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이 시대의 대표적 권력이다. 민주주의의 세 축 중 하나, 그 중에서도 사법 권력 중 다시 한 부분을 담당해야 할 일부가 어느 틈에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요한 세력이 되었다. 이 추상과도 같은 '검찰'의 시절에 드라마나 영화 속 검사의 모습은 둘 중 하나였다.

'반드시 잡겠습니다. 실패하면 검사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파면당하겠습니다. 그 안에 제 모든 걸 걸고 반드시 범인을 검거하겠습니다'라는 <비밀의 숲> 황시목(조승우 분)같은 정의파이거나, '내 얘기 똑바로 들어,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던 <부당거래>의 주양(류승범 분)같은 권력의 떡고물을 탐하는 검사였다. 정의이거나, 불의, 그렇게 양자 택일하듯 갈리는 검사 캐릭터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검사였다. 그런데, 진지하게 회의를 한다며 점심 시간에 갈 식당을 놓고 토론을 하는 검사들은 어떨까? 12월 16일 첫 방송을 한 jtbc <검사 내전>에서는 그저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검사들이 등장한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청춘의 빛과 그늘을 사실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그려내 젊은층들에게 전폭적인 호응을 얻었던 <청춘시대>의 이태곤 피디와 박연선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박연선 작가가 직접 대본을 쓰는 것이 아니라 '크리에이터'로 합류했다는 점이다. 

거기에 이전 작품과 다르게 원작이 있다. 현직 부장 검사인 김웅 검사가 지나온 18년간의 검사 생활을 에세이 형식으로 쓴 <검사 내전>이다. 김웅 검사는 사법 연수원 29기 출신, 인천 지검 공안 부장을 거쳐 미래 기획, 형사정책단 단장으로 있는 현직 검사이다. 2018년 발간되어 베스트 셀러가 된 <검사 내전>, 이 책의 부제는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이다. jtbc는 <미스 함부라비>에 이어 다시 한번 현장 법조인의 에세이를 드라마화하며 법정 장르물의 새 전통을 이어간다. 

생활인에 방점이 찍혀있는 베스트 셀러 <검사 내전>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검사 내전>의 이야기는 진영지청으로 부터 시작된다. 물론 우리나라 실제 지명이 아니다. 통영인듯 바닷가 풍경이 드러나 보이지만, 드라마는 사법 연수원에서 실력으로 검사들을 배치하여 제일 성적이 안좋은 검사들을 배치한다는 풍문 아닌 풍문의 장소, 그래서 사법 연수원 수석 졸업에 특수부만 오가던 차명주(정려원 분)가 발령받았을 때 진영 지청 모두가 좌천이라 입을 모아 말하는 그런 곳이다. 

그리고 형사 1부에 일도 밀리고, 사람으로도 밀리는 형사 2부가 극의 중심에 있다. 멋들어진 양복 간지의 조민호 부장님(이성재 분), 하지만 309호의 귀신 유래를 듣고 점쟁이를 찾아가 부적을 받아 그 방 책상 밑에 붙여 놓는 귀가 얇은 분이다. 부장님이 그러시니 다른 부서원들이라고 다를까. 진지하게 회의를 하자 해놓고서는 신참 검사 김정우(전성우 분)에게 보드에 적게 만드는 것이 점심 시간에 갈 식당 목록인 식이다. 

그 중에서도 지청장님과의 낚시 해프닝을 기꺼이 스스로 떠안고 눙치듯 넘어가는 이선웅(이선균 분) 검사가 있다. 동네에서 벌어진 소똥 투척 사건,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와 가해자인 노인 두 분을 불러 그들의 '치정'을 기꺼이 귀기울여 듣고, 그도 안되니 그 '치정'의 당사자인 할머니까지 불러 사건을 '무마'하려는 오지랖넓은  검사,  하지만 또 다른 동네에서 벌어진 잦은 사건 사고의 와중에서 점쟁이에서부터 피해자의 병원까지 찾아가 그들의 하소연을 다 듣는 가운데 예리하게 신통력을 내세운 점쟁이의 음모를 찾아내는 꼼꼼한 혜안도 지녔다.

이선웅이 그렇고, 형사 2부가 그렇듯이 모양새만 보면 딱 직장인, 외진 진양지청에서 벌어지는 인간사 만화경 같은 사건들을 붙들고 오늘도 씨름하는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히어로이거나, 메피스토였던 지금까지의 검사 이야기와 달라 그래서 새롭다. 아니 어쩌면 이제야말로 진짜배기 검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일지도. 

 

   

 

이선웅과 차명주, 악연일까? 
하지만 이 느슨한 오피스물같던 형사 2부에 서울에서 잘 나가던 엘리트 검사 차명주가 등장하며 분위기는 달라진다. 우선 진양 지청 사람들은 차명주가 왜 이곳에 오는가가 궁금하다. 이선웅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 차명주 부임 원인 찾기, 그건 여느 엘리트 검사라면 당연히 서울에서 '물을 먹으면', 진양까지 내려오는 대신 검사를 그만두고 돈 잘 버는 변호사로 개업을 할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차명주 전임으로 오자마다 당일로 조명호 부장의 성대한 접대만 받고 사라졌던 검사처럼 말이다. 

그런 예상을 깨고 차명주는 부임한다. 심지어 부임 첫 주니 배당없이 돌아가는 형편을 살피라는 지청장의 말이 무색하게 형사 2부 배당 사건의 반, 거기에 그동안 형사 2부 검사들의 미제 사건까지 떠맡겠다고 나선다. 그간 형사 2부의 '관행'과는 어쩐지 엇물리는 듯한 차명주의 '솔선수범'에 형사 2부 사람들은 어쩐지 떨떠름하지만 열심히 하겠다는 차명주에게 뭐라 말할 처지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이선웅이 공들여 준비하고 있던 상습적 체불임금 기업이 미제 사건으로 차명주에게 넘어간 것, 이선웅은 다시 돌려달라 하지만 차명주는 피해자들 보기에도 안좋다며 완강히 거부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차명주보다 한 기수 아래인 이선웅에게 사건 보고를 하란다. 

여기서 문제는 이선웅과 차명주의 꼬인 족보다. 분명 사법 연수원 기수로는 차명주가 한 기수 선배지만, 같은 대학 출신인 두 사람은 학번으로는 이선웅이 선배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학 시절 한 테이블에 앉아 술을 먹을 정도의 안면이, 아니 아직 나오지 않은 인연에도 불구하고 첫 만남부터 줄기차게 차명주는 이선웅에 대해 '안면을 몰수'하고, 그런 차명주가 이선웅은 불편하다 못해 대놓고 나도 싫다라며 선언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악연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선웅이 공들였던 사건을 차명주에게 가기가 바쁘게 '합의'로 마무리되고 만다. 이에 불같이 화를 내며 차명주에게 달려간 이선웅, 지난 5년간 상습적으로 체불한 기업을 그렇게 합의를 해주면 어떻게 하냐는 이선웅에게 미제 사건이 될 정도로 그동안 제대로 증거로 마련하지 못하고 뭐했냐는 차명주, 여기서 합의를 해주면 피해자는 정작 체불임금을 못받을 수도 있다는 이선웅에, 피해자가 내린 결정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며 그런 처지까지 검사가 신경써야 하느냐며 대꾸하며 첨예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야 만다.

엘리트 검사로 늘 속전속결로 결과와 실적을 중시하는 차명주와 조금 느리더라도 이쪽 저쪽 사정을 살펴 혹시나 피해보는 사람이 없게 돌다리도 짚어보는 식으로 해왔던 이선웅의 대결, 이는 결국 사건을 대하는 '검사'의 시각, 세계관의 갈등으로 사사건건 부딪칠게 뻔하다. 또한 드러나지 않은 있는 집 도련님이라며 대번에 이선웅을 규정하면서도 그의 존재만으로 진영지청을 선택한 차명주와의 과거의 인연? 악연 또한 복병이 될 듯하다. 그러기에 단 2회만에 첨예해진 이 두 사람의 갈등은  권력의 비리도 음모도 없지만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심지어 '전쟁'이 선포됐다. 이선웅과 차명주의 전쟁은 과연? 다음 주를 기약한다. 

by meditator 2019. 12. 18. 04:57

남자와 여자, 그 '커플'의 이야기가 드라마 스페셜에서 빠질 수 없다. 올해도 변함없다. 하지만, 저마다의 삶을 짖누르는 무게가 가일층 극심해진 시절,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그들은 '남자'와 '여자'라는 젠더의 관계보다, 세상에 맞서는 '동지'로 손을 맞잡는다. 바로 <사교-땐스의 이해>와 <때빼고 광내고>이다. 

 

 

<사교- 땐스의 이해> - 꼭 남자만 여자를 들어올리란 법이 어디 있어!
언젠가부터 대학 생활은 두 단어로 정의되어 버렸다. '인싸'와 '아싸',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은 그 어떤 무리의 일원이 되거나, 그게 아니면 올곧이 '개인'으로 그 어떤 곳에도 '소속'됨이 없이 학교 생활을 스스로 감내한다. 바로 이 극와 극의 성향을 가진 '인싸'와 '아싸'가 본의 아니게(?) 만났다. 

병현(안승균 분)이는 자타공인 인싸다. 늘 만나는 사람마다 밝은 얼굴로 안부를 묻고 과의 일정을 홍보하는 인싸 중에서도 이른바 핵인싸. 이미 경영대 학생 대표를 맡고 있는 그이지만 그 어떤 수업 시간이라도 학생을 대표할 그 누군가를 뽑는 자리에서 선뜻 손을 든다.  

반면, 수지(신도현 분)는 오늘도 그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까 '저어'하면 하루 일과를 보낸다. 자신의 이름이 혹시나 불러질까 두려워하고, 점심 시간 도시락도 혼자 화장실 한 칸에서 꾸역꾸역 해결해야 하는 '아싸' 라기에도 과하다 싶을 만큼 '대인 기피'의 수준이다. 

