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주친 현실이 녹록치 않을 지라도/ 불안과 좌절이 우리를 짖누를 지라도/ 이 역시 우리 삶의 일부라는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차곡차곡 담아냈습니다


제 19회 EBS 국제 다큐영화제,  EIDF 2022가 시작되었다. Pitch your dream, 다큐의 푸른 꿈을 찾아서 라는 슬로건으로 막을 연 영화제는 올해도 ebs 방송과 에무 시네마 등 전세계 유일의 온, 오프라인 페스티벌을 열었다. 

 

 

EIDF2022는 총 24개국 63개의 작품이 페스티벌 초이스, 컨템포러리 다큐 파노라마, 커넥티드, 클로즈업 아이콘, 단편 화첩 등 10개의 섹션을 통해 출품되었다. 8월 22일 <사라지는 유목민>을 시작으로 EBS에서는 낮과 밤 시간을 통해 방영되고, 상영관에서 직접 다양한 다큐 작품과 만날 수 있다. 또한 언제나 그렇듯 EBS가 마련한 'D - BOX''다운로드'를 통해 언제든 자유로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팬데믹의 영향으로 EIDF는 관객에게 제한된 방식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기지개를 켜고, 그간 말하기 조심스러웠던 꿈과 낭만을 다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위와 같은 취지로 시작된 영화제, 올해 개막작으로 상영된 작품은 8년 여의 제작 기간이 소요된 진화칭 감독의 <다크 레드 포레스트 Dark Red Forest>이다. 


 

티벳 고원의 비구니들 
다큐가 시작되면 카메라의 시선은 2017년 겨울 4000 M 높이의 티벳 고원으로 향한다. 이곳에 자리한 야칭스 수도원, 그곳에는 만 명이상의 비구니들이 정진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보이는 것은 겨울 벌판을 가득 메운 겨우 한 사람이 앉을 수 있을까 싶은 나무판자로 지어진 작은 임시 거처들이다. 바람이나 피할 수 있을까 싶은 이 작은 박스에서 야칭스 수도원 비구니들은 가장 추운 겨울의 100일 동안 '동안거'를 한다. 눈이 와 쌓일 정도가 돼도 이들의 '동안거'를 멈출 수는 없다. 추운 건 집뿐이 아니다. 야칭스 수도원 마당에서 진행되는 불경 공부 시간, 비닐 한 장만이 추위를 막는다. 

'수행의 목적은 여러분 의식의 강에 존재하는 증오와 탐욕을 멸하는 것입니다.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는 바로 마음으로 부터 얻어질 수 있습니다. 전생에 지은 '업보'는 우리 삶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


만 명의 비구니들이 모인 시간 앳된 어린 승려가 똑부러지게 불법을 읊는다. 티벳에서는 비구니가 되는 걸 숭고하게 생각한다. 이곳의 승려들은 대부분 이처럼 앳된 어린 시절에 이곳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평생을 보낸다. 

 

 

하지만 스승님을 맞이한 등이 굽은 노년의 비구니는 겸허하게 말한다. '제가 너무 더뎌 걱정입니다. 탐욕과 증오, 무지가 어디서 왔는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도요.'  한참 멋을 낼 나이의 젊은 비구니는 '반짝이는 불빛에 제 영혼이 빠져나갈 듯했습니다. 겨우 기도로 다시 제 영혼을 붙잡았습니다'라고 참회한다. 기도와 명상만이 아니다. 매년 6개월 동안 불경을 공부하고 시험을 치루고, 앞치마처럼 두른 포대가 구멍이 날 정도로 '오체투지'를 하는 강행군의 생활이 이어진다. 하지만 수행의 길은 멀다. 

파르라니 깍은 머리에 파랑, 노랑의 띠를 두른 비구니들이 말간 하늘 아래 나풀나풀 춤을 춘다. 그렇게 춤사위가 잦아든 광장에 나신의 육체가 놓여있다. '육탈'을 한 수행자들이다. '업보'의 고뇌에서 벗어난 이들, 그들의 육체를 기다리고 있는 건 티벳의 독수리들이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독수리 무리가 육체만 남은 수행자들을 덮칠 때, 그  한 켠에서 삶의 그림자를 짊어진 생존의 수행자들이 '독경'을 한다. 그저 '업보'가 잠시 머물던 곳, 육체는 그렇게 자신의 '업'을 다한다. 죽음의 순간은 이들에게 '업'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영광의 순간'이다. 

 

 

그렇게 극한의 수행으로 이어진 비구니들의 삶, 하지만 종교적 경건함과는 별개로 그들의 문화적 환경은 낙후되어 있다. 그들의 건강은 소변에 뜬 부유물의 모양과 빛깔로 점쳐진다. 처방은 티벳의 전통약이거나 불에 달군 쇠막대로 '지압'을 해주는 식이다. 길흉화복의 행방은 '점'에 달렸다. 죽은 자의 안식을 묻자, 예전에 불곰 한 마리를 죽여 산신에게 노여움을 탔을 것이라는 답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였을까, 이 지역에 들어온 사회주의 정부는 더는 이런 비구니의 존재를 허용치 않는다. 2017년, 그리고 2018년 겨율울 지나 이어진 다큐, 그런 가운데 중국 정부는 다음 해 여름까지 비구니들이 야칭스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링거를 맞으면서도 수행을 마다하지 않던 비구니들, 그럼에도 '스승님'은 그들에게 수행에 진심을 다하라 말씀하신다. 눈과 정신과 마음을 다해서, 코 위에 개미가 지나간다해도 한 눈 팔지 말고, 단, 정부 관계자가 중단을 요철할 때를 제외하고라고. 그 말씀의 정부가 이들에게 수행의 중단을 요구했다. 

수행의 진심을 묻던 비구니들이 이제 스승님께 호소한다. '떠나온 지 오래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모릅니다.' 이런 이들을 스승님은 안타까워하신다. 속세의 경험이 없는 이들이 자칫 세찬 강에 뿌려진 양의 배설물처럼 될까봐.

2019년 여름 거의 모든 비구니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동안거동안 그들이 머물던 판잣집은 해체하니 한 사람이 짊어질 분량의 짐일 뿐이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진화칭 감독이 찾아간 고원, '동안거'의 그 움막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여전히 그 짙은 붉은 수도복을 입고 머리를 민 비구니들이 소를 몰고,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반야, 초월적 지혜'가 무엇이죠? 스승님이 물었다. '그게.......' 젊은 비구니는 답을 하지 못했다. 불성을 지닌 존재는 무엇인가요? 다시 스승님이 물었다. '자신입니다', '그 자신은 어떤 겁니까?' '자아와 자신은 같나요?', 비구니는 복잡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시험을 못봤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그녀였었다. 그렇게 수행의 즉답을 하지도 못하고, 불경 시험도 못치던 그녀가, 여전히 붉은 수도복을 입고 그곳에 있었다. 

'삶이 예측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석가모니도 병을 앓고, 노화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제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고원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그들 역시 굶주리고 매에게 잡아먹힐까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비로소 만물을 연민의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세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지요.'


평생 이곳에서만 살아왔던 그녀가 이곳을 떠나라 하자 죽음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승님은 말렸다. 정부의 명령을 따르라 했다. 야칭스를 떠난 그녀, 동안거의 움막이 이제 집이 되었다. 그녀는 말한다. 평생 짙은 붉은 색 법복을 입은 채 수행자로서의 삶을 다할 거라고. 오랜 수행에도 닿을 수 없었던 마음의 진심을 모든 것을 다 잃은 후에야 얻을 수 있었다. 그곳에 여전히 '다크 레드 포레스트'가 있는 이유이다. 




by meditator 2022. 8. 23. 22:50

이제 우리 사회에서 부부가 '이혼'을 하는 경우, 가사 노동에 종사한 아내의 '역할'에 대해 당당하게 '법적'인 지분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가사 노동'에 대해 과연 우리 사회는 진정 정당한 '가치'를 인정하고 있을까? 이 질문은 외람되게도 '독립 운동'의 그늘에서 헌신적으로 뒷바라지의 역할을 자처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론으로 이어진다. 

 

 

광복절 77주년이다. 각 방송국마다 77주년을 기려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 가운데 kbs1을 통해 방영된 <광복절 특집 다큐 아내의 이름>이 눈에 띈다. 현재 '독립 운동가'로 서훈을 받은 선열들은 2만 여명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 중 '여성'들은 얼마나 될까? 2%도 안되는 채 200여 명이 안된다고 한다.

이런 안타까운 결과는 유교적이고 봉건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어 '활동'하기가 어려웠던 시대적 환경이 무엇보다 컸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이라고 해서 '독립'에의 '의지'가 없었을까? 단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 2만 여 명에 이르는 독립 운동 선열들이 활동하는 그 '그늘'에서 늘 '여성'들은 치열하게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회영, 신채호, 이상령은 알아도, 박자혜, 이은숙, 김우락이란 이름은 생소하다. 그간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활약상을 발굴해온 kbs가 광복절을 맞이하여 네 분의 여성 독립 운동가들, 그분들의 '이름'을 되찾아 주고자 한다. 

