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민수 피디가 돌아왔다. 9월 28일 첫 선을 보인 jtbc의 <제 3의 매력>은 서강준, 이솜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사실 주목해야 할 사람은 표민수 피디이다. 2015년 윤성호 감독에 이어 연출한 <프로듀사> 이래 3년만에 다시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우리 드라마 사에서 '표민수'라는 이름은 하나의 '장르'로 기억된다. 과연, 그 '전설'은 다시 역사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첫 방의 성과는 아쉽다. 6%에 육박하며 화제성을 낳던 전작 <강남미인>이 무색하게 1.804%이다. 무엇보다 트렌디한 주제인 '성형'과 젊은 연인들의 사랑을 잘 버무려 내었던  다루었던 <강남 미인>처럼 시청자들에게 이슈를 선점하지는 못했다. 평가도 엇갈린다. 진부하다와 감성적이다 라며 서로 다른 반응들이다. 

드라마가 삶이고 삶이 곧 드라마라고 나는 믿습이다.
                                                     -드라마 어떻게 만들 것인가, 표민수 

 

 
당대의 사랑을 대변했던 대표작들 
표민수 피디가 만든 드라마 중 어떤 작품을 기억하고 있는가에 따라 아마도 세대가 갈릴 것이다. 표민수라는 이름이 세상에 처음 각인된 작품은 <거짓말>이다. 이제는 다들 누군가의 엄마나 아버지로 등장하는 배종옥, 이성재, 유호정 등이 드라마 최초 폐인을 양산할 정도로 다시 할 수 없을 것같은 아픈 사람을 엮어냈던 이 드라마는 '노희경-표민수 콤비의 탄생을 알렸던 드라마이기도 하다. 노희경 작가의 주옥같은 대사, 그리고 도발적인 연애사를 표민수 연출의 감각적인 연출로 세련미를 입혔던 작품, 그래서 '불륜'을 사랑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던, 나아가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갇힐 수 없는 사랑의 불온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1998년이라는 시절을 담았던 작품이다. 

<거짓말>에 뒤를 이어 다시 '당대 사랑'의 대표작이 된 작품은 <풀 하우스 시즌1>이다. <거짓말>이 '어른들'의 사랑을 대변했다면, <풀 하우스 시즌1>은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같던 남자 이영재(비 분)와 여자 한지은(송혜교 분) '어른이'들의 장난기넘치던 풋사랑이 2004년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2008년 표민수-노희경 콤비는 또 한번 레전드 작품 <그들이 사는 세상>을  남긴다. 양 갈래 머리 짧은 치마로 곰 세마리를 부르던 송혜교는 단발 머리 선머슴애같은 초짜 피디 주준영이 정지오로 분한 현빈과 함께, 직업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청춘 연가를 '실감나게' 그려내며 '전문직 현장 드라마'의 효시를 이룬다. 

 

 

당대의 공감은 아니더라도, 당대성을 대변했던 
물론 표민수 피디가 당대를 대표하는 사랑만을 늘 이야기한 건 아니다. <거짓말>과 <풀 하우스 시즌1>과 <그들이 사는 세상>이 당대의 청춘을 이야기했다면, 1999년 2부작 < 슬픈 유혹>은 방송 최초로 '동성애'를 다루었으며, 2000년 <바보같은 사랑>은 봉제 공장 재단사 진상우(이재룡 분)과 미싱 보조 정옥희(배종옥 분)의 치명적인 사랑을 통해 '노동자들의 삶'을 그려낸다. 그런가 하면 2001년 <푸른 안개>에서는 요즘 같은 시기라면 작품 자체가 불가능했을 중년의 남성이 23살 젊은 여성에게 '미혹'되는 불륜을 다루기도 했다. 2002년에는 그 반대의 경우 마흔 살의 전문직 여성 상사와  26살의 부하 직원이 사랑에 몸을 던진다. 또한 2007년 <인순이는 예쁘다>에서는 출소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2015년작 <호구의 사랑>에서는 젊은 미혼모에게 순정을 다하는 강호구(최우식 분)의 사랑을 그린다. 

노희경, 이금림, 윤난중 등 당대의 명작가들과 함께 하며 표민수 피디는 이른바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는 세간의 정의를 넘어서 '표민수 표'라는 연출의 장르를 써내려간다. 

저같은 경우는 인물의 동선이나 움직임보다는 인물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중점적으로 봅니다. 그래서 감정에 대한 콘티를 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이번 신은 어떤 감정이 주가 되는가. 그 감정에 맞는 대사는 무엇인가 찾아봅니다.
                                                                     -같은 책, 표민수 


표민수의 작품에는 시대의 공기가 담겨져 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사랑을 작가가 쓰면, 표민수 연출은 그 '사랑'에 시대의 정서와 공감을 더한다. 표민수의 연출이 없었다면 불륜이라 치부될 <거짓말> 속 사랑이 분위기있는 성인 남녀의 사랑의 경계에 대한 질문으로 폐인들을 양산해 낼 수 있었을까. 그저 톱스타와 가진 것 없는 여성의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귀염성있는 열애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물론 그 '정서'에 대중이 꼭 공감하지 않을 때도 있다. 여전히 <슬픈 유혹>은 중년의 김갑수와 젊은 주진모의 이해할 수 없는 센세이셔널한 작품으로 기억되며, 사회 밑바닥 인생의 <바보같은 사랑>이나, 이제는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연상녀와의 사랑은 당시에는 '최저 시청률'의 기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늘 표민수 피디는 누구보다 용감하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려 애써왔다. 

또한 표민수 피디의 작품이 기억되는 건 그저 주인공들의 사랑만이 아니다. 주인공들를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 에피소드 조차도 그 누군가에겐 공감할 만한 삶의 한 유형으로 수용되게 하는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표민수의 작품을 기억되게 한다. 

 

 

2018년의 사랑에 건투를 빌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표민수 연출이 그려낸 당대의 정서는 2010년대를 넘어서며 버거워 보였다. 도전이었던 <아이리스2>는 가장 표민수답지 않은 궤적으로 기억되며, 2015년 <프로듀사>는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그사세>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그렇게 최근 지지부진하건 격조했던 표민수 피디가 들고 온 작품은 스무 살 풋풋하던 시절 첫 사랑에서 부터 시작하여 장장 12년의 연애사를 그려낸 <제 3의 매력>이다. 

 

 

검은 둥근테 안경에 보정기를 낀 멀쩡하게 생겼지만 전혀 멀쩡해 보이지 않는, 거기에 세심하다 못해 쫀쫀해 보이는 계획적이다 못해 강박증 환자처럼 보이는 온준영(서강준 분)과 즉흥적이며 열정적인 '돈'을 벌고싶어 남들 가는 대학 대신 미용사 일을 시작한 이영재(이솜 분)의 연애, 빨간 색만 봐도 땀을 흘리는 남자와, 빨간 색 음식이면 무조건 오케이, 빨갈수록 더 좋다는 여자의 '다름'에 혹한 고단한 연애사, 하지만 그 시작은 성시경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감싸안은 그 정서는 예의 표민수 표 드라마 답게 안온했지만, 그래서 어쩐지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듯, 진부한 그 경계에 서있다. 과연, 예전 드라마에서 본듯한 뻔함을 넘어서 표민수 피디는  2018년의 청춘을 다시 재현해 낼 수 있을까? 전설의 귀환에 건투를 빈다.  

by meditator 2018. 9. 29. 16:35

김영하가 <아랑은 왜?>라는 소설에서 다룬 '아랑의 전설', 이는 우리 고전 소설인 <장화 홍련전>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전래의 대표적 귀신 설화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밀양 고을 부임하는 신임 부사들마다 첫 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비명횡사하고 만다. 결국 '밀양'은 기피 부임지가 되고 마는데, 담이 큰 이상사라는 부사가 자임하고 부임한 첫 날, 이슥한 시각, 잠자리에 든 그를 찾아온 건 '처녀 귀신' 아랑이었다.  양갓집 규수로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여 야반도주를 하였다는 불명예스러운 소문의 주인공이었던 아랑, 하지만 사실은 관가에서 일하던 이와 유모의 작당으로 겁간의 위기에서 저항하다 살해당하고 만 것.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귀신이 되어 부사를 찾아간 것, 하지만 부사들은 그런 아랑의 속도 모르고 '귀신'의 존재만으로 혼비백산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 '원형적' 귀신의 전설에서도 보여지듯이 죽어 저승으로 귀의하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도는 '원귀'의 이유는 바로 '이승'에 있다. 그 '이승'이 문제인 것이다. 

 

   

 

현실로 부터 고통받는 영혼의 빈틈을 찾아든 '손'
ocn 수목 드라마 <손 the guest>는 바다에서 온 '손' 박일도가 그의 숙주가 되는 일반인들에게 들어가며 문제가 발생한다. 박일도에 '빙의'된 이들은 괴력을 발휘하며 살인도 불사하며 사건을 일으킨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이 바로 이들이 '빙의'되는 이유이다. 이른바 영혼의 빈틈이라고 칭해지는 '자존'의 약한 지점을 '박일도'는 귀신처럼 알아차리고 찾아든다. 극중 첫 번 째 빙의자였던 김영수(전배수 분), 그는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하다 터널 공사 도중 사고로 인해 온 몸에 마비가 왔다. 하지만 그의 '산재'에 대해 업주는 나몰라라, 가족들도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방문 너머로 아내의 하소연을 듣고도 위로 한 마디 할 수 없었던 그에게 '박일도'가 찾아왔고, 그는 자신의 분노를 사업주와 가족에 대한 살해로 풀어내고자 한다. 