이렇게 핵인싸와 대인기피 아싸 병현과 수지가 각자의 사정으로 '사교-땐스의 이해'라는 과목에서 만났다. 심지어 시험 대신 함께 춤을 추어야 하는 커플 추첨에서 두 사람은 커플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두 사람의 신장이다. 차이가 너무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차이가 수지는 보통의 여성들보다 훤칠하고, 병현이는 경영대 GD라는 별명처럼 깔창을 몇 개나 깔아 자존심을 챙기는 처지다. 신체적 컴플렉스, 하지만 그 '외양'은 그저 겉모습에 머물지 않고 두 사람의 '존재'를 규정한다. 

남들보다 작은 키로 인해 고등학교 시절 위축됐었던 병현이는 지금도 우유는 먹지 않을 정도로 키가 작다 억지로 우유를  쏟아붓는 등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었다. 수지 역시 남들보다 훤칠한 키로 인해 모처럼 잘 차려입고 나간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병현이와 얽힌 악연으로 인해 대학 내내 그림자 같은 '아싸'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여전히 두 사람을 얽어매는 각자의 컴플렉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규정'되어 있는 사교 댄스는 키가 작은 병현이와 키가 큰 수지가 함께 하기에는 '난감'하다. 

드라마는 키가 너무 커서 아싸가 된 여자와 키가 너무 작아 그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인싸가 된 남자를 커플로 조우하게 한다. 그리고 그걸 통해 우리 사회 젊은이들을 얽어매는 세상사의 '기준'들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당연히 인싸라 밝고 자신감이 넘칠 것같았던 병현이, 아싸라 그저 도망가기만 할거 같은 수지, 하지만 인싸니 아싸니를 넘어,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넘어 두 사람은 키가 크고 작음을 떠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조건으로 인해 고통받는 상대방을 공감하며 위로한다. 그리고 비로소 그때 함께 서로의 손을 잡는다. 이 절묘한 조우, 이제  그들이 추는 춤은 지금까지 '사교 댄스'라는 이름으로 남자와 여자가 만들었던 그 춤과는 격이 다른 춤이다.  남자다움, 혹은 여자다움을 넘어선 서로 위로간 된 커플의 한 판 땐스, 주제와 형식의 기가 막힌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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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빼고 광내고> - 내가 원했던 꿈은 아니지만 돈도 벌고 사건도 해결하고 
여기 또 다른 커플이 있다. 그들 역시 사교 땐스 수업에서 만난 병현이와 수지처럼 첫 만남은 악연이다. 시작은 태랑(박은석 분)이다. 만년 취준생, 오늘도 어김없이 또 떨어졌다. 질문을 잠시 놓친 자신에게 무례한 말을 퍼붓는 면접관에게 예의 결벽증으로 당신도 깔끔하지는 못하다고 대거리를 하고 나왔으나 마음이 편할 리가. 바로 그 때 어릴 적 동네 옆집 형 영배(임지규 분)에게서 연락이 온다. 

형을 따라 나선 접대 자리에서 만난 대기업 임원은 태랑이 죽은 자기 아들과 닮았다며 관심을 보이고 그 관심은 영배 형을 통한 취업 알선, 아니 취업 사기로 이어진다. 휴일도 없이 미용사로 일하며 번 돈을 기꺼이 아들의 취업을 위해 내준 어머니의 금쪽같은 돈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당연히 그 대기업 임원이 꼿아주었다는 자리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믿던 형도 잃고, 직장도 잃고, 돈도 잃은 태랑은 며칠전 다짜고짜 그를 찾아와 자신과 함께 일해 보자던 안나(나혜미 분)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아직 그가 직장에 다니는 줄 아는 어머님을 위해 당장 무엇이라도 해야 했기에, 태랑이 정리 결벽증이 맘에 든다며 '스카웃'한 안나의 범죄현장 청소 업체에 함께 울며 겨자먹기로 함께 하기로 한다. 

경찰고시만 붙었다면 지금쯤은 범죄 현장을 누빌 것이라며 범죄 현장에 흥건한 피 쯤이야 암껏도 아닌 안나와 그녀가 다짜고짜 집으로 쳐들어와 본 면접에서 합격점을 받은 취업사기당한 깔끔 청년 태랑은 이름조차도 생소한 범죄 현장 청소 업체의 사장과 직원으로 호흡을 맞춘다.

한때는 취준생이던 두 사람이  본의 아니게 하게 된 범죄 현장 청소 과정에서 발견한 돈 봉투, 그 돈봉투를 통해 태랑은 자신처럼 마지막 동앗줄이라 잡은 게 그만 취업 사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지후(병현 분)를 만나고, 안나와 함께 지후를 죽음으로 몰아간 취업 사기 사건에 뛰어든다. 

만년 취준생이라는 답답한 현실을 범죄 현장 청소라는 기발한 직업을 통해 풀어간 이야기, 출판사 편집주가 범죄 현장을 닦는 청소로 변했지만 그 달라진 꿈만큼 이시대 젊은이들을 억누른 현실에 대한 진폭의 궤도를 달리한다. 현실에서 길어올린 기발한 소재, 하지만 그저 가볍지만은 상상력의 조합은 궤도 위에서 막연한 젊음을 역설적으로 위로한다. 

by meditator 2019. 11. 16. 21:06

조선 건국, 이방원이 주도한 왕자의 난, 그리고 광해군, 인조 반정 등은 이미 사극으로 숱하게 만들어진 역사적 소재들이다.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가의 말처럼, 사극은 오늘에 발을 붙이고 '과거'의 이야기들을 늘 새롭게 '각색'한다. 바로 '조선 건국'과, '광해군' 시절의 이야기도 예외가 아니다. 누가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역사 속 인물들은 때로는 영웅이 되고, 때로는 악의 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2019년 가을에 찾아온 이 '역사'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다시 씌여진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이름을 가진 역사 속에서 상상력의 힘으로 탄생한 아들들은 '아비'의 나라라는 숙명에 맞서 싸운다. 

 

 

아버지와 아들, 그 애증의 관계 
<나의 나라>는 고려 말 조선 초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당연히 이성계 부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극중 이성계로 분한 김영철과 그의 다섯 번째 아들인 장혁이 분한 이방원은 그간 이 시대를 배경으로 했던 사극과 달리 주인공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선 개국과 그 이후 다시 벌어진 두 차례의 왕자의 난에는 바로 아버지 태조 이성계와 훗날 태종이 된 이방원의 '부자의 애증' 관계가 놓여있다. 

'애썼다', 그 한 마디면 됐을 거라는 이방원, 하지만 아비인 이성계는 자신과 함께 조선을 건국한 동지이자, 아들 중 가장 특출났던 다섯 째 아들 이방원을 끊임없이 견제했을 뿐이다. 심지어 이제 왕좌를 이어받기에 차고도 넘치는 아들들을 두고 후처로 맞이한 선덕왕후 강씨에게서 난 어린 왕자 방석을 후계자로 삼았다. 결국 이런 이성계의 결정은 아버지의 신임을 얻지 못한 방원이 스스로 왕좌를 찬탈해 가는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초래하고야 만다. 

이렇게 이성계와 이방원의 엇갈리는 부자의 애증 관계가 드라마의 씨실이 된다면, 그 씨실의 결을 채워가는 건 또 다른 부자의 애증관계이다. 바로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앞장선 남전, 안내상이 분한 남전은 정도전과 남온을 합친 듯한 가상의 인물이다. 일찌기 고려의 실력자였고, 이제 조선의 건국에 앞장선 개국 공신, 그런 그의 위세 앞에 그림자 속에 숨어든 청년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아들 남선호(우도환 분)이다. 하지만 그는 아비를 아비라 부를 수 없는 노비의 아들인 '서얼'이다. 적자인 형이 물에 빠져죽자 니가 죽었어야 했다는 모진 말을 들으며 자란 남선호는 세상에 보란듯이 '입신양명'하여 아버지 남전 앞에 당당하고 떳떳한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과 시험에서도, 요동 정벌에서도 늘 운명의 고비에서 '인정' 받아야 한다는 욕구가 그로 하여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아비의 주군인 이성계에게 중용이 되었지만, 남선호는 결국 깨닫고 만다. 아비인 남전에게 자신은 그저 '권력'을 위한 수단이었음을,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었던 연이의 죽음 앞에 선호는 이제 더는 아비의 '개'가 되지 않겠다 결심한다. 아비의 추악한 뒷모습을 남김없이 확인하고나서야 비로소 아비에게서 자유로워지려한 아들, 하지만, 그 결심은 이미 늦었다. 그가 어찌해보기도 전에, 자식보다 '권력'을 탐한 아비는 가 그 '권력'의 칼날 앞에 무참히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주인공인 서휘(양세종 분)는 아버지가 없다. 이성계의 오른 팔이었던 서휘의 아버지 서검은 우연히 알게된 비밀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버지가 없는 세상에서 어린 동생과 함께 살아내기 위해 사선을 넘나드는 서휘, 동생을 살리기 위해 남전의 첩자가 되었고, 이방원의 칼날 앞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시련 속에서 다듬어진 서휘의 기지는 이방원의 눈에 들었고, 서검의 아들은 그를 죽음의 끝에서 건져낸다. 아비가 없었지만 적과 내 편을 알 수 없는 정쟁 속에서 어느덧 '부자'와 같은 돈독한 믿음을 가지게 된 이방원과 서휘, 불신의 부자 관계들 속에서 외려 이 '의사 부자' 관계의 믿음이 결국 역사적 승리를 거머쥐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서 <나의 나라>를 주목할 관전 포인트이다. 

 

 

아들을 죽여야 사는 아비 
광해군은 왕이 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의인왕후 박씨에게서 소생을 얻지 못한 채 공빈 김씨 등에게서 임해군, 광해군 등 13명의 아들과 10명의 딸 본 선조, 그 자신이 후사 없이 죽은 명종의 대를 이었던 조선 최초 방계 혈통의 왕이었던 만큼 정실에 의한 왕가의 계승을 중요시여겼다. 그래서 그의 나이 51세, 선조 자신이 19살인 인목왕후를 정비로 들였다. 

