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개봉된 <전체관람가>의 다섯 번째 작품 <보금자리>는 임필성이라 쓰고 전도연이라 읽어도 무방할 만큼 화제성에서 감독의 명망을 압도한다. 그러나 전도연마저 압도하는 건, '설마 저게 사실이야?'라는 반문이 이어지는 <보금자리>가 다루고 있는 가정의 모습이다. 


하지만 반문이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2010년 4월 세 자녀 아파트 특별 분양 제도를 악용하여 아이를 입양하고 되팔아 시세 차익을 챙긴 일당이 구속됐다. 이미 2008년에 이와 같은 사례가 무더기 적발된 바 있다. 국내 입양의 경우 보호 시설에 있는 아동일 경우 부모의 동의 없어도 입양이 가능하며 그 대가로 금전이 오가더라도 처벌할 법이 없는 실정이라,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는 사안이 되었다. 



전도연이 설득해낸 가족의 이기심 
임필성 감독은 바로 이 공공연한 위법 사례에 착안하여 자신이 선택한 '하우스 푸어'의 문제를 풀어나간다. 그런데 왜 전도연이었을까? 임필성 감독의 영화 <보금자리> 상연이 끝나고 mc와 감독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전도연이 등장한 순간, 영화는 올곧이 그녀의 관점에서 흘러가기 시작했다고. 즉 아파트 분양을 위해 편법으로 아이를 입양한다는 부정적 설정조차, 임신한 주부 전도연이 엄마로, 아내로 등장한 순간, 이야기는 관점을 달리한다. 영화 데뷔 20주년을 기념하여 독립 영화 진흥을 돕고자 기꺼이 참여한 전도연의 취지는 그 어느 때보다 배우 전도연의 존재감을 빛낸다. 

그녀가 입양한 탁이를 바라보는 불안한 눈빛, 위태로운 태도는 고스란히 <보금자리>를 보는 관객들의 감정으로 전이되어, 이 '가정'을 지키려는 자와, 혹시나 모를 가정의 안정을 위태롭게 할 외부자의 경계선이 분명하게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저 나약한 이방인인 한 소년은 순식간에 호러와 스릴러의 주인공으로 돌변하여 전도연이 아내와 엄마로 분한 가정을 위협하는 강력한 요소가 된다. 영화를 마친 후 우스개로 그저 칼을 좋아하고 잡채를 좋아했으며 욕을 좀 할 줄 알고, 문도 좀 딸 줄 아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을 지도 모를 소년 탁이는, 하지만 15분이라는 시간이 마치 150분이라도 되는 듯 그 어떤 영화보다 위태로이 가정을 위협했다. 

'가정'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의 작품은 대부분, 가정을 지키려는 자와 그런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위협하는 자로 대치된다. 하지만 그 익숙한 소재는 시대와 설정에 따라 다양한 궤적을 가지고 가정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만든다. 지난 2010년 전도연의 다른 작품인 <하녀>에서나, 그 작품의 원작인 김기영 감독의 여러 작품들에서 돌출되는 가정의 비극들은 결국 가정의 안녕이라는 그 지상 명제의 위협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파탄의 주범이 '이방인'이라면, 하지만 영화를 끝나고 되돌아 보게 되는 건 결국 그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이기심'과 그로 인한 '폭력' 이다. <보금자리>에서도 남편과 아내는 기꺼이 '아파트'를 위해 '위법'인 입양 사기에 주동자와 동조자가 된다. 그저 평범한 아이 하나를 키우고 또 다른 아이를 가진 부부가 '집'을 위해 다른 아이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파렴치범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 부부는 그들에게 할당된 아이를 탐탁치않게 여기기까지 한다. 결국 잠시 이용하고 '파양'할 것이면서. 더욱 놀라운 건,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도 잠시의 껄끄러움을 차치하고 곧 그런 부부, 특히 전도연이 분한 아내의 방어적인 태도에 공감하고 동참하게 된다는 지점이 바로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공중파 드라마로 온 가족의 이기심
이렇게 노골적으로 가정을, 그리고 가정의 경제적 안위를 위해 위법과 탈법을 오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기심을 폭로한 설정은 공중파 드라마로 가면 보다 교묘하고 유연해진다. 매주 신기록을 세우며 드라마의 설정 하나하나가 검색어가 되는 <황금빛 내인생>은 바로 이런 '가족의 이기심'을 구체적으로 해부해 나간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양미정(김혜옥 분)의 이기심으로 자신의 딸과 재벌가 노명희(나영희 분)의 딸이 바뀌고 이 사실이 폭로되며 양미정이 집안이 파탄이 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저 양미정이 저지른 범죄 뿐일까? 이제 드라마는 양미정이 은석이를 지수로 만들 당시 노명희의 사연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과연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눈 앞에서 딸을 보고도 줄행랑치게 만들었을까? 또한 이제 와 자식을 바꾼 것이 문제가 된 양미정은 그때도 자식을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은석의 친부모를 찾지 않은 것 역시 또 다른 이기심의 발현이다. 