김영수에 이은 폐차장의 최민구, 최민상 형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생 최민구가 빙의된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박일도가 씌인 건 형 최민상, 결국 그를 잡았지만 '구마' 기회를 놓치고, 최민상은 스스로 잔인하게 자신의 목숨을 거둔다. 그런데 아들이 죽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어수선한 주변 정리를 요구하는 어머니, 정신병에 걸린 둘째 아들도, 박일도에 희생된 형도 그 원인은 어머니의 가정 폭력과 폭언, 학대였다. 

그리고 문자 메시지로 빙의된 김은희(김륜희 분), 그녀는 자살한 약혼자의 뒤를 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순간에 박일도에 씌인 것이다. 외려 죽으려 한 그녀를 구해 복수를 하게 해주었다고 당당한 '손', 빙의된 김은희가 찾아간 곳은 약혼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동료 직원들. 그들은 김은희의 약혼자를 왕따시키고, 사내 폭력의 희생자로 만들었으며, 그를 못이겨 회사를 떠난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아갈 꿈에 부풀었던 젊은 연인들은 하루 아침에 그들의 모든 미래를 빼았겼다. 약혼자는 스스로 손목을 그었고, 그의 아이를 뱃속에 지닌 김은희는 죽음 대신 무참하게 칼을 휘두른다. 

이렇게 드라마 속 '손'을 부르는 건 현실이다. 노동자를 외면하 사주의 이기심과 가장의 산재 앞에 신음하는 가족의 고통, 가정 폭력, 그리고 직장 내 왕따 등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하는 사회 문제들이 결국 '인간'을 쇠잔하여 하여, '손'의 숙주로 가장 안정된 조건을 만든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손에 빙의된 괴물이지만, 그들의 폭주는 무섭지만 처연하다. 

 

 

여전히 어린 아이인 생령이 벌이는 죽음의 장난 
<오늘의 탐정> 역시 마찬가지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영 선우혜(이지아 분)의 폭주로 인한 범죄. 병상에서 몸은 어른으로 자랐지만 여전히 의식은 벌레를 잡아 죽이던 어린 아이와 다를바 없는 선우혜는 '장난'처럼 사람들의 목숨을 거둔다. 아이들에게 시달리던 유치원 교사의 경우처럼 거두는 방식이 희생자의 가장 취약한 부분. 하지만 그 '선우혜'의 잔인한 장난이 아직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역시 버림받았던 혹은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으로 보여진다. 

아들에게 폐만 된다며 어머니의 죽음을 강권하던 선우혜에게 버티던 이다일(최다니엘 분)의 어머니는 결국 대신 아들의 목숨을 거두겠다던 협박에 손목을 긋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청력을 잃었던 정여울(박은빈 분)에게도, 그리고 이제 다시 그 죽음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나선 여울에게도 동생에 대한 그녀의 미묘한 감정을 건드린다. 그런 식이다. '영'은 살아있는 인간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있는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

귀신조차 불러들이는 산 자의 운명과 사랑 
<러블리 호러블리>의 귀신은 어쩌면 가장 전래의 전형성을 지닌다. 이른바 '귀신의 전매 특허인 '한'의 현대적 버전이다. 8년전 코리나 레지던스에서 죽었던 두 사람, 라연과 필립의 어머니, 그 두 사람은 8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귀신'이 되어 돌아온다. 

그들이 돌아오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사랑'이다. 8년의 주기로 죽을 운명에 빠진 아들 필립과 의붓 딸 을순,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막기 위해 무당이었던 어머니가 24년전 을순의 운을 빌어 아들의 생명을 구했듯이, 이제 귀신이 되어 돌아와 위기의 순간마다 노랫소리로 홀린다. 그뿐이 아니다. 자신이 저지렀던 업보를 필립을 통해 갚아 을순을 구하고자 한다.  

필립의 연인으로 필립의 스토커였던 윤아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라연, 하지만 라연은 거울 속에 스며 침묵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가 '돌아왔다. 드라마는 드러난 건 필립과 그의 공식 연인 윤아, 그리고 작가 을순의 삼각 관계이지만, 사실 저변에 흐르는 건 죽은 필립의 연인 귀신 라연과 을순의 삼각 관계다. 인간과 귀신이 얽힌 삼각 관계. 거기엔 8년의 세월을 넘어 이제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뜬 필립이 있다. 미움이었던 애증이었던 라연 대신 새로운 을순에세 마음이 향한 필립에 대한 사랑은 라연을 시간의 그늘에서 걸어나오게 한다. 

이렇게 '호러'를 표방한 세 드라마 <손 the guest>, < 오늘의 탐정>, <러블리 호러블리> 속 호러는 현실을 길어올린다. 귀신은 무섭지만, 드라마를 보다보면 귀신은 처연하고, 차라리 그들을 '귀신들리게'한, 혹은 '귀신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혹은 현실이 더 안쓰럽다. 그렇게 드라마 속 '귀신'은 삶으로 인해 죽음의 경계를 허문다. 삶은 그들의 먹이요, 놀이요, 미련이다. '호러'라는 장르를 통해 드라마는 모호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통해 뜻밖에도 삶을 경고한다. 



by meditator 2018. 9. 28. 15:36

'크리에이터'의 시대다.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공중파'를 보지 않는다. 아니, 젊은 세대라 한정 지을 것도 없다. 나이가 지긋한 세대조차 이젠 공중파, 케이블, 종편, 거기에 더해 유투브까지 각자가 선호하는 미디어 선택에 한계가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최근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건 유투브 등 에서 적극 활약하고 있는 크리에이터, 일인 창작자들이다. 패션, 요리, 뷰티, 시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들은 '아프리카 방송, 블로그, 유투브 등 기존의 방송과 다른 채널에서 '아마추어'로 시작하여 이제 '중소기업'에 맞먹을 만한 콘텐츠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기존 방송 프로그램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 대신 각자 자신의 입맛에 맞는, 그리고 필요한 콘텐츠들을 찾아 크리에이터들의 개인 채널을 찾아든다. 

 

 

당연히 이들 크리에이터들의 활약은 기존의 방송계에는 '위기'다. 또한 다른 면에서 기회이기도 하다. 일찌기 지난 2015년 mbc는 발빠르게 이 개인 채널 방송을 방송용 플래폼으로 변화시킨 <마이 리틀 텔레비젼>을 방영하여 이슈를 선점한 바 있다. 제한된 시간에 스튜디오 내 각각 다른 방에서 다양한 분야의 출연자들이 방송을 하며 동시에 시청자들과 소통하여, 그 결과물로 그 날의 승자를 선택하는 이 '이원 방송'의 형태는 선도적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생방송과 공중파 예능이라는 이원 방송의 한계,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콘텐츠의 개발에 정체로 인해 결국 프로그램은 조용히 사라졌다. 그 시도가 이제 sbs의 추석 특집 <가로채널>로 다시 찾아왔다. 

이영애의 출연이라는 화제성에 힘입어 
여전히 '산소'같다는 이영애 씨의 출연에 대한 과도한 송그스러운 리액션과 '가로채널'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제스처를 둘러싼 강호동, 양세형의 대왕대비 마마 이영애의 '점지'를 바라는 식의 대결로 장황하게 시작한 프로그램의 취지는 이 세 출연자의 일인 채널 방송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어떤 프로그램이냐를 묻지도 않고 이영애의 출연에만 관심을 두었다는 것처럼, 방송 시작전 대부분의 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이영애의 예능 출연, 그리고 최근 유행하고 있는 육아 브이 로그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을 공개했다는 사생활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렇게 특별한 이영애라는 화제성을 업고 출연자들의 개인 방송을 연다.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하는 방송이 어색해서 물묻은 시소에도 냉큼 올라탄 강호동과 달리, 시청자들은 그가 내세운 '강호동의 하찮은 대결'이 어쩐지 너무 익숙하다. 승리의 집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난 거리의 사람들과의 해프닝은 이경규와 함께 한 끼를 찾아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는 <한끼 줍쇼>의 한 장면 같았고, 고심한 첫 출연자 승리와의 댄스 클럽 재연에서 부터 먹물 까지 동원한 하찮은 대결은 강호동의 또 다른 프로그램 <아는 형님>의 한 버전같았다. 프로그램은 가장 안정된 mc로서 강호동을 선택했고, 강호동은 그 기대에 부응하여 언제나 처럼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헌신적이었지만, 그게 신선하지는 않았다. 

강호동에 이어 바톤을 받은 건 양세형, 그는 스스로 인생의 90%라 할 수 있는 먹방에 도전한다. 맛집 장부, 맛집 도장깨기라 내세운 '맛장 채널'에서 양세형은 전문가 이용재와 신참자 제니와 함께 평양냉면의 다양한 맛에 도전한다. 

새 부대에 담겨진 새롭지 않은 술 
이제는 정말 흔하다 못해 지겨운 먹방 채널, 하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먹방의 채널을 운용한 양세형의 평양냉면 도장깨기는 새로울 것이 없는 콘텐츠이지만, 냉면에 대해 제법 깊이있는 식도락을 가진 양세형의 견문과 전문가와 신참자를 어우르는 진행 덕분에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근 어느 프로그램에서나 이미 한번씩은 다 다루었던 평양 냉면의 먹방은 새 프로그램의 첫 방송의 '신선함'이란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차라리 그를 화제의 중심으로 이끌었던 숏터뷰의 다른 버전이었다면 새로웠을까. 

