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부분을 ,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산으로 만들어진 조립품 같은 것.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다
                                             -     김중혁, 메이드 인 공장

자본주의 사회는 '물화'의 세계이다. 모든 인간은 '사물'을 통해 관계맺고 살아간다.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되어가면서 그 '물화'의 체계가 변화되어지고 심화되어졌을 뿐, 여전히 우리 관계 맺음의 근간에는 '사물'이 있다. 하지만, 거기서 본질은 그 '사물'과 '사물'로 맺어지는 체계의 핵심이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일찌기 맑스 선생은 이 '물화된 세계'인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의 소외'를 일갈했다. 지난 27일 방영된 ebs다큐 프라임 <내 운동화는 몇 명인가>는 가장 흔한 사물인 '운동화'를 통해, 그 속에 소외되어 있던  '인간의 세계'를 한껏 드러낸다. 





사물의 이야기, 곧 인간의 이야기 
'사물'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시도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찌기 1986년 일본의 공장을 삽화가 안자이 미즈마루와 함께 견학하여 당시 일본의 산업을 생생하게 그려낸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뜨는 나라의 공장>이 그러했고, 2014년 한겨레 신문을 통해 써내려간 칼럼을 출간한 김중혁 작가의 < 메이드 인 공장> 역시 공장이란 공간을 통해 사람과 시대와 공간을 복기해내었다.

그리고 일상의 삶에서 철학적 메시지를 건져내는데 탁월한 알랭 드 보통은 <일의 기쁨과 슬픔>을 통해 '일', 즉 노동의 현장의 생생함을 삶의 철학으로 설파한 바 있다. 물건이 드나드는 항구에서 시작된 '화물선 관찰하기'로 부터 시작되는 그의 시선은, 이내 물류로, 그리고 그 물류의 흐름을 타고 퍼져나가는 통조림, 그리고 우리가 하찮게 지나치던 그 통조림의 라벨이며, 그리고 간과되기 쉬운 사무의 자잘한 업무들, 회계, 창업 등등, 말 그대로 '일'의 전반적인 영역에 세심한 관찰과 촌철살인의 혜안을 내보인 바 있다. 거친 바다에서 잡힌 펄떡이던 참치가 어떻게 '사람들의 손'을 통해 통조림 캔으로 변신하게 되는가, 그 과정에 채곡채곡 쌓인 '직업'의 여정은 새삼 그 결결이 쌓인 사람들의 행보에 전율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ebs  다큐 프라임 - 내 운동화는 몇 명인가>는 tv로 온 알랭 드 보통 판 <일의 기쁨과 슬픔>과도 같다. 우리가 매장에서 자신의 개성과 패션을 따라 선택하는 운동화 속에 담겨진 사람들, 그들의 일이 한 시간 여의 다큐를 통해 묵직하게 전달되어져 온다. 




내 운동화는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
시작은 마치 남태평양의 참치 잡이처럼, 운동화의 원료가 생산(?)되는 말레이지아 열대 우림으로부터이다. 

마이딘 빈 안실, 67세, 255mm의 신발을 신는 그는 말레이시아 뚜아란  숲에서 운동화 밑창의 원재료인 고무를 채취한다. 18세가 영국 식민지가 된 이래 독립 이후까지 말레이지아의 주요 산업이 된 고무 채취 산업의 종사자이다. 허리에 모기향을 매고, 고무 나무에 칼집을 내서 고무액을 채취하는 작업을 1분에 다섯 그루, 그와 같은 일꾼들이 하루에 500그루 분량을 채취한다. kg당 만원을 받는 오로지 손으로만 해야 하는 작업, 70~80 링긴, 하루 20만원 정도의 벌이, 젊은 시절 한때는 도시에서의 삶을 꿈꾸기도 했지만 6명의 자녀와 12명의 손주를 키워낸 이 일이 혹시라도 고무 신발을 신은 관광객이라도 마주치면 반가움이 앞설 정도로 이젠 '자부심'이 되었다. 

마이딘이 채취한 고무는 모아져서 화학 약품으로 세척하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얇고 부드러운 고무로 만드는 과정은 195명의 말레이시아원주민이 주축이 된 사바의 가공 공장에서 이루어진다. 그 가운데 카트리나 빈티 와시(45)가 있다. 일찌기 중학교를 마치자 마자 인도네이사인 남편과 결혼한 후 좀 더 안정된 일자리를 찾아 사바 지역까지 온 그녀가 주로 하는 일은 35kg 단위로 만들어진 고무 블록을 포장하는 일,  대부분의 원주민이 그렇듯이 농사일과 공장 일을 병행하는 그녀와 남편의 맞벌이는 '자식 교육'에 집중되어 있다.  지금보다 더 성공한 '고무 공장 홍보' 일과 같은 사무직으로 전향을 꿈꾸는 그녀에게 '고무'는 풍족한 삶의 근원이다. 

다른 이의 삶과 얽혀있는 한 사람의 삶, 
말레이시아에서 채취되어 1차 가공된 고무는 멀리 슬로바키아까지 여행을 떠난다. 슬로바키아 파르티잔스케는 1930년대 후반 신발 공장이 생기며 형성된 도시, 그곳에 도착한 고무는 본격적으로 운동화로의 변신을 시작한다. 

요제프 샤레이와 얀 쿠노하는 10대 후반부터  이 공장에서만 48년, 40여년을 일했다. 퇴직을 했었지만 다시 공장으로 돌아온 두 사람, 여전히 기계의 소음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거대한 롤러로 고무를 펴서 신발에 맞춰 재단하고 운동화 갑피에 얹는 일. 1939년에 만들어진 공장 1년에 4백만 컬레를 생산하며 만 오천명의 노동자가 북적이던 시절도 있었다.  슬로바키아의 올림픽 영웅 요제프가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운동화를 신고 트랙을 내달리던 88년, 그 시절을 정점으로 더는 공장의 기계는, 공장의 공정은 새로워지지 않았다. 1990년대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사양산업이 되어가는 운동화 산업. 퇴직했던 요제프나 얀이 다시 돌아와서 일해야 될 정도로 일손이 귀해진 공장, 이들은 자신들이 나이먹어가듯, 자신들의 시대가 이 낡은 공장과 함께 저물어 가는 걸 실감하며 슬퍼한다.
신발과 함께 경력 30년 그녀의 손에서 운동화 패션이 완성되는 갑피 제작에 종사하는 마리아 아담 초바(57)에게 역시 공장은 나의 집, 그녀의 인생이다.



가장 일상적인 운동화를 전해주는 가장 일상과 먼 삶을 사는 사람들 
저물어가도 여전히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운동화는 슬로바키아의 공장에서 탄생하여, 비로소 운동화로서 첫 여정을 떠난다. 슬로바키아에서 독일 함부르크로, 그리고 다시 항구에서 배를 타고 남중국해 싱가폴과 홍콩을 지나, 부산까지 9800컬레의 동료들과 함께 컨테이너 박스 안에 담겨 5주간의 여행에 몸을 싣는다. 

그 여정에는 이제 갓 신혼의 일등 항해사 35세의 한국인 권태수씨와, 12년 경력의 갑판원 36살 미얀마 인 묘 코 코우 씨가 함께 한다. 선실에서 화물을 관리하고 선체를 정비하는 일을 '사무'하는 항해사와, 직접 몸을 움직여 컨테이너를 고정하고 청소하는 갑판원의 '협업'을 통해, 그들이 모르는 컨테이너 속의 신발들은 안전하게 부산에 도착하여 거리를 누빌 수 있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는 1억 8000만 컬레의 신발을 수입했다. 말레이시아, 슬로바키아, 무심코 신은 내 컨버스 운동화 한 컬레가 그리 오래 여행의 산물이었다니, 그리고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였던 말레이시아의 고무 채취 인부와 가공 공장의 아줌마 노동자, 그리고 운동화가 평생의 열정이라는 슬로바키아의 노익장 노동자, 그리고 컨테이너 선의 한국인 항해사와 미얀마인 갑판원 등이 내가 신는 운동화 한 컬레에 담겨 있다. 아니 함부르크 항에서 컨테이너 선을 옮긴 부두 노역 노동자와, 함부르크까지 옮긴 트럭 운전수와, 말레이시아에서 바다 건너 슬로바키아까지 옮긴 선원들은 또 어떻고, 물류만이 아니다. 고무로부터 시작했지만, 운동화 갑피가 되는 천과 가죽의 원료로 부터 시작되면 또 얼마나 수많은 사람이 더해져야 하는 건지, 내게 운동화를 건넸던 그 가게의 아르바이트 생 또한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세상은, 세상 사람들은  내 운동화 한 컬레를 통해 서로 이어지고 있다. 운동화는 그저 운동화가 아니라, 그들의 '노동'이며 '열정'이요, 삶이다. 일찌기 어느 시인이 니가 뜨거워 본 적이 있느냐며 연탄재 함부로 발길질 하지 말라 하셨는데, 이젠 뜨거워졌던 연탄재 때문이 아니라, 운동화가, 그 운동화에 담긴 연탄만큼 활활 타올랐던 수많은 삶이 무거워 함부로 발길질을 못하지 않을까 싶다. 



by meditator 2018. 8. 29. 16:24

'듣기만 해도 볼 수 있어', 어린 시절 사고로 청력이 극대화된 강권주(이하나 분), 보통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능력은 20Hz~ 20KHz, 그에 반해 강권주는 22khz 정도라는 돌고래 급이다. 이는 120m 떨어진 곳에서 작은 공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능력 덕분에 119신고 센터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현장의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119 신고 요원에 불과했던 강권주가 풀어내기엔 역부족이었던 사건. 그래서 강권주는 그 '소리'를 증명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 '소리를 기반으로 하여 범죄 유형을 분석하는 '보이스 프로파일러'가 되어 돌아왔다.  '듣기만 해도 볼 수 있는', 거기에 그 들었던 소리를 기반으로 사건 현장의 미세한 단서마저 포착함은 물론, 피해자나 범인의 상황이나 심리 상태까지 축측할 수 있는 강권주 팀장을 필두로 하여 119 신고 체계를 업그레이드한  '골든 타임팀'이 꾸려진다. 




