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민, 이세영, 서하준, 이규형, 정려원, 현재 작품을 하고 있는 배우들이다. 박은빈, 서현진, 소지섭, 이종석은 얼마전 종영을 한 작품의 배우들이다. 이름만으로도 내로라하는 배우들, 이들 배우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맞다, 바로 그들이 작품 속 분한 캐릭터가 모두 '변호사'이다. 9월 23일부터 sbs를 통해 시작된 <천원짜리 변호사>는 2015년 sbs극본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동네 변호사 조들호>와의 표절 문제로 몇 년간 발목이 묶였던 작품이다. 그간의 고전이 무색하게 <천원짜리 변호사>는 전작 <오늘의 웹툰>의 1%대의 시청률이 무색하게 대번에 8%가 넘는 시청률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변호사들이 난무하는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가 인기를 끄는 건 이 작품을 이끄는 주인공이 '연기'와 '흥행'에 있어 입증된 배우인 남궁민인 점도 있지만, 1,2회에서 보여주듯이 단 돈 천원에 서민들의 아픔을 속시원하게 달래주는 서민형 변호사의 등장이라는 점이다. 

서민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변호사라면 <법대로 사랑하라>의 김유리 역의 이세영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전직 검사인 김정호의 건물의 세입자인 김유리는 '로카페'를 열어 동네 주민들의 법률 상담과 해결을 자임하고 나선다. 

<검사 내전>, <마녀의 법정> 등을 통해 법조인 캐릭터로 인기를 얻은 바 있는 정려원은 디즈니 플러스의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에서 성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노착희 변호사로 등장한다. 그녀의 상대역 역시 꼿히면 돌진하는 변호사 좌시백(이규형 분)이다. 일일드라마도 빠지지 않는다. mbc의 일일드라마 <비밀의 집>에서 주인공 우지환(서하준 분)은 어머니의 실종을 밝히기 위해 '흙수저 변호사'라는 자신의 직분을 십분 이용한다. 

이처럼 최근 변호사가 주인공인 작품들은 그들이 변호사라는 직분을 이용하여 '홍길동'처럼 세상의 불의와 맞선다. 그를 위해서 <빅마우스>의 이창호(이종석 분)는 감옥도 마다하지 않는다. '법정은 수술실같다'는 모토 아래, 의사 출신 변호사가 된 한이한(소지섭 분)은 마치 양 날의 칼처럼 의학과 법을 양 손에 쥐고 휘둘러 '의학 카르텔'의 민낯을 벗겨낸다. 

심지어 <닥터 로이어>가 방영될 당시, 동시간대 sbs에서도 변호사가 주인공인 <왜 오수재인가>가 방영되며 인기를 끌었다. 로펌 최고 변호사였던 오수재는 자신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에 맞서 그녀가 가진 '법'이라는 무기로 전지전능한 능력을 뽐낸다. 동시간대 드라마 모두가 변호사가 주인공인 시절, 이 정도면 변호사 '만능시대'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최근에 가장 화제가 된 변호사 드라마라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따라올 드라마가 없을 듯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 그녀가 가진 '한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 남다른 기억력을 살려 우영우는 서울대 로스쿨 수석 졸업을 했고, 한바다의 신참 변호사로 활약한다. 드라마는 변호사가 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허들을 낮춘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 뿐만 아니라, 동성애, 여성의 차별 등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사연을 그녀가 수임한 사건을 통해 세상에 전한다. 

그에 앞서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송중기 분)라는 '특별한 캐릭터'로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려는 변호사 홍자영(전여빈 분)과 함께 법과 법의 경계를 넘어선 활약을 통해 인기를 끌었던 <빈센조>역시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의 범주에 들어간다. 

 

 

검사도 많다
그런데 홍길동 같은 존재는 변호사만 있는 게 아니다. 군 제대 후 복귀작으로 돌아온 도경수가 택한 작품은 kbs2의 <진검승부>이다. 거기서 그는 '불량 검사'가 되어 부와 권력이 만든 성역, 그 안의 악의 무리들을 속시원하게 깨부순다고 한다. <진검 승부>가 방영되면 kbs2 드라마는 월화수목 모두  변호사이거나 검사이거나, '법'이라는 장르 드라마들로 채워진다. 

검사는 또 있다. 2019년 <시크릿 부티크> 이후 역시나 오랜만에 복귀한 김선아는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에서 로펌 대표인 할아버지와 법과 대학 교수인 어머니의 계보를 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부장 검사가 되었다. 

검사이거나,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들,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리다 적어도 한 곳에서는 변호사나 검사를 만나게 된다. 우스개 소리로 현실에서 거의 만날 일이 없는 변호사와 검사들이 드라마에서는 '판을 친다'. 

이처럼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변호사나 검사들은 한결같이 '정의'롭다. 한때는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의 노착희나, <빈센조>의 홍차영처럼 돈앞에 영혼을 팔던 변호사라 하더라도 운명적 사건을 겪으며 2014년 <개과천선>의 김석주(김명민 분)처럼 '개과천선'을 하여 정의의 사도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맞은 편에는 언제나 법과 결탁한 부의 '카르텔'이 있다. 그리고 그 카르텔은 애꿏은 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의 제국을 공고히 하려 한다. 이런 '제국', '카르텔'에 맞서 극중 주인공들은 홀홀단신, 혹은 그들 주변의 조력자들의 도움을 얻어 '조자룡의 칼'처럼 '법'을 휘둘러 이 거대한 제국을, 카르텔을 붕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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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에 대한 갈증인가 안이함인가 
이야기의 소재나 구성은 달라도 시작은 보잘 것 없어도 언제나 정의는 승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앞서 2014년의 <개과천선>이나, 2016년의 <동네 변호사 조들호> 때만 해도 가끔 화제를 끌던 '법조인'들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왜 이렇게 범람하게 되었을까? kbs2의 월화수목을 휩쓸고, mbc의 <닥터 로이어>를 <빅마우스>가 이어받듯이 시청자들은 매일 법조인들의 활약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열혈 검사 이준기의 거침없는 활약을 다룬 sbs 금토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바톤을 이어받은 건 <왜 오수재인가>의 변호사 오수재이다. 그런데 10%대의 높은 시청률로 박수를 받던 이들 드라마의 후속작으로 '직장인의 애환'을 그리겠다는 포부를 내보인 <오늘의 웹툰>은 안타깝게도 1%대의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리고 이제 다시 변호사 남궁민이 이끈 <천원짜리 변호사>는 첫 방부터 8% 고지를 넘는다. 이처럼 여전히 시청자들이 시청률로 호응하는 바 법조인 드라마는 끊임없이 만들어 지게 된다.

또한 '정의'에 대한 여전한 사회적 갈증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변호사이거나, 검사라 하더라도 기존의 '법' 카르텔로 부터 튕겨져 나온 인물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악의 속성을 잘 알면서 동시에 그들을 '정의롭게 무찌를 '법'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법정에 서서 그들을 통쾌하게 '단죄'하는 카타르시스는 여전히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이다. 

하지만 이건 동시에 여전히 우리 사회가 정의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고, 또 다른 면에서는 '정의'를 구현해내는 '서사'에 있어 드라마 제작진들이 '안이'하다는 지점이기도 하다. 법정에서 호기롭게 상대 악을 응징하는 쾌감, 그건 현실에서 여전히 '환타지'의 영역이다. 즉 여전히 드라마가 말하고픈 '정의'는 담론을 넘어서는 구체성에 있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들은 서사를 통해 법적인 정의를 구현하려 애쓰지만, 그런 법조인 드라마들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우려가 되고 있는 '법 전횡 시대'에 대한 본의 아닌 조력자 역할을 하게 되는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지울 수 없다. 


by meditator 2022. 9. 28. 19:48

줄어들기는 커녕 나날이 그 도를 더해가고 있는 학교 폭력, 과연 그 '폭력'의 악순환을 멈출 수는 없을까?

학교 폭력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들어주기 힘든 부탁을 받은 학생이 미안하다고 거절한 이후, 그 학생은 비난을 받았고, 고립되었다. 그 누구도 그 학생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그런 '따돌림;은 폭력으로 이어진다. '너 미쳤냐?', '요즘 안 맞았지?', 하는 상시화된 폭력은 피해자를 지옥으로 몰아간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뻔뻔하게 말한다. '장난'이었어요 . 그리고 어른들은 말한다. '싸우면서 크는 거지',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장난'치는 친구 관계, 아이들은 다 그런 거라는 식으로 학교 폭력을 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장난'이 피해자를 피폐한 삶이나, 죽음으로 이끄는 결과를 낳는다. 

ebs는 지난 8월 29일부터 3부에 걸쳐 <학교 폭력 공감프로젝트>를 통해 그 방향을 모색했다. 

 

 

이 프로젝트는 그동안 학교 일선 및 정부가 앞장 서서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한 각종 조치를 취했음에도 왜 효과가 없었는가라는 의문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프로젝트는 그 의문의 답을 당사자인 '학생'들로 부터 구하고자 한다. 초등학생을 비롯하여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그를 통해 학교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주범'을 '기소'하고자 한다. 선생님들이 '배심원'으로 자리하고, 그곳에 학생들이 기소한 '주범'들이 드러난다. 과연 우리 시대 학생들은 '학교 폭력의 주범'들이 누구라고 생각했을까?

