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부작의 대장정을 시작했던 <황금빛 내인생>이 이제 절반의 반환점을 눈앞에 두고 회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kbs2 주말 드라마의 아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21회 32.3%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드라마 시작 초반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박시후와 관련된 잡음이 무색하게 한 회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빠르고 예측 불허의 전개는 역시 소현경! 이라는 감탄사를 절로 나오게 한다. 오히려 시청자들은 작가의 또 다른 화제작 <내딸 서영이>의 기록을 과연 <황금빛 시청률>이 언제 깰 것인지를 관전 포인트로 삼고 있을 정도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은석, 아니 지안
그간 가슴졸이며 벌여놨던 서태수(천호진 분)-양미정(김혜옥 분)의 가짜 딸 사기 사건은 20회를 기점으로 들통나고, 은석이었던 지안(신혜선 분)은 거리로 내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당연히 집으로 돌아갈 것이란 기대와 달리, 찜질방과 거리를 전전하던 은석이 아닌 지안은 가족들과 함께 놀러왔던 바닷가에서 홀로 추억에 잠기다 결국 숲속에서 약병을 입 속에 털어넣는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은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이 걷잡을 수 없어져 버린 '친딸 사기 사건'의 시작은 단순했다. 오래도록 딸을 찾았지만 그때마다 사기꾼들에게 농락만 당했던 재벌가 최재성(전노민 분)-노명희(나영희 분) 부부, 그래서 이제는 은석이라는 이름조차 집안에서 생소해질 즈음. 그들에게 친딸의 생존 소식이 바로 그 딸을 유괴했던 당사자들로부터 도착했다. 그리고 그 유괴범들을 닥달해 찾아간 서태수-양미정의 집, 다짜고짜 들이닥쳐 기세등등하게 자신의 딸을 내놓으라는 노명희에게 양미정은 순간 진실을 바꿔버리고 만다. 

남편의 사업 실패 이후 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왔던 가족들, 그런 가운데에서도 재벌가의 잃어버린 딸이었던 지수가 가족들의 사랑 아래 부족함없이 자라온 반면, 쌍둥이지만 언니였던 지안은 그녀가 도전한 세상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갖은 허드렛일은 다하면서 정규직이 되고자 했던 해성 어패럴은 그녀 대신 낙하산인 그녀의 친구를 선택했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도경과의 악연은 그녀에게 차 수리비 명목의 수모를 안긴다. 더는 버틸 수 없다며 좌절하는 딸 지안을 지켜봤던 엄마 양미정은 도도한 노명희의 요구에 순간 다른 선택을 한다. 

<황금빛 내인생>은 그렇게 엄마 양미정, 그리고 딸 지안의 궁핍으로 부터 비롯된 뒤틀린 선택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물신주의'를 짚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극 초반 양미정의 선택에 이은, 그녀의 앞에서 아버지가 차마 진실을 꺼낼 수조차 없게 만든 지안의 선택은 결국 진실이 밝혀졌지만 당신의 딸을 괴롭히겠다는 노명희의 선전 포고, 돌아오지 않는,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딸, 그리고 자살이라는 결론을 통해 일단락된다. 

엄마와 딸의 '물신주의적 욕망'의 행보,
숟가락의 빛깔로 구분되는 세상, 우리는 쉽게 자신이 타고난 숟가락이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는 '운명론적 사고'에 매몰된다. 바로 이 오늘날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 '운명론적 사고'에 소현격 작가는 마치 복권처럼, 하지만 사실은 '도발적인' 음모를 통해 그 욕망을 점검한다. 

엄마 양미정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자식을 위해서라고 다짐한다. 자신의 딸이 죽고 으슥한 인가에서 어린 지수를 만났을 때, 그냥 두면 죽었을 것이라며 자신의 딸처럼 끌어안았던 그 '이기적 모성'은 변함없이 이제 다시 그냥 두면 스스로 고사될 것같은 딸 지안을 위해 거짓말을 해버린다. 그리고 나머지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딸을 키운 대가로 음식점을 받는다. 남편의 사업 실패 이후 경제적으로 쪼달리던 양미정의 모성은 그 해결책으로 기꺼이 '돈'을 선택한다. 

딸 지안도 그리 다르지 않다. 자신이 사실은 재벌집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녀는 대번에 태세를 전환한다. 말리는 아빠도, 동생도 아랑곳없이, 그간 세상과의 싸움에서 너무 지쳤던 그녀는 선뜻 재벌가의 딸이라는 자리를 받아든다. 

