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전 세계 하늘에 12개의 우주 비행체, 쉘이 나타났다. 혼비백산한 지구인들, 18시간마다 열리는 쉘의 문을 통해 그들과 '접선'한 지구인들은 그들이 온 이유를 알아내려 한다. 하지만 도무지 그들이 보내온 외계의 '신호'를 해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언어학자'인 루이스 뱅크스(에이미 아담스 분)가 차출되는데.


2월 2일 개봉한 <컨택트>는 마치 영화 속 외계인들의 정체를 가려주는 뿌연 안개와도 같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오히려 외계의 실체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세상조차 뿌연 안개 속으로 빨려드는 듯하다. 하지만 그 모호한 '안개' 속을 헤치고 나아가다 보면, 저 멀리서 두 곳의 등대가 반짝인다. 



첫 번째; '언어' 소통의 도구?
<컨텍트> 속 '셀'을 타고 온 외계인들은 마치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그 어떤 것'(everything else)와도 같다. 다수의 언어학자들이 그들이 지구에 온 이유를 탐색하기 위해 '소통'하려 하지만, 지구와 다른 '언어' 체계를 가진 그들과 늘 '불통'의 결론에 도달하고야 만다. 지구 위의 인간들이 '언어'라는 도구로 '소통'을 체계화했기에, 당연히 지구인들은 자신이 했던, 아니 자신들이 '약속'했던 바의 방식으로 다시 '외계인'들과 소통에 이르고자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란 인간들 사이의 '약속'이라 했다. 하지만 그 스스로 훗날 그 '약속' 조차도 규명되지 않는 행간을 지녔다 '회의'하고야 만다. 그 '인간'의 약속된 언어, 12개의 셀의 등장한 지구 곳곳의 나라는 그들이 이뤄낸 문명의 성과로, 미디어와 과학 문명의 도움을 받아, 외계인의 도래, 그 이유를 해석하고자 한다. 

<컨택트>의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지금까지 클리셰가 된 외계인들은 어떤가. 비행접시라 하는 그 외계의 물체를 타고 인간 세상의 상공에 느닷없이 등장하여, 자신들이 가진 무기를 마구 쏘아대며 '침공'하는 식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 비행접시가 모로 선 모양부터, '왜곡'된 형상으로 혼돈을 준 셀은 셀의 입구를 18시간마다 기꺼이 개방하며 '소통'을 도모한다. 

하지만 '침공'하지 않는 외계인들에 대해 지구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외계의 셀이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인간 세상으로 '아노미'에 빠졌고, '폭동'과 '파괴'가 범람하며, 그 통제되지 않는 위기가 오히려 '외계인'에 대한 무력적 대응을 '촉구'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정말 '언어'가 소통이 될까? 루이스를 찾아온 군 관계자가 언어학자인 그녀가 도움을 준 미군의 작전은 '소통'대신, 전멸을 가져왔다. 마찬가지로, 영화는 외계인과의 '소통'을 소란스럽게 다루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건 '언어'가 소통이 되지만, 불통인 인간의 관계이다. 외계인이 그 어떤 '침공'의 징후를 보이지 않지만, 이미 '알량한' 인간 사회는 통제 불능이요, '소통'을 도모하기 보다는 '무기'를 앞세운(물론 그 '무기'를 앞세운 측이 군인이 지배하는 중국이요, 러시아, 쿠바이라는 빛바랜 반공주의적 선입견이 아쉽지만, 심지어 여주인공이 전해준 아내의 유언 한 마디에 결정이 뒤집히는 일인 독재 사회의 설정이라니!) 진압 작전은 '외계'라는 '이방'을 빗댄 현실 인간 세상의 아이러니한 상징이다. 마치 우리 안에 던져진 이물질에 대해 철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동물원의 원숭이들처럼, 류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얼마나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편협하고, 배타적인 존재인가를 <컨택트>를 통해 역설적으로 표명한다. 그러기에 영화 <컨택트>은 외계와의 조우를 통한 '인간'의 투영이다. 

두 번째; 우리가 혹은 내가 존재하는 곳은 어디인가?
어쩌면 이 문제를 위해서 먼저 '양자 물리학과 평행 우주론' 등의 물리학 이론을 접하며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외계인이 주인공인 영국 드라마 <닥터 후>를 보면 차원이 겹쳐지면,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는데 현재의 세상에서 과거의 세상으로 이동하는 설정이 등장한다. 3차원의 세계를 살아온 우리에게 시간은 일련의 서열이지만, 그것이 양자 물리학 세계로 들어가면 차원이 확장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서로 겹쳐지면, 마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과거'가 있듯이 그렇게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바로 이 지점에 대한 열린 의식을 가지고, 영화를 보면 안갯 속의 등대가 보인다. 영화가 시작되면 루이스와 딸의 일련의 시간적 인연이 풀어내진다. 그를 통해 관객들은 그녀에게 사랑스러운 딸이 있었으며, 하지만 그 사랑스러운 딸과의 인연이 그리 길지 않았음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드는 생각, 아빠는? 그 스멀스멀 솟은 의심인지, 질문인지에 대한 답은 영화 마지막에 설명된다. 

과연 외계의 등장과 함께 혼돈스러운 인간 세상과, 류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며 동시에 진행되는 루이스의 병적인 혼돈, 고통은 영화 말미에서야, 영화 초반 보여준 스포의 진실을 드러낸다. 과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루이스는 언어학자로서 18시간마다 셀로 들어간다. 혹시라도 있을 지도 모를 외계와의 조우를 우려한 '인간 세상' 방식의 멸균 상태로, 갖가지 보호복으로 중무장한 그녀, 하지만 외계인과의 만남 과정에서 그녀는 '소통'은 그저 '언어'를 학습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고 보호복을 벗어제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녀와 외계인의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그 '소통'은 무엇이었을까? 훗날 중국의 장군이 그녀를 보러왔다고 했던 그 리셉션에 걸린 외계의 언어, 그것이었을까? 지구인들은 그녀가 해독한 외계의 언어에서 '무기를 주러 왔다'는 말에 당장 '전투 태세'를 갖춘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 '무기'의 다른 의미가 '선물'임을 재해석한다. '무기'로도, '선물'로도 해석된 마치 산타 할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선물 같던 외계의 방문, 그 방문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건 '루이스'고 그건 바로 그녀의 운명이었다. 그러기에 그건 '선물'이자, '무기'가 되는 것, 하지만, 그녀는 고통스러운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외계와의 소통에 자신을 기꺼이 열었듯, 그 외계가 준 '운명'의 선물에 역시나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자신을 연다. 



