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 케이블, 종편, 심지어 웹드까지 범람하는 드라마 시장, '이런 드라마가 있었어? 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드라마들, 10%가 넘으면 대박,  애국가 시청률인 1%도 생소하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의 제작 편수는 늘어났지만 과연 그 양만큼 질을 담보해 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2018년, 그래도 이들 드라마가 있어 드라마 볼 맛이 났다는 몇몇 드라마들이 두드러진 활약을 선보였다. 

여전히 왕좌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선샤인>은 '명불허전'이었고, <또 오해영>의 박해영 작가에게 <나의 아저씨>는 '환골탈퇴'였으며, <안투라지> 서재원 작가의 <손 the guest>에 이르면 '개과천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제 아무리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지만 이들 드라마를 작가들의 이름만으로 설명하자니 어딘가 아쉽다. 그건 바로 올 한 해 '명품'이었던 이들 드라마들에서 작가만큼, 아니 때로는 작가보다 더욱 빛났던 피디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은숙 작가에게 날개를 달아준  이응복
일찌기 <파리의 연인(2004)>이래 김은숙 작가는 '로코'의 여왕이었다. 하지만, 그러던 그녀에게 찾아온 위기는 뜻밖에도 바로 지금의 동지 이응복 연출때문이었다. 2014년 동시간대 kbs2의 <비밀>에 김은숙 작가의 <상속자들>은 고전했고, 당연히 김은숙 작가의 한계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 한계는 2016년 '적과의 동침', 이응복과 김은숙의 만남으로 통해 극복되었다. 

아니 극복이 아니라 날개를 달았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무엇을 써도 '로코'였던 김은숙 작가의 작품은 서사성은 물론 서정적으로도 탁월하고 웅장한 스케일을 펼쳐내는데 거침이 없는 이응복 연출을 만나 시대성을 담은 문제작으로 거듭났다.  그리스의 풍광을 배경으로 낯선 땅 그곳에서 '조국'의 사명감을 안고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젊은 의사와 군인들의 이야기 <태양의 후예(2016)>에 과연 이응복의 터치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마찬가지다. 고려를 연상케 하는 과거와 동유럽의 이국적 정서, 그리고 현실과 도깨비의 세계를 오가는 시공초월 러브스토리였던 <도깨비(2017)> 역시 첫 회부터 비극적 정서를 한껏 뿜어내던 김신의 캐릭터 설정과 지은탁의 키다리 아저씨였던 두 남신의 미학적 장치가 아니었다면 과연 설득력을 지녔을까 싶다.

그리고 이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018년 김은숙 작가는 '사극'에 도전한다. 그것도 드라마계에서 승률이 언제나 불리했던 구한말 의병의 이야기를. 김은숙 작가의 이야기는 <토지>의 어느 장에선가 본 듯했고, 여전히 김작가만의 '로코'적 대사와 전형성을 그리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스토리와 관계의 행간을 이응복 연출의 비장하고도 장엄한 구한말 조선의 재연을 통해 메워냈고  시청자들은 거기에 다시 한번 감응했다. 이응복의 연출은 성당을 가득메운 구비구비 이야기가 담긴 예술적 벽화와 천장화처럼, 심지어 창문을 빼곡하게 채운 스테인드글라스의 조합까지 놓치지 않고 채색해가며 드라마를 완결시킨다. <태양의 후예>에서, <도깨비>, 그리고 이제 <미스터 선샤인>을 경과하며 어느덧 김은숙의 이응복이 아니라, 이응복의 김은숙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격조가 다른 드라마의 장을 펼쳐냈다. 이 압도적인 윈윈 조합이 과연 2019년에도 이어질 지 두 사람의 파트터쉽의 귀추가 주목된다.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선샤인>이 이응복 연출 스케일을 통해 여타 드라마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드라마로 거듭남으로 2018년 드라마계에서 독보적이었다면, <나의 아저씨>는 올 한 해 시청자들을 이른바 '힐링'이란 차원에서 압도했던 드라마이다. 

 

 

우리 시대의  '나저씨' 김원석
이미 <또 오해영>을 통해 '로코'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던 박해영 작가, 하지만 <나의 아저씨>는 이 작품이 <또 오해영> 작가 꺼야 라는 의문을 제기할 정도로 다른 색채의 작품이다. 회사 내 권력 싸움 와중에 건축 구조 기술사로서의 직업적 자부심이 무색하게 밀려나고 또 밀려날 처지의 아저씨 박동훈과 그의 회사 일개 비정규직 사원으로 인연을 맺게 된 밑바닥 청춘 이지안이 '회사'와 사회를 배경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는 <또 오해영>보다는 김원석 피디의 <미생>에 더 가닿는다. 

일찌기 <성균관 스캔들(2010)>로 조선시대 빛나는 청춘들의 성장담을 그렸던 김원석 피디는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지만 2013년 그 청춘의 성장담을 '음악'을 매개로 하여 그리려 했던 <몬스타>을 경유한 후 '아프니까 청춘이다' 시대의 공감과 위로를 담았던 <미생>으로 그의 이름을 세상에 각인시켰다. 

<미생>에 열광했던 시청자들은 시즌2를 기대했지만, 김원석 피디는 다른 방식으로 시대에 응답했다. <싸인>의 김은희 작가와 손을 잡으며 과거과 현재의 인물이 무전기를 매개로 '시대를 관통하는 적폐'의 상징적 사건을 해결하는데 돌진함으로써 2016년 '적폐' 시대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그리고 이제 2018년 마치 <미생>2처럼, 세상사에 치인 사람들에게 기댈 '내력'이 되어준다. 김원석 피디는 민감하게 시대에 반응하되,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선함과 그를 향한 의지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 '긍정'의 미학을 일관되게 작품을 통해 그려내왔다. 그리고 그 '절정'이라 할만한 작품이 바로 <나의 아저씨>이다. <미생>에서 오상식과 장그래에게 열광했던 사람들은 2018년 박동훈과 이지안을 응원했다. 아니 열광하고 응원하도록 김원석 피디가 그려냈다. 