 

 

3.1운동에 앞장섰던 간호사, 신채호를 뒷바라지 
1895년에 양주에서 태어난 박자혜 여사는 어린 나이에 '궁녀'가 되었다. 몇몇 궁녀들과 함께 의술을 배울 기회를 얻은 여사는 이례적으로 일본인이 대부분이던 조선총독부 의원의 간호사가 되었다.

3.1 만세 운동이 일어나고  일제의 무력 진압으로 인한 사상자를 목도한 박자혜 여사는 조선총독부 병원에서 일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독립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결심에 따라 간호사들의 조직 '간우회'를 결성하는데 앞장서고 유인물 배포하는 한편, 만세 행렬에 적극 참여한다. 결국 '과격하고 언변이 능하며 총독부 의원, 간호사 등을 대상으로 독립 만세를 고창한' 혐의로 체포되고 만다. 풀려난 박자혜 여사는 베이징으로 망명했고 이곳에서 한 독립운동가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그녀의 나이 24세, 그녀의 남편은 39세의 신채호였다. 

하지만, 생활고는 이 부부를 떼어놓는다. 둘째 아이를 가진 박자혜는 고국으로 돌아와 조산원을 열었지만 신채호의 아내라는 이유로 '냉방에서 주린 창자를 쥐고 두 아이가 울고 있'는 가난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한 나석주 열사의 길잡이 노릇을 기꺼이 해냈다. 또한 뤼순 감옥에서 갇히게 된 남편의 옥바라지를 8년 동안 감내했다. 하지만 결국 36년 신채호 선생이 돌아가시고 '모든 희망이 끊어졌다'고 애통해하던 박자혜 여사는 뒤를 이어 44년 가난과 독립운동으로 얻은 지병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신다. 1990년에서야 정부는 '건국훈장 유족장'을 그녀에게 '추서했다. 

 

 

삯바느질로 모은 돈도 독립운동 자금으로 
서울 명동의 금싸라기 땅은 원래 이회영 집안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회영 일가의 6형제는 '병합'이 되자 그해 12월 망명길에 오른다. 1908년 19살의 나이로 22살의 나이차가 나는 이회영 선생과 혼인을 한 이은숙 여사 역시 한겨울 압록강을 건너 40여일만에 중국 지린성 류허현에 이르렀다. 이회영 선생 등이 이곳에 한일 자치기구 '경학사'를 만들고, 무장독립군 양성을 위한 '신흥 무관학교'를 세우는 과정에서 이은숙 여사와 동료 여성들은 이들의 뒷바라지에 힘썼다. 

말이 뒷바라지이지 당시 '독립 기지'의 가장 큰 고충은 '넉넉치 못한 재정'이었다. '죽울 쑤었을 대는 상을 가지고 나가지 못할 정도로 얼굴이 화끈히 달아올랐다'던 이은숙 여사는 서로 군정서 대원들의 옷을 직접 만들어 입혔고 먹였다. 하지만 청산리 전투 이후 베이징으로 옮긴 이은숙 여사네 집은 10 명에서 40여 명가지 독립 운동가들의 집결처가 되었다. 그들을 먹히고 입히느라 결국 어린 두 딸을 빈민 구제원에 맡겨야 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1925년 임신한 몸으로 홀로 귀국하게 되었지만 삯바느질로 모은 돈마저 '하늘같이 섬기던' 남편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부쳤다. 이은숙 여사가 당시의 삶을 회고한 <서간도 시종기>는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 19명이 서훈을 받은 이회영 일가, 여사는 1979년 90세에 이르러서야 '독립운동가'로 '추서'되었다. 



'내가 안하면 누가 하겠어요!'
이은숙 여사들처럼 드러난 '공적'인 독립운동의 이면에 그것이 가능하도록 만든 여성들의 '물심양면' 뒷바라지 안살림이 있었다. 그렇다면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은 여성들은 누구였을까? 그 중에 장정화 여사를 빼놓을 수 없다. 

1890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장정화 여사는 대한제국 대신을 지낸 김가진의 아들 김의한과 불과 11살의 나이로 혼인을 한다. 그런데 1919년 갑자기 시아버지와 남편이 사라진다. 장정화 여사는 신문 기사를 보고서야 그분들이 '망명'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무 살으리 겁없던 장정화 여사는 남편을 찾아 베이징으로 향한다. 

'이 길은 모진 풍파로부터 도피도 아니며, 안주도 아니다. 또 다른 비바람을, 이번에는 스스로 맞기 위해 떠나는 길이다. '


장정화 여사는 당시의 심정을 회고록 <장강일기>에서 소상히 밝힌다. 베이징으로 건너간 여사는 이동녕, 엄항섭 선생 등과 한 집에 살며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았다. 하지만 당장 독립 운동가들의 '호구지책'이 심각해지가 여사는 프랑스 조례 밖을 나올 수 없는 남성 독립운동가들 대신 스스로 고국과 중국을 6차례에 걸쳐 오가며 독립자금 등을 조달했다. 임시정부와 함께 중국 내륙을 거쳐 충칭에 이르른 여사는 1040년 한국 여성동맹, 43년 대한 애국부인회 등을 재건했고 광복 이후 귀국했다. 남편 김의한이 6.25 때 납북당하고, 여사는 1982년에서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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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후반에도 거침없는 '독립'의 행보
임정의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 역시 낙동강이 보이는 경북 안동의 유지였다. 99칸 대저택을 처분하여 '망명'한 선생, 19살에 혼인하여 어느덧 50대 후반에 이른 아내 김후락 여사도 함께였다. 여사는 1911년 베이지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해도교가사>로 남겼고 이 역시 주요한 독립운동사료이다. 

신흥무관학교 교장이 된 이상룡 선생, 김후락 여사는 안살림을 맡는 한편, 부인회를 조직 결의를 다지는 등 독립 운동의 내조에 힘썼다. 김후락 여사는 2019년에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었다. 또한 김여사의 며느리 이중숙 여사, 손주 며느리 허은 여사 3대 모두 독립 유공자가 된 '유공자 3대'의 집안이다. 

빨라야 197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게 된 여성들, 그녀들이 없었다면 과연 그 혹독한 독립운동의 생활고를 버텨냈을까? 남자들이 '일경'의 감시로 옴짝달싹할 수 없을 때 기꺼이 압록강을 건너 고국의 독립자금을 나르던 여성들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임시정부'가 가능했을까?

다큐는 이에 주목한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의 뒷바라지를 여전히 '평범한 여성'들의 일로 보는 시각이 이 분들의 독립 유공자 '추서'가 늦게 된 이유라고 짚는다. 또한 여전히 부족한 여성운동사에 대한 연구도 아쉬움을 더한다. 누구의 아내, 혹은 '안살림'을 맡은 '여성'이 아니라, 그분들의 '이름' 그대로 불리워질 때, 비로소 우리 독립운동사가 '온전한 역사'가 될 것이라고 다큐는 '방점'을 찍는다. 




by meditator 2022. 8. 16. 00:02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격리가 풀리자 각종 업종들이 기지개를 켠다. 이제 다시 한번 코로나 이전의 활황을 누려볼까? 그런데 웬걸, 일할 사람이 없다. 일할 사람이 없어 기계를 놀리고, 영업 시간을 줄이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도대체 일을 해야 할 젊은이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최근 MZ 세대의 새로운 직업관과 구인난을 겪는 산업 현장의 현실에 대해 7월 25일 자  <시사 기획 창>이 분석한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건 특정 '업종'의 문제가 아니다. 커다란 창으로 바깥 풍경이 보이는 안락해 보이는 사무실, 그런데 드문드문 빈자리가 있다. 온라인 광고를 제작하는 디지털 마케팅 업체, 업무 시간에 음악을 들어도 좋다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강조하지만 여전히 몇 십 명의 인원을 충원하기가 난망이다. 경기도 김포의 치과에서는 기숙사를 구해준다고 해도 단 한 건의 문의조차 없다. 시급 12만원을 주겠다는 햄버거 가게 역시 지원은 커녕 다니던 직원 절반이 그만둬 사장은 울상이다. 유흥의 메카 강남이라고 다르지 않다. 손님을 벨을 연신 누르지만 서빙할 직원이 없다. 사장은 한쪽에서 지난 번 그만 둔 직원의 동정을 묻고 있다. 

