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리언;커버넌트>에 이어 2위를 수성하고 있는 <보안관>은 무난히 100만 고지를 넘으며 순항하고 있는 중이다. (5월 3일 영진위 기준 1,176,647명) 그런데 예의 '사나이 픽쳐스'의 작품답게 '사나이'들의 '거친' 이야기를 펼쳐보이고 있는 이 영화의 제목은 조금은 생뚱맞게도 그 서부 영화에서 등장했던 '보안관'이다. 고개를 갸웃해 보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보안관'이란 제목만큼 이 영화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데 수긍이 가고야 만다. 그렇듯 영화< 보안관>은 부산 기장을 배경으로 서부 영화의 보안관처럼 마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왕년의 형사 대호(이성민 분)의 활약상을 그린다.  




2017년 부산 기장 버전의 서부 영화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주윤발이 이쑤시개를 씹어 먹으며 등장하는 홍콩 느와르 영화가 시선을 잡고, 그 영화의 장면, 장면과 대사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는 대호란 '아재'가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 속 영웅과 달리, 용감하게 동료 형사와 함께 마약 사범을 잡으러 쳐들어간 모텔에서 그만 그는 마약 사범을 눈앞에서 놓치는 건 물론, 동료 형사조차 잃고, 결국 형사직에서 물러나고야 만다. 그로부터 3년 그는 형사라는 법적 신분 대신 기장 마을 '수호자'로 동네를 누빈다. 그런 그의 앞에 바로 그 3년전 마약 현장에 있었지만 초범이라는 이유로 대호가 도와줬던 종진(조진웅 분)이 마을에 비치 타운을 세우겠다며 화려하게 입성한다. 

영화는 서부 영화의 공식를 그대로 답습힌다. 마을에서 신망을 받던 보안관, 하지만 마을에 새로운 실력자로 등장한 악의 무리 앞에 그는 무기력하다. 그러나 '보안관'이라는 직업 의식에 철저한 그는 모두의 외면을 받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자신을 내던져 악을 소탕한다. 클린트이스트우드, 존 웨인 등등 정의로운 보안관이 등장했던 그 예전 서부 영화들 모두 큰 범주에서 이 '공식'을 벗어나지 않았고, 제목부터 <보안관>인 이 영화 역시 그 공식을 따라간다. 그러기에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대호가 등장한 그 순간부터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는 대부분의 관객이 눈치를 챈다. 

하지만 그 뻔한 구성의 <보안관>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그 흔한 우리나라 아재들의 정서를 '비틀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자타공인 기장 마을 보안관처럼 살아가는 대호의 정서와 그를 둘러싼 이들의 분위기는 이른바 '우리가 남이가'이다. 정수기 사업을 하는 강곤이 음주 운전으로 면허가 정지되었다는 이야기들을 동네 이웃들에게 들었을 때 대호의 반응은 그래 내가 그 정도는 해결해 주지가 아니라,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에게 먼저 말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오지랖, 나아가 사명감처럼, 그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서를 기반으로 동네 모든 대소사의 중심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그를 형, 아우 하며 떠받드는 종화(김종수 분), 선철(조우진 분), 춘모(배정남 분) 역시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서를 기반하여 그에게 의지한다.

그런 그들의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더 끈끈해 보이는 '로컬 공동체' 앞에 기장 마을의 발전을 내세운 종진이라는 사업가가 등장한다. 처음에 '우리'가 아니라는 이유를 그의 등장을 배척하고 시샘하던 사람들, 하지만 종진이 자신 역시 기장 출신이라며 조기 축구 등의 로컬 커뮤니티를 포석으로 그의 풍부한 재력을 앞세워 다가서자 그 끈끈했던 관계가 하나둘씩 무기력해진다. 정수기와, 소파 등 그들의 먹고사니즘은 결국 대호 대신 종진을 마을의 대표로 뽑기에 이르른다. 



'우리가 남이가'보다 강한 '목구멍이 포도청'
'목구멍이 포도청' 앞에 '우리가 남이가'가 손바닥 뒤짚혀지듯 하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런 먹고사니즘을 앞세운 로컬 공동체의 변질, 혹은 붕괴에 대응한 대호의 캐릭터다. 그는 전형적인 '아재'로 등장하지만, 그 '아재'는 그의 동료들과 달리, 이미 3년 전에 그만둔 '한번 형사면 영원한 형사'라는 직업 의식으로 종진을 대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이 영화의 제목이 <보안관>인 이유이며, 그 지점에서 '사나이'들을 다룬 한국 영화에서 신선한 자신만의 포지션을 확보한다. 

