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그만의 '환타지 월드'를 펼쳐보였던 팀 버튼은 그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 연출을 제임스 보빈 감독에게 양보한 대신,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들고 돌아왔다. 과연 '앨리스'와 '모자 장수'를 비롯한 그녀의 친구들보다 더한 매력이 무엇이었기에, 무엇보다 조디뎁이 등장하지 않고도 '기괴한 팀버튼월드'를 구현할 소재가 무엇이었길래 팀 버튼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그 답은 '이상한 아이들'이 등장하는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시간' 속에 숨은 이상한 아이들과 그들을 보호하는 '미스 페레그린', 이들의 신묘한 조합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팀버튼스러움'을 담뿍 드러내고 있으니까. 


타임 루프, 인내심을 요하는 여정 
하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이들 신묘한 미스 페레그린과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또래들과 어울리는 대신 마트에서 일하며 사는 제이크(아사 버터필드 분), 두 눈을 잃은 채 죽은 할아버지로 인해 상심에 빠진다. 그 치료를 위해 찾은 할아버지가 알려준 섬에서 시간의 문을 통해 어릴 적 할아버지가 들려준 동화 속 주인공들을 만나게 된다. 



일상의 삶에서 '존중'받지 못한 삶을 살던 어린 소년이 뜻밖에도 자신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 들어간 곳에서 신비로운 존재들을 만나게 되는 이 장면 매우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이모네 집에서 천덕꾸러기로 살던 어린 소년이 뜻밖의 사건으로 자신이 인간 '머글'이 아니라, 마법사라는 것을 알게되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도입부와 유사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가난하거나, 일상의 삶에 도피한 주인공이 '환타지'월드에 빠져든다는 점에서는 <챨리와 초콜릿 공장>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하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돌연변이들이 그들의 보호자를 만나 함께 어울려 지낸다는 면에서는 <엑스맨>의 설정과도 비슷하다. 착한 돌연변이와 그렇지 못한 돌연변이의 충돌이라는 지점에서는 더더욱.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을 비롯한 주인공 주변의 캐릭터들이 한데 힘을 모아, 여기서 중요한 건 물론 그들의 비범한 능력이다. 그 남다른 능력으로 '악'을 징벌한다는 지점에서는 마블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물의 얼개를 고스란히 이어간다. 랜섬 릭스의 원작 소설을 <엑스 맨;퍼스트 클래스>와 <킹스맨>의 제인 골드만이 '각본'을 맡았다니, 굳이 다른게 이상할 지경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어디서 본듯한 슈퍼 히어로물의 얼개들이 팀 버튼이란 감독을 만나면 그 색채가 달라진다. 제이크가 '타임 루프'에 들어섬과 동시에 팀 버튼월드도 만개하기 시작한다. 대번에 집채만한 당근을 자라게 하는 피오나(조지아 펨버튼 분)도, 그 피오나가 키운 거대한 당근을 번쩍 들어올리는 브론윈(픽시 데이비스 분)도, 투명인간 말라드(카메룬 킹 분)도, 공기보다 가벼운 엠마 블룸(엘라 퍼넬 분)도, 두 손만으로 찻물을 끓여내는 올리브(로렌 맥크로스티 분), 벌을 키우는 소년(마일로 파커 분)도, 생명을 불어넣는 에녹(핀레이 맥밀란 분)도 팀 버튼의 세계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다. 인형이 살아 칼춤을 추고, 바닷 속에 수장되어있던 배가 엠마의 날숨과 올리브의 화력으로 다시 항해를 시작하는 장면은 팀버튼다웠다. 무엇보다 <유령 신부>이래 팀버튼의 시그니처였던 해골이 다시 에녹의 도움으로 다시 한번 활약을 보이는 모습은 반갑기까지 했다. 

뻔한 히어로물도 팀버튼을 만나면
영화는 해리 포터처럼 '평범한 인간의 삶'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몰랐거나, 혹은 알았다 하더라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평범한 제이크가, 아이들을 노리는 할로게스트 사냥꾼이라는 자신의 숨겨진 돌연변이 능력을 수용하고, 리더가 되어가는 성장물의 형태를 띤다. 이를 위해 극 초반 제이크의 캐릭터에 집중하고, 그에 집중하는 반면, 이미 '특이한' 이상한 아이들의 캐릭터는 그저 소개만으로도 충분한 깜짝쇼가 될 것이란 자부심을 보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 제이크가 페레그린의 부재 이후 아이들과 힘을 합쳐 혹은 심지어 그들의 리더인 양 '사냥꾼'으로서의 면모를 자랑하는 과정의 '개연성'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 툭 건너 뛰어버린다. 눈알을 쌓아놓고 서로 마음껏 드시라며 기괴함을 설파하고, 페레그린까지 잡아가며 기세등등하던 하얀 눈의 바론(샤무엘 잭슨 분)과 할로게스트들은 아이들의 연합 작전 속에 무기력하게 희화화되어 처단된다. 설득력대신 초반 설명식으로 나열되었던 능력을 한편의 게임처럼 진기명기식으로 보여준 작전으로 '이상한 아이들'의 소임을 설명한다. 





영화는 팀버튼스러움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여전히 건재한 팀버튼스러움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어쩐지 익숙한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을 나선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여전히 영화 곳곳에서 팀버튼스러운 색채는 진한데, 어쩐지 조금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그건, 원작을 소화하는 팀버튼의 방식이거나, 채 소화를 해내지 못하는 미진함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챨리와 초콜릿 공장>은 로얄드 달의 동화이다. 영원한 유년에 대한 찬가와도 같은 이 이야기가, 또 다른 엉뚱한 소년같은 팀버튼을 만나, 원작 이상의 분위기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에 반해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그 보다는 좀 더 복잡한 성장기의 소설이다. 물론 원작 자체가 이미 슈퍼 히어로물의 성격을 띠지만 초등용 동화와는 다른 '중층적 서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보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퍼즐같은 소설이라지만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동화로 편역된 작품이니, <미스 페레그린과 아이들>이 가는 낯선 행보와는 비교할 바가 다르다. 그래서일까, 감독은 제이크가 타임 루프에 들어서기까지의 개연성에 집중한다. 또한 타임 루프의 한계와 선택에 문제를 엠마의 입을 통해 구구히 설명한다. 그저 툭 떨어지면 다 해결되었던 '이상한 나라'대신 매일을 되풀이 하는, 전세계에 숨겨져 있다는 타임 루프라는 새로운 소재를 관객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하려다 보니 '설명'이 늘어진다. 반면에 제이크나 아이들의 반전이나 성장은 성장 소설이 천착하는 그 고민의 과정을 축약하고 앞서나간다. 제목에 앞선 미스 페레그린이 생각보다 존재감이 적었던 반면, 소심하던 제이크, 그리고 페레그린의 보호 속에서만 살던 아이들이 영화 후반 속시원한 활약을 보이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어쩐지 뜬금없다는 생각이 뒤미처 든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언제나 팀버튼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개연성은 에녹의 손길 한번에 칼출음 추는 해골처럼, 듣고보도못한 신묘한 캐릭터가 아니었나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캐릭터와 신기한 세계가 상대적으로 내적 개연성이 필요한 성장 소설과의 충돌로인해 어쩌지 못한 빈틈이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 가진 공간이 아니었을까. 그 또 새로운 신기하고 희한한 팀버튼 표 이상한 세계에 만족스럽다면 영화가 만족스러울 것이고, 개연성있는 서사를 기대한다면 어쩐지 완급 조절이 안된 아쉬움이 남는, 그런 이중적 감상을 영화는 남긴다.과연 캐릭터의 소개와도 같았던 이 영화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거울나라처럼 시리즈의 서막이 될지, 단편이 될지는 이 영화의 성과가 답해줄 것이다. 
  

그런 서사에 대한 아쉬움으로 인해, 평범했던 소년의 성장, 전쟁 중에 보호받지 못하는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각성'은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다. <챨리와 초콜릿 공장>이래 여전히 팀버튼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를 '환타지'를 통해 풀어간다. 무능력한 아버지대신 일을 하느라 친구 하나도 사귀지 못하던 소년은 이제 '환타지' 세게에서 아이들의 리더가 되고, 할아버지를 구하고, 나쁜 괴물들을 물리치는 슈퍼 히어로로 거듭난다. 그런가 하면 미스 페레그린에 의해 일분 일초까지 과잉 보호(?)받던 아이들은 이제 자기 자신은 물론, 자신들의 기괴한 능력으로 죽을 위기에 몰린 미스 페레그린과 자신들의 타임루프까지 구하는 히어로집단으로 거듭난다. 마치 '똥' 이야기라면 그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재밌어 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에게는 기괴함으로 보일 페레그린네 아이들의 신기한 능력은 그저 엑스맨급의 흥미로운 환타지일 뿐이지 않을까. 여전한 팀버튼스러움이 반갑고, 아쉬웠던 페레그린네 아이들의 활약상이다. 


by meditator 2016. 9. 30. 07:12

2010년 기준 한국의 다이어트 관련 산업은 3조원에 육박한다. 그 '다이어트'의 강박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국내 비만 인구는 오히려 1.6배 늘어났고, 그중 초고도 비만 인구도 2배 넘게 증가했다. 2025년이 되면 인구 17명 중 한 명이 비만이 될꺼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만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비만'과 '비만'으로 인한 각종 질병에의 부담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오죽하면 '비만은 전염병'이며, '비만세' 도입이 현실화되고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여러 시사 프로그램이 '건강' 혹은 '다이어트'에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1년 사이 여러 다큐 프로그램들이 이와 관련된 내용을 방영했지만 그 중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것은 <mbc스페셜>과 <sbs스페셜>이다. 이들 다큐는 기존 우리가 건강과 건강 관리에 대해 가졌던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한 기획을 통해 우리 사회 건강이데올로기의 새 장을 열었다. 첫 포문을 연 것은 sbs였다. 