강력한 사이코패스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시즌
강권주와 골든 타임팀은 119 신고 센터를 중심으로 하여 포진한다. 그런 그들에게는 현장의 귀가 된 그들의 수족이 되어 현장으로 달려가 사건을 수습하고 범인을 체포할 '수족'의 파트너 쉽이 필수적이다.  <보이스 시즌1>에서 그 '수족'의 중심에 강권주 팀장의 아버지와 같은 사건에서 아내를 잃은 '미친 개' 괴물 형사 무진혁(장혁 분)이 있었다. 드라마는 초반 이하나가 분한 강권주는 그 목소리는 물론 보이스 프로파일러라는 설정조차 생경했으며 반면 그녀의 파트너 무진혁의 장혁은 일찌기 <추노(2010)>의 대길이 이래 익숙해도 너무 익숙했었다. 이런 부조화는 모태구(김재욱 분)라는 깔끔한 슈트를 입고 철공을 휘두르는 극단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사이코패스와 매회 잔혹하면서도 퍼즐이 기막혔던 범죄 사건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보이스 시즌1>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그리고 겨울의 찬바람과 함께 그래서 더 에렸던 2017년 초 <보이스 시즌1>이 찌다못해 숨통을 죄이는 듯한 2018 여름, 시즌2로 찾아왔다, 그런데, 팀장 무진혁이 사라졌다. 매일 사건을 쫓아다니느라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들고 나왔다 참변을 당한 아내를 죽인 범인을 쫓아 미친 개처럼 동분서주했던 무진혁 형사가 시즌 1내내 병원에 있던 아들의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시즌 1을 이끌던 사건, 강권주 아버지와 무진혁 아내의 죽음을 범인 모태구와 그를 집요하게 추격하던 무진혁 팀장과 함께 털어지고, 모태구 못지 않은 강력한 사이코패스의 등장으로 시즌2의 서막을 연다. 

<보이스 시즌2>는 마치 <보이스>라는 시리즈의 특장점이 '잔혹 범죄'에 있기라도 한듯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 배 위에서 벌어지는 형사 나형준에 대한 사이코패스와 그 하수인의 살해 및 시신 일부를 절단하는 잔혹한 사건으로 연다. 그런데 이 현장에는 범인과 공모자, 그리고 피해자 외에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다. 바로 시즌2에서 출동팀 팀장이 될 형사 도강우(이진욱 분)이다. 




시즌2의 통일성, 변주, 그리고 확장 
도강우가 그 현장에 있었다는 건, 시즌 2의 가장 큰 변수가 된다. 경찰대 출신 시즌 1의 무진혁 못지 않게 범인을 쫓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는 또라이 형사, 하지만 파트너 형사의 죽음은 뜻밖에도 그에게 '동료 형사 살인범'이라는 '함정'을 만든다. '팀'의 존재를 거추장스러워하는 반사회적 인물이자, 살인범인지, 정의를 쫓는 형사인지 모호한 도강우의 존재는 오로지 사건 해결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던 무진혁이란 시즌 1의 캐릭터를 새롭게 변주해 내며 시즌2의 볼 거리를 확장시킨다. 

또한 시즌 1의 모태구 사건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목소리'에 기반한 119 응급구조 팀, 골든 타임 팀을 확고부동하게 안착시킨 강권주 팀장은 이제 팀원들을 새로이 정비하며 활약을 펼치려고 할 즈음, 무진혁 팀장의 공석을 이어받은 장경학 팀장의 사망 사건으로 시즌 1에 이어 다시 한번 강권주 팀장 이하 팀원들에게 숙명의 적을 탄생시킨다. 

팀원을 잃은 골든 타임팀과 동료 형사를 잃은 도강우의 출동 팀장으로서의 합류, 그렇게 시즌2의 조합이 꾸려진 가운데, 자신이 사망한 시신의 일부를 '수집'하는가 하면, 배후의 조정자이자 공모자, 그리고 음모자로서 방제수(권율 분)를 6회 전면에 등장시키며 드라마는 본격적으로 대립 구도의 각을 세운다. 거기에 일찌기 도강우에 대해 '사이코패스'라는 의심을 품은 나형준의 형이자 풍산지청 강력계장, 그러나  그 역시 승진에서 누락된 의혹이 있는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나홍수(유승목 분)를 더하며 인물 구도를 확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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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의 관전 포인트? 
<보이스 시즌 1>이 그랬듯이 시즌 2 역시 골든 타임팀의 119 신고 체계에 기반한 긴급 출동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매회를 이끈다. 스스로 보호 능력이 없는 어린 아이를 상대로 한 아동학대 범죄는 시즌 2의 어린이 성폭행 범죄로, 최종 보스에 의해 조장되는 카피 캣 범죄는 시즌 2에서는 종범들의 급발진 사건 등으로 시즌의 연속성을 환기시킨다. 또한 시즌 1에서 무진혁 팀장에게 도시락을 들고 가다 살해당한 '은형동 형사 아내 살해 사건'은 시즌 2에서 역시나 강권주 팀장을 위해 오이 소배기를 싸들고 가다 보이스 피싱 범죄에 연루된 박중기 형사 아내의 사건으로 변주된다. 이렇게 마진원 작가에 의해 이어지는 시즌 1과 시즌2는 시즌의 연계성을 가지며 시즌을 이어보는 시청자들에게 흥미를 배기시킨다.

물론 그럼에도 시즌 1과 시즌 2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여전히 은형동에서 풍산동으로 지역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그 지역을 배경으로 경찰을 쥐락펴락하며 무시무시하게 암약하는 사이코패스의 존재이다. 모태구보다 더한 괴물이 나올 수 있는가 싶었지만, 첫 회 자신이 훼손한 시신을 찍고, 그 일부를 기념품으로 챙기는 살인마의 등장은 이미 '모태구'를 잊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시즌의 일관성 외에 규정을 어기고 나홍수 과정의 정보를 해킹한 진서율 팀원의 과오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강권주와 그런 그녀를 엄호하는 도강우, 박중기 형사의 아내를 몸을 던져 구하는 도강우 등 팀을 무시하는 듯하지만 헌신적으로 사건에 임하는 도강우 팀장으로 인해 팀원들 사이의 결속력이 더해지는 한편, 향정신성 의약품을 복용하는 도강우, 과거 도강우의 기억 상실을 형에게 고백하는 나윤수, 그에 더해 보이스 피싱 조직 총책의 검거 과정에서 보인 죽음을 방조하는 듯한 행동에 화룡점정으로 강권주 팀장에세 배달된 나윤수 사건의 공모자라는 메시지는 도강우에 대한 '진실'을 혼돈에 빠뜨리며 <보이스 시즌2>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낯설었던 이진욱은 모호한 도강우라는 캐릭터 덕에 어느 틈에 극의 중심에 서있는다. 

시즌 1은 성운시라는 지역성의 특성을 강조했다. 월남하여 성운시에서 버스 사업을 시작으로 이제 성운시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재벌과 그의  사이코패스 아들이라는 설정을 통해  우리 사회 재벌 족벌 체제의 암울한 부분을 극대화시켰다. 그렇다면 이제 풍산시로 자리를 옮긴 <보이스2>는 의문의 존재 도강우와 이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방제수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남길 것인가. 범죄의 해결 이상 사건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또한 시즌 2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8. 8. 27. 15:42

eidf 페스티벌 경쟁 부문에는 세계 각국에서 출품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포진되어 있다. 그 중에서 <마지 도리스>와 <모리야마 씨>는 한 사람의 삶을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은 그저 일인이 아니다. 그 '개인'을 통해 '사회'와 '문화'를 바라본다. 우리가 아는 세상 너머에 여전히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향유하고 지키고자 하는, 혹은 즐기고자 하는 '문화'를 통해, 우리가 아는 세계의 지평은 넓혀져 간다. 




74살에도 건재한 순록지기이자, 예술가 마지 도리스 
어릴 적 읽었던 북유럽 동화책에서 '라플란드'는 하얀 자작나무가 자라고 오로라가 빛나는 신비한 북극의 땅이었다. 순록과 눈썰매가 있어야 그곳에 갈 수 있는. 동화 속에서 만난 그곳이 실존이라기 보다는 환타지였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스웨덴의 1/4을 차지하는 노르웨이와 핀란드와 국경을 마주한 이곳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가 쉽겠는가. 하물며 그곳에 일찌기 석기시대부터 순록을 키우며 살던 원주민 사미족이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 것이다. 

<마지 도리스>는 바로 그 라플란드의 원주민 사미족의 대표적 예술가이다. 1970년대부터 사미족의 전통적 공간인 라플란드의 정서가 담뿍 담긴 목공예, 그림 등으로, 연극으로 예술 활동을 해오던 마지,  2017년의 겨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스웨덴 북부 파렌자르카에서 사는 그녀에겐 그녀의 예술 활동만큼이나 겨울을 맞이하여 그녀의 농장으로 내려온 순록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그녀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거의 다섯 시간을 걸려 이끼를 씻고 분류하여 순록에게 먹이는 일이다. 혹시나 솔잎이 섞이면 배탈이라도 날까 섬세하게 비벼대는 손길의 분류, 하지만 나누고 씻고 나누어주는 일상이 매일 매일 오다시피한 한 걸음 떼는 것조차 온 힘을 다해야 하는 눈 속에서는 큰 일이 된다. 하지만 이 쉽지 않은 일을 마지는 지난 20여년간 해왔다. 그녀의 부모님이, 또 그 부모님이 해왔던 전통대로. 봄이 되어 순록이 산으로 떠나면 2주 동안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할 만큼, 순록은 그녀의 가장 최측근이 되었다. 순록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젊은 시절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마지. 

다큐는 찌글찌글한 주름으로 뒤덮인 얼굴이 무색하게 긴 장화와 두터운 옷을 입고, 묵묵히 지붕에 올라 삽으로 눈을 치우고, 눈 속을 뚜벅뚜벅 걸어 순록에게 먹이를 나누어 주는 마지의 일상을 통해 전통적 삶을 끈질기게 지켜내는 강인한 한 사람을 그려낸다. 오로지 눈과 순록과 광활한 북극의 하늘만이 채우는 그 곳에서 알바를 하러 온 아프가니스탄인의 물음처럼 '외로운' 일상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엄숙'하다. 그리고 그 엄숙함의 행간을 채우는 건, 촉박한 전시회의 일정에 맞춘 예술 작업, 음악들. 순록의 형상을 한 목공들, 그리고 라플란드의 자연을 닮은 그림은 그 자체로 마지의 삶이다. 

일찌기 파리, 캐나다 전 세계를 돌며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자유롭게 살던 젊은 날, 그리고 기나 긴 칩거, 이제 다시 그녀는 라플란드의 언어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다. 탄광과 모피를 위해 침략당했던 땅, 갱도에서 신음했던 동포들의 역사를 호소하며 자신들의 전통과 언어의 공존을 호소한다. 74살의 나이에 순록을 돌보고 예술 활동을 이어가는 게 쉽지않다지만 다음 겨울 순록과의 해후를 기대하는 여전히 꿋꿋한 라플란드의 대표적 예술가, 마지의 일상을 통해 라플란드가 빛난다. 