 

 

두 기존의 예능 mc와 다르게 출연만으로도 화제성을 만든 이영애, 여전히 '산소같다'는 싱그러움과 신비로움을 가진 이 여배우는 그런 세간의 이미지와는 다른, 이제는 8살이 된 두 쌍둥이의 엄마로서 육아 브이 로그를 선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뿐이다. 도시의 다른 부모들과 달리, 양평의 마을에서 자라 '고향'을 가진 아이들과 다시 고향을 찾아 산책을 하고, 텃밭에서 자란 채소들을 수확하고, 함께 송편을 만든 시간은 '아, 이영애에게 저런 면이'라는 화제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미 연예인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가지고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장악한 현실에서 '이영애'라는 이름만으로 다음을 기약하기엔 '예능적 요소'가 아쉬움을 남긴다. 

 

 

무엇을 해도 너무도 익숙한 강호동, 왜 양세형이 굳이 먹방을, 그리고 엄마가 된 이영애라는 화두를 가지고 펼친 <가로 채널>, 과연 이 프로그램이 크리에이터가 된 이들의 일인 채널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의 흡인력을 가졌는가에 대해서는 유보적일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콘텐츠로 시작된 프로그램이라면, 새 부대에 어울릴 새 인물들의 조합이었다면 그 콘텐츠의 새로움을 담보해 내지 않았을까란 물음표를 더하며, 새 프로그램의 도전을 가장 안전하게 시작한 <가로 채널>의 다음이 그닥 궁금하지 않다는 게 안타깝게도 가장 큰 숙제로 남는다. 

by meditator 2018. 9. 26. 16:05

kbs의 가을 개편은 공영방송으로서 지금까지 소홀했던 교양의 강화에 방점을 두었다. 하지만, 새로이 선보이는 '교양'은 지금까지 kbs가 추구해왔던 교양과는 질적 차별성을 둔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인문학적 지식의 성찬을 선보였던 <알쓸신잡>의 성황에 힘입어, kbs의 교양 역시 지금까지와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시청자와 만나고자 한다. 




교양과 예능의 콜라보 
그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대화의 희열>이다. 오랜만에 선보이는 한 사람의 게스트를 초대해 심도깊은 대화를 나누는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는 김숙이나 지코이지만, 이미 <알쓸신잡>에서 유연하게 각 분야 전문가의 인문학적 지식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데 일가견을 보인 유희열을 비롯하여, 강원국, 김중혁, 다니엘 린네만 이라는 차별화된 패널들로 인해, 타 예능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연예인들의 속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월요일에서부터 금요일 밤 11시 30분에 찾아오는 <오늘밤 김제동>은 푸근한 mc 김제동과 시사 이슈의 만남으로, 딱딱했던 뉴스를 알기쉽고 편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신선한 모색이다. 

이미 역사적 지식에 예능적 재미를 입힌 <역사저널 그날>과 함께 새로인 선보인 <대화의 희열>이나 <오늘밤 김제동>은 새로운 시대 kbs의 변화를 향한 모색의 첫 걸음이다. 이들 프로그램의 특징은 '예능인듯, 교양인듯'한 경계의 흐트러트림을 통해, '인문학적' 혹은 '시사적' 내용에 대한 대중적 접합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그런 노력의 일환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이 선을 보였다. 바로 스타 강사들을 kbs 스튜디오로 끌어들인 <쌤의 전쟁>이다. 추석 특집이라는 '한시성'을 띄고 찾아온 이 프로그램,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정규화 되기 위해서는 좀 더 고민해 볼 여지가 남는다. 

최진기, 설민석, 최태성 등 스타 강사들의 '에듀테이너'로서의 인기는 이제 새로울 것이 없는 사실이다. <쌤의 전쟁>은 이런 '에듀테이너'들의 활약에 힘입어 그것을 예능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모색에서 비롯된 프로그램이다. 강의 누적 조회수 1300만 뷰의 한국사 이보람 강사, 수능 예언자라는 별명의 화학 박상현 강사, 완판쌤 물리 배기범 강사, 말빨 사탐의 임정환 강사 등 '수능'계의 자타공인 스타 강사들을 예능의 '치트키'로 초대한다. 




어려운 과목, 하지만 흥미로웠던 내용 
1,2부로 꾸며진 방송은 '전쟁'이라는 제목에 걸맞에 각 분야의 강사들이 고등학생 관객과 이지혜, 문세윤, 오현민, 류수정, 나영 등의 연예인들을 상대로 하여 자신들의 분야를 하나의 주제로 20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강의 '배틀'하여 최고의 강사를 뽑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 테이프를 끊은 건 화학의 박상현 강사, 지구의 멸망이라는 거창한 화두를 꺼낸 강사는 그 '멸망'의 원인을 '녹'이라는 가장 친숙한 소재에서 끌어내어 화학적 개념인 '산화'와 '환원'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다음에 등장한 사회와 윤리의 임정환 강사는 땀에 마이크가 미끄러 떨어질 만큼 열강을 펼치며 존 롤즈의 정의론을 북유럽의 벌금 제도라는 가장 알기 쉬운 사례를 통해 열어간다. 

세 번째 이보람 강사는 오늘날의 돈으로 환산해서도 어마어마한 금액의 현상금, 그 주인공인 김구 선생으로 부터 시작하여, 간도 참변 이후 침체기에 빠진 독립 운동사에서 조국의 '희망'을 길어낸 이봉창, 윤봉길 열사의 의거를 명쾌하게 연결지어 낸다. 

마지막 물리의 배기범 강사는 그 어려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달과 지구의 '사랑'이라는 독특한 해석을 통해 설득해 내며 '신의 목소리'를 친숙하게 전달한다. 

한국사야 그렇다 치더라도 화학, 물리, 윤리라는 공부보다는 '포기'가 어울리는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전문적 내용들을 '스타'답게 강사들은 쉬운 예를 들어 관객들에게 '공부'의 욕구를 끌어올린다. 

하지만 강사들의 매끄러운 강의와 달리, 과연 그 강의를 전달하는 예능의 방식은 적절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강사들도 강의 도중 빈번하게 '수능' 기출 문제, 혹은 출제 예상 문제라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은 kbs 보다는 ebs에서 방영되는데 더 맞는 것이 아니었을까? 




스타 강사의 활용 방식에 대한 고민을 
차라리 프로그램에서 적극 활약한 문세윤이나 이지혜처럼 애초에 수능 강사들의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교양' 강의에 방점을 두는게 kbs의 예능으로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다. 그래서 막연하게 이미 검증받은 스타 강사들의 배틀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듣기에도 무람없는 강의의 배틀이란 점이라면 그들의 '전쟁'이 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새로운 예능으로 공감을 얻지 않았을까란 점이다. 

분명 이 프로그램이 새삼스럽게 학생들을 상대로 스타 강사들의 강의를 홍보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추석 특집으로 기획되었다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을 텐데, 그렇다면 그 의도를 분명하게 살려, 일반인들도 알기 쉬운 '화학, 물리, 윤리'라던가, 알고보니 수능이나 볼 사람만 공부해야 하는 '화학, 물리, 윤리'가 알고보니 일반인들도 알만한, 혹은 알아두면 좋은 '교양'이란 접근이라면 좀 더 프로그램의 취지가 살지 않았을까란 아쉬움이 생긴다. 

이보람 선생의 100℃의 폭발을 향한 98℃, 99℃의 이봉창, 윤봉길 열사의 헌신에 대한 해석은 감동적이었다. 그건 수능이 아니더라도 일반인이더라도 새삼스럽지 않게 공감할 우리의 독립 운동사다. 마찬가지로 버스 정류장의 도착 정보 데이터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만나진 아이슌타인의 이론은 '물리'가 생각보다 우리 곁에 있음을 알 수 있게된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정의는 마이클 샌델의 ebs 강의 못지 않게 친숙했다.

이렇게 좋은 양질의 '인문학'을 그저 쌤의 전쟁이나 배틀이란 형식을 통해 나열하는 방식은 그래서 아쉽다.  차라리 학생은 물론 주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상대로한 '배틀'과 질의 응답시간이었다면 좀 더 프로그램이 원하는 예능적 재미도 살아나지 않았을까? 수능 수험생이라도 추석에 tv 봐도 된다는 식의 컨셉이나 홍보는 안이하거나 공감하기 힘들었다. 교양의 연성화도 좋지만, 그 방식과 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by meditator 2018. 9. 25. 03:43

'여성'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써내려가는 시대다. 지금까지의 역사와 사회가 관행적으로 그러려니했던 여성에 대한 태도, 사고, 관행들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반성이 이루어지며 새로운 전통과 가치관을 모색하는 시절이다. 하지만 이 '새' 시대는 녹록치 않다. 여성을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가에서 부터, 여성다움에 대한 정의조차 합의에 이르는 것이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은 공감에의 도출은 어쩌면 애써 무엇으로 규격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애써 규정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주목했으면 하는 세 여성의 캐릭터가 있다. 그들은 여성이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그려오던 '여성'의 캐릭터와는 차별된다. 하지만, 그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는 없다. 이렇게 '다른' 여성들을 통해 이 시대 여성들을 풍부하게 하는 것, 그것이 새로운 여성을 정의내리는 첫 걸음일 듯 싶다. 