비만의 주범, 얼굴이 바뀌다.
2015년 9월 <콜레스테롤을 허하라>라는 획기적인 기획으로 기존 건강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렸다. 기존 건강에 대한 상식은 단적으로 '기름진 음식에 대한 극단적 터부'였다. 건강 검진 기록부에 등장하는 총콜레스테롤, HDL, LDL, 중성 지방 등은 비만의 지표였고, 그로 인한 부작용의 증거였다. 하지만, 미국 식생활지침 자문위원회가 콜레스테롤을 우려 목록에서 제외한다는 발표에 근거하여, 이 다큐는 음식으로 섭취하는 콜레스테롤과 혈중 콜레스테롤 사이에는 연관이 없음을 주장했다. 그에 따라 그동안 콜레스테롤의 주범으로 몰린 '계란, 버터' 등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유도했다. 
이렇게 포문을 연 SBS에 맞대응한 것은 11월 <MBC스페셜-채식의 두 얼굴>이다. 역시나 비만을 피하기 위해 선호되는 '채식'에 대해 '건강식'이 아니며 오히려 몸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는 주장을 방영했다. 
이렇게 기존의 건강관에 의문을 제기한 다큐는 2016년 4월 <SBS스페셜-설탕 전쟁>과 마찬가지로 4월에 방영한 <MBC스페셜-밥상을 뒤집다. 탄수화물의 경고>로 이어지면, 기존 비만의 주범이라 여겨졌던 콜레스테롤 등 대신 '탄수화물'과 '당'이라는 새로운 주범을 찾아냈다. 이들 다큐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비만의 원인은 바로 혈중에서 지방으로 전환되는 '당'에 있다고 지적한다. 즉 우리가 '과다'하게 섭취하는 당은 몸안에서 뇌와 에너지를 위해 쓰여지는 약간의 부분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방이나 콜레스테롤로 바뀌는데, 이 과정에서 과중한 '당'의 섭취를 소화해 내기 위해 과도한 인슐린 분비 등의 몸의 호르몬 체계가 무너지고, 그 결과 당뇨 등의 합병증이 생겨난다고 이들 다큐는 밝히고 있다. 즉 그동안 우리가 알던 비만의 주범, 그 얼굴이 바뀌는 순간이다.  



호르몬이 문제라는데
다큐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지난 7월 방영된 <SBS스페셜-다이어트의 종말, 마인드 풀 이팅>은 호르몬에 집중한다. 즉 과도한 다이어트는 오히려 몸의 호르몬 체계를 파괴하여 제 아무리 식단을 조절해도 살이 찌는 최악의 요요를 불러오며, 결국 자신의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신체의 균형을 맞춰가는 호르몬 조절 다이어트를 주장한다. 이런 몸의 균형, 나아가 먹는 것 자체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한 SBS와 달리, 지난 19일에 이어 26일 방영된 < MBC스페셜-밥상 상식을 뒤집다, 지방의 누명 1,2부>는 역시나 파괴된 호르몬 체계를 되돌리는 다이어트 방식으로 '고지방 식이요법'을 주장한다. 

이 다큐가 주장하고 있는 다이어트 방식은 스웨덴 국민 20%가 실천하고 있다는 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식(LCHF)이다. 즉 몸에서 지방으로 축적되는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제한하거나 먹지 않고, 그 반대로 유일하게 먹어도 혈당이 변화하지 않는 지방을 통해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당하는 것이다. 이 다이어트의 장점은 그간 '다이어트'라면 굶거나 식단을 조절하는 등 정신적 고통을 동반했던 것과 달리, 탄수화물을 제한하는 것 외에는, 버터를 듬뿍 넣어 고기를 볶고, 국에 치즈를 더하는 등 포만감을 충족시키는 다이어트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난 1년간 양 방송사를 통해 방여되었던 다큐는 그간 우리 사회에서 신봉시되었던 콜레스테롤에 대한 신앙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비만의 원인에 대한 새로운 조명,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서의 몸의 균형, 호르몬의 균형과 조절을 내걸며, 탄수화물이나, 지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고하고자 한다. 



백가쟁명의 귀결점, 그 아쉬움
이를 위해 다큐는 문제를 제기하고, 이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 해결책에 의거하여 비만한 사례자들의 다이어트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 제기 방식이 옳았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한결같은 방식을 전파한다. 심지어 <밥상을 뒤집다>는 그간 신봉되어왔던 심장병 발병 원인 데이터가 편의적 결과물이었음을 밝히고, <콜레스테롤을 허하라>는 세계적 의약품 1,2위를 다투는 심장병약 스타딘의 음모론을 제시하며 기존의 '건강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짚는다. 

문제 제기와 해결책 제시, 그 해결책에 따른 사례자의 성공이라는 방식을 공통적으로 답보하는 건강 다큐들이 이제 도달한 '호르몬 균형 및 조절'을 위한 심리 치료나 고지방식이라는 지점은 신선하지만, 그 역시 되돌아 보면 또 다른 다이어트의 도정이다. '콜레스테롤을 허라라'라는 문제 제기에서부터 '고지방식'까지 불과 1년의 과정에서 의견은 일취월장하고, 그 해결책은 '백가쟁명'이다. 어찌보면 건강한 문제 제기이지만, 하버드식 건강 식단에서부터, 호르몬 조절 요업, 그리고 이제 고기를 기름에 찍어먹는 과격한 고지방식까지 저마다 유일한 해법인 양 제시하는 것들이 완벽한 마침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날씬한 건강'을 원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건강 요법'을 제시하는 다이어트가 등장할 때마다 솔깃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점, 결국 문제는 탄수화물, 혹은 당의 과도한 섭취로 인한 비만이라는데, 과연 그간 우리가 알아왔던 풍족한 식생활과 그로 인한 비만을 '탄수화물'탓으로만 돌리는 것이 옳을까?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년에 고기 한 두번이나 먹을까 말까 하던 식생활이 상다리가 부러지게 떡 벌어진 진수성찬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탄수화물' 탓이라는 지적은 어쩐지 자가당착이란 물음표가 뒤따른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사나바의 원시인을 운운하기 전에, 무엇을 먹더라도 '과잉'이 된 현대인의 딜레마가 문제가 아닌 건지. 

뿐만 아니라, <지방의 누명> 등에서 제시된 새로운 식이요법의 방식도 그렇다. 추어탕에 밥 대신 집어넣는 치즈 몇 장, 그리고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녹아내리는 버터 등, 외국에서 실용화되고 있는 식재료들을 '다이어트'의 명약인 양 보여주는 그 '무신경'이 안타깝다. 최근에야 우리에게 알려진 카카오닙스니 코코넛오일에서 부터, 브로콜리, 버터, 치즈 등, 우리 땅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들기름 밖에 없다. 우리 조상들이 먹던 먹거리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 식재료들이 오늘의 비만을 구하는 전도사들이라니, 어쩐지 또 따른 '황제 다이어트'를 보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담론, 그것을 발빠르게 소개해야 하는 사명감, 그리고 그에 발맞춰 변화하는 검색어, 하지만 이제 추어탕에 치즈를 넣어먹는 방식을 권장하는 기괴한 만병통치식 식이요법 대신,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가 쉬이 찾을 수 있는 것들에서 건강의 전도사를 찾아봄이 어떨까? 스웨덴이나, 미국의 명성에 기대기전에. 


by meditator 2016. 9. 27. 12:48

지난 1월 종영한 <응답하라 1988>은 변함없이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는 사라진 '골목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일으켰고, 추억이 된 그 시절의 학창시절과 문화들을 불러왔다. 하지만 왜 하고많은 80년대의 시간 중에 88년이었을까? 그저 그리운 '추억'만의 이름으로 그 이전 시대를 불러올 수 없었던 이유를 9월 25일 방영된 <드라마 스페셜-빨간 선생님>이 답해준다. 




<빨간 선생님>의 시대적 배경은 1985년, 장소는 문화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 경상도의 한 여자 고등학교이다. 85년은 3s 정책(섹스, 스포츠, 스크린 등을 중심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배기 정책')의 정점이 된 '어우동(감독 이장호 )'이 흥행에 성공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정책과 달리, 일상의 삶은 <빨간 선생님>에서 인터넷도 없던 시절 솟구쳐오르던 학생들의 호기심이 학교 훈육의 대상으로 통제받던 시절이었다. 학생들은 통제의 눈을 피해 '성'에 대한 궁금증을 이른바 '빨간 책'을 통해 풀었고, 그 '빨간 책'을 둘러싼 웃지못할 해프닝을 드라마 스페셜 <빨간 선생님>은 풀어낸다. 

변태남 사랑에 눈뜨다. 
주인공은 김태남(이동휘 분) 선생, 노총각 선생, 웬만한 여학교의 노총각 선생이라면 학생들에게 인기남일 만도 하지만, 그의 별명은 '변태남', 한창 호기심많은 여학생들에게 그는 고루하고 완고한 '단속'의 상징일 뿐이다. 게다가 가르치는 과목조차도 '수학'이다. 교감 선생님에게 '총애'를 받는 그는 앞장서 학생들을 '다잡았'으며, 그 수단으로 '매'는 일상이었고, 온갖 언어적 모욕과 수모는 그의 특기였다. 아, 노골적인 촌지와 편애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니 제 아무리 노총각 선생이라 해도 여학생들에게 그는 '로망'은 커녕 '원흉'일 뿐이다. 특히 아버지가 안계신 장순덕(정소민 분)에게 다음에는 아버지를 모셔오라며 가슴에 못을 한번 더 박는 말을 무신경하게 내뱉는 그에게 반골 기질이 다분한 순덕은 '선생' 취급을 아예 하지 않는다. 

