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시작했으니, 햇수로만 치면 10년 째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진부한 말답게, 500회를 맞이한 <라디오 스타>를 보면, 스스로 '어쩌다'와 '기적'이란 표현이 무색하지 않게, 격세지감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황금어장-무르팍 도사> 끝자락에 낑겨, '다음 주에 만나요, 제발~'하지만 500회 특집에서 말하듯이 때론 5분여의 방송 시간이란 갖은 수모를 겪었던 짜투리 방송 <라디오 스타> 하지만 이제 10년의 세월을 겪고 거의 유일한 '토크' 예능으로 수요일 밤의 스테디 셀러가 되었다. 




기적같은 500회
mc들 각자에게 거한 수상(결혼식에 쓸 500인분의 국수라던가, 혹은 곧 회수할 것이지만 500회의 식권이라든가, 퍼프라던가, 건빵이라던가)을 하며 화려하게 오프닝을 장식한 500회의 <라디오 스타>, 그 자리를 축하 하기 위해 제일 먼저 테이프를 끊은 것은 강호동이었다. 무엇보다 지난 10년의 격세지감의 산 증인은 강호동이 아닐까? 수요일 밤을 호령하던 <무르팍 도사>로 <라디오 스타>를 짜투리 방송으로 만들었던 그가, 세금과 관련된 구설수로 물러나고, 이제 타 방송사의 동시간대 프로그램을 맡아 영상으로 축하 인사를 전해주는 광경이야말로, <라디오 스타>가 걸어온 지난 10년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500회 특집의 출연자 면면도 그렇다. <무르팍 도사>에서 강호동과 함께 했던 건방진 도사 자격으로서 유세윤과 올라이즈 밴드 우승민의 참석은 강호동의 부재만큼이나 <라디오 스타>의 또 다른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유세윤은 사라진 <무르팍 도사> 이후 바로 <라디오 스타>의 5 mc 체제로 갈아타고, 역시나 규현의 전임 mc였던 김희철이 합류하여, 지난 10년간의 역사를 회고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던 윤종신이 개근상을 탈 만큼 mc들의 구설수가 많았던 <라디오 스타>, 500회 특집에서도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 신모씨로 불리워야 하는 신정환에서 부터, 지금은 큰 소리를 치지만 역시 한때 자리를 비웠던 김구라, 그리고 이제는 초대 게스트 석에 앉아있는 유세윤까지 바람잘 날 없는 지난 시간이었다. 과연 거센 입담의 <라디오 스타>에서 온순한 김국진이 살아남을까라는 기우가 무색하게 500회를 함께 한 김국진의 내공도 만만치 않고. 그리고 이제 대놓고 군대를 갈 규현의 차기 mc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여러 명의 mc들이 오고가는 와중에서도 자투리 예능에서 수요일 밤의 스테디셀러로 거듭난 <라디오 스타>가 가능했던 것은 집단 mc 체제가 가진 장점을 십분 살려왔기 때문이다. 스스로 악역을 자처했다는 김구라의 자화자찬과, 그런 김구라를 키웠다는 윤종신의 또 다른 자화자찬, 그리고 출연 게스트들의 증언으로 이제야 확인된 김구라의 마지노선 김국진, 그리고 그런 거센 형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버텨온 규현까지, 신정환의 부재라는 엄청난 리스크조차 순조롭게 관리하며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는 불문율을 스스로 거듭 깨어가며 집단 mc의 균형을 절묘하게 시스템화 시킨 것이 오늘의 <라디오 스타>가 아니었을까? 

<라디오 스타>만이 할 수 있던 것
무엇보다 처음 <라디오 스타>가 출범할 때만 해도 tv로 온 dj라는 생소한 컨셉에, 나뉘는 대화란 b급 코드의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없는 수습되지 않는 대화들이었던, 그래서 마니아들을 불러모았던 <라디오 스타>, 하지만 500회를 지내는 동안, b급 코드의 토크 프로그램은 이제 뜨고싶은 연예인들이라면 꼭 한번 출연하고픈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무엇보다, 스튜디오 예능의 침체와 함께 <무르팍 도사>는 물론, <승승장구>, <야심만만>, <화신>  등 타 방송사 토크 예능 프로그램들이 흔적없이 사라지고, <해피 투게더>만이 명맥을 잇지만 부진의 늪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라디오 스타>의 건재는 스스로 평가하듯, '기적'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그런 '기적'을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라디오 스타>만의 게스트 섭외 방식이다. 물론 11월 9일 방송에서도 김희철과 이수근의 출연에서 보여지듯, 여전히 특정 소속사에 편중된 출연 관례가 없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이제는 <해피 투게더> 등에서도 벤치 마킹을 하듯, <라디오 스타> 이전만 해도 '인지도'가 있어야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었던 관례를 과감히 깨고, <라디오 스타>에 출연시켜 화제를 만드는 신선한 구성이 무엇보다 오늘의 <라디오 스타>를 장수 프로그램으로 만든 핵심적 요소이다. 



덕분에 9일의 특집에서 '라스를 빛낸 100명의 위인들'로  소개된 조세호, 박나래 등 다수의 개그맨과, 드라마 등에서 조연으로 겨우 얼굴을 알렸던 연기자와, 무명을 갓 벗은 한동근 등의 가수등이 <라디오 스타>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었다. 이들은 얼굴을 알려서 좋고, <라디오 스타>는 신선한 출연자로 프로그램의 생명력을 더해서 좋았으니, 이보다 더한 꿩먹고 알먹고 구성이 있으랴. 

또한 일찌기 신정환을 위시해서 김구라로 이어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토크의 방식도 <라디오 스타>가 만들어 낸 전통이다. 토크 프로그램에 나오면 마치 '주례사'처럼 서로 덕담이나 나누고, 미담이나 만들어 내던 기존의 예능 방식을 뒤집은 채, 출연자들을 탈탈 털다 못해, 거의 싸우다시피하던 <라디오 스타>의 토크 방식은 나날이 드세어가는 세상의 코드와 절묘하게 맞물리며 이 프로그램의 생명력을 연장시켰다. 물론, 그 예전의 신정환으로 상징되던 b급 코드는 스테디 셀러가 된 이즈음에는 대상까지 받은 김구라의 삿대질식의 평론 토크로 변화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라디오 스타>만이 가능한 날카롭고 기발한 토크의 방식이 지난 500회를 떠받쳐 왔다. 