 

 

그 어떤 순간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는다 - <보이스2> 강권주(이하나 분) 
어릴 적 사고로 눈을 다치면서 절대 청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 특기를 살려 112 신고 센터 요원이 되었다. 하지만 무진혁 형사 아내의 죽음, 그리고 이어진 아버지의 죽음 등 전화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는 죽음의 현장에 대한 경찰의 늑장 대처로 인해 자신의 직업적 한계를 느껴 미국 유학을 떠난다. 그로 부터 3년 후 강권주는 '소머즈'와 같은 청력에 기반하여 보이스 프로파일링 및 긴급 구조 전문가라는 독보적 분야의 전문가로 돌아와, 골든 타임팀을 꾸린다. 

시즌1에 이어, 시즌2에서도 골든 타임팀의 수장으로 등장한 강권주를 특징짓는 건 당연히 그녀의 남다른 청력이다. 하지만, 청력만으로 강권주를 예단해서는 아쉽다. 오히려, 청력을 기반으로 하여 '보이스 프로파일링' 전문가가 된 강권주는 112 응급 구조 센터라는 절체 절명의 응급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사건과 그 사건에 대처하는 골든 타임팀 및 출동 팀을 이끄는 '리더쉽'이 진짜 그녀의 강점이다.  그 누구보다 사건의 희생자에 대해 공감하고 마음 아파하지만, 그 '공감'의 감정을 절제된 이성으로 통제하며 상황을 통제해 들어간다. 즉, 그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통제력, 그에 기반한 기민하고 냉철한 지시와 대처, 그것이야말로  <보이스2> 골든 타임팀을 가능케 하는 핵심이다. 

그에 덧붙여 동료에 대한 편견없는 파트너십이 그녀의 리더십을 배가시킨다. 시즌 1에서 매일 밥 먹듯 야근을 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챙겨 오다 잔인하게 살해된 아내 때문에 폭주하다 폐인이 되다시피한 무진혁을 출동 팀장으로 이끈다. 시즌2에서도 마찬가지다. 동료 형사를 죽인 사이코패스라 낙인 찍힌 왕따 도강우 형사(이진욱 분)을 동료로 받아들인다. '미친 개'라던 무진혁, '또라이'라던 도강우를 자신의 파트너로 이끈 이유는 '동물적 감각'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해냈던 혹은 '알파고'라고 지칭되는 그들의 능력이다. 즉 그들에 대한 세간의 편견을 넘어 그들의 능력을 존중한다. 이런 사심없는 강권주의 리더십은  해커였던 팀원들을 규합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시즌2에서 골든타임팀을 경찰청 내부의 이간질과 불신으로 궤멸시키려 했던 방제수의 전략으로 도강우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되었던 강권주는, 그에 대한 자신의 불신이 불식되자 기꺼이 그에게 사과하며 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이런 강권주의 캐릭터는 새로운 여성상을 넘어 어쩌면 우리 시대 '리더십'의 새로운 전형으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세상을 주무르나 옹졸하지 않다. - <미스터 선샤인> 쿠도 히나, 아니 이양화 (김민정 분)
그녀는 이양화로 태어났다. 하지만 나라조차 팔아 일신의 영달을 구한 아비는 그녀를 일찌기 쿠도히나로 만들었고 그녀를 돈많은 일본인에게 팔았다.  그녀의 몸안에 새겨진 흉터와 같은 결혼 생활, 하지만 그녀는 그 '학대'를 기꺼이 갚고 글로리 빈관으로 여주인으로 돌아왔다. 

글로리 빈관, 하지만 그녀는 그저 호텔의 여주인이 아니다. 조선의 모던 보이, 모던 걸이 보이는 이 '개화'의 중심지에서 그녀는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들을 모은다. 그 정보는 그녀의 의사에 따라, 그리고 그녀가 일원인 고종의 휘하 비밀 조직의 명령에 따라 조정된다. 그 중심에 그녀가 있다. 

그저 돌아가는 세상의 조정자로 살던 그녀, 그런 그녀 앞에 미국인 유진이 나타났다. 아버지도, 남편도, 남자들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았던 그녀의 삶에 다른 감정의 결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 그런데 그런 그의 눈은 다른 여인 애신을 바라본다. 그만이 아니다. 동지인지, 정인인지 모르게 늘 그녀의 곁에 있던 동매조차도 애신 앞에서는 흐트러진다. 처음에 대갓댁 규수였던 애신이 가소로웠고, 고까웠고, 세상을 주무르는 자신의 능력으로 그녀의 발을 걸어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쿠도 히나의 선택은 달랐다. 자신이 사랑하고픈 남자의 정인으로 등장한 여인에 대해 '질투' 대신, 기꺼이 그녀의 처지와 존재를 들여다 보아 준다. 연적에게만이 아니다. 사랑하고픈 남자에게도, 벗인지 연인인지 모르는 남자에게도 가장 앙칼진 칼을 들이대는 대신, 기꺼이 든든한 둔덕이 되어 애신도, 유진도, 동매도, 쿠도 히나의 그늘에서 세상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쿠도 히나가 된 이양화가 가장 멋졌던 장면은, 그의 아비 이완익의 죽음 앞에서다. 자신을 팔아넘겼지만, 그래도 아비의 죽음, 하지만 그 육친의 죽음 앞에서 그녀는 기꺼이 그 아비로 인해 핏덩이 때 고아가 되버린 애신의 가엾은 셈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식이다. 가장 감정적인 듯한 포지션을 취하지만, 어쩌면 <미스터 션사인>에서 가장 품이 넓고, 공명정대하며, 정의로운 인물은 쿠도 히나가 되어버린 친일파 이완익의 딸 이양화다. 육친의 혈연 대신 이성의 조국을 택한 여인, 친어미의 소식을 속인 정문 대감에 대한 복수 대신 그를 대신해 고종의 호위로 대신한 여인, 드라마 속 모든 인물들의 가장 든든한 의지처, 그렇게 일본에게 팔려갔던 친일파의 딸은 외모보다 그 캐릭터가 멋진 말 그대로 여장부가 되었다. 스스로의 상징인 글로리 빈관이 일본군에게 농락당할 때 기꺼이 거길 폭파할 만큼. 

 

 

힘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 -<러블리 호러블리> 오을순(송지효 분)
호러블 로코를 표방한 이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난 건 칼을 든 괴한을 만나게 되면서이다. 그런데 이 '위기의 상황' 드라마는 기존의 남녀 성역할을 전복시킨다. 당대 최고의 스타라는 자신의 처지가 드러날까 검은 비닐 봉지까지 뒤집어 쓴 남자 주인공은 각자 갈길을 가자며 읍소한다. 반면에 이미 칼을 들고 여성을 위협하던 괴한을 향해 '거기 서'라고 우렁차게 외치며 날아온  오을순은 여성을 구하고 자신이 칼 앞에 당당하게 다리를 날린다. 심지어 남자 주인공을 향해 찌르는 칼날을 손으로 막는다. 그렇게 드라마는 여주인공을 설명한다. 입봉도 못하고 되는 일이 없는 루저라지만 사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당당한 여성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유도를 해서 전국체전에서 금메달까지 땄지만, 그 시절 공원에서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남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결국 자신의 꿈이던 유도를 접었다. 하지만 좌절하는 대신 가난했던 자신에게 유일한 재미가 되주었던 글쓰기를 또 다른 희망으로 삼았다. 10살 무렵 대운 맞이 이후 엄마는 달아나고,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하고자 했던 유도는 다쳐서 못하게 되고, 이제 작가라는 꿈마저 요원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며칠을 안감은 머리, 눈 한쪽이 안보이게 가리고 다니지만 불의 앞에서는 거침없고,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며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칼을 맞고, 의자 다리에 갇힌 그를 구하러 뛰어가고, 죽을 위기에 놓인 남자 필립을 구하느라 고군분투하던 을순은 그가 어릴 적 아버지가 만들어 준 목걸이를 빌려준 아이임을 안다. 그리고 그 목걸이와 함께 자신의 운도 그가 가져갔음을 안다.  자신의 행운을 도둑질해 갔을 지도 모를 남자, 하지만 기꺼이 병상에서 의식을 찾지 못하는 그에게 자신의 목걸이, 혹은 행운을 돌려준다. 아니, 그녀의 손에 다시 전해진 목걸이를 바다 멀리 던져버린다. 운명 따위에 자신들의 행운을 맡기고 싶지 않겠다고 한다.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이라 할 이쁜 여자 대신, <러블리 호러블리>의 오을순은 든든하고 믿음직해서 남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게 된 여자다. 물론 알고보니 입술도 이쁘고, 이마도 이쁘다는 로코의 정석을 외면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날아오는 야구공을 손으로 막아줄 만큼 그녀는 힘이 세다. 하지만 그저 힘이 셀 뿐만 아니라, 운명으로 인해, 상황으로 인해 쫄보가 되는 남자 주인공 앞에서, 내가 지켜줄게 하며 어설프게 남자연하는 남자 앞에서 '너님은 내가 지킬 거 같다'며 여유롭다. 백마 탄 왕자 대신, 기꺼이 그 백마를 자신이 잡아 타고 운명을 잡으러 갈 기세다.