오늘도 변함없이 머리 길이를 가지고 한바탕 학생들을 뒤집은 그가 퇴근 후 우연히 들른 책방, 거기서 그의 눈에 띤 한 권의 '빨간 책'이 있었으니 바로 장군의 아내와 부하가 사랑을 나누는 내용이었다. 그 제목에 솔깃해 몰래 책을 사온 김선생, 문제는 그가 독서 이후 함부로 버린 그 책이 순덕의 손을 거쳐 성문화에 갈급한 전교생에게 순식간에 퍼져 버린 것. 장군이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던 서재 앞에 등장하는 그 순간에, '계속'이라는 말로 1권을 마무리한 그 책의 다음 편에 대한 갈증은 결국 아버지의 타자기를 유품으로 가진 순덕에게 2편을 쓰는 동력이 된다. 하지만 결국 그 순덕의 창작 생활은 태남의 눈에 띄게 되는데. 

지금까지 태남의 방식대로라면 당연히 순덕을 비롯한 그 '빨간 책'을 돌려 본 학생들을 '취조'하듯 닥달하며 처벌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1권에 감동받았던 독자 태남은 예의 그 훈육 방식 대신, 순덕에게 너무 공부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도 하라는 말까지 돌려 말하며 순덕 버전 '빨간 책'의 또 한 사람의 독자가 된다. 심지어 '좀 더 야하게'라는 후기까지 적으며. 

하지만 독자였던 태남과 달리, 그 빨간 책을 알게 된 교감은 그 책의 저자를 색출하고자 하고, 가정 환경 조사서를 뒤져 타자기를 가진 순덕의 집으로 선생들과 향한다. 하지만 정작 순덕의 집에서 찾은 타자기는 빨간 책 속편을 친 그 마침표가 없는 타자기가 아니었다. 순덕의 타자기가 무사했던 이유는 바로 애독자 김선생의 기지 덕분. 그 일로 김선생은 순덕의 가정 형편을 알게 되고 순덕을 이해하고 이제 비밀 친구로 순덕과 편지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지만, 어쩌면 순덕의 신변에 닥칠 지도 모를 일이 걱정된 김선생은 책을 소각시키며 순덕의 잠시 잠깐의 재능을 좋은 길로 유도하고자 한다. 

변태남에서 참 스승으로의 비극적 행로
하지만 김선생의 우려는 그가 태워버린 책으로 잘 마무리되는가 싶었지만, 순덕의 학교를 벗어난 빨간 책은 날개를 달고 서울로 상경한다. 그리고 어느날 학교에 들이닥친 국가안전기획부, 이른바 안기부 요원은 장군에서 국가 원수가 된 그 분을 떠올리게 하는 장군 아내의 부정이 담긴 이 책을 국가 원수 모독의 혐의가 있는 '금서'라며 지은이를 색출하고자 한다. 그저 해프닝으로 넘어갈 뻔한 빨간 책이 이제 금서와 불순분자가 되어 되돌아 온 것이다. 그 해프닝의 중심에 서게 된 김선생, 여전히 순덕에게 김선생은 교감 바짓가랭이 사이까지 들어가는 속물이지만, 김선생은 위기의 순간 자신을 던져 순덕을 구한다. 결국 '빨간 선생님'이 되어 학교에서 쫓겨나버린 김태남, 그의 진실이 순덕에게 닿기까지는 몇 년이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학생이 쓴 빨간 책에 반해버린 웃긴 해프닝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해프닝이 벌어진 1980년대라는 시공간을 드러내며 웃지못할 비극으로 귀결된다. 교감에게 잘 보이면 장땡이었던 속물 선생님은 학생이 쓴 책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뜸과 동시에, '인간적 감수성'을 회복했고, 그가 되찾은 인간미는 그에게 '진정한 선생'으로서의 길을 되찾게 함과 동시에 처절한 댓가를 선물했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으나 될 수 없었던 순덕의 아버지에 이어, 좋은 스승이 된 김태남이 걸을 수 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행로는 바로 '인간적인 선택'이 비극을 담보할 수 밖에 없는 80년대 한국을 상징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응답하라>가 그리움과 추억만으로 그 시절을 소환할 수 없는 진짜 이유다. 

몇 달만에 돌아온 드라마 스페셜은 극본 공모 가작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그간 tv 드라마가 그려내지 않았던 신선한 소재와 시절을 담으며, 드라마 스페셜의 존재감을 내뿜는다. <응답하라>의 그저 웃기는 이웃 친구였던 이동휘는 노총각 변태 선생님에서부터 참 스승으로의 성장을 '페이소스'넘치게 그려낸다. 웃음과 연민, 그리고 슬픔을 넘나드는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빨간 책이란 소재를 통해 비극적인 80년대를 설득력있게 그려낸 권혜지 작가와 유종선 피디의 조합은 최근 kbs 드라마 약진의 저력을 증명한다. 
by meditator 2016. 9. 26. 11:29

가장 핫한 두 남녀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제시 아이젠버그가 로맨틱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홍보되는 <카페 소사이어티>는 81세의 거장 우디 앨런 감독의 74번째 영화이다. 한동안 파리(미드나잇 인 파리)로, 로마(로마 위드 러브)로, 바르셀로나(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로 외유했던 감독이 그의 고향인 뉴욕으로 돌아와 만든 영화이자, 그의 또 다른 정서적 고향인 1930년대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젊은 두 연인의 사랑을 배경으로, 급격하게 발전하던 미국의 1930년대를 배경으로 노장 감독의 '인생관'이 관조적으로 드러난 영화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답게 영화는 그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덕분에 관객은 1930년대라는 시간, 공간적 격차에 편안하게 접근해 들어간다. 동시에 이는 '냉소적' 혹은 '블랙 코미디'처럼 전개되는 바비(제시 아이젠버그 분)와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의 사랑 이야기에 타자로서의 시각을 정립하게 만든다. 

뉴욕에서 헐리웃으로 상경(?)한 청년
헐리웃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에이전시 대표 필(스티브 카렐 분)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목소리도 알아차리기 힘든 그 전화의 주인공은 뉴욕의 누이에게 걸려온 것, 그 내용은 다름아닌 조카 바비가 헐리웃에 간다하니 이른바 일자리 청탁을 한 것이다. 그 누이의 전화에 이어 필을 찾아온 바비, 하지만 그가 정작 필을 만나게 된 건 몇 주의 시간이 흐른 후, 그래도 조카라니 필은 직원 보니를 시켜 헐리웃 구경을 시켜주고, 잔심부름부터 일거리를 준다. 

오늘날의 뉴욕이라는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1930년대의 뉴욕에서 헐리웃으로 상경(?)한 청년, 그리고 그런 청년을 '우리가 남이가?'이라는 이유만으로 '측근'으로 들이는 삼촌, 이 촌스러운 관계로 풀어지는 이야기의 실마리가 바로 19030년대를 상징한다. 이른바 '황금시대'라고 불리워졌던 1930년대의 헐리웃은 아직 그런 '꿈'을 꾸는 것이 가능했던 시대라고 감독은 바비의 '홀홀단신 상경'을 들어 설명하는 듯하다. 



바비가 살았던 뉴욕은 어떤 곳이었을까? 보석상을 하지만 술독에 빠져살며 어머니에게 무능력의 상징으로 구박받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직업이 전망이 보이지 않자, 큰아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나선다. 당시 뉴욕에서 그가 선택한 일은 동네 투전판에서 부터 해결사, 살인 청부까지, 그렇게 스스로 몸집을 불려나간다. 그런 아버지나 형의 삶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바비는 당시 떠오르는 꿈의 도시 헐리웃을 향해 자신의 꿈을 일군다. 

하지만 정작 헐리웃에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헐리웃이라는 거대한 '꿈'의 도시가 아니라, 보니라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한때 영화배우를 꿈꿨다지만, 일찌기 그 허상을 깨닫고 현실에 적응했다는 그녀, 재즈를 좋아하고, 헐리웃을 구경시켜주지만, 그 '황금의 문화'의 천박성을 비판하는 그녀에게 바비는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하지만 인생이 늘 그렇듯, 보니를 좋아했던 사람은 바비만이 아니었으니,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어 그를 불러낸 삼촌 필이 바로 바비의 연적이었던 것이다. 이미 필과 오랜 시간 만나온 보니, 하지만 여전히 필은 '이혼'에 주저하고, 그런 가운데 바비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어필한다. 야망을 품고 상경한 헐리웃 하지만 바비가 만난 건 꿈의 도시가 아니라, 천박한 욕망의 도시, 그곳에 시들해진 바비는 보니와 함께 고향 뉴욕으로 돌아가 누나처럼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데, 그런 그의 꿈을 알게된 필과, 필과 바비 사이에서 갈짓자를 그린 보니의 어긋난 선택이 그를 홀로 뉴욕으로 향하게 한다. 

헐리웃에서 필을 도왔던 바비는 이번에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클럽을 인수하여 뒷골목에서 나온 형을 돕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환멸'을 느꼈던 헐리웃의 경험이 클럽을 리뉴얼하는 촉매제가 되어 그와 형의 클럽은 뉴욕 제일의 사교 클럽 '카페 소사이어티'가 되었다. 더불어 보니는 아니지만 또 다른 베로니카와 가정도 꾸리고, 잠시 들른 보니와 못다이룬 로맨스도 잠시 즐기고, 비록 형은 사형을 당하지만 날마다 바비의 클럽은 승승장구하지만, 새해를 맏이하는 바비의 눈은 '회한'에 잠긴다. 

꿈은 꿈일뿐
영화는 1930년대를 살아낸 한 청년의 입지전전 성공 스토리이자, 개츠비처럼 실패한 연애사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바비는 물론, 그의 인생사 행간에서 그가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마치 일장춘몽같은 삶이다.