김규완, 김태희, 정윤정, 김은희, 그리고 박해영, 그간 김원석 피디와 함께 했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다. 이들 작가는 김원석 피디와 함께 새로운 차원으로 거듭났으며, 김원석 피디는 이들 작품을 통해 예의 김원석 표 휴머니즘, 따뜻하지만,  나약하지 않고, 흔들리되 꺽이지 않는, 그리고 언제나 세상사에 눈감지 않고, 늘 손을 잡고 함께 가는 이야기들을 끈질기게 펼쳐낸다. 과연 2019년 김원석이 그려낼 시대 정신은 어떤 것일지 벌써부터 궁금해 진다. 

 

 

엑소시즘까지, 장르의 개척자 김홍선 
<보이스1>을 연출했던 김홍선 피디가 한국적 엑소시즘 드라마를 만든다 했을 때 그 작가가 <안투라지>의 작가라는 발표에 다들 우려를 금치 못했다. 그만큼 미드 <안투라지>를 바다 건너 '탱자'로 만들어 버린 작가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하지만 그 우려는 <손 the guest>의 세계가 열리면서 '기우'가 되어버렸다. 

엑소시즘은 외국 영화로는 여러 시리즈로 호평을 받았지만 한국 드라마에서는 이질적인 장르이다. 하지만 김홍선 피디에게 '이질적'이란 수식어는 '도전'이란 말로 치환되는 듯하다. 일찌기 <도시 괴담2>를 시작으로 <야차>, <무사 백동수>, <조선 추리 활극 정약용>, <라이어 게임>, <피리부는 사나이>, <보이스>에서 이제 2018년 <손 the guest>까지 그의 작품은 곧 장르물의 개척지가 되었다. 게임이 드라마로 들어왔고, 니고시에이터, 보이스프로파일러 등 드라마에서 생소했던 직업들이 장르물의 주인공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이제 귀신들린 이에게서 악령을 내쫓는 구마 사제와 전통의 무당이 바다로 부터 온 박일도라는 바다로부터 온 '거악'을 없애기 위해 콜라보를 하기에 이른다. 

장르물의 개척자답게 늘 김홍선 피디의 작품에서는 '스토리'보다 '액션'이 앞서나가는 경향이 있어왔다. 장르의 설정은 그럴 듯하지만 막상 펼쳐놓으면 '액션'에 방점이 찍히며 서사는 저만치 밀려나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라이어 게임>, <보이스>를 경과하며 김홍선 피디의 작품 역시 서사의 미흡함을 채워나갔다. 물론 <손 the guest> 에서도 15회에서 '좀비'들의 뜬금없는 향연으로 시청자를 의아하게 했지만 마지막 회 처절한 최윤의 윤화평에 대한 혈투와도 같은 바닷속 구마 의식으로 절정의 대미를 장식해냈다. 

서사만이 아니다. 묻힐 뻔했던 서재원 작가의 장기를 살려낸 것부터 그간 차곡차곡 쌓아온 내공이 보색의 절묘한 배합으로 공포감을 극대화시켰던 조명, 전래의 꽹과리를 협연시키며 긴장감을 배가시켰던 음악과 음향까지, 어느 부분하다 비워진 틈없는 종합 예술로서 <손 the guest>를 완성했다.

 

 

하지만 2018년에 빛을 발한 연출력에는 이들 세 사람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연출'의 역할이 눈에 띄는 한 해였다. <손 the guest>에 앞서 장르물의 화제가 되었던 <라이프 온 마스>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다수의 리메이크작들이 '바다 건너 탱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70년대로 타임슬립한 영국의 수사극이었던 <라이프 온 마스>를 당시의 맨체스터와 비슷한 1988년 인성시를 통해 재현해 냈다. 이것이 진짜 '응답하라 1988'이었다는 평가처럼, 당시 최고의 유행가였던 조용필의 미지와의 조우 등을 배경으로 여전히 법과 과학 수사보다, 주먹과 우격다짐과 편법이 득세하던 80년대 지방 도시의 공기를 실감나게 그려내며 외려 원작보다 더 원작의 주제 의식을 잘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가 하면, 박보검, 송혜교의 스타 캐스팅인 동시간대 tvn의 <남자 친구>를 무색케 하는 <황후의 품격>의 주동민 피디가 2018년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이미 주연배우의 하차라는 악수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해낸 <리턴>에서 인정받았던 '포르테시모(매우 세게)'한 주동민 피디의 연출력은 '막장의 대가'라는 김순옥 작가의 작품을 에니메니션 기법 등 화려한 변주를 통해 안정적으로 미니 시리즈로 안착시켜내며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들 외에도 예단하기엔 이르다 하겠지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돌아온 <비밀의 숲>의 안길호 피디, <스카이 캐슬>의 조현탁 피디 등도 2018년을 빛낸 장인의 대열에 이름을 올리는데 손색이 없지 않을까. 풍성했던 피디들의 연출력으로 인해 작품들이 더 돋보였던 한 해 과연 2019년에는 또 어떤 장인들이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줄까, 풍성한 수확으로 다음 해의 기대가 부풀어진다. 

by meditator 2018. 12. 12.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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