하지만 이미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버리고 '파천'을 벌이는 등 권위가 떨어진 선조와 달리, 문제가 많았던 임해군 대신 세자가 된 광해군이 신하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kbs2의 <녹두전>은 바로 이런 선조와 광해군이 가진 부자의 갈등 관계를 불러온다. 임진왜란이라는 위급한 상황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던 선조는, 그 광해군 대신 광해군이 낳은 아들을 왕으로 책봉하겠다고 했다는 역사적 상상력을 덧댄 것이다. 

이미 세자로서 전장을 누비며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왕이 될 날만을 고대하던 광해군에게 이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보였고, 결국 스스로 자신의 아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차마 갓난 아이를 죽일 수 없었던 왕의 벗이자 충직한 신하였던 정윤저(이승준 분)는 허윤의 묵인 아래 외딴 섬으로 가 왕의 아들인 녹두를 자신의 아들인 양 키운다. 

 

 

그러나 좁혀져 오는 왕의 의심을 피해 녹두를 없애려는 허윤의 피습은 외려 녹두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찾아 한양을 찾는 계기가 된다.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이 과부촌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과부가 되는 여장을 해서라도 존재의 진실에 다가가려 한 녹두는 결국 자신이 왕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조금 더 왕의 곁으로 다가가기 위해 무과에 응시하고 녹두가 자신의 아들인 줄 모르고 광해군을 그를 급제를 시켜 자신의 곁에 둔다. 

한편 일찌기 아버지로 부터 시작하여 늘 자신의 자리에 대한 불안을 감출 수 없었던 광해는 스스로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 했고, 아버지가 후사로 삼으려 했던 영창조차 궁에서 쫓아낸다. 그런데 이제 죽였던 아들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벗인 허윤조차 한 칼에 베어버리는 폭주를 하는 광해, 그런가 하면 정작 가장 의심을 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훝날 인조 반정의 주인 율무, 그리고 광해군의 곁에서 그가 가장 믿을 만한 무관이 되어 아비의 폭거를 지켜보게 되는 녹두,  광해군의 운명이야 이미 역사적으로 판명난 것이지만 역사적 상상력으로 덧댄 뒤늦게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 광해의 아들은, 죽여야 했던 자신의 아들을 알게된 광해는 과연 어떤 운명을 선택할 것인가. 이 부자 관계의 행보가 궁금하다. 

by meditator 2019. 11. 11. 15:12

매년 찾아오는 단막극 시리즈 <드라마 스페셜>의 장점 중 하나라면 동시대 청년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구현해내고자 애쓴다는 점이다. 올해도 변함없이 <드라마 스페셜>의 <렉카>, < 스카우팅 리포트>, <굿바이 비원>은 그런 동시대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런데 유독 청년들의 아우성이 사회 이곳저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시대여서 일까. 드라마들은 그저 삶의 수레바퀴에서 신음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넘어 그 시련을 꿋꿋하게 넘어서는 '용기'와 '의지'에 집중한다. 아파서 청춘이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넘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짊어지고 나아가려는 모습을 '형상화'하고자 한 것이다. 

 

 

<렉카> - 실직 청년의 무모한 레이싱
태구(이태선 분)는 렉카를 몬다. 아니 이제 몰았다가 될 지도 모른다.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사건은 뻔한 형편, 렉카 운전사들은 그 뻔한 사고 현장을 향해 필사의 레이스를 벌인다. 하지만 어릴 적 사고로 다리를 절 뿐만 아니라 천성이 모질지 못한 태구는 늘 그 막무가내 레이스에서 밀린다. 결국 사장은 사고를 내서라도 실적을 올리지 않으면 태구를 자르겠다며 최후 통첩을 한다. 

결국 본의 아니게 도로에 엔진 오일을 뿌리고 사고를 기다리는 태구, 그의 앞에서 검은 색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져 가로등을 박는다. 사고를 보고 달려온 척 렉카를 몰고간 태구, 그런데 사고 운전수를 견인을 극구 거부하며 태구에게 막말을 하며 사고 현장을 빠져나가려 한다. 그때 태구의 눈에 띈 열린 차 트렁크 속 여성으로 의심되는 무엇.

<렉카>는 실직 위기에 몰린 렉카 운전사 태구가 마주친 트렁크에 사람을 실은 수상한 차량과의 질주하는 '레이싱 액션'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이다. '단막극'이라는 한계에 도전하는 듯한 규모의 카레이싱 장면 속에서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탄 차량 사고로 눈 앞에서 부모님과 여동생을 잃어야만 했던 청년 태구의 트라우마가 엇물린다. 

뻔히 태구가 사고를 낸 줄 알았다며 거침없이 막말을 하며 태구를 모욕하는 운전사와 자신을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고 심지어 그 사고로 인해 결국 렉카 일마저 빼앗긴 상황에서 주저앉는 대신 과거 사고 속 구해내지 못한 여동생 대신 트렁크 속 여성을 구해내기 위해 무모한 레이싱에 돌진한다. 실직의 위기, 모멸감을 넘어서 린치와 협박을 가하는 검은 자동차의 운전자와 그 조력자들, 하지만 세상에 그 누구 한 사람 자신의 편이 아닐 꺼 같던 위기의 태구가 세상을 향해 돌진하는 순간 늘 그에게 잔소리를 해대던 동료도, 렉카 사장도, 그리고 그를 외면했던 경찰도 그의 지원군이 된다. 결국 태구는 재벌 3세에 의해 죽을 운명에 빠진 한 여성은 물론, 하마터면 범죄자가 될 뻔한 그 자신의 위기를 스스로 돌파해 낸다. 

 

 

<스카우팅 리포트> - 2019년판 아버지와 아들 
우연히 만난 녀석,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쓰이는데, 알고 보니 내 아들이었다는 이야기는 일찌기 고전 <오이디푸스>에서 부터 시작해서 <메밀꽃 필 무렵>까지 서사의 익숙한 소재이다. 그 익숙한 소재의 이야기를 2019년 버전으로 변주한 이주영 작가의 <스카우팅 리포트>는 2018 단막극 공모전 수상작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뒷돈이나 받다 쫓겨날 위기에 처한 야구 선수 출신의 스카우터 윤경우(최원영 분)이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 동앗줄처럼 내려온 기회 고교 유망주 곽재원을 구단으로 스카우트해 오는 것이다. 

재원을 찾아가 내려간 지방 고교, 감독의 총애를 받고 메이저 리그 진출의 꿈을 꾸는 유망주라지만 그 역시 고교시절 유망주였지만 부상으로 한순간에 꿈을 접었던 트라우마를 가진 윤경우의 눈에는 어깨 통증을 참고 무리한 투구를 하는 모습이 들어온다. 스카우터를 넘어 동변상련의 측은한 마음에 조금 더 수월하게 투구를 할 수 있도록 재원에게 조언을 하고 고기도 사먹이며 은근히 자신의 구단으로 그를 끌어오려 애쓰는 와중에 홀어머니가 횟집을 한다는 재원의 집을 방문하게 된 경우는 생각지도 못한 '운명적 관계'를 맞닦뜨린다. 

탕아로 돌아온 아버지, 그 아버지와 같은 위기를 겪게 된 아들, 이런 전통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운명적인 딜레마에서 많은 이야기들은 자신의 시대적 풍경을 배경으로 풀어내 왔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출생을 모른 채 아버지를 죽였고, 늙어 발을 헛디딘 <메밀 꽃 필 무렵>의 허생원은 자신과 같은 왼손잡이인 동이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렇다면 2019년의 아버지와 아들은 어떨까?

경우가 조언하려 했던 재원의 통증은 알고보니 경우의 아들이기에 운명적으로 봉착하게 된 기형적 신체 구조로 인한 것. 경우 역시 그로 인한 통증을 참고 던지다 무리가 왔고, 그런 경우에게 아버지는 설득한답시고 모진 언사로 인해 부자의 관계는 지금도 서먹서먹하게 된 것, 그리고 바로 그 날 그런 상황으로 인해 재원의 모친과도 이별을 초래하게 된 엎친데 덮친 운명의 순간에 이제 다시 재원이 서게 된다. 

재원은 경우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리그는 커녕 당장 이 경기를 완투하면 선수 생명 자체가 위험한 상황에도 팀의 에이스로 경기를 책임지려 한다. 갖은 방법으로 설득하던 아버지 경우, 과거 경우의 아버지처럼 모진 말로 부자의 관계를 끊는 대신, 아들의 무모한 도전에 어깨를 두드려 준다. 때로는 그럴 때가 있는 것이라며, 과거 자신이 그랬듯이, 어쩌면 이게 마지막 일 수도 있는 '영광'의 시간을 아들이 기꺼이 감수할 있도록, 그래서 같은 실패라도 다른 도전의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실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실패를 하느냐에 함께 '배팅'할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 2019년 드라마 스페셜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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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비원> - 과거와 이별하는 방식에 대하여 
공시생의 이야기는 그간 드라마 스페셜이 즐겨 다뤄왔던 소재이다. 2019년 드라마 스페셜로 찾아온 <굿바이 비원>은 그런 공시생의 이야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서본다. 

드디어 붙었다. 스물 세살에서 부터 서른 한 살까지 무려 8년이란 시간을 반 지하 방에 살며 버텨냈던 공시생 생활이 7급 공무원 합격이란 팡파레를 울리며 막을 내렸다. 출근해야 할 곳은 지금 사는 곳에서 무려 두 시간이나 떨어진 경기도의 한 시청, 기념삼아 온 근무지에서 친구의 부추김으로 그만 새 오피스텔을 계약해 버렸다. 

