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부작이었던 <블랙>, 18회 드디어 4%의 고지를 넘기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4.181 %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 또한 거의 내내 동시간대 1위를 수성하며 화제성과 시청률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송승헌이라는 새로운 '인생' 캐릭터를 부여하며, 그간 오로지 잘 생긴 배우로만 '소비'되던 이 중견 배우의 지평을 열어보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성과를 차치하고 애초에 16부작에서 18부작으로 늘어났던 <블랙>의 완결성에 놓고서는 물음표를 제기할 수 밖에 없다. 444, 이름도 형체도 없이 오로지 번호로만 불리워지는 본투비 저승사자 블랙(송승헌 분)의 이승 세계 블로버스터급 모험담을 그린 이 드라마는, 그와 엮인 '죽음'을 보는 강하람(고아라 분)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시대성'을 담보하려 했지만 작가도 모르고, 그래서 시청자의 고개는 더욱 갸웃해질 수 밖에 없는 '과유불급'의 서사로 완성도에 오점을 남겼다. 




꼬리에 꼬리를 분 진범, 과유불급
장황했던 서사를 통해 결국 18회에야 드러나는 최종 보스 사고 당시 무진 시장 최근호가 드러냈다. 우병식- 오만호, 오만수 부자 - 김형석 의원 - 최근호로 이어진, 이 배후는 무진 타임 마트의 부실 공사 수주와 그 과정에서 미성년자 성접대, 더구나 붕괴 당일 최 시장의 성접대로 이어진 지배 엘리트의 부도덕 시스템을 밝히고자 한다. 

그런데, 여전히 오리무중인 세월호 당시 박 전 대통령의 행보를 연상시킨 이 최종 보스 최근호의 는 현직 대통령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시간에 쫓긴 드라마는 그 어마어마한 최종 보스의 존재감을 드러낼 시간이 없었다. 아니 설사 그가 대통령이었다 해도, 이미 우병식으로부터 이어진 꼬리에 꼬리를 문 보스 밝히기의 행렬은 새 보스가 드러난다 해도 시청자를 깜짝쇼에 빠뜨릴 동력을 잃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애초에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 계기는 송승헌이 분한 블랙, 저승사자 444의 캐릭터 때문이었다. 인간의 영혼을 수거하는, 그래서 늘 '인간 따위'라며 인간을 낮잡아 보던 이 오만한 본투비 저승 사자 블랙이 자신의 띨띨한 파트너 재수똥(제수동, 박두식 분)을 놓치면서 인간 세상에 내려오면서 벌이는 해프닝이 신선한 소재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 신선한 캐릭터 블랙, 하지만 그가 인간 세상에 오면서 잠시 머물기 위해 빌린 한무강이, 알고 보니 그의 동생이자, 알고보니 자신의 심장이 이식된 존재였다는 딜레마가 오만한 저승사자를 '운명적 사건'에 빠뜨린다. 거기에 어린 시절부터 준이 오빠를 스토커처럼 좋아했던 소녀 하람과 김선영이었던 자신을 숨긴채 살아가는 윤수완(이엘 분)이 엮여지게 되고. 

그런데 이 엮여지는 세 사람은 각자 자신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블랙은 자신의 심장과 자신의 몸이 서로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블랙의 숨은 사연, 그리고 어릴 적 성폭행을 숨긴 채 한무강의 약혼녀가 된 윤수완, 그리고 불의에 죽은 아버지의 사연을 품은 강하람까지. 그리고 이들의 사연은 20년전 무진에서 벌어진 타임 마트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들어 가는데. 

이렇게 인물 소개에서도 벌써 사연이 구구절절한 <블랙>이 풀어지기 시작한 것은 무진 폐공장에서 벌어진 클라라와 김선영의 대치, 그리고 백골 시체로 발견된 클라라의 발견에서 부터이다. 그런데 회차를 거듭하며, 과거의 사건이 벌어지며, 이 현장에 있었던 인물이 늘어난다. 클라라와 김선영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 자리에 김준(한무찬)과 동생 한무강이 있었고, 거기에 다시 왕영춘(우현 분)이 등장하고, 그를 쫓는 강하람의 아버지 강수혁과 다시 스토리가 전개되며 김형석이 등장한다. 그리고 쫓기다 사고를 당한 김준의 의붓 어머니이자 한무강의 엄마까지 등장하게 되고. 거기에 알고보니 그 자리에 강하람까지 있었다는데. 