자신의 운을 아들에게 건네준 키워준 엄마, 그런 운을 빼앗은 남자 필립에게 새삼스레 운명의 손익 계산서를 들이밀며 감정적 부채에 흔들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입봉작을 도둑질해 스타 작가가 된 옛 친구를 품을 만큼 당당하다.  감정의 동요로 인한 갈등 대신, 기꺼이 품고 사랑하기를 택하는 오을순 식의 사랑법이다. 

by meditator 2018. 9. 20. 17:32

마지막 회까지 결말을 알 수 없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마지막 회 마지막 씬까지 예측할 수 없었다. <보이스2>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최종회 마지막 순간까지 예측불가능했던 결말에 대해 시청률이 답했다.  4%대로 시작했던 드라마가 12회 7%를 넘으며(7.086% 닐슨 코리아 유료 채널 기준)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시청률만이 아니다. 시즌 2를 폭주하던 방제수(권율 분)는 결국 잡혔지만 폭발 사고로 인한 주인공 강권주(이하나 분) 센터장의 안위와, 여전히 모호한 도강우(이진욱 분) 팀장의 정체성은 의문의 인물들의 등장과 함께 외려 다음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주인공의 캐릭터 변주와 보다 강력한 절대 악의 등장으로 시리즈를 이어가는 이른바 '미드'식 전개의 성공적인 안착이다. 

 

 

모태구를 잊게 만들었던 두(?) 사이코패스 
댄디한 착장에 섹시하기까지 한 외모, 타인의 죽음 앞에서도 한없이 나른한 태도, 그런데 거침없이 휘두르는 쇠공, <보이스 1>의 모태구를 이 정도로 정의하면 될까? <보이스1>이 마무리될 때 과연 이 보다 더한 악인이 등장할까 싶었다. 그런데, <보이스2>가 시작되자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배안에서 가면을 쓴 악인은 하수인을 시켜 죽이는 것도 모자라 도강우의 동료 형사 신체 일부를 절단하여 곤충 채집처럼 수집한다. '고어(gore혈액 등으로 대표되는, 잔인성과 그에 따른 공포감 및 혐오감, 그리고 반사회성 등이 강조된 특정 계열의 속칭 및 총칭)'의 단계가 버전업되었다. 

거기에 더해 살인마는 스스로 새로운 악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곤충 동호회 '닥터 파브르'를 중심으로 자신과 같은 '사이코패스'들을 규합한다. 그래서 들키면 청산가리를 삼키고, 경찰에 자수했던 방제수의 도피를 위해 형사인 자신의 목숨조차 기꺼이 희생하는 하수인들을 규합한다. 심지어 알고보니 1회 부터 도강우 형사의 가장 최측근으로 활약했던 곽독기(안세하 분)마저 방제수의 오랜 친구였다는 식이다.  사이코패스가 지배하는 '언더 월드'의 구축이다. 

하지만 <보이스2>을 이끈 건 이 자신이 죽인 희생자의 신체를 별 모양 상자에 모아 수집하는 방제수나 그의 영도를 기꺼이 따르는 사이코패스 신도들만이 아니다. 정작 시즌2를 통해 시청자들을 가장 혼돈스럽게 한 건 과연 도강우 형사가 사이코패스인가라는 의혹어린 질문이다. 방제수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폭주할 수록, 그리고 그 폭주의 타깃이 '골든 타임팀'이 될수록 도강우에 대한 의혹도 커져갔다. 그리고 그 의혹에 맞추어 도강우의 모호한 질주도 궤적이 흔들렸다. 강권주가 듣는 그의 목소리는 진실되었지만, '블랙 아웃'되는 그의 기억, 그리고 폭력적인 그의 행동들은 그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게 만들었다. 

<보이스1>은 모태구라는 절대 악 사이코패스의 강렬한 존재와 그와 맞물리는 골든 타임팀의 실시간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갔다. 거기에 '소머즈 급'으로 듣는 능력이 극대화된 골든 타임팀과 팀장 강권주의 사연과 활약, 그들과 손을 맞춘 무진혁(장혁 분)의 사연과 거침없는 수사가 합을 맞췄다. 

시즌2는 이런 시즌 1의 기조를 새롭게 변주된 사이코패스 방제수를 통해 고스란히 이어받으며 절대 악 사이코패스에 의한 시즌의 장악이라는 <보이스> 시리즈의 통일성을 만들어 갔다. 거기에 도강우라는 의문의 형사 캐릭터를 더해 '사이코패스'물의 변주를 더했다. 시즌 1이 '카피캣'이라는 범죄 유형을 등장시켜 에피소드의 풍부함을 살려냈다면, 시즌2는 알고보니 에피소드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그 사이트와 관련이 있다는 '닥터 파브르'라는 곤충 동호회를 빙자한 사이코패스 사이트를 등장시켜 에피소드를 견인한다. 

 

   

 

사이코패스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보이스 1> 모태구의 사례처럼 대부분 사이코패스를 악의 축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은 '날때부터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가진 아이가 그 성향을 조장하는 환경을 통해 사이코패스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보이스2>는 이런 관점에 조금은 다른 해석을 더한다. 

성폭행을 통해 태어난 아이 방제수, 원치 않는 아이에 대해 엄마는 학대와 사랑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그런 엄마의 애증은 고스란이 아이의 트라우마적 범죄로 이어진다. 아이, 방제수는 끓는 물로 학대를 당해 경찰에 구해져 보호 시설에 갔으면서도 훗날 외려 그 경찰에 대해  보복을 할 정도로 엄마에 대해 집착적 태도를 보인다. 심지어 죽은 엄마의 시체마저 보존할 정도로 그에게 엄마는 영원한 업이자, 절대적 사랑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학대받고 외면받던 방제수를 통해 사이코패스를 만든 건 성폭행 희생자를 경원시하고 터부시하는 사회라고 드라마는 결론짓는다. 

하지만 사회가 방제수를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도록 방조했다고 해서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어릴 적 아버지의 범죄를 목격하고 적극 도왔다는 혐의를 받았던, 거기에 더해 시시때때로 폭력적 성향으로 사이코패스라 간주된 도강우를 통해, '기질'이 범죄를 합리화시킬 수 없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폭력적 성향으로 끊임없이 분노하면서도 결국 방제수에게 총을 쏘는 대신 그에게 수갑을 채우는 도강우를 통해 드라마는 그간 사이코패스 드라마들이 내렸던 사회적 책임의 당위론에 '개인적 책임'의 무게를 더한다. 그저 다른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결국은 그 모든 것에 '선택'의 기회가 있음을 드라마는 밝힌다. 

 

   

 

이렇게 <보이스2>는 방제수와 도강우라는 두 사이코패스에 방점을 찍으며 <보이스1>과는 차별화된 하지만 여전히 '사이코패스 범죄물'이라는 통일성을 지닌 시리즈로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적 캐릭터의 변주에 화려함을 더한 대신, 애초에 '보이스'라는 제목에서처럼 초인적 듣는 능력에 기반한 골든 타임팀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무뎌졌다. 

시즌 1에서는 강권주 센터장이 어떻게 남들과 다른 듣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 능력을 인정받고 골든 타임 팀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며 <보이스>라는 제목에 걸맞는 시리즈의 특성을 잘 드러냈다. 물론 <보이스1>에서도 모태구라는 악의 축에 의존하여 진행된 드라마는 '악행'의 변주에 색채를 더하며 회차를 거듭했지만, 신선한 캐릭터 강권주나, 폭주하는 무진혁의 파트너쉽은 그 무게 중심이 흔들려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 시즌2, 무진혁을 대신한 도강우마저 그 정체성에 의심을 더하며, 연달어 이어지는 방제수, 혹은 그가 관장하는 닥터 파브르와 관련된 일련의 범죄 과정에서 골든 타임팀의 활약은 어쩐지 뒷북이다 싶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늘 강권주 팀장은 활약보다는 사건에 대한 해석과 설명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도강우의 선배이자, 그를 사이코패스라 단정했던 나홍수 팀장(유승목 분)의 맹목적인 의심도 '고구마'라 칭해지는 이런 경찰 팀의 무기력에 힘을 보탠다. 심지어 '듣는 능력자'인 강권주 팀장은 폭탄의 타이머 소리는 물론, 녹음기 소리와 어린 아이의 목소리마저 구분하지 못한 채 절체 절명의 위기에 빠지며 시즌2를 마쳤다. 과연 강권주 팀장을 비롯한 골든 타임팀은 더욱 강력해지는 악의 축에 대항하여 시즌3를 통해 다시금 부활할 수 있을까? 이 또한 <보이스 3>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8. 9. 17. 15:07

<무사 백동수>, <라이어 게임>, <피리부는 사나이>, <보이스> , 김홍선 감독의 전작들이다. 흥행과 상관없이 그 장르적 특성이 강하며, 새로운 소재라는 점에서 언제나 독보적이었다. 그 김홍선 감독이 <보이스>의 속편 대신 들고 나온 작품은 뜻밖에도 '호러' <손 the guest>다. 이 또한 장르 드라마 영역에서는 새로운 한 발이다. 

 

 

엑소시즘, 그 익숙하지만 낯선
<손 the guest>는 '엑소시즘'(exorcist)에 대한 이야기이다. '손'으로 대변되는 절대 악령과 그 악령에 씌인 사람들을 사제 최윤(김재욱 분)의 '구마 의식'을 통해 그의 몸에 들린 귀신을 쫓아낸다.

