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시청률 4.328%, 여전히 4%를 유지하고 있지만, 2회 4.971% 이후로 '하강 곡선'이다. 홀수 회차에서 이야기를 풀고, 엔딩에 이어 짝수 회차에서 이야기를 추스린다지만, 그런 작법이 통하지 않았는지, 4회차 역시 반응이 신통치 않다. 

2017년 백상 예술 대상 tv부문 대상,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2018 방송 통신 위원회 방송대상, 2017 뉴욕타임즈 국제 tv 드라마 탑 10 등 줄줄이 수상 실적을 나열하지 않아도 <비밀의 숲>은 2017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의 후속작인 <라이프>는 2018년 최고의 기대작이 되었다. 더구나, <비밀의 숲>을 함께 했던 조승우를 비롯하여 유재명, 이규형 등이 합류한다 하니, 그 기대치는 더욱 높아졌다. 




검찰 내의 비리를 하나의 살인사건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던 <비밀의 숲>이 그러했듯, 상국대학교 병원장 이보훈(천호진 분)의 죽음으로 시작된 자본주의의 파고를 맞은 병원의 이야기, 그 서막은 기대감을 만족시켰다. 사회부적응자였던 황시목(조승우 분)의 그림자를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구승효(조승우 분)가 의사들을 향해 '인종, 종교, 사회적 지위를 떠나서, 오직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키겠노라 선서하신 우리 의사 선생님들께서'라고 서늘하게 말문을 열기 시작하자, 또 한 명의 괴물 캐릭터가  탄생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는 좋은데......
그리고 이어진 몇 회, 물론 여전히 조승우의 구승효, 그 존재감은 탁월하다. 조승우 뿐인가? 어쩌면 <비밀의 숲>의 실질적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창준을 맡았던 유재명이 분한 주경문 선생이 '우리는 오늘도 수술장에 들어갑니다. 만분의 일 사고 위험도로 환자를 죽인 의사란 말을 들어도,'라고 담담해서 더 절절하게 말을 마치자, 이재명의 기억 대신 지방대 출신에 수술에 쪄들었지만 사명감만은 놓치지 않은 또 한 명의 캐릭터가 불쑥 들어온다. 

그렇게 비판적 소재의 좋은 이야기, 그 이야기를 풀어내주는 멋진 캐릭터들이 어울렸는데 시청률은 답보상태일까?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한 회, 한 회, <라이프>는 이야기는 훌륭하지만, 어쩐지 그 한 회를 보며 자꾸 시계를 보게 된다. 

우선 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사실 사전 제작에 가까웠다고 하지만 2017년 6월에서 7월 사이에 방영된 <비밀의 숲>과 이제 역시나 사전 제작이나 마찬가지인 2018년 8월에 방영 중인 <라이프>의 방영 텀이 짧다. 즉, 준비된 작가로서 이수연 작가가 미리 많은 작업을 했겠지만, <라이프>를 보면서 갸웃해진다. 과연 이수연 작가는 <비밀의 숲>의 검찰 내 이야기만큼, <라이프>의 병원 이야기를 잘 알고 쓰는 것인가? 라고,




아니 이 말은 어패가 있다. 5회 엔딩에 등장한 진주 의료원 이야기부터, 의료 사고 이야기 등 실감나는 병원 현실의 이야기들을 보고 '잘 알고 있느냐'는 질문은 어리석다. 그 보다는 과연, 이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과연 이수연 작가가 얼마나 '소화'해 냈는가라는 질문이 적절할 것이다. <비밀의 숲>이 놀라웠던 건, 검찰 내부의 전문적인 이야기들이 '대중들'이 보기엔 '무람없이, 그리고 드라마적 재미를 가지고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라이프>의 아쉬운 점은, 필요하고 중요한 '지적'과 '비판' 들이 어쩐지 '드라마'적으로 '덜' 승화되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종종 등장하는 이른바 일본 드라마 식의 '교훈 나열식'의 대사이다. <라이프>에서 시청자들을 가장 집중시키는 씬은 '강당' 씬이다. 의사들이 모여있고, 거기에 구승효가 등장하여, 서로의 대사로, 서로의 입장들이 치고 받을 때, 즉 서로의 대사 속에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수연 작가의 생각들이 쭉 나열될 때이다. 구승효의 일갈이 그랬고, 주경문의 솔직한 토로가 바로 이 씬에서 나왔다. 그래서 <라이프>를 놓을 수 없어 흥미진진한 것이지만, 다른 말로 하면 그렇게 대사로 쭉 나열하지 않고서는 '드라마적으로 풀어내기가 버겁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매회 반복되다시피 등장하는 '설명체'의 대사들, 폭염의 날씨, 월화 밤 11시 내일의 출근을 위한 잠을 미뤄가면서까지 이 드라마에 집중하는데 자꾸 '인내'를 필요로 하게 만든다.  요즘은 '다큐'에도 '재미'와 '각색'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라이프>가 '다큐' 이상의 드라마적 흡인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나열식'의 대사 이상으로 풀어낼 장치가 필요하다. 