하지만 루이스 개인이 받은 '선물'과 앞서 인간 세상의 한계를 보여준 '소통'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결국 그 모든 것이 가르키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인식이라는 풀 안에서 규정지어놓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열린 마음이다. 혹시나 언젠가 영화 속 외계인들처럼, 그들이 정말 선물을 들고 소통하기를 바라고 왔을 때, 아니 먼 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 세계 안의 이방인들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을 둘러싼, 심지어 당연한 흐름인 시간에 대해조차, 예단과 편견을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소통'과 '사랑'을 향한 첫 걸음이라고 깜빡깜빡 안갯속 등대불은 말한다. 

by meditator 2017. 2. 10. 00:12

'닭장 속에는 고양이, 야옹야옹' 그것으로 족했다. 박정우(지성 분)가 기억을 헤집어 어렵사리 찾아낸 메모리칩에도 불구하고 강준혁(오창석 분)이 내놓은 박정우의 자백 동영상으로 '사형' 판결을 뒤엎을 수 없었던 <피고인>. 6회를 달려오며 되풀이되는 박정우의 수난사는 이번 회차에도 어김없이 피해갈 수 없었다. 결국 그 동영상으로 자신이 아내를 죽였음을 받아들인 박정우. 그가 숨겨온 검은 비닐 봉지로 교도소 방 철장에 올가미를 만들고 거기에 자신의 목을 넣으려 발돋움을 할 때, 들려온 성규(김민석 분)의 나즈막한 목소리. '형이 왜 죽어요? 형이 한 것도 아닌데, 내가 한 건데' 그리고 이어진 정우만이 아는 고양이를 사달라고 조르던 딸 하연이의 노래. 죽음으로 몰린 정우에게 비친 서광이요, 도돌이표같은 정우의 수난사에 지친 시청자에게 주어진 1주일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토네이도처럼 확장되어 가는 사건, 그리고 드러나는 진실
첫 회 거대 로펌의 회유에도 의연했던 그래서 재벌가를 향해 저돌적으로 '수사'를 지휘했던 검사로서의 활약이 무색하게, 사형 확정 판결을 기다리는 박정우의 수난은 끝이 없다. 제 아무리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 주장해 보아도, 마치 '리셋'되는 '루프'처럼 하은의 생일 날로 되돌아 가버리고 마는 그의 기억은 '설상가상'으로 '검사' 박정우에게 또 다른 '함정'이다. 스스로도 자신을 확신할 수 조차 없는 지워진 기억, 그를 옭죄어 오는 악재의 연속. <피고인>은 재심을 앞둔 기억상실증 검사 박정우의 수난사로 방영 시간의 많은 부분을 채워간다. 

이른바 호청자들 사이에서 '고구마'로 지칭되는 이런 주인공의 수난사, 그러면 채널이 돌아갈만도 하건만, 1회 14.5%를 시작으로 5회 18.6%(닐슨 코리아)까지 꾸준한 상승세다. 김상중의 명연기와 탄탄한 스토리로 탄력을 받기 시작한 2위 <역적>과의 격차도 생각보다 크다. (5회 10.5% 닐슨 코리아) 과연 '사이다'도 없이 꾸역꾸역 '고구마'만 먹는데도 호청자들의 증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물론 <피고인> 방영 시간의 대부분은 박정우의 수난사로 채워진다. 하지만, 그저 수난만은 아니다. 1회였다면 아내를 죽인 혐의에 주기적 기억 상실을 겪는 박정우와 그런 그와 대립각을 보이는 형까지 죽인 사이코패스 재벌 차민호(엄기준 분)에 대한 소개, 2회는 그런 수난사에 이어 마지막 10분 캐리어를 차에 실은 범인의 얼굴, 즉 박정우를 드러내며 시청자를 그에 대한 의심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다. 

분명 정의로운 검사였는데, 캐리어를 싣고 마스크를 벗어 얼굴을 드러낸 살인 사건의 용의자, 보는 사람조차도 그에 대한 의심을 무럭무럭 키워가는 과정에, 4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또 다른 용의자로 강준혁을 등장시킨다. 박정우와 함께 그의 아내 윤지수(손여은 분)를 짝사랑했던 강준혁, 이제까지 우군인 듯했던 그의 등장으로 여전한 박정우의 수난사에 대한 각도가 달라진다. 이렇듯 드라마는 박정우의 수난사를 줄기로 도돌이표를 그리는 듯 하지만, 그 도돌이표는 새로운 용의자를 등장시키며 점차 확장되어 가며 사건의 본질을 향해 간다. 마치 토네이도처럼. 이제 조금씩 커져가는 사건의 동심원은 6회 드디어 성규가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르며, 두텁게 드리웠던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이렇게 드라마는 '고구마'인 듯 하지만, 느린 듯하지만, 차곡차곡 그날의 진실을 향해 간다. 물론, 그 날의 진실 저편에 차민호라는 살인마가 존재함은 '노골적인 스포'다. 하지만 그의 위력은 압도적이고, 그에 반해 박정우는 너무도 미약하다. 심지어, 초반 가장 친한 벗이던 강준혁이 알고보니 그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 인물이었고, 이제 6회 마지막 그에게 가장 친절했던 감방 동기가 자신이 진범이라 하듯, 그가 진실에 다가가려 하면 할 수록 박정우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그의 조력자들은 차민호에 의해 죽어간다. 이 아득한 상황 속에서도 '진실'의 빛은 그럼에도 <피고인>을 다시 봐야할 가장 큰 '유인'이 된다. 

'가족'으로 얽히고 설킨 인간 군상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일반적인 장르물과 달리, <피고인>은 이젠 sbs 장르물이라고도 명명할만한 '특징'을 명확하게 드러내며 시청자들을 흡인한다. 바로 '가족'이란 '주제이다. 

