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예능의 트렌드는 100만원인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두 편의 예능이 돈 100만원을 들고 나왔다. 지난 4월 24일 야심차게 선보인 ebs의 예능 <엄마를 찾지마>에 이어, 5월 11일 첫 선을 보인 올리브 tv의 <어느날 갑자기 100만원>이 그 주인공이다. 두 프로그램은 모두 출연자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00만원을 주고 그것을 마음껏 쓰도록 하는 '호혜'를 베푼다. 단지 그 대상이 다를 뿐이다. <엄마를 찾지마>가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엄마에게 100만원을 준다면, <어느날 갑자기 100만원>에서 100만원의 주인공이 된 사람들은 '연예인'이다.


 

엄마의 가치를 증명하는 100만원의 시간
매주 월요일 밤 10시 45분, 한 분, 혹은 한 가족의 엄마들이 돈 100만원을 들고 '튄다'. 늘 그 자리에서 있어왔던 그 '엄마'가 제작진이 전해준 100만원을 들고 '무단 가출'을 감행하는 것이다. 가족들, 혹은 넓게 보아 가족같은 이들은 '황망함'도 잠시, 엄마의 빈 자리를 견디지 못하고 엄마의 뒤를 쫓는 추격전을 감행하고, 자신을 뒤쫓아오는 가족들과의 술래잡기를 하며 엄마는 그간 못누려본 경제적, 시간적 여유를 누리며 자신을 돌아본다. 

그 시작은 자기 가족은 물론, 남편이 거느린 운동부원들의 매 끼니 식사까지 책임지는 '대가족'을 거느린 엄마였다. 엄마가 돈 100만원을 들고 사라지자, 엄마 찾기 작전은 감독님의 지휘 아래 운동부원 전체의 '레이스'가 된다. 2회의 엄마라고 다르지 않다. 산넘고, 진짜 물을 건너야 만날 수 있는 강원도 화천군 동천 2리 비수구미에서 민박집을 하고 있는  김영순씨(68) 고부다. 새벽 6시 밭일을 시작으로 손님 맞으랴, 집안 일하랴, 거기에 밭일까지 하며 하루를 꼬박 일로 보내는 이 고부, 17살에 시집와 43년째 이곳을 지키는 시어머니와, 한때는 도시 여자였지만 서울 가본지가 20년이 된 그녀의 며느리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들이 하루 종일 동동거리며 안팎으로 바쁜 동안 벌통 마니아 시아버지와 동네 이장 남편은 늘 그런 살림살이의 아웃사이더다. 3회라고 다를까. 우리에게는 가수 박지헌이지만, 5남매 다둥이 아빠 박지헌의 아내 역시 이른바 '독박 육아'의 주인공으로 젖먹이를 떼어놓은 채 가출을 감행한다. 

돈 100만원을 들고 '엄마'들이 하루 정도의 시간 동안 한 가출이라고는 참 '알량'하다. '여자들이란~'이란 수식어가 나올 정도로 머리 하고, 옷 한벌 사입고, 지인들을 만나 수다떨고,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가고, 좀 다르다면 패러글라이딩 정도다. 그렇게 기껏 하루에 돈 100만원을 만끽한 엄마들은 때론 가족들의 추격에 뒤를 밟혀, 그게 아니라도 제 발로 '귀가'를 하고만다. 

그렇다면 이 굴러들어온 100만원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출연자의 면면에서 보여지듯이 '극한 직업'으로서의 '엄마'에게 주어진 강제 휴식인 면이 강하다. 그들의 극한 직업으로서의 존재감, 그 빈 자리에서 드러나는 '충격의 현장감'과 '해프닝'이 아직 3회지만 매회 놀라움의 연속이다. 무엇보다 '여성의 권리'가 향상되었다는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엄마'의 자리는 '독박'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엄마를 찾지마>는 증명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은 겨우 하루 돈 100만원의 여유와 휴식만으로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고 만끽할 만큼 '참 착하다'는 것이다. 예능의 공식답게 '가출'의 마무리는 함께 사는 남자들의 '반성'과 엄마들의 흐뭇한 '만족'으로 귀결된다. 가출이 꿈이었던 듯 되풀이 될 일상과 함께. 



