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 영애씨의 일과 사랑을 다룬 <막돼먹은 영애씨>가 10월 5일 시즌 14를 완주했다. 시즌 14, 대한민국 드라마계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대세이던 2007년 '다큐멘터리' 형식에 '드라마'를 가미한 새로운 시도로 작은 간판 회사에서 후덕한 외모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맞서 '막돼먹게' 대들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던 영애씨가 드디어 그녀의 꿈이었던 '이영애 디자인'의 사장이 되며 시즌 14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어디 시즌14뿐인가, 시즌14의 마지막, 양 손의 떡처럼 양 팔에 두 남자 김산호(김산호 분)와 이승준(이승준 분)을 안은 영애씨의 네버엔딩 러브스토리처럼, 당연히 시즌 15가 예정되어 있다. 





낙원사의 사장이었던 이승준의 무모한 중국 투자로 인해 새로운 사장 조덕제(조덕제 분)가 등장하며 영애씨는 졸지에 정리 해고 대상자로 길거리에 내몰리고 만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 영애씨는 그간 꿈꾸어왔던 자신의 회사를 차리기에 이르렀는데.....

'사장'이 된 영애씨, 하지만
그렇게 이제 '을'의 처지에서, '갑'으로 등극한 영애씨, 하지만 불황에 시달리고, 또 다른 '갑'의 횡포에 무너져 내리는 이땅의 500만을 넘는 자영업자의 현실은 고스란히 <막돼먹은 영애씨> 속 '이영애 디자인' 사장 영애씨의 현실이 된다.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해 함께 고생하자 의기투합했던 라미란(라미란 분)이 영애씨를 배신한 채 낙원사로 돌아가고, 심지어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일식집 알바까지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다. '알바'를 하지 않는다고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일감을 얻기 위해 접대는 물론, 떡볶기 심부름까지 불사해야 하고, 결혼까지 갔던 산호에게 일감을 구걸하는 처지로 내몰린다. 어디 그뿐인가, 자신을 거리로 내친 낙원사에 들어가 새 사장의 갖은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간판집 직원에서, 낙원사 디자이너, 그리고 '이영애 디자인' 사장으로 영애씨의 직함은 시즌을 거듭하며 업그레이드 되었고, 그녀의 직위만 보자면 분명 '사회적 상승'에 불과한데, 막상 시즌의 회차를 채우는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 '을'로 '밥벌이의 지겨움, 궁색함'을 감수해야 하는, 그래서 보통 시민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덕분에 자신이 당한 '차별대우'와 부당함은 반드시 어떻게든 되갚아 주고야 말았던 영애씨의 '막돼먹음'은 이제는 월급도 제대로 못주는 직원들 때문에 한결 완화되고 만다. 예전갚으면 열번은 더 뒤짚었을 판을, 그래도 어떻게든 '하청' 한번 따보겠다며, 그래서 직원들 월급이라도 주겠다며 눈을 질끈 감는다. 덕분에, <막돼먹은 영애씨>의 주된 매력 중 하나였던 그 '막돼먹음'이 시즌 14에 들어와 그저 조미료처럼 가끔씩 등장한 반면, 밥벌이의 애환은 깊어졌다. 사랑했던 이의 앞에서 알바를 하다 들켜 넘어져 생선과 씨름을 하느라 치욕을 겪어도, 결국 다시 그 알바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어느새 '가장'이 되어버린 영애씨가 된 것이다. 

덕분에 비록 그녀의 '막돼먹음'의 통쾌함은 누그러졌지만, 그녀의 깊어지는 삶의 애환이 여전히 우리네 이웃의 그 누군인가같은 영애씨의 정체성을 공감케한다. 

영애씨의 사랑, 드라마의 동력이자, 딜레마
대신 '갑'이 되었지만 여전히 '을'인 자영업자 영애씨의 고달픈 삶의 행간을 채운 것은 그 어떤 멜로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했던 그녀의 사랑이다. 

시즌 13을 거쳐 이제 서로 반지를 나누며 고백만을 남겨두었던 작은 사장 이승준과의 사랑, 하지만 그 사랑은 시즌14초반 낙원사를 거덜내버린 이승준의 사업 실패로 유보되고 만다. 낙원사 사장에서 낙원사 직원이 되어버린 이승준, 존재의 초라함을 이겨내지 못한 이승준의 찌질함이, 그리고 그 낙원사에서 조차 쫓겨나버린 영애씨의 현실이 두 사람 사랑의 장벽이 된다. 