이는 지난 2015년 개봉한 김윤석, 강동원 주연의 <검은 사제들>과 흡사하다. 영화 속 사제 김신부(김윤석 분)이 구마 의식을 진행하고, 그의 곁에서 부사제인 최부제(강동원 분)이 그를 돕는다. 영화에서는 인간의 몸에 들린 귀신을 제거하는 '구마' 의식을 바티칸이 비공식적이지만 전통적으로 수행해오던 의식으로 그려낸다. (실제 2014년 교황청은 비공식적으로 행해지던 장엄 구마 의식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드라마 역시 나이든 신부(남윤철 분)과 함께 부사제 최윤(김재욱 분)이 엑소시스트로 나선다. 2016년까지 연달아 제작되고 있는 장르물로서의 <엑소시스트>는 우리 관객에게도 익숙한 '엑소시즘'영화이지만, 2015년 개봉했던 <검은 사제들>은 우리 나라에서 드문 신선한 시도라는 찬사와 함께,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낯선 소재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손님, 그 이방인의 설화 
익숙하지만 어쩐지 우리에게는 낯선 '엑소시즘'이라는 소재에 다가가기 위해 드라마는 '손'이라는 전통의 개념을 들여온다. 그리고 그걸 설명하기 위해 1화에서 전통의 '손' 설화를 그려낸다.

바닷가 마을 세습무당의 집안에서 벌어진 제사, 물에 들어간 종진의 몸에 '손', '귀신'이 씌이고, 그 귀신은 아직 세습무를 받지 않은 어린 화평에게 드리운다. 화평으로 인해 죽어간 어머니와 할머니, 굿판 무당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화평을 죽이려 한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말리며 할아버지는 자신들의 힘으로 어쩌지 못한 '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구마 의식'을 하는 신부를 불러들인다. 

드라마는 귀신, 악령의 호러적 대상을  우리 고유의 '손'으로 치환한다. 드라마에서 막상 수행되는 건 엑소시즘이지만, 그 엑소시즘을 전통적인 설화를 통해 뒷받침해낸 것이다. 박일도라는 사람이 마을에 들어왔는데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사라지고, 박일도는 스스로 눈을 찔러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악령의 '캐릭터 메이킹'을 '설화적 형식'으로 전한다. 

이 '손'은 지난 2014년 개봉한 영화 <손님>에서 차용된 개념이다. 전통적 공동체에 들어온 이방인의 이름, '손,'the guest',. 손은 말이 좋아 손님이지, 전통적 공동체에서는 '타자'이다.  그 '배타적'인 전통적 관계의 정서를 영화는 독일의 우화 <피리부는 사나이>를 변용시켜 풀어내고자 했다. 그에 반해 드라마는 말 그대로 이 낯선 이방인을 그대로 '악령'이라는 장르적 존재로 전환시킨다. 

 

 

전통적 정서를 호러로 되살려 
이는 거슬러 천연두를 '손님'이라 부르던 전래의 '네이밍'으로 이어진다. 

옛날에는 부모가 셋이었다. 나를 낳아준 부모, 나를 점지해준 삼신제왕님, 손님네를 말한다. 
삼신할머니가 곱고 잘생기게 점지해주어도 손님네를 잘못 만나면 곰보나 언청이가 되거나 뱃사공의 일곱째 아들처럼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불쑥 나타나서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꽤나 무섭고 두려운 신 '손님네'
정성이 부족하면 앙화를 면하기 어렵고, 그들을 맞이하여 처신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살아있는 한국 신화, 신동흔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질병을 뜻하며, 그 속뜻은 고통을 안겨주고 집안을 망가뜨리는 불청객이란 말이다. 즉, 전통의 '손님'이란 친숙한 개념에서 '엑소시즘'을 길어오는 방식을 통해 낯선 장르의 친숙하게 하기를 취한다. 

이 방식은 같은 호러 장르를 내세운 kbs2의 <러블리 호러블리>에서도 등장한다. 드라마를 여는 건 '재수가 없다'거나 혹은 '운이 나쁘다'는 주인공들의 처지이다. 거기에 더해 눈이 하나 먼 할아버지 점쟁이가 등장하여 주인공의 도둑질한 사주를 들먹인다. 드라마 작가인 여자 주인공에게 들리는 환청, 의지와 상관없이 씌여지는 대본이라는 '초현실적 현상'을 '접신'의 경지로 설명하고, 두 주인공들의 얽혀드는 운명을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같은 운명의 사주로 설득한다. 거기에 더해 하나의 뿌리로 얽혀든 나무의 전설'까지 드라마는 현재의 초현실적 현상을 '인연' 혹은 '운명'이라는 가장 전통적이고 익숙한 도구를 통해 설명한다. 

이렇게 <러블리 호러블리>, <손 the guest> 는 초현실적 장르물인 '호러'라는 생소함을 가장 익숙한 전통의 정서, 개념, 설화를 통해 연다. 거기서 <손 the guest> 는 '박일도'라는 설화 속 인물로 부터 비롯된 악연으로 세 주인공 최윤, 윤화평, 그리고 강길영(정은채 분)의 비극적 악연을 길어낸다. 자신때문에 가족을 잃은 어린 영매, 박일도의 희생양이 된 형 때문에 가족을 잃은 화평, 그리고 형사라는 사명감 때문에 들린 화평의 집에서 엄마를 잃게 된 길영이 이제 택시 운전사, 구마 사제, 그리고 형사가 되어 박일도가 씌여진 또 다른 '손'을 맞닦뜨려 자신의 '업'을 풀어나가는 것이 <손 the guest> 의 관전 포인트이다. 








by meditator 2018. 9. 14. 14:45

불과 몇 십년전만 해도 손님이 오시면 설탕물을 타서 대접하기도 했을 만큼 설탕은 귀했다. 하얀 설탕이 오가는 명절 풍경도 낯설지 않은 때였다. 하지만 이제 '설탕'이, 단 맛이  우리 몸에 좋지 않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당뇨'가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질병으로 등장하면서, 그와 더불어 '단맛', 혹은 그 단맛의 대명사인 '설탕'은 건강에 있어 '터부'적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겉치레일 뿐이다.

단맛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 당을 올리지 않는 단맛이라는 매혹적인 문구로 우리를 유혹했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 약, 각종 식재료, 심지어 담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 생활속으로 깊숙히 침투해 들어왔다. 아침으로 먹은 현미 시리얼에도, 케첩 바른 토스트에도, 피자와 함께 먹은 피클에도, 얼큰하게 넣어 끓인 고추장에도 '단 맛'은 빠지지 않는다. 단지 형태만 변했을 뿐, 심각한 건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이 '가공된 단맛'이 우리의 몸에 더욱 해롭다는 것이다. 


 




바로 <mbc스페셜- 당신, 독을 먹고 있나요?>는 끊을 수 없는 단맛의 역사와 오늘날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공된 단맛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단맛, 그 중독의 역사 
단맛, 그 시작은 기원전 8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평양 뉴기니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사탕수수, 기원전 350년전 인도로 건너가 비로소 '설탕'으로 탄생되었다. 베어낸 사탕수수를 착즙하여 불순물을 거르고 정제하여 만들어낸 천연 설탕 구르(gur)가 만들어 졌다. 여전히 설탕을 물에 타서 먹을 정도로 인도인에게 설탕은 삶의 일부이다. 설탕을 밀가루에 버무려 튀기고 그걸 다시 설탕물에 졸인 튀김 설탕 과자 잘레비(jalebi)를 비롯하여 다양한 섵탕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단과자(스위트)들이 만들어지면 인도인들의 삶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인도의 설탕은 바클라바(baklava), 로쿰(lokum)으로 대표되는 스위트의 천국 터키를 지나 유럽으로 갔다. 하지만 첨부터 '설탕'이 모두에게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유럽으로 간 설탕은 왕실과 귀족들에게 허용된 '귀한 식재료'였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싼 스위트인 '마카롱'의 경우, 명품으로 대접받는 프랑스의 피에르 메스메 중 주문 제작 상품은 약 7천 달러(778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지난 수천년간 인류에게 설탕은 고급 식재료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설탕은 익숙한 맛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몇 십 년전 설탕이 선물이 되었을까. 그러나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영화 <초콜릿>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단 맛'을 맛본 사람들은 이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산업의 발달은 '설탕'의 대량 생산을 가능케 했다. 2017년 기준 전세계 설탕 소비량은 1억 7천만 톤이다. 이는 1800년대에 비해 24배나 증가한 속도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단맛'으로 인한 각종 사회적 질병의 문제는 급격하게 증가한 설탕 소비에 1차적으로 기인한다. 


 




가공된 단맛, 액상 과당, 각종 대사 질환의 주범 
우리가 즐겨 먹는 아이스크림, 음료수 등의 단맛, 하지만 이건 '설탕'이 아니다. 1967년 일본에서 개발되어  1975년 미국에서 대중화된 '액상 과당'이 그 주인공이다. 액상 과당은 사탕수수에서 추출된 자연의 단 맛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단맛'이다. 포도당으로 이루어진 옥수수 전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과당을 첨가하여 만들어진 고과당 옥수수 시럽이다. 액상 과당은 설탕보다 물에 잘 녹아 가공하기가 쉬우며 저렴하여 '단맛'의 대량 소비에 가속화를 붙였다. 