내게 집은 보다 사적인 공간이며 의미있는 곳이며 
완벽하지 않은 곳이고 최신 유행을 따라가려 기를 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며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아등바등대지 않는 곳이다. 
집은 무엇보다 자신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줄리 포인터 애담스, <와비사비 라이프> 



노이즈뮤직처럼 편안함은 상대적- 모리야마 씨가 만든 도시의 숲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제 더는 모리야마 씨에게 '집'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을 허물었다. 그리고 그곳에 숲을 만들었다. 그리고 숲 사이에 하얀 블럭이 점점이 박혔다. 층고에 따라 확장된 정육면체, 그곳에 뚫린 창문, 창문에 펄럭이는 하얀 커튼, 그리고 하얀 건물과 파아란 하늘은 커튼을 이웃하여 혼연일체가 된다. 가장 직선적인 공간이 가장 자연친화적인 듯 느껴진다. 아마도 거기엔 '집' 대신 그저 나무 사이의 '공간(큐브)'이 있기 때문일 듯.

모리야마 씨의 집은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니시자와 류에가 지은 모리야마 하우스는 그렇게 동경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건축물이다. 하지만, 그 집은 만든 건 니시자와 류에이지만, 모리야마 하우스에 '문화적 향취'를 더한 건 바로 모리야마 자신이다. 마치 오래전 옛집의 마당처럼 나무 아래에 마련된 대야에 물을 받아 세수를 하고, 이 '공간과 저 공간을 옮겨다니며 대청 마루처럼 건물 창 밖으로 발을 늘어뜨리기도 하고, 창문에 거의 머리가 나오다시피 드러눕기도 하고, 하늘이 보이는 창가 소파에 다리를 걸치기도 하면서 가장 편한 자세로 그가 가장 사랑하는 '독서'를 하는 일상, 그리고 그만의 비밀 공간인 지하 음악실을 찾아 경청하는 음악이 된 소음들(노이즈 뮤직), 

이탈리아에서 온 감독 일라 베카와 루이즈 르모안은 일본의 대표적 노이즈 뮤지션인 오모토 요시히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의 전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이 독특한 인물이 궁금해져 그와 일주일을 보내고, 그 시간은 작품이 되었다. 창문 여닫는 소리, 별 거 아닌 잡음들이 모여 하나의 음악이 되듯, 모리야마 씨는 '편안함은 상대적'이라 한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그대로 그의 공간 속을 관통한다. 열 개의 큐브 중 그가 사용하는 네 개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들은 대여되었고, 대여된 건 그저 직육면체의 하얀 벽과 창문들 뿐, 그 안의 공간은 소유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세계로 존중된다. 하지만, 그들은 나무 사이, 건물 사이 틈인듯, 마당인듯, 골목길인 듯한 공간에서 종종 만나 이방인과 조우하고,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고, 빛나는 불꽃을 태운다. 

감독이 찾아가기 일주일 전 세상을 떠났다는 모리야마 씨의 애완견, 그 애완견은 나무 아래에 잠들어 있다. 그곳을 지키는 작은 조각상, 그 조각상의 의미를 묻자, 모리야마 씨는 짧은 영어로 난감해 하며 설명한다. 예수와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자신은 종교가 없으니, 그건 이 물병이랑 다르지 않다고. 모리야마 씨의 이 짧은 설명은, 마치 소음이 모여 음악이 된 노이즈 음악처럼, 그저 하얀 큐브에 불과한 공간이 나무 사이에 자리 잡아, 그곳에 사람이 깃들여 살며 따로 또 같이 삶의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집이 아닌 집이 된 공간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곳에 깃들여 유유자적 음악과 책으로 공간을 채우는 최근 트렌드로 대두된  '빠름에서 느림으로', '홀로에서 함께로', 그리고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변화시키는 '와비사비'적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와비 사비 (Wabi-sabi, わび・さび)일본의 문화적 전통 미의식,미적관념의 하나이다. 투박하고 조용한 상태를 가리킨다.)






by meditator 2018. 8. 23. 20:57

 아버지에게 딸이란? 그런 속담이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이라고. 아들 딸 차별이 아니라, 아들보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단 말은 하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딸은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꺼질세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존재다. 그렇게 자신을 애지중지 키워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면'? 아버지를 잃고 거리로 나선 소녀가 있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희망'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이집트 소녀 아말이다. 아말은 아버지의 바램대로 '희망'찬 삶을 살았을까?

2010년 튀니지에서 일어난 시위를 계기로 '아랍 민중들은 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아랍의 봄'이라 명명된 이 민주화 운동은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등으로 퍼져나갔다.  우리에게는 피라미드의 나라로만 막연하게 알려진 관광국, 하지만 국민의 40% 이상이 빈곤선 아래의 삶을 유지하는 빈부 격차가 심한 나라, 그곳에서는 이미 2008년 야권 지도자들과 노조를 중심으로 시민 불복종과 파업으로 시발된 민주화 시위가 시작되었다. 




아버지를 잃고 거리로 나선 소녀 
그리고 구타와 고문으로 사망한 청년 칼리드 사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이집트 사람들은 무바라크 정권의 인권 유린 행위에 항거하여 전국적인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평화적 시위를 주장하며 시위대는 행진을 했지만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제 막 십대에 들어선 소녀 아말의 아버지 역시 목숨을 잃었다. 경찰이었던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는 시위에서 진압하던 경찰들의 맞은 편에 섰다. 그리고 이제 소녀 아말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거리로 나선다. 

다큐는 혁명 당시 14살이던 아말을 그녀가 19살 성인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쫓는다. 14살의 소녀 아말은 사라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정부에 대한 분노로 승화시키며 거리로 나선다. 짧은 머리, 후드 차림의 소녀는 또래의 소년들과 함께 거리를 지킨다. 

그리고 그렇게 거리에 선 아말의 현재 사이에 간간이 아버지가 찍었던 어린 시절 아말의, 이제 막 앉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티없이 밝기만 했던 화목했던 가정의 딸 아말과 그 가족의 특별한 날 찍었던 홈 비디오를 끼워 넣으며, '민주화 운동'이 아말의 가정에, 아말에게 가져온 비극을 대비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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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 그리고 여자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라 하지만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에서 '소녀'인 아말이 거리의 투사로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늦은 밤 함께 시위를 벌이던 동료들은 그녀에게 더 늦기 전에 집에 돌아가라 타이른다. 반발하는 아말, 나도 너희랑 똑같은 동지인데, 왜 나만 돌아가라고 하느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너가 여자이니까.' 

그 동지의 대답은 아말은 좌절시킨다. 하지만, 또래로 보이는 남자들과 축구를 하며 밝게 웃으면서도, 때로는 그들이 자신을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지 않고, 아니 남자처럼 대했을 때, 역시 아말은 혼란스럽다. 그러면서도 늘 아말은 당당하게 자신은 여자이지만 너희와 똑같은 동지라 주장한다. 

14살, 15살, 16살, 거리의 투사로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아말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동지는 2013년 군부 쿠데타 과정에서 아버지처럼 사라졌다. 아말은 진압하는 경찰들에게 머리채를 질질 끌려다녔다. 그리고 혼돈의 과정은 그녀의 팔목에 몇 개의 상흔을 남긴다. 

거리에서 그녀가 목격한 진실에 의거, 선거를 통한 덜 나쁜 사람을 뽑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선택적 정의에 분노하던 아말,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미성년자인 그녀에게는 선거권이 없다. 그저 편의적 선택을 하는 엄마와의 설전 뿐. 그리고 동지이자 새로운 연인이 된 친구는 그녀를 '여성'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려고 하는데. 

1981년부터 장기 집권했던 무바라크 대통령을 시민들의 힘으로 권좌에서 내몰 때만 해도 이집트에는 민주화의 서광이 비춰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14살 소녀 아말이 19살 성인의 문턱에 들어서기 까지, 이집트는 선거를 통해 집권했던 이슬람 형제단 소속의 무르시 대통령이 전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종교독재'를 하다 결국 1년 여 만에 군부에게 감금당하고 만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압델 파타 엘 시시 장군,  2014년 시위도중 잡힌 사람들에게 무더기 사형 선고를 비롯하여, 자신을 비판한 앵커 추방 및 길거리에서 시민 인터뷰한 기자 체포 등의 언론 탄압 등으로 민주화 세력을 짓밟는 한편,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하여 2018년 현재까지 정권을 연장하고 있다. 아랍의 봄은 이게 끝이 안보이는 겨울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거리로 나섰던 소녀 아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엄마와의 설전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소녀는, 여자라 해서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던 당찬 소녀는 이제 히잡을 곱게 쓰고, 대학 시험 준비를 하는 소년가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래 거리로 나서 '공부'라는 것과 담쌓고 지냈던 시간, 약학을 공부하고 싶던 소녀는 대신, 판사인 엄마,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법학을 전공하고자 한다. 너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가던 그 경찰이 되는게 괜찮겠느냐는 친구의 질문, 그 질문은 아말에게 숙제로 남는다. 스스로 체제의 일부분이 되어 가는가, 아니면 그 체제의 내부에서 새로운 흐름이 될 것인가. 낙오자가 될 것인가. 실패한 혁명, 아버지와 연인, 사랑하는 이를 잃어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소녀는 이제 다시 출발점에 섰다. 

by meditator 2018. 8. 21. 17:56

구한말 의병의 이야기를 야심차게 다룬 <미스터 선샤인>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자 주인공인 유진 초이(이병헌 분) 및 주요 인물 구동매(유연석 분)을 '국외자'로 설정하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무리 어린 시절 조국의 은혜를 받지 못해 고국을 떠난 노비의 아들이나, 백정의 자식이라도 그들이 이제 '미국인'이 되어, 혹은 일본의 낭인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설정은 제 아무리 그들의 극적인 '자각'을 예정한다 했어도, 그들의 역사적 존재로 인해 쉽사리 두 남자 주인공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도록 했다. 그런데 바로 그 '국외자'였던, 그래서 늘 '경계'에 섰던, 아니 스스로 경계 밖의 존재라 자신을 규정했던 두 사람에게 스스로 경계를 넘어올 수 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미국인 유진, 의병의 저격 대상이 되다. 

유진은 노비였다. 아비가 노비였고, 어미 또한 그러했다. 어미의 미색을 탐한 외부대신 이세훈과 그에게 잘 보이려던 희성의 조부가 억울한 누명을 씌워 유진이 보는 앞에서 아비를 멍석말이로 죽였다. 어미는 유진을 살리기 위해 희성의 어미를 겁박했고, 유진이 무사히 그 집에서 도망치는 걸 보고 우물에 몸을 던졌다. 추노꾼을 피해 어미의 유언에 따라 유진은 조국에서 가장 먼곳 미국행을 택했다. 낯선 미국 땅에서 조선의 어린 소년은 이방인의 놀림을 피하기 위해 총을 잡았고, 그 총이 그를 미국 시민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총'의 덕택에 그는 조국에 미국의 장교로 돌아오게 되었다. 당연히 그에게 자신을 버린 조국은 없다. 그는 이방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편의에 따라 그를 조선인으로도 미국인으로도 부른다. 경계에 선 유진, 하지만 그는 철썩같이 자신을 미국인이라 생각하려 한다. 


