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광고 덕분에 16부작에서 32부작으로 건너뛴 <파수꾼>이 종영했다. 남녀 연애사인 <쌈마이웨이>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회 10.2%(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하지만 중간 광고까지 꾹 참으며 '닥본사'를 했던 애청자들은 윤승로(최무성 분) 중앙지검장의 구속 이후 31, 32회차 <파수꾼>은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호청자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과연 내가 지금까지 지켜본 <파수꾼>이 이 <파수꾼>이 맞는가 싶어서. 


2017 mbc 극본 공모 당선작 시리즈로 <자체 발광 오피스>에 이어 방영된 <파수꾼>은 장려상을 받은 김수은 작가의 작품이다. <파수꾼>은 이태원 살인 사건,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살인사건 등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었던, 하지만 정작 공권력이 '포기'한 이 사건들을 피해자의 가족들이 앞서서 '해결'하는데 앞장선 사건에서 힌트를 얻어 이야기의 실마리가 펼쳐진다. 사랑하는 딸 유나를 잃은 형사 엄마 조수지(이시영 분), 실종된 엄마를 찾는 해커 공경수(샤이니 키 분), 하룻밤에 모든 가족을 잃고 24시간 생중계되는 cctv로 트라우마를 달래는 서보미(김슬기 분)는 의문의 인물 대장의 주도 아래 피해자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는 '파수꾼'으로 뭉친다.


  
피해자들이 뭉쳤다, 
서로 다른 사건의 피해자인 줄 알았던 세 사람, 하지만 그들 앞에 대장이 제시한 사건을 따라가던 이들은 서로 다른 사건들이 가르키고 있는 사람이 바로 검찰 총장으로 하마평이 오르내리고 있는 서울지검장 윤승로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지금까지 자신들의 리더였던 '대장'이 바로 그 윤승로의 하수인이자 오른팔 노릇을 하던 장도한(김영광 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렇게 <파수꾼>은  피해자의 가족이 스스로 '공권력'을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른 부도덕한 인물들을 '징죄'한다는 신선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파수꾼의 리더이지만, 자신의 본래 목적을 숨기고, 검사장의 심복 노릇을 하는 대장에, 딸을 잃고 복수심에 도망자가 된 형사, 그리고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로 cctv와 컴퓨터의 능력자가 된 서보미와 공경수까지, 완벽한 팀웍으로 '법'의 경계를 넘어 그들 각자가 가진 능력을 팀으로 조합해 내며 이 시대의 '히어로'로 거듭나는 것이다. 

또한 이젠 클리셰이다시피한 '검찰'의 우두머리가 곧 '부패한 적폐'의 원횽이라는 설정에 있어서도 <파수꾼>은 이제 곧 검찰 총장으로 성공의 정점을 찍은 그 인물의 전사를 통해 우리 사회 부패 권력의 내력을 낱낱이 고발한다. 즉 윤승로는 과거 '나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간첩 사건'을 조작했고 그 과정에서 일가족을 파멸로 몰아넣었고, 그 주변 인물 역시 제거해 버렸다. 그 자신은 '사람' 보다 '국가'가 먼저라는 자신의 신념에 의거했다고 했지만, 그 결과 윤승로는 '출세의 승승가도'를 달렸고, 명문가 출신의 아내와 이제 자신을 따라 서울대에 갈 아들을 둔 남부럽지 않은 부귀 영화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드라마는 오늘날 '적폐'의 성장사를 윤승로와 그 하수인이 된 남병재(정석용 분), 오광호(김상호 분) 등을 통해 그려간다. 뿐만 아니라, 조수지의 딸 유나 사건을 통해 자신의 아들 시완(윤솔로몬 분)을 덮으줌으로써 '적폐'의 가족사를 완성시킨다. 

하지만 그렇게 완벽하게 완성되어 가던 윤승로의 성공담은 그의 오른팔이자, 그가 벌인 과거 간첩 사건의 희생자 아들인 장도환이 대장이 된 '파수꾼'에 의해 이제 사사건건 발목이 잡힌다. 그가 시완을 구하기 위해 조수지를 쫓으면 쫓을 수록, 사건은 점점 큰 파장을 일으키며, 현재의 그와, 과거 그가 벌인 사건들의 실체를 드러내기에 이르른다. 그리고 결국, 장도환의 '커밍 아웃'과 함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윤승로에게 '법적 처벌'의 길이 열린다. 






부도덕한 주인공을 어찌할꼬? 
여기까지는 <파수꾼>이란 드라마는 시청률의 덕을 보진 못했지만, 좋은 주제 의식을 신선하게 풀어간 드라마로썬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입봉 작가의 뒷심 부족이었을까? 아니면 생방 촬영에 가까운 촬연 스케줄의 압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보다 근본적으로 애초에 <파수꾼>이란 서사로 32부작의 전작은 무리였을까? 야무지게 애초에 펼쳐놓은 주인공들의 사연을 풀어내던 드라마는 윤승로 검사장의 구속 이후 급격하게 방향을 잃는다. 그리고 이 놓친 방향은 애초에 이 드라마의 시작이었던 조수지 딸의 죽음에 그 원죄가 있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윤승로의 오른팔 노릇을 하던 장도환, 그는 윤승로의 아들 시완이 조수지의 딸 유나를 데리고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그가 뛰어 들어가면 유나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그 댓가는 자신의 신분조차 이복형제인 관우(신동욱 분)와 바꾸며 오로지 윤승로에 대한 복수로 달려왔던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그리고 시완의 범죄로 윤승로를 얽어맬 수 있다는 욕심이 유나의 죽음을 방조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바로 이런 파수꾼의 리더인 대장의 원죄는 내내 드라마 <파수꾼>의 발목을 잡는다. 즉 스스로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방조자가 된 '부도덕한' 늪에 한 발을 내딛은 주인공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란 딜레마가 내내 드라마 <파수꾼>의 숙제가 된 것이다. 즉 드라마를 보다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장도환을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정의를 이루기 위해, 윤승로의 오른팔 노릇을 기꺼이 하듯, 악의 늪에 한 발을 내딛은 경계의 인물로 설정했지만, 막상 '징죄'의 과정이 끝난 후 그 주인공에 대해 어떤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드라마는 혼돈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래서 31,32회 마무리에서 드라마가 선택한 건, 가장 최악의 선택, 더한 악을 통해 선을 구제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구속된 이후,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까지 더해진 시완은 유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광수대 이순애 팀장(김선영 분)의 딸을 납치하고 그의 목숨을 담보로 조수지의 목숨을 '딜'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내내 수많은 난관에도 늘 탁월한 팀웍을 자랑하던 파수꾼 팀과, 늘 조수지의 든든한 인맥이 되주던 이순애 팀장 등의 캐릭터 라인이 마지막 회에 가서 대번에 무너져 버리고 말았단 것이다. 자신이 아끼던 후배였지만 광수대 팀장이란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던 이순애 팀장도, 어떠한 위기에서도 적들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던 파수꾼 팀도, 시완의 손아귀에서 너무도 자연스레 '놀아나버린다'. 조수지가 그렇게 납치는 당하는 동안 파수팀웍은 무기력하다. 조수지를 시완에게 데리고 가며 이순애 팀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물론, 그 이순애 팀장이 자신을 겨누었을 때 스스로 그 총구를 당긴 조수지를 넘어, 마지막 그 둘을 향해 달려드는 장도환에 이르르면, 마지막 회의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내가 이러려고 이 드라마를 '닥본사'했나 하는 자괴감이 느껴진다. 