결국 이 세 사람이 엮이게 된 이 결정적 사건이 회를 거듭하며 등장 인물들이 늘어난다. 시청자들이 예상한 프레임을 벗어나, 회를 거듭하면서 우병식의 배후로 뜬금없이 김형석이 등장하고, 최근호가 등장하듯, 사건 현장의 인물들이 늘어난다. 과연 이게 반전일까? 우병식인줄 알았더니 오만호 부자가 있었다까지는 시청자들의 예상할 수 있는 범주이다. 스릴러의 묘미라면, 시청자들이 한껏 두뇌를 부풀려 상상할 수 있는 그 범주 내에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정해진 플레이어 외의 인물이 링 안으로 들어오면서 게임의 주도권을 잡아버린다면, 과연 시청자들의 기분은 어떨까? 아마도 최란 작가는 쓰면서 '이건 몰랐지?'라면 통쾌할 순간, 시청자들은 '이게 뭐지?'라며 '멘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최란 작가의 자충수, 시대의 비극을 소재주의로 만들다. 
<블랙>이 그랬다. 블랙의 몸에 들어간 한무강의 사연, 그리고 그와 엮어진 김선영이자 윤수완의 비극적 사건, 그리고 강하람의 고통스런 과거를 무진 타임 마트라는 시대적 사건과 엮어갈 때까지만 해도 이 드라마는 흥미진진했다. 최란 작가의 큰 그림에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그 흥미진진함이, 알고보니 진범은 따로 있었대라는 식이 되가면서 회를 거듭해가며 주인공을 시련에 빠뜨리며 드라마의 동인은 주저앉아 버린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시대적 비극은 회를 거듭하며 무한 루프처럼 되풀이 되는 진범은 따로 있지의 게임 플레이에 '소재주의'로 전락하고 만다. 

무엇보다, 인간의 몸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인간 따위'라고 본투비 저승사자의 마인드를 놓지 못하는 블랙이 어서 빨리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죽음을 보는 강하람과 엮이며 벌이는 에피소드들이, 어느 순간엔가 두 사람의 사연 덕분에 짖눌려진다. 저승사자는 매번 킬러에게 밀리고,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며 인간의 운명에 개입한 강하람은 사고를 일으키기만 하는 '민폐'의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거대한 배후 세력의 압도적인 존재를 밝히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재물이 되거나, 희생되고 만다. 그나마 저승사자라서, 죽음을 봐서 주인공 두 사람만이 목숨을 건진 수준이다. 




그 과정에서 저승 사자의 룰과, 죽음을 보는 하람의 능력의 설정들은 회를 거듭할 수록 무색해 진다. 죽은 자를 보는 하람의 설정은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 되어갔고, 무로 돌아갔다는 블랙이 죽은 강하람의 영혼을 마중 나오는 엔딩에 이르면 그저 아름다운 러브 라인을 위한 애교라 눈을 질끈 감게 된다. 

그런데 익숙하다. 안타깝게도 최란 작가의 이 방식이 낯설지가 않다. 2014년 sbs 월화 드라마였던 <신의 선물- 14일(이하 신의 선물)> 의 궤적이 비슷했었다. 조승우의 첫 드라마 출연작이었던 <신의 선물>은 14일의 타임 슬립이라는 신선한 소재로 주목받았다. 거기에 흥신소를 운영하며 '법과 정의와는 담쌓은 초절정 양아치' 기동찬 캐릭터는 블랙 444 못지 않은 시청자들의 환호를 받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강하람처럼 잃은 딸을 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모정 김수현(이보영 분)이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민폐 여주가 되었고, <블랙>처럼 뒤얽히고 얽혀 여주인공에게 총을 들게 만들듯이, 돌고 돌아 사회악도 밝히지만, 주인공도 가해자로 만들어 버리는 묘한 서사로 완성도의 아쉬움을 남긴 드라마로 회자되고 말았다.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과, 뜻밖의 가해자인 설정은 주인공을 극적으로 몰고간다는 점에서 맞지만, 뉘앙스가 다르다. 반전에 반전을 꾀하다 자충수가 되고만 <신의 선물>의 비극을 안타깝게도 <블랙>이 다시 되풀이 하고 만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의 선물>과 <블랙>의 설정은 빛난다. '소재주의'가 돼버렸지만, 개인의 비극과 시대적 아픔을 엮어내려는 시도는 묻히기에 안타깝다. 그리고 조승우에 이어, 송승헌의 캐릭터 역시 배우들에겐 '인생 캐릭터'이다. 어쩌면, 이런 장황한 반전의 자충수는 16부작, 혹은 18부작이라는 드라마 경영학의 폐해일 수도. 차라리 8부작의 드라마도 시도되고 있는 이즈음, 최란 작가의 다음 작품은 깔끔하고 선명한 플롯이 돋보일 수 있게 욕심을 좀 버린 회차로 돌아오길. 


by meditator 2017. 12. 11. 16:45