유진은 조선의 왕 앞에서도 미국인이었다. 유진이 자신의 부모를 죽인 외부대신 이세훈을 조선의 정부와 '협력'하여 제거하자, 그에 호감을 가진 고종은 '한국인'인 그를 조선의 '군사' 고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하지만, 오로지 이세훈을 역모죄로 몰기 위해 '의병'과 '정부'와 협력했던 그에게 고종의 청은 '논외'의 문제였다. 어디까지나 그는 '미국인'이었고, 미 영사관 주둔 장교일 뿐이었다. 

그런 그의 '철옹성'에 돌을 던지기 시작한 건, '사랑'이었다. 남자의 양복을 입고, 총을 들고 담 위에서 만났던 고씨댁 영애 고애신(김태리 분)은 어느 틈에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자신과 같이 총을 들었던 그녀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신분의 여성이었다는 그 다름이었을까, 대나무처럼 위기의 상황에서 더 꼿꼿해지는 그녀의 품성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그런 꼿꼿함 뒤에 숨겨진 자신과 같은 냄새를 풍기는 '고독' 때문이었을까, 유진이 한글을 배워가고, 애신이 알파벳을 한 자 한 자 익혀가는 속도를 추월하여 두 사람의 마음은 깊어진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유진의 국적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외려 거리에서 총격을 벌이던 애신 대신 자신의 팔에 총상을 입어가면서 까지 대신 총을 들고 나서는 유진은 미국인 장교였기에 그녀를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미국인'이라는 존재가 그에게는 '애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좋은 '장치'였다. 

그러나, 도자기를 담은 나무 상자 안의 소년을 기꺼이 한 달 여의 기간 동안 배 아래 칸에 숨겨 함께 미국으로 동행했던 선교사 요셉의 죽음은 '미국'이란 울타리 안에 있던 유진을 흔든다. 그저 아버지같은 선교사인줄 알았던 요셉, 하지만 그는 고종의 밀서를 품에 안고 이완익이 보낸 자의 저격으로 죽음에 이른다. 미국인이었지만 조선을 위해 일하다 죽은 '아버지'같은 요셉, 유진은 그런 그의 죽음을 덮으려는 조선 정부 등의 처사에 반발한다. 그에게는 지금 요셉의 죽음을 덮으려는 조선 정부나, 그의 죽음을 사주한 이완익이나 차별성이 없다. 

요셉의 죽음을 파헤쳐가던 유진, 그 과정에서 그가 알게된 사실은 정문 휘하 '의병단'에게는 위기였다. 그들에게 유진이 파헤쳐들어가는 건 그저 사건이 아니라, 의병의 전모였으니까. 그러기에 '미국인'인, '이방인'인 유진은 의병에게는 위험한 인물이었고, '제거' 대상이 되고 만다. 이는 역으로, 유진에게는 이제 '이방인'이 될 지, '의병'의 동지가 되어야 할 지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건 앞서 군사 고문관이 되어달라는 고종의 청탁과는 결을 달리한 선택이다. 애신 앞에서 노비의 신분이었던 자신의 '전존재'를 밝히던 그 순간과도 다른 것이다. 드라마는 이제 본격적으로 미국인이었던 유진을 선택의 벼랑으로 몬다. 더구나 총을 들고 그를 저격하려 올 사람은 애신이다. 이제 더는 '미국인'이라는 존재가 그의 '안전 장치'가 될 수 없다. 




일본의 개, 구동매, 버림받다. 

조선에서 백정은 사람이 아니었다.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조차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없으며, 매질은 일상이었으며 백정의 여인인 게 들통나면 욕보이는 게 하등 이상하지 않을 존재, 그런 백정은 조선의 신민이 아니었다. 부모들이 조리돌림을 당하며 죽어가고 목숨을 잃을 뻔했던 동매를 애신이 자신의 가마로 구해주었다. 겨우 목숨만 보전한 채 조국을 떠난 동매를 품어준 건 일본이었다. 조선에서 매질과 놀림의 대상이었던 그의 칼은 일본에서 그를 출세하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기꺼이 일본인이 되었다. 기꺼이 그곳에서 짐승을 잡던 칼을 사람에게 겨누었고, 그게 동매를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행세'하게 해주었다. 그런 그가 '일본'을 등에 업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양반도 아니지만 그가 '행차'하면 사람들을 고개를 조아리며 뒷걸음질 친다. 그의 칼 앞에 일본인들조차 움찔한다. 그는 그렇게 '무신회' 한성지부장으로 호가호위했다. 

하지만 그의 위세는 '일본'이라는 그늘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서로 일본의 앞잡이이었지만, 그들의 뜻의 서로 달라진 순간, 같은 일본의 개였던 이완익과 동매는 '적'이 된다. 마치 사냥개가 사냥이 끝나자 '개고기'용으로 바뀌듯이, 덩치가 커져 손아귀가 잡히지 않은 낭인 동매는 이제 고애신의 조부 고사홍을 잡을 '개'일 뿐이었다. 살기 위해서 기꺼이 일본을 위해 칼을 잡은 동매, 이제 그는 자신의 주인이었던 일본이 그를 버리자 선택의 기로에 선다. 마치 매타작을 당하다 도망치던 개가 주인이 부르자 쪼르르 달려오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할 것인지, 그게 아니면 주인을 물 것인지, 거기엔 갖은 고문에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던 애신의 조부, 아니 죽어도 될 목숨을 귀하다 살려준 애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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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방인이던 유진과 동매는 경계인으로서 안온했던 존재의 위기에 봉착한다. 그리고 그건, <미스터 선샤인>이 그리고자 하는 '의병 항쟁'의 큰 흐름과 맞물린다. 이방인이었던, 그리고 노비이자, 백정, 조선의 신민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그들마저 조국을 구하기 위해 총을 드는 순간, '의병 항쟁'은 극적이 된다. 그러기 위해, 유진은 미국인임에도 조선을 위해 일하던 선교사 양아버지를 잃게 됐고,  동매는 그가 의탁하던 일본과 또 다른 일본의 앞잡이의 배신에 봉착하게 된다.  가장 그들이 믿던 것들을 잃는 순간, 그들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직시하게 될 것이다. 




그간 드라마에서 강력한 열강의 시민이었던 유진과 명성황후 시해 사건 연루 논란이 까지 일었던 일본의 낭인인 동매는 '역사적으로 불편한 존재'였다. 그들의 극적인 자각을 위한 장치였음에도, 사실 그들의 존재는 <베르샤이유 장미>의 오스칼이나, <성균관 스캔들>의 이선준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아직도 국가대 국가의 경기에서 한일전은 '필승'해야만 하는 전국민적 관심사가 되듯, 역사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는 미국인과 일본인의 그늘에서 호가호위하는 주인공들의 존재를 편안하게 즐길 수 없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이제 GDP 1조 5608달러 그 전해보다 떨어졌다는데 그 전에 11위, 지난 해 12위의 국제적 위상의 국가에서 구한말 일본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침탈 속에서 무력하기만 했던, 그리고 그 무력했던 국가의 상황 속에서 일본의 앞잡이들이 판치는 상황을 지켜보는 건 편치 않은 것이다. '이완익'으로 대표되는 일본 앞잡이가 조선의 정부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은 더더욱 불편하다. 하지만, 허구인 '이완익' 만큼이나, 사실 궁내부 대신 정문에서, 도공 황은산, 포수 장승구로 이어지는, 나아가 해외 지부까지 준비되는 의병의 상황 역시 '픽션'이다. 과연 구한말 우리는 그렇게 조직적으로, 신분 제도를 넘나들며 양반과 천민이 손을 잡고집요하게 저들의 침탈에 대비했었을까? 픽션의 한계, 픽션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여유를 줄 수 있는가 그 문제이지만, 여전히 일본이라 하면 곤두세워지는 우리의 신경은 드라마를 편하게 볼 수 없도록 만든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라면 영국 드라마 <닥터 후>에서 영국 여왕을 괴물 외계인으로 표현한 설정은 불가능할 것이다. 

진짜 문제는 그런 구한말의 시대 상황에 대한 우리의 '무지'이다. 국사 시험에서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의 이름에 모 배우의 이름을 쓸 정도는 아니라지만,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를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라고 여유롭게 시청할 만큼 우리의 역사적 지식이 여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유롭지 않게 만들 정도로 현실의 국사 교육이 일천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들이 <미스터 선샤인>을 보고, 구한말 우리의 무기력함을 지배적으로 아이들이 인식할까 우려할 만큼, 아이들은 학교에서 겨우 일주일에 한번, 그것도 달달 외는 식으로 우리 역사는 배우는, 그렇다고 어른이라고 뭐가 다를까 싶은 우리의 '리얼'이 사실 더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 경계인에 서, 이제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 주 이방인 주인공의 선택, 그 픽션의 울림이 커진다. 드라마를 통해 실감하는 역사이다. 


by meditator 2018. 8. 20. 16:05

지난 4월 16일 대통령 직속 교육 위원회는 2020년 대입 제도 개편과 관련하여 이 문제를 '공론화'로 해결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공론화 위원회'가 구성되고, 위원장에 전 김영란 대법관을 위촉했다. 또한 대입 제도 개편 특별 위원회와 공론화 위원회를 구성하고, 절차에 따라 공론화 과정을 거쳐 8월 3일 대입 제도 개편 공론화 위원회 결과를 발표하고, 7일  특위의 교육제도 개편 권고안을 결정했다. 네 달 여의 교육 공론화 과정, 이 과정은 무엇을 남겼을까? 8월 16일 <다큐 시선>이 이 '공론화'에 대해 알아본다.




평범한 시민들의 숙의를 통한 교육 개혁 공론화 
충북 제천에 사는 귀농 12년차 김은중(67) 씨는 옥수수를 모두 따서 팔 것과 보관해 놓을 것을 분류하는 등 분주한 하루를 보낸다. 여름날 하루가 한 달 같은 농부의 시간, 하지만 김은중 씨는 그 소중한 시간 중 2박3일을 교육 공론화 숙의 토론을 위해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그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이미 자식들의 교육을 다 시킨 나이지만 국가 백년 대계 교육의 공론화 과정에 기꺼이 참여를 결정했다. 전화가 걸려올 당시 피씨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만학의 간호학도 김원희 씨(26)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모두 전화 상담원에게 자신들처럼 교육에 무관심한 일반 시민도 그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렇게 19세 이상 성, 연령, 지역 등 마치 우리 전국민의 분포도를 축약해 놓은 듯한 2000명이 1차 설문을 통해 뽑혔다. 그리고 그들 중 대입 전형에 대한 태도나 책임감 등을 인터뷰하여 최종 400 여명이 공론화의 주역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전국에서 뽑힌 우리 국민의 표본 집단을 통해 하고자 하는 공론화란 무엇일까? 전 대법관이었던 김영란 위원장은 이런 일반인들의 교육 공론화 과정을 재판에 빗댄다. 기업 소송, 하지만 판사는 기업의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양쪽의 의견을 잘 들어보고, 그와 관련된 자료와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취합한 판사는 재판의 결정을 내린다. 그렇듯, 김영란 판사는 공론회 과정에 모인 일반인들에게 '교육 대계의 판사가 되어보심이 어떻겠느냐 권한다. 