물론 그래서 이제는 아쉽기도 하다. 기발하고 톡톡 튀었던 대화 대신, '갑질'같은 김구라 등의 '지적질'이 된 변화가. 9일 방송에서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어지자 예전과 달리 눈치를 보게 되었다는 스스로의 평가처럼 이제는 종종 출연자에 대한 혹독한 털어내기나 무리한 요구가 구설수를 만드는 경지까지 도달했다. 그러기에 9일 방송에서 500회니까 훈훈하게 가자며 서로 '덕담'과 '미담'을 만들어대는 방식에서는 찾을 수 없는 반성과 비젼이 아쉬웠다. 어쩌면 늘 그렇듯 스테디셀러가 된 500회의 <라디오 스타>는 자화자찬만 하기엔 이제 너무 몸집이 커져버렸다. 조만간 빈 자리가 될 규현의 자리를 놓고 노골적인 신경전을 벌였지만 궁금하다. 과연 이 격동의 시기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는 철밥통처럼  sm 전용석이 될른지. 그리고 종종 '갑질' 논란까지 벌어지는 '권력'이 된 프로그램은 그 권력을 어떻게 전횡하지 않을 것인지. 그 궁금증을 답하기엔 500회 특집은 너무 자화자찬으로 끝났다. 
by meditator 2016. 11. 10. 05:19

이제 2회를 마친 <낭만 닥터 김사부>, 하지만 단 2회 동안 벌어진 일을 놓고 보면 거의 미니 시리즈 16부작을 맞먹는다. vip에 대한 우선 치료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소년 강동주(유연석 분)는 병원 응급실을 난장판으로 만들다, 부용주(한석규 분)란 의사의 일격에 무너지고 만다. 다친 동주를 치료해주며 부용주는 더 괜찮은 인간이 되는 것으로 복수를 하란 말을 남기고, 그 괜찮은 인간이 되기 위해 동주는 이를 악물고 팔자에도 없는 의학 공부를 하여, 아버지가 죽은 병원의 인턴으로 돌아온다. 




도대체 장르가 몇 개? 롤러코스터식 드라마?
소년의 성장기같았던 드라마는 그가 인턴으로 돌아오며 급 의학 드라마로 전환된다. 인턴 주제에 까칠하게 굴던 동주는 그 못지않은 존재감을 가진 '미친 고래' 선배 윤서정(서현진 분)을 만나,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급의 '조련'을 당한다. 하지만 한국식 의드가 언제나 그렇듯, 의학 드라마로 시작된 드라마는 그런 선배 윤서정에게 매력을 느낀 동주의 다짜고짜 들이댐으로 대번에 '로맨틱 멜로'로 전환되고, 그건 다시 윤서정이 좋아하는 전문의 문태호(태인호 분)가 등장하며 '급 삼각관계'의 갈등이 전개된다. 

거기에 두 사람이 타고 가던 차가 교통 사고를 당하고, 병원으로 실려온 윤서정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문태호를 찾아간 동주가 그와 간호사의 밀담을 목격한 장면, 이어 문태호의 급사, 그리고 이어진 윤서정의 회상 장면에 이르면, 어디서 많이 본듯한 '막장'의 향기까지 느껴지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등산에서 실족사한 윤서정을 더 느닷없이 나타난 부용주가 들쳐업고 가면서 이 드라마의 앞날에 대한 의문만 남긴 채 1회를 마무리한다. 단 1회만에 몇 가지 장르의 미니 시리즈 한 시즌을 다 본듯한 설정들이 속도감있게 전개되며 드라마는 말하는 듯하다. 이래도 안볼래? 종합 선물세트가 여기 다 있는데?



2회도 만만치 않다. 병상에 누운 윤서정도 잠시, 사라진 윤서정을 향해 끊임없이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남기던 강동주의 <하얀 거탑>으로 드라마는 또 방향을 튼다. 원장의 무리한 딜에 자신을 증명해 보이려 했던 동주,  돌아온 건 vip의 수술 중 사망과 돌담 병원으로의 좌천이다. 

하지만 강동주의 <하얀 거탑>은 돌담 병원 행으로 막을 내리고, 거기서 부터는 B급 코믹 버전이 시작된다. 카지노에서 술에 젖어있다 응급 환자를 만나게 된 동주, 그의 의학 진기명기가 펼쳐지나 했더니, 정작 진기명기를 보이는 건 다시한번 느닷없이 등장한 부용주, 강동주의 손목아지 해프닝 후 비로소 돌담 병원이 전면에 등장한다. 

마지못해 돌담병원에 눌러앉은 동주 앞에 5년만에 나타난 윤서정, 두 사람이 미처 다하지 못한 병원에서 사랑하기를 찍나 싶더니, 김사부라는 부용주의 진기명기 2탄에 이어, 윤서정의 자해 소동까지. 도대체 이 드라마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 하며 2회를 마무리한다. 

제빵왕 김탁구같은 강은경 작가의 진기명기 
장황한 설명을 통해 보여지듯이 단 2회 동안 <낭만 닥터 김사부>는 의학 드라마에서 막장 드라마까지 온갖 장르와, 그 장르에서 익숙한 클리셰들을 범벅하며 돌진한다. 심지어 몇 번 안되게 바람처럼 나타나 '진기명기'를 선보이는 부용주의 캐릭터는 일본 만화에서 익숙한 '사부'의 캐릭터같다. 마치 은둔자 고수 사무라이 분위기랄까?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익숙한 면면들이 뒤엉켜 섞이다 보니, 그것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의학 드라마인가 싶더니, 연애를 하고, 연애를 하는가 싶더니, 배신과 죽음으로 점철되고, 그게 다시 '야망'의 거탑을 향해 돌진하는가 싶더니, 사무라이식 대결을 벌이질않나, 고수의 진기명기를 선보이질 않나, 그러더니 단 2회만에 자기 손목에 가차없이 메스를 대는 여주인공까지, 근자에 이렇게 다이내믹한 드라마가 있었나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 문득 '빵'이라는 소재를 내세워 온갖 통속적 요소를 다 때려넣으며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던 2010년작 역시나 강은경 작가의 <제빵왕 김탁구>가 떠오르는 것이다.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한 주인공의 순수한 열정을 기본적 주제로 내세웠지만, 그 주제를 이끌어 가는 드라마의 서사에는 주말 드라마 뺨치는 '통속적' 요소들로 채워졌던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처럼 이제 2회지만 의술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하면서, 사랑과 욕망으로 변주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종합 선물 셋트'처럼 선보인 <낭만 닥터 김사부>는 최근 몇 년간 강은경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제빵왕 김탁구>와 흡사하다. 그러니 뻔한 듯한데 보면 시간은 어느새 한 시간 여가 후딱 지나가 있고, 진부한 듯 한데 다음 회가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으니, 이런 템포와 이런 롤러코스터같은 서사라면 당분간 <낭만 닥터 김사부>의 독주를 막긴 힘들지 않을까?

by meditator 2016. 11. 9. 05:43
일찍이 공자님은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라고.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요즘 한참 '공부'를 해야 하는 청춘들에게 전해준다면 당장 읽던 책이 날라올 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사회에서 공부란 곧 밥벌이를 뜻하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인생 충고 세 번째,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연봉 4만 달러가 될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그 교시에 충실한 공부이다. 일찌기 초등학생 시절부터 아이들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안타깝게도 연봉 4만 달러를 보장하지 않는 불경기로 인해 또 공부를 시작한다. 전공과 상관없이 각종 고시와 자격증을 따기위한. 이런 형편에 놓인 이들에게 공부는 즐거움이 아니라, 생존의 도구다. 그러니 절바감은 있을 지언정, 즐거움은 얼어죽을 놈의 소리다. 그러니 취직에 도우이 되지 않는 '문과'는 '문송합니다'가 되는 것이다.