 

 

답답한 조직보다 차라리 배달이 낫다 
강남 유흥가에서 사장이 찾던 직원은 지금 배달 일을 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플랫폼 사업'이 활성화되고, 그 중에서도 '배달 앱'등이 활성화되면서 다수의 MZ세대들이 이른바 '국민 부업' '배달업'에 뛰어들었다. 탄탄한 회사의 물류 담당 직원이었던 전성배 씨는 회사를 그만둔다 했을 때 주변에서 미쳤다며 말렸다. 잠시 '알바'삼아 하려고 했지만 업무 지시도 없는 훨씬 '심플'한 업무 내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만큼 일을 할 수 있는 이 일에 현재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MZ 세대, 1980년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15세에서 40세까지 1700만 명 정도로 국내 인구 분포 상 34% 정도를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이들의 '퇴사'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을까?  회사로 보면 대리, 과장 급의 사람들인 이들은 우리 사회의 실무 인력을 담당하고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중 30~60%가 2년 미만의 퇴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들의 직업적 변동성은 우리 사회 전반의 심각한 구인구직난으로 이어진다. MZ 세대에게 언제쯤 퇴사를 결심했냐고 물었다. 평균 10개울 즈음이라는 답이 나온다. 언제든 퇴사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그렇다는 답이 49.5%로 과반에 달한다. 매우 그렇다도 22%에 달했다. MZ세대에게 퇴사는 '자유'이자, '해방'이요, '새로운 시작'이다. 불안이나 백수라는 부정적인 생각은 3%에 불과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가치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 퇴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대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대퇴사시대(the Great Regression) 라는 말이 유행한다. SNS를 중심으로 회자되는 '퇴사 영상'이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이다. 

 

 

달라진 세대, 뒤처진 조직과 사회 
그런데 이런 젊은 세대들의 변화된 태도에 대해 사회적 인식은 엇갈린다. 회사 측 입장에서는 주 52시간 제도로 인해 젊은 세대들이 평생 아파트조차 못사는 처지가 되었다고 제도적 한계를 지적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런 분석에 고개를 젓는다. 외려 쉬는 날에도 특근을 해야 하는 근무 환경에 화가 났다고 말한다. 회사는 자녀들 학자금에 장례부조를 자랑하지만, 결혼도 할까말까한 젊은 세대에서 미래 자녀의 학자금은 공염불처럼 들린다. 존중과 존대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존댓말로 자신의 휴대폰 액정 닦이를 사오라고 하는 식의 시스템에 젊은 세대는 반발한다. 

19살에 엔지니어로 입사한 허태준 씨는 '퇴사'를 했다. 잔업을 하고 돌아오면 8시, 그저 씻고 자기만 하며 살아가는 일상이었다고 한다. 잔업이 없는 수요일만 기다리는 처지가 된 자신의 현실에 환멸을 느껴가던 즈음, 지하철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이 연이었다. 자신과 다르지 않는 일을 하던 젊은이들이라 여겨졌다. 허태준 씨의 생각처럼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제조업은 오래 일하면 '몸이 상한다'고 하는 현실이다. 또한 달라졌다고 하지만 근무 조건이나 환경에서 인정이나, 보람, 성취를 MZ세대가 느끼기 힘든 게 현실이다. 

MZ세대는 일자리 선택 기준에 있어 그 이전 세대와 달라지고 있다. 물론 여전히 선택 기준에 소득 기준이 1위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비율도 달라진다. 그보다 개인의 발전 가능성이라던가, 업무량, 출퇴근 거리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나를 발전시킬 수 있고, 내가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는 게 이제 MZ 세대 직업적 선택에는 중요한 화두다. 

다큐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퇴사'를 한 젊은이들과 인터뷰를 한다. 타이어 회사에서 사보를 만들던 김유경 씨는 '시키는 거나 하라'는 상사의 지시에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안정적인 은행을 다녔지만 군대보다 더 보수적인 분위기, 서로 뒷담화를 하는 조직 내 문화에 강이삭 씨 역시 사표를 내던졌다. 홍석남 씨의 경우 대기업에 다녔지만 여기에 계속 다니면 10년 , 20년 뒤 자기 발전이 없겠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천지은 씨의 경우 우스개로 '모든 걸 다해서' MD라는 직책을 맡았었다. 말 그대로 모든 제조 과정에 간여하지만, 정작 결정권이 없는 현실에 좌절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생을 덜해봐서 그래', 어른들은 말한다. 창업을 한 강이삭 씨는 인정한다. 하지만 회사가 원하는 루틴대로 살아가는 대신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삶이 주는 스트레스를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한다. 한계가 정해지지 않은 삶, 자신이 이루어 갈 수 있는 그 '무한대'의 가능성에 자신을 내맡기겠다는 것이다. 

달라진 사고 방식의 MZ 세대, 이들의 달라진 직업관의 결과가 바로 코로나 이후 '구인난'이라고 다큐는 분석한다. 2003년 '벼랑 끝에 선 청년들'이라는 다큐에서만 해도 젊은이들은 회사 고를 때가 아니라며 사원이라는 이름 아래 정착하고 싶다고 눈물을 흘렸었다. 격세지감, 이제 젊은이들은 '퇴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월급'이라는 마약에 취해 주저앉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안맞겠다 생각하면 한 달도 못참'는다는 세대, 이들을 우리 사회 제도 속에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이 추구하는 사고 방식에 맞춰 조직과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다큐는 결론내린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거북이 걸음이다. 구직 급여는 자발적 퇴사나 한 달 15일만 일을 해도 제공되지 않는다. 고용자 입장에서는 채용지원금보다 고용유지를 위한 실질적 혜택이 있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피력한다. 회사원에만 한정된 대출 제도처럼 달라진 세대에 뒤처진 사회 제도이다. 






by meditator 2022. 8. 1. 16:17

지난 2018년 서울에 경증치매인들이 함께 했던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었다. '깜빡 깜빡'하는 경증 치매인들, 비록 주문을 종종 잊고, 자신이 지금 무얼 해야 하는 지,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려도 스텝과 식당에 온 손님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거뜬히 해냈다. '치매'가 사회적 사망 선고가 되는 세상, 그런 굳어진 세상의 인식에 프로그래은 윤활유 역할을 했다. 

 

 

제주도의 주문을 잊은 식당 
그로부터 다시 4년이 흘렀다. 주문을 잊었던 음식점은 다시 한번 그 날개를 펼쳤다. 이번에는 바다 건너 제주로 갔다. 하루 3시간, 단 3일, 그 짧은 시간 동안 다시 한번 치매인들과 정상인들의 '이인삼각' 경주가 시작되었다. 

시즌 2를 맞이한 <주문을 잊은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게 된 경증 치매인들은 네 사람이다. 83세의 맏형 장한수 씨는 2015년에 치매 판정을 받은 치매 경력이 제일 오래된 분이다. 기분이 좋으면 노래를 흥얼거리고 춤을 추지만 불안하면 자꾸 아내와 딸을 찾는다. 늘 베레모와 선글라스를 빼놓지 않는 최덕철 씨는 2020년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았다. 매일 보는 홍석천 씨를 처음 본 사람처럼 반가이 포옹을 하는 그는 한때는 카이스트 연구원이었다. 

매번 자신을 '백옥같이 곱다'는 의미에서 옥자라고 소개하는 백옥자 씨는 깜빡깜빡 멤버 중 유일한 홍일점이기도 하지만 '반가운 사람들만 있네'라며 언제나 웃는 낯을 놓치지 않는 멤버 중 가장 화사하고 따뜻한 존재이다. 무엇보다 손님 한 명 기억하기 라는 미션을 손에 써왔어도 다음 날이면 그 조차도 잊어버리지만 계산기가 필요없을 정도로 송은이도 버벅이는 손님들 밥값에는 '귀재'이다.  

처음 멤버로 등장했을 때 다른 멤버들이 모두 '촬영하는 분'이야 하고 의아해 했던 김승만 씨는 이제 겨우 60의 '조발성 알츠하이머' 치매인이다. 예전에는 목회 활동을 했지만 이제는 1번 테이블 찾기가 제일 어려운 처지다. 그래도 백옥자 씨 못지 않게 언제나 미소 띤 얼굴로, 주변 인물들에게 '엄지 척'을 놓치지 않는 선량한 아저씨다. 

 

 

날마다 새로운 일상
출근 첫 날 숙소에서 자고 일어난 백옥자 씨가 '여기가 어디지?'하고 낯설어 한다. 그래도 주변 환경을 찬찬히 살피던 옥자 씨는 조금 뒤 '제주도'임을 알아챈다. 그래도 첫 날 두리번거리던 옥자 씨는 나은 편이었을까? 셋째날 함께 출근하던 깜빡깜빡 남자 3인방은 당당하게 주문을 잊은 음식점 옆의 까페로 들어선다. 들어선 다음에도 여기가 맞다는 세 사람, 과연 단 3일이라도 그들의 '서빙'이 순탄할까? 

첫 날 화사한 분홍빛 앞치마를 장착한 네 사람, 옷 색깔에 대한 민망함도 저리 밀쳐두고 자신이 해야 할 새로운 일에 두려움이 앞서는 모습이다. 테이블 번호도 외우고, 해야 할 일도 숙지하고, 불안해서일까, 자꾸 아내와 딸을 찾던 한수 씨는 옆에서 옥자 씨가 괜찮다며 달래는 말에도 목소리가 높아지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개업한 식당, 다행히 손님들이 한 팀, 두 팀 찾아들기 시작했다. 이제 막 결혼식을 올렸다는 신혼 부부가 식당으로 입장한다. 

