다. 처음에 대갓댁 규수였던 애신이 가소로웠고, 고까웠고, 세상을 주무르는 자신의 능력으로 그녀의 발을 걸어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쿠도 히나의 선택은 달랐다. 자신이 사랑하고픈 남자의 정인으로 등장한 여인에 대해 '질투' 대신, 기꺼이 그녀의 처지와 존재를 들여다 보아 준다. 연적에게만이 아니다. 사랑하고픈 남자에게도, 벗인지 연인인지 모르는 남자에게도 가장 앙칼진 칼을 들이대는 대신, 기꺼이 든든한 둔덕이 되어 애신도, 유진도, 동매도, 쿠도 히나의 그늘에서 세상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쿠도 히나가 된 이양화가 가장 멋졌던 장면은, 그의 아비 이완익의 죽음 앞에서다. 자신을 팔아넘겼지만, 그래도 아비의 죽음, 하지만 그 육친의 죽음 앞에서 그녀는 기꺼이 그 아비로 인해 핏덩이 때 고아가 되버린 애신의 가엾은 셈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식이다. 가장 감정적인 듯한 포지션을 취하지만, 어쩌면 <미스터 션사인>에서 가장 품이 넓고, 공명정대하며, 정의로운 인물은 쿠도 히나가 되어버린 친일파 이완익의 딸 이양화다. 육친의 혈연 대신 이성의 조국을 택한 여인, 친어미의 소식을 속인 정문 대감에 대한 복수 대신 그를 대신해 고종의 호위로 대신한 여인, 드라마 속 모든 인물들의 가장 든든한 의지처, 그렇게 일본에게 팔려갔던 친일파의 딸은 외모보다 그 캐릭터가 멋진 말 그대로 여장부가 되었다. 스스로의 상징인 글로리 빈관이 일본군에게 농락당할 때 기꺼이 거길 폭파할 만큼. 

 

 

힘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 -<러블리 호러블리> 오을순(송지효 분)
호러블 로코를 표방한 이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난 건 칼을 든 괴한을 만나게 되면서이다. 그런데 이 '위기의 상황' 드라마는 기존의 남녀 성역할을 전복시킨다. 당대 최고의 스타라는 자신의 처지가 드러날까 검은 비닐 봉지까지 뒤집어 쓴 남자 주인공은 각자 갈길을 가자며 읍소한다. 반면에 이미 칼을 들고 여성을 위협하던 괴한을 향해 '거기 서'라고 우렁차게 외치며 날아온  오을순은 여성을 구하고 자신이 칼 앞에 당당하게 다리를 날린다. 심지어 남자 주인공을 향해 찌르는 칼날을 손으로 막는다. 그렇게 드라마는 여주인공을 설명한다. 입봉도 못하고 되는 일이 없는 루저라지만 사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당당한 여성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유도를 해서 전국체전에서 금메달까지 땄지만, 그 시절 공원에서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남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결국 자신의 꿈이던 유도를 접었다. 하지만 좌절하는 대신 가난했던 자신에게 유일한 재미가 되주었던 글쓰기를 또 다른 희망으로 삼았다. 10살 무렵 대운 맞이 이후 엄마는 달아나고,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하고자 했던 유도는 다쳐서 못하게 되고, 이제 작가라는 꿈마저 요원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며칠을 안감은 머리, 눈 한쪽이 안보이게 가리고 다니지만 불의 앞에서는 거침없고,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며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칼을 맞고, 의자 다리에 갇힌 그를 구하러 뛰어가고, 죽을 위기에 놓인 남자 필립을 구하느라 고군분투하던 을순은 그가 어릴 적 아버지가 만들어 준 목걸이를 빌려준 아이임을 안다. 그리고 그 목걸이와 함께 자신의 운도 그가 가져갔음을 안다.  자신의 행운을 도둑질해 갔을 지도 모를 남자, 하지만 기꺼이 병상에서 의식을 찾지 못하는 그에게 자신의 목걸이, 혹은 행운을 돌려준다. 아니, 그녀의 손에 다시 전해진 목걸이를 바다 멀리 던져버린다. 운명 따위에 자신들의 행운을 맡기고 싶지 않겠다고 한다.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이라 할 이쁜 여자 대신, <러블리 호러블리>의 오을순은 든든하고 믿음직해서 남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게 된 여자다. 물론 알고보니 입술도 이쁘고, 이마도 이쁘다는 로코의 정석을 외면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날아오는 야구공을 손으로 막아줄 만큼 그녀는 힘이 세다. 하지만 그저 힘이 셀 뿐만 아니라, 운명으로 인해, 상황으로 인해 쫄보가 되는 남자 주인공 앞에서, 내가 지켜줄게 하며 어설프게 남자연하는 남자 앞에서 '너님은 내가 지킬 거 같다'며 여유롭다. 백마 탄 왕자 대신, 기꺼이 그 백마를 자신이 잡아 타고 운명을 잡으러 갈 기세다.

자신의 운을 아들에게 건네준 키워준 엄마, 그런 운을 빼앗은 남자 필립에게 새삼스레 운명의 손익 계산서를 들이밀며 감정적 부채에 흔들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입봉작을 도둑질해 스타 작가가 된 옛 친구를 품을 만큼 당당하다.  감정의 동요로 인한 갈등 대신, 기꺼이 품고 사랑하기를 택하는 오을순 식의 사랑법이다. 

by meditator 2018. 9. 20. 17:32

마지막 회까지 결말을 알 수 없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마지막 회 마지막 씬까지 예측할 수 없었다. <보이스2>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최종회 마지막 순간까지 예측불가능했던 결말에 대해 시청률이 답했다.  4%대로 시작했던 드라마가 12회 7%를 넘으며(7.086% 닐슨 코리아 유료 채널 기준)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시청률만이 아니다. 시즌 2를 폭주하던 방제수(권율 분)는 결국 잡혔지만 폭발 사고로 인한 주인공 강권주(이하나 분) 센터장의 안위와, 여전히 모호한 도강우(이진욱 분) 팀장의 정체성은 의문의 인물들의 등장과 함께 외려 다음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주인공의 캐릭터 변주와 보다 강력한 절대 악의 등장으로 시리즈를 이어가는 이른바 '미드'식 전개의 성공적인 안착이다. 