우리가 먹는 설탕은 포도당으로 전환되어 간에서 분해되고 남은 건 온몸에 에너지로 씌인다. 반면에 과당은 간에 축적되는데, 이는 '과잉 축적'을 부른다. 이로 인해 지방간이 발생하며, 심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도가 높아지며 당뇨 발생률을 높인다. 

거대아로 태어난 존, 하지만 엄마는 따로 식이요법을 하는 대신 또래 아이들처럼 빵, 케잌, 음료수 등을 먹이며 키웠다. 그 결과 결국 2017년 소아 당뇨 판정을 받았다. 혼자 신발끈조차 묶기 힘들어진 상황, 치료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존은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그간 즐겨 먹었던 가공된 단맛을 가진 음식들 대신 하루 5종류 이상의 과일로 단맛을 대체했으며, 1시간 여의 운동을 하고, 군것질을 부른 , tv 시청을 하루 2시간 이하로 줄였다. 각종 음료수 대신 물을 자주 마셨다. 그것만으로도 존은 무려 18kg을 감량할 수 있었다. 


 


​​​​​​​

제로 칼로리 음료, 노슈가 음료의 함정 
과당만이 문제일까? 실험실에서 탄생한 단 맛은 또 있다. 살이 찌지 않고 싶지만 단맛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탄생한 '노 슈가, 제로 칼로리 음료', 역시 단맛으로 인한 각종 질환의 주범이다. 

설탕과 제로 칼로리의 인공 감미료를 먹인 실험실 쥐, 놀랍게도 실험 결과 제로 칼로리 단맛을 복용한 쥐는 비만쥐가 되었다. 그 원인은 '홀몬'이다. 우리가 일반 설탕을 먹었을 때 우리 몸에서는 포만감과 함께 식욕 억제 홀몬인 GLPI가 배출된다. 하지만, 칼로리가 없는 인공 감미료의 경우 이 식욕 억제 홀몬이 나오지 않아, 계속 먹게 되는 것이다, 결국 '단맛'에 대한 과학의 잔꾀가 현대인의 각종 질환의 주범이 되었다. 편리함과 싼 가격, 쉽게 부패되지 않는 대량 생산된 인공적 단 맛이 우리의 건강을 급격하게 무너뜨리고 있는 중이다. 

중독된 단 맛의 대안은? 
미국 심장병 학회는 어린이의 경우 하루 당 허용량을 25g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각종 음식에 들어간 인공적인 단맛들로 인해 이 규정을 지키기는 어려워 졌다. 이에 '법'적인 해결을 미국의 버클리 주는 도모했다. 인공 감미료, 액상 과당등에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2015년부터 시행했다. 이런 법적 제재 조치만으로도 25% 정도의 감소 효과를 나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매일 매일 자신이 먹는 단 맛의 칼로리를 계산해보며 권장량과의 차이를 스스로 점검해 보는 방식을 권장한다. 

'고진 감래'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인류에게 있어 단맛은 '최고의 행복'을 상징하는 맛이다. 하지만 어느덧 그 '감미로운' 행복은 인류에게 독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당신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진짜 단 맛을 찾으라고. 다큐는 보리 싹으로 만들어진 엿기름을 발효시키고 오랜 시간 끓여 만든 천연 당의 갱엿을 그 예로 제시한다.  

새삼스럽지 않은 '단맛'의 경고, 다큐는 그 일률적인 단맛의 병폐를 액상 과당과 인공 감미료를 등장시켜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하고자 하였다. 물론 거기엔 전제되어야 할 것은 그럼에도 과잉 섭취된 단맛에의 중독이다. 

by meditator 2018. 9. 11. 16:14

조선시대는 '유교'라는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전사회적 체제가 된 사회였다. 모계적 전통이 남아있던 조선 초기만 해도 신사임당의 사례에서 보듯이 결혼을 하고 친정에 머물러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가풍이 가능했다. 하지만 유교적 질서를 전사회적으로 확산되어 가며 더불어 여성은 우리가 아는 '삼종지도', 어려서는 아비를, 결혼을 해서는 남편을, 그리고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가부장제에 일체화되어 간다. 우리가 이슬람의 여성들이 쓰는 '히잡'문화를 생소해 하지만 조선시대의 '쓰개치마'의 용도는  '히잡'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한 나라의 공주조차도 결혼을 하면 시댁의 문밖을 나서는 것이 쉽지 않았던, 그래서 '규방'이라는 곳이 여성들의 세계이자 '감옥'이 되었던 시대, 그 시대의 끝자락에 <미스터 선샤인>의 여주인공 애신(김태리 분)이 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하자마다 우리가 만난 건 남자의 복색을 하고 총을 든 여인이었다. 밤드리 지붕을 타고 총을 겨누다 만난 남녀 주인공, 그렇게 시청자는 구한말 최고의 명문가 규수인 애신의 파격적인 면모 시작한다. 

총을 든 규방 처자 
드라마는 그녀가 총을 드는 이유를 애신으로 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일찌기 '의병'이었던 아비와 어미, 하지만 그들은 그들만큼 일찌기 조국을 팔아넘기기로 작정한 일본의 앞잡이 이완익과 그에게 자신을 팔아넘긴 동지에 의해 타국 일본에서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동지와 애신을 구한 어미 덕에 애신은 무사히 고씨 가문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조국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부모님, 그리고 가산을 기꺼이 의병 자금으로 내놓으신 할아버님의 아래에서, 마치 유전적 소인처럼 애신은 풍전등화의 조국에서 총을 든다. 그녀에게 의병 활동은 '당위'였다. 

하지만 동시에 애신은 여전히 조선 최고 명문가의 아녀자다. 스물 아홉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지만 정혼자가 있고, 지엄한 명문가의 규율에 맞춰 외출시엔 가마를 타고, 하인을 대동하며, 쓰개치마를 뒤집어 쓰는 유교주의적 생활이 몸에 밴 여인이다. 혼인을 하지 않겠다,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그녀의 고백에 할아버지가 내린 엄명을 어기지 못하고 달려가다 대문 앞에서 멈추어버리는 여인, 여전히 그녀는 조선의 양반가 규수였다. 

양반가의 규수이자 의병의 일원으로 총을 든 여인, 이 아이러니한 조합, 하지만 그 조합은 '개인' 애신이 아니라, 유교주의 사회에, 의병의 가풍이라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선택이었다. 즉, 애신은 그 당시 조선의 여인으로서는 그 누구보다 파격적인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에 애신 '개인'은 없다. 마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든 논개와 다르지 않은 선택이다. 


 




사랑을 통한 인식의 확대 
그렇게 자신의 존재론적 고민을 일찌기 부모가 그랬듯이, 그리고 할아버지가 정해준 틀을 넘어서지 않으며 살아왔던 애신의 삶에 균열을 불러일으킨 건 '사랑'이었다. 가장 사적이고 감정적인 사건, 총을 겨눈 자리에서 만난 자기와 같은, 하지만 자신과 전혀 다른 이, 유진 초이라는 이방인에 대한 불안함으로 시작된 만남은 호기심과 궁금함을 넘어, 어느덧 사랑으로 흘러간다. 

동시에 그 이방인에 대한 관심은 동시에, 지금까지 견고하게 지켜왔던 애신이 쌓았던 의병이자, 규방 처자로서의 옹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미스터 선샤인>이 흥미로운 건, 등장 인물 개개인이 모두가 각자 격동하는 구한말의 조선에서 각자 자신의 사회적 존재론에 근거하여 어떤 입장을 선택하지만, 가장 개인적인 감정 '사랑'을 통해 그 자신이 했던 선택에 질문을 던지며 사회적 갈등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돌이켜보면 왜 애신이 유진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느 틈에 유진이 애신과 함께 하기 위해 기꺼이 그 길을 향해 가게 되었는지, 2018년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뜬금없기도 하다. 생각 외로 <미스터 선샤인>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친절'하지 않다. 아마도 그건 김은숙 표 드라마에서는 사랑이 당위라는 전제 위에서 쌓여진 서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사랑'이 사회적 자각의 확산을 위한 작위론적 설정에 근거해서 이기도 하다. 이제 종반을 향해 달려가는 이 드라마에서 여전히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두 주인공의 사랑, 그 개연성에 대한 의문은 바로 이런 설정으로 부터 기인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그녀가 했던 옳은 선택이었던 의병 활동, 하지만 그 선택이 얼마나 '의지론'적이었을 뿐, 현실적인 고민이 부족했었는가를, 애신은 유진(이병헌 분)을, 구동매(유연석 분)를, 쿠도 히나 (김민정 분)과 만나며 깨닫게 된다. 

그저 나라를 구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일, 하지만 과연 자신이 구하려는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가,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라는 질문을 노비였던, 백정이었던 이를 통해, 양반댁 규방 처자 우물안 개구리였던 자신의 인식의 한계를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녀가 선택한 전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전제에 대한 의문은 그녀의 선택이 가졌던 안이함을 단련한다. 그래서 유진에 대한 마음으로 그녀는 거뜬히 그녀를 가뒀던 고씨 가문의 담을 넘는다. 이때 그녀가 넘는 담은, 총을 들고 넘었던 담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극복'이다. 여전히 고씨 가문의 손녀였던 그녀는 당시 양반가 여성으로서의 치욕이 될 수도 있는 정혼을 파하고 유진과의 길 위에 서고자 한다. 