<피고인>은 강직한 검사 박정우와 사이코패스 재벌 차민호의 대립 구도를 가져가지만, 그 구도를 재벌가의 비리 척결이란 일반적 구조 대신, 정의의 역할을 맡은 박정우를 '살인범'으로 몰아 감옥에 가두는 극단적 장치를 등장시킨다. 생소한 장치지만 이미 우리나라에서 한때 인기를 끌었던 <프리즌 브레이크>를 통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장치는 신선한 서사로 시청자를 솔깃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솔깃한 장치'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건, 바로 '아내를 죽이고 아이를 유기했다는' 극단의 범죄이다. 다른 것도 아닌 가장 정의로웠던 검사가 가장 파렴치한으로 둔갑한 이 사정은 '가족'이란 문제에 예민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더할 나위없는 요소이다. 하지만 '가족'의 관련은 박정우만이 아니다. 

형을 죽인 차민호,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내에서 그의 처지는 분명 그가 나쁜 놈임에도 '측은지심'까지 끌어오르게 만들 정도로 안쓰럽다. 이렇게 '가족'은 <피고인>의 곳곳에서 '사연'을 피어오르게 만든다. 자신의 딸을 죽였다는 혐의에도 불구하고 매달 박정우에게 10만원을 차입금으로 넣는 장모와, 조카를 찾아 교도관도 마다하지 않는 윤태수(강성민 분)의 애증의 관계도 '가족'이다. 강준혁의 모호했던 하지만 알고보니 '배신'인 처신의 이면에 드러난 또 다른 애증의 가족 관계나, 몰래 찾아보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지닌 국선 변호사 서은혜의 가족도 빠져서는 섭섭한 '혈연'의 늪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재벌가의 도덕적 아노미라는 씨실에, '가족'으로 얽히고 설킨 범죄 사건을 날실로 엵어가며 신선하면서도 친근한 장르물을 만들어 간다. 박정우의 사랑과 부정이, 차민호와 강준혁의 애증이, 그리고 서은혜의 트라우마가 <피고인>의 숨겨진 흡인 요소이다. 

by meditator 2017. 2. 8. 05:58

자괴감'을 운운하며 전국민을 '자괴감'에 빠뜨렸던 당사자는 아직도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다. 덕분에 엄동설한을 보내고 입춘을 맞이하는 광장의 촛불은 여전히 활활 타오른다. 그러나 김부겸 의원은 '쉽지 않은 싸움'이라 주장한다. 여전히 지방으로 내려가면 정치 활동을 하면 안되는 저 청와대 점거인에 대해 '불쌍하다'는 인식이 저변에 널리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 '강고한' 온정, 덕분에 선거 때마다 그 사람을 '선거의 여왕'으로 만들었던 저 '괴력'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sbs스페셜은 2월 5일 과연 우리가 그간 '선거'를 통해 뽑은 '대통령'의 선택이 어떤 것이었나, 그 실체를 밝히고자 한다.




   
       “정치인은 어떻게 보면 연예인하고 같은 과예요. 
        그러니까 이미지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지.”
        -한때 이명박의 좌청룡우백호 정두언- 


연예인과 같이 이미지만 그럴듯하면 대통령이 가능?
1948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건국'과 '정부 수립'의 그 '딜레마'의 원년,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하지만, 그 '초대' 대통령이래, 지금까지 18대 11명의 대통령들의 대부분이 '불명예'스러운 인물로 남았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로 시작되는 대통령의 사과는 너무 익숙해서 이젠 '악어의 눈물'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이렇게 '대통령의 사과'가 대통령 취임 시기의 관례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도대체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어떻게 속았길래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황상민 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침을 가한다. '내가 왜 속았는지 정확히 알지 않으면 다음에 또 속게 돼있다'고. 이에 다큐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기초로 하여, 또 속지 않을 묘책을 고심한다.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이구동성은 한결 같다. 대통령은 '연예인'과 같은 과다. '이미지'라는 것이다. 공약도, 정책도 아닌. 대통령 선거 전문가는 말한다. 사람들은 그저 이미 자기 맘 속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뽑을 뿐이라고. 공약, 정책, 그거 하룻밤이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연예인같은 이미지의 대통령,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혹자는 말한다. 대한민국의 일부는 여전히 '왕조' 국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이씨 왕조'의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왕처럼 뽑힌 이승만 대통령, 그리고 '후진형 독재'를 자신들을 잘 살게 해주었던 왕조로 떠받들던 사람들, 노무현 대통령처럼 친근한 이미지의 대통령을 받아들일 자세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내가 다 잘 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하는 '장군'과 같은 이미지의 이명박 대통령을 뽑고, 그도 부족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후광에 기댄 독재자의 딸을 눈물겹게 대통령의 자리에 모셨다. 

모르는 질문이 들어왔을 때 좀 엉뚱하지만 다른 식으로 넘어가는 연습, 
그게 제일 주안점이죠.” 
-임현규 전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 정책홍보특보-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마련된 후보자 검증의 시간 
이런 선택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냉정하게 말한다. 오늘날 국민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잘못된 선택때문에 인간의 질병(메르스)도, 동물의 질병(AI)도, 재난이나 참사(용산 참사, 세월호 등)도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그러니 자신이 그 엄청난 대가를 다시 치루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의 한국 선거 시스템은 '이미지'의 외피를 걷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인터뷰 말미, '언론은 뭐했냐?'며 냉정하게 되물은 유시민 작가의 질문처럼, 그 '이미지'에 언론은 나팔수 역할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기간 양산된 종편, 정권의 입맛에 맞게 개악된 이른바 공영 언론들은 노무현 선거는 물론, 이명박 선거 때보다도 거의 반에 불과한 선거 관련 방송을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선거 관련 방송의 대부분이 '이미지네이션'에 부합하는 후보자 동정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방송 환경에서 '이미지'의 척결은 커녕, '이미지'의 확산만이 가능할 뿐이다. 

미 대선의 경우, 대통령 선거 자체가 1년 반정도가 걸리는 대장정이기에, 그 과정에서 검증에서 탈락한 후보는 자체적으로 '사퇴'라는 경우가 등장한다. 또한 장시간에 걸쳐 되풀이 되는 후보 토론 과정은 자신이 선택할 후보에 대해 충분히 알고자 하면 알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거기에 토론 과정에서 제시된 내용에 대한 '언론의 팩트체크'가 뒤따른다. 물론 이런 다큐의 내용조차 '이미지네이션'의 끝판왕이라 일컬어지는 미 대선에 대한 '오독'일 수 있다. 하지만, '토론'자체가 봉쇄되어, 앵무새처럼 외워 온 대답만으로도 '능력있는' 대통령처럼 보여질 수 있는 현재의 선거 제도 자체에서는 '미국'만큼이라도 하는 것이 '이상'이 되는 것이다. 