 

 

모태구를 잊게 만들었던 두(?) 사이코패스 
댄디한 착장에 섹시하기까지 한 외모, 타인의 죽음 앞에서도 한없이 나른한 태도, 그런데 거침없이 휘두르는 쇠공, <보이스 1>의 모태구를 이 정도로 정의하면 될까? <보이스1>이 마무리될 때 과연 이 보다 더한 악인이 등장할까 싶었다. 그런데, <보이스2>가 시작되자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배안에서 가면을 쓴 악인은 하수인을 시켜 죽이는 것도 모자라 도강우의 동료 형사 신체 일부를 절단하여 곤충 채집처럼 수집한다. '고어(gore혈액 등으로 대표되는, 잔인성과 그에 따른 공포감 및 혐오감, 그리고 반사회성 등이 강조된 특정 계열의 속칭 및 총칭)'의 단계가 버전업되었다. 

거기에 더해 살인마는 스스로 새로운 악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곤충 동호회 '닥터 파브르'를 중심으로 자신과 같은 '사이코패스'들을 규합한다. 그래서 들키면 청산가리를 삼키고, 경찰에 자수했던 방제수의 도피를 위해 형사인 자신의 목숨조차 기꺼이 희생하는 하수인들을 규합한다. 심지어 알고보니 1회 부터 도강우 형사의 가장 최측근으로 활약했던 곽독기(안세하 분)마저 방제수의 오랜 친구였다는 식이다.  사이코패스가 지배하는 '언더 월드'의 구축이다. 

하지만 <보이스2>을 이끈 건 이 자신이 죽인 희생자의 신체를 별 모양 상자에 모아 수집하는 방제수나 그의 영도를 기꺼이 따르는 사이코패스 신도들만이 아니다. 정작 시즌2를 통해 시청자들을 가장 혼돈스럽게 한 건 과연 도강우 형사가 사이코패스인가라는 의혹어린 질문이다. 방제수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폭주할 수록, 그리고 그 폭주의 타깃이 '골든 타임팀'이 될수록 도강우에 대한 의혹도 커져갔다. 그리고 그 의혹에 맞추어 도강우의 모호한 질주도 궤적이 흔들렸다. 강권주가 듣는 그의 목소리는 진실되었지만, '블랙 아웃'되는 그의 기억, 그리고 폭력적인 그의 행동들은 그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게 만들었다. 

<보이스1>은 모태구라는 절대 악 사이코패스의 강렬한 존재와 그와 맞물리는 골든 타임팀의 실시간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갔다. 거기에 '소머즈 급'으로 듣는 능력이 극대화된 골든 타임팀과 팀장 강권주의 사연과 활약, 그들과 손을 맞춘 무진혁(장혁 분)의 사연과 거침없는 수사가 합을 맞췄다. 

시즌2는 이런 시즌 1의 기조를 새롭게 변주된 사이코패스 방제수를 통해 고스란히 이어받으며 절대 악 사이코패스에 의한 시즌의 장악이라는 <보이스> 시리즈의 통일성을 만들어 갔다. 거기에 도강우라는 의문의 형사 캐릭터를 더해 '사이코패스'물의 변주를 더했다. 시즌 1이 '카피캣'이라는 범죄 유형을 등장시켜 에피소드의 풍부함을 살려냈다면, 시즌2는 알고보니 에피소드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그 사이트와 관련이 있다는 '닥터 파브르'라는 곤충 동호회를 빙자한 사이코패스 사이트를 등장시켜 에피소드를 견인한다. 

 

   

 

사이코패스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보이스 1> 모태구의 사례처럼 대부분 사이코패스를 악의 축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은 '날때부터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가진 아이가 그 성향을 조장하는 환경을 통해 사이코패스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보이스2>는 이런 관점에 조금은 다른 해석을 더한다. 

성폭행을 통해 태어난 아이 방제수, 원치 않는 아이에 대해 엄마는 학대와 사랑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그런 엄마의 애증은 고스란이 아이의 트라우마적 범죄로 이어진다. 아이, 방제수는 끓는 물로 학대를 당해 경찰에 구해져 보호 시설에 갔으면서도 훗날 외려 그 경찰에 대해  보복을 할 정도로 엄마에 대해 집착적 태도를 보인다. 심지어 죽은 엄마의 시체마저 보존할 정도로 그에게 엄마는 영원한 업이자, 절대적 사랑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학대받고 외면받던 방제수를 통해 사이코패스를 만든 건 성폭행 희생자를 경원시하고 터부시하는 사회라고 드라마는 결론짓는다. 

하지만 사회가 방제수를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도록 방조했다고 해서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어릴 적 아버지의 범죄를 목격하고 적극 도왔다는 혐의를 받았던, 거기에 더해 시시때때로 폭력적 성향으로 사이코패스라 간주된 도강우를 통해, '기질'이 범죄를 합리화시킬 수 없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폭력적 성향으로 끊임없이 분노하면서도 결국 방제수에게 총을 쏘는 대신 그에게 수갑을 채우는 도강우를 통해 드라마는 그간 사이코패스 드라마들이 내렸던 사회적 책임의 당위론에 '개인적 책임'의 무게를 더한다. 그저 다른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결국은 그 모든 것에 '선택'의 기회가 있음을 드라마는 밝힌다. 