'법적 정의'를 넘어선 부도덕한 권력을 징죄하기 위한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주인공의 '정당성'이다. <파수꾼>의 장도환 캐릭터는 그 정당성에서 태생적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부담을 안고 시작했다.  자신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악의 편에 선 인물, 그러면서 음지에서 정의를 도모한 인물은 매력적이지만, 유나의 죽음을 방조한 그의 원죄가 너무도 무겁고 컸다. 그렇다고 그걸 굳이 '살신성인'이라 자부하며 한 판의 신파극 끝에 자살에 가까운 죽음의 방조로 마무리지어야 했는가에 대해, 제작진의 안이함을 묻고 싶다. 심지어 장도환은 자신의 도덕적 부담을 안고 '자살'에 가까운 죽음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정작 그 상황을 만든 사이코패스 고등학생의 이후 향방은 드러나지도 않는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무리하게 32부까지 끌고오지 말고, 윤승로의 구속과 함께 깔끔하게 법적 처벌을 받았더라면 깔끔하지 않았을까. 애초에 법적 처벌로도 무리한 설정으로 주인공을 밀어넣고 '자살'로 마무리한 정의의 드라마를 보는 건 파수꾼을 응원했던 호청자의 입장에서는 입맛이 씁쓸하다. 

by meditator 2017. 7. 12. 13:52

<안녕하세요>의 sbs 버전으로, 유재석과 김구라의 신선한 조합으로 관심을 끌었던 <동상이몽>은 하지만, 매회 출연자의 사연과, 그 사연에 대한 패널들의 조언이 논란이 되며 첫 시즌을 마무리했다. 7월 10일 새롭게 돌아온 <동상이몽>은 어색한 조합이었던 유재석 & 김구라의 조합의 유혹을 물리치고, 김구라와 서장훈이라는 익숙한 조합에, 김숙을 얹어 돌아왔다. 또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던 일반인 참가자 대신, 최근 '트렌드'가 되고 있는 유명인들의 개인사 엿보기의 또 다른 버전인 '너는 내운명' 유명인사 커플의 일상사 관찰 예능으로 궤도를 수정했다. 그 시즌2의 첫 번 째 출연자 중 한 명은 놀랍게도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이재명 성남 시장'이다. 



이재명 성남 시장의 반전 부부 생활
지난 2월 대선이 아직 마무리되지도 않은 시점, 자신에게 출연 섭외가 왔다며, 이미 자신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 것을 알았던 것 아니냐고 이재명 시장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런 오랜 출연 모색이 무색하게, 이재명 성남 시장의 동상이몽은 이제는 돌싱이 된 김구라와 서장훈이 이런 것까지 보여주냐며 볼멘 비명이 절로 터져나온 침실씬부터였다. 

나름 아내를 위해 많은 것을 노력한다는 시장님 남편과, 그런 남편을 위해 늘 준비된 삶을 사느라 어느새 식사 준비에서 부터, 옷차림, 모니터까지 일인다역을 하느라 걸음걸이도 총총, 밥도 후다닥 먹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희생적 아내 김혜경씨의 일상은 26년이라는 함께 살아온 시간이 무색하게 정겹다. 

물론 아버지와 자식들에게 상을 주고, 홀로 옆에서 바가지에 밥을 떠넣으시던 어머니의 시대를 살아온 이재명 시장은 여전히 그릇 하나 부엌에 들어다 주는 것도 어색할 만큼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간이 배밖으로 나온' 남편이다. 하지만 '시장', 그리고 한때는 대통령 후보였던 그를 잠자리에서 깨우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여, 식사, 옷차림, 정치 일정까지 보살피며, 짬짬이 스킨쉽을 마다하지 않는 이 부부의 모습은 아내라는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그 덕일까? 프로그램 방영 시간부터 검색어에 등장한 이재명이란 이름 석자는 하루가 지나서도 쉬이 내려오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지난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 이재명 성남 시장은 후발 주자임에도 열렬한 지지자들을 모으며 선방했다. 그의 주장은 명징했고, 그 주장은 젊은 층들을 기반으로 하여 굳건한 지지층들을 결집했다. 하지만, 그 주장의 명징함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노동자 출신에 가장 친노동적인, 그래서 반기업적인 이 정치인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을까. 이재명 성남 시장의 지지층은 좀처럼 확산 속도를 내지 못했다. 아마도 그 지지층 확산에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선거 기간 중 그의 가족과 관련하여 시중에 유포된 각종 불미스러운 사건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보여진 이재명 시장의 '감정적인 태도'였을 것이다. 그로 인해 이재명 시장은 토론 등에서 가장 명쾌하고 해박한 주장을 펼쳤음에도 '정서 조절 장애' 등의 불미스러운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심리학자의 대통령 후보 중 가장 안정적인 심리적 기제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는 이미 유포된 '편견'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래서 였을까.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이재명 시장이 첫 발을 내딛은 정치 행보는 뜻밖에도 예능 <동상이몽2>의 출연이었다. 그리고 그 출연은 최소한 첫 회를 봐서는 매우 성공적인 듯 보여진다. 프로그램 속 이재명 성남 시장은 '분노 조절 장애자'는 커녕, 매우 스윗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전통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종종 귀엽기까지한 26차 남편으로 등장했다. 토론이나 시사 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의 주장에 한 치의 양보도 없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아내가 뿌려주는 향수에 팔을 너펄거리며 한 바퀴 돌며 뽀뽀까지 빼먹지 않는 '애완견' 같은 모습이었다. 관찰 카메라 앞에서는 물론 그 동영상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도 내내 미소를 잃지 않는 이재명 시장의 모습은 넉넉했다. 선거 기간 동안 내리 그를 괴롭히던 그 '강고한 편견'이 프로그램 한 시간만에 스르르 허물어졌다. 