결국 2월 5일의 다큐는 프로그램 말미 바로 이어진 대통령 후보에 대한 <국민 면접>로 이어진다. 다큐는 그나마 우리의 현실에서 '이미지'로 오독된 대통령을 다시 뽑는 어리석은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끝장 토론'을 제시한다. 기존의 선관위의 준비된 대답만을 읽어내리는 지극히 부족한 '토론' 양식 대신, 후보자의 면면을 다 드러낼 수 있는 충분한 토론 시간만이 현재의 이미지 정치를 탈피할 최소한의 방법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다큐의 제안에 '선관위'는 난색을 표한다. 아마도 후보 측에서 저어할 꺼라고. 다큐가 찾아간 대선 주자들. 기꺼이 토론에 임하겠다 하고. sbs는 자신이 준비한 카드 <국민 면접>을 꺼내드는 것으로 <대통령의 탄생>은 마무리된다. 

 긴 서론 끝에 등장한 <국민 면접>, 하지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문재인 후보가 거절한 것으로 인해 화제가 되었던 kbs의 <대선 주자에게 듣는다>가 이미 테이프를 끊은 바 있다. 그 뒤를 이어 sbs가 끝장 토론이 가능치 않다면 압박 면접이라도 하겠다며 국민들이 직접 보내온 질문을 바탕으로 5명의 면접관들이 대선 주자들을 탈탈 털어보겠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타 방송사들에서도 이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뒤를 이을 듯하다. '선관위'가 하지 못한다면, 이번엔 '방송사'만이라도 제대로 '검증'을 하여, '말은 많지 않지만 결정적 한 마디를 잘 해서, 혹은 웃음으로 잘 때워서' 대통령이 되는 불상사는 막아야 할 것이다.  

by meditator 2017. 2. 6. 12:53

황경일(이주승 분) 일당에게 납치된 강권주, 그 강권주를 구하기 위해 겨울 저수지 숲을 헤치고 조금씩 다가가는 무진혁(장혁 분),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다음 시간에'라는 무지막지한 협박을 남기며 사라진 4회의 <보이스>.  매회 범인과의 일전을 눈 앞에 둔 순간 끝나버리는 드라마에 '내가 범인도 못잡고, 아니 안잡고 끝내버리는 이런 드라마를 보려고 '닥본사'를 했나'하는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마 <보이스>를 시청했던 대다수 시청자들은 다음 시간 '또 오늘도 그러면 안본다!'이런 부질없는 협박을 날리며 리모컨을 <보이스>에 고정하고야 만다. 무엇때문에?




강권주의 납치, 김홍선 표 연출의 전화위복
아마도 매회 범인을 코 앞에 놔두고 시청자를 회롱하듯이 끝내버리는 이 야속한 드라마에도 불구하고 다음 회를 기약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범인'이 누군인가? 혹은 '범임'이 잡히는가라는 '범죄 스릴러' 장르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때문일 듯하다. 하지만 그런 기본 요건에 덧붙여 5%를 가뿐히 넘긴 <보이스>(닐슨 유료 플랫폼 가구 기준 평균 5.5%)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박진감넘치는 장르물에 독보적인 김홍선 감독의 연출력에 있지 않을까? 첫 회 맨 발로 쫓기던 장혁의 아내와 그 무기력한 아내를 쫓던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아내가 한숨을 돌리던 그 순간 울리는 벨소리로 결국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고 마는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대립각을 김홍선 감독은 대중적으로 장르물을 각인한 <시그널>의 속편인 양 재현한다. 

김은희 작가와 김원석 피디의 <시그널>이 그런 쫓고 쫓기는 범죄 현장을 둘러싼 드라마틱한 인물들간의 얽힘과 그 배경이 되는 사회악에 집중한다면, 김홍선 표 장르물의 방점은 바로 그 '쫓고 쫓기는 자의 숨막히는 추격전'에 찍혀있다. 첫 회 결국 희생자가 되고 만 무진혁의 아내의 도망씬에 이어, 바로 뒤이어 그 시간 형사 반장으로 큰 수확을 거둔 무진혁의 범죄 현장 추격씬은 바로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김홍선 표 범죄 스릴러가 112 신고 센터를 중심으로 한 범죄 골든 타임을 내걸고 등장한 것은 수학 특기자가 '수학 경시 대회'에 나간 모양새라고나 할까? 하지만, 뜻밖의 복병이 있었다. 바로 여주인공인 112 신고 센터장이라는 내근직의 한계였다. 어릴 적 사고로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청취해내는 탁월한 '보이스 프로파일러'의 능력을 지녔지만, 바로 그 능력치가 김홍선 표 스릴러의 박진감에는 딜레마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 딜레마를 <보이스>는 4,5회 강권주 팀장의 납치 사건을 통해 갇혀있는 보이스 프로파일러의 영향력을 확장시킨다. 

 

무리한 1인 행동이라 했지만 신고 센터 직원의 뜻밖의 친절한 안내로 자신이 들통난 황경일의 도발로 안타깝게도 골든 타임을 지휘해야 할 강권주는 납치를 당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드라마는 늘 신고 센터 안에서 전화선을 통해 그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강권주의 능력을 밖으로 뻗어나가도록 한다. 자신을 구하러 온 무진혁의 발소리부터 폐교에서 무진혁과 함께, 그리고 심지어 무진혁보다 먼저 그녀의 능력를 활용해야 피해자를 구해내는 강권주의 활약상은 그간 우려했던 112 신고 센터 골든 타임 팀의 활약에 기대를 더하게 한다. 

이렇게 밖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 보이스 프로파일러 강권주와 함께, 김홍선 표 연출은 숨막히는 긴장감의 연속으로 드라마를 몰아간다. 스산한 갈대밭의 추격씬, 그리고 '호러물' 못지 않은 공포심을 자아내는 공간감, 그리고 암흑의 페교 교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소리 추격은 <보이스>라는 드라마의 매력을 한껏 살려낸다. 