하지만 막상 공시생의 생활을 함께 한 비원, B1 지하방을 떠나려니 어쩐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헤어졌다지만 소개팅을 했다는 소식만으로 가슴이 철렁내려앉는 남자 친구와 함께 했던 기억이 이곳저곳을 채운 공간, 그래서 옷장 위에서 발견된 돈이 당연히 남자 친구의 것이라 생각한 것처럼 어쩐지 이곳을 떠나면 진짜 그와는 영영 이별이라는 생각에 다은(김가은 분)의 마음은 무겁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새로 들어갈 오피스텔에 필요한 전세 자금 대출도 원하는 금액을 맞추기 어렵고 취객의 뇨상 방뇨가 지긋지긋했던 이곳이었는데 마치 '비원'이 아직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렇게 미적거리며 '과거'를 놓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벌어진 집을 보러왔다는 핑계로 들이닥친 치한, 비오는 날 자신의 집 앞에서 얼쩡거려 치한이라 오해해서 잡고 보니 자주 들르던 편의점 직원, 심지어 그 직원은 다은이 살던 집에 먼저 살던 사람이었으며 다은을 주변에서 챙겨왔었다는데, 반면 남겨진 물건을 핑계로 만난 남친은 자신이 다니는 보험 회사 상품을 권유하며 미련을 덜어버리니. 이렇게 얼키고 설킨 관계들 속에서 다은은 비로소 자신의 방에 돈을 두고간 '임자'를 찾아낸다. 

오랜 암투병으로 인해 가끔은 정신이 흐려지시던 엄마, 그 엄마는 자신의 미덥지 못한 기억 때문에 기억해야 할 물건들을 무조건 높은 곳에 두는 버릇이 생기셨단다. 그 엄마가 당시 공시생이었던 다은이 취업을 하면 사신으라고 마련해 두셨다던 신발 값, 바로 그 돈은 이제  '과거'와의 이별에 주저하던 다은의 등을 기꺼이 떠민다. 

병으로 인해 맛을 못느끼던 엄마가 만들어 차마 먹을 수 없었던 엄마의 김치, 그 김치를 먹고 배탈이 나듯, 8년간의 젊음을 함께 했던 취준 생활을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보낸다. 

by meditator 2019. 11. 2. 20:14

이윤정 피디가 돌아왔다. 10월 12일 첫 선을 보인 <모두의 거짓말>에 대한 지금으로써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는 이게 아닐까. 일찌기 풋풋한 젊음의 시대을 가장 열정적으로 그려낸 <태릉 선수촌>, <커피 프린스 1호점>으로 청춘 로코물의 대명사가 되었던 이윤정 피디, <골든 타임>을 끝으로 mbc 시대를 종료한 후 tvn으로 이적, <치즈 인더 트랩>으로 다시 한번 이윤정 청춘 월드의 건재함을 알렸다.

하지만 2017년 이윤정 피디가 들고 온 작품은 뜻밖에도 진실을 향한 탐사 보도 고난기를 담은 <아르곤>, 이를 통해 이윤정 월드는 질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그리고 이어 이제 2019년 ocn을 통해 다시 한번 장르물 <모두의 거짓말>로 돌아왔다.

 

 

가려진 진실, 떠오르는 음모 
대기업 족벌 경영 체제 철폐를 주장하던 청렴한 국회의원 김승철(김종수 분)을 아버지로 둔 김서희(이유영 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남편은 아버지가 그토록 주장하던 재벌가 JQ의 외아들 정상훈(이준혁 분)이었다.

1회 오프닝과 함께 한 여성이 건물 옥상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이 알려지자 자신의 방에서 자해에 가까운 몸부림을 치던 상훈은 김승철을 찾아가 다그친다. 그녀의 죽음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지 않냐고. 도대체 그녀를 희생해서라도 얻고자 하는게 무엇이냐고.  '진실'을 밝히라고. 그러지 않으면 자기가 나서서 이 모든 것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그리고 뛰쳐나온 상훈, 방문 앞에서 그 모든 것을 듣고 있던 김서희와 마주친다. 김서희는 아버지가 던진 책에 맞아 피흘리는 상훈을 걱정하지만 상훈은 아내를 외면한 채 떠나버린다. 

이 장면에서 떠오른 건 '위선'이다. 청렴한 정치인으로 존경받던 김승철이 한 여성을 희생시켜가면서도 지키려 했던 '진실'을 무엇일까에 대해 시청자들은 의문을 가지며 드라마를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의문도 잠시, 외딴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김승철 의원은 유명을 달리하고, 김승철 의원과 싸우고 나선 정상훈은 소식이 끊긴다. 

그런데 김승철 의원이 죽자마자 소속당에서는 김승철 의원 지역구에 딸인 김서희를 내세우려 한다. 그곳에 세워질 JQ의 신재생 에너지 사업 관련 죽은 김승철 의원의 딸이자 JQ의 며느리인 김서희가 가장 적절한 인물이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사업과 무관하게 독일에서 살던 남편을 따라 살다 이제 까페나 운영하는 김서희에게 '정치 입문'이란 날벼락같은 일, 그런데 뜻밖에도 어머니가 죽은 아버지를 물어뜯으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 길'을 도모해야 한다며 김서희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려 한다. 그럼에도 선뜻 결정하지 못한 김서희 앞에 남편의 잘린 손에 이어, 그 손을 자르는 영상과 함께 국회의원 출마를 협박하는 영상이 도착한다. 

 

 

어떻게든 남편을 찾으려는 김서희, 그런 서희의 사력을 다한 고군분투에 힘을 더하는 건, 아픈 어머니를 위해 서울 생활을 접으려하는 광수대 경위 조태식(이민기 분)과 그의 팀원들이다.  우발적 사고사로 접으려 했던 김승철 의원의 교통 사고, 하지만 쉽게 덮으려 했던 사건이 자꾸 꼬리를 드러내며 귀촌하려는 조태식의 등덜미를 나꿔챈다. 사고 차량은 하루 만에 폐차 처분되고, 차 안에 있었다던 블랙 박스는 사라졌다. 현장에서는 그 누군가의 스키드 마크가 의도적으로 제거되었다. 사고인줄 알았던 사건이 자꾸 의도된 살인 사건으로 몸집을 드러낸다. 거기에 당일날 죽은 김의원과 말다툼을 벌였다던 정상훈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잘린 손이 김의원의 추모식 당일 날 광장에 놓여진다. 조태식이 발을 빼려하면 할수록 사건이 그를 잡아끈다. 

<아르곤>과 <모두의 거짓말>은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아르곤>은 HBC에 남은 유일한 탐사 보도 프로그램, 자극적인 낚시성 기사와 가짜 뉴스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진실이 산화되는 것'을 막는 마지막 보호막이 되고자 애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반면, <모두의 거짓말>은 제목에서부터 보여지듯이 김승철 의원의 죽음과 정상훈의 실종이라는 사건을 배경으로 그 속에 담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광수대 조태식 경위와 그의 동료들, 그리고 본의 아니게 국회의원이 되어야 할 김서희의 이야기이다. 

<아르곤>, 그리고 <모두의 거짓말>
두 작품 모두 '가짜'의 범람이다. 각자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개인적 이해 관계를 위해 편의적으로 조작되거나 사라지는 뉴스라는 가짜와 싸우는 이야기가 <아르곤>이라면,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청렴한 국회의원, 그런 그가 자신의 지역구에 유치한 JQ의 신재생 에너지 사업의 커넥션이라는 정경 유착의 토대 위에 얽혀진 이해 관계가 만들어낸 '가짜'를 향해 연대한 김서희와 조태식이 다가간다. 

그리고 그곳엔 '우직'한 한 사람이 있다. 이제는 그의 이름 앞에 '고'라는 안타까운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 김주혁이 분했던, '사실'을 통하지 않고서는 진실을 향해 갈 수 없다는 기자 겸 앵커, 아르곤의 팀장 김백진이 있다. 아내가 죽은 순간에도 '생방송'을 떠날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을 던져 '아르곤'을, '진실을 향한 탐사 보도'를 살려내기 위해 8부작의 시간동안 '참언론'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모두의 거짓말>에는 조태식이 있다. 물론 싸이코라 불릴 정도로 완벽주의인 김백진과는 결을 달리한다. 한때는 똑똑하고 촉도 좋고 몸도 잘 쓰던 조태식은 이제 시골 파출소가 유일한 꿈이 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건'이, 한때 똑똑하고 촉도 좋은 조태식을 소환한다. '진실'이 가려지는 장막 속에서 여전한 촉을 빛내며 그곳을 더듬어 어느덧 사건의 중심에 선다. 

그런 우직한 진실주의자와 함께 뛰는 '성장'하는 여성들이 있다. 지방 시사 주간지에서 전전하다 해고된 기자들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특채된 '용병', 당연히 기존의 아르곤 팀 동료들에게 '굴러온 돌'인 이연화(천우희 분), 스물 아홉 해 별볼일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온몸으로 굴러 살아온 그녀의 '호기심'어린 열정이 아르곤의 굴러온 돌에서 어엿한 기자 이연화로 그녀를 성장시킨다. 

 

 

그런가 하면 그녀가 잘 한 것이라고는 JQ의 며느리가 된 것 밖에는 없다는 아버지의 이름값에는 한없이 부족했던 김서희, 하지만 그런 그녀를 그 누구보다 아껴주었던 아버지, 비록 함께 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그의 이름 앞에 무장해제 되어버리는 김서희가 남편을 찾기 위해 국회의원이란 이름값을 기꺼이 받아든다. 그리고 남편을 찾아, 아버지의 죽음 그 진실을 향해 뛰어든다. 

그리고, 조태식의 명실상부 오른 팔 열혈 형사 강진경(김시은 분)도 빼놓을 순 없다. 육상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으로 머리로 하는 건 좀 부족해도 몸으로 하는 건 자신있다는 강형사는 첫 발령을 받았던 대구서 서장의 조카를 뺑소니범으로 잡은 이래 예의 '단무지'적인 마인드로 달려드는 모습에서 <아르곤>의 이연화가 오버랩된다.