그러나 그 덜컥 받아든 '황금'은 그녀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금수저가 된 지안의 하루하루는 금수저로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인정 투쟁'의 시간이 되었다. 밖에서 고달팠지만 돌아오면 따수웠던 가정 대신, 형제도, 부모도 피보다 진한 '재벌가'라는 위계 속에서 자신을 버텨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마치 작가가 88만원 세대에게 당신들이 원하는 그 '수저'의 삶도 만만치 않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재벌가로 들어간 지안의 하루하루는 고달프다. 소현경 작가는 흔히 주말 드라마들이 빠지기 쉬운 흙수저 집안의 가족주의 vs. 금수저 집안의 이기주의라는 이분법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절묘하게 지안이 무엇을 탐했고, 외면했는가를 그녀의 선택 이후의 과정을 통해 통렬하게 짚어낸다. 

그리고 이제 진실이 밝혀지며 양미정, 지안 모녀는 외적으로는 자신들이 저지른 사태에 대한 감당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며, 동시에 자신들이 따른 '물신주의적 선택'이 낳은 생각지도 못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자식을 위해서라며 자신을 합리화했던 모정의 선택은, 큰 아들의 외면은 물론, 편의적으로 행복을 위한 선택이라던 두 쌍둥이 딸 중 그 누구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결국 '가족'을 잃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또한 자신만을 생각하며 재벌가로 들어갔던 지안은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그간의 과정에서 보인 자신의 걷잡을 수 없는 선택에 대해 깊은 회한에 빠지고, 그 결과 법적 처벌 이전에 자기 스스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극단적 선택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게, <황금빛 인생>을 위해 선택했던 엄마와 딸의 이기적 선택은 가장 처절한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드라마의 한 장을 마무리한다. 흙수저의 어긋난 로또는 이렇게 자기 반성과 회한으로 종결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흙수저의 도발과 그 '처리'의 과정에 집중했던 드라마는 또 다른 수저, 금수저 집안의 반성과 회한이라는 2막을 열고자 한다. 그 2막의 시작은 그래도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도 사랑으로 보다듬어졌던 지수의 도발적 재벌가 행으로 열어진다. 


 

by meditator 2017. 11. 12. 18:40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미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혜수의 열연으로 <미옥>이어야 할 이유를 설득함과 동시에, 김혜수의 캐릭터가 가진 태생적 한계로 인해 <미옥>이라서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을 안게 된 영화인 듯 싶다. 


모성적 수동성으로 소모되는 여성
<미옥>은 지난 6월에 개봉한 <악녀>에 뒤이어 다시 한번 여성 캐릭터를 원톱으로 내세운 느와르 액션 스릴러 영화의 계보에 놓여있다. 두 영화 모두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19금이라는 장르 영화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악녀>가 현란한 살상씬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의 존재를 증며하려 였다면, <미옥>은 언더보스 나현정의 주도 아래 호텔의 cctv 아래에서 벌어지는 범죄 조직이 배후가 된 '성접대'의 적나라한 행위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을 드러낸다. <악녀>에 홀로 건물 몇 층에 포진해 있는 양아치 무리들을 피칠겁을 하며 홀로 싸워내며 주인공임을 드러내는 숙희(김옥빈 분)가 있다면, <미옥>에는 그와는 정반대로 화면으로 벌어지는 그 '성의 항연'을 지휘하는 마스터로서의 미옥, 아니 나현정이 있다. 캐릭터의 활약상 그 양상은 다르지만, 영화는 그렇게 여주인공의 대단한 능력을 전면에 드러내며 존재감을 설명한다. 



하지만 그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들은 결국 영화의 중반 이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상황을 주도해가던 능력이 무색하게 자신에게 닥친 '모성성'의 한계로 인해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만다. 킬러로 거듭난 숙희가 자신의 목숨 대신 선택한 아이와의 안온한 삶을 위해 타인의 목숨을 거두어 살며 '사랑하는 이와의 가정'을 꿈꾸듯이, 나현정 역시 자신이 잉태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적진에 뛰어들어 조직을 살리고, 그 조직의 언더보스로 성장해, 이제 범죄 조직에서 재계 유력 기업으로의 마지막 관문만을 남긴 상태이다. 하지만, 범죄 조직의 성공적인 전향은 언제나 그렇듯 성공적일 수가 없다. 정작 누수는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부터 시작되어, '어머니'로서의 그녀를 도발하고 '어머니'로서 그녀를 파멸과 최후로 이끈다. 