경증이지만 치매인들을 주문서에 손님들이 체크만 하면 되는 시스템, 그런데 주문서가 때론 주방에 도착하지를 않기도 한다. 음식이 나오면 차례로 손님께 가져다 주는 과정, 식당 안팍으로 겨우 일곱 테이블인데도 한바퀴를 빙 돌거나, 식당 안의 1번을 놔두고 밖에 나가서 두리번 거리기가 십상이다. 3일째 되었어도 여전히 주문서를 가져다 주는 것을 잊어버리고, 새로 등장한 '동파육'을 비싸니 싼 거 먹으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손님 테이블에서 자신의 지나온 이력을 줄줄이 늘어놓기도 하는 등 '서빙'의 본분을 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잘 하려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4인방의 노력은 겨우 3일만에 능숙하게 자신의 동선을 자신에 맞게 '조직'해 낼 정도로 무람없이 자신들의 미션을 마무리했다. 

물론 이런 해프닝에 대비해 작업 치료사를 비롯한 스텝들이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지만, 손님들이 들이닥친 시간에 빚어지는 상황에 모두 대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주문을 잊은 식당이 가능했던 건,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그러려니'하는 '배려' 덕분이었다. 수저를 안갖다줘도, '그림의 떡이네'하고 마주보고 웃는 부부처럼 손님들은 '깜빡 4인방'이 빚어내는 '실수 아닌 실수'들에 관대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리고 그런 '배려로 어우러진 장면이야말로 <주문을 잊은 음식점>을 통해 시청자들이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였다는 외국인 아내는 백옥자 씨의 손을 꼭 잡고 건강하시라 한다. 어디 외국인뿐인가. 자신이 직접 만든 마카롱과 팔찌를 드리며 '응원'하는 모습들이 여전히 우리가 함께 어루러져서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해 내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 중 10%가 치매를 앓고 있다. 김승만 씨 처럼 조발성 알츠하이머까지 약 88만 명이 치매를 겪고 있다. 프로그램이 끝나가자 깜빡 4인방은 모두 내일도 출근하고 싶다고 한다.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지만, 경증 치매인들이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회적 인간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시간은 의미가 깊다. 조금만 세상이 배려한다면 아직은 세상 속에 그들의 자리가 있음을, 우리가 여전히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프로그램은 말한다.

특히 지난 주문을 잊은 음식점에 출연했던 분의 등장은 감격스럽다. 시즌 1에 출연한 이래 뜨개질을 하는 등 꾸준한 활동으로 치매의 진전이 가속화되지 않은 모습은 뽀족한 치료제가 없는 현실에 등불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김승만씨를 찾아온 아내는 편안하게 다른 사람과 대화도 하고 장난도 치는 남편이 다른 사람같다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홀로 지내던 덕철은 '내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라고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겨우 3일이었지만 늘 사회와 분리된 채 자신의 병마와 싸우던 이들에게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소중하고 뜻깊은 시간이다. 비록 그들이 이 시간조차 잊어버린다 할 지라도. 




by meditator 2022. 7. 31. 16:59

우리나라만큼 인생의 통과 의례에 '집착'하다시피 하는 나라가 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야하고, 대학을 나오면 취직을 해야 한다. 취직을 하면 그 다음엔? 사람들은 쉬이 '남의 집 자식'들의 일생에 질문을 퍼붓는다. 그런 세상에 그저 자식보다 하루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진 엄마들이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취직'을 하고 '월급'까지 타온다. 자기 스스로 돈을 번다는 사실도 좋지만, 무엇보다 '내 아이'가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려 그 속에서 자기 몫을 찾는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다. 그걸 위해서라면 살던 곳을 떠나는 것 쯤이야 무엇이 문제랴 싶다. 가지고 있던 '땅'도 기꺼이 '기부'할 수도 있다. 바로 여주에 있는 '푸르메 여주팜'이 일군 '기적'이다.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푸르메 여주팜'은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농장이다. 아침이 되면 농장의 하늘이 저절로 열린다. 하지만 스마트 농장이라고 해서 모두가 '자동'은 아니다. 익은 방울 토마토도 따주어야 하고, 가지 치기도 해주어야 한다. 딴 버섯을 분류도 해주어하는 건 물론이다. 이렇게 방울 토마토와 버섯 농사에서 '필수적'인 일을 38명의 발달장애 직원이 해내고 있다. 

 

 

'발달 장애'는 유전적인 원인, 후천적인 뇌 구조 손상, 각종 신체 질환, 환경적 요인 등으로 인해 유발되는 장애를 말한다. 어느 특정 질환 또는 장애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 의사소통, 인지 발달의 지연과 이상을 특징으로 하고, 제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못한 상태를 모두 지칭한다.(다음 백과) 적절한 '자극'을 통해 사회적으로 잘 적응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사회적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상당수인 상황 그러기에 푸르메 여주팜의 직원 모집에 전국의 발달 장애인들이 모였다. 

명함도 있다. '나도 직원'
매일 오전 8시 30분 직원들을 태운 차가 도착한다. 자동으로 천장이 열린 방울 토마토 온실, 29살 이수연 씨는 곁순을 자른다. 9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재활원에서만 생활하던 수연씨는 공장 직원 중 꽤 높은 수준의 업무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다. 개인 별로 편차가 심한 발달장애인들, 그녀가 생활하는 재활원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은 92명 중 20명 뿐이다. 

가공실에서 세척 중 결함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26살 임의혁 씨의 원래 집은 구미이다. 산업공단인 구미에도 제조업체는 많지만 소근육을 움직이기 힘든 의혁 씨가 일할만한 곳은 없었다. '내 아이가 일을 할수 있다는데', 엄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사를 했다. 

버섯팀에서 일하는 36살의 김동휘 씨, 어머니와 함께 퇴근을 한다. '늘 재밌대요'라며 웃음을 띠는 어머니, 동휘씨가 일을 하는 건 그저 동휘 씨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저 늦된 아이인 줄 알았던 동휘 씨, 다 큰 동휘 씨가 갈 곳이 있다는 변화가, 가족들의 삶마저 달라지게 했다고 한다. 

'동생에게 짐이 되면 어쩌나, 쟤가 나중에 혼자 어떻게 살아갈까', 발달장애인들의 타인 의존도는 80%이다. 푸르메 여주팜에서도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 더구나 개인별 편차가 심하다. 표준 메뉴얼이 어렵다. 이런 발달장애인들이 모여 '농장'을 일구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했다. 

 

 

32살 덕희 씨는 오후반 직원이다. 농장 가는 걸 너무 좋아한다. 이제는 홀로 출근한다. 월급날 집으로 돌아온 덕희  씨가 개선장군처럼 말한다. '돈 벌어왔어!' 그런 아들을 보는 장춘수 씨는 너무나 기쁘다. 치료하면 수술하면 낫는 줄 알고 온갖 치료란 치료는 다해봤다는 춘수 씨, 결국 '치료'를 포기하고 아들을 위해 함께 '농사'를 짓기로 했단다. 10년을 이 농사 저 농사 지어봤지만, 이게 혼자 해서는 안되는 일이구나를 절감하게 된 춘수 씨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고민하던 푸르메 재단을 만났다. 

발달장애인이 혼자서 독립해서 살아가려면 우선으로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안정된 일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뭘까?, 열심히 찾았는데, 우리가 찾은 답이 ‘스마트팜’이었어요.” -임지영/ 푸르메재단 경영지원 실장


기꺼이 땅을 기부한 춘수씨,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을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스마트팜을 만들기 위해서는 100억 정도의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한 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는 문구처럼, 한 사람의 발달장애인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좋은 뜻을 지닌 재단과, 독지가, 그리고 재원을 감당해준 기업과 은행, 그 모든 것을 현실적 과정으로 풀어낼 지자체 등 많은 이들의 뜻이 기적처럼 모아져야 했다. 그 '기적'의 결과물이 국내 최초 민, 관, 공 컨소시엄형 장애인 사업장 푸르메 여주팜이다. 

 

 

직원들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일주일에 5일 하루 4시간을 근무하고 최저임금보다 높은 월급을 받는다. 4대 보험도 적용된다. 우리나라 발달장애인은 25만 여명, 그 중 23.3%만 일을 하고 있다. 장애인 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이 없이, 가정이나 시설의 돌봄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매일 출근하는 게 너무 좋아요.” -김동휘
“전에는 우울했는데 여긴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이수연


평소에는 거의 말수가 없다는 덕희 씨, 그런 덕희씨가 동료들을 만나며 인사도 하고 말수가 많아진다. 심지어 장난도 치고, 애교도 부린다. '부끄럽게 왜그래~', 그 전에는 쓰지 않았던 감정 표현의 어휘가 등장한다. 그들에게 '일'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을 증명하고 확인하는 시간이다. 

매달 25일은 월급날이다. 월급 명세서를 받기 위해 줄을 선다. 월급날 의혁씨가 은행에 들른다. '아파트를 살려고', 주택 청약을 들기 위해서이다. 직원들에게 꿈을 물었다.

