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1위는 아니지만 sbs의 수목 드라마 <수상한 파트너>는 사극인 <군주>에 이어 2위를 수성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로 종영했다. (9.5%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지하철 치한과 피해자, 검사와 검사 시보, 그리고 변호사와 변호사, 그리고 검사와 변호사라는 해프닝과 다양한 직업을 오가며 성장하고 사랑하는 두 주인공의 신선한 이야기가 궁금해 작가가 누굴까 하고 혹시나 찾아봤던 사람이라면 권기영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자신이 전에 재밌게 봤던 그 작품들, <너를 기억해>, <내연애의 모든 것>, <보스를 지켜라>의 그 작가와 동일인이라는 사실에 반가움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이제는 '장르' 드라마가 대중적 인기를 얻는 것이 '특별'할 것이 없는 시절, 혹은 '사이코패스'란 말이 더 이상 생소하지 않은 시대, 하지만 일찌기 권기영이란 작가가 그것을 시도할 때만 해도 '장르물'이나, 구체적 정신병력을 가진 등장인물은 생소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러기에 권기영의 작품은 늘 그 앞서가는 덕분에 '대중적'이기 힘들었고, 그래서 '눈밝은 호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개성강한 남자 주인공
만약에 내가 남자 배우의 팬이라면 아마도 내 배우가 권기영 작품을 한번쯤 하기를 원할 듯하다. 이른바 '대박'은 아니지만, 남자 배우라면 팬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매력적인 캐릭터를 하나 남기는 셈이니. 그렇듯, 권기영의 작품 속 남자 주인공들은 그 어디서도 다시 보지 못할 독특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배우 지성에게 '연기파'란 명예를 안겨준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킬미힐미(2015)>이다. 무려 일곱 명의 다중 인격을 가진 주인공이라니! 하지만, 번듯하고 정의로운 주인공 역할의 단골이었던 지성이란 배우에게 '연기'의 스펙트럼을 열어준 계기가 된 정확한 작품을 꼽으라면, 2011년작 <보스를 지켜라>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거기서 지성은 어린 시절 엄마를 잃어버린 트라우마로 인해 일종의 공황장애라 말할 수 있는 '광장 공포증'을 가진 차지헌으로 등장한다. 물론 차지헌은 그 흔한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의 주인공 단골인 재벌 2세다. 하지만, 좀 부족하긴 해도, 혹은 가끔가다 신체적 질병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래도 재벌 2세에게 히키코모리일 수 밖에 없는 대인 공포에 발작까지 포함한 '가오'라고는 1도 없는 찌질한 캐릭터를 부여한 것은 신선함을 넘어선 시도였다. 



2013년 정치적 상황이 암울할 당시,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보수정당 남성 국회의원과 진보정당 여성 국회의원의 연애 이야기 <내 연애의 모든 것> 주인공 김수영(신하균 분) 역시 막말 작렬에 결벽증이 극심한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은 로코의 주인공이었다. 
2015년 <너를 기억해>는 한 술 더 뜬다. 드라마 초반 <셜록>의 분위기를 잔뜩 내며 등장한 이현(서인국 분)은 범죄학 교수 출신으로 뉴욕 경찰 범죄 컨설팅해주던 전력으로 이제 특수범죄 수사팀의 조력자가 된다. 셜록 뺨치게 프로파일링을 하고 사건 현장을 분석하지만, 김수영 저리가라 할 오만함에 독설을 장착,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알고보니 니가 사이코패스'일 지도 모를 어린 시절 아버지로 부터 잠재적 살인마란 평가를 받고 감금되었던 '경력(?)의 소유자다. 

그렇게 너무 시대를 앞서갔던 차지헌, 김수영, 이현에 비하면 <수상한 파트너>의 노지욱(지창욱 분)은 제법 멀쩡해 보인다. 물론 검찰 내 평가 꼴찌지만 현직 검사니까. 하지만 권기영이 그저 그런 뻔한 설정에 만족할리가. <너를 기억해>를 통해 '니가 사이코패스냐 내가 사이코패스냐?' 헷갈리며 주인공과 주인공의 동생을 두고 시청자들을 헷갈리게 했던 권기영은 이제 <수상한 파트너>의 절정에서 검사인 노지욱과 연쇄 살인범 동하의 과거 트라우마로 인한, 기억 장애, 그리고 기억 조작을 엇물리며 '기억에의 상흔'을 주목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노지욱이 당시 검사였던 장무영(김홍파 분)에 의해 조작된 기억을 가지고 불면증에 시달렸다면, 역시나 좋아했던 또래 여고생의 죽음에게 무기력한 방관자였던 동하는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조작하여 법망을 피해간 당시 가해자들의 '처단자'로 살인을 저지른다. 