아마도 <악녀>도 그렇고, <미옥>도 영화의 만듬새나, 배우의 열연보다 더 '폄하'되는 이유에는 그 도발적인 등장의 여주인공들이 자신에게 닥친 운명에 허무하게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끌려들어가고 파멸에 이르른다는 점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본질은 어쩌면 '모성'보다는 '수동성'에 더 방점이 찍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모성이거나, 사랑을 한다는 것이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어서는 아니다. '낙태가 허용되는 세상'이라고 해서 모든 여성이 모성이기를 거부할 것이라는 편견처럼. 오히려 문제는 '사랑'을 하고, '어머니'가 된 여성이, 그 상황에 '주체'가 되지 못한 채, 끌려들어가 '휘발'되어 버린다는 점이 본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애초에,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으면서도, 여성이 느와르, 혹은 액션 스릴러의 주인공이 되는 것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만든 이의 편견이, 멋들어지게 여성으로 부터 시작된 영화를, 여성의 운명적 비극으로 막을 내리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원초적 의심을 갖게 만든다. 

충돌하는 세 욕망의 치킨 게임
그런 면에서 더욱 <미옥>은 아쉽다. 김회장이라는 보스가 있지만 실직적 '언더 보스'로서 범죄 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성접대'를 매개로 '전향'을 조직적으로 이끌어내는 보스 나현정을 그렇게 밖에 소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애초에 자신의 아이로 인해 보스에 절대 충성을 바치는 조직의 2인자라는 캐릭터도 그렇지만, 보스의 유고 이후 오로지 자신의 아이만을 위해 치달리는 모성으로서의 그 향배가, 캐릭터의 입지를 축소시킨다. 



그럼에도 <미옥>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각자 자신의 욕망이 구체적인 세 인물들이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치킨 게임이다. 도대체 왜 이선균이 조폭을? 했지만, 왜 이선균이어야 했는지가 설명되는 이선균이 분한 상훈의 비극적 순애보라 쓰고 '소유욕'이라 해석되는 사랑. 그런 이선균의 사랑을 도발한 이희준이 분한 최대식의 폭력적인 자기 보신욕, 그리고 이런 이들의 욕망이 도화선이 된 나현정이 된 미옥의 '안락한 전향욕구'라 쓰고 위장된 모성이라 읽일 수 있는 이 세 욕망의 접점은 흥미롭다. 이들은 '조직'의 일원이지만, 막상 그들의 '행동'의 동인에 '조직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개인적 욕망으로 추돌한다. 당연히 그들의 욕망 앞에 조직은 소모적으로 소용될 뿐이다. 

그래서 차라리 어설픈 모성에의 헌사 대신, 이 최대식과 상훈을 그리듯이 나현정 역시 어설픈 모성에의 헌사 대신, 그녀의 액션만큼이나 그간 언더보스로 닦여온 범죄 조직의 2인자 다운 생존과 보존과 안위, 그 욕망의 발현이었다면 오히려 <미옥>은 좀 더 치열한 느와르로서의 성취를 이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남겨진 고민들. 
그간 김혜수의 전작이었던 <차이나타운>, 그리고 <악녀>, 그리고 <미옥>은 여성을 전면에 내세울 수 없었던 느와르 장르에서 여성을 앞세운 차별성으로 관객들을 공략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전면'에 내세웠다는 홍보성을 뛰어넘어, 여성의 자기 주도성을 내적으로 이해하는데 한계를 보인다. 저 정도를 '주체적'인 여성이라 생각하고 있었는 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그 누구 한 사람의 오류나 오인이라기 보다는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사는 여성'에 대한 시대적 이해가 부족한 지점의 소산이라 보는 게 맞을 듯싶다. 그런 면에서 이들 영화가 흥행에 부진을 겪는 지점 역시 과연 그런 전면에 내세운 여성의 캐릭터에 대한 일천한 이해때문인지, 아니면 어쩌면 아직도 사람들에게 여성이 전면에 나선 느와르에 대한 이질적임 때문인지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고민해볼 여지를 남긴다. 


by meditator 2017. 11. 12.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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