'버섯을 잘 따는 거예요',
'엄마, 이제 내가 일을 할게요',
'아빠 차 바꿔줘야지'. 

by meditator 2022. 6. 20. 21:41

생물종의 '멸종'은 자연현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여섯 번째 멸종이 '인위적'이라는데 있다. 매일 150종, 매년 55,000 종의 생물이 멸종 중이다. 정상보다 1000 배 이상 빠른 속도다. 인간도 그 멸종의 대열에서 예외는 아니다. 

'모든 게 사라질 겁니다!'
2020년 4월 미국 항공우주국 NASA 등의 과학자들이 시위에 나섰다.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과학자들이 '눈물'로 호소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는 종을 '상징'하는 붉은 물감을 뿌려대다 결국 경찰에 연행됐다. <시사 직격>의 다큐 제작진이 NASA 소속의 기후학자 피터 칼 머스를 찾았다. 그는 초조하게 말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확실한 경고가 필요한 때입니다.'

 

 

과학자들은 말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정상적인 속도보다 수백 배나 빠르다고. 이걸 회복하는데에는 수백반 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여섯 번째 대멸종을 수백 배나 빠르게 만드는 건 두말 할 나위없이 '화석 연료'에 의존한 인간의 문명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 사회의 결정은 느긋하다. 26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197개국의 정상들이 모였다. 석탄화력 산업의 단계적 퇴출을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다만 단계적 감축을 하겠다는 의견 조정만을 이루었을 뿐이다. 

이렇게 급속도로 진행되는 '여섯 번째 멸종'의 시대, 그에 반해 여전히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고 각국의 이해 관계만을 앞세우고 있는 현실에 기후 위기 활동가들이 거리로 나섰다. 

방관자가 될 수 없다!
지난 5월 30일 영국의 리치몬드 역에는 6구의 시신들이 놓여졌다. 브라질에서 벌목꾼 총에 맞아 숨진 사람, 미국 산불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 사람 등  '기후 위기'로 죽어간 사람들이다. 잠시 뒤에 하얀 천을 씌운 시신이 움직인다. 기후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이렇게 '시신 퍼포먼스'를 통해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한다. 

 

 

프랑스 브장송 거리의 기후 활동가들은 보다 적극적이다. 기습적으로 등장한 이들이 상점의 불을 끈다. 전자 광고판을 뜯어 게재된 광고를 버리고 대신 온난화 지구를 상징하는 붉은 원의 포스터를 붙인다. 이들은 지난 2018년 결성된 '멸종 반란' 그룹이다. 소멸을 상징하는 모래 시계를 내건 이들은 더는 어설픈 방법으로는 빠른 멸종의 시대에 대처할 수 없다며 요란하게 불편을 끼치는 행동을 통해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겠다고 선언했다. 멸종 동물의 죽음을 상징하는 가짜 피를 뿌리거나, 의사당을 점거하는 등 직접적인 행동에 나선 '멸종 반란', 남아공에서 부터 호주, 그리고 아시아 등 84개국 1200 개 지부가 결성되었다. 

지난 3월 우리나라에서도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한' 장례식 퍼포먼스가 거행되었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되자 민주당을 점거하여 경찰과 충돌했다. 위법 행위도 불사하겠다는 기후 활동가들. 자신들에게 '절차'를 밟으라지만, 그 '절차'를 밟을 기회조차 쉽게 얻을 수 없다는 활동가들은 시끄럽게 해서라도, 위법 행위를 불사하더라도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한다. 

'이 시기를 지나면 되돌릴 수 없다'
벌처럼 인간에게 필수적인 곤충이 사라진다면 과연 인간은 '생존'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기후 위기는 북극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8년 폭염으로 초과 사망자가 8천 명에 이르렀는데, 이게 '인간 멸종'의 신호가 아니냐는 것이다. 더욱이 그 '멸종'은 늘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더 빨리 다가간다니. 

경남 통영 20여년 동안 어업에 종사한 어부의 통발이 비었다. '잡을 게 없어요.'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연안 양식장도 다르지 않다. 6월 말까지 수확하던 멍게 어장이 5월 말에 막을 내렸다. 2년 이상 키워야 하는 멍게 양식, 지난 여름 고온으로 수확량이 70%나 줄었다. 전세계의 해수면 온도가 0.52도 상승하는 동한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는 1.35도 상승했다. 매우 빠른 속도다. 

그런가 하면 육지에서는 가뭄으로 21세기에 기우제를 지낼 정도다. 평년 절반에 못미치는 강수량, 강원도 고냉지 배추가 노랗게 타들어 간다. 건조한 기후는 '산불'을 초래한다. 3월 경남 밀양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건조주의보 상태에 강한 바람으로 축구장 1000 개 면적을 72시간 동안 태우고 나서야 겨우 불길이 잡혔다. 동해안에서도 10일 이상 산불이 이어져 1700여 억의 손해가 났다. 평생을 살아온 집들이 '소실'되었다. 6월초 이미 30도를 육박하는 기온, 그러면 건설 현장은 50도 가까이 올라간다. 지난 해 갑자기 올라간 더위로 건장했던 40대 노동자가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5월에 발생한 사고였다. 

 

 

현재 세대의 탄소 배출, 미래 세대가 고스란히 
문제는 이런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가 불평등하다는 점이다. 지난 6월 13일 5살 이하 아기 40명을 포함한 62명의 어린이들이 헌법 소원을 냈다. 세계 최연소 당사자들이다. 현재 세대의 탄소 배출이 앞으로 성장하고 살아나갈 미래 세대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이다. 

청년들이 주축이 된 기후 행동 페스티벌에서는 '기후 정의'를 외친다. 앞선 세대들이 전기를 쓰고, 고기를 먹으며 탄소를 배출해서 지구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가뭄, 산불, 멸종 등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물려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정책에 정작 자신들은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 중 64.5%가 현재의 기후 위기를 '나의 문제'라 인식하고 있다. 2020년 출생한 세대는 평생 30여 차례의 기후로 인한 위기를 겪을 거라고 예상한다. 이는 1960년 생보다 7배나 많은 예측 결과이다. 40세 이하의 세대는 전례없는 기후 위기로 인한 고통을 받을 거라는 것이다. 

내년에 꽃이 안피면 어떡하지? 
이런 현실에 깨었는 이들 중에는 '우울감'을 호소하기도다. 18세의 도영이는 기후 재난 뉴스 등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고 말한다. 막막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잠이 안오기도 한단다. 이렇게 도영이와 같은 증상이 바로 '기후 우울증'이다. 

2011년 토마스 J 도허티 교수가 처음으로 '기후 우울증'을 정의했다. 젊은이들이 기후 변화로 인해 느끼는 만성적 스트레스가 우울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태어나보니 기후 위기인 시대, 앞선 세대가 만들어 놓은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세상에 던져진 자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문명' 속에 사는 자신이 또한 기후 오염의 원인이며, 그래서 스스로 행복해져서는 안된다고까지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18살의 도영이는 자신의 우울감을 또래 청년들과 함께 기후 행동에 참여하며 해소해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베트남 석탄 발전소 건설에 참여한 두산 중공업에서 시위를 벌인 기후 활동가들은 천 만원이 넘는 민사 소송까지 당하는 처지이지만 '늘 하던대로 하면 결코 바뀌지 않는다'며 더 과감한 행동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이것이 무기력과 허탈감을 벗어날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고 말한다. 젊은 청년을 주축으로 한 기후 활동가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 하지만 아직도 환경 에너지에 기반한 전기료 2배 인상에 주춤거리는 현실은 실천과 우선 순위의 간극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by meditator 2022. 6. 18. 02:15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엇일까? 바로 철로 만든 길,  '철도'를 놓은 것이다. '근대' 문물의 빼어난 상징 철도, 하지만 그 '근대'의 길을 통해 '제국주의'는 달렸다. 조선을 관통한 철도는 '만철'(만주 철도)로 뻗어나가 대륙을 향한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을 실어날랐다. 

지난 5월 11부터 방영한 <5원소, 문명의 기원> 5부작은 물, 불, 흙, 철, 나무 다섯가지 물질을 통해 인류 문명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동양과 서양, 오늘날과 과거를 종횡무진하며 물질사적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구성한다. 그 중 4부는 '철'의 역사이다. 다큐는 정의한다. 인류는 여전히 '철기시대'라고. 

 

 

정복과 투쟁의 도구, 철 
서기 43년 로마는 영국을 점령했다. 그로부터 350년간 영국을 점령하고 정복해 나갔던 로마, 하지만 로마의 정복에도 끝은 있었다. 우리가 미술 시간에 만난 그 '아그리파 장군'은 지금으로 부터 2000년 전 스코틀랜드 하드리아누스 빙벽 앞에서 멈춰서고 만다. 20세기의 발굴단은 당시의 인치투털 요새 구덩이에서 수레와 함께 약 100만 개의 철못을 발굴했다. 무거워서 차마 가지고 후퇴할 수 없었던, 하지만 적에게 '철'을 넘길 수 없었던 로마군은 '철'을 숨겼다. 