 

   

 

이렇게 <보이스2>는 방제수와 도강우라는 두 사이코패스에 방점을 찍으며 <보이스1>과는 차별화된 하지만 여전히 '사이코패스 범죄물'이라는 통일성을 지닌 시리즈로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적 캐릭터의 변주에 화려함을 더한 대신, 애초에 '보이스'라는 제목에서처럼 초인적 듣는 능력에 기반한 골든 타임팀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무뎌졌다. 

시즌 1에서는 강권주 센터장이 어떻게 남들과 다른 듣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 능력을 인정받고 골든 타임 팀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며 <보이스>라는 제목에 걸맞는 시리즈의 특성을 잘 드러냈다. 물론 <보이스1>에서도 모태구라는 악의 축에 의존하여 진행된 드라마는 '악행'의 변주에 색채를 더하며 회차를 거듭했지만, 신선한 캐릭터 강권주나, 폭주하는 무진혁의 파트너쉽은 그 무게 중심이 흔들려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 시즌2, 무진혁을 대신한 도강우마저 그 정체성에 의심을 더하며, 연달어 이어지는 방제수, 혹은 그가 관장하는 닥터 파브르와 관련된 일련의 범죄 과정에서 골든 타임팀의 활약은 어쩐지 뒷북이다 싶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늘 강권주 팀장은 활약보다는 사건에 대한 해석과 설명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도강우의 선배이자, 그를 사이코패스라 단정했던 나홍수 팀장(유승목 분)의 맹목적인 의심도 '고구마'라 칭해지는 이런 경찰 팀의 무기력에 힘을 보탠다. 심지어 '듣는 능력자'인 강권주 팀장은 폭탄의 타이머 소리는 물론, 녹음기 소리와 어린 아이의 목소리마저 구분하지 못한 채 절체 절명의 위기에 빠지며 시즌2를 마쳤다. 과연 강권주 팀장을 비롯한 골든 타임팀은 더욱 강력해지는 악의 축에 대항하여 시즌3를 통해 다시금 부활할 수 있을까? 이 또한 <보이스 3>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8. 9. 17. 15:07

<무사 백동수>, <라이어 게임>, <피리부는 사나이>, <보이스> , 김홍선 감독의 전작들이다. 흥행과 상관없이 그 장르적 특성이 강하며, 새로운 소재라는 점에서 언제나 독보적이었다. 그 김홍선 감독이 <보이스>의 속편 대신 들고 나온 작품은 뜻밖에도 '호러' <손 the guest>다. 이 또한 장르 드라마 영역에서는 새로운 한 발이다. 

 

 

엑소시즘, 그 익숙하지만 낯선
<손 the guest>는 '엑소시즘'(exorcist)에 대한 이야기이다. '손'으로 대변되는 절대 악령과 그 악령에 씌인 사람들을 사제 최윤(김재욱 분)의 '구마 의식'을 통해 그의 몸에 들린 귀신을 쫓아낸다.

이는 지난 2015년 개봉한 김윤석, 강동원 주연의 <검은 사제들>과 흡사하다. 영화 속 사제 김신부(김윤석 분)이 구마 의식을 진행하고, 그의 곁에서 부사제인 최부제(강동원 분)이 그를 돕는다. 영화에서는 인간의 몸에 들린 귀신을 제거하는 '구마' 의식을 바티칸이 비공식적이지만 전통적으로 수행해오던 의식으로 그려낸다. (실제 2014년 교황청은 비공식적으로 행해지던 장엄 구마 의식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드라마 역시 나이든 신부(남윤철 분)과 함께 부사제 최윤(김재욱 분)이 엑소시스트로 나선다. 2016년까지 연달아 제작되고 있는 장르물로서의 <엑소시스트>는 우리 관객에게도 익숙한 '엑소시즘'영화이지만, 2015년 개봉했던 <검은 사제들>은 우리 나라에서 드문 신선한 시도라는 찬사와 함께,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낯선 소재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손님, 그 이방인의 설화 
익숙하지만 어쩐지 우리에게는 낯선 '엑소시즘'이라는 소재에 다가가기 위해 드라마는 '손'이라는 전통의 개념을 들여온다. 그리고 그걸 설명하기 위해 1화에서 전통의 '손' 설화를 그려낸다.

바닷가 마을 세습무당의 집안에서 벌어진 제사, 물에 들어간 종진의 몸에 '손', '귀신'이 씌이고, 그 귀신은 아직 세습무를 받지 않은 어린 화평에게 드리운다. 화평으로 인해 죽어간 어머니와 할머니, 굿판 무당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화평을 죽이려 한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말리며 할아버지는 자신들의 힘으로 어쩌지 못한 '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구마 의식'을 하는 신부를 불러들인다. 

드라마는 귀신, 악령의 호러적 대상을  우리 고유의 '손'으로 치환한다. 드라마에서 막상 수행되는 건 엑소시즘이지만, 그 엑소시즘을 전통적인 설화를 통해 뒷받침해낸 것이다. 박일도라는 사람이 마을에 들어왔는데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사라지고, 박일도는 스스로 눈을 찔러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악령의 '캐릭터 메이킹'을 '설화적 형식'으로 전한다. 