<시그널>의 차수현과는 또 다른 매력의 강권주 
이렇게 <보이스>가 자신의 장르적 매력을 살려가는 것과 더불어 커져가는 건 강권주 팀장의 캐릭터다. 이미 김혜수가 <시그널>을 통해 장기미제 전담팀 팀장으로 그리고 이재한 형사의 '쩜오' 후배로 양수겹장의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해석해 내며 늘 범죄 수사물에서 피해자이거나, 주변 보조자로서의 역할에 그쳤던 여성 캐릭터의 발전에 한 획을 그었다. 거기에 이제 <보이스>의 이하나에 의해 풀어지고 있는 강권주 팀장은 또 다른 영역을 펼쳐낸다. 112 신고 센터의 초짜 직원 시절 벌어진 연쇄 살인으로 아버지까지 잃은 강권주, 하지만 그녀에게는 어릴 적 사고로 인해 얻어진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은 <보이스>란 드라마의 중요한 동력이다. 그런 능력치 외에, 첫 회부터 요동치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피해자를 인도해가던 그녀의 캐릭터는 이제 4,5회 현장을 통해 활동의 폭을 넓히며 생동감있게 살아난다. 

<시그널>조차 여성 캐릭터의 '감성'에 강조를 둔 것과 달리, <보이스>의 강권주는 오히려 상황에 휘둘리는 남성 캐릭터들과 달리, 가장 이성적으로 사건에 접근하는 존재로 지금까지의 문화 컨텐츠 속의 여성들과는 다른 면모을 보인다. 황경일이 그녀를 묻으려 하는 순간에도 자신대신 은별을 살려달라 말하는 책임감, 그리고 폐교를 폭파하겠다며 마지막 발악을 하는 황경일 앞에서도 프로파일러로서의 분석력을 놓치지 않는 강권주는 요즘 '걸 크러쉬'라는 유행어에 가둬두기에도 아쉬울 만큼 신선한 여성상이다.

강권주만이 아니다. 황경일의 도발 앞에 쓰러진 강권주를 구하기 위해 납치당해 부상을 입었음에도 용감하게 황경일을 덥친다던가, 어머니의 외도을 자신의 범죄의 핑계로 삼은 황경일에게 자신 역시 피해자라며 강력하게 어필하는 박한별의 캐릭터 역시 1회의 복님과 함께 피해자의 한계에 갇히지 않은 여성상을 구현한다. 



하지만 이렇게 여성 캐릭터의 선전과 달리, 무진혁 등 남성 캐릭터들은 아쉬움을 남는다. 결정적 위기의 순간이 되면 <추노>의 대길이가 되고 마는 거야 장혁의 트레이드 마크다 싶어 한 수 접는다 하더라도, 매번 여성 캐릭터들에게 '반말'을 툭툭 던지는 그의 '어티튜드'는 투박한 무진혁의 캐릭터라 접어주기엔 무례함의 여운을 남긴다. 뿐만 아니라, 왜 매번 그의 총구는 엉뚱한 곳을 맞추는지, 그의 맨몸 활약을 위해서라기엔 형사 반장 무진혁의 사격 실력이 아쉬운 건 사족일까. 

폐교에 불이 날 상황 앞에서도 굳이 언니와의 눈물어린 전화 상봉을 하고야 마는 등 아쉬운 감정씬의 늘어짐을 차치하고, 늘 결말이라기보다는 다음 회의 떡밥이 더 큰 '자괴감'을 견뎌낼 만큼 <보이스>의 약진은 매력적이다. '대길'이 대신 무진혁으로 기억될 수 있는 장혁의 개과천선과 강권주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7. 2. 5. 16:55

이변이다. 방영 전부터 이영애의 10여년만의 드라마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던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이 4회만에 kbs2의 <김과장>에게 역전되었다. (닐슨 코리아 기준, <사임당> 12.3%, <김과장> 13.8%> 물론 <사임당>이 억울한 면도 있다. 이영애의 복귀작이라지만, 아직 방영 분량의 대부분은 젊은 사임당인 '박혜수'가 타이틀롤 격이니 말이다. 하지만 '사극'에 '애절한 운명'을 버무린 '사랑' 이야기 대신 <김과장>이란 이 소박한 타이틀의 드라마에 끌리는 관심이라니, <사임당>을 변명해 볼 수록, <김과장>이 어떤 드라마인가가 더 궁금해 진다. 




남궁민에게 절정을 선물한 박재범 작가 
타이틀롤이 김과장인 만큼, 주인공 김과장 역을 맡은 남궁민을 빼놓고 이야기를 풀어갈 수가 없다. 남궁민은 일찌기 연기 잘 하는 배우였다. <내 마음이 들리니(2011)>에서도 장중하- 봉마루로 악과 선의 경계에서 흔들렸던 캐릭터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나면 그의 존재감도 슬며시 사라지곤 했다. 그러던 그가 <우리 결혼했어요>란 예능을 시작으로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악역으로 변신하더니<리멤버-아들의 전쟁>, <내 마음이 들리니>까지 그 연기의 진폭을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이제 <김과장>을 통해 그렇게 물오른 남궁민 표 연기의 절정을 보여준다. 방영 전부터 <직장의 신(2013)> 속 미스 김을 떠올리게 했던 작명 김과장으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던 남궁민의 김과장, 지방 '덕포 흥업'에서 그의 천재적 능력을 '즐기며' 소소하게 장부 조작이나 하며 덴마크 이민의 꿈이나 꾸던 그가 그 꿈을 앞당기기 위해 던진 로또 TQ 그룹 경리 과장, 아니나 다를까 미스 김처럼 '사이다'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의 현실적 속물주의가 어쩐지 끌리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김과장>을 이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배우의 연기가 뛰어나다 해도 그 연기를 담을 그릇이 마땅치 않다면, 연기가 충분히 빛나기는 힘들 것이다. 물오른 배우 남궁민의 연기를 '절정'으로 만든 건 바로 드라마 <김과장>이다. 

<김과장>에서 배우 남궁민의 절정의 연기력을 이 뛰어놀 수 있는 풀을 만들어 준 것은 다름아닌 OCN장르물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신의 퀴즈네 시즌을 집필했던 박재범 작가이다팬들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시즌 4를 끝으로 더 이상 <신의 퀴즈>를 집필하지 않았던 박재범 작가는 이후 KBS2의 <블러드>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고자 했지만 아쉬움에 그쳤다그랬던 박재범 작가가 이전의 그가 했던 장르와 전혀 다른 오피스물’ <김과장>을 통해 와신상담의 역전극을 펼친다.