죄송한 공부가 즐거운 공부가 되다. 
그런데 그 '죄송한' 문과 공부가 사회로 나오면 처지가 달라진다. '인문학 열풍'의 당당한 주역이 되는 것이다. 이 '공부'의 갭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를 위해서 장미 여관의 뇌가 순수한 남자 육중환이 나섰다. 최고의 성적 반에서 32등, 양치기를 즐겨했던 38년의 인생 동안 단언컨대 단 한 번도 공부를 해본적이 없는 그가 mbc스페셜-공부 중독의 프리젠터로 나섰다. 말이 프리젠터지 본의 아이게 읽어야 할 책을 받아든 육중완, 도무지 읽어도 읽어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을 붙잡고 씨름하다 결국 책의 저자 유시민을 찾아가기에 이른다. 그리고 거기서 들은 뜻밖의 '풀밭론'

유시민은 묻는다. 과연 당신은 몇 평의 풀밭이 필요한 사람이냐고? 평생 세 평의 풀밭에 만족하는 토끼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초원이 필요한 사람인지 알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각자 사회적 경험을 쌓은 중년 이후의 사람들이 공부에 빠져든다. 직장인으로
승승장구하던 김승호씨는 퇴직 후 사회와 삶으로부터 고립된 선배들을 보며 찾아온 우울증을 공부로 치유했다. 주변에서는 '돈'이 되는 공부를 하라지만, 돈은 덜 되지언정 비어있던 삶을 채워준 공부에 충분히 만족한다고 답한다. 청도 농사꾼 김형표씨 부부는 농사일 하는 틈틈이 팟캐스트로 '공부'를 한다. 자식을 키우고, 손주까지 키우워 낸 후 노년의 허탈함을 7순이 넘은 나이에 뒤늦게 들어간 방송 통신대학 공부로 달랜다. 가정 대신 공부를 택한 남편이 괘씸했던 아내도 이젠 남편 못지 않은 과학 매니아가 되었다. 아이를 낳은 후 복직한 직장에서 권고 사직을 당한 후 세상에서 밀려난 소외감을 '힐링' 시켜준 것도 공부다. 



공부가 즐거운 사람들
중년 이후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고자 시작한 공부는 이제 '도끼 자루 썪는 줄' 모르는 늦바람이 되었다. 그 골치앞은 과학을 배우는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의 회원은 6000명을 넘어섰다. 몽골로 떠난 학습 탐사, 이들은 털털거리는 버스에서도 촌음을 아껴 공부에 빠져든다.  꼭 책으로 하는 공부만이 아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등의 공부 관련 팟캐스트가 6000개가 넘었다. 구청, 도서관에서 열리는 교양 강좌가 가득차고, 도서관에는 취업 준비를 하는 젊은이들과 머리가 희끗희끗한 이들이 자리 경쟁을 한다. 이렇게 '밥벌이'가 되지 않는 공부를 하며, 어른들은 비로소 '공부가' 재밌어 졌다고 한다. 허무했던 중년 이후의 삶이 충만해 졌다고 한다. 



책 한 장을 넘기기 힘들어 했던 육중완도 달라졌다. '공부'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공부'의 재미를 알 수 있는 사회, 이 '아이러니한' 공부 중독은 '성장주의' 한국 사회가 낳은 기현상이다. 즐겁지 않은 공부를 강요하는 사회, 그래서 공부의 즐거움을 놓치는 사회, 뒤늦게 공부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회. 다큐는 늦바람난 중년 이후의 공부를 '보람'되게 그려냈지만, 그 재미진 공부 중독 이면의 씁쓸한 사회는 쉬이 가려지지 않는다.
by meditator 2016. 11. 8. 13:49

계절은 카메라의 프레임을 통해 다시 피어난다. '오겡끼데스까'라는 절규가 하얀 설원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우리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겨져 있었을까? 얼마전 종영한 <구르미 그린 달빛>이 청춘 남녀의 사랑을 '엽록소'가 터져나오는 봄을 배경으로 하지 않았다면 그 싱그러움이 한껏 돋보일 수 있었을까?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 속 계절은 그 어떤 등장인물보다 중요한 배역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런데 드라마 속 계절에는 편애가 존재한다. 청춘의 봄이거나, 이별의 가을이거나, 혹은 겨울이거나, '삼복더위'의 그 무더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그리 흔치 않다.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라면 모를까? 그런데, 여름, 그것도 딴 곳도 아닌 경상분지에 위치한 무더운 안동이라니. 하지만 그 여름엔 무지 덥고, 겨울엔 무지 추운 안동이 <드라마 스페셜-국시집 여자>를 통해 싱그러운 여름의 도시로 거듭 태어났다. 




왜 하필 여름이었을까?
드라마 속 안동에서 만나게 된 두 남녀, 좀 더 정확하게 미진(전혜빈 분)의 국시집에 들렀다 첫 눈에 안동 촌구석 국시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도회적 분위기의 미진에게 시선을 빼앗겨 안동에 내려올 때마다 참새가 물레방앗간 드나들 듯 국시집을 들른 진우(박병은 분), 왜 하필 이들은 여름에 안동을 휩쓸고 다녔던 것일까?

두 사람은 국시집에 안동 국시를 먹으러왔다는 핑계로 드나드는 진우와, 그런 진우의 속이 빤히 보이는 추근거림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미진과의 안동댐을 비롯하여, 도산 서원 등 안동의 주요 명소를 연애인지, 동행인지 모를 행보로 돌아다닌다. 그 쨍쨍한 여름날에. 드라마는 '여름'의 햇빛을 화사한 화면에 잔뜩 머금고, 그 빛을 반사해 안동을 비춘다. 

그러나 그 쨍쨍한 햇빛 속의 두 남녀의 처지는 그리 밝지 못하다. 일단 유부남인 진우, 아내와 결혼 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어, 병원을 가보자는 요청을 받는 처지의 그가, 죽은 선배의 원고 정리를 핑계로 주말마다 안동에 내려온다. 그런 그가 들른 국시집 미진도 도대체 이런 곳에서 국시집을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모호한 존재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미진의 이름도 모른 채, 진우의 정체도 모른 채 안동의 여름을 거닌다. 진우가 사준 양산까지 쓰고. 