바비가 찾아간 필, 그는 헐리웃 최고의 에이전시 대표로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정작 사랑과 가정 앞에 소심해서 기회를 놓쳐버린 인생이다. 보니를 아내로 얻었으니 되지 않았냐고, 그가 사랑했던 보니와, 그가 결혼했던 보니는 동일인물이지만, 바비를 알고 난 이후의 보니는 더 이상 예전에 그에게 매료된 그녀가 아니다. 그녀는 사랑 대신, 앞날이 불투명한 사랑꾼 바비와, 안정된 부를 이룬 필 사이에서 '황금'을 선택한 것이다. 모처럼 찾아온 바비 앞에서 드러난 그녀의 두 얼굴이 그걸 증명한다. 그저 양 다리의 나쁜 년이라기엔 마지막 장면 보니의 눈빛이 보여준 공허함은 인생의 댓가를 처연하게 설명해 낸다.



바비의 형은 어떤가, 일찌기 청소년 시절 거리에서 주먹, 그리고 힘으로, 세력으로, 불법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은 이제 동생과 함께 클럽 소사이어티를 통해 비로소 그림자의 세계를 벗어나는가 싶더니, 그간 그가 저지른 범죄가 결국 그를 죽음으로 인도한다. 그런 형에 비해 누나는 낫다고? 이웃집의 소음을 견디지 못한 그녀의 편두통이 이웃집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그 장면은, 우디 앨런이 그려낸 미국 중산층의 잔인한 전사다. 자신의 불편을 제거하기 위해 암흑가의 동생과 어떤 결과가 될 지 알면서도 넌즈시 손을 잡는, 그리고 시치미 뚝 떼는 그 중산층의 속물성, 혹은 대담성을 우디 앨런은 놓치지 않는다. 형의 죽음 앞에 무기력한 유태교와 카톨릭이라는 종교의 아이러니는 또 어떻고. 그저 꿈을 꾸었던 청년이 그가 혐오해 마지 않았던 방법으로 부를 이루고, 사랑을 잃고, 그럼에도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어쩌면 바로 미국이 살아낸 모습이기도 하다. 

번창하는 자본주의 사회 미국, 황금시대의 문화를 구가하는 1930년대의 미국에서 영화 속 그들은 '운이 좋아' 모두들 그 번창과 부흥의 파도에 올라타 넘실거린다. 하지만, 들여다 보면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공허한 바비와 보니의 눈빛처럼 그들은 가지되 가진 것이 없다. 꿈을 꾸었지만, 꿈은 꿈일뿐이었다. 현실은 휘황하되, 공허하다. 81세 뉴욕으로 돌아온 노장이 짚은 어메리칸 드림이다.


by meditator 2016. 9. 23. 17:44

oecd 이혼율 1위의 국가, 하지만 현실에서 맞닦뜨리는 것은 오히려 결혼이란 제도에 대한 융통성있는(?) 사고보다, 그 반대급부적인 '강고한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이데올로기이다. 명절만 지나면 이혼율이 높아지는 사회, 높아지는 이혼율로 인해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것은 '가족'이요, '결혼'이다. 하지만, 그 '신봉하고 있는' 결혼과 가정의 현실은 어떨까? 연예인이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의심만 들어도, 혹은 그 '바람'의 대상이었다는 의혹만으로도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이름보다 욕으로 불리워지는 세상이지만, 아침드라마에서 부터 주말드라마까지 드라마를 견인하는 것은 숱한 불륜들이다. 거기에 또 하나의 '불륜' 드라마가 주중 미니 시리즈도 첫 선을 보였다. 바로 <공항 가는 길>이다. 




얼마 전 종영한 <굿와이프>, 미드를 각색한 이 드라마에서는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옮겨와 여주인공 김혜경(전도연 분)이 남편 이태준(유지태 분)과 옛친구이자 현재의 동료인 서중원(윤계상 분) 사이에서 애정의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극중에서 김혜경은 남편을 만나고 난 후 바로 엘리베이터에서 중원과 키쓰를 하는 모습을 통해 '욕망'에 솔직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작 미드 굿 와이프가 몇 시즌에 걸쳐 여주인공 앨리시아의 캐릭터를 구축한 것과 달리, 단 16부작으로 김혜경의 일과 사랑을 다룬 <굿 와이프>는 독자적인 삶을 개척하는 여주인공보다, 결국 두 남자 사이에 불륜과 사랑의 줄타기를 하는 모습에 치중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주체적인' 사랑의 선택이란 측면에서, <굿 와이프>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륜'이란 꼬리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이러니다, 여주인공의 파격적인 사랑이 화제가 되면서도, 여전히 한편에서는 그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네'라고 불리는 아내와 아내 몰래 딸을 그리는 아빠의 만남
9월 21일 시작한 <공항 가는 길>은 심지어 남녀 두 주인공이 모두 유뷰남, 유부녀이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어차피 불륜 드라마'라는 부담감을 안고 시작하는 처지가 되었다. 드라마의 기획 의도는 두 남녀의 두 번째 사춘기를 그리겠다고 하지만, 두 기혼자가 주인공인 것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제작을 맡은 김철규 피디는 '불륜 드라마라고 확정지어버리면 할 말이 없다.며,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위로'와 '관계'에 주목해 달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21일 1회에 이어, 22일 방영된 2회는, 김철규 피디가 공언한 '위로'와 '관계'의 주춧돌을 쌓기 위해 공을 들인다. 경력 10년이 넘은 베테랑 승무원인 최수아(김하늘 분), 직장에선 똑부러지는 그녀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의 일상은 달라진다. 그녀를 '자네'라 부르는 남편 박진석(신성록 분)과 그녀의 관계는 '부부'라지만 상하 관계에 가깝다. '기내식'처럼 아내가 랩으로 싸놓은 반찬으로 만나는 이들 부부는 하나있는 딸의 교육에 있어서도 아빠의 욕심이 먼저다. 아내의 의견을, 그저 투정으로 받아들이는 남편, 그리고 싱글 라이프를 즐기기에 여념없는 시어머니 앞에, 워킹맘 수아의 딸 수호작전은 역부족이다. 

그런 그녀 앞에 서도우가 나타난다. 국제 학교에 보내진 딸과 같은 방을 쓰던 룸메이트의 아빠, 그리고 그 딸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고통받는, 하지만 그 역시 그런 그의 마음을 아내와 소통할 수 없어 하던 차에, 사소하게 그를 배려해주는 수아와 서로 '소통'하게 되는 것이 1,2화의 내용이다. 



자식을 둔 부모들, 하지만 부모라는 공통점만으로 함께 나눌 수 없는 부부, 거기서 벌어진 틈을 드라마는 세밀하게 그려낸다. 항공사 기장으로 국제화 시대에 능력있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욕망에 충실한 박진석과, 자신의 일에 열심이지만 소박한 가정을 꿈꾸는 그의 아내가 빚어내는 긴장과 딸을 그리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달리 미스터리하게 딸을 어떻게든지 멀리하려하다 결국 죽음으로 내몰고, 그런 상황에서도 잔인하리만치 자신의 일상을 지켜내려는 아내의 독기 사이의 불협화음을 섬세하게 드라마는 들여다 본다. 그리고 그런 소통할 수 없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외로워진 두 영혼이 서로를 들여다봐주는 작은 소통을 통해 선뜻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낸다. 남자와 여자라는 '성'으로서의 만남 이전에, '위로'와 '관계'를 전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위로'와 '관계'의 전제 속에, 질문이 던져진다. 과연 이들 '부부'는 무엇일까? 하고. 

<공항 가는 길>은 가을이라는 계절을 타고, 요즘 흔한 드라마의 템포에서 한 발짝 비껴선다. 남과 여의 채워지지 않은 욕망 대신에, 함께 살지만, 서로의 다른 가치관과 소통하지 못하는 외로움에 천착한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알아주는 눈 밝은 이에게 어쩔 수 없이 열리는 마음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반문한다. 아마도 이 느리게 감정을 쌓아가는, '욕망의 전차'로서의 불륜 드라마로서의 화제성도 부족할 지도 모를  이 드라마가 이 가을의 대표작이 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누군가 허허로운 마음에서 솟아오른 질문 한 자락이 있다면 한번쯤 귀기울여볼만한 드라마란 생각이 들게한다. '불륜'이라는 방패가 아니라, 김철규 피디의 바램대로, '성숙한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드라마로 끝까지 완주해 주길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6. 9. 23. 05:44

이렇다할 경쟁작이 없었던 추석 연휴, 9월 7일 개봉한 영화 <밀정>은 순조롭게 600만(의 고지를 넘겼다. 그리고 이 여세라면 역시나 당분간 흥행 호조를 이어갈 듯하다. 하지만 흥행 호조와 다르게 <밀정>을 보고 난 소감들은 엇갈린다. 충분히 감동적이다부터, 지루했다까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고민이 절절히 다가왔다에서 상투적이다까지. 어쩌면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다양한 결의 생각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기에 <밀정>은 볼만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다양한 생각들 속에 몇 가지 질문을 더해보고자 한다. 