다양한 층위의 동상이몽  

<김과장>의 매력은 이런 박재범 작가의 절치부심이 돋보이는 겹겹의 층위가 쌓인 구성에 있다앞서 말한 이나 ’, 혹은 도덕과 부도덕의 잣대가 모호한 소박한 속물(?)’ 김과장이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그가 이민의 꿈을 펼치기 위해 들어간 TQ그룹이 드라마의 주된 격전장이 된다그리고 격전장이란 말이 가장 적절하게도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각자의 이해 관계를 통해 동상이몽을 꿈꾸는 것이 바로 <김과장>이란 드라마가 매 회 휘몰아치며 시청자를 사로잡은 진짜 이유다.

 

지방 소도시에서 장부 조작이나 하던 김과장사실 그가 TQ기업의 경리 과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인간 경영을 외치지만실상은 비리의 온상인 TQ그룹의 썩은 조직이 있기 때문이다현재 그룹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박현도(박영규 분)는 가족적이며 인간적인 경영을 외치지만 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업의 부실을 키워가는 주범으로 창업주이자 장인의 딸인 아내 장유선(이일화 분)와 경영권을 놓고 이해를 달리한다여느 부부처럼 어디 갔나 왔느냐아들 걱정을 하던 이 부부가 서로 돌아서며 표면하는 그 표정과 뒷조사를 부탁하는 그 이면의 엇갈림이 <김과장>의 동상이몽그 첫 번째 포인트이다.


 

그렇게 경영을 놓고 이해 관계가 엇갈리는 부부그 중에서 현재 실권을 쥐고 있는 박현도의 수하에는 기존 그의 오른 팔이었던 상무이사 조현영(서정연 분)과 새로이 스카우트 된 서울지법 회계 검사 출신의 재무 이사 서율(준호 분)의 박힌 돌과 굴러온 돌 버전의 동상이몽이 그 두 번 째 포인트가 된다.

 

드라마는 소박한 이민의 꿈을 꾸고 로또라 생각해서 들어갔던 TQ그룹에서 생각지도 못한 분식 회계의 조작팀의 하수인으로 기용된 김과장의 운명과 그 운명을 틀어쥔 서율그리고 애초에 타이타닉 호에 타지 않은 가장 운좋은 이의 방식을 도모하는 김과장의 해고 작전그리고 그런 그를 의혹과 혼돈의 눈초리로 지켜보는 대리 윤하경(남상미 분)의 헤치고 모여’ 식의 이합집산이 <김과장>의 관전 포인트가 된다.

 

자기 앞의 이해관계에 연연하며 살아가는 소박한 이기주의자들이 보여주는 현실감그런 그들이 진짜 사회 구조적 비리와 악에 마주쳤을 때 벌어지는 해프닝을 코믹하게 그려내어 가고 있는 <김과장>은 재벌가의 분식 회계가 익숙한 세상이 드라마의 공감을 도모해주는 서글픈 현실이 낳은 역설적’ 흥행 코드이다. 직장 생활 좀 해봤던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공감할 다양한 '부정'들, 그리고 사회 전반이 탄식해 마지않는 가진 자의 '부도덕'을 <김과장>은 TQ그룹 내 인물 군상을 통해 다양하게 펼쳐간다. 특히나 <직장의 신>이래 멈칫했던 오피스 사회물의 계보를 잇는 드라마가 반갑다.   마치 '만인 대 만인'의 전장같은 TQ그룹그룹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미덕'을 찾아가는 김과장 및 동료들의 여정을  지켜보는 건, 마치 복마전 같은 세상에서 ;희망'을 구도하는 마음과 일맥상통한다. 

by meditator 2017. 2. 3. 15:18

도깨비도 가고, 인어도 갔다. 휘몰아쳤던 '환타지' 로맨스의 파도가 한 차례 지나가고, 그리고 그 바톤을 조선판 '개츠비'가 잇겠다 선언한다. 하지만 동시간대 경쟁작 김과장의 바튼 추격(김과장 12.8%, 사임당 13.0% 닐슨 코리아)에 고전하는 모양새다. 아직 본격적으로 두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은 젊은 시절 이야기였으니, 4회의 약진을 기대해 볼까?




환타지로서의 로맨스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사임당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지만, 극 내용이 다루고 있는 것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신사임당의 '가상' 일기다. 남성중심 사회인 조선에서 여성임에도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뛰어넘은 여성 예술가를 다루고자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뿐이면 섭하다. 빠질 수 없는 사랑, 그를 위해 '이겸'이라는 가상 인물이 등장한다. 역적으로 몰려죽은 왕족의 손자이자, 훗날 도화서의 수장이 될 이겸은 어린 사임당과 '안견의 금강산도'를 매개로 인연을 맺고 사랑을 키워나가지만, 운명으로 인해 '혼인'의 결실을 맺지 못한 채 평생 사임당 바라기로 살아가는 '조선판 개츠비'이다. 이렇게 <사임당>은 실존 인물 사임당의 주변에 지고지순한 순정남 이겸을 배치하여 '환타지'로서의 구성을 완성한다. 

이처럼 최근 '로맨스' 드라마에서 추세는 '환타지'이다. ost의 한 소절만으로도 대번에 연상되는 붐을 일으킨 tvn의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이하 도깨비)>가 그러했고, 최근 종영한 sbs의 <푸른 바다의 전설>이 그랬다. '미니 시리즈'에서 화제가 된 로맨스 드라마치고 '환타지'요소를 피해간 드라마가 없다. 혹자는 <태양의 후예>를 들지도 모른다. 

16회 시청률 38.8%의 2016년 최대의 히트작 <태양의 후예>는 전장터를 배경으로 파견 군인과 의료 봉사단 의사 사이에서 피어난 사랑을 다루었다. 하지만 극 초반 현실과는 전혀 다르게 이국의 전장터에서 격투씬까지 벌이며 작전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대한민국 군인이야말로 '솔직히' '전작권'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그 어떤 캐리터보다 '환타지'적이 아니었을까. <태양의 후예>는 헬기를 타고 신출귀몰은 물론, 총을 맞고 절명하는가 싶더니, 바로 다음 날 작전에서 펄펄 나는 유시진을 통해 이 인물이 '블록버스터'급 영화의 히어로못지 않은 캐릭터임을 시인한다. 왜 굳이 대한민국을 놔두고 우르크라는 이방의 장소를 배경으로 삼았을까. 심지어 극중 배경은 중앙 아시아의 난민이 발생하는 국가라고 설정했지만 실제 촬영 장소는 비경으로 소문난 그리스이듯이, 배경부터 시작하여 캐릭터의 활약상까지, '히어로 블록버스터'의 외피를 입은 로맨스라는 신 장르를 개척한 드라마라 보는 것이 정확한 평가가 아닐까. 



