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30분으로 자리를 옮긴 tvn의 월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이하 이번 생)>는 2. 023 %로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4회 3.841%까지 상승하며 월화 드라마의 자리를 안착시켰다. 하지만 상승하는 시청률과는 별개로 매회 <이번 생>을 보는 마음은 편치만은 않다. 


그건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이민기의 군 복무 중 논란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혐의를 벗은 배우의 방송 출연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건 이제 와 발목 잡기일 뿐이니. 그 보다 정작 베일을 벗은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건 <이번 생> 드라마와 2016년 tbs에서 방영하여 20%가 넘는 화제작이었던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逃げるのは恥ずかしいけど役に(이하 니게하지)>와의 유사성이다. 



<이번 생>과 <니게하지>, 그 미묘하게도 같은
38세의 가구주 웹 디자이너 남세희(이민기 분)와 그가 여성인 줄 알고 그의 집에 세입자로 들어오게 된 30세의 윤지호(정소민 분)은 집에서 결혼 독촉에 시달리는 남세희의 상황과 집도, 일도 다 잃은 채 고향 남해로 돌아갈 처지에 놓인 윤지호의 이해가 맞물리며 4회 드디어 계약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계약 결혼 스토리는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은 서사이지만, 일드 <니게하지>에서 역시나 비슷한 시스템 엔지니어라는 첨단 직종에 프로 독신남 히라마사(호시노 겐 분)가 아버지의 권유로 그의 집에 '가정 도우미'로 들어온 미쿠리(아라가키 유이 분)와 엮이게 되고 집의 이사로 그에게 계약 결혼을 권한 미쿠리의 요구를 냉철하게 계산기를 두드려 보고 손해날 것이 없다며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본 사람이라면 그 다르지만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듯하다. 

특히나, 두 드라마의 공감이 기초하는 곳은 바로 사회에서 도태되어 버린 여주인공의 처지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25세 파견 사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보다 전문적인 일을 찾아 임상 심리 대학원까지 진학하지만 문과 계열 그녀에겐 취업의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집에서 놀고 있는 그녀를 보다 못한 아버지가 자신의 지인인 히라마사 집에 가정 도우미 알바를 권하게 되는 것으로 두 사람의 만남은 시작된다. 물론 <이번 생>의 윤지호의 서사는 전혀 다르다. 30살, 서울대 국문과까지 나왔지만, 현실은 보조 작가, 이번에는 입봉을 하려나 했지만 그녀가 맞닦뜨린 현실은 기존 작가에 의한 원작을 알아볼 수 없는 정도의 '윤문'과 작업실을 빌려준 피디의 성폭행 시도, 결국 윤지호는 집도 절도 없이, 심지어 자신이 하고자 했던 글 쓰는 일조차 포기하며 10년 여의 서울 생활을 정리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렇듯 두 드라마는 전혀 다르지만, 문과 출신의 여성이 자신의 꿈은 커녕 사회에 발 붙이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남자 주인공과의 만남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는 tvn 측은 불거진 표절 시비와 관련하여, '리메이크도 표절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두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과연 <니게하지>가 없었다면 <이번 생>이란 드라마가 등장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기에 더욱 <이번 생>의 입장이 아쉽다. 

더욱이 의심이 깊어지는 건, <이번 생>의 윤난중 작가에게 이와 같은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직장의 신(2013)> 역시 2009년 연습 삼아 일본 드라마를 각색했다 이후 판권을 사서 드라마화 전례가 있으며,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달팽이 고시원>은 소설<와세다 1.5평 청춘기>, <위대한 계춘빈>은 역시나 소설 <공중 그네>와의 유사성 논란이 이어졌던 바 있다. 그런 면에서 차라리 <이번 생>이 일본 드라마 <니게하지>를 <직장의 신>처럼 판권을 사서 각색했더라면 가감없는 호평을 받을 수 있었기에 그 행보가 더욱 아쉽다.  



표절이라기엔 너무도 현실적인 <이번 생>
물론 표절이라 하기엔 <이번 생>의 이야기는 다르게 진행된다. <니게 하지>가 자신의 필요를 알아주는 남자 주인공에게 여자 주인공이 먼저 계약 결혼을 요구하는 것과 반대다. <이번 생>은 결혼 독촉에 시달리던 남세희가 지금까지 자신의 집에 들어온 세입자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분리 수거라던가 청소라던가, 고양이 돌보기같은 일을 완벽하게 해낼 뿐 아니라, 해외 축구를 좋아하는 취향까지 비슷한 윤지호라면 가장 완벽한 '결혼 상대자'가 될 것이란 생각에서 먼저 계약 결혼을 제시한다. 

수지타산을 맞춰보니 가장 적합한 결혼 상대자일 거라는 남세희의 청혼에 윤지호가 응답을 한 건, 바로 이 시대 청춘의 응답이기도 하다. <이번 생>에는 일드와 달리 윤지호를 비롯하여 다른 두 명의 동년배 여성 양호랑(김가은 분), 우수지(이솜 분), 세 명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친구이지만 각자 전업주부, 사장, 그리고 작가의 꿈을 가졌었다. 하지만, 이제 서른 줄의 그녀들은 결혼이 늦어져 임신조차 못할 지도 모른다는 기약할 수 없는 동거, 사장 대신 사장님의 호출이라면 언제든 달려가야 하는 대기업 대리, 그리고 연애 따위 사랑 따위조차 사치로 여기며 방 한 칸을 위해 계약 결혼을 감행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전업 주부에 럭셔리 현모양처가 꿈인 호랑의 꿈이 허무맹랑해 보이듯, 오히려 <이번 생>의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빗나간 전통의 강제일 뿐, 비효율적이며, 비인권적이라는 남세희와 우수지의 '비혼주의'가 공감되는 지점, 그리고 이번 생에 연애는 개뿔, 차라리 방 한 칸이 현실적이라는 윤지호의 선택이 호소력을 얻는 그 현실적 묘사가, <직장의 신>에 이어 다시 한번 3포시대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을 얻으며 <이번 생>의 시청률에 청신호가 되고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7. 10. 1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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