올해 영화를 개봉한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 <덕혜옹주>의 허진호 감독, 그리고 <밀정>의 김지운 감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2000년대 화려한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감독들이다. 그리고 그간 헐리웃이나 중국 등에서 작품을 하는 등 국내 활동이 뜸했던 감독들이기도 하다. 이 감독들이 공교롭게도 2016년 동시에 역시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신의 작품을 들고 '고국'을 찾아왔다. 그런데 역시나 공교롭게도 모두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아가씨>야 장르나, 주제 면에서 다른 두 작품들과 차별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덕혜옹주>나, <밀정>은 그 주제면에서 일맥상통하게 '민족주의'의 계열에 놓여있다. 이 감독들의 영화에서 '악'은 '일제시대'라는 배경으로 너무도 선명하다. 성도착적이거나 파렴치하거나 사이코패스적 친일파나, 교묘하거나 잔인한 일본군이다. 최근 '건국절' 논란과 함께 일제 시대에 대한 왜곡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는 즈음에서, 이러한 분명한 일제를 배경으로 한 '악'은 주목받고 대중의 공분을 얻기에 충분하다. 의도하건, 의도치 않았건 박평식 평론가의 정의처럼, 2016년 영화계에 '민족주의'라는 트렌드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명량>을 시작으로, <국제시장>, 그리고 2015년 <베테랑>과 <내부자들>로 잠시 현실로 돌아왔던 영화계는 2016년들어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그리고 <밀정>까지 조선시대에서부터, 6.25를 거쳐 일제시대까지, 일관된 주제 의식을 가지고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거기에 모처럼 돌아온 중견 감독들이 그 흐름의 불을 꾸준히 지펴간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삼시세끼>의 차승원을 앞세워 역시나 '민족'이라는 화두를 내세운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부진을 보면, '민족주의'라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 트렌드에 한 발 거치고 있다는 지점을 피해갈 순 없는 것이다. 

황옥, 그리고 왜 이정출
<밀정>의 첫 장면은 미륵반가상을 들고 친일파를 찾아간 김장옥(박휘순 분)이 그의 밀고로 인해 일본 경찰에 쫓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결국 일본 경찰에 포위된 김장옥, 그는 포위된 상황에서 총에 맞은 자신의 발가락을 절단한다. 이 '뜬금없는' 발가락 절단 장면에 대한 의문과 호불호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 눈밝은 관객이 말한, 인간은 죽음 앞에서도 삶을 생각한다. 죽겠다는 행위 대신 삶과 자신의 의지에 대한 결단으로 발가락을 잘랐을 것이다라는 해석이 우문현답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김장옥의 결단, 혹은 의지는 하지만 그의 죽음을 막지 못한 채, 그 죽음을 말리려고 했던 주인공 이정출에게 '서사'의 바톤을 넘겨준다. 한때 임시정부에서 김장옥과 호형호제하며 독립운동을 했던 이정출, 하지만 이제 그는 일본의 녹을 받으며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일본 경찰이다. 그에게 일본 경찰은 정채산을 비롯한 김우진 등의 의열단 체포의 명령이 떨어지고, 동시에 그런 그에게 김우진이 접근한다. 



<밀정>은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송강호가 연기하는 이정출만이 도드라진 부조와 같은 작품이다. 몇 장면 등장하지 않는 정채산(이병헌 분)이 존재감을 빛내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후인물'일 뿐이다. 일본 경찰이지만 한때 동지였던 김장옥을 살리려고 애썼던 이정출, 그리고 자신을 알아주었던 일본 경찰과, 이제 그 일본 경찰의 모호한 태도 속에서 새롭게 자신을 알아봐주는 의열단 사이에서 인간적으로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결국 영웅적 결단을 내리는 이정출의 일대기와도 같은 영화이다. 

그렇게 영화가 일제의 밀정이었으나 결국 의열단의 실패할 뻔했던 의거를 실행에 옮긴 이정출에 집중하는 반면, 그와 반대의 길을 걷게 된 의열단이었지만 적의 밀정이 된 조회령(신성록 분)과 주동성(서영주 분)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처단을 선사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의열단 핵심인물인 김우진은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답지 못한 연계순의 사진을 찍는다던가, 연계순이 잡힐 뻔한 상황에서 임무를 방기한 채 연계순을 구하려 물불을 가리지 않는 등 '인간적 실수'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 의열단 내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던 유일한 여성 단원 연계순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녀의 존재는 잠시 김우진과 애틋한 연모의 사이였다가, 이정출의 '자각'을 위한 대상으로 쓰인다. 대신 의열단이었던 동지였던 이들이 실패했던 길을 '밀정'이었던 이정출의 영웅적 결단과 실천이 대신한다. 

영화 속에서 음악이 도드라지는 장면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루이 암스트롱의 'when you're smilong'이다. 히가시와 함께 차를 탔던 이정출이 히가시의 협박 혹은 회유에 다시 차문을 열고 경찰서로 들어선 이후 '학살'에 가까운 독립군 검거 장면에서 깔리는 음악이다. 이에 김지운 감독은 1920년대 젊은이들이 즐겨 들었던 음악이라며 그 간극의 아이러니를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감독의 의도가 어떻든 그 장면은 독립군이었던 젊은이들의 목숨이 일제에 의해 압살당하는 장면이었고, 그리고 본의든 피치못해서든 이정출은 거기에 '협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루이 암스트롱의 목소리가 앞서나가며, 이정출의 개입을, 그리고 젊은이들의 죽음에의 잔학함을 둔화시킨다. '아이러니'로 느끼는 정서와, 직시는 분명 다르다. 뿐만아니라, 이 장면에서 '아이러니'는 느낄 지언정, 거기에 이정출의 참여에 미처 관객의 시선이 돌아가지 않는다. 

또 하나, 마지막 이정출이 설치한 폭탄이 터지는 장면에서는 라벨의 볼레로가 울려퍼진다. 이 장면은 감독에 의해 연출된 환타지다. 실존 인물 황옥으로 추정된 이정출이 '역사' 속에서 그려진 마지막 장면은 김우진, 연계순 등과 함께 한 재판에서였다. 밀정이었으나 독립군으로 잡혀 재판을 받았던 그에 대한 동정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재판정에서 이정출은 김우진등이 상해에서 국내로 폭탄을 들여오는 걸 도왔지만, 그건 김우진 일당을 일만타진하기 위한 미끼였을 뿐, 자신을 일본 경찰로서의 임무에 충실했다고 밝히고 있다. 해방 후 경무총감까지 지내며, 국회의원 출마까지 하려했다던 이정출, 아니 황옥의 진실은 그의 납북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두 장면의 음악은 관객의 해석을 앞지르거나, 혹은 저어하며 앞서나간다. 대신 관객은 음악에 홀려, 이 장면에서 생각할 지점을 놓친다. (굳이 킹스맨과의 유사함을 더하진 않겠다)



김장옥의 발가락, 그리고 경계인의 초상 
김지운 감독은 그 모호한 인물에게 의열단 행동대장으로서의 영웅적 행보를 맡긴다. 김우진도 실패하고, 연계순도 실패하고, 다른 인물들이 변절한 가운데, 실제 역사적 평가가 물음표로 남긴 인물이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은 일본군에 대한 '테러'를 성공시킨 환타지로 그의 역사적 복권을 의도한다. 과연 이 장면이 최근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진 <덕혜옹주> 속 덕혜옹주가 징요당한 노동자들 앞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란 장면과 다를까? 왜 감독들은 굳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인물들을 불러 그들에게 '민족주의'의 과업을 맡길까? 최동훈 감독의 <암살>에도, 김지운 감독의 <밀정>에도 공교롭게도 김원봉이 등장한다. 특별출연인 조승우와 이병헌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단 몇 장면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존재감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왜 감독들은 김원봉을 특별출연으로 뒤로하는 대신, 논란의 인물들을 내세울까? 대중적으로 공감받기 쉬운 인물이라서? 그게 아니면 우리 일제 시대 독립 운동사를 들여다보면 자유로울 수 없는 '사상'의 지뢰밭을 피하고 싶어서?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밀정>은 마치 첫 장면 김장옥이 발가락을 자르는 그 결단과도 같은 영화처럼 다가온다. 발가락을 자르는 그 장명은 분명 그의 결단과 의지이지만, 과연 거기서 굳이 그래야 했을까라는 의문표가 따라붙는. 

물론, <밀정>의 미덕은 있다. 오히려 이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메시지는 '민족주의'라는 트렌드를 넘어, 경계인의 초상이다. 일본이냐, 조국이냐 그 경계에서,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들, 그리고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민의 그 경계에 선 어찌보면 실존적 질문이다. 그리고 그 미덕은 늘 갑과 을, 혹은 자본과 피고용의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론에 고뇌하는 현대인들의 질문에 가닿는다. 송강호라는 배우기에 가능했던 이정출의 고뇌어린 두어 시간에 그래서 관객은 흠씬 빠져들게 되지 않았을까?

by meditator 2016. 9. 19. 16:55

추석에 연이어 주말이 이어져 유독 길고 긴 연휴, 가족들과의 시끌벅적한 만남도 잠시, 장시간 귀향길에 지친 몸을 끌고 또 북적이는 영화관이다 뭐다 다니는 것도 시들하다면 이 넘치는 연휴의 시간에 드라마 몰아보기 한 판어떨까? 까짓거 맘만 먹는다면야 하루 날 잡아서 16부작 드라마 전회 정도는 너끈히! 그래서 연휴 기간 동안, 그동안 못봤던 드라마, 혹은 재밌는 드라마를 몰아보려고 준비중인 드라마 덕후들을 위한 몰아보기권장 드라마! 그 두 번 째로, 최근 <무한도전>무한상사로 파트너쉽의 건재를 보여준 장항준, 김은희 부부다.

 

<무한도전>은 우리 시대 대표적 예능이다. 언제나 화제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늘 새로운 문화적 콘텐츠들을 창출해 내왔다. 그런 <무한도전>의 여러 콘텐츠들 중 출연 멤버들이 회사원으로 등장하여 직장인의 삶과 애환을 그려낸 무한상사는 스테디셀러이다. 2011년 첫 선을 보인 무한상사탄생에서부터, ‘야유회’, ‘종무식과 새해인사’, 신입사워 gd, 그리고 뮤지컬 편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여왔다. 2015년에는 나는 액션 배우다를 예고했지만 선보이지 못했던 <무한도전>은 그 아쉬움을 보상하려는 듯 2016년 액션 블록버스터 무한상사를 방영했다. 그리고 몇 달간의 대장정을 통해 한 편의 영화처럼 ‘2016년 무한상사를 완성시킨 사람은 바로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감독 부부이다.