그런가 하면 결혼까지 약속했다가 혼수 문제로 결별을 한 산호가 등장한다. 같은 건물에 사무실이 있어 오가며 마주치던 산호는 위기에 빠진 이영애 디자인을 구원해준 구세주로 영애씨의 애정 전선에 막강한 존재로 복귀한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돌아온 산호의 변함없는 애정과, 사랑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가로막힌 승준의 '중2병적' 애증으로 채워져 간다. 이렇게 두 남자의 과분한 사랑을 받는 웬만한 멜로 드라마 여주인공 저리가라할 처지의 영애씨, 하지만 정작 <막돼먹은 영애씨>의 멜로를 채운 것은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해 산호에게 일감을 부탁하는 영애씨, 자존심을 접은 채 낙원사 하청으로 들어온 영애씨에게 자기 자존심을 어쩌지 못해 막무가내의 행동을 벌이는 승준처럼, 현실의 삶이다. 드라마의 틀은 삼각관계이지만, 여느 드라마와 달리, 그 삼각관계의 변수가 되는 것은 이영애라는 노처녀 자영업자의 현실인 것이, <막돼먹은 영애씨>가 여느 드라마와 다른 것이다. 



노처녀 영애씨가 <막돼먹은 영애씨>의 대표적 캐릭터인 만큼, 이렇게 삼각관계에 얼크러진 영애씨의 애정 전선은 시즌 14에서 결론을 내지 않는다. 여느 멜로 드라마라면 드라마 자체가 '도루묵'이었겠지만, 시즌 15를 앞둔 <막돼먹은 영애씨>의 결론은 다르다. 숱한 남성들과의 애정 행각에도 불구하고, '자신'이라는 중심으로 돌아오곤 했던 영애씨는 시즌14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한 호의를 가지고 자신을 바라보는 산호로 인해 흔드렸던 그녀는 오히려 그런 관계를 통해, 이전의 혼수로 인해 파토난 결혼의 앙금을 지워내었고, 모든 사람이 말리는 이승준과의 관계에서 자기 확신을 더했다. 물론 그럼에도 관계는 그녀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지만, 숱한 '산호지지파'와, '승준 지지파'의 열화와 같은 원성에도 불구하고, 그저 시즌15의 러브 라인을 위해서가 아닌, 인간 영애로 흔들렸던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시즌14는,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영애씨 다웠다. 누군가와 짝짓기의 성공이 아니라, 언제라도 그랬듯, 자기 확신과 자기 결정에 충실한 영애씨였으니까. '제작진의 밀땅'이란 원성에도 불구하고, 영애씨는 그래야 영애씨다운거니까. 



하지만 시즌14의 아쉬움도 남는다. 리얼리티 다큐의 장점을 한껏 살린, 이영애 디자인의 사장이 되어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갖은 수모를 견뎌내는 영애씨의 고군분투에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현실이 고스란히 투영되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기위기마다 그녀에게 구원의 동앗줄을 내려준 것은, 첫 일감을 준 산호에, 이제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이영애를 '갑'으로 등극시켜준 이승준처럼 여느 로맨틱코미디처럼 '남자들'이 한 몫했다는 점이다. 비록 애정 전선에서는 한껏 두 남자와 얼키더라도, 사업만은 자신의 힘으로 우뚝 서는 영애씨를 기대했다면 지나친 '환타지'였을까? 그런 면에서 현실을 한껏 살리면서도, 결국은 '로코'의 틀에 천착해버린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4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아쉬움은 아쉬움일뿐, 그 어떤 드라마보다 맛깔난 연기로 매회를 채워주는 영애씨를 비롯한 '소름끼치게' 찌질한 작은 사장, 화룡점정 라미란에서 단역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새로이 등장한 악역 조덕제 사장이 신스틸러가 되어버린 영애씨 출연진의 '막돼먹지' 않은 중독성있는 연기가 벌써 그립다. 
by meditator 2015. 10. 6. 1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