이 '손'은 지난 2014년 개봉한 영화 <손님>에서 차용된 개념이다. 전통적 공동체에 들어온 이방인의 이름, '손,'the guest',. 손은 말이 좋아 손님이지, 전통적 공동체에서는 '타자'이다.  그 '배타적'인 전통적 관계의 정서를 영화는 독일의 우화 <피리부는 사나이>를 변용시켜 풀어내고자 했다. 그에 반해 드라마는 말 그대로 이 낯선 이방인을 그대로 '악령'이라는 장르적 존재로 전환시킨다. 

 

 

전통적 정서를 호러로 되살려 
이는 거슬러 천연두를 '손님'이라 부르던 전래의 '네이밍'으로 이어진다. 

옛날에는 부모가 셋이었다. 나를 낳아준 부모, 나를 점지해준 삼신제왕님, 손님네를 말한다. 
삼신할머니가 곱고 잘생기게 점지해주어도 손님네를 잘못 만나면 곰보나 언청이가 되거나 뱃사공의 일곱째 아들처럼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불쑥 나타나서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꽤나 무섭고 두려운 신 '손님네'
정성이 부족하면 앙화를 면하기 어렵고, 그들을 맞이하여 처신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살아있는 한국 신화, 신동흔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질병을 뜻하며, 그 속뜻은 고통을 안겨주고 집안을 망가뜨리는 불청객이란 말이다. 즉, 전통의 '손님'이란 친숙한 개념에서 '엑소시즘'을 길어오는 방식을 통해 낯선 장르의 친숙하게 하기를 취한다. 

이 방식은 같은 호러 장르를 내세운 kbs2의 <러블리 호러블리>에서도 등장한다. 드라마를 여는 건 '재수가 없다'거나 혹은 '운이 나쁘다'는 주인공들의 처지이다. 거기에 더해 눈이 하나 먼 할아버지 점쟁이가 등장하여 주인공의 도둑질한 사주를 들먹인다. 드라마 작가인 여자 주인공에게 들리는 환청, 의지와 상관없이 씌여지는 대본이라는 '초현실적 현상'을 '접신'의 경지로 설명하고, 두 주인공들의 얽혀드는 운명을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같은 운명의 사주로 설득한다. 거기에 더해 하나의 뿌리로 얽혀든 나무의 전설'까지 드라마는 현재의 초현실적 현상을 '인연' 혹은 '운명'이라는 가장 전통적이고 익숙한 도구를 통해 설명한다. 

이렇게 <러블리 호러블리>, <손 the guest> 는 초현실적 장르물인 '호러'라는 생소함을 가장 익숙한 전통의 정서, 개념, 설화를 통해 연다. 거기서 <손 the guest> 는 '박일도'라는 설화 속 인물로 부터 비롯된 악연으로 세 주인공 최윤, 윤화평, 그리고 강길영(정은채 분)의 비극적 악연을 길어낸다. 자신때문에 가족을 잃은 어린 영매, 박일도의 희생양이 된 형 때문에 가족을 잃은 화평, 그리고 형사라는 사명감 때문에 들린 화평의 집에서 엄마를 잃게 된 길영이 이제 택시 운전사, 구마 사제, 그리고 형사가 되어 박일도가 씌여진 또 다른 '손'을 맞닦뜨려 자신의 '업'을 풀어나가는 것이 <손 the guest> 의 관전 포인트이다. 








by meditator 2018. 9. 14. 14:45

조선시대는 '유교'라는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전사회적 체제가 된 사회였다. 모계적 전통이 남아있던 조선 초기만 해도 신사임당의 사례에서 보듯이 결혼을 하고 친정에 머물러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가풍이 가능했다. 하지만 유교적 질서를 전사회적으로 확산되어 가며 더불어 여성은 우리가 아는 '삼종지도', 어려서는 아비를, 결혼을 해서는 남편을, 그리고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가부장제에 일체화되어 간다. 우리가 이슬람의 여성들이 쓰는 '히잡'문화를 생소해 하지만 조선시대의 '쓰개치마'의 용도는  '히잡'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한 나라의 공주조차도 결혼을 하면 시댁의 문밖을 나서는 것이 쉽지 않았던, 그래서 '규방'이라는 곳이 여성들의 세계이자 '감옥'이 되었던 시대, 그 시대의 끝자락에 <미스터 선샤인>의 여주인공 애신(김태리 분)이 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하자마다 우리가 만난 건 남자의 복색을 하고 총을 든 여인이었다. 밤드리 지붕을 타고 총을 겨누다 만난 남녀 주인공, 그렇게 시청자는 구한말 최고의 명문가 규수인 애신의 파격적인 면모 시작한다. 

총을 든 규방 처자 
드라마는 그녀가 총을 드는 이유를 애신으로 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일찌기 '의병'이었던 아비와 어미, 하지만 그들은 그들만큼 일찌기 조국을 팔아넘기기로 작정한 일본의 앞잡이 이완익과 그에게 자신을 팔아넘긴 동지에 의해 타국 일본에서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동지와 애신을 구한 어미 덕에 애신은 무사히 고씨 가문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조국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부모님, 그리고 가산을 기꺼이 의병 자금으로 내놓으신 할아버님의 아래에서, 마치 유전적 소인처럼 애신은 풍전등화의 조국에서 총을 든다. 그녀에게 의병 활동은 '당위'였다. 

하지만 동시에 애신은 여전히 조선 최고 명문가의 아녀자다. 스물 아홉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지만 정혼자가 있고, 지엄한 명문가의 규율에 맞춰 외출시엔 가마를 타고, 하인을 대동하며, 쓰개치마를 뒤집어 쓰는 유교주의적 생활이 몸에 밴 여인이다. 혼인을 하지 않겠다,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그녀의 고백에 할아버지가 내린 엄명을 어기지 못하고 달려가다 대문 앞에서 멈추어버리는 여인, 여전히 그녀는 조선의 양반가 규수였다. 