 



1.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부부의 또 다른 콤비 플레이가 궁금하다면?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감독 부부가 대중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방영된 <싸인>을 통해서이다. 당시로서는 드문 범죄 스릴러물에 신선했던 법의학자가 주인공인 <싸인>은 이 새로운 설정을 뛰어넘어, 매회 시청자들을 쥐락펴락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심지어 마지막 회에 주인공이 스스로를 희생하는 기상천외한 엔딩으로 25.5%의 최고 시청률을 달성했다. 초반에는 감독으로, 후반에는 함께 대본 작업을 하며 협업을 펼친 두 사람의 <싸인>은 아직도 범죄 스릴러물의 대표적 작품으로 오르내린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이 호흡을 함께 한 것은 <싸인>이 첨이 아니다. 불운의 괴작으로 이 드라마를 봤던 소수의 시청자들에게 기억되는 <위기일발 풍년빌라>tv 드라마로는 첫 작품이다. 2010년 당시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케이블 방송국 tvn의 초창기 작품으로 풍년빌라라는 음산한 빌라를 배경으로 아버지에게 3000만원짜리 빌라를 유산으로 받았지만, 그로 인해 자신도 원치 않았던 사건에 얽혀 들어가는 오복규(신하균 분)의 해프닝을 그린다.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장항준 감독 특유의 기발함과 초창기 김은희의 스릴러적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풍년빌라>을 주행해 볼 일이다.


싸인        위기일발 풍년빌라

 

2. 김은희 작가하면 역시?

암만해도 최근 김은희 작가라 하면 올 한 해 최고의 화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시그널>이 떠올려 질 것이다. <미생>의 김원석 피디와 만나, 조진웅, 이제훈, 김혜수라는 배우들의 새로운 면모, 그리고 과거와의 대화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아니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순들을 신랄하게, 하지만 인간미넘치게 그려낸 수작이다.

하지만 <시그널>만이 아니다. 김은희 작가는 이미 <싸인> 이래 줄곧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그에 대항하여 자신을 던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그려왔다. 또한 그 방식과 서사에 있어서도 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왔다. <싸인>에서 법의학자를 내세워 의 견고함에 자신을 내던지도록 했다면, 2012<유령>에서는 사이버 수사팀장 김우현(소지섭 분)을 내세워 사이버 세계권력에 대항하도록 한다. 그런가 하면 2014<쓰리데이즈>에서는 단 3일간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경제적 권력 앞에 무기력한 대통령(손현주 분)과 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경호원(박유천 분)을 통해 당시 세월호 사건 등으로 침통했던 상황 속에서 국가지도자에 대해 질문한다. 2016무한상사에서도 이어진 작가 김은희의 질문은 언제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묻혀져서는 안될 사회의 근본에 대한 물음들이다.

몇 편의 김은희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재미로 보는 관전 포인트 하나, 김은희 장항준 부부의 친구이기도 한 장현성은 김은희 작가 작품에는 단골 손님이다. 그것도 주로 악역으로, 변호사로, 경찰국장으로, 경호원으로, 다시 경찰로 장현성의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악역 열전 또한 숨겨진 볼거리라 할 수 있다.


유령       쓰리데이즈 시그널      드라마의 제왕




 

3. 장항준의 단독 플레이는?

장항준은 김은희 작가와 함께 <풍년빌라>, <싸인>을 감독하기에 앞서 이미 <라이터를 켜라(2002)>, <불어라 봄바람(2003)>을 통해 흥행 감독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이후 <전투의 매너(2008)>등 몇몇 작품을 연출했지만 대중들의 뇌리엔 남아있지 않다. 그렇게 영화 쪽에서 이렇다할 소득을 얻지 못했던 장항준 감독은 tv로 넘어와 김은희 작가와 함께 연달아 두 작품을 한 후 서로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가 달라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김은희 작가와 작품적으로 이별한 장항준 감독의 첫 작품이자, ‘무한상사이전의 마지막 작품은 <드라마의 제왕(2012)>이다. 최고 시청률 8.9%로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지 못한 이 작품은 김명민의 코믹한 연기와 드라마판의 까발린 이면으로 그 이후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 벤치 마킹할 정도로 아직도 종종 이 드라마 속 에피소드가 현실 사건으로 등장하며 종종 언급될 정도의 리얼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우리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블랙코미디를 맛보고 싶다면 장항준 감독의 <드라마의 제왕>을 권해본다

by meditator 2016. 9. 17. 15:05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드라마

 

추석에 연이은 주말, 가족들과의 시끌벅적한 만남도 잠시, 장시간 귀향길에 지친 몸을 끌고 또 북적이는 영화관이다 뭐다 다니는 것도 시들하다면 이 넘치는 연휴의 시간에 드라마 몰아보기 한 판어떨까? 까짓거 맘만 먹는다면야 하루 날 잡아서 16부작 드라마 전회 정도는 너끈히 몰아볼 수 있잖은가. 그래서 연휴 기간 동안, 그동안 못봤던 드라마, 혹은 재밌는 드라마를 몰아보려고 준비중인 드라마 덕후들을 위한 몰아보기권장 드라마! 그 첫 번째로, 요즘 한참 상종가를 치고 있는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구르미 그린 달빛

822일부터 kbs2tv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츤데레 왕세자 이영과 남장 내시 홍라온의 궁중 위장 로맨스 사극

<응답하라 1988>의 저주라는 말이 무색하게 <응답하라 1988>에서 택이로 모성 본능을 울렸던 박보검이 왕세자로서 한껏 매력을 풀어내고, 아직 미성년자이지만 왕세자 이영과 내시 홍라온의 감옥씬이 키스씬보다 더 가슴을 설레게 했던 김유정의 성숙해진 면모, 그리고 남장을 할 여인네를 그런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세자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긴장감 넘치는 관계, 그것들을 아름다운 화면에 담아내며 20%의 고지를 앞두고 있다.(6회 닐슨 코리아 18.8%)

 

구르미 그린 달빛

 

1-1. 남장 여자가 등장하는 사극이 궁금하다면?

무엇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란 드라마의 재미는 내시로 궁궐에 들어온 여자 홍라온이 가져온 긴장감이다. 궁궐에서의 만남 이전에 서로 해프닝처럼 얽혀진 인연, 그리고 궁궐에서의 조우, 친구인 듯, 신하와 왕세자인듯하며 위기를 겪어가며 이영과 홍라온의 맘이 깊어져 가는 이야기는 궁궐이라는 배경이 성균관으로 다를 뿐 남장 여자가 등장하는 로맨스 사극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 이미 익숙한 이야기이다. 금서 배달 과정에서 만나게 된 이선준(박유천 분)과 김윤희 아니 김윤식(박민영 분)이 과장에서 다시 만나 성균관의 한 방에서 함께 생활하며 공부하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쌓아가는 과정은 로맨스 사극의 원형이 되었다. 운종가의 연애 비법서를 쓰고, 정치적으로 이영과 척을 지게 되는 가문의 자손 홍라온의 캐릭터는 <성균관 스캔들>의 김윤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거기에 홍라온의 키다리 아저씨역할을 하는 김윤성(진영 분)과 이영의 오른 팔 김병연(곽동연 분)이 이 두 사람과 엮어가는 이야기 역시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유아인 분)와 여림(송중기 분)와 두 주인공이 엮어가는 우정인 듯, 남녀간의 연모인 듯, 그리고 브로맨스를 연상케하는 지점, <성균관 스캔들>의 재미 포인트를 <구르미 그린 달빛>은 고스란히 옮겨오고 있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 <성균관 스캔들>에서 성균관의 참 스승이자, 김윤식 아버지와 함께 동문수학한 인연으로 김윤식의 보호자로 등장했던 정약용이 같은 역할을 했던 안내상에 의해 다시 한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등장한다. 과연 이번에도 정약용은 <성균관 스캔들>에서처럼 참 스승과 여주인공의 보호자가 될까?


성균관 스캔들

 


1-2. 왕세자의 사랑이 궁금하다면?

똥궁전이라 칭해질 정도로 예와 법도따위는 나 몰라라 궁궐의 골칫거리인 세자 이영, 그런 이영과 비슷한 또 한 사람의 세자가 있다? 바로 신예 김수현을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2012년작 <해를 품은 달>이 그것이다. <해를 품은 달><구르미 그린 달빛> 벌써 제목부터 비슷하지 않은가? 하지만 두 작품은 정은궐의 로맨스 소설과 유지수의 웹소설로 전혀 다른 장르의 작품이다. 하지만 골칫덩어리 세자 이영과 스승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하는 악동 왕세자 훤은 비슷한 캐릭터이다. 심지어 무기력한 왕과 세자의 위치를 넘보는 무리들까지, 그런 정치적 위협 속에서 운명적으로 세자는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되지만, 원치않는 사람과 결혼까지 해야하는 설정까지 두 작품은 흡사하다. 과연 이영은 이훤처럼 왕이 되어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이영으로 못다한 왕세자의 사랑을 좀 더 만끽하고 싶다면, 최고 시청률 42.2%라는 기록을 세웠던 <해를 품은 달>에 도전해 보심이!


해를 품은 달


 

 

2. 원작이 궁금하다고? 각색도 만만치 않다.