'어른'을 기소합니다. 
'제설제 먹이고 폭행', '오물 뒤집어 씌우고 폭행', 학교 폭력과 관련된 언론의 보도 내용들이다.     학생들은 바로 이런 '언론'을 고소한다. 진정으로 학교 폭력에 대한 우려와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대신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인가에 초점을 맞춘 언론은 자신들이 바로 '학교 폭력'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은 말한다. 언론을 비롯하여 어른들이 만든 콘텐츠는 지루하거나, 폭력적이라고. 언론의 자극적 헤드라인은 피해자를 부각시키며 학교 폭력을 선정적으로 소비할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유투브를 비롯한 sns 역시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내용들을 관심을 끌기 위해 앞다투어 게시함으로써 학생들에게 폭력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언론이나, 유투브만이 아니다. 학생들은 입을 모아 교육 동영상의 유죄를 '기소'한다고 말한다. 어른들 입장에서 일방적인 폭력 예방 캠페인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식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교육부의 캠페인이 '느린 예방 교육'이라 냉소한다. 

 

 

여전히 학생들을 본드나 하고 삥이나 뜯는 구시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캠페인, 하지만 이제 학생들에게는 '사이버 폭력'이 새로운 '폭력'으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 그러기에 일방적으로 틀어주는 학교 폭력 동영상은 시대에 뒤떨어진 '졸린 영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졸지 말라고 하기 이전에 '졸음이 오지 않는', 현실적인 대응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기소한다. 학생들에게 '입'으로 하는 말과는 다르게 막상 '상황'이 벌어지면 '책임'을 면하기 위해 '절차'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생님은 믿을 수 있는 '어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당연히 '학교'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늘 '안일'하게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한 것이 아이들 눈에 비친 '학교'의 모습이다. 당연히 그런 학교와 선생님들의 태도에 학생들은 무력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방관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선생님과 학교만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러기에 학생들은 '대한민국'을 기소한다. 자본주의, 외모 지상주의, 그리고 성취 중심의 경쟁 사회는 학생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그래서 서로를 무시하고, 왕따와 '은따'를 양산하고 학교 폭력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이, 지금의 사회 분위기가 개선되지 않는 한, 그저 일회적인 캠페인 식의 학교 폭력 예방만이 존재하는 한  학교 폭력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 입을 모아 말한다. 즉 학교 생활을 만들어 가는 총제적인 권력 구조, 그 시스템이 바로 지금 학교 폭력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기소'합니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 언론, 나아가 우리 사회만의 문제뿐일까? 학생들은 알고 있었다. 학교 폭력에서 결코 자신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한 여고 뮤지컬 동아리에서 '빈방 있어요'라는 게임을 한다. 술래가 된 한 사람이 둥글게 원으로 자신을 둘러싼 친구들에게 돌아가며 '빈방 있어요?;라고 물어본다. 둘러선 학생들의 역할은 '거절'하는 것이다. 그리고 술래가 뒤돌아서서 '빈방 있어요?;'라고 물어보는 동안, 뒤에 선 학생들은 마치 '방'을 바꾸듯 자리를 바꾼다. 

처음에는 '게임'이니 자신있게 웃으며 '빈방 있어요?'하고 물어보던 술래, 하지만 친구들의 거절이 이어지자, 점차 목소리가 작아지고 떨리더니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고야 만다. 

이 게임은 바로 이른바 '은따', 은근한 따돌림을 시뮬레이션 해본 것이다. 술래가 된 친구는 말한다. 게임이라고 했는데도 세상에서 동떨어진 듯 했다고, 그 무엇도 해도 안 될 것같은 막막함이 들었다고. 반면, 둘레에 서서 '거절'을 한 친구 역시 설사 게임이라 해도 그 '룰'을 벗어나면 되는데 그걸 따르는 자신에게 '죄책감'이 느껴졌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학생들은 마치 '러시안 룰렛'처럼 형성된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나서지 못하는 자신들의 '방관'을, 그리고 '나랑은 상관없어'라는 무관심을 '방관의 카르텔'이라며 '기소'한다고 말한다. 산격 중학교에서는 형사 재판의 형식으로 괴롭힘당하는 친구를 '방관'한 학생에 대한 모의 재판을 열었다. 과연 그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5 ; 4, 유죄와 무죄의 비율이다. 학생들은 비록 한 표 차이지만, '방관'이 유죄가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4표의 학생들은 말한다. 자기도 폭력을 당할 까봐 차마 나서는 게 쉽지 않다고. 그러기에 방관하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나서는 것이 '대단한 용기'라고 배심원이었던 선생님들은 말한다. 그리고 그 '방관'의 카르텔에서 몸을 숨긴 학생들을 바꾸면 학교 폭력이 만연한 현실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이와 같은 학교 폭력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행복지수 2위, 경쟁없는 교육을 지향하는 덴마크에서도, 국가 학력 조사 최상위국인 핀란드에서도 학교 폭력의 관행은 피해갈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 학생들의 학교 폭력에 대한 고민을 공유한 이 나라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의견에 적극 공감을 표한다. 그리고 역시나 일회적인 캠페인 성 교육이 아니라 지속적인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연대감, 그리고 사회적 감정 교류의 능력을 고양 시켜야  학교 폭력의 악순환, 그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by meditator 2022. 9. 22. 23:18

9월 15일 방영된 <한식 연대기> 3부는 한식을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들어간다. 개미투자자로 분한 주상욱과 그런 개미투자자를 이끄는 주식 크리에이터 슈카가 하나의 기업으로 '한식'을 투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식이다. 

 

 

한식이란? 
왜 이런 식의 '접근'을 했을까? 들어가기에 앞서 <한식 연대기>는 서울대 문정훈 교수를 비롯한 다수의 전문가들에게 묻는다. '한식이란?' 그런데 각 분야에서 트렌드로서의 한식을 이끌어내고 해석해낸 전문가들이 쑥쓰럽게 머리를 긁적인다. 딱 맞춤한 답이 떠오르질 않아서이다. 일본식 간장으로 부터 시작된, 이른바 '왜간장'이라고 불리던 샘표 간장은 한식일까? 아니, 일본 라멘이 원조인 우리의 라면은? 예전 조상님들은 드시지 않았다는 튀긴 닭은 또 어떨까? 그렇다면 '집밥'이 한식일까? 집밥보다 '햇반'이 익숙한 세대는 '한식'을 안먹는 세대일까? 

<3부 한식 주식회사> 바로 이렇게 이제는 '모호'해진 '한식'의 정의를 추적해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통 집밥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k푸드로 거듭난 '미래 성장 가치'가 좋은 우량주 '한식'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한식 주식회사'가 처음 시작된 때는 언제일까?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샘표 간장의 cm송을 자연스레 기억해낸 주상욱은 그 자신도 의아해한다. 그처럼 그와 비슷한, 혹은 그보다 나이가 많은 연배가 자연스레 기억해 낼 샘표 간장 cm송처럼, 샘표 간장은 오랜 기간 간장의 대명사였다. 그리고 <한식 연대기>는 이 샘표 간장을 한식 주식회사의 시발점으로 본다. 

한식의 핵심 구성은 밥과 반찬으로, 반찬은 '간'이 되어있다 이 '간'의 베이스가 되는 간장, 그런데 오랜 시간, 아니 지금도 우리 민족은 '간장'을 담궈왔다. 그런데 그 간장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1년 여의 숙성 기간과 그에 걸맞는 공간이 필요했다. 해방 후 월남민들, 그리고 이어서 터진 6.25전쟁은 우리 전통의 간장을 담글 수 있는 '환경'을 앗아갔다. '불하'받은 일본 간장 공장에서 만들어진 간장, 아직 낯선 간장을 팔기 위해 주부 사원들이 집집마다 방문을 했다는데, 집집마다 다른 '장맛'이 '판매용 간장'의 일률적인 맛으로 변화되었고, 이 '간장'을 기반으로 한 달달한 불고기가 '꿀맛같은' 고기 요리로 자리잡았다. 2013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2320억 병의 양조간장이 팔렸다. 

 

 

집밥, 그 패러다임의 변화 
집밥 한 상이 '한식 주식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한식 연대기>는 그 변곡점을 '포장 기술의 혁신'에서 찾는다. 그리고 '음식'을 '포장'해서 파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끈 주역은 다름아닌 '두부'이다. 

나이가 좀 있는 연배들은 기억할 것이다. 저녁 무렵 딸랑딸랑 울리던 두부 파는 아저씨의 종을, 그처럼 두부는 '판두부'로 거기서 한 모씩 떼어서 팔던 음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두부를 만드는 데 쓰이는 '간수'에 공업용 석회가 들어간다는 두부 파동을 거치며 시중 두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져 갔다. 또한 때는 바야흐로 1980년대 국민총소득 증가와 함께 먹거리에 대한 가치 기준이 높아져 가던 시기였다고 한다. 바로 이때, 깨끗한 물로 포장한 두부가 등장했다. 또한 이른바 '콜드체인 시스템'으로 콩나물과 두부가 냉장 유통으로 통해 대중의 '위생 욕구'에 호응했다. 이러한 냉장 유통을 통해 위생 관리 '콜드 체인 시스템'은 전문가들이 식품계의 반도체가 평가할 정도로 '한식'의 앞선 기술을 선도한다. 이제는  2021년 기준  하루  50만 모 5400억 규모의 시장이 되었다.ㅣ

반찬의 베이스가 되는 간장, 그리고 포장 기술의 혁신, 그렇다면 다음 '한식'의 변화를 이끌 주역은 무엇일까? 바로 '밥'이다. 1996년 방부제 없는 즉석밥 '햇반'이 등장했다. 햇반을 만든 CJ는 소비자들의 생활 패턴이 변화되고 있으며 특히나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는 삶의 변화에 주목, 즉석밥을 착안했다.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여전히 밥은 밥솥에 해먹어야지 하던 시절, 밥은 모성의 상징이자 자존심이었다. 과감한 투자를 했지만 엄청난 손해가 따랐다고 한다. 하지만 시대는 급속하게 변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바빠졌다. 6880억 시장, 100배나 성장했다. 매년 40억 개의 햇반이 생산된다. 