벨기에 브뤼셀에 아토미움은 철의 분자구조를 1650억배로 확대시킨 건축물이다. 인류는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철의 분자구조를 알았다. 하지만 전세계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매우 민주적인 금속 '철광석'을 인류는 그냥 두지 않았다. 가장 강인한 금속, 인류의 역사를 철을 활용하기 위한 실험와 도전의 역사였다. 또한 철을 차지하기 위해, 철을 가지고 싸웠던 역사이기도 했다. 

철을 향한 그 비밀의 문은 우주에서 비처럼 내렸다. 대기권을 뚫고 철, 니켈의 합금 '운철'이 쏟아져 내렸다. 지구 상의 철이 '산소'로 인해 산화된 철광석의 존재로 '제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과 달리, 대기권을 뚫고 '환원' 과정을 거친 운철은 '철기 시대' 이전 양질의 철을 얻는 유일한 통로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철은 투탕카멘의 단검처럼 '신성한 존재'의 것이 되었다. 

기원전 12,3세기 터키 아나톨리아 지역의 히타이트 인들은  철을 두드려 '강철'을 만들 줄 알게되었다. 철기를 녹일 줄 알게 된 인류는 무엇을 했을까? 이것으로 바퀴살을 만들고 전차를 만들었고, 이집트 정복에 나섰다. 이 강력한 '철'에 근거해 탄생한 국가는 무려 500년 동안 전쟁과 무역을 통해 그 영향력을 뻗쳐 나갔다. 

 

 

하지만 '철'은 단점이 있었다. 바로 '산화', 부식되고 녹이 스는 것이다. 그 '단점'을 해결한 건 인도 문명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중국의 제철 기술을 전수받은 인도였다. 철을 흙으로 만든 도가니에 녹여 두드려 만드는 당시로서는 정교한 작업을 통해 '우츠 강철'이 만들어 졌고, 인도 최대의 수출품이 되어 7세기의 인도양을 지배했다. 우리가 아는 신밧드의 모험은 그 교역이 만들어 낸 문화적 상상력이다. 

수출된 인도의 강철은 무엇이 되었을까? 시리아로 넘어간 우츠 강철은 아름다운 물결 무늬를 띤 다마스커스 검이 되었다. 내려쳤을 때도 깨지지 않고 공중에 흩날리는 새의 깃털을 잘라낼 수 있는 예리한 검은 1187년 십자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탈환한 무슬림의 전승 무기가 되었다. 

철의 역사는 이처럼 전쟁의 역사이다. 더 강력한 철을 만들기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중국에서는 단단한 무쇠인 생철과 쉽게 구부려지는 연철을 합친 앞선 기술의 칼을 만들어냈다. 일본은 볏짚을 철 속에 섞어 접고 때리는 방식으로 이른바 '일본도'의 경지를 이루어 냈다. 이런 칼은 어떨까? 대만의 전통 칼 제작에서는  무연고 시신의 뼈를 칼을 만드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인간의 뼈에 있는 '인' 성분이 철의 강도는 높인다는 중국 전통의 제작 방식을 따른 것이다. 이런 갖가지 전통적 제작 방식은 모두 화학도, 현미경도 없던 시절 더 강한, 더 유연한 철을 만들기 위한 인류의 노력, 그 결과물들이다. 

발견과 개척의 선봉, 철 
기원전 3000년 경 터키에서 시작된 제철 기술은 세계로 세계로 퍼져 나갔다. 중세의 갑옷과 전투씬은 철이 바꿔놓은 풍경이었다. 철은 무기만 되었을까? 오늘과 내일, 그리고 하루와 또 다른 하루 사이 '불가지'의 세계 속에서 인류는 24시간의 경계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알려줄 도구가 필요했다. 또한 17세기 바다로 향한 선원들은 나침반 만으로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보다 정밀한 '도구'가 필요했다. 

1714년 영국 의회는 상금 2만 파운드를 내걸고 정확한 경도 측정 도구를 공모했다. 뉴턴조차 '시계를 이용한 경도 측정은 불가능하다'라고 장담하던 시대,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목수이자 시계공이었던 존 해리슨이 철제 스프링을 철판에 감은 시계를 들고 나타났다. 그의 시계, 그 철판에 감은 그 철제 스프링이 없었다면 근대의 발견은 존재할 수 없었다. 

 

 

또한 산업 혁명의 견인차가 된 철로 만든 보일러는 어떤가? 철로 만들어진 선로를 달리는 증기 기관차는? '석탄'을 이용해 열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꾼 1차 산업 혁명의 '견인차'는 '철'이었다. 마차가 다니던 길에 철로를 깔 수 없었다면 증기기관은 '혁신'이 될 수 없었다. 

인류의 발전은 '철'로 만든 세계에서 이루어졌다. 철은 문명의 도구였고, 다른 이름으로 '전쟁의 도구'였다. ebs 다큐 프라임 <5원소, 문명의 기원>은 지금까지의 역사를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조명하여, 그 성격을 규명한다. 특히, 4부 철은 인류 발전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전세계 그 어느 곳에나 존재했던 철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에 이용되었다. 철로 인해 세계는 연결되고 문명은 뻗어나갔다. 안타깝게도 그 확장과 발전의 결과물은 평화롭지도 호혜적이지도 않았다.  '철'의 문명 위에 서있는 오늘, 과연 이제 인류는 어디를 향해서 나갈 것인가. 


by meditator 2022. 6. 7. 19:32

이전 살던 동네는 빌라촌이라 '분리수거'가 그리 잘 되지 않았다. '쓰레기 배출 봉투' 외에도 박스며, 병 등이 즐비했다. 그걸 노인분들이 줏어갔다. 배낭에, 그게 아니면 리어카에. 그저 한 두 분인가 싶었는데 날이 갈수록 동네를 돌며 쓰레기를 줍는 분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기력이 없어 늦게 돌아다니시는 분은 허탕치기가 십상이었다. 21세기의 대한민국, 폐지를 두고 경쟁하는 도시의 노인들이라니.  5월 31일 방영된  kbs1의 <시사 기획 창>은 처음으로 노인들의 '폐지 노동'을 주목한다. 

 

 

돈이 되는 건 다 줍지 
지난 1월 대구 서문 시장 새벽 5시, 77세의 김은숙 노인이 인적없는 시장을 돈다. '생활비 주는 사람이 없잖아,' 2017년부터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는 노인은 이 일로 에미, 에비없는 손자를 키웠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보고 씩씩하다고 하지만, 혼자서는 많이 울지, 왜 우냐고, 생활 자체가 슬프잖아. 일은 황소같이 해도 먹을 걸 배불리 먹어봤나, 내 속은 다 썪는거지. 화장실이 유일한 쉼터야.' 새벽에 나온 노인은 시장이 끝난 시간에도 여전히 시장 골목을 서성인다. '힘들지, 나오기 싫지. 먹고 살아야 하잖아,' 그러면서 노인은 버린 담요를 챙긴다. '이게 다 돈인데,'

우리나라에서 생계형으로 폐지를 줍는 노인은 얼마나 될까? 정치 일선에 나섰던 김종인 대표는 OECD 노인빈곤율 1위, 노인 자살율 1위의 국가, 우리나라에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200만은 될거라고 했다. 반면, 2019년 한 지자체의 조사에 다르면 6만6천 명이라고도 한다. 200만과 6만의 현격한 격차, 그 간극을 설명할 수 있는 이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단 한번도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조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덧 거리의 한 풍경이 된 듯한 폐지줍는 노인들, 하지만 '국가'는 한번도 그들을 주목한 적이 없다. 

<시사 기획 창>은 한 달동안 폐지줍는 노인들께 GPS를 부착하여 그 분들의 이동경로와 노동시간을 확인, 생계형 폐지 노동의 실태와 환경을 조사했다. 한 달 간의 조사를 통해 생계형 폐지노동의 몇 가지 특성이 드러났다. 

 

 

우선 노인들은 폐지를 줍기 위해 평균 13km, 때로는 26km의 장거리를 이동한다. 축구장 45바퀴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또한 주말도 없이 하루 평균 10시간 넘게 일한다. 평균 노동 시간이나, 평균 노임이 무색한 노년의 강고한 노동, 그건 돈때문이다. 

80세의 박복자 할머니는 가까운 고물상을 놔두고 빙 돌아 먼 곳의 고물상을 찾는다. 먼 곳이 50원씩 더 쳐주기 때문이다. 그 50원 더 주는 고물상에서 할머니가 받은 돈은 8000원 남짓이다. 쉬지않고 하루 종일 일한 값이다. 70살의 조규석 씨 역시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폐지를 줍는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생계 유지도 힘들어.'

그래서 폐지줍는 노인들에게 '진통제'는 일상이다. '아플 때 제일 힘든건 폐지를 줍지 못하니 돈을 벌어서'라는 노인들은 진통제를 매일 한 알씩 먹으며 일을 한다. 2020년부터 폐지를 줍기 시작햇다는 74세의 김윤식 노인은 그래서 불과 2년 만에 55kg이던 몸무게가 44kg이 됐다. 