정치인들의 미디어 프렌들리가 우려되는 건
선거가 마무리 되고, 선거에 참여했던 유수한 후보들은 저마다의 행보를 시작했다. 그 중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sbs스페셜의 <꼴찌 심상정이 남긴 것>을 통해 '러블리한 심상정'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바른 정당 유승민 전대표 역시 <냄비 받침>에 출연하여 선거 후일담을 비롯하여 소탈한 모습을 공개하며 좋은 이미지를 이어갔다. 그리고 이제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재명 시장은 부부가 관찰 예능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런 정치인들의 발빠른 행보는, 아마도 지난 대선 기간을 통해 선거에 있어, 정치인에 있어 '이미지 메이킹'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미 그 전 선거에서 후보로 등장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선점했던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란 대중에게 각인된 이미지에 대한 한계에 부딪쳤고, 대중 연설 열 차례보다, 유포된 '가짜 뉴스' 하나의 전파 속도와 그로 인한 이미지 붕괴가 선거에 더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실제 주장도 중요하지만, 그 주장의 전달 방식이 후보자 각자의 표 이합집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증명된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였을까, 차기 대선 주자로 예정되어 있는 세 사람은 발빠르게 자신들의 이미지를 변화 혹은 쇄신시키고자 발빠르게 움직이고 그런 그들의 전략은 일정 정도 유효한 듯 보인다. 



그러기에, 더 우려가 된다. 새롭게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대통령 후보들에게 가장 중요한 전략이, '미디어' 전략이라는 사실이. 즉, 우리 사회에서 대형 기획사 등이 자사의 연예인들을 '이미지 메이킹' 전략으로 포장하듯, 이제 우리는 '대통령 선거' 조차 '미디어전'으로 치뤄야 하는 것이 명실상부해지는 것같아서. 아니 이미 명실상부한 것을 체감시키는 것같아서. <동상이몽2>에 출연한 이재명 시장이 자신은 보다 자상한 남편인데 제작진이 자신의 자상한 면을 '악마의 편집'을 통해 없애버렸다며 우스개로 말한 장면은 그러기에 중요하다. 

사람들이 '사실', 혹은 '진실'이라 믿는 '미디어'는 편집된 진실이다. 관찰 카메라를 통해 수집된 수많은 사실 중 제작진의 의도에 따라 보여주고 싶은 사실만이 가려 방송된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중에게 전달되는 정치인의 이미지는 그러기에 '방송'이라는 '권력' 혹은 '유착된 권력'을 통해 가공될 소지가 더욱 다분해 진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동상이몽2>의 이재명 편은 분명 그간 이재명 시장의 억울한 이미지를 풀어주는 시간이었지만, 그러기에 정치인들의 빈번한 방송 출연에 대한 우려를 쌓는 시간이 된다. 무엇보다, '호모 헌드레드 시대, 그럼에도 너는 내 운명'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보여준 시간들은, 제작진이 말하듯, 혼밥과 싱글족들의 시대에 '염장'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청와대에 들어간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여사를 비롯하여, <꼴찌, 심상정이 남긴 것>의 심상정네 가족은 물론, 유승민 전대표도, 그리고 이제 이재명 시장까지도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화목하고, 행복한 부부이다. 아내는 정치인 남편을 위해, 혹은 남편과 자식들 역시 정치인 아내를 위해 당연히 헌신적이고, 그 아낌없는 헌신 위에 가정은 공고한 위상을 뽐낸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시장의 발목을 붙잡았던 건 그의 불우한 가족사였다. 그리고 이제 <동상이몽2>을 통해 증명한 건, 그 불우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안온하고 행복한 가정이다. 미디어를 통해 유포되는 이 '행복한 가정'주의, 과연 이런 '주의' 아래에서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가 전직 대통령이 아니고서는 '싱글 대통령'이나 심지어 돌싱 대통령이 등장할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17. 7. 11. 14:18

과로사'라는 말이 이젠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그런데 7월 8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과로 자살'을 조명한다. 과로가 심해서 자살을 한다고? 그러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말하기 쉽다. '그만두면 돼지, 뭐하러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두냐'고. 하지만 프로그램은 답한다. 과로사의 한 영역으로서 '과로 자살'을 인정해야 한다고. 




인간 무한 요금제, 과로 자살을 부르다. 
명문 카이스트를 나와 대기업인 삼성중공업의 과장인 이창헌씨는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결혼 한 지 일년여, 두 달된 딸내미를 둔 가장의 결정이라기엔 너무도 참혹하다. 자상한 가장이었던 남편의 죽음을, 성실한 직장인이었던 아들의 죽음을 수긍할 수 없어 가족은 회사에 항의를 하지만 '개인적 결정'인 자살 앞에 대기업인 회사나, 직장 상사들은 냉담하다. 

하지만 삼십대의 젊은 나이에도 체력이 딸려 간호사였던 아내가 수액을 놔줘야 할 만큼 매일 야근의 연속이었던 그의 일상, 심지어 연구직 출신이지만 사업부로 보직이 변경되어 희망 퇴직의 위협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의 마지막 선택은 세상을 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입장대로 이런 선택이 이창헌씨만이 선택이었다면 '개인적 결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 입사 1년만에 꺼리는 베트남 지사에 홀로 배치되어 새벽까지 업무를 보던 젊은 사원이나, 실적이 날 때까지 근무하는 '크런치 모드'의 와중에 지난 해 한 해에만 4명이 자살한 잘 나간다는 게임 업계, 2013년부터 지금까지 사망자 70여명 중 돌연사 15명에, 자살 15명의 집배원등, 밥먹듯하는 야근과 과중한 업무 사이에서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직장인들이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업계를 막론하고 '비일비재'한 일이라는데 <그것이 알고싶다>의 문제 의식이 있다.

똑같이 주는 월급, 한도 끝도 없이 부려먹는 직장인의 현실을 '인간 무제한 요금제'라 스스로 자조하는 현실, 특히 1961년 생긴 근로시간 특례 제도 법은 통신, 의료, 광고, 운수 등 집배원을 포함한 26개 업종의 경우 사업자가 근로자와 합의만 되면 법정 근로 시간과 상관없이 초과 근무를 시킬 수 있는 법적 현실 속에 설사 이곳을 떠난다 해도,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없다는 절망감과 과로로 인한 판단력 상실, 우울증 등이 극단적 결정으로 오늘의 직장인들을 이끈다.

 

과연 이렇게 인간을 마지막까지 몰아붙이며 일을 시키는 관행과 적폐에 대한 대안은 없을까? <그것이 알고싶다>가 제시한 것은 대형 광고 회사 덴츠에서 하루 20시간씩 일을 하다 '자살'을 한 다카하시 미츠리로 부터 시작된 문제 의식이 <과로사 방지법>(2014)으로 이어진 일본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그렇게 <그것이 알고싶다>가 '법'을 통해 최악의 노동 현실을 돌파하려 했다면, 다음 날 방영된 <sbs스페셜- 회사를 바꾼 괴짜 사장>은 사용자의 의식 혹은 태세 전환으로서의 '일터 민주주의'를 제시한다. 

