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의 계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 엔딩'이 '벚꽃 깡패'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 화사한 봄 벚꽃을 맞이하러 여행을 떠난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봄꽃을 맞이하러 찾아가는 대표적 명소, 남산. 남산을 찾은 연인이라면 빠짐없이 들르는 곳이 바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현빈과 김선아가 사랑의 실랑이를 벌였던 이제는 이름조차 '삼순이 계단'이 된 곳이다. 그런데 그 영어 번역조차 어설픈 이 삼순이 계단이 사실은 우리 민족에게는 '치욕'의 장소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국사 교과서가 논란이 되는 국사 시간에 삼순이 계단에 숨겨진 역사까지 가르쳐 줄리가 만무하다. 우리가 숨쉬며 살아가는 공간, 그 속에 숨겨진 역사적 사연, 하지만 교육에서 다루어 지지 않는 그 숨겨진 역사를 '방송'이 대신 나섰다. 바로 지난 11월 부터 매주 화요일 7시 40분 찾아오는 <동네의 사생활>과 지난 12월 종영한 <역사 저널 그날>에 뒤를 이어 찾아온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 기행 그곳>이다. 




골목과 거리에서 만난 역사 인문학, <동네의 사생활>
우리 동네에서 만나는 인문학을 모토로 내세운 <동네의 사생활>은 해방촌, 제주, 원효로, 대학로 등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토크쇼의 대상이 된다. 우리가 걸어가니던 골목, 이제는 폐업을 한 구멍 가게 들이 '역사'를 만나, '현장'으로 탈바꿈한다. 배우 정진영의 사회로, 김풍, 주호민, 다니엘, 딘딘 등에 역사가 서경덕이 합류하여, '인문학'으로 우리 동네의 품격을 달리 한다. 

4월 5일 방영된 17회, 이제 막 벚꽃이 만개하기 시작한 남산을 찾았다. 관광객과 상춘의 연인들이 즐겨찾는 남산. 연인들이 사랑의 실랑이를 벌이는 삼순이 계단은 조선의 국신당을 허물고 일본이 13만평의 조선 신궁으로 올라가기 위해 성역화한 참배길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어설프게 삼순이 계단이라 표시된 이 계단 주변 어느 곳에서 일본이 조선에 '영역 표시'를 하기 위해 만들었던 신당의 입구였다는 사실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일본의 치욕스런 신당보다 더 아픈 남산의 역사가 있다. 바로 이제는 서울 유스호스텔로 변신한 1994년부터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었던 중앙 정보부 남산 본관이 그곳이다. 유신 시절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고문을 받다 숨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조를 당했던 곳. 본관을 비롯하여 지하 벙커라 불리던 지하 고문실 등 40여개의 건물이 오롯이 남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프로그램은 밝힌다. 

프로그램의 행보는 중앙정보부 남산 본관에서 끝나지 않는다. 끝을 알 수 없는 나선형 계단을 지나, 취조를 받던 사람이 서로를 볼 수 없게 지그재그로 흡음판이 달린 방을 만들고, 심지어 자살을 할 수 없게 창문조차 작게 만들었던, 그래서 박정희라는 절대 권력, 이어 군부 독재를 지켜내기 위해 숱한 젊은이들을 고문하고 박종철 열사의 목숨을 거두었던 남영동 대공 분실이 이날 여행의 종착지다. 



이렇게 프로그램은 국정이 아닌 검인정 교과서에서도 얇게 다루고 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숨죽인 역사 현장을 '동네 답사'의 이름을 빌어 재현한다. 덕분에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 선언을 한 33인의 사실적 모습과, 그와 대비되는 이회영 일가의 헌신적인 생애가 드러난다. 아름다운 벚꽃에 숨겨진 군산의 모습과 이제는 역사가 된 학림 다방의 추억도 되살려 본다. 때로는 기억해야 할 역사, 때로는 잊지말아야 할 진실이 동네의 골목과 거리를 통해 살아온다. 

휘황한 중국 문명의 불빛 속에서 사라져 가는 임시 정부을 찾아서, <역사 기행 그곳>
지난 해 신돈 편을 예고까지 한 후 출연자의 신상 문제와 관련하여 본의 아니게 휴업을 하게 된 <역사 저널 그날>을 대신하여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찾았던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 기행 그곳>, 이 프로그램이 <역사 저널 그날>의 시즌2 대신 정규 편성되어 3월 25일부터 매주 토요일 8시 10분에 방영되기 시작하였다. 

정규 편성 첫 번째 기획은 '고난의 길 임시 정부 루트', 임시정부의 여정을 따라간 기행이다. 이 기행의 의의는 3회차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마지막 편 최태성 강사와 이윤석씨가 오마주한 영화 <암살>의 한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김구와 김원봉, 해방을 맞이하여 죽은 동지들을 기리며 술 잔을 나눈다. 영화 속 김원봉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안중근, 윤봉길 등의 알려진 열사와 의사의 이름을 나열하는 데서 그친다. 하지만 <역사 저널 그곳>에서 김원봉으로 분한 이윤석은 거기에 더한다. 충칭의 임시 정부를 홀로 지키셨던, 그리고 그곳에서 고향에 함께 돌아가지 못한 채 별표로 남으신, 그리고 다시 무연고 무덤으로 이젠 흔적조차 찾을 길 없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임시정부'의 여정을 함께 하셨던 분들, 그 분들을 기린다. 

그리고 바로 첫 번째 <역사 기행 그곳>은 우리 역사 교과서가 미처 담지 못한 임시 정부의 여정을 때론 사(私)사로운 여행처럼, 하지만 사(史)적인 맥락을 놓치지 않은 채 홍커우 공원이 있는 상해를 시작으로 임시정부 고난의 시기였던 항저우, 치장을 경유하여 해방을 맞이한 충징까지를 함께 한다. 



두 사람의 여정은 곧 백범 김구 선생의 여정이 되고, 그 여정 속에서 백범 김구 선생처럼 김원봉을 만나고, 윤봉길을 만나게 된다. 우리의 역사 책은 기록하지 않은 임시 정부 서기이자 흥사단 단원이셨던 김복형 선생님과 같은 독립 운동가를 알게 되는 시간이 되고, 어쩌면 이 방송 프로그램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충칭 임시 정부와 같은 사라질, 그리고 사라진 독립 운동사의 흔적을 만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화려한 중국의 발전 속에서 근근히 버텨가는, 혹은 무연고 처리가 되는 독립 운동의 흔적들이, 곧 우리가 '임시정부'를 '역사' 속에서 취급하고 있는 역증처럼 여운이 남는 시간이 된다. 

'답사'는 동호회가 만들어지는 등, 세간의 취미 생활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미 '여행'은 tv 프로그램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답사'와 '여행'이 만난다면? 이 두 주제를 가장 시의적절하게 엮은 프로그램들이 바로 <동네의 사생활>과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 기행 그곳>이다. 4지 선다와 암기 과목이라는 역사 교육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재미와 교훈의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애썼고, 학교에서 이미 역사를 배웠던 사람에게도 새로운 깨달음과 반성의 시간이 된다. 덕분에 흩날리는 벚꽃 속에, 혹은 화려한 중국 문명의 불빛 속에 숨겨진 우리 역사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by meditator 2017. 4. 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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