여름은 '욕망'의 계절이다. 봄에 돋아난 새싹은 더운 여름의 열기를 업고 청록빛의 녹음을 발산한다. 온도가 올라가는 만큼 생명력을 그 속에서 저마다 한껏 자신을 열어제친다. 바로 그런 '욕망'의 계절에 미진과 진우는 안동이란 고장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모른 척 방기하며 관계를 지속시킨다. 

사랑이 끝난 후 비로소 솔직해진 욕망
하지만 사랑인 듯 불륜인 듯 관계를 이어나가는 두 사람의 존재는 물을 막아선 안동댐의 수문처럼 닫혀있다. 진우가 들려준 선배 도근(김태우 분)의 소설 속 사랑하는 연인의 자살을 목격하고 후각을 상실한 조향사가 미진이듯이, 진우 역시 도근의 소설을 통해 드러나듯 한때 소설을 써보려했던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후각을 잃고 도시의 삶을 포기한 미진과 꿈을 덮은 채 도시에서 살던 진우가 여름의 안동에서 만나, 짖눌렀던 '욕망'의 한 자락을 슬며시 내보이기 시작한다. 병원에 가는 대신 조금 더 노력해보자는 아내의 말에 슬그머니 뒤돌아 눈을 감던 진우가 미진과의 모텔행을 꿈꾸고, 사랑하는 이를 눈앞에서 잃고 사랑을 포기했던 미진이 그와 같은 체취를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아슬아슬하던 욕망인지, 욕정인지, 사랑인지 모를 관계는 유부남이었던 진우, 미진과 상규(오대환 분)의 관계를 오해한 진우를 통해 어긋나기 시작한다. 손 한번 잡지 못했던 그저 흘러오는 체취만으로도 아찔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오해와 어긋남이 드러난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솔직해 진다. 



그리고 파탄 이후에 비로소 솔직해진 관계를 통해, 두 사람은 비로소 그동안 억눌러왔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찌질하게 미진 앞에 아내까지 데리고 와서 호기를 부리다 이혼까지 당해버린 진우는 이제 좀 어른이 되어보라는 아내의 말에 비로소 '소설'이라는 진짜 욕망을 마주설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후각을 잃었다는 이유로 안동까지 도망쳤던 미진 역시 진우와의 알듯모를 듯한 관계가 깨진 후 여전히 삶을 내던질 수 없는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인정한다. 

쨍쨍 내리쬐는 여름의 열기 속을 기꺼이 거닐던 두 사람은 그 여름의 열기만큼이나 여전한 자신들의 진짜 욕망을 마주하게 된다. 비록 이제 거리에서 마주쳐도 그저 스쳐지나갈 인연이 되었지만, 여름, 그리고 안동의 한 시절은 두 사람을 비로소 자신으로 드러내게 만든다. 

이렇게 여름이라는 계절과 안동이라는 아름다운 고장을 배경으로 탄생된 <국시집 여자>는 마치 고등학교 미전의 수채화같은 드라마다. 지난 여름의 열기를 망각하고, 여름의 안동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여름이, 그리고 안동이 이렇게 싱그러운 계절이었으며, 아름다운 고장이었는가를 새삼 확인시켜주는 드라마는, 그저 계절과 고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 배경과 그 배경 속의 이야기를 절묘한 상징의 고리를 통해 설명하고 드러내 줌으로써, 완성도 높은 단막극으로 탄생된다. 특히 빗속에서 안동댐 수문의 방류와, 그런 모습을 보며 삶의 욕구를 되찾는 미진이라던가, 여운을 잔뜩 남긴 두 사람의 재회 장면 등은 드라마 스페셜이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는 단막극의 묘기를 한껏 풀어낸다. 물론 이런 배경과 서사의 절묘함을 더욱 맛깔나게 만든 건 분위기있는 전혜빈과 모호한 박병은의 안정감있는 조화이다. 
by meditator 2016. 11. 7. 17:09

또 한 편의 불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불륜이라도 새로이 시작된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에 대한 반응은 앞서 방영된 <공항 가는 길>에 대한 반응과 온도 차가 난다. 김하늘, 이상윤 주연의 <공항 가는 길>은 방영 전부터 '불륜'을 미화하는 것이냐는 '정서적 반발'에 부딪쳤다. 제작진은 부디 예단하지 말고 작품을 보고 판단해 달라 읍소하며 이 작품에 대한 거부감을 진화하는데 고심했다. 하지만, 같은 불륜을 다루는데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에는 그런 풍문이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제목에서 부터 노골적으로 아내가 바람을 핀다는데? 벌써 '불륜'에 익숙해 진 걸까? 아니 그것보다는 로맨틱한 멜로로 그려진 불륜인 듯한 <공항 가는 길>과 달리, 피해자 남편 도현우(이선균 분)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적 상황을 고심한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작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라는 파격적인 제목의 jtbc 금토 드라마, 이는 이미 2007년 일본에서 방영된 바 있는 동명의 드라마 리메이크 작이다. 일찌기 <여왕의 교실(2013)>에서부터 최근 김희애 주연의 <끝에서 두 번째 사랑>의 반응에서도 보여지듯이 한국적 실정에 맞지 않은 무리한 각색의 일본 드라마는 시청률은 물론, 출연한 배우들에게조차 부담을 안기며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에 어두운 기운만 불어넣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한국적 상황에 맞게 외주 제작사의 피디 도현우와 슈퍼우먼인 그의 아내 정수연(송지효 분)라는 현실적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또한 아내가 바람을 피게 된다는 도현우의 개인적 위기와 그가 소속된 외주 제작자가 지금껏 해오던 영화 프로그램 대신 '자극적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불륜을 소재로 한 아침 방송을 준비하게 되는 것으로 '불륜'을 끌어들인다. 거기에 도현우의 친구이자, 이웃 사무실을 쓰고있는 바람둥이 최윤기(김희원 분)을 등장시켜 '불륜'을 다각화시킨다. 일본 원작 드라마가 있음을 알고 보면 상당히 '일본 드라마적' 설정이지만, 1회에서 부터 이선균 특유의 권태로운 생활인으로서의 연기 톤을 앞세워 아내의 불륜을 끌어들인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그 자체로 한국적 상황에 걸맞는 해프닝으로 받아들여진다. 



의도치않게 아내의 불륜으로 의심된 문자를 보게된 남편 도현우, 기존 한국 드라마가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아내의 '배신감'에 촛점을 맞추거나, 지금 방영되고 있는 <공항 가는 길>처럼 불륜보다는 사랑을 부각한 드라마들이었던 데 반해,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최근 변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신선하게도 피해자가 된 남편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정작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를 더욱 신선하게 만드는 것은 피해자 남편보다, 그가 아내의 바람에 반응하는 방식이다. 