일터 민주주의의 선두주자, 괴짜 사장님들
프랜차이즈 업주의 갑질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법정 구속까지 가는 요즈음 그 정반대의 '사장님'들을 <sbs스페셜>이 다룬다. 그 첫 번째 인물은 직원에 의해 '사장' 자리에서 쫓져나 동거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오늘은 북유럽으로, 어제는 중국으로 다니는 여행사 사장님 신창연 대표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불황의 여행 업계에서 해마다 뛰는 매출 실적을 자랑하는 회사의 사장님이었던 신창연 대표, 직원들을 위한 갖가지 복지 제도를 마련하다, 2013년 80%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사장 자리를 내놓겠다는 과욕을 부렸고, 단 한 명이 부족해 사장 자리에서 짤리는 처지가 되었다. 처음 투표의 결과를 받아들고 잠시 '멘붕'에 빠지기도 했다는 그였지만, 곧 진정한 회사 내 민주주의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놓았고, 그 이후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고, 지금은 세계를 오가며 자유롭게 살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사주'가 사라진 회사는 성장을 거듭했고, 그의 후임 사장 역시 지금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영업 본부장으로 현직을 이어나가는 등, 자리가 아닌 일로써 '사장' 자리와 '사장'이 없어도 자율적으로 자신의 일을 즐기는 기업 문화를 정착시켜냈다. 



신창연 대표만 괴짜가 아니다. 한때 몇 개의 요식업소를 운영하던 '갑'이었던 사장님은 이제 수유동 작은 일식당의 '해피님'이 되어있다. 커다란 식당 대신 사람 몇 명만 들어가도 꽉 차는 작은 식당, 수많은 직원 대신 이 식당이 열던 그 시절부터 함께 하던 직원 대신 사람들, 그리고 화장실 청소부터 온갖 허드렛일은 '해피님'이 도맡아 하고, 식당의 대소사는 모두 직원 회의를 거쳐 결정되는 이곳은 '해피님'이 원하던 진짜 일터이다. 이곳엔 알바 대신, 이익금을 나눠받는 직원이 있고, 언젠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는 직원 대신, 이곳에서 뼈를 묻을 각오가 되어있는 주인들이 있다. 

한 술 더 떠서 일주일에 4일만 근무하는 직장도 있다. 돈을 주면 무제한으로 부려먹는 것이 관행이 된 대한민국에서 불금을 회사 대신 가정에서 맞이하는 직장, 오후 6시만 되면 뒤도 안돌아 보고 모든 직원이 회사를 비우는 직장, 그래서 아내의 말을 듣고, 남편의 인도로 사내 커플이 증가하는 직장, 더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주 4일 근무한 이래 이 회사의 실적이 비약적 발전을 해낸 직장 역시 그 결단은 사장님으로부터 이다. 밤 거리를 빛내는 건물의 불빛, 그 불빛을 보고 직장인들은 '상사의 눈치로 인한 불가피한 태업'이라고 자조한다. 즉 그 시간까지 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근대적 업무 관행으로 인해 할 일이 없어도 자리를 지켜야 하는 관행이 늦은 퇴근과 '그로 인한 피로의 축적, 업무 효율의 저하를 낳는다고 것을 회사원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 '창의성'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화두가 되고 있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에서 과연 우리의 전근대적 업무 관행이 우리 산업을 계속 승승장구하게 할 것인지, 다큐가 찾아간 미국 it 업계 신생 기업의 자유로운 사내 문화가 제시하고 있는 바가 크다. 



결국 <회사를 바꾼 괴짜 사장>이 내세운 것은 '갑'의 변화이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30년동안 이끌었던 회사를 퇴임하는 회장님, 퇴임하는 회장님이라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율배반으로 들리는 이 정의를 실천하는 회장님을 통해, 회사는 새로운 전통을 일궈나간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말하고자 한 것도 그것이다. 법과 제도가 있더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유용하고자' 마음 먹는다면, 인간을 돈을 주면 무제한 부리는 대상으로 간주한다면, '과로사와 과로 자살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과로사처럼 과로 자살 역시 '산재'로 인정하는 사회적 경각심도 필요하지만, 일을 하다하다 자신이 도피할 곳은 죽음 밖에 없다는 절박한 상황으로 몰고가는 '과로 사회', 그 자체에 대한 법적 방지와 인식의 제고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하나로써 <sbs스페셜>의 괴짜 사장님들이 제시된다. 
by meditator 2017. 7. 10. 15:44

교양이라기엔 너무 재밌고, 예능이라기엔 그 내용이 범상치 않다. 바로 <알쓸신잡>, <어쩌다 어른>, <수업을 바꿔라> 등  tvn의 프로그램들이 그것이다.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된 아직은 어른이고 싶지 않은 어른이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이제는 '한다하는 인문학자나 강사'라면 한번쯤은 거쳐가야 할, 그래서 구글x의 모가댓이 등장하고, 조만간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마저 출연이 예정된 <어쩌다 어른>은 대놓고 '강연'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강연'이라는 포맷은 kbs1의 <명견만리> 등 tv 프로그램에서는 새삼 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어른>을 보고 있노라면 예능을 보듯 부담스럽지 않게 강연의 내용에 빠져든다. 그건 아마도 '설민석', 최진기, 심용환, 이동진, 김태훈, 허진석, 유수진, 윤홍균, 서천석' 등 당대의 명강사와 유명 작가, 인문학자들이 총망라된 이른바, '네임드'한 강연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쌍방향 인문학이 자아내는 재미 
다이어트 비법에서부터, 역사, 독서, 교육, 경제, 심리까지 이 시대의 사람들이 '교양'으로 목말라 하는 내용을 <어쩌다 어른>은 적확하게 짚어내어 '강연'으로 만들어 낸다. 구 시대의 적폐로 고민할 때 '민주주의'에 대한 강의를, 세상 살아가는 어려움에 빠져있을 때 '마음 공부'나 '자존감 수업'을, 그리고 새 정부에 즈음하여 '헌법'을 통해 본 대한민국의 정체성 공부처럼, 시의적절한 주제들이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또한 '인문학적' 내용을 보다 시의성을 살리기 위해 '화병 치유 요법으로서의 글쓰기'라거나, 역사 한끼로서의 '식문화사'와 같은 식으로 보다 경량화된 '인문학'으로 접근성을 높인다. 거기에 그 '적절한 주제'와 합쳐진 mc 김상중과 연예인, 혹은 준 연예인 패널들의 공감어린 '방청' 관행도 빠질 수 없다. 즉, '강연'이라는 것이 다수를 상대로 한 획일적 방향의 교육 방식인 단점을 mc와 연예인 패널들의 적극적 참여로 마치 쌍방향의 교감을 전제로 한 '예능'적 공감을 더하여 지루하지 않은 강연 프로그램으로 재탄생되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중이다. 