가정 간편식으로 '밥'이 나왔다면, 그 다음은? '국'이 그 뒤를 따른다. 물론 국은 즉석밥처럼 처음부터 맛있지는 않았다. 예전만 해도 국은 건조된 덩어리에 분말 엑기스를 넣어 끓여야 했다. 하지만 이제 간편식으로 사먹는 국은 집에서 끓인 음식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 진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탕'이 바로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고깃국', 그 중에서도 육개장이다. 육개장을 비롯하여 품목만 해도 38952개의 가정 간편식, 밥, 국, 찌개, 구이, 튀김, 전 등등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린 한식 상차림, 그걸 이제는  '가정 간편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엄청난 시장이다.

 

 
삶의 질과 함께 한 음식 문화 
밥도 나오고, 탕도 나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소울 푸드'를 물어보면, 밥도 아니고, 탕도 아니고, '라면'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1961년 첫 등장한 한국인의 소울 푸드, 처음 사람들은 그 이름만 보고 옷감이라 착각하기도 했단다. 물론 개발을 한 건 '일본'이다. 하지만, 일본식 라멘을 우리의 국밥 문화에 맞게 변화시켜 나갔다. 특히 '소고기 국밥'을 좋아하는 우리 식문화에 착안한 1970년에 판매를 시작한 '소고기 라면'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여전히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일년에 70개에서 80 개 정도, 연간 생산량 39억 개의 라면으로 속도 풀고 마음도 푼다. 

많이 먹는 걸로 치자면 '치킨을 빼놓아서는 섭섭하다. 체인점과 개인 업주를 합쳐 전 세계 맥도날드 점포를 앞선다는 우리나라의 치킨집, 그런데 '치킨이나 '라면'을 즐겨먹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제된 기름의 안정적인 공급이 이루어져야 하는 전제가 필요하다. 원래 '한식'에는 튀긴 음식이 없었다고 한다. 당연히 튀기는 기름을 위한 산업도 불모지였다. 하지만, 정치적 격변기를 겪고 자리잡은 정부는 국민들의 안정적인 식품 공급을 위해 콩기름 공장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이에 힘입어 대형 식용유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콩 100톤으로 식용유를 만들면 생산량은 17톤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두박이라는 단백질 부산물이 나오고, 이는 돼지들의 단백질 사료로 쓰인다. 즉 식용유의 대량 생산은 뜻밖에도, 혹은 정책적으로 축산업의 부흥을 유도했고 '돼지 고기'의 대중화를 이끈다. 

해방 후 양조 간장의 등장으로 부터 시작된 '한식 주식회사', <한식 연대기>는 우리 민족의 삶의 질과 음식이 궤적을 맞추어 발전해 온 과정을 조망한다. 70년대의 쌀부족이 제분 산업 발전을 낳았고, 80년대의 국가적 발전이 식품 산업의 생산을 선도했다. 90년대 나아진 삶의 질은 식품 산업의 고급화를 선도했고, 2000년대 이후 가족 형태의 변화는 간편식 시장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더는 집에서 곰국을 끓이지 않는 시대, 제품으로서의 한식의 발전이라는 기반 위에서 이른바 'K푸드'의 발전이 가능할 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by meditator 2022. 9. 16. 18:27

스위스, 이탈리아, 유럽을 다녀온 사람들은 빠짐없이 다녀온 국가이다. 물론, 해외라고는 제주도만 겨우 가본 기자에게는 언감생심이지만, 그래도 책이나, 다녀온 이들의 경험담, 영상 등을 통해 그곳이 마치 가본 듯 익숙한 지역이다. 그런데, 그 '익숙함'에 신선한 균열을 가져온 프로그램이 있다. 여행을 가고, 캠핑을 하고 뭐 또 새로울 게 있을까 하는 여행 예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유럽으로 캠핑을 가다니, 뭐가 새로울까 싶은데 보고 있노라면 그곳으로 떠나고 싶다. 나도 그곳으로 떠나 스위스 산맥을 마주하고 라면을 끓여먹고 싶다. 한적한 이탈리아 마을을 달려보고 싶다. 

 

 
넉넉한 리더쉽의 유해진이 이끌고 
예능하는 유해진은 이제 새로울 게 없다. 일찌기 ,<1박2일 >로부터 시작해서 <삼시세끼 어촌편>, <스페인 하숙> 등 그의 예능 출연은 2012년부터 쭈욱 이어져 왔다. 영화 속 그의 캐릭터와는 또 다른 여유롭고 만능 캐릭터로서 그의 모습이 그를 예능의 단골 출연자로 만들어 왔다. 예능에서 익숙한 유해진, 그래서 다 안 것 같은 유해진, 그런데 <텐트 밖은 유럽>에서 유해진은 그렇게 시청자들이 익숙하게 소비해왔던 유해진과 또 다른 면의 유해진을 만나게 된다. 마치 벗겨도 새로운 면이 나오는 양파처럼 유해진은 또 새로운 인물로 시청자들을 새로운 공간 속 새로운 만남으로 이끈다. 

애초에 <텐트 밖은 유럽>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평소 유해진이 즐겨찾는 유럽의 여행 루틴을 기반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자신이 가보니 좋았던 곳을 제작진에게 추천하고 그에 따라 유럽에서 캠핑을 한다는 '신박한' 발상의 프로그램이 등장한다. 즉 평소 촬영이 없을 때면 스위스를 찾아가 조깅을 하며 여유를 즐긴다는 유해진, 그러기에 <텐트 밖은 유럽>은 애써 만들어진 코스가 아니라 그가 즐겼던 여정을 따라 유연하게 흐른다. 시청자들은 여전히 프로그램 속에서도 아침이면 일어나 조깅을 하고, 그러다 더우면 강에 뛰어드는 유해진을 통해 '자유로움'을 공유하게 된다. 

이건 어촌이나 스페인 하숙처럼 제작진의 주문한 공간과는 또 다른 여행의 맛이다. 유럽으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어딘가를 '본다'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여행 프로그램의 주된 목적이었다. <텐트 밖은 유럽>은 지금까지 여행 예능과는 다른 여행을 한다. 14일 방영된 이탈리아 여행에서 이탈리아 하면 빼놓지 않고 다니는 피렌체에서 '티본 스테이크'를 맛본 일행은 피렌체을 '관광'하는 대신, 차창 밖으로 유명한 피렌체의 다리를 지나치는 것으로 대신하고, 토스카나로 떠난다.

 

 

멈춤, 그리고 쉼 
유명한 도시의 유적 대신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즐비한 길을 달리고, 잠시 내려 그 자연의 풍광을 만끽하는 식이다. 토스카나 한갓진 곳의 캠핑장에서 노을을 바라보던 진선규가 '평생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말이 온전히 실감나는 이유이다. 공작새가 기웃거리는 그 낯선 이방의 공간, 그 찰라의 시간은 그의 말 그대로 평생 다시 만나기 힘든 여행의 순간이다. 

다시는 못올 인생의 순간, 그 말을 공감케 만드는 건 익숙한 유럽의 여행자 유해진과 함께 한 다른 출연진들의 몫이다. 캠핑도 처음이고 유럽도 공연말고는 처음인 진선규, 캠핑 마니아이지만 산넘고 물건너 이 프로그램이 아니고서는 다신 못올 거 가다는 박지환, 그리고 붙임성 좋은 막내 윤균상의 조합이 절묘하다. 더구나 최근 <공조 2>를 통해 돌아온 유해진과 진선규의 선후배 조합에, <우리들의 블루스>, <범죄도시2>를 통해 대중적 호감도가 급상승한 박지환의 등장은 그 자체로 신선하고 흥미롭다. 

영화 속 캐릭터와는 다르게 뭘 해도 어린 아이처럼 천진하게 반응하는 진선규와 , 캠핑 매니아답게 등장하는 순간부터 주먹구구식 캠핑초보들을 이끄는 박지환의 능숙함과 배려심, 그리고 아직도 예능이라는 프로그램에 어딘가 쑥쓰러운 모습에 한참 어리지만 내공 만랩인 선배들 사이에서 무던하게 어우러지는 윤균상의 넉넉함이 <텐트 밖은 유럽>의 팀웍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그 팀웍의 중심에 넉넉한 리더쉽을 지닌 유해진이 있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 젊은 세대들이 나이든 세대들을 거부하는 상징인 '라떼는 말이야', 그런데 <텐트 밖은 유럽>은 유해진의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된다. 자신이 다녔던 스위스의 인터라켄 정상으로 일행을 이끌고, 강물에 기꺼이 몸을 담을 것을 권해보는 식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고 하지만, 그의 방식은 여느 어른들의 '라떼는 말이야'랑 좀 다른 뉘앙스로 다가온다. 

14일 방영된 토스카나 캠핑 장에서의 '수구' 경기에서처럼 그는 일행보다 한 발 앞서 같이 즐기면 좋을 것들을 챙긴다. 먼저 가서 수영장도 보고,  깊이도 측정해 보고, 같이 수구할 수 있는 공을 대신할 빈 페트병도 챙기는 식이다. 자신이 가봐서 좋았던 인터라켄의 등정도, 유럽의 더운 날씨에 함께 옥빛 호수에 몸을 던져 보는 것도 평생에 잊지 못할 순간을 후배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그는 솔선수범한다.