이 드라마가 2007년작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 한 것이라지만, 일본 드라마 역시 2005년 한국에서도 발간된 바 있는 동명의 소설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리얼 스토리'이다. 고민과 답변을 주고 받는 일본의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 goahead란 아이디로 올린 고민에 2주만에 10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고, 언론에 화제가 되어 '부부의 사랑'에 대해 일본 사회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내용을 글로 옮긴 것이다. 

네티즌과 함께 불륜을 고민하다. 
한국 버전의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역시 원작 리얼 스토리의 방식을 고스란히 옮겨온다. 고민 상담 사이트 대신, 최근 우리 사회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디씨 인사이드의 주식 갤러리라는 익숙한 인터넷 공간을 배경으로 도현우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다. 익명의 인터넷 게시판에 고민을 털어놓은 남편, 그리고 그가 소속된 불륜 프로그램에 고민을 호소해온 남편, 이 상황은 '해프닝'이지만, 정작 자신의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을 수 없는 우리 사회 남자들의 막막한 사회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술자리에서 가장 솔직한 듯하지만, 정작 자기 가정의 솔직한 이면을 고백할 수 있는 관계를 가지지 못한 남자들의 현실적 모습을 드라마는 솔직하게 까발린다. 



또한 그런 익명의 게시판에 토로된 남편의 고민에 연달아 달리는 댓글들의 양상은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한 사람들이라는 너무도 익숙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묘한 공감대를 얻어 간다. 함께 한강에 가자부터, 시시껄렁한 농당 따먹기, 그리고 가장 진지한 댓글까지, 현재 각 인터넷 게시판의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온 듯한 모습을 드라마는 복기한다. 드라마는 주, 조연 배우들과 함께, 그 댓글을 다는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우리 시대의 풍경을 묘사해 간다. 그러면서,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도현우 개인의 바람에서 마치 그 예전 이웃집 사건에 감놔라 배놔라 했던 마을 주민처럼, 인터넷 마을의 이웃들의 참견을 통해 부터 우리 시대의 만화경으로 구도를 확장해 간다. 정작 도현우 본인은 심각하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다보면 그의 심각함보다 그에게 참견하는 직장 동료를 비롯한 미지의 이웃들의 면면이 더더욱 관심을 끄는 인터넷판 시트콤이랄까. 

<송곳(2015)>으로 잠시 외도를 했던 <올드 미스 다이어리>와 <청담동 살아요>의 김석윤 피디가 연출이라 하면 그도 그럴만 하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처음 이선균-송지효로 시작된 한 가족의 평지풍파는 김희원-예지원을 넘어, 이선균 네 사무실 식구들로, 이제 김영옥, 김혜옥, 우현 등의 쟁쟁한 특별 출연진들의 네티즌들로 확대되며 신선한 드라마적 시도가 된다. 도현우네 가정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직간접적 참견들을 통해, 우유부단하고 찌질한 도현우는 부화뇌동하며, 아내의 불륜을 추적해 간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원작 리얼 스토리가 익명의 게시판 댓글들을 통해 부부의 사랑을 생각해 보았듯이, 도현우 역시 주변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며 분노와 배신을 넘어, 불륜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도현우네가 만드는 '불륜' 프로그램과 함께 이런 일련의 해프닝들이 이혼율 세계 1위 우리 사회에서 현실이 된 '불륜'을 생각해 보게 만들고 있다. 
by meditator 2016. 11. 5. 06:19

매주 월요일 녹화를 하는 <썰전>은 늘 '시의성'에 있어서는 한 발 밀릴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제발 사건들이 화요일 이후에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전원책 변호사의 볼멘 소리처럼, 녹화가 있는 월요일 이후 급변하는 정세에 종종 썰전은 '전스트라무스'가 되어 예지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또한 종종 뒷북이 되고만다. 물론 대선 특집처럼, 시의성을 살리기 위해 다시 녹화를 하기도 하지만, 불가피하게 '뉴스'가 지나간 후 '추수'를 해야 하는 처지인 경우가 언제나 <썰전>의 딜레마였다. 


지난 주 유시민 작가의 외유로 인해 두 패널의 활약이 적었던 <썰전>, 대신 mc 김구라의 단독 진행으로 각계의 의견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한 가운데, 속시원한 이재명 성남 시장의 발언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특집'으로 마련된 3일자 <썰전>의 두 패널의 어깨가 무거워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특집' 썰전은 특집다웠을까? 아쉬움은 남지만, 그럼에도 저마다의 '프레임'으로 최순실 정국이 혼돈으로 빠져드는 상황에서 <썰전>은 정론으로서의 제 몫은 해낸 것으로 보여진다. 



언론의 10가지 과제 
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 센터 회의실에서는 전국 언론 노동조합, 한국 기자협회, 한국 pd연합회 등 12개 단체가 참여한 언론 단체 비상 시국 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가 열렸다. 날마다 최순실과 관련된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왜 '비상'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바로 그 때문이다. 연일 계속되는 보도로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가운데 지나치게 한 인물에 촛점이 맞춰진 채 '가쉽성' 보도로 논점이 흐려지고 있다는 판단이 언론 단체들을 '비상 시국 대책회의'로 결집시켰다. 

이에 대책 회의는 비상 시국에 언론이 보도해야 할 10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가 △외교 사안에서 대통령은 어디까지 최순실에 의존했는가 △예측할 수 없고 돌발적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최순실의 영향인가 △재벌과 대기업들은 최순실과의 거래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최순실·차은택이 사유화하고 검열한 문화·행정 사업의 끝은 어디인가 △이화여대 정유라(최순실 씨 딸) 특혜의 배경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최순실의 청와대·공직 인사 개입을 어디까지 허용했는가 △공영방송은 최순실 인사 전횡에서 자유로웠는가 △최순실과의 관계에 침묵하는 자는 누구인가 △산적한 의혹 규명에 나선 검찰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 등 모두 10가지다.

10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즉 최근 벌어진 사안에서 한 개인에 대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사건의 본질인 대통령의 책임과 시민들의 삶에 대한 관점에서 현재의 사건이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특집 <썰전>의 평가도 이루어 져야 한다. 

jtbc 뉴스룸의 보도로 시작된 만천하에 알려진 최순실이란 이름 석자,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국민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준 국정 농단 사태, 하지만 이 사태를 둘러싼 각 정치 집단, 언론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태를 재해석하고 있다. 심하게는 주변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그분이 불쌍하다는 식에서 부터, 하야와 탄핵까지 각 집단의 입장은 편차를 가진다. 하지만 날마다 최순실과 관련된 '숨겨진 사실'들이 드러나며, 그 '사실'은 지극히 흥미 위주의 '가쉽성' 기사로 도배되며 대중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jtbc 뉴스룸은 날마다 충격적인 사실들을 보도하지만, 그에 뒤질세랴 종편을 위시한 각 언론들이 연예인 신변잡기 다루듯 최순실을 훑어 내리고 있는 것이다. 