일찌기 청춘 로코의 명장답게 이윤정 피디는 장르물이지만 특유의 정서적인 색감으로 각 씬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낸다. 거기에 각 인물의 캐릭터가 돋보이는 연출 방식으로 단 2회만에 주인공들의 매력을 드러내 보인다. 한없이 무력하고 연약한 듯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할 것같은 김서희, 나른한 퇴직 형사의 분위기를 보이지만 순간순간 변하는 눈빛에서 여전한 촉을 드러내보이는 조태식, 그리고 단 한 씬으로도 캐릭터가 보여지는 등장인물 군상들이 과연 앞으로 어떤 갈등과 조합을 이뤄나갈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비록 시청률은 부진했지만 <아르곤>은 8부의 시간동안 그 어떤 작품보다 '언론'이 가야 할 '진실'에 대해 혜안을 보여주었다. <타인은 지옥이다>의 바톤을 이어받은 <모두의 거짓말> 역시 첫 술에 배부르진 않았다. 그래도 첫 회 1.375%에 이어 2회 2.163%로 두 배에 가까운 상승으로 '위선'을 뚫고 진실을 향해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by meditator 2019. 10. 14. 17:37

'작년에 왔던~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무안하지만 2019년에 다시 찾아온 kbs2 드라마 스페셜에 걸맞는 주제곡은 이게 아닐까 싶다. 올해도, 다행히도 드라마 스페셜은 다시 찾아왔다. 금요일 밤 11시, 새롭게  '드라마 대전'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 자리 끼어들어 10편의 단막극이 돌아왔다. 

 

 

9월 27일부터 <집우집주>, <웬 아이가 보았네> 두 편의 단막극이 방영되었다. 문보현 드라마 센터장의 각오처럼 '경제 논리로는 매년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공영 방송으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단막극의 정신'을 수호하기 위해 올해도 찾아온 드라마 스페셜, 그 서막을 연 2편은 2019년의 현실을 담아내려 애쓴다. 

2019년의 현실
드라마 스페셜의 오프닝을 연 <집우 집주>는 2019년을 살아가는 젊은이라면 그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집'의 문제를 다룬다. 중소 건축 사무소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수아(이주영 분)의 일은 '집을 꾸며주는 것'이다. 다 만들어진 집을 돋보이게 해줄 소품 선택에 있어 남다른 감각을 자랑하는 그녀지만 정작 그녀가 가장 가지고 싶어하는 빈티지한 턴테이블을 들여놓고 싶은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나마 그녀만의 감각으로 구차하지 않게 지냈던 공간마저 인상된 전세금으로 인해 비워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렇게 드라마는 엄연한 직장인임에도 자신이 꿈꾸는 집을 마련하기는 커녕 가지고 있는 돈으로 마땅한 전셋집조차 마련하기 힘든 청춘에 주목한다. 더더욱 그녀를 초라하게 만드는 건 엘리베이터도 없이 서민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사는 부모들이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겨우 마련한 집에 아버지는 지금도 남들이 버린 가구를 주워와 고쳐 쓰고 어머니는 빠듯한 생활비에 보태느라 남의 집 파출부 일을 나가는 형편이다. 

 

 

그런가 하면, 두번 째 작품인 <웬 아이가 보았네>는 시골 마을에 살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름은 오동자(김수인 분), 하지만 친구들은 동자를 똥간이라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동자가 할아버지와 사는 집은 허구헌 날 술에 절어 사는 할아버지로 인해 술병이 나뒹구는 쓰레기장과도 같다. 그래도 동자는 술에 취해 쓰러지다시피 잠들어 버린 할아버지가 혹시나 숨이 끊어지는 건 아닐까 얼굴을 대본다. 냉장고 속에 굴러다니는 한 초코파이 한 입으로 끼니를 때운 채 학교로 향하는 동자, 국가에서 나눠주는 쌀을 굳이 돈으로 받겠다고 고집한 동자가 꼬깃꼬깃한 돈으로 하고 싶은 건, 최근 소식이 끊어진 엄마를 찾아가려 한 것이다. 

그런 동자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동자만의 아지트가 있다. 산 속 외딴 빈 집, 그곳에서 동자는 엄마에 대한 유일한 기억을 느끼게 해주는 라디오를 듣는다. 바로 그 동자의 아지트에 들이닥친 불청객, 아니 그 집의 주인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 '주인 아저씨'가 좀 이상하다. 분명 시커먼 옷에 커다란 덩치의 아저씨인데 집을 꾸민 '갬성'이 어쩐지 '여성스럽다', 심지어 동자을 보고 보이는 반응조차도. 이렇게 2화 <웬 아이가 보았네>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산속으로 숨어든 양순호(태항호 분)와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 오동자를 만나게 한다. 동화 <거인의 집>을 모티브로 했다는 드라마는 '거인'이 2019년의 트렌스젠더가 되고픈 남자가 되며, 그의 '모성성'을 불러 일으키며 '의사 가족'을 잠시나마 꾸려낸다. 

'동화'로 받은 현실
다시 집을 구해야 할 처지에 놓인 수아, 그런 그녀에게 그녀의 남자 친구는 이 기회에 아예 '살림을 합칠 것', 즉 청혼을 한다. 하지만 오갈 곳조차 없어뵈던 남자 친구 유찬((김진엽 분)이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라는 게 상견레 자리에서 드러나고 초라한 자신의 집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진 수아는 자신의 집을 소개하는 대신 자신에게 인테리어를 부탁했던 친구의 멋진 아파트를 자신의 집이라 속이기에 이른다. 

하지만 수아의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 아버지, 그런 수아를 이해하지 못한 남자 친구 덕분에 역설적으로 수아는 자신이 가졌던 '집'에 대한 컴플렉스를 되돌아 보게 된다.  가정과 연인 관계조차 해체될 위기, 뜻밖에도 수아를 구제한 건 그녀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신혼집을 꾸미려 했던 친구, 경찰을 불러도 할 말이 없었던 친구 집을 빌려서 벌였던 남자 친구와의 상견례 자리, 하지만 친구는 수아에 대한 봉변 대신, 마치 <안나 까레리나>의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그 문구처럼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던 자신의 헛된 욕망, 그 실체를 고백한다. 그리고 으리으리한 집으로 그녀를 위축시켰던 남자 친구도 알고보니 그 '으리으리한 부'의 허울을 벗어던졌던 것.  

그렇게 <집우 집주>는 1019년에 '집'으로 인해 고통받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차이나는 '집'따위는 무시할 수 있는 강단있는 젊음의 순박한 '동화' 버전 '로코'로 마무리짓는다. 

 

 

<웬 아이가 보았네>는 조금 더 '환타지'적이다. 수술을 통해 순호에서 순이가 될 날 만을 학수고대하던 남자로 잘못태어난 여자 순호 씨, 그는 자신의 집에 쳐들어와 자신의 '여성스러움'을 볼모로 삼고 엄마를 찾아달라는 동자와 잠시나마 '모녀'의 정을 나눈다. 엄마처럼 만두를 빚고, 동자에게 생선을 발라먹이고, 생리를 시작한 동자에게 파티를 열어주고 걸맞는 속옷을 준비해 주고자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속사정이야 영락없는 엄마와 딸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영락없는 아동 성추행, 결국 순호의 집에 들이닥친 이장과 동네 사람들 앞에서 순호의 비밀이 드러나고 만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런 비극적 상황을 '환타지적 동화'로 응답한다. 순호와 함께 엄마를 찾아갔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던 동자의 엄마, 그 엄마를 동자를 떠난 순호가 찾아간다. 그리고 여자가 될 날 만을 기다리며 모았던 돈으로 엄마의 빛을 갚아주고 순호는 '진정한 여성'으로서의 추억을 기억하며 떠난다. 그리고 순호의 빈 자리에 순호가 갚아준 빛으로 자유로워진 엄마가 순호가 마련해준 하얀 원피를 입고 동자를 찾아온다. 

가택 침입인 줄 알았더니 자신과 다르지 않게 신분 상승의 에스컬레이터에서 스스로 내려온 친구, 계층 차이때문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결혼인가 싶었더니 스스로 뛰쳐나온 남자 친구, 엘리베이터도 없이 온수도 제대로 안나오는 아파트인가 싶었는데 그래도 화목한 가정, 그렇게 <집우 집주>는 예의 드라마적인 환타지로 2019년에 집없어 서러운 젊음에 화답한다.  수아는 드라마의 처음과 형편은 달라진 것 없지만 대신 '마음만은 부자'가 되었다. 

결손 조손 가정의 학대받는 아이 동자는 '엄마' 같은 아저씨를 만나 '성추행' 대신 처음으로 따스한 가정과 모성의 세례를 받는다. 심지어 그 아저씨는 자신이 가진 것을 다 해서 동자에게 엄마도 찾아준다. 

<집우 집주>나, <웬 아이가 보았네>는 2019년의 현실에 감히 칼을 대지 않는다. 대신 그 현실을 살아가며 벼렸던 칼날을 칼집에 꼿아주고, 풍선을 들려준다.  그리고 잠시나마 풍선을 들고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로 함께 산책을 하자며 현실의 고통을 어루만져준다. 드라마다운 상투적인 해법, 하지만 어쩌면 지금까지  kbs2 드라마 스페셜이 가장 능숙하게 해왔던 방식이다. 

by meditator 2019. 10. 5. 23:47

이번에도 '역시'다. 김용수 감독의 <달리는 조사관>은 회를 거듭할 수록 이야기의 밀도는 진해지고, 미장션은 더욱 예술적이어지지만, 역설적으로 시청률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작과 달리, 동시간대 종편의 <우아한 가>가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치고나가며 시청자청의 이반이 심해지고, 거기에 감각적이면서도 '이성적'인 김용수 감독의 연출 방식이 여전히 이 시대엔 낯선듯하다. 그럼에도 3,4회 <달리는 조사관>이 보여준 이야기는 이 시대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인권'의 실마리를 풀어준다. 

 

 

인권, 그 당연하고도 위협적인 화두의 딜레마 
인권,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 '사전'은 말한다.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건, 장애인이건 아니건, 여자건 남자건, 외국인이건 아니건 사람은 누구나 누려야 할 '인간적'인 권리가 있다. '하늘'로 부터 부여받은 인간적 권리이다. 하지만 '인권'이 이 인간적 권리가 중요하게 강조된다는 점은 늘 어느 사회에서나 각 사회가 지니고 있는 여러 '편견'으로 인해 인간적 권리들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조사관>의 배경이 되는 국가 인권 증진위원회는 바로 이런 '위협받고 있는 인권'을 지켜내기 위해 일을 하는 곳이다. 