하지만 이것만일까? 노명희는 자신의 딸이 양미정의 집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점령군처럼 양미정의 집을 찾아가 온갖 수모를 주며 딸을 되찾아 온다. 물론 양미정의 놓친 자식에 대한 이기심으로 비롯되었지만, 20여년 동안 자신의 딸을 키워준 '은인'이 졸지에, 딸을 빼앗아간 파렴치범이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수모를 당하던 양미정의 순간 어깃장으로 바뀌어 노명희의 집으로 들어간 지안(신혜선 분)은 어떻게든 노명희의 집 가풍에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이제, 사실을 알게된 지수(서은수 분)가 스스로 찾아간 노명희의 집에서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밥상머리 예절에서 부터 시작하여 매사에 지수는 어깃장이다. 정식으로 지수를 환영한다는 가족 정찬에서 주르륵 늘어서있는 일하는 사람들과 차려입은 가족들의 정장과 깍뜻한 예정을 비웃으며 라면을 청해 먹는 지수의 독불장군식 행동은 시청들들을 갑론을박의 토론장으로 빠뜨린다. 

<황금빛 내인생>은 매번 이런 식으로 '가족', 혹은 '가정'이라는 틀을 기준으로 안녕과 안위를 토론대 위에 놓고, 편가르기를 유도한다. 매회 급박하게 전개되는 사건은 그 사건만큼이나 시청자의 호불호를 갈리며 입장을 나뉘게 한다. 누군가는 밥상 머리 예절도 못배운 지수가 못마땅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예전에 지안이 쩔쩔매던 상황을 떠올리며 지수의 그런 도발이 속시원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노명희가 수호하는 배타적인 가족이 전제되어 있다. 

<보금자리>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파트를 얻기 위해 불법 입양까지 감행하는 가족에 감정을 이입하는가, 아니면 그 집안에 이방인으로 들어온 탁이에게 시선을 주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되듯이, <황금빛 내인생> 역시 양미정의 가족과 노명희의 가족을 어떤 시선에서 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입장에 서게 된다. 




이기심에 빠지게 만드는 배경은?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평범한 가족'이 집을 얻기 위해 위법을 감행하게 만드는 배경이다. 마찬가지로, <황금빛 내인생>에서 자고로 '검은 머리 짐승 거둔 복은 없다'는 옛 속담을 증명하듯 20년을 가족처럼 살아온 양미정의 집안에 점령군처럼 나타난 노명희의 부로 증명되는 '황금'의 위력이다. 

오늘날 우리가 '가족'이라 칭하는 그 존재의 역사를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인가를 놓고 여전히 학자들은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보금자리>나, <황금빛 내인생>이 논하고 있는 가족은 하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래 자녀들이라는 '핵가족'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 핵가족은 산업사회 사회가 탄생시킨 가족의 형태다.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 그 노동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어머니와, 그녀의 보호 아래 자라나는 가족들이라는 핵가족의 형태다. 하지만, 이제 이 가족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위태롭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집값에 가족이 머물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평범한 가족이 불법을 넘나든다. 비록 불의의 사고로 인한 입양이지만 20년을 한결같이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황금'을 지닌 부 앞에서 초라하게 갈갈이 찢게 진다. 가족만일까,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황금빛 내인생>의 소현경 작가의 노회함은 <보금자리>에서 임필성 감독이 직설적으로 논한, 시청률보다도 시청자들의 그 손바닥뒤집듯한 '가족 이기주의'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가족'이라 손가락질 할 것도 아니다. 행동대장은 가족의 이기심이지만, 그 이기심의 배후엔, 그것을 조장하는 '사회'와 어느 틈에 부가 족벌이 된 세상이 있는 것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그 황금빛 사회 속에서 가족은 지키려 하면 할 수록 갈가리 찢겨 나간다는 점이다. 
by meditator 2017. 11. 2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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