​​​​​​​그의 자유로운, 하지만 용의주도한 리더쉽 덕분에 후배들은 스위스 빙하수에 몸을 던지는 일탈을 만끽할 수 있다. 어디 함께 한 후배들뿐인가. 첨벙하고 그들이 물에 몸을 던지는 순간. 시청자들도 일상의 균열을 가져오는 여행의 온전한 감성을 함께 만끽하게 된다. 또한 끊임없이 던지는 그의 ' 썰렁한 아재 위트'는 70년생 그와 한참 터울이 진 후배들 사이의 균열을 메우며 '짬밥'으로 따지면 수직 서열인 이 '무리'의 긴장감을 잊게 만든다. 

취리히에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8박 9일의 여정은 아직 진행중이다. 흔히 우리에게 여행은 많은 것을 보는 것, 더구나 먼 유럽으로의 여행은 빠듯한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눈에 담는 것이라는 강박을 가지도록 만든다. 하지만 <텐트 밖은 유럽>은 그런 여행의 방점을 달리하도록 만든다. '불멍'이라는 말이 유행하듯이, 최근들어 여행은 어디를 가는 것보다, 일상을 탈출한 시간과 공간을 통해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속 명대사 ' Dolce far niente (돌체 파 니엔테), 달콤한 게으름'이라는 말처럼. 그런 면에서 <텐트 밖은 유럽>은 그런 새로운 트렌드의 확장판이다. 

매일 새로운 캠핑장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게으름'과는 멀다. 날마다 텐트를 펴고 접고, 박지환이 들고온 '한식 가방'들을 박지환보다 더 반기듯  매일의 끼니를 마련하는 수고로움들, 그리고 거친 비바람과 대번에 빨래도 말려버리는 유럽의 변덕스러운 날씨들, 하지만 그런 고달픈 여정 속에서도 출연진들은 자신들 앞에 펼쳐진 유럽의 자연을 놓치지 않고 호흡한다.  그들의 애써 찾은 '여유'덕분에 고풍스러운 건물과 유적들 사이에 숨쉬는 유럽의 풍광들이 시청자를 찾아온다. 길게 늘어선 사이프러스 나무  저편에 펼쳐진 밀밭들을 거니는 잠시의 시간, 그저 스위스 산맥을, 옥빛의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순간, 그 '멈춤'의 순간이 온전한 '쉼'의 여유를 준다. 


by meditator 2022. 9. 15. 20:18

1927년 경성방송국으로 시작해서 1947년 국영 서울 방송국으로 출범한 kbs의 아카이빙(특정 기간 동안 필요한 기록을 파일로 저장 매체에 보관해 두는 일.)은 그 자체로 우리 현대사의 기록이다. 추석을 맞이하여 kbs는 이 아카이빙을 기반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이룩한 눈부신 한강의 기적, 88올림픽의 성공, IMF 위기 극복 등 KBS의 풍부한 아카이브를 발판으로 격동의 근현대 120년 역사 안에서 한식이 정치, 경제, 사회와 어떤 상관관계로 변화 발전하는지 밀도 있게 짚'어보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4부작 <한식 연대기>이다.

 

 

그 중 9월 10일 방영된 1부는 '정치의 맛'이다. 올 5월 종영된 <태종 이방원>에서 이방원으로 분했던 주상욱 배우가 프리젠터로 등장한 1부에는 한국한 중앙연구원의 주영하 교수의 설명에 기대어 우리 현대 정치사와 '한식'과의 관계를 살펴본다. 또한 정치와 한식의 실례를 증명하기 위해 홍준표, 박지원, 심상정 세 사람의 정치인이 각각 자신이 즐기는 '한식'을 통해 정치 속 한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치가 만든 한식 
정치와 한식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1890년 조선 시대의 밥상 위에는 이른바 '고봉밥'이 올려있다. 고봉 가득 흰 쌀밥에 고깃국을 푸짐한 한 끼 식사의 표본으로 삼았던 조상들답게 사진 속 남자는 왜소하지만 그가 먹을 밥상의 밥은  무려 640g, '거인'의 밥그릇처럼 엄청나다.

그렇게 '밥'을 즐기던 우리 조상들, 그런데 이 '고봉밥'을 사라지게 만든 것이 바로 '정치'이다. 1973년의 표준 식단제는 지금 우리가 식당에서 만나는 고봉밥의 1/3 정도 밖에 안되는 공기밥을 표준으로 정했다. 심지어 돌솥밥도 안됐다. 이제는 우리 삶에 너무도 당연하게 스며든 '한식'의 요소요소들에 얼마나 많은 정치가 영향력을 끼쳤는지, <한식 연대기 - 1부 정치의 맛>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군사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에 오른 박정희 대통령, 그는 취임 선서에서 '국민을 굶기지 않고 정부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던 시대는 홍준표 시장조차 '가난ㄴ이 참 고통스러웠다'라고 회고할 정도로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1963년 우리 국민 소득이 100달러, 가난하고 굶주리던 시대였다.

 

 

박정희 정부는 1956년부터 우리나라에 공급된 미 잉여 농산물 원조, 원조받은 밀가루가 있으니 쌀을 적게 먹는다면 항시적인 쌀부족에서 탈출할 수 있겠다는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6,70년대의 혼분식 장려운동이다. 지금 우리가 즐겨먹는 설렁탕에 든 '국수', 그게 바로 '혼분식'의 결과물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먹었다던 오래된 곰탕집은 혼분식 시대의 물결을 넘어서고자 '만두'를 빚어 팔았고, 하루 몇 천개 씩 만두를 만들던 기억 때문에 84세의 주인 김희영 씨는 이제는 만두를 먹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짜장면도 올랐어', 우리는 물가가 오르면 그 기준을 짜장면에서 찾는다. 짜장면이 그 기준이 된 것도 바로 '혼분식 장려 운동'때이다. 70년대 60원쯤 하던 짜장면, 하지만 전국 각 짜장면 가게마다 정해진 값은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서민 식단'의 지표로 짜장면 가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짜장면을 비롯하여, 서민들이 즐겨먹는 짬뽕, 탕수육 등 가격을 정부가 정했다. 값싼 짜장면 가격 통제로 인해 전국에 짜장면 가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현재 전국에 2300여 점포, 하루 600만 그릇을 먹는 여전히 우리 국민이 사랑하는 '서민 식단'의 대표 주자로 여전히 짜장면은 자리매김한다. 어디 짜장면 뿐일까, 칼국수, 수제비, 그리고 떡볶이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에 우리가 즐겨먹는 '밀가루 음식'들이 '서민 음식'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게 바로 이 시시절이다. 

이제는 사라진 '통일벼', 병충해에 강하고 생산량이 일반벼보다 2배 반이나 높은 통일벼가 1972년 보급되기 시작하며 1976년 드디어 쌀 자급화에 성공하게 되며 '한식의 역사의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박정희의 시대는 또 다른 군부 쿠데타로 막을 내렸다.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유혈진압하며 들어선 전두환 정권, 이른바 3S(sex, sports, screen) 정책을 통해 국민들의 울분을 달래려 했다. 또한 1980년 컬러 방송의 시작으로 '시각적 자극'을 주는 '요리'가 tv프로그램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1981년 여의도 에서 '국풍 81'이란 이름의 대규모 문화 예술 축제를 개최하여 시선을 돌리고자 했다. 100만 명이 다녀간 이 축제를 통해 지역 음식이던 전주 비빔밥을 비롯하여 충무 김밥, 춘천 막국수, 순창 고추장 등이 전국적인 '메뉴'로 거듭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경제 호황을 발판으로 한 금기된 욕망이 마음껏 분출되는 한편에서 언론 자유는 탄압되었고 노동 운동은 암흑기를 거치고 있었다. 1964년 국가 산업 단지로 등장한 구로 공단에서는 70년대 후반 이미 11만영의 노동자들이 '때우기' 식의 짜디짠 간의 '짠밥'을 먹으며 우리 산업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이들과 학생운동의 성장은 결국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이끌었다. 더는 먹고 살고 보자의 슬로건만으로는 국민들을 '탄압'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다. '성장'과 함께 '분배'가 새로운 시대적 담론으로 등장했다. 

또한 1988년의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경제적 안정은 밥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1985년 향토 음식이던 수원 왕갈비가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다. 왕갈비를 비롯하여, 삼겹살, 돼지 갈비, LA 갈비 등 밥상의 육식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1970년 불과 5kg이던 연간 육식 소비량은 2000년 30kg을 넘어 이제 52kg으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고기'를 즐기게 되는 식습관의 변화를 선도하는 ** 가든들이 등장했다. 삭막한 아파트들이 즐비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식당에서나마 여유를 즐기며 고기를 뜯고 싶어했다.  고기를 자르는 '가위'가 흉측하다던 외국인들, 하지만 이제 세계 어디를 가도 한식 요리의 '가위'는 자연스러워질 정도로 우리 한식의 위상은 국가적, 문화적 위상과 함께 올라갔다. 

정치인, 정치인의 음식들 
다큐는 이렇게 정치와 함께 변화를 겪은 '한식'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정치인들의 '음식'을 살핀다. 정치철만 되면 표를 얻고 싶은 정치인들은 시장으로 달려간다. 민심의 바로미터가 시장이기에 서민 음식을 잘 먹는 모습으로 자신들의 얼마나 서민을 위하는 정치를 잘 할 것인가를 증명한다. 이른바 '서민 코스프레', '정치국밥'이란 용어가 등장할 정도다. 그런가 하면 그들의 '음식'을 통해 그들의 정치를 살펴볼만한 정치인들도 있다. 그 대표적 인물이 YS 김영상 대통령과 DJ 김대중 대통령이다.

