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주중 미니 시리즈는 고전 중이다. 월화 드라마 <너도 인간이니>는 5~6% 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주중 2,3위에서 오르내리고, 수목 드라마는 2%에서 4%대를 왔다갔다 하며 꼴찌를 맡아놓고 있다. 하지만, 이들 두 드라마를 '수치'상으로만 놓고 평가하는 건 아쉽다. 어쩌면 이들 드라마가 시도하고 있는 건, '수치'상으로 당연한 결과다. <너도 인간이니>는 공중파 미니 시리즈로서는 그간 생소했던 '로봇'이 주인공을 맡았으며, <당신의 하우스 헬퍼>는 잘 나가는 멋진 남자 주인공이라는 '환타지'적 요소를 배제한 '집안 일' 해주는 남자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간 '미니 시리즈'를 통해 시도하지 않았던 이들 드라마의 시도에 시청률이 당장 따라주지 않은 건 아쉽지만, 시청률이 따라주지 않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야말로 공영 방송으로서  '수신료'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한 방식이 아닐까. 




그런데 <너도 인간이니?>의 획기적인 지점을 그저 '인간'이 아닌 '로봇'이 주인공이 되었다는 점에 국한해서는 아쉽다. <너도 인간이니?>가 진짜 신선한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로봇'을 통해 '인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을 지금까지 드라마들과는 다른 서사의 전개를 통해 개연성 있게 설득해 내고자 했다는 점에서 <너도 인간이니?>는 시청률과 무관하게 혁신적인 드라마이다. 

애지중지했던 아들을 빼앗긴 로봇 공학자인 엄마 오로라(김성령 분)는 성장하는 아들의 모습을 똑같이 닮은 인공지능 로봇 '남신' Ⅱ, Ⅲ를 만들었다. 엄마를 찾아왔던 진짜 아들 남신(서강준 분)이 사고로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지자, pk그룹의 유일한 상속자인 아들의 위태로운 자리를 지키고자 엄마는 로봇을 아들 대신 고국으로 보내는데.

처음 남신 로봇이 진짜 남신을 대신하여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당연히 이 드라마의 '악역'은 당연히 남신의 사고를 사주했던 서종길 이사(유오성 분)라 생각했다. 물론 서종길 이사는 30회차에 이르는 동안 꾸준히 '악'역의 포지션을 가지고 활약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의 일관된 악행과는 달리, 매회 주요한 갈등 요소로 로봇 남신과 대립하는 '악역'의 롤을 변주시킨다. 

로봇 빼고 다 '악역'? 
처음 로봇 남신이 인간 남신을 대신했을 때 그를 위기에 빠뜨린 건 이제 그의 '연인'이 된 경호원 출신 강소봉(공승연 분)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고국을 떠난 빌미를 마련하기 위해 공항에서 당시 경호원이었던 강소봉에게 '폭력'을 휘두렀던 인간 남신에게 사과를 받고 싶었던 강소봉은 인간 남신인 척 하는 로봇 남신을 찾아가고, 그런 강소봉을 자신의 정보원으로 두고자 하는 서종길 이사의 '획책'으로 다시 경호원으로 들어온 강소봉은 '로봇' 남신의 존재를 들통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위기'의 발생자였다. 

재벌 3세의 '갑질'과 그에 저항하는 경호원의 갈등은 울면 안아주고, 위기시 인간 구호가 제 1원칙으로 내장되어 있는 로봇 남신의 활약으로 갑과 을의 갈등 대신, 이해와 우정, 나아가 '사랑'의 관계로 승화된다. 이렇게 극 초반 해프닝의 주인공이었떤 여주 캐릭터가 갈등을 넘어 화해와 사랑으로 극복되는 동안 뜻밖에도 로봇 남신의 앞길을 가로막은 건 '엄마'다. 

로봇 공학자 이전에 '엄마'였던 오로라는 아들 대신 pk그룹으로 보냈던 로봇 남신이 아들 이상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며 승승장구하자 아들의 자리에 대한 기우로 로봇 남신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오로지 로봇 남신의 역할을 아들 대신으로만 국한했던 엄마는 로봇 남신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자 '수동 모드'를 작동하고, 나아가 아들이 의식을 찾을 경우, '킬 스위치'로 로봇을 제거할 생각까지 한다. 