조승우, 유재명의 존재감이 낳는 아이러니
그런데 여기서 '강당씬'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진진하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 강당씬을 제외한 다른 장면들이 덜 재밌다는 말이기도 하다.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드라마는 기존의 한국 드라마의 양식을 지양한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자체가 모호하다. 언뜻 보면, '자본'의 수구 구승효와  그에 반하는 환자와 병원을 지키려는 의사들의 대결같지만, 의사들을 입 뻥긋도 못하게 하는 구승효의 '입바른' 소리나, 각 의국, 더 나아가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가진 그들의 대치는 신선하다. 하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 둘 곳을 잃게 만든다. 

그렇게 마음 둘 곳을 잃은 시청자들을 위해 작가가 마련한 캐릭터가 바로 예진우(이동욱 분)다. 그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황시목이, 그래서 가장 법을 다루는데 엄정할 수 있었듯이, 장애인이 된 동생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가진, 그래서 인간의 고통과 아픔에 민감한 인물이다. 황시목과 정 반대의 설정이만 병원이라는 공간에 가장 어울리는, 그래서 병원을 '자본'의 수중에 던져주려 할 때 당연히 '본능'적으로 반발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응급 의료센터의 의사인 그는 병원 자본주의의 희생양이 될 처지이기에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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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진우는 어쩐지 좀처럼, 구승효를 앞세운 병원 자본주의와 그에 대항하는 세력의 중심에 자리잡지 못한다. 예진우 뿐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동생 예선우(이규형 분) 등의 에피소드가 번번히 '사족'처럼 여겨진다. 예진우뿐이 아니다. 분명 구승효의 각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은 소아과 이노을(원진아 분)선생이나, 산부인과 오세화(문소리 분) 선생의 에피소드들이 번번히 겉돈다. 5회에서 다짜고짜 총괄 사장실을 찾아가 구승효와 함께 소아과 병동을 '산책'했던 에피소드는 구승효의 '각성'을 도모할 자원으로 쓰여질 터이지만 어쩐지 그간 구승효의 캐릭터의 일관성을 흐트러뜨린 채 상투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심지어 부원장 김태상(문성근 분)조차도. 그런데 이미 시청자들은 그래서 라며 다음 질문을 던지며 궁금해하고 있는데, 문제는 드라마가 이들 각자에게 사연 한 보따리씩을 채운 채 그들의 이야기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사연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등장 인물 모두가 사연을 가지고 중요한 드라마는 '피로도'를 급증시키며 산만해진다. 

이건 아이러니하게도 <비밀의 숲>을 통해 일가를 이뤄버린 조승우와 유재명의 탓이 크다. 그들이 자신들의 연기로, 그리고 그들이 풀어내는 캐리터가, 자본을 앞세워 병원을 '개악'하려는 구승효와 그에 맞서는 하지만 정작 병원 내에서는 '왕따'와도 같은 주경문이 묵직하게 두 개의 축으로 자리잡았지만, 드라마는 여전히 분주하게 각 등장인물의 출연 분량을 챙겨주며 시청자들의 주의를 흐트린다. 5회 엔딩에서 주경문의 묵직한 선언 이후 캐릭터가 모호한 산부인과 오세화가 그의 곁에 서는 장면처럼 말이다. 

그래서 제작진의 '운명의 묘'가 필요하다. 과연 계속 이렇게 산만하게 모두의 이야기로 갈 것인가, 애초에 하고자 하는 '주제'에 집중하여 이야기와 캐릭터의 가지치기를 할 것인가. 모호한 구승효가 '자본'의 주구가 전면에 나서는 게 부담스럽다고? 하지만 어느새 상당수의 시청자들은 '구승효'의 시선으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선과 악의 경계에서 모호한 캐릭터라 함은 이미 <하얀 거탑> 속 장준혁 과장이 있지 않은가?  

<라이프>는 <비밀의 숲>처럼 각자 정체를 알 길 없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일'을 하다, 하나의 거대한 모순의 파고에 휩쓸려 들며 한 줄기의 흐름으로 만나는 방식을 다시 한번 취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5회를 맞이한 드라마는 그런 따로 또 같이라는 흐름의 축에서 엔진의 흐름이 약하다. 겨우 5회지만 캐릭터들의 질감의 차이가 드라마의 재미를 막는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비밀의 숲>을 추동한 누가 죽였는가?란 강력한 살인 사건의 흡인력이 <라이프>에는 없다. 원장의 죽음은 이미 동력을 잃고 의료 사고 등 작은 에피소드들이 산발적으로 터트려지는 것도 <라이프>의 흥미를 실종시키는 한 요인이다. 


그럼에도...
<라이프>가 제기하는 이야기는 소중하다. '인명'을 다루는 '공공재'인 병원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연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 것인가? 5회 엔딩에서 주경문 선생의 말처럼, 해마다 몇 십억원 씩의 적자를 내는 '공공재'에 대해 우리는, 우리 사회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과연 병원은, 의료 사업은 '자본주의'적인 사업일 수 있는가? 이 엄정한 질문의 가치는 드라마를 잘 풀어내는 것과 별개로 의미있다. 부디 이 가치있는 질문들이 '드라마'적으로 승화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8. 8. 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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