2019년 소오소관 주점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주인이 칼에 찔려 사망한 것. 이를 조사한 경찰은 이 주점에서 일하던 지순구(장정연 분)가 외국인 노동자 나뎃 쿠미(스잘 분)과 함께 밀린 임금 50만원 받으러 갔다가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수감중이던 나뎃은 자신의 옷에 '나는 사장을 죽이지 않았다'라 쓰고 스스로 목을 매 죽음으로 자신의 무죄를 호소했다. 그리고 나뎃의 형  사와디 쿠미야가 인권 증진 위원회(이하 인권위)를 찾아와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 호소한다. 
그리고 지순구의 변호사인 대형 로펌 '썬앤문'의 오태문((심지호 분)가 등장해 경찰이 외국인 노동자 나뎃, 그리고 경계성 지능장애인 지순구를 '임의 동행'해 장시간 심문하여 경찰의 시나리오에 맞춰 '자백'을 받아냈다며 무죄를 주장한다. 

하지만 인권위는 의견이 갈린다. 인권위가 할 수 있는 거, 해야 하는 거는 '조사'다. 그러나 사건의 성격상 경찰의 무리한 강압적 수사를 밝히기 위해서는 애초의 소오소관 주점 살인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재조사'해야 하지만 그건 결국 인권위의 영역을 넘어선 '수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의 성격에 맞게 '조사'만 해야 한다는 한윤서(이요원 분)와 예의 열혈 검사 출신답게 '수사'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배홍태(최귀화 분)는 서로 다른 의견으로 티격캐격하지만 결국 '사건'의 진실을 향해 한 발 한 발 들어서고 만다. 

 

 

편견의 공동 정범들 
여기서 <달리는 조사관>이 주목하고자 하는 건 바로, 편견이다. 경찰들은 외국인 노동자와 경계성 지능 장애인이 범죄 피의자가 되어 왔을 때 보여준 편견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런 '관습적 편견'에서 한 발 나아간다. 인권위에 '조사'를 받으러 온 경찰은 외려 반박한다. 과연 경찰이 그렇게 '편견'만으로 수사했겠냐고. 조사 과정에서 지순구는 경찰이 간과했던 '소화기'를 언급하며 범인만이 아는 현장의 상황을 '자백'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 '편견'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범인만이 아는 현장의 상황이란 '자백'에 대한 편견이다. 하지만 인권위 조사관들은 현장과 조사한 내용을 보며 이 '자백'한 내용의 헛점을 찾아들어간다. 그리고 결국 동네 주민의 증언을 통해 사건 당일 나뎃은 지순구와 함께 술집에 간 것이 아니라 집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밝혀낸다. 그렇지만 현장에 있었던 족적은 2명의 것. 결국 지순구와 함께 술집을 찾은 건 지순구 고시원에 지내던 고시생 형이었다. 

그러나, 고시 1차 합격을 했다는 형은 '고시'라는 사회적 관문을 통과했다는 이유만으로 피의자의 그물에서 벗어났다. 더구나 지순구의 변호사는 나뎃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대신, 나뎃을 재물삼아 지순구의 '무죄'를 주장하며 자신의 사건 수임 성과만을 노린다. 결국 조사관들은 그 '고시 1차 합격'이라는 허울의 실체를 밝혀낸다. 사실은 백수였지만 남들한테 그럴 듯해 보이기 위해 '고시생'이라는 겉치레로 자신을 치장했던 것. 그리고 그 '고시생'보다는 당연히 '외국인 노동자'가 더 범죄 피의자로 그럴 듯해 보였기에 수사는 '진실' 보다는 그럴 듯한 '편견'의 색안경을 쓰고 진행되었던 것이다. 또한 경계성 지능 장애라는 장애 역시 변호사의 편의적인 사건 포장의 함정이 된다.  

'조사관'이라는 신분적 딜레마를 넘어 한윤서는 지순구에게 충고한다. 나뎃의 억울한 죽음을, 변호사의 그럴듯한 입에 발린 말에 넘어가 '무죄'라는 얄팍한 법의 그물을 피하는 비겁함에 대해. 그리고 수사를 할수 없는 한계를 넘어, 그럼에도 '나뎃'에게 행해졌던 부당한 겁박 수사에 대한 인권위의 입장을 밝히고. 비록 고시원 형과 함께 현장에 있었던 공동정범이지만 지순구에게 어떤 살인적 의도가 없었음에 대한 의견도 빼놓지 않는다. 

 

 

언뜻 평범한 살인 사건, 그러나 그 '평범한 사건' 속에 숨겨진 건 우리 사회를 잠식한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고, 또 역설적으로 '학벌'과 이제는 고착화 되어가는 '고시 합격자'라는 신분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는 '인간의 권리'를 존중한다고 늘 선언적으로 다짐한다. 하지만 사실은 '인간'에 대한 다종다양한 수식어의 함정에 빠져 있는지 드라마는 차근차근 폭로한다. 그러면서 한윤서의 입을 통해 묻는다. 우리 역시 '편견의 공동 정범'이 아니냐고. 

<달리는 조사관>를 채우는 건 '감각적'인 영상과 구도이다. 하지만 그 구도를 통해서 제작진이 진득하게 설득하는 건 우리의 굳어져 가는 사고의 양식이다. 이는 이미 김용수 감독의 전작 <아이언맨>에서 보여졌던 방식이다. 드라마를 채운 건 유려하고 감각적이고 심지어 서정적인 영상이었지만, 그것을 통해 드라마는 예리하게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관습적'인 사고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졌었다. 그리고 이제 <달리는 조사관> 역시 마찬가지다. 불편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해진 '사고 방식'에 대해 '질문'하는 '공간'을 연다. 그래서 그건 낯설고 어색하다. 바로 그 낯설고 어색함이 <달리는 조사관>의 딜레마이자, 매력이다. 

by meditator 2019. 9. 27. 16:33

ocn <미스터 기간제> 후속 <달리는 조사관>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용수가 돌아왔다'라고 하면 어떨까? <적도의 남자>,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이언맨>, <베이비 시터> 등 tv 드라마로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미장센'을 실험해냈던 주인공 김용수 연출, 하지만 그의 미적인 실험 정신은 '시청률'과 쉬이 화해하지 못한 채 장편 드라마에서 중편 드라마로, 그리고 단막극으로 입지가 좁아지더니, 소속된 kbs의 퇴사와 함께 포털에서 그의 약력도 사라졌다. 그런 그가 불현듯 ocn 장르물 <달리는 조사관>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시대와 화합하지 못한 '장인'이 사라지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든다. 

 

 

용수의 맛은 여전하다
김용수 연출을 정의하자면 여러가지 수식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우선할 수 있는 건 '영상 미학'이다. tv라는 화면의 본성, '보여주는 것'에 그 무엇보다 충실하다. '보여주는 것'을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연출', 역시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국가인권증진 위원회를 배경으로 한 위원회 조사관들의 활약을 그린 드라마 <달리는 조사관>, 이 위원회를 이끄는 위원장은 안경숙(오미희 분), 일반적으로 드라마 속 '위원회장'이 보여주는 권위적인 모습과 달리, 그녀는 알듯모를듯한 미소로 위원회 조사관들을 품어준다. 2화, 인권증진 위원회 과장인 김현석(장현성 분)이 현재 조사중인 사건에 자신의 형이 고위직으로 있는 회사가 관여되어 있자 위원장을 찾아와 '조사'에서 빠져야겠다는 결심을 알린다. 혹시나 있을 지도 모를 '오해'를 우려하여, 그런 김과장의 '고민'에 위원장은 그저 단 한 마디, '하던대로 하시라'며 그의 노파심을 접어두게 한다. 씬은 짧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 이후, 위원장은 위원장실의 창문을 연다. 여느 사무실과 다른 창호지 문으로 된 문이 줄지어 비껴 열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위원장의 모습은 '운신의 폭은 좁지만 그래도 정도의 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엿보게 해준다. 

이런 식이다. 언제나 그랬듯, 김용수 연출의 드라마는 이번에도 짧은 대사, 긴 여운의 화면을 통해 드라마를 풀어낸다. 등장 인물은 화면 옆으로 비껴서고, 그 나머지 화면의 채운 공간을 통해 그의 고뇌가 드리워진다. 막막한 하늘 아래 비껴 서있는 한윤서(이요원 분)의 모습에서 수사권은 없는 일개 인권증진 위원회(이하 인권위) 조사관의 고뇌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인공 한윤서, 그리고 본의 아니게 인권위로 좌천된 배홍태(최귀화 분)가 드리운 공간, 그들의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그대로 그들을 표현해 낸다. 

노랑과 연두로 화사하게 칠해진 ㄷ자형의 피해자가 살던 연립, 그 화사함의 공간 안에서 노조 간부였던 피해자 강윤오는 고립되고, 감금되었으며, 죽음에 이르렀다. 화사한 세상과 그 세상의 배신으로 인해 어두운 공간 속에 갇힌 피해자의 절박함의 대비는 그렇게 색감을 통해 더욱더 대비되어 보여지는 식이다. 그렇게 드라마 속 공간 어느 한 곳 허투루 보여지지 않고, 그 자체로 드라마 속 이야기의 일부분이 된다. 

거기에 <달리는 조사관>만의 감각적인 '데코레이션'이 더해진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대화'를 여기에 의존하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카톡'과 '문자'의 대화들이 자막으로 화면을 채우며 극의 일부분이 된다. 