1993년 문민정부를 이끈 김영삼 대통령은 이른바 서민 음식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칼국수'를 즐겨 먹는다. 소탈한 한끼 식사의 상징 칼국수는 YS가 이끌고자 한 개혁 정치의 코드로 등장한다. 또한 우리밀 살리기 운동의 시절 대통령이 '솔선수범' 우리밀 칼국수를 먹음으로써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이념을 표상화'시켜냈다. 

그런가 하면 극심한 지역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대통령이 된 DJ는 홍어를 즐겨 먹으며 호남의 맛을 세상에 알렸다. 김대중 대통령 덕에 인기를 얻은 홍어는 전라도 만으로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남미, 칠레, 아르헨티나 홍어를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이 가능한 배경에는 1993년 우르과이 라운드를 기점으로 한 쌀 시장 개방에서 부터 시작된 다양한 식자재 시장의 개방이 있다. 

정치인이 즐겨먹는 음식만이 아니다. 국빈 만찬 등 국가적인 '한식'의 밥상은 '독도 새우'라던가, '미국산 소고기' 등에서 보여지듯이 다양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통로가 된다. 서로 다른 정치적 색을 가진 정치인들을 모아놓고 먹는 '비빔밥'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즐겨먹게 된 '갈비'류, 식당에서 만나는 '스테인레스 밥그릇', 그리고 무심코선택한 짜장면을 비롯한 칼국수, 수제비 등의 밀가루 음식들, <한식 연대기- 1부 정치의 맛>은 그런 익숙한 한식들이 외람되게도 우리 현대사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백성은 먹을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 그러기에 위정자는 백성의 음식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사기'의 구절을 내세운 아카이빙 다큐, 과연 우리가 지나온 현대사는 저 사기의 문구를 '실현'한 시절이었을까? '아카이빙'에 대한 회고와 감상을 넘어, 우리 현대사에 대한 다양한 소회를 불러일으키는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22. 9. 12. 19:37

<이창동; 아이러니의 예술(이하 이창동)>이 EIDF2022 '클로즈업 아이콘' 편으로 방영되었다. '한 시대의 혹은 사회의 아이콘이 된 거장들을 마치 카메라로 클로즈업하듯 들여다보며, 이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고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주목하는' 클로즈업 아이콘, 알랭 마자르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최신작 <버닝>에서 시작하여 <시>, <밀양>, <오아시스>, <박하 사탕>, <초록 물고기>까지 그의 작품을 공간과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또한 거기서 더 나아가 영화 감독 이전 문학을 하던 이창동과 문학을 하기도 이전 어린 이창동의 시간을 주유하며 우리가 아는 이창동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최근 자신의 작품들을 리마스터링 하고 있다는 이창동 감독, 그와 함께 그의 지난 작품들을 복기하니 말 그대로 감회가 새롭다. 윤정희 배우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머니로 등장하는 2010년 작 <시>, 사춘기에 접어 든 손자와 함께 고단한 삶을 버텨가는 할머니는 '시'를 쓰고 싶어한다. 시창작 교실 선생님은 '일상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시라 정의하시고, 하지만 할머니가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으려 애쓸수록 할머니의 손에 잡히는 건 '부조리한 삶'이다. 손주의 부도덕한 행위와 마주하게 된 할머니, 결국 할머니는 자신의 온몸을 던져 '시'를 완성한다. 

시를 쓰려다 '현실'의 암흑을 발견하고 자신을 던져 '진정성'을 구하려 했던  할머니의 모습에 문득 세월호 이후 분노하며 거리에 섰던  평범한 이웃들이 떠올랐다. 그렇듯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우리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화두를 담아낸다. 시를 쓰는 할머니를 통해 감독은 고통스럽고 부도덕한 현실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물었다.  2010년에 감독이 우리 사회에 던진 던진 질문에 2017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화답했다.  영화 <시>뿐만이 아니다. <초록 물고기>에서 <버닝>까지 그대로 우리의 지나온 시간이자, 삶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그가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건 그런 시대 정신의 대변인으로써의 그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현대사의 대변인 이창동 
기자가 처음 이창동 감독을, 아니 이창동이란 사람을 알게 된 건 '문학 전집'을 통해서이다. 70년대 대표 작가들을 모아놓은 전집에서 이제는 기억조차 아련한 소설가 이창동의 작품을 만났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내내 감독이었지만 그의 영화는 '소설'처럼 읽힌다.  감독 이창동의 작품은 '문학작품'처럼 분명한 '플롯'과 '전개'를 가지고 관객에게 '열독'을 권한다. <밀양> 속 하늘도, 햇빛도 그 자체가 하나의 문장 속 지문처럼 읽혔다. 하루끼와 윌리엄 포크너의 만남같다는 <버닝>속 종수와 M을 감독의 설명이 그래서 대번에 이해되기도 한다. 

다큐는 이창동 감독과 함께 관객들을  작품의 배경이 된 그곳으로 다시 여행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다리 아래서 무심하게 놀고, 그 다리 아래 강물을 따라 내려오는 여학생의 시신, 느닷없이 보여진 범죄라는 감독의 설명을 배경으로 다시 한번 소환된 <시>속 소도시, <버닝> 속 답답하던 그 후암동 빌라, 빽빽하기도 하고, 비밀스럽기도 한 밀양이라는 특별한 하지만,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있는 세속적인 지방 소도시, 코끼리가 등장하는 환타지의 공간이 된 오래된 임대 아파트, 그때만 해도 참 시골스러웠던 <초록 물고기>의 배경 일산과 '암흑가'의 정의가 된 영등포 까지 우리 현대사의 '현장'을 '답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감독 이창동의 시간이지만, 그의 작품과 함께 시대를 읽고 고뇌했던 관객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던 그 철교 위의 '영호',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1980년대를 '시인'했다. <초록물고기>를 통해 '자본주의화'되어온 사회의 그림자를 체감했다. 이창동 감독은 <밀양>을 빌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밀양>이라는 작품 주제가 된 '용서'는 시내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일본 제국주의, 6.25 전쟁, 군사 독재의 고통을 겪어낸 우리 현대사, 그 고통을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가라는 화두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이 처럼 작품 속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던져진 개인을 통해 우리 현대사가 짊어진 숙제를 직시한다. 

또한 다큐를 통해, 감독이기 이전 개인 이창동의 역사를 더듬어 간다.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화제가 되었지만, 이미 2002년 감독은 <오아시스>를 통해 '도전이자 실험'을 시도했다.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1급 뇌성마비 장애인인 여주인공, 영하 20도에 반팔을 입고 갓 출소한 종수라는 한 눈에 보기에도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은 남주인공을 만나 '소통'하고 '사랑'한다는 설정은 '화제'를 넘어 사회적 쟁의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담론을 넘어 다큐는 우리가 몰랐던 뇌성마비 누나를 둔, 그래서 그 누나를 지키려 애썼던 가난하고 말수적은 소년을 찾아낸다. 그의 고향 대구, 그리고 다니던 초등학교를 주유하며 장애인이었지만 똑똑하고 용감했던 한공주의 '의연함'의 근원을 헤아리게 된다. 그리고 그건 이창동의 개인사이지만, 그와 같은 또래의 가난하고 의지할 곳없이 그래서 잡초처럼 세상과 싸우며 시대를 헤쳐온 이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명장'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현대사의 '산증인'이자, '증언자'로서 이창동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또한 다큐는 그의 작품을 빛냈던 배우들을 소환한다. 어떤 여배우가 이 캐릭터를 맡을 수 있을까 '숙제'였다던 <오아시스>의 한공주, 하지만 문소리를 감독이 기대했던 이상의 한공주의 모습을 보여줘서 감탄했다는 감독의 후일담에 문소리의 소회가 얹힌다. 아이를 잃고, 신에 의탁하고 다시 신과 싸우는 버거운 임무에 도전하는 <밀양> 역의 시내를 맡은 전도연에게는 배우 스스로 느끼며 발현할 수 있도록 애썼다는 '설득'의 디렉션을 제시한다. 

이렇듯 이창동 감독의 작품은 작품 자체로도 뛰어나기도 하지만, <초록 물고기>의 한석규, <박하 사탕>의 설경구처럼 캐릭터로 우리에게 각인된 스타의 등용문이기도 하다. 다큐는 그런 그의 작품들을 통해 그 캐릭터로 기억된 배우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듣는 귀중한 시간이 된다. 

다큐 <이창동>은 그래서 묘한 경험이 된다. 감독의 작품이 곧 '내가 살아온 시간',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복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초록 물고기>로부터 <버닝>까지, 새삼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돌아보게 된다.  

by meditator 2022. 8. 30. 14:53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필수적'인 교육 과정처럼 여겨진다. 그 '코스'에서 여성이나 남성의 차별은 거의 없다. 외려 '대학'이 인생 최대의 관문처럼 여겨져서 문제가 될 정도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직업은 어떨까? 모두에게는 아니겠지만 나름 선망하는 '트렌디'한 직업군이 아닐까? 만약에 결혼한 아내가 대학에 가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면 어떨까? 부부가 모두 직업을 가지는 것이 더는 이상하지 않을 뿐더러, 당연해지는 세상이다. 그런데 동시대에 살면서 '대학'에 가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이혼'을 해야 하는 여성의 삶은 어떨까? 자피르 나자피 감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이다. 