물론 tvn이 '인문학'을 끌어들이기 시작한 건 <어쩌다 어른>이 처음은 아니다. 매주 수요일 <곽승준의 쿨까당>과 목요일 일찌기 천주교, 불교, 기독교의 인물들을 한 자리에 모아 파격적인 토크쇼를 시작한 <콜라보 토크쇼 빨간 의자>를 빼놓으면 섭하다. 

하지만 최근 tvn 인문학의 정점을 찍고 있는 건, 아마 자타공인 <알쓸신잡>, 나영석이 가면 길이 된다라는 말을 실현이라도 하듯, 이미 <삼시 세끼> 등을 통해 예능의 새로운, 그리고 독보적인 트렌드를 만들어 가고 있는 나영석 피디의 새로운 예능으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 사전>이 등장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 사전>이란 프로그램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미 2권 세트로 나온 <정재승 진중권의 크로스>란 책으로 부터 시작해보다. 요즘 개봉한 바 있는 트랜스포머로 부터 로또, 심지어 배우 고현정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인문학자 진중권과 과학자 정재승이 각자의 시각에서 접근해 들어가는 이 책의 확장판이 바로 <알쓸신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지, 그 대상이 트렌디한 주제를 넘어, 우리 나라 방방곡곡으로 '지리적' 확장성을 가지고, 거기에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유희열, 정재승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전문가 저리 가라할 입담인지, 수다인지, 수다를 빙자한 강연인지 모를 모임을 이어가는 중이다. 

신계몽주의 예능의 정점
<어쩌다 어른>에 이어 <알쓸신잡> 역시 관건은 나영석 예능의 전매특허인 '편안함'과 쉬운 접근성이다. 우리나라 당대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 각 분야에서 내노라하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통영이니, 강릉이니 우리나라의 지역을 아재들 '유람'하듯 둘러보고, 거기서 자신이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수다'를 떠는 이 시간은 어쩌니 보고 있으면 '편안한데 유익한' 예능의 기가 막힌 콜라보를 보여준다. 

결국 <어쩌다 어른>이나, <알쓸신잡>등의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바는 '가르치는 것'이다. 이른바 '인문학 열풍'에 대한 tv 콘텐츠의 적극적 수용인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거기엔 새 정부, 혹은 그 새 정부를 잉태한 촛불 광장을 추동한 '시대적 변화'에 대한 '배경 지식 제고'의 필요성이 있다. 촛불로 전 정권의 수뇌부가 '구속'되었을 때, 그걸 '유신 시대'의 종말이라고 정의내렸다. 그렇다면 유신 시대는 그저 정치체제의 문제였을까?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생각과 구 시대적인 사고의 충돌이 빈번하게 이루어 지고 있듯이, 우리는 비록 현재 정치 체제로서의 유신 시대를 '거'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전체 곳곳에서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구시대적 사고 방식들과 그 관습들로 인해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또한 산업 사회를 거쳐 정보 산업 혁명 시대를 이끌어 가겠다는 주도적 의식은 그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개념'에 대한 갈망을 끓어오르게 한다. 또한 산업 사회의 경제적 인간으로 개별화된 인간 소외에 대한 고민 역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복잡적인 필요가 우리 사회에 '인문학적 열풍'을 끓어오르게 했다. 대학교의 '인문학과'는 비록 취업 전쟁에서 무기력하지만, 인문학은 구 시대를 정리하고, 새 시대를 준비할, 혹은 현재 사회의 문제들의 해결 키로서 '만능 해결사'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어쩌다 어른>과 <알쓸신잡>을 통해 등장하는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문화의 각 담론은 유신 시대 혹은 구 시대 강단에서 다루어지던 그 담론이 아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우리의 새로운 사고 방식에 대한 '계도'로서의 갖가지 인문학적 지식들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계몽주의적' 입장에 서있기에, 새 시대의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 자처한 유시민을 필두로,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강사와 각 분야의 인문학자들이 앞다투어 '계몽'적 지식을 들고 하지만, 그것을 보다 '유화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현재 tvn의 각종 프로그램들인 것이다. 

노골적으로 인문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는 <어쩌다 어른>이나, <알쓸신잡>과는 분야가 다르다 하지만, <수업을 바꿔라> 역시 큰 궤도에서는 다르지 않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북유럽 교육' 이민에 대한 바람까지 불듯, 더 이상 현재의 대한민국 교육 체제가 새로운 시대에 경쟁력은 물론, 자라나는 아이들의 행복마저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절감 속에서, 새로운 교육에 대한 모색으로서의 '선진' 교육 과정에 대한 '답사' 프로그램으로서 <수업을 바꿔라>는 예능화된 교육 계몽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다. 
by meditator 2017. 7. 8. 17:18

'그럼 그렇지', '어쩔 수가 없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사건이나 일에 대해 이 말만큼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을까? '냄비 근성'이니, '속물 근성'이니 하는 갖은 수식어들이 결국은 우리를 '그럼 그런' 속성으로 귀결시키는 결론에 우리는 거부감없이 동조하고, 스스럼없이 인용한다. 이렇게 우리를, 우리 민족을 편의적으로 예단하는 우리의 '관성'에 대해, EBS 강의에서 도올 김용옥은 '식민지'적 경험의 부작용, 혹은 6.25와 같은 동족 상잔 전쟁의 소산이라 지적한 바 있다. 이런 문제 의식은 도올에서 그치지 않는다. 얼마전 출간된 <식민지 트라우마>에서 유선영 씨는 '피식민지 민족은 힘의 격차가 불러온 폭력적 사태들에 직면해 열등감, 히스테리와 공격성, 수치와 죄의식 등에 휘둘리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겪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이 감정, 정신의 상흔들이 민족의 심연에 그리고 역사의 심연에 켜켜이 쌓여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역사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 그런 우리들에게 사실 우리는 이렇게나 자부심을 가질만한 민족이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동주>와 <박열>의 이준익 감독이다. 


2015년에 이어, 이제 2017년 이준익 감독이 들고 온 인물들은 식민지 일제하를 살아갔던 청춘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준익은 이제는 많이 마모되고 상흔으로 인해 자기 방어 기제만이 강화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한국인', 그 아름다운 인간형의 원형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동주>로 시작된 일제 하 젊은이들의 사상과 실천 
시작은 <동주>였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다. 하지만 흑백의 차분한 톤으로 영화가 나즈막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조국을 일제에 잃고 간도로 이주한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거기서 자란 청춘들의 삶에서 부터이다. 고향을 잃고 떠난 사람들, 하지만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고향'을 만들어 '이웃'끼리 정을 나누며 살아간다. 일제에 의해 짓밟은 본래의 고향보다 더 고향같은 곳, 하지만 그곳에서 젊은이들은 조국을 잊지 않는다. 그 시대에도 열렬한 부모님들의 교육열은 그들을 창씨 개명을 피해 일본으로 보내지만, 거기서 그들은 '입신양명' 대신, 시대를 온 몸으로 앓아낸 시인으로, 자신을 내던진 독립 운동가로 성장해 나간다. 