그 옛날 전성기 서부 영화의 보안관들이 마을을 지키는 과정에서 때로는 자신의 가족과 소중한 것을 다 잃어버리면서도 자신의 직업적 사명감을 놓치지 않듯이, 대호는 이제는 거물 사업가가 되어 나타난 종진을 '한번 마약쟁이는 영원한 마약쟁이'라는 형사의 시선으로 대한다. 하지마 그런 대호의 의심은 지역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아재의 '시기'와 '질투'로 오해를 받다 못해 배척받기에 이른다. 처남 덕만(김성균 분)이 그를 돕지만 희순이 없었다면 그 역시 얼굴을 바꾼 동네 아재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란 예측하기는 힘들지 않다. 

영화는 이른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지역색이 끈끈하다는 지역의 사투리를 앞세운 지역 공동체를 배경으로 삼으며, 그 강한 지역 연고주의의 허상을 서사의 주요 동원으로 삼는다. 부를 앞세운 종진은 대호가 그랬듯이, 대호를 벤치마킹하며 동네 사람들의 인심을 얻어간다. 대호에게 형, 동생하며 격의없이 굴던 사람들은 이제 오히려 그런 종진을 의심하는 대호를 알고보면 '남'이라며 밀어내며 그 자리에 종진을 앉힌다. 이런 정황은 결국 그들이 지난 시간 대호에게 격의없이 호형호제한 이유 역시 종진과 다르지 않다는 역설적 이해를 하도록 만든다. 그토록 끈끈한 지역 공동체의 얄팍한 바닥을 영화는 절묘하게 극적 갈등의 요소로 활용한다. 

그런 억울하다 못해 결국 짐까지 싸야하는 상황에서 대호는 '프로패셔널한 직업 의식'을 놓지 못한다. 물론 그의 그 '프로패셔널함'에는 종진과 얽힌 동료의 죽음이라던가, 자신의 직업을 잃게 된 '구원'이 원인이 되지만, 영화는 예의 한국 영화들이 그런 '원한'에의 집착에 호소한 것과 달리, 집요한 마약반 형사로서의 본능적 직업 의식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하여 '우리가 남이가'를 등에 업은 지역 사업가와 이제 언제나 서부 영화에서 그래왔듯 '외톨이가 되어버린 보안관' 대호의 사생결단이 영화의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덕분에 영화는 사나이인 척하지만, 아재인 등장인물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들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그 끈끈한 지역 정서를 뒤집으며 한 마을 사람들 전부가 마약 사범이 될뻔한 사건으로 판을 키운다. 얄팍한 인간 군상은 결정적 장면에서 '마을 공동체'의 힘을 증명해 낸다. 그리고 그 얄팍한 '우리가 남이가'는 본래의 궤도를 회복한다. 하지만 영화 속 엔딩에서 그들이 다시 얼싸안으며 '우리가 남이 아님'을 확인하지만, 이미 서로는 안다. 그들을 감싸주었던 그 공동체라는 것이 그간 얼마나 자의적이었으며, 자기 필요에 의한 것이었던가를. 하지만, '사람사는게 다 그렇지'하며 '눈가리고 아웅'하듯 다시 ' 속물'을 접어둔 채 호형호제'의 관계로 돌아간다. 그렇게 여전히 '지체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지역 정서의 속살을 보여준다. 여전히 전근대적인 척하지만, 결국 그들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고, 그 자본주의적 사회에서 정의는 '프로패셔널리즘'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며 새 시대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를 시작하는 순간 이미 이 영화가 어떤 결말에 이르를 지 예상 가능했던 <보안관>, 하지만 박스 오피스 2위의 저력은 바로 그 뻔한 이야기를 아무려 간 건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역 공동체를 배경으로 한 '보안관' 대호의 활동담이다. 그리고 그걸 채워간 건, 그들의 면면을 보기 위해서라도 어쩐지 속편이 궁굼해지는 대호및 동네 아재들의 생생한 캐릭터이다. 
by meditator 2017. 5. 1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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