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뭐예요?'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 당신은 대답할 말이 있을까?

대한민국 남자들, 그 중에서도 중년 즈음의 남자들을 기가 막히게 해부하기로 평판이 자자한 김정운 교수는 한겨레 신문 칼럼에서 대한민국 중년 남자들의 취미는 '정치'라고 정의내린다. 그런데 이게 안쓰럽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만 하고, 직장에 들어가서는 야근을 밥먹듯이하며 돈을 버느라 번듯한 자신의 취미 생활 하나 가져보지 못한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그저 가능한 취미라는게 정치인들 보면서 씹어대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대선 기간 동안 종편의 시사 토크 프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열렬한 인기를 누렸었다.

그런데 중년 남성들만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죽어라 학원만 보낸 젊은이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심지어 그 아이들은 야구도, 줄넘기도 학원에서 배운 세대다. 이 아이들이 자투리 여가 시간에 할 수 있는 거라곤, 기껏해야 게임 정도다.

늙수구레한 아버지는 맨날 텔레비젼을 끼고 침을 튀기며 누군가를 욕하고, 아들 녀석은 방문 꽉 잠그고 눈이 벌개져서 화면 속의 누군가를 쳐부수고, 살아오면서 취미를 만들 시간도, 여유도 없는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취미다.

 

혼자 사는 사람은 좀 다를까?

하지만 <나 혼자 산다>를 통해 드러난 독거남들의 사는 모습도 대한민국 평균에서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이미 바이크를 타거나, 배드민턴,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한 이성재나 김광규, 노홍철 회워님도 있지만, 취미가 누워서 자기(혹은 쉬기)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김태원이나, 취미에 대한 미션이 주어지자 그때부터 무얼할까 고민하는 멤버들을 보면, 그들도 대한민국 평균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취미를 떠나서, 젊은 시절 서울로 상경한 이래 십 여년을 쭈욱 혼자 살아왔던 데프콘이 할 수 있는 음식이 '계란 후라이'라는 사실은 취미 이전에, 혼자 살아내기의 열악한 생존 과정을 슬쩍 엿보게 되는 듯해, 비감하기 까지 했다. 크림 소스는 싫어하는 알고보면 상당히 예민한 미각의 소유자인 그가 집에서 먹는 식사는 3분 카레에, 계란 후라이, 컵라면이라니. 덕분에, 그의 취미 생활의 결과인 스파게티는 그 어느 음식보다 성대한 만찬으로 보였다.

 

 

 

어떤 게 취미지?

그가 등장하기만 하면 언제나 빵빵 웃음을 터트려주시는 김광규 회원님은 이번 취미 미션에서도 예외없이 영어배우기를 선택해 시청자들의 기대를 배반치 않았다. 그런데 이분의 영어 취미 생활 선택 이유는 웃기지만은 않다. 전직 택시 운전사 시절부터 항상 그를 자신없게 하는 영어, 즉 자신의 컴플렉스를 커버하기 위한 투자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취미가 맞나?

대한민국의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 생활 이외의 시간에 자신을 투자하는 것 중에 많은 것이 외국어 습득이란다. 그런데 직업이 연기인 김광규 회원님이야 좋게 봐서 취미라고 할 수 있지만, 직장인들에게 외국어 습득은 '승진'이나, '전직'을 위한 '방과후 학습'이나, '과외'같은 항목에 더 어울리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건 그저 재밌거나, 즐기자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취미 생활하면 빠짐없이 들어가는 외국어 배우기, 여전히 학습 컴플렉스에서 놓여나지 못한 대한민국 현실의 편린이다.

 

10일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김광규는 자기계발로 영어를 배웠다. / MBC방송화면 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앞에서 대한민국 남자들 운운한 김정운 교수의 취미 중 하나는 만년필 모으기란다. 신상 만년필을 자랑하는 그를 유치하다 비웃는 동년배들에게 오히려 김정운 교수는 니네들은 좋아하는 거라두 있냐고 오히려 반문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텔레비젼을 끄고 하다못해 만년필 나부랭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걸 모으기라도 해보라고. 어린 시절 새 우표를 사서 행여라도 손자국이라도 날까 조마조마하며 우표첩에 끼워 넣던 그 마음을 되살려 보라고 충고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에서도 돈없이 취미 즐기기라는 미션이 등장했었다. 그때 멤버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한강에 가서 낚싯대를 드리우며 새삼 자신들이 생활에 치여 손쉽게 할 수 있는 그 좋아하던 것조차 생활에 치여 하지 못하고 사는 자신들의 삶을 반추했었다. 반면 <나 혼자 산다>는 각자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미션 자체가 더 부각된다.

하지만, 삶의 반추든, 무엇을 즐기고자 애쓰던, 대한민국에서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삶의 조건이 선행이 되어야 한다는 건 두 말 하면 입 아픈 전제이겠다

by meditator 2013. 5. 11. 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