공론화란?
그렇다면 이 일반인들이 모여 하는 공론화는 무엇일까? 지난 촛불 혁명 과정에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그간의 '대의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표명했다. 또한 촛불을 들며 국민이 직접 행동하고 바꿔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에 따라 정책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직접 민주주의 적 방식'에 대한 긍정적 모색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 시작은 신고리 5.6호기 재가동 문제에서 국민의 뜻을 모아 결정을 내린 공론화 과정이다. 

'공론화'는 말 그대로 함께 모여 의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논의 과정을 통해 '합리적 해법'을 모색해 내는 것이다. 이른바 관심있는 이들 끼리 모여 하는 '공청회'와도 다르고,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막연한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전화 여론 조사'와도 다르다. 국가 교육 특위에서 전문가와 각계 각층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여 4 가지 공론화 의제를 선정하는 것으로 공론화의 여정은 시작된다. 



이 의제들에 대해 각 지역별 국민 대토론회를 통해 알리고, 미래 세대 토론회를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한다. 또한 tv 토론회는 보다 광범위한 국민들의 이해를 도모한다.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시민들로 구성된 공론화 위원회의 '숙의 과정'을 1, 2차 숙의 과정을 거친다. 

김원중, 김원희 씨는 공론화위원에 선정된 후 보다 내실있는 토론과 결정을 위해 마치 수험생처럼 보내준 자료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부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e러닝의 진도가 꼼꼼히 체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체크 때문이 아니더라도 국가의 중요한 교육 정책에 대한 책임이 공론화 의원들을 '가열찬 학습'에 매진토록 한다. 그저 공부만이 아니다, 신문 기사도 보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어떤 것이 있는가 찾아보기도 한다. 박경희 씨(54)는 입시 교육을 거친 혹은 그 과정에 있는 자녀들과의 대화가 늘었다. 

그렇게 비록 짧은 2주의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통해 공론화의 의제들을 숙지한 전국의 위원들이 한 곳에 모인다.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지는 공론화 숙의 과정, 모인 시민들은  먹고 자는 시간 외에 토론, 또 토론을 하며 '숙의(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하고 중지를 모은다. 평등하게 모인 이들은 그 누구에 의해서  '주도'되지 않는(비독재성), 숙의 과정을 거듭한다. 




그렇게 4개월 여의 장정, 드디어 8월 3일 공론화 숙의 과정의 결과가 발표되었다.'제시된 의제 1과 2가 각각 1,2위로 결과가 나타났고, 양자 간에 통계적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할 만큼 절대 다수가 지지한 안은 없었다. ' 

수능 위주 전형 45% 선발이라는 결과에 대해 대학들은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반면, 여론은 엇갈렸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내놓은 '절대 평가 공약이 후퇴했다'는 반발이 이는 반면, 시민이 참여한 직접 민주주의 과정에 의의를 두어야 한다는 평가가 엇물렸다. 200억을 들인 개편안이라지만 결국 또 문제 풀이 수업의 되풀이라는 보잘 것없었다는 의견과 시민성과 전문성이 조화를 이루었다는 의견이 대립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결과보다, 애초에 국민들 의견과 상관없이 런치 세트 고르듯 사지선다 4가지 개편안을 제시한 것에서 부터 문제를 제기한다. 즉, 어떤 걸 공론화에 붙일 지에 대한 사전 공감대가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과연, 대입 제도가 공론화라는 과정에 적합했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마치 서울 시가 미세 먼지 문제와 관련하여 3000 명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미세 먼지가 심한 기간에 대중 교통 무료라는 극약 처방을 내놓았지만 차가운 여론에 시달렸던 선례에 빗대어졌다. 

그렇다면 뽀족한 결론에 이르지 못한 대입 제도 개선에 대한 공론화 과정은 실패한 것일까? 이미 서구에서는 몇 십년, 혹은 몇 백년의 시행 착오를 거쳐 자리잡은 직접 민주주의적 과정을 우리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우리 사회에 '정치적 문화'로서는 생소한 공론화에 대한 보다 너그러운 이해가 있어야, 아직 설은 이 제도의 정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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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술에 배부르랴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이런 '공론화'를 통한 직접 민주주의적 과정은 끊임없이 시도되고,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자리잡은 병원, 오래되고 열악했으며 거기로 뛰쳐나오는 정신 질환자들을 수용했던 이 병원은 동네 주민들의 기피 대상이었다. 당연히 '이전'이 요구되던 상황, 지역 주민들은 섣부른 결정 대신 2009년부터 1년 여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이 낡고 오래된 병원을 재건축하여 지역의 랜드마크로 거듭나도록 했다.  끊임없이 회의를 거듭하고, 연구하고, 내 주장과 함께 타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려 애썼던 '20여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365일의 여정'은 이제 병원 내의 역사적 기록으로, 그리고 주민의 자부심으로 남겨졌다. 

성동구에 있는 도선 고등학교의 학생 자치 실험은 이제 타 학교의 탐방 대상이 될 정도다. 교표, 교복은 물론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가사를 짓고 직접 녹음까지 한 교가까지 학교 내 학생들의 많은 활동 들이 학생들의 결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심사숙고하고, 공론화 과정을 통하여 조금 느리더라도 맞춰가며 합의점을 찾아내는 이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라 학교는 자랑한다. 

유럽 식의 참여적 의사 결정 방법에는 시나리오 워크숍, 합의 회의, 시민 배심원제, 공론 조사, 시민 회의, 원탁 회의 등 다양한 숙의 민주주의적 방식이 있다. 그 중에서 이제 우리는 '공론화'라는 과정을 경험했을 뿐.  공론화의 결과가 아쉽다지만, 막상 전국 토론회에서 그토록 저마다 전문가라 자부하던 시민들의 참여는 저조했다. 물론 전국 토론회 과정 자체가 학생, 학부모 당사자들의 참여 접근성에 대한 배려도 낮았던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비록 짧은 시간의 학습을 거쳐 공론화 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교육 무관심자'에서 적극적인 주체자로 거듭났다. 결과를 차치한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개개인으로 보자면 이보다 더 성공적인 '직접 민주주의의 성과'는 없다. 이제 첫 걸음을 뗀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서의 '공론화', 그 무효성을 주장하기 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과정과 제도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할 때다. 




by meditator 2018. 8. 17. 20:03

2018년 광복절 ebs의 다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했다. 그 문을 연 건 시간을 거슬러 1920년대의 중국 길림성 봉오동이다. 일제 하 독립군을 길러내는 독립군 기지하면, 이회영의 신흥 무관학교가 자리했던 서간도, 러시아 연해주의 최재형이 중심이 된 지역이 대표적으로 꼽아진다. 이에 ebs는 한,중, 일, 러 4개국 취재를 통해,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를 가능케 했던 봉오동 신한촌에 자리잡았던 봉오동 독립군 기지를 방송 최초로 공개한다. 또한, 이 독립군 기지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간도 제 1 거부라 불리웠던 최진동, 최운산, 최치홍 삼 형제의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소개한다. 






간도 최씨 삼형제의 바톤을 이어 받은 건,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동원 등 숨기고 싶은 일제의 만행을 평생에 걸쳐 집요하게 취재한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일대기이다. (일본의 역사적 만행과 치부 드러낸 일본인, 그가 남긴 한마디 [TV리뷰] < EBS 광복절 특집다큐 > 하야시 에이다이의 끝나지 않은 기록, 김진수)

그리고 광복절 당일, ebs 광복절 특집은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3.1운동 100주년을 향한 거대한 여정 <역사의 빛 청년>, 그 첫 발을 <하와이 애국단을 찾아서>로 내딛는다. 1년 여의 여정을 이끈 이는 다름 아닌, 꽃할배로 돌아온 이순재 선생이다. 광복을 맞이하던 해 12살,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던 광경을 기억하던 아이는 이제 8순의 노인이 되어 역사의 빛이 되었던 청년들의 역사를 설파한다.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마련한 하와이 노동자들의 피땀어린 돈 
그렇게 이순재 선생과 함께 떠난 하와이, 그곳은 서핑과 아름다운 자연의 휴양지가 아니라, 사람 키보다 굵고 거친 사탕수수만이 빼곡이 차라던 고난의 역사가 서려진 땅이다.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한국인이 처음 하와이 호눌룰루에 도착했다. 고국을 떠난지 한 달, 저 마다의 사연이야 있겠지만, 결국 저물어 가는 조선이 그 막막한 태평양을 넘어 자신의 신민을 이 낯선 이방의 땅으로 몰았다. 새벽 4시 반에서부터 꼬박 12시간, 그렇게 하루 70센트를 받으며 보낸 노동의 시간, 그리고 당연히 피부 색이 다른 이들에게 돌아온 편견, 차별, 그리고 고난, 그렇게 호눌룰루에 도착한 한국인들은 30 여곳 사탕수수 농장 등에서 일을 했다. 

그렇게 그곳에서 먹고 살아가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버거웠을 것이 분명했을 사람들, 그런데 그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그 먼 곳으로까지 보내버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허리춤을 더 졸라맸다. '하와이 애국단', 이 바로 그들이다. 이순재 선생과 취재진은 1923년 결성되어 독립 운동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대표였던 임성우 선생, 현도명 선생 외에 훈장은 커녕 조명된 적이 없는 애국단의 나머지 단원들의 행적을 밝히고자 하와이로 떠났다. 

오하우섬 와이우아 올리브 거리 1907년에 세워진 교회가 있다. 하와이에 이민온 동포들은 39개의 교회를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그 중 올리브 연합 교회에 이민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이순재 선생과 동갑인 김창완 노목사는 자식들이 팔고 떠난 집의 쓰레기 더미를 뒤져 이민의 기록을 모았다. 그리고 그 누렇게 낡은 기록들 속에, 숨겨진 역사, 비밀 단체였던 하와이 애국단의 은밀한 도모의 기록이 남겨져 있었다. 

그렇게 낡은 영수증과 종이 쪽지 갈피에서 찾아낸 기록에 증거를 더한 건, 한국 독립 운동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이다. 상해의 임시 정부, 하지만 말이 '정부'지 독립을 위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처지를 김구 선생은 '거지 소굴'이라 표현한다. 쓰레기 통을 뒤져  배추 뿌리로 연명하는 처지, 김구 선생은 독립 운동은 커녕, 생존조차 위협받는 처지에 해외 동포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에 임성우 선생 등이 편지를 보낸다.  '생색낼 일을 하고 싶은데 자금이 필요하다면 주선하겠다'는 반가운 답신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하와이 동포들의 독립 자금, 여전히 행색은 거지꼴이었지만, 이 해외 동포의 자금은 생존에 급급했던 임시 정부의 전술적 변화, 그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일본의 만주 침략이 노골화되던 시기, 하와이로부터 온 1000 달러, 그 돈으로 임정은 우리 독립운동사의 쾌거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준비한다. 폭탄이 되고, 의거의 준비 자금이 된 이 1000 달러는 어떻게 마련된 돈이었을까?

