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곧 '부정(否定)'의 역사이다. 아비들이 저질러 놓은 '역사적 과오'들을 부정하며 딛고, 극복하는 것이 언제나 '자식'들의 가장 큰 과제였었다.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 6.25, 5.16, 80년 광주 사태 등등은 곧, '부정'의 과제가 되었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에서 '자식'들에게 아비들은 언제나 '오욕'의 대상이었고, 자신의 발목을 잡는 '암초'였으며, 자신들에게 '무거운 짐'만을 남겨준 '부채'들이었다. 그러기에 젊은이들에게 '아비'들은 언제나 소통불가해한'꼰대'였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88만원 세대에, 오포, 구포 세대인 젊은이들은 꿈조차 꾸기 힘든 세상에서, 어줍잖게 '포기하지 말라'고 훈계를 하는 아비들에게 냉소를 보낸다. 그렇게 여전히 '화해'하기 힘든 부모와 자식 세대의 시대, 거기에 이젠 '노장'이 되어가는 이준익 감독이 조심스럽게 '이해'와 '화해'를 청한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 꿈조차 버거운 젊은이 
쇼미더머니 6년 개근의 무명 래퍼 a.k.a  심뻑(박정민 분), 하지만 그의 일상을 채우는 건 편의점에, 발렛 파킹 알바다. 그 틈틈이 좁은 공간에서 랩 만들기에 여념없지만, 래퍼로서 세상의 문은 그에게 쉽게 열리지 않는다. 6년째 또 왔냐며 익숙하게 그래서 멋쩍게 그를 만드는 공개 오디션 현장에서 그는 여전히 날선 랩을 날리며 예선을 통과하는데, 정작 3차 예선에서 그의 발목을 잡는 건 고향, 그리고 아버지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제목의 두 작품이 있다. 하나는 1920~3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토마스 울프의 1940년 작품과 또 하나는 1986년 출간된 이문열 작가의 작품이다. 두 작품은 모두, 극중 인물을 빌어 작가들이 떠나온 고향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고향은 두 작가 개인의 고향이라기 보다는 '장엄한 낙조조차 이제는 영원한 어둠 속으로 침몰하'는 과거를 뜻한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를 떠나 이제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젊은이에게 '추억'이 된 고향은 더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고향을 떠나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서울 출신이라 살아온 래퍼 심뻑, 아니 학수를 '아버지'의 와병을 핑계로 고향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그 불러들인 그곳에는 래퍼 심뻑이 아닌 학수가 잊고싶은, 그래서 애써 지우려했던 '역사'가 있다. 



누구든지 고향에 돌아갔을 때, 그걸 대하면 "아, 드디어 고향에 돌아왔구나" 싶은 사물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이십 리 밖에서도 보이는 고향의 가장 높은 봉우리일 수도 있고, 협곡의 거친 암벽 또는 동구 밖 노송일 수도 있다. 그리워하던 이들의 무심한 얼굴, 지서 뒤 미류나무 위의 까치집이나 솔잎 때는 연기의 매캐한 내음일 수도.

- 이문열의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中



'폐항, 오로지 기억될 것이라고는 '노을'밖에 없는' 그곳은 고통의 기억이다. 지역을 주름잡던 양아치였던 아버지는 어깨들 사이에서는 '형님' 대접을 받았을지는 몰라도, 학수에겐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간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되는 '부재'와 '부채'의 대상이었다. 어머니의 '미워하지 말라'던 유언조차 지킬 수 없게 만드는, '인간 말종'이 아버지였으며, '아버지'에 대한 철저한 부정만이 그가 그 고통의 시간을 벗어날 수 있는 선택이었다. 

공교롭게도 <변산>의 이준익 감독과 얼마전 개봉한 <버닝>의 이창동 감독은 2018년의 청춘을 '고향'으로 불러들인다. 두 감독이 그려낸 청춘은 모두 '고향'을 떠나, 다시는 고향에 가지 않겠다던 이들이었다. 그곳은 '어머니'를 상실한 곳이고, '아버지'을 '부정'하게 만든 곳이다. 하지만 부정하고 상실한 청춘은 고향을 떠나와 잘 살지 못한다. 그들은 이제 현실에 짖눌려 '꿈'조차 모호하다. 두 거장이자, 노장이 된 감독들의 눈에 비친 이 시대의 청춘은 현실에 짖눌려 꿈조차 버거운 이들이다. 그런 동시대의 청춘에 대해 두 감독이 던진 해법은 그들을 '고향'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 늙은 양아치가 던진 화두
상실된 '어머니'와 달리, 그곳엔 아직 '아버지'가 있다. 한번도 제대로 아버지다운 적이 없었던 사람, 심지어 '부재'했을 때 가장 행복감을 주었던 사람, 그런 그 사람이 많이 아프단다. 학수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조차 콧배기도 비추지 않았던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아프다던 아버지는 병실에서도 그 '가오'를 놓지 않은 채 꾸역꾸역 쌈밥을 먹고 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무대의 순간조차 망쳐버린 인간, 아니 길지 않은 내 인생 내내 내 발목을 잡은 물귀신, 군대에 간다고 고향을 떠나온 내내 학수는 그 '아버지'에게서 도망쳐 왔다. 