하지만, '갑과 을'의 자리에서 갈등하던 강소봉이 '로봇'을 통해 감화되고, 심지어 로봇인 남신을 사랑하기에 이른 것처럼, '악역'이 되어 로봇 남신의 목줄을 쥐고 흔들려했던 엄마는 결국 '키운 정'이라는 딜레마에 빠져 '악역'의 끝판 왕으로 등극하지 못한다. 그렇게 엄마가  '연민'의 갈등에 빠지는 동안, 뜻밖에도 다크호스로 등장한 건 pk그룹 회장 남건호(박영규 분), 알고 봤더니 로봇 공학자인 엄마의 연구비를 댔던 그는 자식보다도, 손주보다도 pk 그룹을 더 우선하며 그를 위해서는 친손주 대신 로봇이라도 대신,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핏줄조차도 이용하는 '냉혈한'이었다. 

그런데 역시 회장님이 가장 나쁜 놈인가 했는데,  '냉혈한' 남회장을 능가한 악의 보스가 등장했으니 뜻밖에도 로봇 남신이 그 역할을 대신했던 인간 남신이다. 알고 봤더니 일찌감치 의식이 돌아왔음에도 자신의 존재를 숨겼던 인간 남신은 자신의 역할을 무난하다 못해 자신 이상으로 잘 해내고 있는 로봇 남신과, 그런 로봇 남신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엄마, 지영훈(이준혁 분) 등으로 인해 갖가지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이렇게 30회차의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드라마 속 로봇이 일관된 자신의 원칙을 가지고 인간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동안 그를 둘러싼 '인간'들은 각자 자신의 이해 관계로 로봇과 대립하고 갈등한다. 을이었던 강소봉이, 자신의 친아들에 대한 애착을 가진 엄마 오로라가, 자신의 혈육보다 그룹을 더 우선시한 남건호 회장이, 그리고 이제 로봇에게 자신의 자리를, 자신의 사람들을 빼앗길 위기에 놓인 인간 남신이 로봇의 맞은 편에 선다. 

하지만 이들이 '악역'이 되는 건 각자 '인간적'인 이유에서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에게 내장되어 있는 메모리에 따른 원칙과 각종 취합한 정보에 근거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로봇 남신과 달리, 인간들은 각자의 위치, 각자의 입장에 따라, '합리' 따위는 말아먹고, 지극히 감정적이며, 충동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비이성인 판단과 행동을 불사하며 '선량한 로봇' 남신을 위기에 빠드린다. 심지어 단선적인 서종길 이사 조차도 인간 남신과 지영훈처럼, 그렇게 자신의 아들과 서종길을 경쟁시키며 조련하며 이용가치로만 이용했던 남회장에 대한 복수라는 점에서 '악역'롤에 개연성을 더한다. '로봇'이라 낯설고 생소했던 남신은 하지만 매회 각자 인간적인 이유로 그를 괴롭히는 인간들로 인해 어느덧 가장 불쌍한 '연민'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다. 




우리는 흔히 '인간적'이란 말을 좋은 개념으로 쓴다. 휴머니즘이란 말은 곧 '선(善)'의 대명사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너도 인간이니?>는 오히려 우리가 인간적이라 생각하는 그 '개념'을 장착한 로봇을 등장시켜 '인간'에 대해 반문한다. 오히려 인간이란 인간적인 갈등을 하며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닐까라고. <너도 인간이니?> 속 '악역'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인간들은 자신이 처한 '인간적' 상황으로 인해 문제를 발생시킨다.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해 피해를 자행한다. 하지만 강소봉이 그랬고, 오로라가 그렇듯 그들은 끝까지 '악역'이지 못한다. 자신의 딸 앞에서 약한 아버지의 눈물을 드러내고 마는 서종길마저. 폭주하고 있는 인간 남신조차 그의 한없은 이기적인 행태 안에 사랑받지 못한 채 자란 아이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단역처럼 등장했던 인간 남신의 고모 남호연(김혜은 분), 오로라 박사의 조력자인 데이빗(최덕문 분)도 각자 자신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인간적 고뇌를 한다. 

<너도 인간이니?>는 이상적이고 이성적인 로봇을 통해 '인간'의 모습에 대해 심층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 누구도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단선적인 캐릭터의 악역 대신 인간적인 갈등으로 끊임없이 갈등을 만들어 내는 인간들을 통해 그리고 그런 인간들과 갈등하는 로봇 남신이라는 서사적 구조를 통해 드라마는 절묘한 인간 탐구론을 펼쳐낸다. 시청률의 수치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너도 인간이니?>의 가치이다. 

by meditator 2018. 8. 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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