진통제로 버는 하루 9000원
일인당 평균 13kg의 폐지를 나르며 하루 평균 11시간 30분을 일해서 노인들이 한 달 동안 버는 돈은 평균 64만 2000원이다. 하루로 치면 9480원, 2022년 최저시급이 9160원이다. 

최저시급에 해당하는 돈을 하루 온종일 일해서 버는 노인들은 당연히 먹고 살기가 쉽지 않다. 4시간째 쉬지 않고 일을 하던 75세의 문창기 노인은 오후 2시 넘어서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돼지 족발이 먹고싶다는 노인, 하지만 힘들게 번 돈, 막상 쓰려니 아깝다고 한다. 그나마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란다. 적게 주으면 끼니를 거르기 십상이다. 그래도 버텨주면 다행이다. 82세의 정시화 노인은 대장암 수술을 해서 받은 음식들이 그림의 떡이다. 겨우 물말이 밥알을 삼키는 노인은 돼지뼈라도 고아서 먹었으면 하고 입맛을 다신다. 그래도 가만 누워있으면 '이래 뭐하러 사나'하는 마음이 자꾸 드니 문 밖을 나선다고 한다. 

 

 

대부분 노인들은 대로 이면의 작은 골목들을 돌며 폐지를 줍는다. 길은 좁고, 사람과 차량이 뒤섞여 다니는 곳이다. 이 골목을 폐지를 찾으러 수십번을 반복하여 오간다. 박복자 할머니는 작년, 재작년 연이어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를 피해 도로를 건너다 넘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병원은 언감생심, 며칠을 집에서 누워있던 할머니는 결국 며칠 만에 다시 길로 나섰다. 차량으로 등록된 리어카, 차량들 사이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한 달여의 촬영기간, 결국 한 노인은 차를 피하다 골반이 으스러졌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 그분들의 노동은 그저 당신들의 생계일 뿐일까? 아파트촌이 아닌 곳은 대부분 '분리수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리에 나뒹구는 박스들, 공공의 수거가 지나간 자리, 그 부족한 부분을 노인들이 채운다. '모으면 자원, 버리면  쓰레기', 김은숙 노인은 누가 뭐래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다. 하지만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빈곤의 막다른 골목에서 내몰린 노동에서 대부분의 노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수 없어 하는 힘든 일일 뿐이다.

분리수거의 사각지대를 담당하는 것만이 아니다. 전국에서 한 해 86만 7천 톤의 폐지들이 수거된다. 그 중 40만 8천톤이 재활용용으로 수거되는 것이다. 그 나머지, 전체 폐지의 60% 이상을 노인들이 수거한다. 폐지 노동은 엄연히 우리 사회에서 '공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공적인 노동'에 대해 정당한 보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적 보상이 이루어지면 더 많은 노인들이 거리로 나와 폐지를 줍게 되지 않을까라는 일각의 우려, 하지만 노인들은 말한다.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진통제 투혼으로 이어지는 나날, 대부분의 노인들이 얼마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길에 나선다. 전문연구 기관과 머신 러닝을 이용해 도출한 폐지 노동 노인 인구는 만 오천 명이었다. 과연, 겨우 만 오천 명뿐일까? 존재하지만 존중되지 않는 노인들의 생계형 노동, 그런 사회적 노동에 대한 사회의 외면이 우리 사회 노인들의 빈곤을 더욱 깊게 만든다. 





by meditator 2022. 6. 1. 15:42

'최선이었을까?'
박지혜 선생님은 이렇게 되묻곤 한다. 2020년 봄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데 보름 가까이 한 학생이 출석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자 아버지는 '내가 우리 아이를 죽이면 되겠느냐'며 폭언을 뱉었다. 지인을 통해 알아보니 오랫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했다. ' 저 여기서 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아이의 간절한 부탁, 아이는 분리조치됐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학대 아동'에 대한 '메뉴얼'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맨몸으로 나오다시피한 학생, 이후 원활한 학교 생활을 위한 지원금조차 법정대리인인 부모의 동의없이는 받을 수 없었다. 아동 학대 신고 이후, '분리 조치' 외에 정작 학대 아동에 대한 사회적 조치는 전무했던 것이다. 

게다가 학대를 피해 아이를 품어주어야 할 시설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주었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아이, 그런데 가정은 이제 아이를 거부했다. 자신이 버려졌다고 좌절한 아이는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학대'당하는 아이를 위해 사회가 해주어야 하는 건 안전한 곳에서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현실은 여의치않다. 6부작으로 방영된 다큐프라임 <어린 人권>의 5,6부는 지금까지 논의되지 않았던 '아동 학대'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펼친다. 학대 아동을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안성희 검사는 말한다. 자신들의 판결로 세상의 박수를 받는 건 쉽다고, '엄벌에 처하겠습니다'라 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고. 안맞고 사는 것만이 아니라, 부모의 '학대'가 없는 가정에서 아이가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진정 '학대'에 대한 궁극적인 지향이 되어야 한다고 안검사는 주장한다. 



 

'학대' 이후
그런 면에서 전안나 판사는 학대당하는 아이를 가정에서 '분리'하는 대신 가해자인 부모를 보호 시설에 위탁하는 '감호 위탁'판결을 내렸다. 잘못은 부모가 했는데 아이가 기존의 집, 기존의 학교로 부터 분리되는 현행의 제도,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보호자의 '보호'가 가능하다면 아이에게 '가정'의 울타리를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가해 부모의 감호 위탁은 '가정'의 '관계 회복'을 목적으로 한 조치이다. 정상 가족, 혈연 가족 프레임이 강한 한국 사회,  '가정'이 우리 사회에서 기본 단위인 이상 가급적이면 그 '가정' 내에서 아동이 평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애써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활용되는 제도가 '위탁부모 제도'이다. 배은희 씨는 2015년 3월 한 살도 채 되지 않는 은지의 위탁 부모가 되었다. 아기가 오면 놀아주겠다던 작은 아이가 엄마, 아빠가 아기만 신경쓴다며 보내면 안되겠냐고 하던 고비를 겪으며 이제 8년 차, 종종 자시늗ㄹ이 '위탁 부모'라는 사실을 잊고 지낸다고 한다. '시설'의 부작용이 대두되며 가급적 가정과 같은 조건에서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2003년부터 실시된 '가정 위탁'제도이다. 

'한정된 입양'이라고 말하는 은희씨, 돈은 얼마나 받는 거야라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보다 언젠가는 '자신의 삶보다 귀한 아이'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더 힘들다고 말한다. '얼마를 받아야 할 수 있을까요?'라며 반문하는 은희 씨, 가정 환경조사, 부모 교육 등 엄격한 과정을 거치지만 정작 서류상 '동거인'인 아이의 법적인 보호자 역할은 '친부모' 몫이라 제도적 어려움을 겪곤 했다고 한다. 

사회가 '부모' 역할을 
그런데 그 '시설'조차 시한이 있다. 최근 24살까지 연장은 됐지만, 집, 직장 등 그 모든 것들을 홀로 해내야 하는 아이들, 그래서 그 '생소'한 사회적 경험 앞에 사기 사건을 당하거나, 범죄 사건에 휘말리기가 쉽다. 겨우 일자리를 구해도 오래 일하기가 쉽지 않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피해의식, 자격지심이 아이들 스스로 세상으로 부터 자신을 격리하도록 만들기 십상이다.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 중 50%가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국가가 언제까지 책임져줘야 하나?' 이런 의문에 김성민 씨는 반문한다. '부모가 언제가지 필요하세요?' 김성민 씨는 안동초등학교 앞에서 발견되어 3살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랐다. 18살 때까지 머문 곳, 그러나 '가족, 안전, 행복', 그 어느 것도 보장해주지 않던 '시설'은 '집'은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김성민 씨는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자리를 만들었다. 아이들 스스로 '식물'을 돌보며 일도 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는 사회적 기업 '브라더스'이다. 

법저에서 호통치기로 유명한 소년범의 대부 천종호 판사는 '가정 형태'의 '사법적 그룹홈' 시스템을 만들었다. '어떤 아이들이 재판까지 올까요?' 부모들이 있는 아이들, 부모들이 부모 역할을 하려고 하는 아이들은 웬만하면 재판에 오기 전에 '구제'가 된다고 한다. 통계적으로 재판까지 오는 아이들 중 70%가 결손가정, 저소득층 가정, 부모가 '보호'해줄 수 없는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한 아이를 1년 동안 법정에서 7번이나 보기도 했다는데, '보호'받지 못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 그 악순환을 막기 위해 천판사는  '사법형 그룹홈'을 마련했다. 가정형태로 이루어지는 그룹홈, 아이들에게 '집'의 경험을 주고자 했다. 경남에서 시작되어 전국 13곳에서 100 명의 아이들이 '집같은 공간'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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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사후 조치보다, 예방이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학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큐가 주목한 건 미 콜로라도 대학의 데이비드 올즈 교수가 시작한 가정방문 프로그램(Nurse-Family Partnership)이다. 