그런데 아버지때문에 버린 그 고향에 다시 소환되어 돌아가니, 마치 어제인듯 그 시절이 '재연'된다. 관계도, 상처도, 추억도. 그곳엔 어린 시절 동네를 주름잡던 '짱'이었던 학수가 있고, 고등학교 시절 풋 사랑이 있고, 그리고 빛나던 문재와 그 '상실'의 아픔이 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것들은 마치 '그대로 멈춰라'했던 것처럼 다시 그의 삶으로 들어와 그를 흔들어 놓고, 학수는 '아버지'때문에, 그리고 '고향'의 관계들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스펙쌓기'에 시달리며 88만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대, 결혼도, 사랑도, 집도, 꿈도 포기해야 하는 세대,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젊은 세대는 안다. 그들이 '고도 성장'을 꿈꾸며, 무한 경쟁으로 세상을 몰아넣은 '아버지' 세대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능력'과 '실력'을 제일로 치는 사회를 만들어 놓은 아버지 세대로 인해, 그 휴유증을 옴팍 뒤집어 쓴 자신들은 '저성장'의 시대를 미래에 대한 기약도 없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아버지 세대는 영화 속 동네 좀 주무르던 '늙은 양아치'와 같다. 한때 좀 날리면 뭐하나, 제 멋에 겨워 살아놓고, 자식을 위해서는 해놓은 거 하나 없이, 여전히 큰 소리만 떵떵치며, 고스란히 부끄러움만을 남겨준 것을. 심지어 이제 병실에 누워있는 신세. 

그런데 감독은 되묻는다. 그런 아버지를, 고향을 너는 잊지 못하지 않았냐고. 어찌됐든 '부정'조차 결국 네 삶의 일부분 아니겠냐고. 그러니 그저 지워지지 않는 걸 애써 지우려 하지도 말고, 덮여지지 않는 걸 우격다짐으로 가리지도 말고, 꼭꼭 씹어 먹으라고. 차라리 아버지의 빰을 한 대 갈길 지언정, 버릴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척 하지 말라고. 풋사랑이었던 선미(김고은 분)의 첫사랑이 학수를 강제 소환하는 것으로 완성되듯이. 아버지같다는 말 한마디에 만사를 제쳐놓고 돌아올 고향이라면, 그 고향을, 아버지를 꼭꼭 씹어 삼키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래서 홍대를 주름잡고(?), 쇼미더머니를 향해 도전장을 날리던 최신 콘텐츠의 래퍼를 후진 기억의 고향으로 소환한다. 그리고 '단절'의 트라우마 대신, 흐드러진 한 판 추억의 굿을 펼쳐보인다. 



결국 느티나무 울창한 옛마을은, 장미꽃처럼 화사했던 시절은, 그리고 그때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마음 속에 남아있을 것이고, 고향은 언제나 새롭게, 새로이 만들어 지는 것이니까. 
                                        - 토마스 울프,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중


토마스 울프에게도, 이문열에게도 고향은 결국은 떠나온 젊은이가 다시 돌아갈 수 없던 상실과 단절의 시간이었다. 젊은이는 그렇게 아버지의 공간을, 시간을 떠나와, 그 상실을 껴안은 채 자신의 삶을 다시 써나간다. 그게 인생이라, 장엄한 낙조조차 기릴 수 없는 것이 역사라 두 작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그 손을 놓지 못한다. 노을을 가난해서 가진 게 없는 곳의 유일한 사실의 흔적이 아니라, '마니아'가 될만한 '충만'의 대상이다. 지는 순간조차,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아직 이곳에 아버지가 있으니, 그래서 그 아버지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여전히 '아버지'로 남고 싶다. 나처럼 살지 말라고,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 말하면서까지, 아들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 노을이 펼쳐지는 한 아직 하루가 끝난 건 아니라고.  기꺼이 뺨을 대줄테니, 외면하지 말고 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아픔조차 잘 소화시키고 가라는 아버지 세대의 '노파심'이다. 

외롭고 고달픈 랩으로 시작하여, 떠들썩한 뮤지컬의 난장으로 마무리지은 <변산>은 2018년의 젊음을 '고향'으로 소환한다. 변산이라는 시골 동네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들은 젊은이들이지만, 그들의 짦은 생 속에 또 하나의 역사를 논한다. 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며 버둥댔지만 그들은 그들도 어느 틈에 자신만의 역사를 지닌 어른이 되었다고 감독은 말한다. 그러니 더는 아이처럼 응석부리지 말고, 도망치지도 말고, 아버지와 다른 어른으로 잘 살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by meditator 2018. 7. 6. 1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