 


​​​​​​​
담을 잃은 그녀, 대신 담이 되어주려 할 그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로맨틱한 결정은 그녀의 울타기 되어주었던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 그녀를 원래의 궤도로 돌려놓는다. 이제 그녀에게는 큰 마음을 먹어야 넘을 수 있던 담 자체가 없어졌다. 대신 그녀가 든 총은 더욱 그녀와 일체화되었다. 할아버지가 죽으라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려 했던 사랑은 이제 그저 지난 꿈이 되었다. 이제 납치당한 이정문을 구하는 임무를 위해 사랑하는 이를 기꺼이 이용하려 들 만큼. 

드라마는 고씨 가문이라는 담을 잃은 애신의 고뇌는 생략한다. 단호하지만 대신 가문을 잃은 처자의 존재론적 고민은 물을 가치조차 없다 여긴다. 그 부모들이 죽음으로 대신했듯 애신 역시 그러할 뿐이다. 총을 든채 나타난 의병의 일원으로 그 모든 걸 설명하고자 한다. 아마도 <미스터 선샤인>이 가진 행간은 이 '선택'의 고민이 가진 말줄임표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그 말줄임표를 강제하는 건 풍전등화의 시대다.

대신, 그런 그녀를 두고, 고뇌의 칼날은 남성 캐릭터들에게 향한다. 6개월 동안 연락도 없는 애신에 유진은 애가 타고, 나라의 위기에 애신이 죽을까, 쿠도 히나가 죽을까 동매는 불안하다. 김희성(변요한 분)이라 다를까. 그래서 남은 회차, 이미 선택이 끝난 그녀를 향해 그들이 달려갈 것이다. 여태까지 그들을 보호했던 '담'을 버리고, 이제 '담'조차 없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총을 든 규방 처자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결국 존재론적 선택을 향해 달려갈 그들을 위한 가장 매력적인 배경이 된다.  결국 애신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타인으로 조선에 온 세 남자에게 닥친 조국의 운명, 그 상징이다. 



by meditator 2018. 9. 10. 15:49

한동안 허영만의 <식객>이 붐이었다. <식객>의 묘미는 뭐였을까? 그 만화를 읽은 독자들 나름의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사라져가는 우리의 맛'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여기 우리의 맛에는 '내가 아는'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의 맛도 있지만, 미처 몰랐던 '맛보고 싶은' 맛도 있다. 어린 시절, 혹은 지나온 시절에 맛보았던 그 맛들이 만화를 통해 재현되며 묻어 두었던 추억의 감성을 되살려내는가 하면, 함께 살아왔던 우리네 삶이건만 미처 알지 못했던 전국 방방곡곡의 사연어린 맛들이 독자들의 발길을 전국으로 흩뿌려놓았다. 그리고 그건 바로 올곧이 리네 삶이 지나간 흔적에의 공유이자 공감이었다. 바로 그 '식객'의 묘미가 예능으로 재현되려고 한다. sbs에서 7일 첫 선을 보인 <폼나게 먹자>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상징인 김상중이 예능을? 그 김상중이 하려는 예능이라면 뭐가 다를까? 라는 흥미를 부추긴다. 아니나 다를까? 예의 <그것이 알고싶다>의 '그런데 말입니다'로 프로그램의  서막을 연다. 매년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식재료의 수가 27000 개. 이런 진지한 김상중의 나레이션에 8년만에 tv로 돌아온 채림이 의문을 제기한다. 갈수록 갖가지 해외의 신기한 과일이나 식재료가 수입되며 우리의 식탁은 풍성해져만 가는데 사라진다니 라고 말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해외 농축수산물, 하지만 그런 가운데 토종 식물의 멸종이 우리 농업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 과연 우리의 토종을 살리기 위해 어떤 방법이 모색되어야 할까? 그 하나의 길로서 예능 <폼나게 먹자>가 제시된다.  <폼나게 먹자>는 먹방의 홍수 속에 사라져 가는 우리의 맛을 찾아가는 업그레이드 된 ' tv식객'의 포부를 연다. 

김치라고 다 같은 김치가 아니다. 
7일의 메인 먹거리를 찾아나서기 앞서 에피타이저로 네 사람의 출연자 이경규, 김상중, 채림, 로꼬는 유현수 셰프의 레스토랑에서 장장 30일간 숙성한 한우를 시식한다. 소고기를 30일이나 삭히다니. 하지만, 오늘날처럼 '냉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염장이나, 훈증과 함께 '삭히는'건 주요한 요리 방식 중 하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불고기'도, '회'도 사실은 삭힌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활어회'를 즐기는 이제 생소한 예외가 된 세상이다. 

삭힌 소고기, 당연히 삭혔기에 일반의 소고기와는 다른 향취를 내는 이 고기를 유현수 셰프는 삭힌 고기만이 가능한 어만두로 출연자의 미각을 돕는다. 일반 고기는 질겨져서 가능하지 않은 다져서 만두피로 만들어 찐 요리, 그 '어만두'는 상상 그 이상의 부드러움으로 '삭힌' 식재료의 예외적 세계를 연다. 


 




그렇게 '소고기'가 아니라, '삭힘'에 방점을 찍은 에피타이저로 연 프로그램은 김상중의 폭염 속 오토바이 질주와 함께 한 국도의 여정을 따라 충남 예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조우한 첫 회의 식재료. 

그 식재료와 첫 만남을 가진 이경규는 '쓰레기'가 아니냐고 대뜸 던진다. 허옇게 핀 곰팡이, 쓰레기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여진 식재료의 모습은 우리가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만날 만한 시레기국 찌꺼기와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걸 본 채림은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다'고 장담한다. 

이 서로 다른 반응을 이끌어 낸 주인공은 바로 '삭힌 김치'이다. 아니 <폼나게 먹자>며 사라져가는 식재료를 운운했던 프로그램의 첫 주인공이 겨우 삭힌 김치? 하지만 김치라고 다 같은 김치가 아니다. 만화 <식객>의 실질적 주인공에 다름아니라 저자 허영만이 소개한 식재료 전문가 김재료, 아니, 김진영씨가 나선다. 

옛 것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가 '배추'가 알고 있는 개량 배추가 아닌 토종 배추, 제주도 대정읍에서 고집스레 지켜낸 토종 배추 구억배추로, 임진왜란 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담궈 먹던 방식으로 고춧가루를 치지 않은 채 새우젓에 파, 마늘, 생강 등의 양념만을 넣어 담궈, 조상들의 방식대로 깨진 장독에 대나무를 깔고 그 위에 김치를 넣어 물기를 쫙 빼며 곰팡이가 필 때까지 삭혀지고, 또 삭혀진 김치. 
예산 고을에서도 겨우 10명이 지켜왔던 이 김치의 방식, 하지만 그 분들마저도 연로하셔서 이젠 겨우 2집만이 담그는 그 김치가 바로 첫 회의 주인공이다. 

우리의 대표적인 음식 김치, 하지만 김치라고 다 같은 김치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토종 씨앗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지역의 특색을 살려 우리가 알지만, 우리에겐 생소한 맛으로 지켜져온 전통의 맛, 그것이야말로 <폼나게 먹자>가 어떤 지향성을 가진 프로그램이란 것을 제대로 보여준 가장 걸맞는 첫 회의 주인공이다.


 


​​​​​​​

지난 늦가을 배추 수확 후 담궈져 찌는 듯한 여름까지 그 수 개월 자연의 공기를 고스란히 품어내며 삭아들어간 김치의 맛은 어땠을까? 식재료 전문가 김진영씨의 소개에 따르면 대부분의 토종 배추들이 그러하듯 우리가 맛보는 일반 배추처럼 부드럽지 않다. 마치 봄동처럼 질기고 쌉싸름한 첫 맛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따스한 봄의 전령사 봄동처럼, 토종 배추 역시 씹으면 씹을 수록 단 맛이 나며 맛본 이의 기억에 진한 흔적을 남긴다. 

그 구억 배추로 지난 가을 담궈진 예산 삭힌 김치를 맛본 네 명의 mc가 보인 공통적인 반응은 생각 외로 아삭거린다는 것이다. 보기엔 흐드러져 물러터질 것같은데, 아삭한 식감이 출연자들을 놀래키고, 쌀뜨물만 넣어 자작하게 쪄내어 들기름 한 방울 더한 그 별 거 아닌 삭힌 김치찜이 먹고 나도 삼삼하게 떠오르는 '밥도둑'이라는 사실 또한 이구동성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폼나게 먹자>는 그렇게 '과거'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 예전 <국민교육 헌장>의 문장처럼 옛 것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한식의 명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원일 셰프에게 삭힌 김치를 들고 찾아간다. 옛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 옛것이 여전히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젊은 감각'을 더하여, 그저 들기름을 넣어 조려졌던 삭힌 김치는 데친 얼갈이 배추를 더해 삭힌 맛을 중화시키고, 된장을 풀어 그 풍미를 더하고, 두부를 얹어 모두의 찬탄을 불러오는 대중적인 한 끼의 음식으로 재탄생된다. 

삭힌 한우로 시작된 프롤로그, 그리고 이어진 충남 예산의 삭힌 김치의 본 레시피, 거기에 더해진 오늘에 되살려진 이원일 셰프의 된장 삭힌 김치 두부 조림을 통해, <폼나게 먹자>는 프로그램이 의도한 바를 깔끔하고 흥미롭게 살려냈다. 부디 오래오래 잊혀져 가는 우리의 맛을 소개해 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8. 9. 8. 14:22
|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