 

 ⓒ EBS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픈 주부
미나 살레히는 지금 일생일대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이란 고원 지대에서 농장과 가축을 기르며 제법 넉넉한 형편인 골 모하마드와 결혼하여 아장아장 걷는 아들을 둔 주부이다. 

그녀는 작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번 학기 등록금까지 냈음에도 그녀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다. 집안의 반대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친척이 하던 미용실에서 일하던 그녀는 처음엔 영화 배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만난 감독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때 그녀의 눈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들어왔다. 그 일을 배웠다. 어려서 부터 화장하는 걸 좋아하던 그녀의 적성에 딱 맞았다. 돈도 좀 벌었다. 본격적으로 그 일을 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청혼했다. 양을 팔아 화장품을 사주겠다던 남편, 대학에도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결혼 후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다. 

영화는 미나 살레히와 골 모하마드가 사는 이란 고원 지대를 배경으로 대학에 가기 위한 한 여인의 고군분투기를 담는다. 결혼 전에는 대학에 가라고 했던 남편은 이제 '이혼'을 하고 가라고 말한다. 아이의 양육권도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처지이다. 세상에 대학에 가고 싶다는데 이혼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울 수가 없다. 부족의 전통이란다. 

 

 ⓒ EBS

 

아들이나 잘 키워 
남편과 시댁은 그 이유로 큰 집을 든다. 형님이 공부한다고 대학을 가고 아주버님은 중독자가 되었다고 한다. '엄청 건방져졌어'라는 게 그 형님에 대한 집안의 평이다. '차 한 잔 가져와'로 시작한 남편의 말은 '여자는 아무데나 갈 수 없다'며 우유도 짜고, 카펫도 뜨고, 빨래도 하고, 애나 키우라고 말한다. 여전히 미나는 손빨래를 한다. 심지어 미나가 양떼를 잘 돌보지 못해 10마리나 도망갔다며 그 금액을 들먹인다. 

미나는 분노한다. 자신을 속였다는 것이다. 분명 대학에 보내주겠다며 청혼을 하고서는 이제 와서 안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다그치지만 남편은 '전통'을 들먹인다. 외려 하루 종일 대학이랑 화장 생각만 한다며 우리 어머닌 가정부가 아니라고 따진다. 그렇다고 꺽일 미나가 아니다. ' 하지만 아직은 겨우 소심하게 양말을 벗어 빨라는 남편에게 스스로 좀 빨라고 하는 식이다.

내가 정작 어머니 밑에서 가정부 일을 하고 있잖아요.


혹시나 싶어 시어머니께 하소연을 해보지만 씨알도 안먹힌다. 연신 양털로 실을 뽑아내고 카펫을 짜며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신다. 아내가 됐으니 대학은 안된다는 것이다. 화장은 무슨 화장이냐며, 구리 그릇에 물을 채워 거울 처럼 썼다며 옛날 일을 들먹인다. 

아내를 구스르기 위해 대학과 화장만 포기하면 옷이든 차든, 심지어 자신의 인생도 주겠다고 너스레를 떠는 남편, 의사나 선생님도 아니고 화장을 배우러 대학에 가고 싶다는 게 말이 되냐는 식이다. 그러면 '새 아내'를 구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 EBS

 

대학에 가면 새 아내를 들이겠다는 남편, 미나는 친한 친구를 찾는다. '니가 할래?', 니가 가라 하와이도 아니고, 대학에 가는 자기 대신 남편의 새 아내가 되어 달란다. 하지만 미나의 속내는 복잡하다. 남편의 새 아내를 직접 골라주고 싶은 것이다. 결국 그녀가 대학에 간다는 건, 남편과 시어머니의 확고한 태도로 볼때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그녀는 그럼에도 대학에 가고 싶다. 그런데 아이가 걸린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자구지책이 아이를 잘 키워줄 여자를 스스로 고르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결혼 전 남편에게는 집안 끼리 정한 약혼자가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를 선택했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이전의 정혼자와 그녀는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러기에 자신이 떠나고 홀로 남은 아이를 혹시나 그녀가 구박을 할까봐 걱정스럽다. 그러니 직접 얌전하고 고부고분한 그래서 자신의 아이도 잘 키워줄 남편의 새 아내를 직접 고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친구가 소개해준 그녀의 친척을 직접 가서 만나기 까지 한다. 

남편의 새 아내는 우리 아이를 잘 돌봐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내가 직접 고를 거예요.


그런데 남편은 또 그녀가 고른 여자가 아이를 못낳을 거 같다고 싫단다. 자신은 농장도 있고, 양떼 등 물려받을 유산이 많으니 아들을 더 낳아야 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대를 이를 자식이 필요하단다. 그런데 남편과 함께 양떼를 몰던 이들은 한 술 더 뜬다. 아내가 둘이라는 남자, 넷 이라는 남자, 심지어 본처와 후처가 자매보다 낫단다. 

끝나지 않는 평행선, 미나와 남편은 어떻게든 상황을 풀어보려 결혼 서약을 했던 우물에도 가보고, 미나는 남편의 맘을 돌리기 위해 양떼를 몰러 함께 길을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사랑한 게 아니라 자신의 재산이 좋았던 게 아니냐며 미나를 의심하기까지하는 남편은 급기야 제작진이 나서 말려야 할 정도로 분노를 폭발하고야 만다. 웃지못할 남편의 새 아내 찾기 프로젝트는 미나가 언덕으로 향하는 길을 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녀가 원하는 대학을 가게 될까?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까?

형수나 미나 모두 '대학''을 선망하고 전문 직업인을 소망하듯이 여타 이슬람권 국가에 비해 그래도 이란은 여성 고등교육 진학률과 취업률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9세가 되면 외출할 때 반드시 히잡(머리싸개)을 착용해야 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복장 규정처럼 여성의 능력에 대한 현실적 이해 부족으로 대외활동 비중이 높은 직종에 여성이 종사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낮다.  다큐에서 남편이 당당하게 대를 이을 자식이 필요하기에 새 아내를 들여야 한다고 말한다던가, 서너 명의 아내를 두는 걸 자연스레 이야기하듯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여전히 일부 농촌지역에서 '명예살인'이 존재한다는 보고도 있는 게 현실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남편의 새 아내를 직접 찾아나선 주부 미나의 쉽지 않은 여정을 통해 다큐는 이란 여성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by meditator 2022. 8. 28. 14:33

1989년 중국 베이징 시 중심부에 자리한 천안문 광장, 이곳에서 학생들은 '민주화의 여신상'을 앞세우며 5월부터 '단식 투쟁' 등을 벌여왔다. '학생 운동의 정당성을 인정하며 대화를 시작하라'는 것이 학생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범법행위로 규정하며 전차와 장갑차를 앞세워 최류탄과 실탄을 발포하며 강제 진압하였다. 1989년 6월 4일에 벌어진 천안문 (텐안먼) 사태이다. 정치적 사건으로만 기억되는 '텐안먼 사태'를 당시 16살의 꿈많은 소녀였던 론자 유 감독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다. 왜 당시 젊은이들은 광장으로 몰려갔을까? 도대체 어떤 시대의 분위기가 그들을 '저항'과 열정'으로 가득차도록 만들었을까? 

 

 

1986년 상해 출신의 소군(여명 분)과 이요(장만옥 분)는 꿈을 이루기 위해 홍콩으로 건너간다. 그 후로 10년 만남과 헤어짐을 되풀이 한 두 연인의 러브 스토리 <첨밀밀>에는 '당신을 내게 물었죠,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냐고,'라는 로맨틱한 대사의 등려군의 노래 '월량대표아적심'이 흐른다. 등려군의 노래가 전대륙에 인기를 끌던 시절이 중국 대륙의 1980년대 중반이었다.  빈곤과 암흑, 그리고 단절의 시대가 지나가고 새롭게 들어선 정부는 경제 개혁을 앞세웠다. 적극적인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도입과 함께, 문화 역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발빠르게 흡수되었다. 다큐는 텐안먼 사태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 문화적 흐름을 주도했던 젊은 예술가들을 주목한다. 

젊은이들의 열정과 저항 
우선 그 첫 번째 인물은 자신의 붉은 사원증을 치켜든 조각 등 '반항과 유머'로 시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조각가 왕커핑이다. 그는 당시를 회고한다. '혁명가'만 울려퍼지던 시절에 '등려군'의 노래는 빛과도 같았다고. 그 빛을 따라 모인 젊은이들은 카세트를 틀고, 거기서 흘려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댄스 금지, 파티 금지', 당연히 경찰이 출동, 카세트를 뺏고, 안 뺏기려는 해프닝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문화적 갈증에 목말라 했지만 토양은 척박했다. 이렇다할 갤러리조차 없었다. 그나마 1년에 한 번 정도 가능한 전시는 여러 차례 검열을 받아야 가능했다. 결국 뜻이 맞는 몇몇이 모여 작품을 공유하는 정도였다. 왕커핑과 친구들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에 고무되어 '도전적인 결정'을 내렸다. 중국 미술관 주변 울타리에 자신들의 작품을 '무단'으로 전시하기로 한 것이다. 함께 할 그룹의 명칭도 정했다. 작고 멀리 있지만 자기만의 빛을 내는 '스타', 이들은 1979년 9월 27일부터 전시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시 셋째 날 경찰이 막아섰다. 압수된 작품은 찾을 길이 없었다. 10월 1일 '정치 민주, 예술 자유', 팻말을 든 젊은이들로 인산인해가 되었다. 결국 중국 전시관에 '스타'의 전시가 허용되었다. 이번에는 전시를 보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들은 사회적 규범 대신 자유로움을 추구했고, '예술'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자아 표현 수단으로 삼았다.