특집으로서 본질을 짚다. 
이런 상황에서 2주만에 비로소 자리를 함께 한 패널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는 범람하는 사실들 속에서 가쉽 최순실게이트가 아니라, 이 사건의 본질이 박근혜 게이트라는 것을 정확하게 짚는다. 키맨으로서의 고영태, 그리고 새로운 실세 차은택의 부각과 함께, 태블릿 피씨가 입수된 뒷배경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건 가쉽으로서가 아니라, 최순실이란 인물의 비공식적인 인간 관계, 그리고 그런 인물을 의지하는 대통령의 무능한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최순실의 언니, 최순득이란 또 다른 배후 인물의 존재를 드러내며 이 사건이 최순실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결국 최순실이 가공할 만한 국정 농단이 가능토록 한 대통령의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음을 조목조목 따져 명확하게 하는 것으로, 특집으로서의 본분을 다한다. 즉, 최순실이든, 최순득이든, 혹은 정유라, 정시호든, 그들이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를 가능케 하도록 하는데 있어 대통령 박근혜의 책임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날의 결론이다. 또한 그런 박근혜의 무능, 무지, 그리고 몰지각한 책임 전가에 대해 최근의 사태를 두고 가급적 거리를 두려는 새누리당의 책임성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더불어 31시간을 자유로이 놔두는 등 조율된 행보를 보이는 검찰에 대한 예리한 분석도 빠지지 않았다. 

즉 대책회의가 내세운 10가지 항목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어떻게든 대통령과 거리감을 두려는 여당의 작태도 낱낱이 고발한다. 물론 아쉬움도 남긴다. 대책회의의 문항에서 보여지듯이 ''썰'로 존재하는 대통령을 등에 업은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대해 문화, 경제, 그리고 국방에 이르기 까지의 '농단'을 조목조목 밝혀 주는데 있어, 130분은 부족했던지, 그에 대한 설명은 아쉬웠다. 재판 과정에서 밝혀지는 것에 따라 <특집 2>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사실 보도의 공은 jtbc뉴스룸의 몫이라 여겼는지.

또한 그토록 단두대를 소리높여 외쳤던 전원책 변호사, 특집의 마무리에서 여전히 호기롭게 '올단두대'라 외치는 전원책 변호사가 대통령의 행보와 관련된 언급에서 '문민 정부'를 들먹이며 그간 모든 대통령들이 대통령을 할 만한 깜냥이 안될 만큼 무식했었다는 '양비론'식의 평가는 유시민 작가의 지적처럼 물타기였다. 목소리를 높인데 반해, 전원책 변호사의 분석은 두루뭉수리했고, 시스템의 지적은 박근혜의 책임 소재를 자칫 흐트릴 우려가 높았다. 그런 전원책 변호사의 물타기를 간파하며 유시민 작가의 발군의 분석력과 위트로 현 상황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준다.

물론 이번에도 노스트라다무스의 도움이 없었던지, 두 사람은 과연 누가 박근혜 정부의 녹을 먹고자 하겠는가란 현답을 내렸지만, 여전히 세상의 '권력'을 향한 욕망이 지극하다는 것을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을 서둘러 결정된 총리와 비서진의 일방적 발표가 증명한다. 또한 유시민 작가의 하야라는 최악의 사태 대신 이제라도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남은 임기를 잘 해내시라는 충고는 현실에서 여지없이 무기력지고 만다. 또한 최근 영화의 독점을 반대하는 법안을 입법한 안철수 국민의 당 대표에 대한 '인물론적' 평가는 조만간 다가올 대선 정국에서 경솔하다 싶기도 하다. 만능이나, 전지전능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각자의 프레임으로 최순실 정국이 논점이 흐려지는 시점에서 <썰전>은 그 본질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 것만으로도 제 몫을 충분히 해냈다. 하지만 대책회의의 10가지 의제를 향한 갈 길은 아직도 멀다.


by meditator 2016. 11. 4. 05:26

또 하나의 마블 표 히어로가 등장했다. 그 이름부터 낯선 '닥터 스트레인지', 닥터라지만 영웅으로써 그가 가져온 세계는 지금까지 영웅물에선 생소한 세계이다. <인셉션>이 '자각몽'을 통해 세계를 확장하고, 변형하며, 시간을 주물렀던 것처럼, 이제 새로인 등장한 영웅 '닥터 스트레인지'는 현상을 넘어, 시간과 공간을 쥐락펴락한다. 또 하나의 세계다. 하지만, 그가 이 새로운 개념의 세계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여전히 '마블'스럽다. 익숙한 듯 신선한 또 하나의 영웅 서사이다. 




<아이언맨>에서 <캡틴 아메리카><토르>까지 세계의 확장 
답답한 현실에 갇힌 사람들은 그들의 불가능한 현실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마치 동굴 속과 같은 그 곳에서, 현실을 돌파해줄 꿈같은 영웅들을 만난다. 그렇게 사람들이 찾아든 극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새로운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대표적인 곳은 마블, 마블은 일찍이 2008년 <아이언맨> 이래 거의 해마다 새로운 영웅들을 탄생시키며 자본주의 사회 극장의 영웅군의 선두 주자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극장의 영웅은 여전했다. 반듯한 슈퍼파워 외계인 슈퍼맨이 있었고, 악당인지, 영웅인지 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그럼에도 언제나 키다리 아저씨 노릇을 거부하지 못하는 배트맨이 있었다. 하지만 나날이 고도화되어진 문명과 그에 걸맞게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들에 닳아진 대중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석의 영웅'들은 훈장처럼 시들해져만 갔다. 바로 그때 심기일전하는 마블과 함께 등장한 영웅 <아이언맨>이 있었다. <아이언맨>은 '도덕' 교과서나, '철학' 교과서같은 이전의 영웅들과 달리, 가장 '속물적'인 자본주의적 인간형이다. 그 스스로 '재벌'인 주인공이 자신의 돈으로 맘껏 뿌리며 그 결과물로 만든 '아이언맨'을 통해 '인류 평화'에 기여한다는 설정은 가장 자본주의적이면서, 그러기에 가장 현실에서 길어올리기에 적절한 환타지였다. 결국은 기승전 재벌의 권력인 세상에서, 제 멋대로이지만 착한 재벌의 환타지라니. 