양반가의 규수이자 의병의 일원으로 총을 든 여인, 이 아이러니한 조합, 하지만 그 조합은 '개인' 애신이 아니라, 유교주의 사회에, 의병의 가풍이라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선택이었다. 즉, 애신은 그 당시 조선의 여인으로서는 그 누구보다 파격적인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에 애신 '개인'은 없다. 마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든 논개와 다르지 않은 선택이다. 


 




사랑을 통한 인식의 확대 
그렇게 자신의 존재론적 고민을 일찌기 부모가 그랬듯이, 그리고 할아버지가 정해준 틀을 넘어서지 않으며 살아왔던 애신의 삶에 균열을 불러일으킨 건 '사랑'이었다. 가장 사적이고 감정적인 사건, 총을 겨눈 자리에서 만난 자기와 같은, 하지만 자신과 전혀 다른 이, 유진 초이라는 이방인에 대한 불안함으로 시작된 만남은 호기심과 궁금함을 넘어, 어느덧 사랑으로 흘러간다. 

동시에 그 이방인에 대한 관심은 동시에, 지금까지 견고하게 지켜왔던 애신이 쌓았던 의병이자, 규방 처자로서의 옹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미스터 선샤인>이 흥미로운 건, 등장 인물 개개인이 모두가 각자 격동하는 구한말의 조선에서 각자 자신의 사회적 존재론에 근거하여 어떤 입장을 선택하지만, 가장 개인적인 감정 '사랑'을 통해 그 자신이 했던 선택에 질문을 던지며 사회적 갈등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돌이켜보면 왜 애신이 유진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느 틈에 유진이 애신과 함께 하기 위해 기꺼이 그 길을 향해 가게 되었는지, 2018년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뜬금없기도 하다. 생각 외로 <미스터 선샤인>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친절'하지 않다. 아마도 그건 김은숙 표 드라마에서는 사랑이 당위라는 전제 위에서 쌓여진 서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사랑'이 사회적 자각의 확산을 위한 작위론적 설정에 근거해서 이기도 하다. 이제 종반을 향해 달려가는 이 드라마에서 여전히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두 주인공의 사랑, 그 개연성에 대한 의문은 바로 이런 설정으로 부터 기인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그녀가 했던 옳은 선택이었던 의병 활동, 하지만 그 선택이 얼마나 '의지론'적이었을 뿐, 현실적인 고민이 부족했었는가를, 애신은 유진(이병헌 분)을, 구동매(유연석 분)를, 쿠도 히나 (김민정 분)과 만나며 깨닫게 된다. 

그저 나라를 구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일, 하지만 과연 자신이 구하려는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가,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라는 질문을 노비였던, 백정이었던 이를 통해, 양반댁 규방 처자 우물안 개구리였던 자신의 인식의 한계를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녀가 선택한 전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전제에 대한 의문은 그녀의 선택이 가졌던 안이함을 단련한다. 그래서 유진에 대한 마음으로 그녀는 거뜬히 그녀를 가뒀던 고씨 가문의 담을 넘는다. 이때 그녀가 넘는 담은, 총을 들고 넘었던 담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극복'이다. 여전히 고씨 가문의 손녀였던 그녀는 당시 양반가 여성으로서의 치욕이 될 수도 있는 정혼을 파하고 유진과의 길 위에 서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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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잃은 그녀, 대신 담이 되어주려 할 그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로맨틱한 결정은 그녀의 울타기 되어주었던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 그녀를 원래의 궤도로 돌려놓는다. 이제 그녀에게는 큰 마음을 먹어야 넘을 수 있던 담 자체가 없어졌다. 대신 그녀가 든 총은 더욱 그녀와 일체화되었다. 할아버지가 죽으라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려 했던 사랑은 이제 그저 지난 꿈이 되었다. 이제 납치당한 이정문을 구하는 임무를 위해 사랑하는 이를 기꺼이 이용하려 들 만큼. 

드라마는 고씨 가문이라는 담을 잃은 애신의 고뇌는 생략한다. 단호하지만 대신 가문을 잃은 처자의 존재론적 고민은 물을 가치조차 없다 여긴다. 그 부모들이 죽음으로 대신했듯 애신 역시 그러할 뿐이다. 총을 든채 나타난 의병의 일원으로 그 모든 걸 설명하고자 한다. 아마도 <미스터 선샤인>이 가진 행간은 이 '선택'의 고민이 가진 말줄임표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그 말줄임표를 강제하는 건 풍전등화의 시대다.

대신, 그런 그녀를 두고, 고뇌의 칼날은 남성 캐릭터들에게 향한다. 6개월 동안 연락도 없는 애신에 유진은 애가 타고, 나라의 위기에 애신이 죽을까, 쿠도 히나가 죽을까 동매는 불안하다. 김희성(변요한 분)이라 다를까. 그래서 남은 회차, 이미 선택이 끝난 그녀를 향해 그들이 달려갈 것이다. 여태까지 그들을 보호했던 '담'을 버리고, 이제 '담'조차 없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총을 든 규방 처자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결국 존재론적 선택을 향해 달려갈 그들을 위한 가장 매력적인 배경이 된다.  결국 애신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타인으로 조선에 온 세 남자에게 닥친 조국의 운명, 그 상징이다. 



by meditator 2018. 9. 10. 15:49

낮에는 아직 볕이 따갑다지만 아침저녁 쓸쓸하다 못해 쌀쌀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계절, 그 더웠던 여름이 다 지나가는 이 계절에 뒤늦게 '서늘함'을 무기로 장착한 두 편의 드라마가 등장했다. 그것도 같은 방송사 kbs2의 월화 드라마 <러블리 호러블리>와 수목 드라마 <오늘의 탐정>이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흐르지도 않는 땀을 얼어붙게 하면 어떠랴, 신선한 소재, 새로운 캐릭터들의 향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뻔하지 않음'으로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열렬한 지지자들을 양산할 태세다. 하지만, '호러'라고 해서 두 드라마를 뭉뚱그려 묶으면 아쉽다. '호러'라 해도 두 드라마가 보여주는 '호러'의 경지는 전혀 다른 색채를 가지고 시청자의 일주일을 떨게 만들테니까. 