'동주를 만나러 갔는데 몽규를 만나고 왔다'는 평처럼, 영화 <동주>는 그 시대를 '시'로 앓던 동주란 순수 문학 청년못지 않게, 동주만큼 '문학'을 사랑했지만, 조국을 위해 기꺼이 '문학'도 자기 자신도 내던졌던 순수한 송몽규를 조우하게 된다. 영화의 행간을 통해 그가 무장 독립 운동에 뜻을 두었고, 사회주의를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었지만, 우리가 지난 역사 수업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그 '사상'적 수혜가 영화를 보면 무람없이 송몽규란 인물을 통해 설득되어진다. '사상'이 먼저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청춘의 삶과, 그 선택과 실천으로서의 사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대를 순수하게 아파했고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자신을 돌아보며 아파했던 그 청춘들을 통해 우리은 일제 시대 사상 운동을 했던 젊은이들에 대한 무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공과 나의 일신상의 이득을 넘어 시대를 아파하고 고뇌하며 거기에 자신을 기꺼이 던지는 이타적인 한국인의 원형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 원형은  이제 2017년 <박열>을 통해 조금 더 인식의 폭을 넓히게 된다. 

2017년의 죽비같은 <박열>
<동주>를 통해 서로 다른 방식이었지만 시대를 고스란히 자신을 던져 아파했던 순수의 결정체같던 동주와 몽규를 발견했다면, 이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식민지라는 시대를 호탕하게 살아냈던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관동 대지진 당시 일본 천왕제의 정부가 위기에 빠지자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방식으로 일제는 그 책임을 한국인에게 몰아 관동 대학살은 방조했고, 그것도 모자라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 운동을 하던 박열 등을 '대역모 사건'의 배후로 조작하고자 한다. 

일제에 의해 설계된 사건의 프레임으로 보면 분명 '피해자'이고 '희생자'가 되어야 할 박열은 하지만, 오히려 자신을 옥죄어 오는 일제의 법망을 기가 막히게 이용하여 '자신만의 프로파간다'로서 황태자 암살 사건을 활용한다. 

조작된 사건을 기꺼이 자신이 했다며 재판 과정을 오히려 이용하기 시작한 박열, 그는 '가장 말을 안듣는', 그리고 가장 버릇없는' 조선인으로 단식 투쟁 등의 갖가지 수단을 활용하며 일제를 당황케 하며 끝까지 재판을 통해 자신의 강고한 의지를 천명해 나간다. 

그런 박열의 모습은 널리 알려지지 안았을 뿐이지, 학생 운동 과정에서 '재판정'을 역시나 자신의 생각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장으로, 감옥을 '투쟁'의 장으로, 조서나 항소 이유서를 시대를 대변하는 사상서로 만들었던 학생 운동의 전설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운동을 했던 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했던 그 '영웅적 모습'을 이제 '박열'이라는 걸출한 한 인물을 통해 영화는 복기해 낸다. 일제의 조작과 회유, 그리고 폭력적 탄압에도 굴종하기는 커녕, 그것을 기꺼이 자신의 의지와 사상을 널릴 알릴 수 있는 기회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일본의 압제하에서 고통받는 조국의 민중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투쟁'의 장으로 삼았던 박열과 그의 아나키즘은 '을'로서의 삶에 지쳐가는 2017년의 우리에게는 동주와 몽규의 순수함과는 또 다른 결을 지닌 속시원한 인간형이다. 

역시나 동주를 보러 갔다가, 몽규를 보고 왔듯이, 박열을 보러 갔다가, 가네코 후미코를 보고 왔다는 평이 나오듯, 박열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가 보이는 동지애적 사랑, 평등한 관계, 그리고 자신들을 겁박하는 제도와 권력에 대한 열렬한 저항 의지로 표현되는 두 사람의 '아나키즘'은 , '독립'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넘어 제도화되고 규격화된 삶에 길들여진 모든 사람에겐 '죽비'와 같은 신선한 충격이다. 

그렇게 그간 우리가 편향된 역사 교육을 통해 '편견'으로 바라보았던 일제하 사회주의는 몽규를 통해, 아나키즘은 박열을 통해 그 시대 청춘들이 살아가는 한 방식으로 오늘의 우리에게 다가왔다. 가장 순수한 독립 의지에 대한 표현으로, 혹은 철저한 일제에 의한 그 모든 제도와 권력에 의한 거부로 그들이 선택했던 사상과 실천 방식들을, 이제 우리는 몽규와 박열이라는 인간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냄비같던', 더 심하게는 '엽전'이라 폄하했던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들의 순수하고 호탕한 원형을 숙제처럼 받아든다. 

by meditator 2017. 7. 5. 18:31

7월 2일 방영한 <sbs스페셜-성선제의 달콤한 인생>은 지난 4월 14일 방영한 <나의 빛나는 흑역사>의 스핀오프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나의 빛나는 흑역사>를 통해 여러 사람들의 '실패'의 전사를 훑어보았던 프로그램은 그 중 특히나 이목을 끌었던 성선제 씨의 이야기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본다. 


실패주의자 성선제
이제 성선제 씨는 기업에 강의를 다닌다. 그가 하는 강의의 주제는 '나만큼 실패해 본 사람 있는가?'이다. 지금까지 아홉 번 실패를 하고, 그는 지금까지 실패를 밑거름삼아 성공할 일만 남았다고 하지만 어쩌면 열 번 째 실패를 할 지도 모를(?) 그가 잘 나가는 기업이 한참 열의를 가지고 일을 하는 직원들을 상대로 '실패'를 강의한다. 왜?

방영 과정에서 * 처리를 했지만, 그 시그널과 로고만 봐도 피자를 먹어봤던 사람이라면 다 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피자 브랜드의 첫 한국 지사장이었다. 서른의 성선제씨는. 하루 일과가 지나고 집에 지폐 세는 기계를 놔두고 돈을 세어야만 하루 매출을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긁어모았다던 그, 방송에 나가 100억 정도라 웃으며 말을 하던 것이 그 시절의 그였다. 





그렇게 한국에 첫 발을 내딛은 피자가 선풍적 인기를 모으자, 본사에서는 그 대신 본사 직영으로 그 브랜드를 넘기도록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비록 얼마간 보상을 받았지만 하루 아침에 자신이 애써 일구던 사업을 송두리째 넘겨야 했던 그는, 보란듯이 해외 유명 브랜드의 덕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또 다시 성공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단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당시 한국에서는 역시나 드문 로스팅 기법의 치킨, 케니 로저스란 해외 유명 가수를 내세웠지만 모험이었다. 그 모험의 발목을 잡은 건, 뜻밖에도 국가의 경제 상황, IMF는 빚을 얻어 사업을 시작한 그를 다시 실패의 늪으로 몰았다. 그렇게 다시 두 번째의 실패를 하고 자신이 살던 궁궐같은 집을 헐값에 넘기고, 높은 빌딩에 올라 죽을까도 해보다, 온 몸이 성한 데가 없을 정도로 각종 암에 병에 수술을 몇 번씩 하고, 그렇게 이제 일흔 줄이 되었다. 