김은숙 표 드라마 = 환타지 로맨스의 역사 
물론 일찌기 우리의 '로맨스'는 환타지였다. 가난한 여성과 사실은 평생 가야 그녀가 마주칠 일조차 희귀한 재벌가의 자제가 '사랑'을 나눈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인 '꿈'의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꿈'이 시대를 타고 '현실적'인 양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 '드라마의 개연성'이었다. 앞서 <태양의 후예>에 이어 <도깨비>로 '갓은숙'으로 칭송받기에 이른 김은숙 표 로맨스를 되돌아 보면 바로 '환타지'로서의 로맨스의 역사를 가장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무려 50%가 넘는 시청률(57.6% 20회)을 기록한 여전한 김은숙 표 드라마의 아성 <파리의 연인>을 비롯하여, 2012년 <시크릿 가든>에서 2013년<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이하 상속자들)>까지, 특히나 김은숙 드라마 중 신드롬 급으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훔친 것은 '재벌' 혹은 '재벌'가의 자제들이었다. 여전히 인기 주말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속 주된 캐릳터들만 봐도, 재벌가는 여전한 '사랑'의 근거지가 된다. 

이렇게 로맨스 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이 되었던 '재벌', 그들의 빈번한 드라마 출정은 배금주의적 자본주의 사회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가장 솔직한 고백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백'도 잦으면 싫증이 나는 법, 아침드라마에서부터 일일 드라마, 주말 드라마, 미니 시리즈까지 남자 주인공을 독점하는 '재벌'가 남자들에 대한 '진부함'이 쌓일 수 밖에 없다. 그와 동시에 자본의 독점과 과점이 전사회적으로 체제화 되어가는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은 부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고착화된 계급사회화되어가는 현실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는 그 경제적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재벌에 대한 부정적 반응 또한 도출한다. 

그래서 재벌은 여전히 아침드라마에서부터 주말 드라마까지 '사랑'이 주요한 배경이자, 주인공으로 작동하지만, 동시에 장르물을 비롯한 각종 드라마에서 '주된 악'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최근 시작한 <피고인>을 비롯하여 도덕적 의식이 부재한 사이코패스 악인은 대부분, 그 존재가 '재벌'인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부'의 쓰임새가 사이코패스적 체감을 가져올 만큼 부도덕하다는 광범위한 대중적 인식에 기인한다. 



로맨스물의 궤도 수정= 업그레이드 재벌
그러니 발빠른 트렌디 로맨스 물의 궤도가 수정될 밖에. 주말 드라마나 주부가 주인공이었던 드라마를 썼던 박지은 작가는 영생의 외계인 도민준(김수현 분)을 주인공을 등장시켜 2014년의 신드롬을 탄생시켰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재벌'을 넘어선 존재로 외계인이 등장한 것이다. 도깨비 못지 않게 오랜 시간을 인간 세상에 산 도민준은 그의 외계적 능력을 이용하여 재벌못지 않은 부를 지녔으며, 위기의 천송이(전지현 분)를 구해낼 기상천외한 능력을 지닌다. 이제와 비교해 보면 도깨비 김(공유 분)와 외계인 도민준은 도깨비와 외계인이라는 이질적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 신묘한 능력으로 부를 축적하여 재벌에 버금가는 부와 재벌같은 인간 따위가 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에서 여주인공을 구해내는 능력에서 상당히 유사한 버전이다. 마치 재벌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만약에 영생을 사는 외계인과 도깨비가 가난한 백수라던가, 취준생이었다 해도 지금과 같이 그들의 슬픈 운명으로 인한 여운에 시달렸을까?

재벌못지 않은 캐릭터가 또 있다. 역시나 김수현이 분한 <해를 품은 달>의 왕 이훤과 역시나 왕못지 않은 세자인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이영(박보검 분)이다. 이들은 권문 세족의 핍박을 받는 불우한 왕족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그 불운을 넘어 사랑을 지켜 낼 '왕족'의 권위가 있다. 현대의 어느 재벌인 들 신분제 국가의 왕을 넘볼 수 있겠는가. 

2012년 <해를 품은 달>부터 2017년을 신드롬으로 연 <도깨비>까지 화제가 되었고, 높은 시청률을 자랑한 로맨스 드라마들의 주인공은 '재벌' 대신, 마치 재벌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돈은 물론 권력을 가졌거나, 권력은 저리 가라할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렇게 드라마 속 신묘한 남자 주인공들이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시기는 안타깝게도 현실의 신분 상승은 점점 암담해지고 신 신분제 사회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등장하고, 빈익빈 부익부가 고착화되어 가는 시기이다. 재벌은 로망 대신 사이코패스적 부도덕의 상징이 되어가는 '암울한 현실'인식이 퍼져나가는 시기였다. 이런 시기의 극강의 환타지는 위로하고 마취하며 고단한 현실을 버텨내는 지렛대가 되었다. 

by meditator 2017. 2. 2. 16:06

첫 방 시청률이 최고 시청률이 되고만 불야성(1회, 6.6% 닐슨 코리아), 그 뒤를 이은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0)은 가뿐히 전작의 부진을 딛고, 단 2회만에 10%의 고지를 넘었다. (10.2% 닐슨 코리아) 물론 상대작인 <피고인>이 20%를 육박하는 가운데 2위라는 아쉬운 점은 있지만,( 18.7% 닐슨 코리아) 동시간대 또 다른 상대작인 퓨전 로맨스 사극 <화랑>을 단번에 제치며 10%의 고지를 돌파한 점에서 양호한 출발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역적>이 반가운 것은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민중' 사극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허균의 손에 의해 각색된 인물 홍길동이 아닌, 역사적 인물로서의 홍길동을 다루겠다며 포부를 밝힌 이 드라마는 조선의 3대 도적 중 1인, 그래서 전설이 되고, 결국 유구의 문학 작품의 주인공으로 남게 된 도적 홍길동을 다룬다. 조선의 3대 도적이라 일컬어 지는 임꺽정, 장길산, 그리고 홍길동, 이들이 전설적 도적이 된 것은 그저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을 잘해서가 아니라, <역적>의 부재 '백성을 훔친 도적'처럼 '백성의 편에 선 의적'이라는 의미에서다. 이들 중 '임꺽정'과 '장길산'은 이들의 일대기를 다룬 문학 작품은 물론, 드라마로 이미 만들어진 바 있지만, 이들과 달리 '허균'에 의해 각색된 홍길동은 언제나 그 본 인물이 가진 서사보다, 율도국을 만든 귀신같은 영웅 홍길동으로 '둔갑'되곤 했다. 그러던 홍길동이 뒤늦지만 이제서야 연산군 시절 조선을 호령했던 의적으로 제대로 돌아온다. 