 




정말 '호러블'한 건 '사람'이야 - <러블리 호러블리> 
드라마는 한 날 한 시에 태어나 운명적으로 엮인 두 남녀 유필립(유을축 박시후 분), 오을순(송지효 분)에게 벌어지는  '미스테리하고 호러블한 사건'들로 시작된다.  마치 세상의 모든 행운을 다 가진 듯했던 '우주대스타' 유필립은  1회부터 칼에 맞을 뻔하지 않나, 산사태에 생매장을 당할 뻔하지 않나, 심지어 8년전 연인이 귀신으로 나타나는 등 운명의 판도가 '불운'을 향한다. 그런데 그런 필립의 불운이 드라마을 쓰는 을순에게 '영적'으로 계시되어 대본으로 씌여지게 됨은 물론, 필립이 위기에 빠지는 순간마다 을순이 필립을 구해주며 두 사람은 엮이게 된다. 

스타 유필립의 과거와 현재가 얽혀진 이러저러한 사건, '귀신의 사랑'이란 대본을 둘러싼 미스테리한 사건들로 복잡해 보이는 드라마,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건, 뜻밖에도 인간의 욕망이다. 


 




애초에 죽을 운명이었던 아들, 그 연약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무당이었던 어머니는 을순의 행운을 '도둑질'했다. 거기서부터 어긋난 두 주인공의 운명, 그 어긋난 운명은 현재 또 다른 이들의 '욕망'으로 인해 '사건'으로 분출된다. 그 다른 이는 바로 필립과 함께 아이돌 그룹을 했던 동철과 기은영 작가이다. 자신에게 온 기회를 필립에게 빼앗겼다. 그래서 필립으로 인해 자신이 불행해 졌다 생각한 동철은 필립을 없애는 것으로 자신에게 온 불행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필립의 왜곡된 운명론을 을순에 대해 '샬리에르 증후군'을 가진 기은영 작가가 부채질하고. 그 두 사람의 욕망은 결국 보조 작가 살해와 필립 저격이라는 범죄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사건을 벌인 두 사람만이 아니다.  을순의 목걸이인 줄 알면서도 행운을 빼앗기기 싫어 그 사실을 숨긴 필립이나, 8년전 필립의 전 애인이 죽어간 화제 현장 사건에서 공모의 혐의가 있는 필립 소속사 사장이나, 필립의 현재 여자 친구인 신윤아 등이 움직이는 동인이 모두가 각자의 욕망과 이기심이다. 즉, 주어진 운명이라는 씨줄도 있겠지만 그 운명을 직조해가는 건 결국 '인간의 욕망'이라는 날실이라고 드라마는 얽히고 설킨 사건을 통해 강변한다. 즉, 이 드라마에서 진짜 호러블한 건 미스테리한 현상이 아니라, 거기에 영합하고 이용하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다. 

미스테리하고 호러블한 사건들로 얽히고 설킨 <러블리 호러블리>에서 '러블리'한 지점은 신선하고 매력적인 두 주인공의 캐릭터이다. 이마의 상처 때문에 얼굴의 반을 가리고 다닐 만큼 우중충해보이는 여주인공 오을순은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캔디나, 하니보다 한 수 위인 캐릭터이다. 을축이 아니 필립이에게 목걸이를 넘겨준 이후로 되는 일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칼을 든 강도 앞에서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배포를 가졌으며, 위기에 빠진 남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삽질은 물론, 엎어치기 메치기도 거침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빛나던 순간은 바로 16회 엔딩, '운명 따위'하면서 자신들을 얽어맸던 목걸이를 바다로 던져버리는 진취적인 적극성이다. 

백마탄 왕자님처럼 남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여주인공, 그렇다면 남자 주인공은 '신데렐라'일까? '백설공주'일까? 뜻밖에도 쫄보에 겁쟁이다. 자신의 신상이 밝혀질까봐 검은 비닐 봉지를 뒤집어 쓸 정도로 비겁하고 쫄보인 유필립,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그 '진정성'이 그로 하여금 을순을, 드라마에 대한 을순의 열정을 돌아보게 하고, 나아가 자신의 행운까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개연성있는 성장의 서사를 써내려가게 한다.  결국 '호러블'한 욕망, 그리고 주어진 운명의 굴레에 맞서는 건, 두 주인공의 '역동적인고 적극적인 러브'이다.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 중 가장 맞춤 캐릭으로 돌아온 송지효, 그리고 황금빛의 여운을 지워버리는 발군의  박시후 표 코믹과 진지를 오가는 연기가 어수선한 호러블한 사건 속에서 두 주인공의 러블리한 사건에 몰입하도록 한다. 