당시 하와이 교포들의 생활은 먹고 살기도 빠듯한 생활이었다, 김창완 노목사가 찾아낸 대한 독립 의연금 영수증에 써있는 금액 10원, 그 돈은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의 한 달 월급 15달러의 반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노목사는 감탄한다. '이 돈을 보내고 그 분들은 뭘 먹고 살았나'라고. 현도명 선생의 막내 딸은 기억한다. 어머님이 가족들도 좀 생각하라고 아버지한테 내던 짜증섞인 하소연을. 

하지만 그렇게 먹을 것조차 아껴가며 모은 돈을 고국으로 보낸 동포들의 이름이나 존재를 찾을 길이 없다. 현도명 선생의 막내 따님의 기억을 쫓아 찾아낸 한 분, 영호 아버지, 그 분을 다큐 제작진은 김예준씨라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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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색했던 아버지의 숨겨진 역사, 
혹시나 해서 찾아낸 김예준 씨의 아들 영호 씨, 하지만 아들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었다. 미군 기지 세탁소 일을 하셨던 김예준 씨, 엄격하고, 인색하기 이를 데 없었던 분, 침대 메트리스 밑에 돈을 모으셨지만 자식들은 어려서 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게 만들었던 분, 그래서 돌아가신 후 무덤조차 찾게 되지 않았던 냉정한 기억만 남긴 아버지. 

하지만 그렇게 자식에게 기억된 아버지는 사실 한인 애국단에서 독립 운동 자금을 관리하셨던 분이었다. 자식들을 어린 나이에 돈을 벌게 만들면서도 침대 메트리스 밑에 숨겨두었던 그 돈은 바다를 건너 임정의 독립 운동 자금이 되었다.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은 늙은 아들은 뒤늦게 아버지의 숨겨진 역사를 알고 헤매어 아버지의 무덤을 찾은 후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비록 늦은 소식이지만 자식들에게 전하며, 그저 인색한 아버지가 아닌 자랑스러운 독립 운동가 아버지를 기린다. 

그런데 왜 당시 하와이의 독립 운동가들은 빛바랜 추억으로만 기억되어야 할까? 거기엔 하와이까지도 미친 일본의 영향력이 있다. 영사관 직원이 밀정이 되어 살피어 단체 계보까지 만들던 상황에서 당연히 임정의 독립 자금 지원은 비밀 활동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다.

슬픈 독립 운동의 역사가 있다. 당시 하와이 사회에는 교육, 문화 운동에 주력하자는 이승만 계열의 동지회와, 무장 투쟁을 해야 한다는 박용만이 중심이 된 국민회의 갈등이 첨예화되었던 시절이었다. 그 중에서도 미국 내 독립 운동에서는 이승만의 영향력이 컸던 시절, 그러기에 국민회 계열의 한인 애국단 사람들은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그분들의 활동이 해방 후에 알려지지 않은 데는 조국으로 돌아가 대통령이 된 이승만과, 그 수하들의 횡포도 있다. 심지어 해방 후 고국에 돌아가고 싶었던 이분들에게 비자조차 내주지 않을 정도의. 

1997년에서야 한인 애국단 임성우 선생은 건국훈장 독립장을, 현도명 선생은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그리고 2018년에 찾아간 다큐를 통해서 겨우 김예준 선생님의 존재가 밝혀졌다. 그러나 여전히 한인 애국단 여덟 분 중 나머지 분들의 '존재'는 그림자에 쌓여있다. 

by meditator 2018. 8. 16. 16:02

73번째 광복절이다. 여느 해와 다르게 각 방송사 별로 풍성한 광복절 특집이 마련되었다. 그 중에서도 kbs는 공영방송답게 다양한 특집을 마련했다.  14일 <시사 기획창- 전쟁 범죄>는 1942년 이래 일본군 1105명의 783건 심문보고서를 바탕으로 위안소가 일본군에 의해 주도적으로 설치 운영되고, 위안부가 강제 모집된 실태를 밝힌다. 15일 광복절 기념식이 끝난 오전 11시에는 <특집 다큐 -독립 운동을 한 의사들>이 방영되며, 이어 이어 15일 오후 7시 30분 역시 <특집 다큐 -그곳에 여성이 있었다>에서는 여성 양반 부녀자층에서 유행했던 '내방가사'를 통해 여성 독립 운동가의 삶을 조명한다.

그 중에서 <독립 운동을 한 의사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입신양명'의 상징이었던 '의사(醫師)'가  되었지만 일본 제국주의라는 시대적 숙명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 '의사(義士)'된 선열들의 삶을 그려낸다. 




사천의 나창헌, 연변에 박서양, 몽골의 이태준, 하얼빈의 김중화, 북경 이자해, 장가구 김현국 등 1945년까지 '독립 운동'에 참여했던 '의사'들은 156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 포상을 받은 사람은 불과 67명, 아직 89명이 '포상'조차 받지 못한 상태다. kbs1의 <독립운동을 한 의사들>은 독립 운동의 숨은 주역,  '전문직 종사자 의사'로써 독립 운동에 참여한 그들을 '환기'시킨다. 

요즘도 sky하면 다들 한수 접어주는데, 일제 시대 경성 의전이나, 세브란스 의전이라면 어땠을까? 남한이 아니라, 남과 북을 합쳐, 심지어 연해주, 북간도까지 국내외, 해외에서 내로라 하는 수재들이 가던 곳이었을 곳이었으니 그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을까? 영화 <동주>에서도 간도에서 연세 의전 문학부에 가는 두 청년을 그곳 친지들이 얼마나 감개무량해 하며 축하해 주었던가. 하물며 여전히 당시에는 '신학문'이었던 '의술'을 공부하겠다고 간 청년들에게 거는 '입신 양명'의 기대는 얼마나 컸을까? 하지만 시대는 그들에게 그저 '환자'를 고치는 '의술'만을 편하게 펼치도록 만들지 않았다. 

몽골에서도 뜨거웠던 독립에의 의지, 이태준
청년 이태준은 1907년 세브란스 의전에 입학했다. 그가 입학했던 1907년은 군대 해산이 있던 시기, 즉 나라의 운명이 바뀌어 가던 시기였다. 그리고 2년 뒤, 위태로운 나라의 운명에 전세계적으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자 안중근 의사가 하얼삔에서 '의거'를 일으키셨다. 그 격동의 시절 의대생인 이태준의 운명은 옥고의 후유증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안창호 선생을 만나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안창호 선생을 만나며 달라진 것이 아니라, 안창호 선생이 위태로운 국운에 고뇌하는 젊은 의학도를 알아보셨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의형제였던 세브란스 의전 1회 선배였던 김필순 선생을 소개하셨을 테고, 최남선이 만든 청년 학우회에 기꺼이 입회하게 하셨을 것이다. 

1907년 안창호의 발기로 비밀 결사조직으로 만들어진 신민회는 국권 회복운동을 벌이던 중 105인 사건을 계기로 조직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래서 더는 국내에서는 활동하기 힘들게 된 신민회의 인사들이 대거 망명의 길을 택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교과서에 실려있지 않은 이태준의 이름을 만나게 된다. 이태준은 김필순과 함께 신민회 활동을 한 혐의를 받게 되고, 그 역시 '망명'의 길에 나서게 된 것이다. 

단동을 경과하여, 당시 신해 혁명을 통해 근대적 공화 정부를 세운 중국에서 가장 '혁명'의 열기가 뜨거웠던 남경으로 옮겨간 이태준 선생, 그곳에서 해외 선교사가 운영하는 병원에 취직하여 힘겨운 망명 생활을 보내셨다. 그리고 파리 강화 회의에 민족 대표 3인 중 한 분으로 파견되셨던 김규식 선생과 몽골에 '독립'에 대비할 '무관학교'를 만들기로 뜻을 모아 몽골로 향했다. 

장래가 촉망됐던 세브란스 의전 학생은 1914년 말도 설고, 땅도 설은 몽골의 후레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가 시도하고자 했던 무관학교는 자금과 현지 사정으로 무산되고 만다. 그래서 동의지국이라는 병원을 개업하여 마지막 몽골 왕이었던 복드 칸의 어의로 활약하며 공을 세운 외국인들에게 주는 에르테닌 오치르 훈장을 수여받는가 하면, 몽골 현지에 2차 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승전탑 앞에 이태준 기념 공원이 있을 정도로, '극락 세계의 여래불'같은 존재로 현지인들에게 '의술'을 펼쳤다. 

하지만, 그 낯선 몽골에서도 이태준 선생은 독립에의 의지를 꺽지 않으셨다.  의사를 하면서 번 돈으로 김규식 선생에세 2000원의 여비를 제공 하는 등, 독립 운동을 하는 인사들에게 숙소와 교통편, 자금원으로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또한 영화 <암살> 속 속사포 캐릭터의 본 인물로 추측되는 당신의 운전사였던 폭파 전문가 마자르를 소개하는 등 김원본 선생의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약하였다. 

한인 사회당의 비밀 당원이 되어, 당시 그 어려운 자금 사정을 위해 레닌이 희사했던 자금의 유입을 위해 애썼다. 1차로 12만불의 금괴를 2400km의 먼 거리를 안전하게 수송해낸 선생은, 다시 8만 루불을 김립 선생에게 전하고, 다시 4만 루불을 전하기 위해 준비를 하던 중 일제와 긴밀한 관계에 있던 몽골을 점령한 러시아 백위파들에게 발각되어 가솔들과 함께 살해당하고 만다. 그게 1921년 선생의 나이 불과 38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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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보스톡에 번쩍, 상해에 번쩍, 곽병규 선생
그렇게 이태준 선생이 먼 몽골에서 유명을 달리하셨던 것과 달리, 곽병규 선생은 천수를 누리셨지만, 정작 선생의 독립 운동에 대해서는 그의 가족들에게 조차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평양 숭실중을 나와 이태준 선생에 이어 3회에 세브란스 의전에 입학한 선생은 역시나 독립 운동의 물결에 몸을 맡겼다. 이태준 선생이 몽골로 떠났다면, 청년 곽병규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는 건 블라디보스톡이다. 

블라디보스톡에는 당시 만명 정도의 한인들이 모여 '신한촌'이라는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 이곳에 살던 한인들과 유학생들을 모아 조국에 '문화 공연'을 하러 오게 되었는데, 이 해삼위 음악단장이 바로 곽병규였다. 의사가 음악 단장? 