그리고, 그런 화면의 긴장감을 더해주는 건, 이미 <적도의 남자>에서 김용수 연출과 함께 했던 박성진  음악 감독의 ost이다. 자칫 '미장센' 위주의 극이 처질 수 있는 드라마를 때론 '아라비안 나이트'의 ost같은 이국적인 음색으로, 혹은 앞서 <손  the guest>에서 등장한 바 있던 '국악 버전'의 ost로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달리는 조사관>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내며 극의 어엿한 주인공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달리라는데 아직 '슬로우 스타터'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여전히 '장인 정신'이 듬뿍 담긴 '김용수 연출'의 미장센의 묘미가 서사의 전개와 적절하게 맞물리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수다. 시공북스를 통해 출간된 송시우 작가의 장르 문학인 동명의 소설 <달리는 조사관>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 만큼, 서사적 재미는 이미 보장된 상황, 하지만 아직 드라마는 "달리는 조사관'이라지만 '미장센'의 마력만큼 '기동성있는 서사'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냈다 보여지지 않는다. 

첫 회 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문을 연 드라마,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건 소지혜가 직접 인권위를 찾아와 고발한 성추행 사건이다. 노조 동료 이은율이 그녀의 연인이자 동료였던 강윤오의 장례식  과정에서 그녀를 성추행했다는 고발로 시작된 사건, 성추행을 당했다는 소지혜와 결백을 주장하는 이은율의 진실 게임으로 시작된 사건은 배홍태와 한윤서의 조사 과정을 통해 뜻밖의 '진실'을 드러내 보인다. 

차기 노조 지부장으로 유력시되었던 강윤오가 재미로 올렸던 웹툰 게임, 하지만 그 자신을 조롱하는 웹툰에 그룹  회장이 '대노'하고 이에 사측은 그를 한직에 발령함은 물론, 그와 가족을 협박하며 '퇴사'를 종용하고, 그래도 그가 버티자 '손해 배상'청구 등 갖은 방법으로 그를 괴롭힌다. 결국 강윤오는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고, 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강윤오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에서 한통속이었던 경찰을 믿을 수 없었던 동료와 연인 이은율과 소지혜는 자신들의 성추행 사건을 '조작'하여 '인권위'를 찾게 된 것. 

성추행의 진실을 찾아가던 사건은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말살된 인권을 발견하게 되고, 거짓 증언과 진실 사이에서, 그리고 공개와 비공개라는 회의 형식 사이에서 고민하던 인권위 사람들은 '보호받아야 할 '인권의 차원에서 소지혜와 이은율이 알리고자 한 '진실'의 장을 열어준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극적인 사건,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달리는 조사관>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이야기를 풀어낸다. 미장센은 화려하고, 서사는 흥미진진하지만 어쩐지 그 모든 것들이 옥상옥인양 서로 긴장감있게 풀어내지지 않는 듯하다. 김용수 연출의 장르와 달려야 할 장르의 충돌인지, 아직은 연출의 진가가 출발이 늦은 건지, 조금은 더 지켜보아야 할 지점이다. 화면은 충분히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그 화면 속의 인물들이 아직을 무르익지 않는다. <베이비 시터>,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이언맨>  등에서 지적된 바 있는 '영상 미학'은 충분 조건이지만, 배우들이 연기 합이나 구성에서는  매우 '너그러운' 연출이 이번에도 드라마의 발목을 잡을까 노파심이 든다.  부디 서사와 미장센의 호흡을 제대로 맞춰 장르물의 새 장을 열수 있기를, 그래서 김용수 연출을 오래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기대로 희망을 더해본다. 

by meditator 2019. 9. 21. 15:45

이젠 그러려니 한다. 추석이 되면 특선이라는 명목으로 영화들이 주요 시간대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 말이다. 그래도 한 해에 제법 흥행을 했던 영화들이니 괜히 그런 영화들 가운데 정규 프로그램을 편성하면 '피보기 십상'이다. 심지어 특집 드라마라니. 그런데 그 무모한 도전을 kbs2가 했다. 9월 11일, 12일 양 일간에 걸쳐 밤 10부터 방영된 특별 기획 드라마 <생일 편지>가 그 주인공이다. 1,2회 2.8%, 3회 0.9%, 4회 1,4%에 불과했다. 드라마가 재미없어서? 아니 그보다는 동시간대 방영한 '특선 영화'에 대한 호불호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마치 아스팔트 사이에 피어난 민들레처럼 꿋꿋하게 <생일 편지>는 시청률에 목맨 드라마들이 해오지 않았던 이야기를 곡진하게 풀어냈다. 

 

 

한 장의 편지로 부터 시작된 옛 사랑 
시작은 한 장의 편지이다. 노년의 김무길(이무송 분) 씨가 꿈에도 잊지못한 연인 여일해에게서 생일을 축하한다는 편지가 도착한 것. 드라마는 그렇게 뒤늦게 도착한 일해의 편지를 계기로 묻어두었던 무길의 기억을, 잊혀진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소환한다.

김무길(송건희 분), 여일해, 두 사람은 한 동네네서 같은 날 태어난 친구이자, 연인이었다. '혼인'을 약속했지만, 일해(조수민 분)는 일본에 의해 정신대로 끌려가 버리며 두 사람이 꿈꿨던 '미래'의 약속은 깨져버렸다. 하지만 무길은 일해가 다시 돌아올 것이란 약속을 굳게 믿으며 꿋꿋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동네 친구가 전해준 소식, 일해가 히로시마 일본 술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걸 얼핏 봤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알게 된 무길은 어떻게 해서라도 히로시마에 가서 일해를 데려오고 싶다. 그런데 마침 무길의 집에 통보된 무길 형의 히로시마 징용 통지서, 집안의 장남이 적국 일본으로 끌려가야 한다는 소식에 어머니는 혼비백산, 도망이라도 가라고 다그치시는데, 무길이 장남인 형 대신에 자신이 그곳에 가겠다며 나선다. 무길의 생각은 형 대신 히로시마에 가서 일해를 구해 돌아오겠다는 야무진 결심이다. 

 

 

결국 히로시마에 가게 된 무길, 하지만 그의 결심과는 다르게 전쟁 통의 일본에서 '징용'으로 하는 일은 또 다른 생사의 전쟁터에 그를 던져넣게 된 것이다. 맨 몸으로 험란한 현장에서 일을 해야하는 한국인들은 배를 곯아서, 혹은 빈번한 사고로 인해 생과 사의 기로에 놓인다.

그런 가운데에도 무길은 어떻게 해서든 일해를 찾으려 애쓰고 결국 그는 눈물겨운 노력 끝에 일해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임에도 일해는 오랜만에 만난 무길 앞에 냉정하게 돌아선다. 정신대로 잡혀갔던 자신의 전력으로 인해 연인인 무길을 마주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그러나 무길은 '네가 어떤 일을 겪었어도 괜찮다'며 일해의 마음을 어루만져 돌려세운다. 

마음을 돌린 일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희망에 부푼 것도 잠시, 히로시마에 미군이 투하한 원자폭탄이 터지며 도시 전체가 처참하게 무너져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다. 무길도, 일해도 다치고, 원자폭탄의 분진에 노출된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아직은 히로시마을 덮친 원자폭탄의 비극을 깨닫지 못한다. 뒤늦게서야 무길과 화해한 함덕이 그들 옆에서 죽어갔어도. 

겨우 알게 된 귀향선의 배편마저 '사기'로 탈 수 없게 된 상황, 무길은 불덩이같은 일해라도 태워달라며 사정을 해 겨우 일해만을 배에 태운다. 하지만 참사의 현장에서 도움의 손길을 준 덕분에 운좋게 배에 탄 무길과 무길이 배에 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해가 배에서 내리며 다시 한번 비극적으로 엇갈린다. 

그리고 무길이 돌아온 고향, 그런데 고향에는 무길의 아내가 그를 기다린다. 만삭의 배를 안고서. 무길이 없는 동안 그의 아이를 가졌다며 그를 내내 흠모했던 함덕의 여동생 영금(김이경 분)이 집안의 며느리 역할을 해왔던 것. 한시라도 일해를 잊지못하던 무길은 당연히 영금을 외면하다. 그러나 '겁탈'을 당했던 수모를 무길을 핑계로 넘겼던 영금은 스스로 목을 매겠다고 나서고, 무길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영금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그리고 뒤늦게 돌아온 일해는 무길의 아이라며 자신의 아이를 내보이는 영금 앞에 뒤돌아 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무길은 6.25 전쟁의 피난길에서 폭격을 맞고 죽어가는 영금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된다. 

 

 

뒤늦은 두 연인의 해후가 말한 비극적 역사 
무길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영금의 아들이 차라리 자신처럼 원폭을 당한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서, 그리고 아들을, 그 아들이 남긴 손녀를 자신의 가족처럼 여기며 평생을 고향에서 살아왔다. 결국 그 역시도 피해갈 수 없는 원폭의 휴유증으로 이제 노년을 투병의 나날로 보내고 있는 즈음, 뒤늦게 도착한 일해로 부터 온 생일 편지 한 장이 그로 하여금 포기했던 연인과의 해후에 맘을 졸이도록 만든다. 

4부작으로 구성된 짧은 드라마는 원폭의 후유증으로 생의 기로에 선 늙은 김무길이 받은 일해의 생일 편지로 부터 그녀를 다시 찾기 위한 무길과 그의 손녀  재연(전소민 분)과 그의 연인 구기웅(김경남 분)의 노력을 씨줄로, 그리고 그 씨줄의 행간 행간에 순애보적인 무길과 일해의 사랑을 직조하며, 일제 식민지 하 정신대, 징용, 히로시마 원폭, 그리고 6.25라는 역사적 비극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같은 날 태어나 숙명처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던 무길과 일해, 하지만 우리 현대사를 할퀴고 간 역사적 비극들은 이 청춘 남녀의 사랑을 지켜내지 못했다. 뒤늦게서야 일해가 요양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무길의 의붓 손녀 재연이 일해에게 달려가지만, 일해는 이젠 무길도, 그 시절의 비극도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겨우 일해를 달래 데리고 왔지만, 이젠 쓰러진 무길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겨우, 흐릿한 의식 속에서 주름살 투성이의 손을 마주잡은 무길과 일해, 그들의 해후는 너무 오래 걸리고 늦었다.  