 




죽어도 주인공이야 - <오늘의 탐정> 
<러블리 호러블리>와 <오늘의 탐정>, 이 두 드라마가 '호러'라는 장르 외에 공통점을 들자며, 드라마가 시작하자마다 다짜고짜 남자 주인공을 땅에다 묻어 버린다는 것이다. <러블리 호러블리>가 자칭 헐리우드 스케일로 산사태를 일으키며 주인공이 타고가던 차채 땅에 묻어버렸다면, <오늘의 탐정>은 한 술 더 떠서 남자 주인공을 망치로 쳐 죽여 무연고 사망자로 만들어 버린다. 

시니컬한 하지만 차를 타고 들어오는 의뢰인의 면면만 봐도 그가 지나가는 사람인지, 사건을 의뢰하러 오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가 어떤 인물인지 맞추는 경지로 봐서는 거의 셜록 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주인공 이다일(최다니엘 분)과 그의 조수, 아니 그를 일찌기 알아보고 그와 함께 '어퓨굿맨'을 차린 한상섭(김원해 분)가 드라마를 열 때만 해도 남자 버전의 <추리의 여왕>인가 했다. 

그런데 사건만 해결하면 당장 쫓겨나게 생긴 사무실 임대료를 평생 받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뛰어든 유치원 아이들 실종 사건, 그 사건의 해결을 위해 뛰어든 이다일이 현장에 만난 건 뜻밖에도 범인과 사건 그 뒤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채 서있는 빨간 원피스, 그리고 그 빨간 원피스의 사주를 받은 범인은 이다일의 목숨조차 앗아가 버린다. 남자 주인공이 1회만에 죽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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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시작되자마자 비오는 풀숲 진흙탕에서 솟아오른 손 하나, 그는 그렇게 돌아왔다. 단지, 살아있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살아있지 않은 그를 여느 때처럼 맞아주는 사람이 있다. 이다일처럼, 자신의 여동생을 빨간 원피스의 사주로 잃은 정여울(박은빈 분)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빨간 원피스를 본 것처럼, 다을을 알아봤다. 그리고 동생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서는 다일이 필요하다. 

<오늘의 탐정>은 <셜록>처럼 사건 해결에 능력이 있는 이다일을 앞세운 범죄 수사물이다. 그런데, 그 범죄가 격이 다르다. 드러난 사건은 유치원 아이들 실종 사건, 레스토랑 직원 자살 사건이지만, 그 사건들 뒤에는 빨간 원피스라는 미스터리한 존재가 있다. 그리고 이제 그 미스터리한 존재에 맞설만한 또 다른 미스터리한 존재, 즉 죽어서 살아온 남자 주인공 이다일로 사건의 격을 맞췄다. 이렇게 미스터리와 범죄의 조합으로, <김과정>의 이재훈 피디와 <원티드>의 한지완 작가가 합을 이뤘다. 거기에 셜록보다 더 셜록같은 최다니엘 표 이다일과 <청춘시대>의 송지원못지 않게 똘망한 박은빈 표 정여울의 조합은 절묘하다. 





by meditator 2018. 9. 7. 17:28

'듣기만 해도 볼 수 있어', 어린 시절 사고로 청력이 극대화된 강권주(이하나 분), 보통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능력은 20Hz~ 20KHz, 그에 반해 강권주는 22khz 정도라는 돌고래 급이다. 이는 120m 떨어진 곳에서 작은 공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능력 덕분에 119신고 센터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현장의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119 신고 요원에 불과했던 강권주가 풀어내기엔 역부족이었던 사건. 그래서 강권주는 그 '소리'를 증명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 '소리를 기반으로 하여 범죄 유형을 분석하는 '보이스 프로파일러'가 되어 돌아왔다.  '듣기만 해도 볼 수 있는', 거기에 그 들었던 소리를 기반으로 사건 현장의 미세한 단서마저 포착함은 물론, 피해자나 범인의 상황이나 심리 상태까지 축측할 수 있는 강권주 팀장을 필두로 하여 119 신고 체계를 업그레이드한  '골든 타임팀'이 꾸려진다. 




강력한 사이코패스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시즌
강권주와 골든 타임팀은 119 신고 센터를 중심으로 하여 포진한다. 그런 그들에게는 현장의 귀가 된 그들의 수족이 되어 현장으로 달려가 사건을 수습하고 범인을 체포할 '수족'의 파트너 쉽이 필수적이다.  <보이스 시즌1>에서 그 '수족'의 중심에 강권주 팀장의 아버지와 같은 사건에서 아내를 잃은 '미친 개' 괴물 형사 무진혁(장혁 분)이 있었다. 드라마는 초반 이하나가 분한 강권주는 그 목소리는 물론 보이스 프로파일러라는 설정조차 생경했으며 반면 그녀의 파트너 무진혁의 장혁은 일찌기 <추노(2010)>의 대길이 이래 익숙해도 너무 익숙했었다. 이런 부조화는 모태구(김재욱 분)라는 깔끔한 슈트를 입고 철공을 휘두르는 극단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사이코패스와 매회 잔혹하면서도 퍼즐이 기막혔던 범죄 사건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보이스 시즌1>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그리고 겨울의 찬바람과 함께 그래서 더 에렸던 2017년 초 <보이스 시즌1>이 찌다못해 숨통을 죄이는 듯한 2018 여름, 시즌2로 찾아왔다, 그런데, 팀장 무진혁이 사라졌다. 매일 사건을 쫓아다니느라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들고 나왔다 참변을 당한 아내를 죽인 범인을 쫓아 미친 개처럼 동분서주했던 무진혁 형사가 시즌 1내내 병원에 있던 아들의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시즌 1을 이끌던 사건, 강권주 아버지와 무진혁 아내의 죽음을 범인 모태구와 그를 집요하게 추격하던 무진혁 팀장과 함께 털어지고, 모태구 못지 않은 강력한 사이코패스의 등장으로 시즌2의 서막을 연다. 