당시 이러한 '조국 방문 문화 행사'는 그저 '공연'이 아니었다. 고국에 살 수 없어 먼 이방의 땅에서 살아가는 동포 학생들의 공연은, 삼일 운동 이후 그 어떠한 정치적 행사를 불허한 일제 하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유일하게 함께 모일 수 있는 '집회'였다. 그래서 일제는 이 집회를 불을 켜고 감시했으며, 그런 감시의 눈길을 피해가며 해외 동포들과 고국의 국민들은 '공연'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어우러져 눈물을 흘리고 '한 민족으로서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유선영 지음, <식민지 트라우마> 중에서)

곽병규 선생의 활약은 말 그대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1920년 상해, 대한 적십자사 의사로, 그리고 임정의 외부 활동이었던 간호부 양성소 교수였던 곽병규는 1927년 사리원에서 경산 병원과 유치원을 개업했고, 사리원 신간회 회장으로 그 사건으로 체포당한다. 그로 인해 활동에 제약을 받은 선생은 1930년대 서울로 근거지를 옮긴다. 의술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봉사라는 신념 덕분에 의사의 자녀들이라도 어렵게 살아야 했다고 아버지를 추억하는 딸, '불의의 악을 극복하고 전진하라'는 아버님의 숨겨졌던 유지는 뒤늦게 아버님의 활동을 알게 된 딸의 노력으로  2011년에야 비로소 국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환자를 치료하던 손에 들려진 폭탄, 나창헌 
여기 또 한 명의 의사가 있다. 아니 의사이기보다 열사인 한 분 나창헌 선생이다.  경성의전에 2학년 24살에 에  3.1운동을 겪은 선생은 당일 1차 시위에 참여한 후 2차 시위를 준비하던 중 연행되고 만다. 미결수로 서대문 감옥에 갇혀 갖가지 심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입원하게 된 선생은, 감시의 눈길을 피해 탈출, 대동단에 가입하여 의친왕 이강 망명 작전에서 '경호'의 임무를 맡게 된다. 

하지만 정보를 미리 알게 된 일제에 의해 실패로 돌아간 작전, 선생은 포기하지 않고 제 2의 3.1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준비하고 1919년 11월 8일 종로 경찰서 앞에서 200 여 명의 동지 및 군중들과 '독립 만세'운동의 거사를 일으킨다. 일제는 선생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지만, 그런 일제를 피해 상해로 망명, 결석 재판은 나창헌 선생에게 3년 형을 구형했다. 비록 재판은 피했지만, 험란했던 망명 과정, 선생의 부인은 망명 과정에서 발톱이 몽땅 빠졌었다 고통의 기록을 남긴다. 

상해에서 독일 병원에서 의술을 다시 배운 선생은 세움 병원을 세워 자금 부족에 시달리던 임정의 재정을 돕는 한편, 임시 정부 의정원에서 두루 요직을 맡으며 활약한다. 하지만 점점 더 독립의 가능성이 멀어져만 가고, 임정의 상황이 어려워지자 선생은 온건한 투쟁 방식 대신, 일제에 직접적 손실은 물론, 민족의 자긍심들 독려하기 위해 암살, 파괴 등 투쟁 방식의 변화를 꾀한다. 직접 폭탄을 제조하시는가 하면, 1926년 상해 일본 영사관 폭파 사건에 주모자로 참여한다. 하지만 그 사건은 더는 선생을 상해에 머무를 수 없게 만들고, 다시 중경으로 발길을 돌린 선생은 그곳에서 만현 의원을 개업하여 독립 운동을 돕던 도중 약관 40세의 나이에 위암에 걸려 순국하시고 만다. 

의사인 열사들의 운동은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특수성을 가진다.  한 곳에서 병원을 개업한다는 직업적 한계를 의사들은 '자금 지원'과 '인적 교류의 통로, 혹은 교두보'로서의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한편, 블라디보스톡에서, 상해에서, 중경에서, 몽골에서 지역을 막론하고 독립의 기치를 드높였다. 의사라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의사건 그 누구건 독립 앞에서는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세 분 선생의 행적은 기록한다. 하지만, 2011년에야 비로소 딸에 의해 알려진 곽병규 선생, 우리보다 몽골 사람들이 더 기억하는 이태준 선생, 그리고 1993년에야 유해가 발굴되어 환국하시고 57년만에 건국훈장을 받게 되신 나창헌 선생처럼, 그분들의 업적과 그에 대한 국가와 역사의 보답은 여전히 미비하다. 그런 미비한 기억을 광복절 특집 다큐를 통해 환기시킨다. 



by meditator 2018. 8. 15. 17:15

방학이다! 하면 엄마들의 한숨 소리가 깊어진다. '학교'에 맡겨두었던, 아이들을, 아니 아이의 시간이 온전히 부모의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방학이라고해서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는 건 아니지만, 그 나머지 시간을 어쩌랴, 게다가 '방학'인데 아이랑 함께 어디 '좋은 곳'이라도 다녀와야지 하는 '숙제 아닌 숙제'까지 얹어지면 부담 백배이다. 

그 '좋은 곳'이 문제다. '나도 해봐서 아는데'했던 모 전직 대통령처럼 '안다'해주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부모들은 눈에 불을 켜고 '교육적' 효과에 '재미'까지 더해진 좋은 곳을 '픽'하여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만, 정작 아이들은 8월 12일 방영된 <sbs스페셜- 아이와 여행하는 법> 속 정종철 네 아이들처럼 부모들이 좋다 감탄하는 외국의 유수 여행지에 심드렁하다. 심지어 그 많은 시간과 비싼 비행기값을 들여 한 외국 여행에 아이들은 최한 38점을 매겼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래서 sbs스페셜이 알아봤다. 부모들의 가장 과중한 방학 숙제, 아이와 여행하는 법에 대하여. 




부모는 고행이고 아이는 지루한  '여행'
아니 어쩌면 개그맨 정종철네 집처럼 부모들이 이리저리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다녔는데 기억을 못하는 정도라면 괜찮은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경기도 고양시의 승우네 집은 여행가기 싫다는 아이를 달래느라 부모들이 쩔쩔맨다. 도대체 왜 승우는 집을 떠나는 것이 싫을까?

겨우겨우 아이를 달래서 떠난 승우네 집, 하지만 여행지로 가는 긴 시간 줄곧 승우는 지루해 한다. 도착해서라고 다를까? 한여름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혹시나 아이들이 더위라도 먹을까, 아이들을 '그늘'로 피신시킨 부모들은 둘이서 익숙치 않은 텐트를 치느라 곤욕이다. 하지만 그런 부모의 노고(?)에 아랑곳없이 그늘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승우와 동생은 이곳이 심심할 뿐이다. 겨우겨우 이웃 텐트의 도움으로 텐트를 친 부모님, 하지만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니 다시 집에서 하던 보드 게임, 그러니 승우는 이 더운 곳보다는 장난감이 다 구비되어 있는 시원한 집이 그리울 밖에. 

다큐가 지적하는 건 바로 여행에 있어서 아이들의 자기 주도성이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상황, 승우네 여행에서 '승우'의 주도성을 살려봤다. 부모들이 알아서 다 하던(?) 여정에 승우를 참여시킨 것이다. 아빠와 함께 쌀 씻는 거에서 부터 함께 하고, 개울에 가서 돌로 뚝을 쌓고, 이 '별거 아닌' 여정에 승우의 눈이 반짝인다. 몇 달 후에 승우가 쌓은 돌담을 보러 다시 오자는 아빠의 말에 승우가 기쁜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 주도성 실험을 위해 정종철네 가족이 나섰다. 아들 한 명에, 딸 둘, 세 아이 모두 그동안 아빠와 엄마가 '기획'했던 여행에 심드렁했던 아이들, 그 아이들이 홋카이도의 여행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으로 '실험'은 시작됐다. 이전의 여행처럼 엄마가 '기획'한 여행과 아이들 스스로 여행지와 방식을 선택하는 두 가지 방법을 세 아이들이 선택하는 것에서 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아빠와 함께 자신들이 마련한 여행지로 떠난 두 아이들, 떠나자마다 서로 싸울 것이라는 엄마의 장담과 달리, 아이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이 가고자 했던 곳을 찾아 떠난다. 늘 모든 일에 적극성이라고는 없이 심드렁했던 아이가 맞나 싶게 처음엔 길을 물어보기조차 머뭇대던 아이들이 낯선 이방의 언어로 길을 물어보는 걸 주저하지 않게 되었고, 아마도 엄마, 아빠가 그랬다면 진즉에 지쳐나가 떨어졌을  어긋난 길찾기에서 끈기를 가지고 끝내 자신이 가고자 하던 곳을 향한다. 




자신이 가고자 했던 곳이라서였을까? 힘들게 찾은 오르골 박물관에서 울려퍼지는 오르골 소리에 '아름답다'며 눈물까지 글썽이고, 알고 봤더니 문어의 빨판이 근육이라며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며 그 어느 때보다 그곳의 모든 것을 스폰지처럼 소중한 추억으로 빨아들인다. 반면, 동생들과 달리 엄마와 함께 하던대로 쇼핑에,  좋다던 명승지를 따라나선 누나는 금새 지친다. 심지어 하루 종일 여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마지막에 동생들과 만난 것이라니! 다큐는 말한다. 어디를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곳이 어느 곳이던,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재미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여정이어야 한다고. 

자기 주도성도 좋지만, 부모들에게 늘 고민은 매번 방학마다 떠나는 여정이 좀 더 아이에게 보탬이 되고 새로운 건 없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부모들의 고민에 대해 다큐는 다양한 여행의 방식을 제시한다. 

이런 여행은 어때? 
다큐의 시작은 태국 치앙마이에서 '석달 살기'에 도전한 가족. 평범한 직장인인 아빠, 한국에서의 아빠는 직장 일에 밀려 아이들과의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잠시 짧은 휴가 대신 태국으로 잠시 살러온 가족, 원룸의 좁은 방에 부부와 두 아이가 복닦거리는 공간, 하지만 아이들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그저 또래와 같은 평범한 도시의 아이였던 누리, 하지만 코끼리 등 온갖 자연 환경이 풍부하게 제공되는 태국에서 석달을 보내는 동안 누리는 장수 풍뎅이 애벌레를 이쁘다고 여기게 된 새로운 '재미'을 찾았다. 

내 아이와 여행하는 22가지 방법을 <이런 여행 어때>로 펴낸 김동욱 작가는 종종 딸과 함께 길을 떠난다. 남들이 다가는 제주도, 하지만 김동욱 부녀의 여정은 다르다. '덤블 숲'이라는 뜻의 곧자왈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아빠, 그 숲에서 아빠와 딸은 텐트를 펴고 밤을 기다린다. 낮에는 볼수 없었던 반딧불이가 하나둘씩 빛을 발하는 시간, 그 시간에 온전히 빠져드는 부녀, 딸은 그저 반딧불이의 발견이 아니라, 낮에도 존재했던 것들이 밤이 되어 빛나는 그 '존재'의 발견에 대해 '철학적 해석'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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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씨는 말한다. 아빠의 기획이 아니라, '아빠 구름 위로 올라갈 수 있어요?', '소리도 사냥할 수 있어요?'라는 아이의 질문에 답한 여행일 뿐이라고. '소리를 사냥하기 위해 길을 나선 부녀, 눈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가 새로운 제주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아이의 질문에 부모의 '첨삭'이 더해진 여행은 그때서야 비로소 '종합 선물세트'로 완성된다. 