황진영이 그려낼 신선한 사극
<역적>에서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작가 황진영이다. 일찌기 2007년 kt 디지털 공모전 대상으로 그 필력을 인정받기 시작, 영화 <쌍화점(2008)>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황진영'이란 이름이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특집 단막극 <절정>에서였다. 2011년 8월 15일 방영된 <절정>은 동명의 시를 쓴 시인 이육사의 일대기를 비록 단막극이지만, 일제 시대를 살아간 젊은 지식인의 고뇌를 그 어떤 드라마보다 실감나고 감명깊게 다루었단 평가를 받았다. 



이어 황작가는 2013~2014년에 방영된 MBC수목 드라마 <제왕의 딸 수백향>을 통해 고증이 어려운 백제사의 영역을 '사극'의 궤도에 맞춰 적절하게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100회가 넘는 일일 드라마에도 불구하고 주제 의식을 관철시켜낸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감독의 영역이 강조된 <쌍화점>과 달리, 작가의 시각이 두드러진 <절정>과 <수백향>에서 기존 역사극과는 다른 구성을 가지면서, 시대적 과제에 충실한 주제 의식을 되살려내는 장기가 황인영 작가의 장점이다. 또한 황인영 작가는 <쌍화점>에서, <절정>, <수백향>까지 역사물이지만, 결코 '역사'란 테두리엔 두루뭉수리하게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시대를 각각 그 시대적 특징을 잘 살려낸 작가라는 점에서 <역적>이 더욱 기대를 크게 한다. 

이렇게 안정된 필력과 주제 의식이 돋보이는 황인영와 함께 <킬미힐미(2015)>의 김진만 연출이 합류했으니 <역적>은 든든한 양 날개를 얻은 것인 셈이다. 그런 역적의 든든한 날개에 힘찬 발짓으로 비상의 날개를 펴도록 한 사람은 다름아닌 1, 2회를 이끈 아모개 김상중이다. 

아기 장수 설화와 아비 아모개 
아모개, 이름이 아모개라는 말은 이름이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말로 '아무개야'라고 막 부르던 그 '아무개'를 노비 문서에 써넣으려다 보니 '아모개'가 된 아모개, 그는 양반가의 씨종(대대로 내려가며 종노릇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아비와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그도 주인을 하늘이라 생각하며 그 그늘에서 움츠려 살았다. 그의 아내는 우는 아이를 두고 주인집 아이에게 젖을 물렸고, 그는 주인집 아이를 다치게 한 자기 자식의 손을 짖이기려 했다. 그리고 그처럼 그의 아들도 주인집 아들 대신 회초리를 맞았다. 

그렇게 씨종으로서의 삶을 숙명으로 살던 아모개, 하지만 주인집 자식을 다치게 한 자식의 손을 차마 돌로 내려칠 수 없는 그 순간 그의 삶은 다른 선택의 길에 들어선다. 

어느 '의적' 드라마에서나 그렇듯 가지지 못한 삶의 운명을 타고 난 그들은 자신을 겁박하는 운명에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디다 못해 그 사슬을 깨뜨리고 만다. 그 '클리셰'의 '의적' 서사를 <역적>은 우리 전래의 '아기 장수' 설화를 통해 개연성을 더한다.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장수' 아기, 백성에게서 태어난 '장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설화는 이를 '반역'의 징조라 해석했고, 그를 두려워한 부모는 어떻게든 아이의 힘을 숨기려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법, 아모개의 아들 길동이 아비의 당부를 받고 스스로조차 힘이 죽었다 느껴질 정도로 숨기려 애를 썼지만 어미의 위기에서 참을 수 없었듯이, '장수'가 될 수 없는 아기는 '반역'의 길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슬픈 영웅의 서사인 것이다. 체제를 뒤집어 엎을 수 없었던 비극적 운명을 '아기 장수'를 통해 풀어냈던 이 설화는 여러가지 버전으로 전해내려져 온다. <역적>은 이 설화의 모티브를 아모개 네 집안을 통해 영웅의 탄생 설화의 새로운 버전으로 해석한다.

이렇게 '아기 장수' 설화를 통해 길동이란 캐릭터의 개연성을 부여한 드라마는 그 비극적 운명을 위해 이름조차 없는 아버지, 하지만 그 누구보다 '애비'로서의 그 몫을 다하려 한 아모개란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내내 씨종으로서의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그, 하지만 길동의 힘이 '씨종'으로서의 운명을 뛰어넘는다 깨닫자, '종'으로서의 숙명을 벗어던지기로 결심한다. 주인댁 썪은 명태를 한 궤 짊어지고 길을 떠난 그는 잠깐의 저어함도 없이 개성 도둑패의 앞잡이가 된다. 



그렇게 담을 넘기를 주저하지 않고 돈을 모은 그는 아들들이 원하는 공부를 시키기 위해, 힘이 장수인 아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면천'의 기획을 주도한다. '외거'의 삶까진 순조로웠지만, 결국 어음까지 넘긴 면천의 길목에서 아모개가 숨겨놓은 재화에 눈이 먼 '주인 내외'의 획책이 아모개네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삼시 세끼 뜨신 밥 먹고, 자식들 하고 싶은 거 하고, 위험한 운명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도적질을 마다하지 않았던 아비의 행보는 결국 '노비'라는 운명을 뛰어넘지 못한 것이다. 발이 부르트고, 바람처럼 떠돌면서도 가족을 지키려 했던 아비는 결국 낫을 든다. 뒤늦게서야. 그러곤 말한다.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을. 이라고. 

이렇게 <역적>은 '아기 장수' 설화와, 아모개의 부정을 통해 1,2회만에 홍길동이란 의적의 탄생 설화를 완성한다. 양반이 자기 필요에 의해 주욱 늘어서게 만들고 파는 물건, 노비, 하지만 드라마는 그 '노비'로 규정지어진 '인간'이 삶을 곡진하게 그리며 민중 사극으로서의 <역적>에 든든한 시동을 건다. 
by meditator 2017. 2. 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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