예전 우리 소설에 '아버지'란 존재의 단골 캐릭터, 이른바 사업을 한답시고 땅 팔고, 집 팔고 가산을 탕진하고, 집안을 거덜내던 그 '아버지'를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심지어 일흔 줄 지금도 여전히 사업을 한다고 얼마전 역시나 해외 브랜드 덕을 볼까싶어 넓은 건물을 얻어 시작했다 망한 컵케이크를 아직도 붙들고 있다.

그렇게 사업하다 다 말아먹은 아버지 성선제씨가 왜 기업에 강의를 나갈 정도가 되었을까? 실패도 하다보니 이골이 나서? 이제는 마음을 비웠다 했지만 예전에 자신들이 살던 동네에 간 일흔의 성선제씨 부부는 결국 눈시울을 적시고 만다. 남들이 쉽게 말하는 아홉 번의 실패가 그리 쉽게 아무는 것이 아니다. 

최근 <미운 우리 새끼>를 통해 화제가 된 이상민 씨가 7월 2일 다큐의 나레이션을 맡았다. 이상민 씨도 아직 나이가 성선제씨만큼 안되서 그렇지, 실패의 경력으로 치면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상민과 성선제, 이 두 사람, 묘하게도 닮았다. <미운 우리 새끼>를 통해 이상민에 대해 사람들이 호의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가 과거에 벌였던 일들을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다. 성선제씨 역시 집기들을 다 놔두고 이제는 월세를 내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좋아서 그를 다시 조명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 아름다운 꿈, 그리고 여전히 현재형인 삶
지난 4월 14일 <나의 빛나는 흑역사>에서 어쩌면 진짜 짚어야 했지만, 미처 짚지 못했던 지점을 이상민 나레이션의 <성선제의 달콤한 인생>을 통해 다큐는 제대로 짚고자 하는 것이다. 다년간의 투병과 수술로 인해 옷이 남아도는 마른 몸으로 그는 여전히 상호도 없는 개장하지 않은 점포를 지키며 날마다 컵케이크와 씨름한다. 보기에 그럴 듯해 보이는데 이건 아니라고 다 만든 컵 케이크를 쓰레기통에 쑤셔 넣는다. 그가 요식업에 종사한 이래, 그의 좌우명은'나 자신이 먹을 만한가'였고, 아홉 번의 실패를 겪었어도 그런 그의 좌우명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새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아홉 번의 실패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초심,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려는 도전, 그 순간 성선제씨는 아홉 번의 실패자가 아니라, 다시 새로운 꿈을 꾸는 희망에 찬 도전자이다.

아홉 번이나 실패를 한 남편, 그런 남편의 열 번 째 사업에서 컵 케이크 셔틀을 담당한 건 그의 늙은 아내와, 그 부부만큼 오래된 자가용이다. 부자였던 이 아니라, 잠깐 부자였던 시절을 스쳤다고 말하는 의연한 아내는 아홉 번이나 실패를 한 남편을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며 퉁수를 주지만, 여전히 형형한 그의 눈빛에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는다. 아내는 말한다. 수술을 하고 투병을 하고 그러고 퇴원을 하면 다시 일터로 가서 자신의 일과 씨름하는 남편, 성선제씨는 그렇게 살아왔다고. 기업의 강연이 있는 날 책상 앞에 앉아 열심히 준비하는 늙은 남편을 저 사람이, 저 사람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면 자랑스러워 한다. 

그렇다. <나의 빛나는 흑역사>가 빼먹은 것이 그거다.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실패,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성선제 씨는 말한다. 꿈을 꿔라, 하지만 당신이 꿈을 꾸는 건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는 말한다. 그렇다고 꿈을 접어두고 그냥 살아가기엔 인생은 너무 길다고. 그런 그의 생각대로, 그는 일흔이 된 나이에도 새로운 도전과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라며 시간을 보내는 또래의 친구들이 재미없다고 말하는 성선제 씨, 그가 멋있는 건, 무언가를 이루어서가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아서이다. 그가 대기업의 직장인들에게 당당하게 실패를 말할 수 있는 건, 실패 끝에 성공을 성취해서가 아니라, 실패를 했지만, 그 실패에 자신을 내어주지 않아서이다. 이상민 나레이터가 요즘 세상에 다시 조명을 받는 것 역시 그것이다. 여전히 많은 빚이 있지만,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무언가를 한다는 것. 그리고 역시 열 번 째 실패를 앞두고 있을 지도 모를 성선제 씨가 당당한 이유이다. 

by meditator 2017. 7. 3. 14:11

자신의 방을 뒤진 영은수(신혜선) 검사의 팔목을 나꿔챈 서동재(이준혁 분)의 팔을 황시목(조승우 분)가 잡는다. 하지만 그들은 곧 자신들의 뒤에서 다가오는 그 누군가의 존재감에 움찔한다. 곧이어 복도의 각 방을 열고 우르르 쏟아져 나온 검사 무리들, 조폭처럼 양 쪽으로 늘어서 그의 앞에 허리를 굽히고, 그들 앞에 이제 막 검사장이 된 이창준(유재명 분)이 우뚝 선다. 





<응답하라 1988>의 아버지, 검사가 되다, 그 첫 번째 <비밀의 숲> 유재명
<비밀의 숲> 이 장면은 상징적이다. 끝내 그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황시목 앞에 이제 검사장이 된 이창준의 존재감과 검사 조직의 생리를 단번에 설명해 주고 있다. 그 좁은 검찰청 복도 앞에 우르르 늘어서서 고개를 조아리는 검사들과, 끝내 황시목조차 고개를 수그리게 만드는 이창준, 그 장면에서 만큼은 주인공이 황시목이 아니라, 이창준이라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게 유재명이 연기하는 이창준은 회를 거듭할 수록 그의 존재감을 뻗쳐간다. 그저 첫 회 자신에게 상납하는 여성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부패 검사일 것만 같았던 그가 오히려 회를 거듭할 수록 모호해 진다. '모든 것은 밥 한 끼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말로 시작된 그의 묵직한 나레이션과, 그가 찢어 발겨 버린 지갑, 그리고 황시목과 서동재를, 그리고 자신의 장인과 아내마저 의심치않는 그의 눈길에서 선과 악, 그 어느 편으로 쉽게 재단할 수 없는 한낯 도청 소재지도 아닌 도시에서 태어나 재벌의 사위가 되고 이제 검사장으로 만족하지 않을 '야심만만한' 개천의 용이 된 한 인물의 복잡한 속내를 헤아려 보게 된다. 