유지수가 쓴 <구르미 그린 달빛>웹 소설 1, 누적 조회수 42백만, 평점 9.9’를 기록하며 웹소설계의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원작 소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총 다섯 권의 장편이다. 현재 바영되고 있는 <구르미 그린 달빛>은 단 18부작, 장황한 서사의 원작 소설을 18부작의 깔끔한 스토리로 뽑아 낸 것은 바로 김민정, 임예진 두 사람의 작가다. 이들 두 사람의 작가는 <구르미 그린 달빛>에 앞서 역시나 <구르미 그린 달빛>의 김성윤, 백상훈 피디와 함께 <후아유-학교 2015>를 집필했다. 하루 아침에 인생이 달라진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성장담을 진솔하게 그려냈다 평가받았던 <후아유>, 김민정, 임예진 작가의 필력이 궁금하다면 강추!

양념으로 김민정 작가가 쓴 드라마 스페셜 <happy 로즈데이(2013, 8, 14방영)>, <나에게로 와서 별이 되었다(2013, 11,3)>도 한번 찾아보시길!



 

3. ‘예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연출이 궁금하다고?

150억이라는 엄청난 규모와 이미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보보경심-><구르미 그린 달빛>의 대결을 앞두고 세간에서는 전자의 압승을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김성윤, 백상훈 피디의 유려한 화면에 담긴 두 젊은이들의 풋풋한 만남은 단박에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고 말았다. 한 장면, 한 장면이 그림같은 마치 청춘을 화면에 담은 듯 녹음이 흐드러진 화면은 청춘 로맨스 사극으로 <구르미 그린 달빛>에 걸맞는 배경 그 이상으로 작동한다. 보고있는 시청자들이 광합성이라도 하게 만들 기세의 푸른 화면만이 아니다. 라온이와 세자가 풍등 축제에서 조우하는가 하면, 거기서 또 윤성마저 얽힌 관계, 그리고 그런 젊은이들의 인연 위로 날아가는 풍등을 바라보는 왕의 근심까지, 아름다움 그 이상의 감정을 절묘하게 배치하며 시청자들을 흡인한다.

이렇게 150억 대작을 소소한 준비로 대번에 ko시킨 김성윤, 백상훈 피디의 전작은 무엇이었을까? 각색을 한 김민정, 임예진 작가와 함께 한 <후아유-학교 2015>가 그것이다. 그에 앞서, 김성윤 피디는 <태양의 후예>의 이응복 피디와 함께 2014년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연애의 발견>도 연출했다. , 드라마 스페셜 4부작 <사춘기 메들리>도 놓칠 수 없다. 김성윤 피디와 함께 <연애의 발견>을 연출했던 이응복 피디는 또 다른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는 백상훈 피디와 함께 한다. 이들 세 사람은 일찍이 2011<드림 하이 1>에서 백상훈 기획, 이응복, 김성윤 연출로 함께 팀웍을 갈고 닦은 사이다.

 

by meditator 2016. 9. 16. 18:11

앨리스가 다시 돌아왔다. '이상한 나라'로 갔던 앨리스는 이번엔 '시간' 속으로 여행을 한다. 2010년에 개봉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팀 버튼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 왜 진작에 만나지 않았을까란 반문이 들 정도로, 두 세계의 조우는 기대가 되었다. 그 어떤 작품을 만나도, 그만의 색채로 전혀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팀 버튼 감독이 동화라기엔 그 해석의 세계가 무궁무진한 환타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변주한다는 건, 그에게 새로운 날개를 선사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동화 속 '이상한 나라'는 팀 버튼에 의해 가장 화려하게 '시각'화 되었고, 동화가 가지는 가치 전복의 세계는 '팀버튼'월드를 통해, 그 '이상함'이 확장되었다. 물론, 그 팀버튼스러움을 더한 이상함이 잔뜩 분위기를 잡느라, 정작 서사는 '붉은 여왕'vs. '하얀 여왕'이라는 단선적 대결 구도로 뻔한 어드벤처물로 된 듯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상한 나라'의 '이상함'만으로도 뭐 그다지 아쉽지 않았다. 그런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이제 '시간' 여행으로 돌아온다니, 과연 팀버튼이 빚어낸 '시간'은 또 어떤 이상함을 선사할까 기대가 되었다. 


물론 역시 팀 버튼이라는 '수식어'를 내세웠듯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곳곳에는 '팀버튼스러운' 분위기들이 여전히 물씬 풍긴다. 하지만, 정작 팀버튼이 제작을 했지만, 제임스 보빈이 감독한 이 영화는 해마다 우리 나라에서 열리는 '명화' 전시회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유명한 화가들을 들먹이며 호객을 하지만 정작 그 전시회에서 만나는 건, 알려진 작품 대신 습작이거나, 그도 아닌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들로 채워진 기대와는 다른 전시회를 본 그런 아쉬움을 고스란히 되풀이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캐릭터의 활약이 아쉬운
영화는 여전히 화려하고, 거울 속에 빨려든 앨리스는 죽어가는 모자 장수를 구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험에 자신을 내던진다. 앨리스가 돌아간 이상한 나라는 여전하고, 그녀가 뛰어든 시간의 성은 이상한 나라 못지않게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가 하면, 시간을 거스른 거기에는 또 다른 동화 속 세상이 열린다. 하지만 화려한 분위기도, 상상력의 경계를 넘어선 듯한 '시간'의 세상도 신기하지만, 그 뿐이다. 

화려한 색채와 박진감넘치는 언드벤처에도 불구하고 내내 싱겁게 느껴지는 그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결국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작품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팀 버튼의 해석으로 귀결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수학자였던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앨리스라는 소녀는 회중 시계를 든 토끼를 따라 토끼굴로 들어가며 '모험'의 세상에 빠져든다. 이 작품에서 앨리스가 하는 모험이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잣대를 벗어난 새로운 세계이다.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고 동물들이 사람처럼 움직이는 것은 물론, 그들의 행동 양식 자체도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것들이다. 제목에서 부터 이상한 세상에선 이상한 것들이 멀쩡한 듯 행동하고,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진다. 그 속에서 '상식'을 지닌 소녀 앨리스의 행보는 당연히 '모험'과 '위기'를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언밸러스한 비상식의 세계는, 이미 해골들의 순애보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선사한 바 있는 팀 버튼이라는 비상식적인 감독을 통해 가장 적절하게 표현된다. 당연히 원작 속 토끼며 쌍둥이며, 사냥개들은 저마다 캐릭터를 가지고 활약하며, 팀버튼의 영혼의 단짝인 조니뎁에 의한 '모자 장수'는 감초 그 이상으로 앨리스의 혼을 쏙 빼놓으며 '이상한 나라'를 이상한 나라스럽게 만드는데 공헌을 한다. 

바로 이 지점, 이상한 나라에서 이상스러움을 보여주었던 그 등장인물들이 거울 나라에서는 그저 '단역'처럼 스쳐지나가 버린다. 무엇보다, 그 이상스러움에 선봉장 역할을 하던 조니뎁의 무존재라니! 과연 이 사람이 조니 뎁 맞는가 싶게, 거울 나라에서 그는 죽어가는 역할 그 이상을 해내지 못한다. 조니 뎁만의 '미친 모자 장수'의 활약을 끝내 보지 못하고 나선 극장에선 과연 내가 이 영화를 본게 맞나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건 앤 헤서웨이의 하얀 여왕도 마찬가지다. 조니 뎁과 앤 헤서웨이라는 쌍두 마차를 제치고, 열렬한 활약을 보인 건 붉은 여왕의 헬레나 본 햄 카터와 '시간'의 사차 바론 코헨이지만, 두 사람이 제 아무리 발군의 노력을 한다 한들, 조니 뎁만 하겠는가. 

원작 속 앨리스는 본의 아니게 토끼 굴로 들어가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모든 사건에 끼어들게 된다. 앨리스의 의도와 무관하게 버젓이 '티파티'의 일원이 되는가 하면, 여왕의 재판에 끼어들어 위기에 빠지게 되는데, 그 '본의 아닌' 사건들에 꿰어져 들어가는 앨리스에 대해, 안타까움과 흥미진진함이 들지언정, 왜 남의 일에 끼어들어 생고생을 할까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거울 나라'로 가서 '시간 여행'까지 하는 앨리스를 보며, 왜?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앨리스는 죽어가는 모자 장수를 구하기 위한 '고운' 마음으로 '시간'을 멈추거나, 시간을 거스르는 모험을 서슴치 않는데, 물론 죽어가는 모자 장수를 구하기 위한 것인 줄 알면서도 어쩐지 그 모험의 위기에 앨리스의 타자성이 자꾸 눈에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앨리스가 알아주지 않아 죽어가는 모자 장수, 정말 자신의 가족이 살아있다는 걸 믿는 모자 장수라면, 그가 스스로 시간 여행에 뛰어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앨리스와 같이 시간 여행에 뛰어 들어야 하는게 아닌가란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지울 수 없다. 