그렇게 현실의 가장 자본주의적 인간인 '아이언맨'이 등장했는가 싶더니, 거기에 2011년 두 명의 히어로를 더 얹는다. ( 물론 아이언맨과 함께 찾아온 자본주의 과학 기술이 낳은 괴물이자, 영웅 헐크도 2008년 <인크레더블 헐크>로 합류한다. 하지만 본격 마블의 헐크로 활동한 것은 에드워드 노튼의 헐크보다는 어벤져스 시리즈에 합류한 마크 러팔로의 헐크이기에 2008년의 헐크에 대한 언급을 더하진 않겠다) 바로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의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해 <토르>의 토르이다. 두 영웅은 각각 '역사'와 '전설'을 담당한다. 



캡틴 아메리카는 세계 전쟁을 수행하는 세계의 방위군 역할을 하던 시대의 '미국'을 상징한다. 그 시절 미국의 평범한 청년이 슈퍼 솔져 프로젝트를 통해 영웅이 되듯, 변방의 국가 미국이 몇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쳐 전 세계의 보호국으로 성장하던 그 시대의 가치관과 그 시대의 부도덕, 아이러니를 캡틴 아메리카를 통해 구현한다. 그에 반해 고도화된 문명의 시대에 '망치'란 어불성설의 무기를 들고 설치는 고대 인간이란 자가당착을 절묘하게 설득해낸 토르는 바로 서양 역사의 근간이 된 '설화'적 인물이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선 미국과 달리 큰 흥행의 성공을 얻지 못한 것처럼, 토르에 대한 배경 지식에 있어서의 익숙함이 바로 영화 성공의 근간을 이룬다. 마치 우리나라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홍길동이란 영웅을 옛날 이야기처럼 듣고 자라나듯, 서양 문화 속 망치를 든 힘센 거인 토르의 익숙함은 순조롭게 영웅의 세계 안에 '전설'의 자리를 내어준다. 

그렇게 마블은 현실의 자본주의 세계에, 과거 미국과 전설의 영역을 더해가며 영웅들의 수와 함께 세계를 확장해 간다. 즉 그저 새로운 영웅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확장해 가는 식으로 서사의 영역을 넓혀가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어벤져스' 군단은 아니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외계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방식 또한 마찬가지다. 이와 함께 지구를 위협하는 적의 존재가 세계 그 어느 곳을 넘어, 과거, 천상계, 우주, 그리고 이제 시간과 공간 너머 그 어디까지 그 어느 곳에 뛰어나온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구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새로운 세계와 익숙한 히어로물의 서사 
<닥터 스트레인지>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인지라는 영웅이 우선이 아니라, 그가 품고 올 세계를 앞세운다. 잘 나갔던 외과 의사, 하지만 뜻하지 않았던 교통 사고로 두 손을 잃은 불운의 주인공이 자신의 손을 고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만난 새로운 영적인 세계. 하반신 마비의 환자가 뛰어당기며 농구를 할 수 있지만 그의 신체적 치료는 별반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신의 힘이 그것을 가능케 하듯, 여전히 두 손은 떨지만 영적 능력으로 공간을 확장시키고, 차원을 이동하고, 유체를 이탈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공을 들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새로운 세계에만 함몰된 건 아니다. 예의 <아이언맨>이래 히어로물의 익숙한 구성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가장 섬세해야 할 외과 수술실에서 음악에 맞춰 흥얼거리고, 그 음악의 연대 알아맞추기를 하는 천재적 능력의 외과 의사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분), 그는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 못지 않은 자뻑형 인간이다. 무기 사업가 토니 스타크가 부상을 철갑 슈트로 극복하듯, 닥터 스트레인지는 교통 사고로 쓰지 못하는 손을 치료하기 위해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 분)의 수하로 들어간다. 그의 아래서 예의 천재적 능력으로 순조롭게 에인션트 원의 능력을 흡수한 닥터 스트레인지, 하지만 '속물'인 그는 자신의 수술 능력 회복에 관심이 가있고, 하지만 그에게 닥찬 운명은 '세계를 구하는 영웅', 그 영웅의 도정에 수술에 능통한 의사와, 생명을 구하는 영웅 사이의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결국 스트레인지는 까다로운 망토가 선듯 그를 택하듯, 운명적으로 짐지워진 자신의 길을 향해 나선다.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 그 인간적인 캐릭터에게 닥친 절망, 그리고 그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길에서 만난 뜻하지 않은 영웅의 운명, 그리고 선택 등은 그간 히어로 물에서 반복되어 답습되어 온 익숙한 서사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생소한 유체 이탈 등의 공간과 시간의 확장, 변형이라는 '영적 세계'의 난해함을 익숙한 영웅 서사로 채워가며 신선함과 익숙함을 동시에 선사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뻔한 영웅물의 서사를 tv  시리즈 <셜록>과 <이미테이션 게임>을 통해 기괴하고 천재적인 캐릭터로 이미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베네딕트 컴버배치라는 배우를 통해 설득하고자 한다.  물론 그래서 익숙해서 지루하고, 신선해서 생경할 위험성도 동시에 내포한다. 그 익숙함이 뻔하게 받아들여지면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저 그런 또 하나의 컨셉을 가진 히어로물이 될 터이고, 그 새로운 세계가 경이롭다면 마블 월드의 확장에 기꺼이 공감하는 것이리라. 
by meditator 2016. 11. 3. 16:16

3포세대, 5포세대, 젊은 층을 상징하는 저 '포기'의 규정 안에 꼭 들어가는 요소가 있다. 바로 결혼! 인구 1000명당 결혼하는 사람 5.9건, 남성 40%, 여성 58%가 꼭 결혼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라고 답하는 시대, 결혼이 미친 짓이 되어버린 시대, '비혼'이 사회 문제가 되고, '결혼 고시'라는 말이 등장하는 시대, 결혼적령기에 달한 28살의 피디가 직접 발로 뛰어 청춘들의 결혼 실태 보고서를 작성했다. 바로 <mbc 다큐 스페셜-우리가 결혼하지 않는 진짜 이유>다. 




결혼은 언감생심, 청춘의 사라진 봄날
결혼식장 예약은 차고 넘치고, 청첩장은 이제 진화를 거듭하여 카톡으로 전송되는 세상, 하지만 과연 누가 결혼을 하는 것일까? 피디 5년차, 이제 막 정규직이 된 피디가 만나본 젊은이들에게 결혼은 언감생심 청춘의 봄날조차 막연한다. 24일 방영된 1부는 그 청춘들의 결혼은 커녕, 연애조차 꿈꾸기 힘든 현실을 다룬다.