출산전부터 아이가 24개월이 될 때까지 미혼모나 취약 계층의 엄마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도록 간호사가 방문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임신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는 임신과 출산은 엄마는 물론, 아이에게 큰 부담이 된다. 가정 폭력의 출발이 되기도 한다. 

놀랍게도 장기 추적 결과,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은 아이들은 보살핌을 잘 받았다는 만족감이 이해와 공감 능력을 높였고, 이는 학습 능력 향상까지 이어졌다. 무엇보다 아동 학대와 방임이 48%나 감소했고, 범죄와의 연루도 줄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 단지 간호사가 방문하여 이야기만 나누는데 정말 '효과'가 있었을까? 벽돌로 뒤통수를 내리친 엄마, 어린 시절 학대의 경험을 가진 하은 엄마 지영 씨는, 아이를 낳고서도 여전히 '학대'하는 부모로 인해 모든 걸 놓아 버리려 할 때 찾아온 간호사는 다독이며 보살펴 주었다. 엄마 노릇에 서툴거나 거부감을 가진 엄마들을 독려한다. '덕분에 살았다'고 말하는 지영 씨, 학대의 '사후약방문'이 아닌 안정된 가정과 좋은 부모를 향한 '예방책'으로의 첫 걸음이다. 

by meditator 2022. 5. 25. 21:03

5월 16일 방영된 ebs 다큐 프라임에서는 대한민국 아동 100년의 시간을 조망했다. 백원이던 과자가 천오백원이 되었다며 속상해하는 아이들, 이제 그 아이들은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 선생님을 모르는 세대가 되었다. 대신, 유투브에서 초등학생들을 '잼민이'라며 비하한다며 불쾌해한다. '어린이'가 '잼민이'가 된 세상, 과연 방정환 선생님이 '나라의 자원'이 되어야 한다며 소중하게 여기라 했던 어린이는 '존중'받고 있을까? 

 

 

1923년 5월 1일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 선언문'을 선포하셨다. 선언문에는  '재래의 윤리적 억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인격적 대우를 허'하고 그들을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어린이'는 유상, 혹은 무상의 노동을 폐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윤리적, 경제적인 존중은 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933년에 태어난 아동문학가 신현득 선생의 어린 시절은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석유 대신 쓴다며 솔공이를 몇 관씩 따기 위한 '근로 봉사'가 일이었다. 50년대만 해도 동생을 업고 학교에 오는 누나들이 흔한 풍경이었다. 어린이의 노동을 폐하라던 방정환 선생의 말씀이 무색하게 우리의 '산업화'의 동력은 값싼 미성년자들의 노동력에 빚졌다. 6~70년대 여공 중 국민학교를 졸업한 비율은 불과 51%에 불과했다. 

1920년대에 18.5%이던 취학률은 1970년대에 비로소  90%에 도달, 의무교육의 본령을 완성했다. 7~80년대 어린이 공원, 어린이 세계 문학 등 어린이는 핵가족의 꽃이 되었지만, 그런 한 편에서 '혜영, 용철이 사건'처럼 국가가 돌보지 않는 '어린이'들의 인권과 복지는 그림자가 깊어져갔다. 또한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 개혁 이래 우리 사회의 교육은 무한 경쟁의 그늘이 드리워져 갔다. 3인 가정이 점점 일반화되어 가는 오늘날 부모들, 특히 엄마들은 '아이'에게 집중한다. 전략적으로 '육아'에 집중하는 엄마들, 아이들은 '관리'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쁜 아이들,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날'을 선포하던 그 시대와 시대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 '해방'이 절실한 시대이다. 

 

 

우리 아이 잘 되라고 한 잔소린데
다른 의미에서의 '해방'이 필요한 이 시대의 아이들, 그 부모와 아이들의 '일그러진 관계'를 조망하기 위해 다큐 프라임은 '잔소리'를 주목했다. 다큐는 초등학생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전국의 100명에게 '속마음'을 들었다. 5월 17일 방영된 <역발상 프로젝트 잔소리란 무엇인가>에서이다. 

'그렇게 공부할거면 학원은 왜 다니니?
'한심하다, 시간 약속도 제대로 안지키면 인생 망한다.'

부모들이 한 잔소리다. 이 '잔소리'에 아이들은? 한숨부터 쉰다, 지겹다, 아이들의 반응이다. 억양에서부터 다르다고 한다. 일방적이다. 때려박는 말투다. 내 인생을 포기당하는 것같은 잔소리에 어깨가 꺽인다. 잔소리를 퍼붓고 뒤돌아 설거지하는 엄마는 그 뒷모습에서조차 '거칠게' 감정을 쏟아낸다. 집 문 앞에 서면 긴장되고 떨린다고 한다.

물론 이런 아이들의 반응에 부모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100%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연구는 다른 결과를 말한다. 잔소리를 듣는 청소년들의 뇌의 반응을 조사하니 부정적 영역이 높아지고, 이성적 판단이 떨어진다고. 정말 부모들은 사심없이 하는 '걱정'일까? 하지만 공부를 잘하면 '존중'받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부모들의 잔소리에 아이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의 의견에 부모들은 말한다.

'어디 따박따박 말대꾸야!'
'말대꾸 대회가 있다면 1등이겠다.'

부모의 잔소리와 아이의 말대꾸는 '창과 방패'와도 같다. 잔소리를 듣다 듣다 자신을 방어하려고 말했는데 말대꾸란다. 그런데 '말대꾸'는 양면적이다. 듣는 부모의 기분이 좋으면 '의견'이 된다. 하지만 듣는 부모의 기분이 나쁘면 '말대꾸'다. 

부모님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들어야 잔소리를 끝낸다. 해명을 하면 변명이라, 핑계라 하고, 결국 원하는 건, '예, 알겠습니다'이다. 잔소리를 하며 화를 내는 엄마, 거기에 말대꾸를 한 아이, 엄마는 자신의 말을 끊었다고 화를 냈다. 집을 나가라 했다. '승복'해야 끝나는 권력 관계, 아이들은 점차 자신을 숨긴다. 

 

 

'말대꾸'는 어떤 대상에게 사용되는 용어인가? 다큐는 묻는다. '말대꾸'라는 용어 자체가 부모와 자녀 사이에 불평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핵가족이 되어도 어른과 아이가 되는 순간, 불평등한 상하, 수직 관계가 된다. 더구나 한국의 정서에서 '말대꾸'는 더욱 용인되기 어렵다. 

부모는 아이의 말을 듣기 보다, '금지'시킨다. 너 잘되라고 하는 '잔소리'니, 아이는 듣고 시인하며 반성하면 끝이나는 '언어적 관습'이다. 그런 부모의 '잔소리'에는 여전히 아이를 어리고 미숙한 존재로 보는 '편견'이 있다. 미숙한 존재에 대한 부모의 잔소리는 그래서 때론 '잔소리'를 넘어 '말상처'가 된다. 아이 잘되라고 시작한 잔소리가, 아이가 스스로 잘할 자신마저 없어지도록 '상흔'이 되어 남는다. 

'반격'을 하던 아이는 끝나지 않는 부모의 '잔소리' 앞에 결국 입을 닫는다. 하지만 결코 그 '속내'가 부모의 '잔소리'를 승인해서가 아니다. 결국 거듭되는 잔소리, '말대꾸'를 용인하지 않는 수직적 관계 앞에 아이는 입을 닫고 관계는 더 멀어져만 간다. 

그런데 그 '너 잘되라고' 잔소리를 하는 부모들은 정말 아이들에 대해 잘 알까? '자녀 탐구 영역', 자녀들에 대한 문제를 푸는데 사소한 것에서조차 아이를 모른다. 모르는 것도 모르는 것이지만, 자신의 기준에서 아이를 판단하고 있음이 시험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모르는 아이들에 대해 '아는 체'를 하는 어른들, 그런 어른들의 '잔소리'가 설득력이 있을까? 

아이들이 보는 부모는 어떨까? '우리 엄마는 개'예요', 겉모습은 강아지처럼 귀엽지만, 화날 때는 사냥개같아서, '개'란다. 때로는 거침없어 달려가는 '말'같단다. 아이들인 보는 부모는 이중적이거나, 맹수같다. 부모들은 60 vs. 40이라며 자신을 변호하지만, 아이들에게는 90%가 잔소리다. 핵가족이 되고, 아이의 미래가 전적으로 부모의 '능력'에 달려있게 된 경쟁 사회에서 부모들의 '불안'이 잔소리로 표출된다. 또한 어린이날 100년이 되었어도, 방정환 선생님이 말씀하신 아이들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 안되서이다. 존중받은 경험이 부재한 채 '잔소리'에 휩싸여 자라난 아이들, 그 아이들의 '미래'는 어떨까? <어린이라는 세계>의 김소영 작가는 말한다. 작다고 조금만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by meditator 2022. 5. 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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