100만원의 행복 
반면 올리브 tv의 <어느날 갑자기 100만원>을 보면 2003년부터 mbc를 통해 방영했던 <행복 주식회사>의 '만원의 행복'이 떠올려진다. 음원 차트를 줄세우는 악동 뮤지션에게, 숱한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는 옥택연에게, 잘 나가는 걸그룹 하니에게 돈 100만원이 무에 그리 큰 돈이겠는가. 하지만 '예능'의 출연자들답게 그들은 그 돈 100만원에 '기특한' 의미를 부여하며, '예능'적 재미를 톡톡히 뽑아낸다. 

그 시절 <만원의 행복>이 연예인들에게 알뜰한 생활을 요구하는 건강한 삶을 추구했던 경제 관념을 앞세운 프로그램이었다면, 이제 새로이 그들에게 100만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는 <어느날 갑자기 100만원>은 여러 연예인들의 처지에 걸맞게 100만원의 가치를 '돈'의 금액이 아닌, '여유'와 '힐링'이라는 이 시대에 걸맞는 의미로 푼다. 

이미 <원나잇 푸드 트립>을 통해 서로 누가 더 많이 먹느냐라는 조건 외에 무조건적인 호혜로서의 먹방 여행으로 '먹방'의 가능성을 열어간 올리브 tv 답게 먹방 여행의 다른 버전처럼 100만원을 다 '소비'하는 것 외에 어떤 조건도 없이 '여유로움'을 제공한다. 그에 따라 새 앨범을 내느라 지난 1년간 여유를 즐겨보지 못했던 악동 뮤지션의 찬혁은 동생을 위한 필리핀 세부 몰래 여행을 기획하고, 신동은 100만원짜리 뮤직 비디오를 기획한다. 신혼의 박준형에겐 아빠의 여유를, 옥택연에 의해서는 100만원의 가치를 뛰어넘는 미국 횡단 여행이 등장했다. 이렇듯 <어느날 갑작 100만원>은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면면에 따라 이 시대 '소비'의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을 열어보인다. 



<엄마를 찾지마>와 <어느날 갑자기 100만원>은 돈 100만원이라는 금액을 넘어선 '삶의 돌파구'와 '가치'를 증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보면서 그 100만원이 자꾸 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느날 갑자기 100만원>의 첫 회 mc 김구라의 소회처럼 그 자리에는 우리 나라 굴지의 이른바 3대 기획사 sm, yg, jyp의 연예인들이 다 모여들었다. 그 100만원이 없어도 될 그들이 그 예전 연예인들이 돈 만원을 가지고 '행복'을 제공하듯, 2017년 새로운 돈의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바로 그러던 날 광화문에서 알바 노조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조들은 새 대통령이 2020년까지 약속했던 시급 만원의 시급한 실행을 요구했다. 그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2020년까지 여전히 '사람다운 삶'을 포기하란 말입니까! 2017년 알바 시급은 6470원이다. 하루 8시간 한달은 쉬지 않고 일해도 160만원 정도를 손에 쥐는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서 돈 100만원은 무겁고도 헐하다. 그런데 그 무겁고도 헐한 돈의 반도 넘는 금액이 오가는 예능을 보면서 야릇한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래도 격무에 시달리는 엄마들이라면 '보상'의 의미라도 있다. 하지만 굳이 그 돈이 없어도 될 연예인들이 돈 100만원을 가지고 이리저리 '노니는' 모습은 마치 한 끼를 편의점에서 때우며 흥청망청 '먹방'을 보는 기분과 흡사하다. 물론 이 프로그램들이 굳이 100만원을 내세워서 그렇지 예능 프로그램 한 회의 제작비가 어마무시하다는 건 굳이 깨놓고 말하지 않아도 안다. 철거된 <윤식당>을 하룻밤 사이에 복원하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갔겠는가. 예능에서 집도 지어준다는 세상에, 어쩌먼 발걸기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쩐지 그들이 연예인이 아니라, 취업에 지친 수험생이나, 알바에 지친 청년들, 거리의 노숙자였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뜬금없이 든다. 그들이라면 저 100만워이 진짜 '여유'가 될텐데. 노파심이라도 어쩔 수 없다. 한 사회에서 이리도 돈 100만원의 가치가 다르다. 
by meditator 2017. 5. 1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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