<보이스 시즌2>는 마치 <보이스>라는 시리즈의 특장점이 '잔혹 범죄'에 있기라도 한듯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 배 위에서 벌어지는 형사 나형준에 대한 사이코패스와 그 하수인의 살해 및 시신 일부를 절단하는 잔혹한 사건으로 연다. 그런데 이 현장에는 범인과 공모자, 그리고 피해자 외에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다. 바로 시즌2에서 출동팀 팀장이 될 형사 도강우(이진욱 분)이다. 




시즌2의 통일성, 변주, 그리고 확장 
도강우가 그 현장에 있었다는 건, 시즌 2의 가장 큰 변수가 된다. 경찰대 출신 시즌 1의 무진혁 못지 않게 범인을 쫓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는 또라이 형사, 하지만 파트너 형사의 죽음은 뜻밖에도 그에게 '동료 형사 살인범'이라는 '함정'을 만든다. '팀'의 존재를 거추장스러워하는 반사회적 인물이자, 살인범인지, 정의를 쫓는 형사인지 모호한 도강우의 존재는 오로지 사건 해결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던 무진혁이란 시즌 1의 캐릭터를 새롭게 변주해 내며 시즌2의 볼 거리를 확장시킨다. 

또한 시즌 1의 모태구 사건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목소리'에 기반한 119 응급구조 팀, 골든 타임 팀을 확고부동하게 안착시킨 강권주 팀장은 이제 팀원들을 새로이 정비하며 활약을 펼치려고 할 즈음, 무진혁 팀장의 공석을 이어받은 장경학 팀장의 사망 사건으로 시즌 1에 이어 다시 한번 강권주 팀장 이하 팀원들에게 숙명의 적을 탄생시킨다. 

팀원을 잃은 골든 타임팀과 동료 형사를 잃은 도강우의 출동 팀장으로서의 합류, 그렇게 시즌2의 조합이 꾸려진 가운데, 자신이 사망한 시신의 일부를 '수집'하는가 하면, 배후의 조정자이자 공모자, 그리고 음모자로서 방제수(권율 분)를 6회 전면에 등장시키며 드라마는 본격적으로 대립 구도의 각을 세운다. 거기에 일찌기 도강우에 대해 '사이코패스'라는 의심을 품은 나형준의 형이자 풍산지청 강력계장, 그러나  그 역시 승진에서 누락된 의혹이 있는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나홍수(유승목 분)를 더하며 인물 구도를 확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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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의 관전 포인트? 
<보이스 시즌 1>이 그랬듯이 시즌 2 역시 골든 타임팀의 119 신고 체계에 기반한 긴급 출동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매회를 이끈다. 스스로 보호 능력이 없는 어린 아이를 상대로 한 아동학대 범죄는 시즌 2의 어린이 성폭행 범죄로, 최종 보스에 의해 조장되는 카피 캣 범죄는 시즌 2에서는 종범들의 급발진 사건 등으로 시즌의 연속성을 환기시킨다. 또한 시즌 1에서 무진혁 팀장에게 도시락을 들고 가다 살해당한 '은형동 형사 아내 살해 사건'은 시즌 2에서 역시나 강권주 팀장을 위해 오이 소배기를 싸들고 가다 보이스 피싱 범죄에 연루된 박중기 형사 아내의 사건으로 변주된다. 이렇게 마진원 작가에 의해 이어지는 시즌 1과 시즌2는 시즌의 연계성을 가지며 시즌을 이어보는 시청자들에게 흥미를 배기시킨다.

물론 그럼에도 시즌 1과 시즌 2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여전히 은형동에서 풍산동으로 지역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그 지역을 배경으로 경찰을 쥐락펴락하며 무시무시하게 암약하는 사이코패스의 존재이다. 모태구보다 더한 괴물이 나올 수 있는가 싶었지만, 첫 회 자신이 훼손한 시신을 찍고, 그 일부를 기념품으로 챙기는 살인마의 등장은 이미 '모태구'를 잊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시즌의 일관성 외에 규정을 어기고 나홍수 과정의 정보를 해킹한 진서율 팀원의 과오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강권주와 그런 그녀를 엄호하는 도강우, 박중기 형사의 아내를 몸을 던져 구하는 도강우 등 팀을 무시하는 듯하지만 헌신적으로 사건에 임하는 도강우 팀장으로 인해 팀원들 사이의 결속력이 더해지는 한편, 향정신성 의약품을 복용하는 도강우, 과거 도강우의 기억 상실을 형에게 고백하는 나윤수, 그에 더해 보이스 피싱 조직 총책의 검거 과정에서 보인 죽음을 방조하는 듯한 행동에 화룡점정으로 강권주 팀장에세 배달된 나윤수 사건의 공모자라는 메시지는 도강우에 대한 '진실'을 혼돈에 빠뜨리며 <보이스 시즌2>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낯설었던 이진욱은 모호한 도강우라는 캐릭터 덕에 어느 틈에 극의 중심에 서있는다. 

시즌 1은 성운시라는 지역성의 특성을 강조했다. 월남하여 성운시에서 버스 사업을 시작으로 이제 성운시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재벌과 그의  사이코패스 아들이라는 설정을 통해  우리 사회 재벌 족벌 체제의 암울한 부분을 극대화시켰다. 그렇다면 이제 풍산시로 자리를 옮긴 <보이스2>는 의문의 존재 도강우와 이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방제수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남길 것인가. 범죄의 해결 이상 사건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또한 시즌 2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8. 8. 27. 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