전문가는 말한다. 여행은 스스로 판단하고 활동하며 뇌를 활성화시키는 아이에게 생각 꾸러미를 풍성하게 해주는 시간이라고. 하지만 그 생각 꾸러미가 누구의 '주도'인가에 따라, '선물'이 될 수도, 그저 '지겨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스스로 판단하고 활동하는 과정을 통해 '뇌'가 완벽하게 활성화되는 시간, 그 시간을 온전히 아이들에게 돌려주기를 거기에 그저 부모는 거들기를  다큐는 권한다. 방학 마다 줄줄이 사탕처럼 여행지를 '선물'하기에 급급했던 부모들에게 다큐는 새로운 여행의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또한,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집에서 서로 말 한 마디 섞지 않고 소원했던 아빠 강성민씨와 연지가 짧은 여행을 통해 '화해'의 실마리를 풀어낸 것처럼 '관계'의 변환, 그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디를 갈까 고민하기 보다, 어떻게 시간을 함께 할 것인가 아이와 함께 의논해 보는 것이 먼저다. 

by meditator 2018. 8. 13. 16:07

우울하다, 무기력하다. 
이것만큼 오늘날 '현대인'에게 익숙한 단어가 있을까? '우울해서 꼼짝도 하기 싫어'라는 말을 친지에게 한번쯤, 아니 그 이상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익숙한 우울한 정서를 넘어, 그게 '병'이 된다면? 하지만, 일상에 묻혀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의 우울이 '일시적인 감정'인지, 치료가 필요한 병인지 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다큐에 등장한 어머님의 말씀처럼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병'으로서의 '우울증'을 키운다. 감기에 걸렸는데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증상이 심해진다면 '폐렴' 등으로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치료'의 시기를 놓친다면 '생명'의 경계를 넘어설 수도 있다. 8월 9일 방영된 <다큐 시선- 우울증이 어때서요?>는 바로 그 치료받아야 할 질병으로서의 '우울증'을 알리기 위해 용기를 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매일 웃고 다녀서 제가 힘든 걸 아무도 안믿었어요' -현경 

독립출판물인 현경의 <병동 일기>의 한 문장이다. 그녀의 또 다른 책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이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우울증을 나타내는 딱 한 마디 단어를 고르라면 바로 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이기에, 그 단어를 통해 '우울증'을 말하고자 했다. 


우울증은 병이다. 
depressive disorder, 우울증, '정신 의학에서 말하는 우울한 상태란 일시적으로 기분만 저하된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내용, 사고 과정, 동기, 의욕, 관심, 행동, 수면, 신체 활동 등 전반적인 정신 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의미한다.'(다음 백과)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왜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병'이기에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방 안에 칩거하는 자식을 이해할 수 없어 울고 불고 싸우지만, 그 또한 '병'이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병이라 죽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우울증에 대한 인식은 낮다.  '우울증' 약이라도 복용한다고 하면 '직장' 등에서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아니 우선 스스로가 '우울증'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부모나 친지들은 '병'으로 인지하는 대신 '나약함'을 들먹이며 '의지'를 내세운다. 그래서일까. 우리 사회 '우울증'에 대한 치료율은 5%에 불과하다. 거기에 더해 '정신과 진료'에 대한 불신도 높다. 한번 정신과 약을 먹으면 '중독'이 되어 끊기 힘들 것이란 선입견이 심하다. 그래서, oecd 국가 중 우울증에 대한 약물 치료율이 가장 낮다.

의사들은 씁쓸하게 말한다. 문고리 잡고 5년이라고. 정신과를 가기 까지 주저하는 시간이 치료의 시기를 놓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같이 방문하고 도와주면 쉽게 달라질 수 있는 질환으로서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어야 한다고 의사들은 입을 모은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 스스로가 나섰다. 스무살 시절부터 우울,  공허감과 싸우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서밤은  '서늘한 마음썰'이란 팟 캐스트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우울증에 대한 그림 일기 <나에게 다정한 하루>를 펴냈다. 아직도 집 밖으로 나서기가 힘들 때가 있지만, 일주일에 5일의 외출을 하고, 하루 두 끼 밥을 먹는 것을 sns의 친구들과 나누며 스스로 용기를 내는 조제는 '우울증 환자들의 책읽기 모임'을 만들고, sns 친구들을 위한 책을 만들고, 동화를 썼다. 폐쇄 병동에서의 한 달 치료 기간을 독립 출판물로 펴낸 현경은 '옛 여관'을 이런 독립 출판물의 전시 공간이자, 작업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기획을 하고,  그곳에 작업실을 꾸렸다. 


 

​​​​​​​'소중한 하루를 이렇게 보낼래?' -조제 


'소진된 사람들'의 질병, 우울증
그들이 처음부터 '우울'했던 건 아니다. 현경은 폐쇄 병동에서 만난 자해를 되풀이 하는 언니에게 말한다.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 사람들은 그 스트레스를 흔히 남에게 풀죠. 하지만 착한 사람은 그걸 자신이 품어내죠,' 언니를 위로하기 위해 했던 현경의 말은 곧, 우울증 환자 현경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20대의 현경은 일을 두려워하지 않던 젊은이였다. 에너지가 넘쳤고, 추진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열정'이 그녀를 다치게 했다. 조증과 울증이 반복되고, '죽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서밤의 부모님들은 늘 싸우셨다. 집에 있기 힘들 정도로.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방치됐었다.  이제는 못해도 된다고 '팟 캐스트'를 통해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 이전의 그녀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조제는 일 욕심많은 회사원이었다. 그녀가 생각했던 미래의 자신은 '에너지 넘치는 유능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하지만, '번아웃'된 그녀는 모니터만 켜면 과호흡이 오는 '공황 장애'와 우울증'에 빠졌다.  지난 다이어리에서 찾아낸 설기의 2013년은 회사에, 드럼, 크로스핏, 재즈 댄스, 토익으로 쉴 틈이 없었다. 부모님에게는 어릴 때부터 알아서 잘 하던 아이였지만, 그녀를 어릴 적부터 괴롭힌 건 내가 잘해야만 부모님들이 나를 좋아해 줄 것이라는 강박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어머니가 찾아온 친척과 함께 '쓸모없는 사람은 왜 안 데려가고'라는 대화를 듣고 이성현(가명) 씨는 집을 나왔다. 절연 상태이지만 차라리 편하다는 그에게 가족은 늘 질곡이었다. 

'물고기가 자라서 물고기가 되고, 고양이가 자라서 고양이가 되듯이
나도 간신히 자라서 내가 되었다. 
살아있는 날 귀여워하고 싶다. 살아있으니까.' -조제

환자들이 말하는 '우울증'
현경을 상담한 의사는 말했다. '죽고 싶은데 정말 죽고 싶을까봐 그게 무서운 거죠?'라고. 현경은 말한다. 자신들이 '순풍에도 흔들리는 꽃들'과도 같다고. 서밤은 그런 상태를 '망망대해'라고도 표현한다.  심리 상담 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스스로 자신을 낙인 찍을 까봐 두려웠다고 서밤은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까봐 용기를 내었다. 울고 불고  '의지'를 내세우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우울증이 자신의 병이라는 것을 설득하여 '병원'으로, '상담 심리 센터'로 향했다. 약을 먹고, 상담도 꾸준히 했다. 그리고 용기를 냈다. 자신의 병을 인터넷의 친구들에게 알리고, 그들의 응원을 요청한다. 오늘 먹은 밥을 sns에 알리고 칭찬 댓글을 받는다. 그들의 칭찬이 이제 다시 '조제'를 내일 집 밖으로 나설 용기를 준다. 그리고 자신들의 상태, 자신들의 투병 일지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 서밤의 <나에게 다정한 하루>가, 현경의 <병동일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등이 그것이다. 

현경이 죽을 것 같다며 의사에게 도움을 청하자. 그녀에게 돌아온 처방은 '폐쇄 병동'이었다.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폐쇄 병동', 하지만 현경의 해석은 다르다. 그건 환자들을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죽음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는 곳이었다고. 그래서 책읽기와 tv 시청, 피아노와 탁구만이 가능한 그곳을 그녀는 '무균실'이라 정의한다.  현경의 북토크에 참석한 '폐쇄 병동' 실습생은 '환자'의 목소리로 알려준 병동 이야기가 그래서 고맙다. 그 누구보다 '당사자'의 이야기이기에 설득력을 가진다. 




서울 시에서 마련한 무료 상담을 비롯한 여러 상담 센터, 그리고 정신과 등의 치료를 통해 우울증 환자들은 '기술'을 배운다. 위기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기술을, '자책'과 '고립'에 갇혔던 스스로의 우물에서 나와 '대인 관계'를 꾸리며 '의지'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기술, 그리고 감정의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기술. 상담을 받으며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된다. 필요하다면 약물의 도움도 받는다. 헤어나올 수 없는 질곡과도 같던 '가족'이 '심리 치료'를 통해 그저 잘못된 가족 뽑기'로 받아들여질 여유를 갖게 된다. 불행을 돌보느라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 잊었던 '외로웠지만 마음씨가 예뻤던' 그 아이에 대해 '나라도 잘해줘야 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보건복지부 건강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우울증 환자는 61만 3000 명이다. 하지만 전체 국민의 1.5%에 해당하는 숫자다. 하지만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22%에 그친다.(벨기에 39.5%, 미국 43.1% 등) 우울증과 우울한 상태조차도 구분하지 못하며, '감기'와 같은 질병으로 우울증을 다루는 사회적 인식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5월 9일 방영된 <다큐 시선- 우울증이 어때서요>는 스스로 용기를 낸 우울증 환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울증에 대한 치료를 독려한다. 치료를 하면 감기 증상이 덜해지듯, 우울증도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수 있는 '질환'일 뿐이라고 환자들은 말한다. 의사들도 주장한다. 그 누구보다 '중독'에 대해 민감한 의사들이 '우울증' 치료제를 '중독'시킬리가 있겠냐고.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병원의 문을 열고 오시라 권유한다. 그게 힘들다면 우선 '무료 상담 센터'를 통해 접근해 보는 것도 권한다. 출연한 환자들의 사례에서 보듯이, 개인에게 온전하게 '부담'을 지우는 사회 속에서 우리 누구라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그리고 '우울증'에 걸린다면, '치료'를 받고 다시 사회 속으로, 사람들과 함께 '나'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 감기처럼. 

by meditator 2018. 8. 10.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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