통계청 발표 2016년 청년 실업률 12%, 그러나 체감 실업률은 34%, 입시를 통과하여, 대학만 가면 다 되는 줄 알았던 청년들은 여전히 '시험 준비' 중, 혹은 구직 중이다. 그런 청년들에겐 '결혼'은 먼 나라의 일, 심지어 연애조차 사치가 되었다. 결혼을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취업을 해야 결혼도 꿈이라도 꿔보지, 하지만 사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청년들에게 결혼은 먼 미래의 일, 당장 연애조차 남의 일이 되어버렸다.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 먹어도 쉽지 않다. 한국의 결혼 비용 2억 7천만원, 장갑을 만들어 파는 28살 예비 신부가 잠도 안자고 50살까지 만들어야 댈 수 있는 금액이다.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불황을 이제 넘어서고 있다는 일본, 하지만 장기간 경기 침체가 낳은 것은 젊은이들의 '결혼 포기' 풍속도, 이제 일본의 젊은이들은 '러브 호텔'이 폐업이 비일비재할 정도로,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거나, 그 욕구를 아예 봉쇄한 '신족속'으로 일본이란 사회의 재생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다. 오죽하면 연애를 학원에서 배우기에 이르렀을까. 

중국이라고 다를까? 경제 성장의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부국 중국, 하지만 그 경제 성장의 열매가 모두에게 고루 나뉘어 지는 것은 아니다. 빈익빈 부익부의 차별적 성과는 중국의 젊은이들의 결혼 풍속도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북경 출신의 있는 집안 자제들은 '돈을 뿌리는 결혼 이벤트를 벌인다. 하지만, 그런 부의 그늘 속에서 북경으로 올라온 지방의 젊은이들은 부동산 시장의 버블 현상 속에 4차 독신 혁명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할 형편에 놓여있다. 

결국 중국이든, 일본이든, 한국이든 자본주의 사회는 고도화되어가지만, 그 속에서 그 경제의 성과물이 젊은이들에게 고루 배분되어지지 않고, 오히려 이제 '결혼'과 연애를 사치로 여길 정도로 '젊은이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음을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보여주고 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그래도 하늘 아래 남자와 여자가 있다면, 그 누군가는 이런 현실을 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결혼에 도전하는 '용자'가 있을 텐데, 10월 31일 방영된 <우리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2부는 바로 '결혼의 용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그 용자 중 한 명은 이 당돌한 다큐를 발로 뛴 피디 자신이다. 

이제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직장에 안착하게 된 피디, 연하의 남친도 생겼다. 당연히 결혼 말도 나올만, 두 사람은 이제 본격적으로 결혼의 여정에 함께 돌입해 본다. 하지만, 그 첫 여정에서 그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결국 '돈', 전셋집을 알아보려니 엊그제 1억이라던 전셋집이 며칠 뒤에 1억에 4천을 얹어줘도 없단다. 결국 서울에서 집 구하기를 포기하고 길을 떠난 두 사람, 경기도 언저리의 아파트, 아니 빌라는 얻으려 하니, 1층의 식당 들에서 흘러오는 고기 굽는 냄새를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주거 조건이 열악하다. 그러면 우선 집은 뒤로 미루고, 결혼식 비용은? 겨우 골랐다는 드레스는 제일 비싼 거고, 그 남들 다간다는 몰디브 신혼 여행 비용은 1인당 천만원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겨우 대학 등록금 융자를 다갚고 다시 빚을 얻어 결혼을 하려 하니, 빚만 갚다 마는 청춘이란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난다. 과연 이렇게라도 해서 결혼을 해야 할까?

그런 피디의 회의는 결혼이란 제도를 다르게 통과하고 있는 커플에 시선이 돌려진다. 중식이 밴드의 리더 중식씨와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여성, 그 두 사람은 결혼이란 형식에 소비되는 비용이 너무 아깝단다. 결혼을 해도 헤어지는 것이 비일비재한 세상에, 당장 자기 앞가림도 힘든데, 돈을 들여 결혼을 하다니, 그래서 두 사람은 짐을 합치고, 아기 대신 아기같은 강아지 두 마리와 산다. 향후 5년, 아니 최소한 3년은 이 생활을 책임질만 하단다. 

아기가 없는 부부는 또 있다. 각각 직장 생활을 하는 박준모-박미정 부부, 두 사람의 명절은 시댁에 가서 음식을 하는 대신,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불효 캠핑을 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서로를 집이라는 직장의 동료라 칭하는 두 사람은 아기 대신 고양이를 키우고, 육아 대신 자기 계발을 위해 기꺼이 2년간의 해외 근무를 자원한다. 

물론 결혼도 하고, 아기를 낳은 부부도 있다. 만화가 김영석-전정미씨 부부, 그들은 서울 살이 대신 부모님이 계시는 지방으로 내려와 아이를 낳았다. 함께 아이를 돌보는 두 사람의 일상을 채우는 것은 그들의 이쁜 아들, 그래도 남편은 만화 연재를 계속하지만, 아내는 아버지가 아이를 돌보아 주기 시작한 최근에 이르러서야 다시 만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단돈 500만원으로 결혼하기 란 만화로 이름을 알렸던 부부, 하지만 부부는 입을 모아 말한다. 결혼은 돈을 안들이고 할 수 있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무조건 주변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고. 



아이러니하게도 2부의 다큐에 등장한 세 쌍의 부부, 그 세 커플 중 인간의 아이는 오로지 한 커플에게만 있다. 나머지 커플의 아이는 개와 고양이, 인간의 아이보다, 동물들이 '아이' 노릇을 하는, 결혼을 어찌어찌 했지만, 아이는 부담스러운 현실을 다큐는 의도적이지 않게 증명하고 만다. 

물론 다큐는 이제 막 불투명한 앞날에도 불구하고 , '사랑'이란 이름만으로 결혼을 감행한 부부의 인터뷰를 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긍정적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1부에 이어, 2부를 시청하고 있노라면 2부 마지막의 그 희망적인 언급이 마치 인지 부조화처럼 느껴진다. 아직 남편이 학생이라는 부부는 그 평균 2억 7천만원이라는 결혼 비용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결국 '북경 토박이'의 화려한 결혼식처럼 부모님이라는 뒷배가 없었다면 그렇게 '사랑'이란 이름을 내걸고 결혼을 감행할 수 있을까? 부모님께 육아의 도움을 받는 만화가 부부는 또 어떻고. 야심차게 이제 직장도 생겼으니 결혼을 해볼까 하다가, 실제 결혼 준비 과정에서 멘붕에 멘붕을 거듭하다, 졸업하자 마자 등록금 융자를 갚다가, 그게 끝나니 주택 융자, 그게 또 끝나면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정신없을 현실과 미래의 삶에 눈물을 보이고 만 피디처럼 2부작 <우리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는 청춘들을 자발적 비혼으로 떠밀어 버린 사회, 결혼이 미친 짓이 된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떠받들고 있던 건강한 노동의 기본 단위였던 '가정'을 제도 자체가 파괴하는 딜레마를 증명한다. 과연 청춘들의 건강한 재생산조차 보장하지 않는 사회가 존재 가치가 있을까? 


by meditator 2016. 11. 1.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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