조작된 가족애와 성장 담론
앨리스는 '시간'을 거르스는 금단의 모험으로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의 해원도 풀어냈을 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모자 장수의 가족이 죽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낸다. 사건의 당사자는 하얀 여왕과 붉은 여왕, 그리고 모자 장수이지만, 자매, 그리고 모자 장수 가족 간의 난관을 해결해 주는 사람은 앨리스라는 서사의 딜레마가 생기는 것이다. 결국 영화는 오래된 자매간의 질시와 그로 인한 세계의 불행도 해결해 내고, 모자 장수 아버지와 아들간의 오해도 풀어주며, 이별했던 가족 간의 해후까지 만들어 주며 '가족'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마치 '선물'처럼 받은 이 '가족애'는 주제로 내걸기도 무색한 것이다. 진정한 '가족애'라면 내 가족은 내가 지켜내야 하고, 내 가족간의 오해는 내가 댓가를 치루더라도 해결해 내야 하는 것이다. '금단'의 시간을 어겼지만, 그 누구도 시간의 금을 넘은 댓가도 치루지 않은 해피엔딩은 무가치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무색함을 덜어내기 위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그랬듯,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의 모험 후에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약혼을 파했듯, 이제 거울 밖 세상에서 자신이 집착했던 아버지의 배를 포기한다. 하지만 그 조차도 그런 앨리스에 대한 어머니의 감동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 앨리스는 모험 이후에 달라진 듯보이지만, 사실 앨리스는 모험을 하기 이전부터 세계를 누비던 용감한 모험가였고, 단지 잠깐 그 모험의 대상을 달리했을 뿐이다. '성장'을 이야기하려 하지만, 이미 이전부터 배를 호령하는 선장이었다는 환타지에서 시작된 영화는 '성장'조차도 궁색하다. 그저 성장을 위한 요식행위랄까.
by meditator 2016. 9. 10. 06:45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최근 빈번하게 제작되고, 흥행에 있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과연 '과거'를 보는 '시각'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즉, '역사'란 과거의 사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그 '과거'의 알려진 일부 사실을 '현재'의 잣대로 '편집'할 수 밖에 없는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왜곡' 혹은 '오역'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줄리언 반스의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e.h. 카의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란 명제에 대해 주인공 에드워드가 '역사란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란 해석을 내놓듯이 말이다. 무엇보다 최근 개봉되는 대부분의 영화들이 '과거'를 빌미로 '민족'이라는 감성에 호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과연 근대적 산물인 '민족'이라는 개념을 그것이 탄생하기도 전인 '조선'이나,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논'하는 것이 옳은 가의 문제이다. 즉, 현재의 '민족적 감성을 부추키기 위해 '과거'를 이용하지 않았는가란 질문에서 최근 한국 영화들은 그다지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역시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우문에 대해 <임진왜란 1592>는 현답을 제시한다. 




조선의 바다를 지킨 사람들
1회에서 선조는 도읍 한양을 버리고 '곧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평양성을 향했다. 하지만 파죽지세로 몰려드는 왜군에, 2회 선조는 다시 평양성을 버리고 정처없는 길을 떠난다. 이미 유성룡의 <징비록>을 통해 이미 알려졌듯이, 조선의 임금 선조는 서슴없이 자신의 나라 조선을 버리고 강을 건너 중국으로 망명하려 했다. 망한 조선의 왕족들처럼 그래도 자신은 강국의 그늘에서 거둬질 수 있으니 라며. 그렇게 임금조차 떨어진 짚신 짝처럼 버리는 나라, 과연 그 나라를 지켰던 사람들은 누구였으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왜군에 의해 도륙당하는 조선의 바다에, 단 한 사람 아직 지지않는 장수가 한 사람 있었다. <임진왜란 1592>는 그 한 사람의 장수 이순신에 대해 굳이 설명을 덧대지 않는다. 그가 남긴 징한 기록 <난중일기> 속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적었을 뿐인데, 구구절절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1회 이순신의 몇 마디 말로, 그가 조선의 바다를 지키려는 그 심정과 마음에 가닿을 수 있다. 그리고 2회, 그런 이순신을 따라, 바다로 나간 사람들을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는 그려낸다. 

2회에 '그들'을 설명하기 위해, 1회 도륙당하는 경상도에서 왜군의 칼에 맞아 죽어가는 아들을 짊어진 채 이순신의 군영을 찾은 막둥이 아빠(조재완 분)를 등장시킨다. '군영'이니 당연히 '민간인'을 들일 수 없는 형편, 하지만 죽어가는 아들을 등에 짊어 진 아버지는 읍소한다. 자신의 아들을 살려달라고, 그런 그를 막아서는 병졸들, 하지만 이순신의 수하 이기남(이철민 분)이 호통을 친다. 죽어가는 아이를 데리고 경상도에서 전라도 좌수영까지 그 먼 길을 찾아온 백성을 여기서 내치면 죽으라는 얘기밖에 더 되냐며. 그리고 그런 이기남의 '군율'에 어긋난 행동을 이순신은 모른 척한다. 하지만 이미 이기남이 보기에도 죽어가던 아이는 좌수영에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귀선(鬼船), 즉 거북선의 첫 출정, 이순신과 좌수영의 야심작이지만, 검증되지 않은 배는 홀로 전장의 선봉에 서야만 했다. 죽음을 각오한 이기남이 귀선의 격군들에게 이 출정이 '죽을 자리'일 수도 있음을 알리고 살 길을 터놓는다. 그때 격군이 아닌 막둥이 아빠가 귀선을 뛰어 들어와 노를 잡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이미 아이는 죽어버린 상황, 아내 역시 일찌기 왜군의 손에 죽임을 당한 그에게 귀선에 노를 젖는 일은 곧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죽인 왜군과 싸우는 일이었다. 막둥이 아빠가 그러자, 또 다른 격군이 말한다. 나는 어머니가 죽었다고, 그러자 또 다른 격군이 받는다. 나는 동생이, 그렇게 귀선의 격군들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왜군을 향한 '복수'의 마음으로 한 마음이 되어 노에 자신의 손을 묶는다. 

'민족'의 어설픈 이데올로기 대신, '민초'들이 지켜낸 나라 
바로 이 지점이다. 어설픈 민족주의 사관은 이순신을 '민족'의 영웅이라 칭송하고, 그와 그를 따라 전장으로 나갔던 이들을 '민족'이란 테두리로 묶어 세우려 하지만, <임진왜란 1592>가 그려낸 그날 전장의 그들을 묶어낸 것은 다름아닌 내 사람들을 잃은 그 '울분'이며, '통한'이다. 그리고, 임금조차 버린 나라에서, 군복을 벗지 않아 쉬이 낫지 않은 상처를 무릎쓰고 지지않고 싸우려는 이순신은 바로 그들이 '조선'이라 일갈한다. 그들이 죽지 않아야, 죽지 않고 이겨 살아돌아와야 조선이 살 수 있다고 덧붙인다. 

나랏님이 버린 조선에서 바다에서 이순신과 그의 군사들이 7년동안 단 한번도 지지않는 가운데, 도륙된 육토를 지키려고 나섰던 사람들은 바로 '의병'들이다. 신분제 사회 조선, 늘 양반에게 빼앗기기 바빴던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땅과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떨쳐일어선 것이 '의병'이다. 역사는 그들의 지도자중 일부였던 '양반'을 중심으로 '의병'을 기록하지만, 그 지도자들을 따라 목숨을 바쳤던 다수의 '의지'들은 바로 자신의 터전을 지키려는 <임진왜란 1592> 2회가 그리고 있는 '그들'이다. 그 '의병'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던 그 마음을 드라마는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1회에 제 아무리 망해가는 나라라도 제대로 된 '지도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상황이 어떻게 역전될 수 있는가를 이순신을 통해 보여주었다면, 2회에는 그 한 사람의 지도자를 뒷받침해주는 '그들'의 헌신을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애쓴다. 이순신의 전과가 커져갈 수록, 그를 상대하고자 하는 왜군의 규모도 나날이 커져만 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곱 장수 중 한 사람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111척의 배을 이끌고 이순신을 향해 온다. 그런 왜군에 대항해 싸울 이순신의 배는 불과 26척. 

1회에서도 양 측의 전술과 무기 배치를 통해 이순신의 승전을 재해석해냈던 <임진왜란 1592>는 2회에서도 그 '사실'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기습, 아직 전열이 채 다듬어 지지 않은 조선 수군, 선봉장인 귀선과 이기남을 비롯한 귀선의 군사, 격군들은 이 선봉에서 자신들의 귀환이 여의치 않음을 직감한다. 하지만 주먹질을 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였던 이기남 장군의 저돌성은 군사들을 독려하여, 홀로 79척의 적진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제 아무리 철심과 단단한 송판으로 무장을 했다해도 왜군들이 쏘아대는 조총의 물량 공세에 결국 귀선의 이기남을 비롯한 다수는 목숨을 잃고만다. 



그렇게 귀선이 목숨을 던져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그 뒤를 이순신이 뒤따르고, 26척의 불리한 조건을 이겨내기 위해, 이순신의 대장선은 불과 50보의 사이를 두고 첫 포성을 울린다. 하지만 그도 잠깐,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다시 한번 포를 장전하는 사이, 왜군의 전략 '키리코미' (배에 올라타 칼로 사람을 베어 죽이는 전술)명령을 내린다. 이미 사전 함포 사격 연습에서 일본의 키리코미에 장전이 이겨낼 수 없음이 드러난 상황, 바로 그때 이순신은 배를 돌리고, 반대편에 장전되어 있던 함포를 포격한다. 불과 26척의 배로 학익진을 만들어 낸 그 전략이 가장 절묘하게 진가를 발휘하는 그 지점, 그 결과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59척을 배을 잃고 대패하고 만다. 

그리고 드라마는 승전보의 팡파레 대신, 이순신이 그의 난중일기에 남긴 귀선에 탄, 그리고 죽어간 병사들의 모습과 그 이름을 차례로 보여준다. 이 승전이 바로 순천에서 온 이기남을 비롯하여 막둥이 아빠, 박개춘, 조언부 등 그리고 노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출전 전의 잠시나마 흥겨웠던 그 순간들을. 이순신이 장궤에 자신의 이름을 뺀 채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승전이 그들로 인해 가능했음을 조정에 올리고, 난중일기에 남겼듯 드라마도 이 장면을 통해 조선의 바다에 있던 '그들'을 증명해 낸다. 나랏님도 버린 나라를 지킨 '민초'들을. 나라의 진짜 주인들을. 시대를 구한 영웅 이순신의 필요충분 조건이 된 사람들을. 

by meditator 2016. 9. 9.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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