그렇게 회를 거듭할 수록 '공직자는 너무 더러워도 너무 깨끗할 필요도 없다'며 두터워져가는 이창준의 존재감은 <비밀의 숲>이란 드라마의 안개를 더욱 짙게 만들고, 그래서 이 드라마를 즐겨 보는 이들로 하여금 황시목 못지 않게 이창준이란 존재의 매력을 만끽하도록 만든다. 그러고 보니 <응답하라 1988>에서 학주(학생 주임)이었던 그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았다. 그저 어느 학교에서 한 명씩은 있을 법하던 괴팍한 학생 주임으로, 그리고 동룡이 아빠로 시작되었던 그의 스치듯한 존재감은 드라마가 마무리 될 즈음 어느 틈엔가 골목 아빠들 멤버의 고정 1인으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비밀의 숲> 이창준에 대한 재발견으로 그에 대한 관심은 거슬러 <해수탕 여인(2014)>을 비롯 <살아남은 자(2016)>까지 그가 이전에 출연했던 작품까지 이어지도록 만든다. 





<응답하라 1988>의 아버지, 검사가 되다, 그 두 번 째, <파수꾼>의 최무성
아이러니하게도 똑같은 검사인데 유재명과 전혀 반대의 의미에서 새롭게 보아지는 인물도 있다. 바로 mbc 월화 드라마 <파수꾼>에서 검찰 총장 후보 하마평에 오르내리며 국회 청문회를 앞둔 서울 지검장 윤승로 역의 최무성이다. 서울 법대 수석 출신에 '나라'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하찮은 인간들의 희생쯤은 가볍게 즈려밟고 이제 검찰 총장을 앞둔 그, '파수꾼'들의 도전에도 자신의 인맥과 노회한 처세술, 그리고 그가 지난 시절 살아왔던 협박과 술수로 끄덕없이 버티는 윤승로야 말로 이 시대 '괴물'의 표본이다. 

그런 윤승로가 <응답하라 1988>에서 부성애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던 바로 순둥이 택이 아빠였다니! 이것이야말로 반전 중의 반전이다. 처음 순둥이 택이 아빠가 tv에 등장했던 건 <청담동 살아요(2011)>의 기러기 아빠 최무성 역이었다. 일반인이 아닐까 싶었던 그의 등장은 연기인지, 그의 본모습인지 헷갈렸던 그 두루뭉수리한 존재감과 달리, 이 작품에서 그의 모습은 조금씩 자신의 지분을 찾았던 것. 하지만 여기서 또 반전은 그렇게 <청담동 살아요>에서 일반인처럼 등장했던 그가 <세븐 데이즈>, <베스트 셀러>, <악마를 보았다>에서 '악마'같은 악역이었다는 건 또 하나의 반전이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최무성이 연희단 거리패 출신의 도쿄 비쥬얼 아트 스쿨 영상학부 연출 전공에 <사람을 찾습니다>, <청소부> 등 다수의 연극을 연출한 사람이라는 것이 더 반전이라면 반전일 것이다. 

그렇게 '신출귀몰'하다는 표현이 걸맞는 최무성이기 때문일까? <비밀의 숲>의 늘씬한 유재명과 달리, 한 덩치하는 최무성이 '서울 지검장'의 자리에 앉아,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떠보며, 그들의 쓰임새를 이리저리 재단하고, 그러면서도 맹목적인 부성애로 '사이코패스'인 자신의 아들 범죄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모습은 <파수꾼>이란 드라마의 핵심 코드이다, 중심이다. 최무성이 연기하는 윤승로의 으뭉한 노회함이 이 시대 또 다른 '악'의 변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가고 있는 중이다. 




<내부자들>의 재벌 회장님, 이번엔 검찰청장으로 <수상한 파트너>의 김홍파 
이제 그의 악역은 너무도 익숙하다. <내부자들>의 오회장, <384 기동대>의 방필규 회장, 그리고 이제 <수상한 파트너>의 선호지방 검찰 청장 장무영,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는 높지 않지만 무시무시하고 비수가 되어 상대방의 가슴에 박힌다. 악역으로서 그는 '클리셰'같지만 여전히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그런 김홍파 배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적인지 동지인지 모를 염석진을 두고 고뇌하는 <밀정>의 김구가 있고, 낭만적인 의료진의 울타리가 되주었던 <낭만 닥터 김사부>의 돌담병원장 여운영도 그의 몫이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집에서는 다정한 가장이나, 밖에서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발버둥치는(월간 조선 인터뷰)' 이 시대의 또 다른 가장의 모습을 그의 '악역'을 통해 표현해 내고 있다. <수상한 파트너>의 선호 지방 검찰청장으로 분한 김홍파 배우는 비명횡사의 죽음으로 아들을 잃고 그 원한을 은봉희(남지현 분)에게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쏟아붓는 맹목적 부정을 그려낸다. 그렇게 아버지로서 맹목적인 모습은 선호 지방 검찰청의 대표로서의 권위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제 드라마의 종반, 그가 그 자리에 오기까지 덮었던, 아니 스스로 조작했던 노지욱-은봉이 부친과 관련된 사건에서 '이 시대 가장'의 그늘을 대변한 '주적'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낼 예정이다. 

'20대는 투쟁, 30대는 전쟁, 40대는 깨달음의 시간'이었다는 이 오랜 내공의 배우는 극단 목화 출신의 연극 현장에서 20년의 경륜을 쌓았다. 자신이 연기한 배역이라면 그가 쉬는 호흡부터 연구한다는 이 노배우의 '악역'은 그래서 언제나 극의 중심으로 확고하게 드라마를 이끈다. 


김홍파, 최무성, 유재명, '신인'이라기엔 배우 각자가 살아온 삶의 이력이 길고도 굵은 이 배우들이 연기하는 '검사장'급인사들은 김홍파 배우의 말대로 이 시대의 또 다른 아버지 상이다. 그들은 때론 출세를 위해, 혹은 나라를 위해 '불법'에 동조했고, 앞장섰으며,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인생을 짓밟고, 가정을 파괴하며, 오늘날 남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받는 '일그러진 영웅'이 되었다. '밥 한끼'로 부터, 혹은 한 번의 눈 감음, 혹은 한 번의 동조가 오늘날 '기성 세대'라 말하는 '부도덕한 아버지'의 전형을 만들었고, 이제 드라마 속 그들에겐 젊은 검사들의 '도전'과 '처벌'만이 남았다. 하지만 비록 그들의 앞길엔 '처벌'만이 드리워졌을 지라도, 그와 별개로 이들 '신선한' 악역의 진기명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의 연기는 갈수록 더 보고싶은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중이다. 

by meditator 2017. 7. 2. 16:38
|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