유일한 여성 작가였던 리솽도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젊은이들의 예술을 정부는 '정신 오염'이라 여겼다. 모든 개인주의적 표현은 '단속 대상'이 되었다. 프랑스인 애인을 둔 리솽은 이른바 '풍기 문란' 등의 혐의로 체포되었다. '스타'를 '반사회적 조직'으로 만들려는 고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친구들을 떠올린 리솽은 '아는 바 없습니다'며 그 시간을 견뎠다. 남친과 헤어지라는 종용을 거부하고 온전히 3년 형을 살았다. 

학교에서는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방과 후에는 코카콜라를 마셨다 .
           - 론자 유


'애국'대신, '나'와 '예술'의 자유
카세트를 틀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청춘들, 그런 분위기에 힘입어 '록'이 등장했다. 이제는 중국 록의 대부라 칭해지는 '추이젠(최건)'이 그 대표적인 가수이다. '나는 내 꿈과 자유를 그대와 나누고 싶다.'는 그는 '애국주의 '대신, '나'의 이야기를 노래했다. 

 

 

이런 열정적인 젊은이들의 흐름에 발맞추어 '아방가르드'한 프로젝트가 기획되었다. 이제는 '티벳 유랑족'이 된 원프린의 '만리장성 대축제'가 그것이다. 직업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첫 세대였던 그는 직장이나, 호구제, 월급 등에 통 관심이 가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일을 벌였다. 1988년 한 다큐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권위주의 체제의 상징이라 여겨지던 만리장성에서  '우드스톡이 따로없네'란 평을 얻은 이벤트를 벌였다. 

행위 예술이든 공연이든 그 누구라도 와서 마음껏 즐기라는 초대장에 젊은 예술가들이 응했다. 만리장성에 하얀 천을 드리우는 전위 예술, 롹 공연 등 그동안 억눌렸던 자유와 표현 의지가 한껏 분출되었다.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고 발전을 해갈수록 젊은인들은 생각의 자유를 갈망했고, 변화가 도래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젊은 예술가들의 전국적인 전시회 시도에 '강제 취소'로 대응한 중국 정부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길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 가운데 텐안먼 사태의 전초전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젊은이들의 열기를 마냥 억누를 수 없었던 정부는 1989년 '예술 작품으로 정부에 반기를 들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중국 현대 예술전을 중국 예술관에서 허용했다. 이에 186명의 전위 예술가들이 '유턴 금지'라는 상징을 내세우며 퍼포먼스를 벌였고 그 중에는 샤오루가 있었다. 

졸업생 중에 유일한 설치 미술가였던 차오루는 연결되지 않은 전화 한 통으로 절망한 두 남녀를 '전화 부스'에 갇힌 듯한 모습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쉬웠다. 샤오루의 작품이 중국 현대 미술전에 전시되었고 설 전 날 전시회에서 그녀는 자신의 전시 작품에 두 발의 총을 쏘는 도발적 퍼포먼스를 벌였다. 경찰차가 도착하고 전시회는 폐쇄되었다. 

 

 

'샤오루가 쏜 2발의 총성이 혁명의 시작이었다', 아방가르드 기획자 원프린은 정의한다. 2달 뒤 1989년 봄 중앙 미술학원 학생들은 거대한 '민주 여신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여신상을 앞세우고 학생들은 텐안먼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조사라 씨는 <재외 중국 아방가르드 작가의 문화 정체성과 디아스포라 이미지>에서 '중국 현대미술을 이끌고 있는 대부분 작가들은 1950년대 태어났으며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겪었으며 1980년대 중국의 문호개방 정책과 맞물려 ‘85 신조운동’과 1989년 차이나/아방가르드 전 등 중국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 흐름 에 참여한 이력을 지녔다.'고 말한다. 왕커핑과 리솽 등도 고국을 떠나야만 했다. 1990년대 부터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중국 현대 예술은 바로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잉태된 것이다. 론자 유 감독은 <그날이 오면>을 통해 저항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중국의 젊은 예술가들을 소환한다. 








 

 

by meditator 2022. 8. 26. 17:41

우리가 마주친 현실이 녹록치 않을 지라도/ 불안과 좌절이 우리를 짖누를 지라도/ 이 역시 우리 삶의 일부라는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차곡차곡 담아냈습니다


제 19회 EBS 국제 다큐영화제,  EIDF 2022가 시작되었다. Pitch your dream, 다큐의 푸른 꿈을 찾아서 라는 슬로건으로 막을 연 영화제는 올해도 ebs 방송과 에무 시네마 등 전세계 유일의 온, 오프라인 페스티벌을 열었다. 

 

 

EIDF2022는 총 24개국 63개의 작품이 페스티벌 초이스, 컨템포러리 다큐 파노라마, 커넥티드, 클로즈업 아이콘, 단편 화첩 등 10개의 섹션을 통해 출품되었다. 8월 22일 <사라지는 유목민>을 시작으로 EBS에서는 낮과 밤 시간을 통해 방영되고, 상영관에서 직접 다양한 다큐 작품과 만날 수 있다. 또한 언제나 그렇듯 EBS가 마련한 'D - BOX''다운로드'를 통해 언제든 자유로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팬데믹의 영향으로 EIDF는 관객에게 제한된 방식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기지개를 켜고, 그간 말하기 조심스러웠던 꿈과 낭만을 다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위와 같은 취지로 시작된 영화제, 올해 개막작으로 상영된 작품은 8년 여의 제작 기간이 소요된 진화칭 감독의 <다크 레드 포레스트 Dark Red Forest>이다. 


 

티벳 고원의 비구니들 
다큐가 시작되면 카메라의 시선은 2017년 겨울 4000 M 높이의 티벳 고원으로 향한다. 이곳에 자리한 야칭스 수도원, 그곳에는 만 명이상의 비구니들이 정진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보이는 것은 겨울 벌판을 가득 메운 겨우 한 사람이 앉을 수 있을까 싶은 나무판자로 지어진 작은 임시 거처들이다. 바람이나 피할 수 있을까 싶은 이 작은 박스에서 야칭스 수도원 비구니들은 가장 추운 겨울의 100일 동안 '동안거'를 한다. 눈이 와 쌓일 정도가 돼도 이들의 '동안거'를 멈출 수는 없다. 추운 건 집뿐이 아니다. 야칭스 수도원 마당에서 진행되는 불경 공부 시간, 비닐 한 장만이 추위를 막는다. 

'수행의 목적은 여러분 의식의 강에 존재하는 증오와 탐욕을 멸하는 것입니다.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는 바로 마음으로 부터 얻어질 수 있습니다. 전생에 지은 '업보'는 우리 삶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


만 명의 비구니들이 모인 시간 앳된 어린 승려가 똑부러지게 불법을 읊는다. 티벳에서는 비구니가 되는 걸 숭고하게 생각한다. 이곳의 승려들은 대부분 이처럼 앳된 어린 시절에 이곳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평생을 보낸다. 

 

 

하지만 스승님을 맞이한 등이 굽은 노년의 비구니는 겸허하게 말한다. '제가 너무 더뎌 걱정입니다. 탐욕과 증오, 무지가 어디서 왔는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도요.'  한참 멋을 낼 나이의 젊은 비구니는 '반짝이는 불빛에 제 영혼이 빠져나갈 듯했습니다. 겨우 기도로 다시 제 영혼을 붙잡았습니다'라고 참회한다. 기도와 명상만이 아니다. 매년 6개월 동안 불경을 공부하고 시험을 치루고, 앞치마처럼 두른 포대가 구멍이 날 정도로 '오체투지'를 하는 강행군의 생활이 이어진다. 하지만 수행의 길은 멀다. 

파르라니 깍은 머리에 파랑, 노랑의 띠를 두른 비구니들이 말간 하늘 아래 나풀나풀 춤을 춘다. 그렇게 춤사위가 잦아든 광장에 나신의 육체가 놓여있다. '육탈'을 한 수행자들이다. '업보'의 고뇌에서 벗어난 이들, 그들의 육체를 기다리고 있는 건 티벳의 독수리들이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독수리 무리가 육체만 남은 수행자들을 덮칠 때, 그  한 켠에서 삶의 그림자를 짊어진 생존의 수행자들이 '독경'을 한다. 그저 '업보'가 잠시 머물던 곳, 육체는 그렇게 자신의 '업'을 다한다. 죽음의 순간은 이들에게 '업'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영광의 순간'이다. 

 

 

그렇게 극한의 수행으로 이어진 비구니들의 삶, 하지만 종교적 경건함과는 별개로 그들의 문화적 환경은 낙후되어 있다. 그들의 건강은 소변에 뜬 부유물의 모양과 빛깔로 점쳐진다. 처방은 티벳의 전통약이거나 불에 달군 쇠막대로 '지압'을 해주는 식이다. 길흉화복의 행방은 '점'에 달렸다. 죽은 자의 안식을 묻자, 예전에 불곰 한 마리를 죽여 산신에게 노여움을 탔을 것이라는 답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였을까, 이 지역에 들어온 사회주의 정부는 더는 이런 비구니의 존재를 허용치 않는다. 2017년, 그리고 2018년 겨율울 지나 이어진 다큐, 그런 가운데 중국 정부는 다음 해 여름까지 비구니들이 야칭스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링거를 맞으면서도 수행을 마다하지 않던 비구니들, 그럼에도 '스승님'은 그들에게 수행에 진심을 다하라 말씀하신다. 눈과 정신과 마음을 다해서, 코 위에 개미가 지나간다해도 한 눈 팔지 말고, 단, 정부 관계자가 중단을 요철할 때를 제외하고라고. 그 말씀의 정부가 이들에게 수행의 중단을 요구했다. 