이렇듯 권기영의 남자 주인공들은 늘 너무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여 막말을 내뱉어 주로 주변과 불화하며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로 인해, '애정'보다는 '의심'을 사기 쉬운 캐릭터들이다. 기존의 한국 드라마보다는 '미드'에서 본듯한 트러블메이커들이다. 그래서 낯설고, 그래서 신선하여 그 캐릭터의 이름으로 호청자들에게는 오래도록 기억되는 그 한 사람이다. 



어쩌면 주인공보다 더 기억에 남을 그 사람, 혹은 그들
<수상한 파트너>에서 두 주인공을 제외하고 가장 크게 기억이 될 한 사람을 꼽자면 아마도 이 드라마를 본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연쇄 살인범으로 나왔던 동하 역의 정현수를 꼽을 것이다. 그가 까페 벽에 붙어있던 메모를 이용하여 기억을 천연덕스럽게 만들어 내 법망을 피해가는 장면은 아마도 <유주얼 서스펙트>의 마지막 장면 못지않은 전율을 주었다. 눈빛 하나, 표정은 더더욱 천연덕스러운 이 이십대 청년이, 자신이 학창 시절 연모했던 소녀를 그리워하다, 다음 순간 자신의 범행에 방해가 되는 그 누구라도 얼굴빛하나 변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가차없이 제거해 버리는 그 모습에 이젠 그 뻔하다는 '사이코패스'의 또 다른 유형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 알고보니 자신이 그 범행의 조력자였다는 것을 분노하며 부인하다 깨닫게 되는 '아이러니한 순간'은 아마도 <수상한 파트너>란 드라마의 백미 중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동하라는 사이코패스는 <너를 기억해>의 이준호(최원영 분) 앞에서 한 수 배우겠습니다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배우 지성이 <보스를 지켜라>을 통해 연기파의 지평을 넓혀갔듯이, <백년의 유산>을 통해 최원영이란 이름 석자를 알렸던 그에게 역시나 '이런 면'이라는 감탄을 불러일으키게 했던 건 <너를 기억해>에서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미 <쓰리데이즈>에서 소시오패스 재벌 역을 했던 최원영, 그러나 <너를 기억해>에서 그는 <터널>의 범인처럼 법의학자로 여주인공 차지안의 든든한 조력자로 등장하지만 이현과 정선호(박보검 분) 형제의 어린 시절부터 때로는 그들의 보호자로, 때로는 그들이 가진 '잠재적 범죄 성향'의 보스로서 다양한 얼굴을 매력적으로 표현하여 때로는 주인공보다 더 멋진 '악역'으로 기억을 남긴다. 또한 일찌기 될 성부른 나무였던 박보검의 또 다른 모습 역시 그가 분한 정선호라는 캐릭터를 통해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권기영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그저 악역'이 없다. 그렇다고 '악역'에 빙의하여, 그의 사연에 천착하지도 않는다. 물론 극의 중심에 악행이 있고, 그 악행의 근원에는 매력적인 악인이 있지만, 전지전능한 심판자연했던 동하가 알고보니 방관자이듯, 최종 보스 사이코패스였던 이준호 역시 어린 시절 학대의 결과물이지만, 결코 그것을 '천착'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매력적인 악역만 있는 것은 아니다. 권기영 속 등장인물들은 그저 그런 뻔한 인물이 하나도 없다. <수상한 파트너>에서는 주인공 두 명과 그 들의 연적, 사무장, 로펌 대표이자 의붓아버지까지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극중에서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보스를 지켜라>의 찌질하기 그지없던 재벌가 사람들이 그러했고, <내 연애의 모든 것>에서 주인공보다 때론 더 열렬히 응원하게 되었던 문봉식(공형진 분), 고동숙(김정난 분)의 다이내믹했던 연애 역시 마찬가지다. <너를 기억해>의 허우대만 멀쩡했던 팀장을 비롯한 특수수사 팀원들의 개성강한 모습들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아쉽다면 이렇게 개성강한 남자 주인공들에 비해, <너를 기억해>의 차지안(장나라 분), ,보스를 지켜라>의 노은설(최강희 분),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노민영(이민정 분), 그리고 <수상한 파트너>의 은봉희(남지현 분)는 묘하게도 다들 하나같이 씩씩하고 형사로서, 국회의원으로, 변호사로 제 몫을 해내지만, 어쩐지 종종 '복제인간'같은 개성강한 남자 주인공에 비해 평범한 캔디형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늘 범죄와 사랑, 성장과 사랑, 정치와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의 포석을 야심차게 벌여놓은 권기영 작가의 작품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주제로 인해 대중성에서 딜레마를 안는 것과 함께, 이 두 마리의 토끼의 회수에 '고전'한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권기영의 작품을 접하는 건 마치 얼리어답터가 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늘 다음이 더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7. 7. 16.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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