추석의 의미를 반문하게 되는 2019년의 명절,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우리의 비극적 현대사는 그 '가족'되기를 그토록 희망했던 두 연인에게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조차 빼앗고야 말았다. 추석이라서 더 안쓰러웠던 오랜 연인의 순애보, 비록 특선 영화같은 화려한 씨쥐도, 거창한 서사도 없지만, 잔잔하게 오랜 여운을 남긴 추석 특집 드라마이다. 



by meditator 2019. 9. 15. 16:43

겨레의 명절 추석이 다가온다. 농사를 지었던 시절, 한 해 농산물을 수확하는 절기는 일년 중 가장 풍성한 시절이다. 그 해의 수확물을 거둬들여 올해도 무사히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준데 대해 감사의 시간을 시간을 가지는 건 농경 사회의 가장 큰 '의식'이었다. 그렇게 농경 사회를 거친 세계 여러 나라들은 저마다의 '추수감사절' 행사를 치룬다. 그렇게 한 해 농산물의 수확을 기념했던 추석은 '산업 사회'에 들어서며 변모한다. 고향을 떠나 '산업'의 중심인 '도시'로 떠난 이들이 '추석'이라는 명절을 기회로 '고향'을 찾게 된 것이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가지만 '귀경 전쟁'이라 하여, 서울역 앞에 표를 사기 위해 밤을 새워 줄을 서던 시절은 바로 '산업 사회' 한국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4차 산업 혁명을 운운하는 시절이 된 2019년의 추석은 어떨까? 고향을 가더라도 차례만 지내고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역귀성 전쟁이 추석 당일부터 벌어지는 시절, 취업과 결혼의 통과 의례를 건너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은 피하고 싶은 번거로운 요식 해위가 되었다. 그래도 가족이 모일 수 있다면야 괜찮지만 '가족 해체'와 '일인 가구 증가'가 현실이 되어가는 시절에 명절의 분위기는 소외감을 에스컬레이션시키는 시끌벅적한 이벤트일 뿐이다. 바로 이 추석이라 더 외롭고 슬픈 이들, 드라마 속 인물 들 중에 누가 있을까?

 

  

차라리 그에게 고향가는 차 표 한 장을 
얼마전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한 종우에게 다가올 추석은 언감생심이다. 버스에서 내리다 자신을 치고 가는 승객때문에 노트북이 망가지고 그 수리비 등으로 인해 언제 헐릴 지 모를 재개발 지구의 19만원 짜리 고시원에 들어가 있는 처지, 선배의 도움으로 겨우 회사라고 들어갔지만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 앞날이 보장되지 않은 '인턴', 심지어 대표인 선배는 도움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과거를 끄집어 내고, 실장이란 명칭의 직원은 디자이너 유정이 호감을 보이는 종우를 사사건건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건, 바로 조금만 참자며 버티고 있는 고시원이다. 친절한데 묘하게 불편한  분위기의 주인 아줌마를 비롯하여, 306호, 313호의 동거인들, 그리고 하나 둘씩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져가는 사람들, 모처럼 취향이 같은 사람을 만나 반가워한 것도 잠시, 자신을 지켜보는 그의 시선이 어쩐지 따가운 304호 서문조(이동욱 분)까지. 아니 그저 그들이 보이는 불편한 분위기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방에 있어도 마음대로 핸드폰조차 통화할 수 없는 얇은 벽, 거기에 방안의 상태가 사라진 310의 불만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방에 들어온 거 같은 의심, 거기에 4층 불탄 여성 고시원 층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음, 그리고 동거인들이 나르는 이상한 짐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행동에서 풍겨나오는 '범죄'의 냄새, 그 모든 것들이 군대 시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종우의 예민한 신경을 건드린다. 그의 작품에 드러난, 아니 그에게 잠재되어 있는 도덕적 경계를 흔든다. 

비정규직 인턴, 그리고 개인적 공간조차 제대로 허용되지 않는 발도 제대로 뻗지 못하는 고시원에서의 삶, 이 시대 '가난한 청춘'의 자화상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바로 갑갑한 이 시대 젊음의 상황에 '고어'한 장르의 설정을 더하며 벼랑 끝으로 내몬다. 그렇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자기 삶의 벼랑으로 발을 내딛는 종우에게, '구원'의 동아줄은 없을까? 그래도 아직도 '귀경'이란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추석 명절', 종우에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차표 한 장의 기적이 일어났으면 어떨까? 그가 타고 올라왔던 그 고속버스를 타고, 종우를 노리며 조금씩 다가오는 고시원 사람들을 두고, 사사건건 그의 발목을 거는 회사 사람들을 두고 훌쩍 '추석'을 핑계로 고향으로 내려갈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다시 고향에 내려가 모처럼 어머니가 해주시는 따수운 밥 한 술을 뜨고, 자기 방에 벌러덩 누워, 생각해 보니 왜 내가 그 '지옥'에서 아둥바둥대야 하나, 이러고, 어차피 자신의 꿈이 소설가라면 굳이 그 지옥같은 타인들이 옭죄여오는 도시 생활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라며 돌아볼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제 아무리 종우 속에 내재된 폭력적 금단의 욕망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거기에 불을 지피는 '충분 조건'이 필요한 법, 추석 귀경 표 한 장이 그런 욕망의 제동 장치를 느슨하게 해줄 수 있었으면 종우의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러면 드라마가 안되긴 하겠지만, 대신 사람 하나, 아니 여럿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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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꼭 피를 나누어야 가족인가 
그래도 돌아갈 고향이 있는 종우에게 '선택'할 가능성이라도 있다. <왓쳐>의 영군이(서강준 분)는 돌아갈 곳조차 없는 천애고아이다. <왓쳐> 그 모든 것의 시작인 15년전의 그날, 영군의 눈 앞에서 엄마가 칼에 찔려 죽었다. 그리고 영군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증언했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영군은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랐지만 결국 다시 어머니가 돌아가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그때는 감옥에 있어도, 미워는 했지만 아버지가 있었다. 

그런 아버지 김재명이 15년만에 출소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 낯선 건지, 훌쩍 커버린 아들이 어색한 건지, 아니면 아내가 죽은 집에 돌아온 게 면구스러웠던건지 아버지는 거실에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웅크려 잠을 잤다. 그런 아버지에게 영군이 먼저 다가선다. 자신의 이름이 담김 핸드폰을 사드리며 전화 꼭 받으라며. 방에 들어가 제대로 이불덮고 자라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도 한다. 아버지 역시 다 큰 아들을 위해 밥을 짓고, 계란찜도 하고 푸짐하게 아침 상을 마련해 줬다. 아들의 운동화 끈도 묶어주며 아버지처럼 묶으면 절대 안풀어진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처럼, 아니 어머니보다 더 처절하게 손가락이 잘린 채 목욕탕에서 피투성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아버지는 영군을 지키기 위해 항소도 하지 않은 채 감옥에서 15년을 썪었다. 그리고 영군을 지키기 위해 출소했지만 결국 죽음을 당했다. 자신의 딸이 범죄자에게 손가락 절단을 당하자 그를 보복하기 위해 스스로 누군가의 손가락을 자르는 킬러가 된 거북이 장해룡에게도 가족은 지켜야 할 첫 번째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 아버지들은 결국 가족을 지키지 못한다. 

그런데 어디 꼭 피를 나누어야만 가족인가. 영군이 김재명이 아들이라는 걸 알고 도치광(한석규 분)은 그를 자신의 팀으로 불렀다. 그가 오상도에게 총을 발사한 이유 역시 영군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자신이 김재명에게 덮어씌운 범죄에 대한 죄책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16부 내내 도치광은 영군을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한태주(김현주 분)는 어떨까? 검사 시절 단독으로 맡은 첫 사건에 대한 의욕으로 어린 영군을 부추겨 증언하게 만들었던 검사 한태주, 하지만 그 후 그 사건에 대한 의혹을 가졌던 한태주는 손가락과 함께 남편도, 가정도, 자존감도 잃었다. 이제 비리 조사팀의 일원이 된 한태주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진실을 찾기 위해 언제든 누구와 '협잡'할 태세를 갖추었지만 영군이에게만큼은 오랜 빚이 있다. 영군의 손가락을 절단하려는 남편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먼저 자르라 애원할 만큼. 

거북이를 발견하고 그를 향해 돌진하는 영군을 도치광과 한태주는 말린다. <왓쳐>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이었다. 마치 아빠처럼, 엄마처럼 너는 그러지 말라며 영군을 부등켜 안은 도치광과 한태주, 하지만 이 '보호자'같은 두 사람과 영군은 드라마 내내 밥 한 끼도 나누지 못한다. 겨우겨우 이제 세상 천지 홀로 남은 영군이 걱정되어 찾아온 영군의 집에서 한태주와 조수연(박주희 분)만이 캔맥주를 나누었을 뿐. 

추석, 오갈 곳없이 어머니도 가고, 아버지마저 간 그 집에 덩그러니 남겨진 영군, 그렇다고 도치광이 집은 있다지만 어디 갈 곳이 있어보이진 않는다. 이제 남편 전화조차 차단해 버린 한태주라고 나을까. 가짜 남자 친구를 떨쳐버린 조수연은. 이럴 때 이들이 16회 내내 회식 한번 못해본 이 비리 수사팀이 영군이네 집에 모여 밥 한 끼라도 하면 어떨까 싶다. 뭐 꼭 추석 차례 상을 함께 차려야 가족인가. 피를 나눠야 가족인가. 마음 맞는 사람들끼지 따뜻한 밥 한끼라도 나누어 먹으면 그게 바로 2019년다운 추석 풍경이 아닐까. 모르는 사람끼리도 모여 밥을 먹는 '소셜 다이닝'도 하는데, 같이 부대끼로 수사한 한 팀인데, 굳이 홀로 긴 명절을 보낼 필요가 뭐 있겠는가. 이럴 때 한태주가 도와줬던 홍재식(정도원 분)의 아들이 소년원에서 출소라도 해서 함께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 싶다. 

by meditator 2019. 9. 13. 1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