수행의 진심을 묻던 비구니들이 이제 스승님께 호소한다. '떠나온 지 오래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모릅니다.' 이런 이들을 스승님은 안타까워하신다. 속세의 경험이 없는 이들이 자칫 세찬 강에 뿌려진 양의 배설물처럼 될까봐.

2019년 여름 거의 모든 비구니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동안거동안 그들이 머물던 판잣집은 해체하니 한 사람이 짊어질 분량의 짐일 뿐이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진화칭 감독이 찾아간 고원, '동안거'의 그 움막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여전히 그 짙은 붉은 수도복을 입고 머리를 민 비구니들이 소를 몰고,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반야, 초월적 지혜'가 무엇이죠? 스승님이 물었다. '그게.......' 젊은 비구니는 답을 하지 못했다. 불성을 지닌 존재는 무엇인가요? 다시 스승님이 물었다. '자신입니다', '그 자신은 어떤 겁니까?' '자아와 자신은 같나요?', 비구니는 복잡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시험을 못봤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그녀였었다. 그렇게 수행의 즉답을 하지도 못하고, 불경 시험도 못치던 그녀가, 여전히 붉은 수도복을 입고 그곳에 있었다. 

'삶이 예측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석가모니도 병을 앓고, 노화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제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고원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그들 역시 굶주리고 매에게 잡아먹힐까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비로소 만물을 연민의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세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지요.'


평생 이곳에서만 살아왔던 그녀가 이곳을 떠나라 하자 죽음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승님은 말렸다. 정부의 명령을 따르라 했다. 야칭스를 떠난 그녀, 동안거의 움막이 이제 집이 되었다. 그녀는 말한다. 평생 짙은 붉은 색 법복을 입은 채 수행자로서의 삶을 다할 거라고. 오랜 수행에도 닿을 수 없었던 마음의 진심을 모든 것을 다 잃은 후에야 얻을 수 있었다. 그곳에 여전히 '다크 레드 포레스트'가 있는 이유이다. 




by meditator 2022. 8. 23. 22:50

고단한 한 주, 혹은 하루를 보낸 시간, 저마다 자신만의 '힐링 스팟'을 찾게 될 것이다. 기자의 경우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조금 느긋한 드라마'를 찾게 된다. 편안한 관계, 나도 모르게 레시피를 찾아보게 된 맛있는 음식들, 야곰야곰 어느새 10부작을 완주하게 된 드라마 <녹풍당의 사계절>이다. .

일본의 명문 숙박업 가문이 있었다. 그 가문의 후계자인 쌍둥이 두 손주, 이란성 쌍둥이인 이들은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가문의 기대에 부응하여 불철주야 공부와 사업에 매진하려 했던 야코우(후지이 류세이 분)와 달리, 동생이던 스이는 어릴 적부터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직원으로 일하던 료칸에서는 예의 그 사람좋음으로 인해 직원 관리에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결국 어려운 사정만 봐주다 돈문제를 일으키게 된 스이에게 야코우는 대놓고 나가라고 면박을 주고 만다. 

그저 사람좋기만 하던 스이, 야코우는 그런 식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문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사명 하나로 '열일'하던 야코우는 '료칸'을 잘 나가는 호텔 사업으로 이어갔다. 그렇다면 료칸에서조차 쫓겨난 스이는 어떻게 됐을까? 

 

 

녹풍당의 네 남자 
료칸 사업을 하던 할아버지는 은퇴 후 '차'에 빠지셨고 고풍스런 '녹풍당'이란 찻집을 운영하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은 녹풍당, 야코우는 문을 닫는게 맞다고 했지만, 스이는 할아버지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곳을 그렇게 사라지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개업하게 된 '녹풍당', '스이다운' 그곳에는 세상에 상처를 받고, 휴식을 취하고픈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녹풍당의 사계절>은 시미즈 유우의 원작 만화를 드라마화 한 작품이다. 앞서 할아버지의 '다도'를 이어받은 스이,  바리스타 구레(사에키 다이치 분), 요리를 담당하는 토키타카(히야마 쇼노 분), 디저트 담당 츠바키(오오니시 류세이 분)까지 '먹거리'의 다양한 분야를 담당하는 네 명의 남성들이 녹풍당을 이끈다. 

드라마의 우선 볼거리는 차, 커피, 요리, 디저트에 이르는 '산해진미'이다. 실제 기자가 드라마 속 오무라이스를 덮은 계란이 하도 '고와' 보여서, 드라마에서 하듯이 계란물을 후라이팬에 풀어 젓가락으로 살짝 주름을 만들어 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 것처럼 우선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보는 이의 '시각적 만족'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런 먹거리를 매개로 한 '힐링'이 제공된다. 직장 일에 치인 한 여성이 녹풍당에 앉아 일을 하려고 하다, 녹풍당의 달달한 케잌과 음식을 먹다 그만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에피소드처럼 드라마는 '먹거리'를 매개로한 '힐링'을 주요한 소재로 삼는다. <심야 식당>,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의 계보를 잇는 또 한편의 미식 힐링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 '힐링'이 가능한 전제가 되는 건 녹풍당을 이끌어 가는 네 명의 주인공들이다. 료칸에서 직원의 어려운 사정을 봐주다 쫓겨난 스이답게 할아버지의 찻집에 불과했던 녹풍당에 저마다 사연이 있는 또 다른 세 명을 불러들인다. 

스이의 중학교 동창이기도 한 토키타카는 어렸을 적에 '천재 도공'이란 화제의 인물이었지만, 어린 천재 도공을 '가십'을 삼은 언론으로 인해  유일한 보호자였던 작은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고 이제 '도자기를 빚은 일'대신 녹풍당의 요리 담당이 되었다.  아직 어린 츠바키 역시 혹독한 도제 수업에서 인정받지 못한 실력을 녹풍당에서 마음껏 펼치고 있다. 

늘 활기찬 구레, 아침마다 조깅을 하는 구레는 벤치에서 밤을 샌 듯한 소년에게 자신과 함께 '동호회'를 하자며 끌어들인다. 그런데 늘 웃통을 벗어제치며 근육 만들기에 열심인 구레의 동호회라는 게  소년의 또래인 듯한 무리들과 함께 '오리배'를 타는 것이다. 그는 그 소년들과 열심히 만든 근육으로 목이 터져라 오리배를 한바탕 탄다.

구레와 함께 오리배를 열심히 몰던 소년, 하지만 다음 날도 그 소년은 벤치 신세였다. 그런 소년을 구레를 녹풍당으로 데려와 따뜻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준다. 그리고 그 에스프레소에 담긴 자신의 사연을 들려준다.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소년, 그런데 그 소년만큼, 아니 그 소년보다도 훨씬 더 복잡한 가정사를 지녔던 일본과 이탈리아 인의 혼혈이었던 구레는 이탈리아 뒷골목을 전전했다고 한다. 동네 불량배들에게 실컷 두들겨 맞고 쓰레기통 옆에 쓰러져 있던 구레를 데려온 나이든 바리스타는 구레에게 한 잔의 에스프레소를 건넸고, 구레는 그 에스프레소 한 잔의 감동을 잊지 못해 바리스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은인처럼 동네에서 '전전'하는 소년들을 모아 오리배를 타는 동호회를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사실 '다이내믹'한 우리의 드라마를 보다 제 아무리 인기 만화 원작이고, 일본 아이돌들이 주연을 등장한 드라마라 해도 <녹풍당의 사계절> 같은 일본 드라마를 보면 심심하다. 녹찻물에 밥 말아먹는 '오차츠케'처럼 말이다. '갈등'은 있지만, 마치 '기승전결'에서 '전'에 해당하는 '클라이막스'가 빠져있는 것처럼 이른바 '착한 '드라마이다. 그런데 가끔 혹독한 하루를 지내고 마음을 쉬고 플 때 그 '심심한 드라마'가 오차츠케처럼 위로가 된다. 산해진미의 뷔페를 먹다못해 시달리고 돌아와 출출함을 달래고자 찬 밥 한 덩이 물에 말아 김치 얹어 먹으며 한 숨을 푹 내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무턱대고 사람을 믿고 봐주다 가문의 료칸에서도 쫓겨난 착한 청년이 어려운 사연이 있는 이들을 불러 모아 4인 4색의 까페를 만들고 그곳에서 저마다의 장기를 발휘해 '아름답고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환타지적 설정' 자체가 흥미롭다. 착함이 여전히 삶의 기둥이 될 수 있는 서사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4명의 청년들, 거기서 쉬이 연상될 수 있는 '동성애적인 코드'를 드라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다 큰 어른들이지만 '가족'이 필요한 이들이고, 녹풍당은 갈 곳없던 그들에게 가족이 되어준 곳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이름과 성을 가졌지만, 어울려 '가족'처럼 살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공간, <녹풍당의 사계절>은 삶도, 사랑도 고달픈 이 시대 젊은이들이 선택한 새로운 환타지의 공간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녹풍당에 찾아와 달콤하고 맛난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 저마다의 시름을 잊어가는 것처럼, 그걸 보는 한 시간여의 시간 동안 세상의 고달픔을 잊게 된다. 

by meditator 2022. 8. 22.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